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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4.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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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인목사.jpg▲ 김도인목사
 
율법교사로 살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 것인가? 율법교사는 예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짐을 자신이 지지 않고 어려운 사람에게 지웠기 때문이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누가복음 11장 46절)” 반면,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짐을 나눠 진다. 나눠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기 위함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장 2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이다. 그 날의 정점이 부활절이다. 2019년 부활절, 그리스도인은 함께 질 짐이 세상의 짐이다. 세상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의 짐을 먼저 지셨기 때문이다.
부활절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악의 짐을 벗어주신 날이다, 그 이유는 세상의 죄악의 짐을 함께 지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질 그 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적인 짐이다. 다른 하나는 삶의 짐이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짐을 함께 져야 하는 부활절을 우리는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 그저 그리스도인들만의 축제의 날일뿐이다. 교회는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부활절 칸타타, 부활 달걀 나누기, 부활절 헌금으로 어려운 가정 돕기 정도로 축제의 날로 보낸다. 이런 행위는 사랑을 나누는 날이 아니라 자선을 하는 날일 뿐이다. 그 자선도 생색내기 정도다. 부활절의 정신을 실현해야 될 날에 부활의 껍데기만 매만진다.

부활절은 죄인들을 위한 날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신 후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번 부활절에도 우리들을 위한 날보다는 죄인들을 위한 날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 의인인 우리가 교회 밖의 죄인들인 세상 사람들을 위한 날로 보내야 한다.

마땅히 그리스도인은 부활절 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예배를 드린 다음에는 부활을 모르는 사람들, 부활이 필요한 사람들의 짐을 함께 져야 한다. 즉, 그들이 예수님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날이 되도록 만들 사명과 책임이 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어깨동무를 한다. 그럼 부활절은 반쪽이 된다. 부활절은 예수님과 세상 사람들이 어깨동무할 수 있게 하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장을 만들려면 먼저 갖출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향기를 품어야 한다. 예수님의 향기를 품지 않으면 사람들이 부활절의 축제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부활절날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는가 물끄러미 관찰하기만 한다.

“화향백리 인향만리”라 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향기를 적어도 억만 리는 가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 담긴 나눔이다. 줄 수 있는 것 나눔이 아니라 주기 힘든 것 나눔이다. 받은 사람들이 감동과 울림이 되는 나눔이다. 그 나눔을 물질이 아니라 삶이다. 감동 있는 삶, 울림이 있는 삶이다.

선물 작은 것 준다고 좋아하는 시대 아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 관심 없는 물질로 생색내는 부활절이 아니라 삶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부활절이어야 한다. 그럼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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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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