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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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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서회는 구한말에 문서선교를 위한 교회연합기관으로 설립되어 올해 6월로 129주년이 지났다. 내년 130주년 기념 준비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즈음에 생각이 복잡하다. 과연 ‘문서 선교’라는 것이 앞으로도 유효한 일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전자책이 출현하면서 종이책이 살아남을지를 놓고 찬반 논의가 뜨거웠다. 그러나 이 논의는 이제 진부한 일이 되었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의 관계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지금은 종이책·전자책 상관없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초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때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글자로 된 텍스트를 읽는다. 그러나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읽을 뿐이다. 정보는 질문에 즉답을 주지만, 단편적이고 실용적이다. 그에 반해 책은 오랫동안 연구한 지식이나 지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묶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책에는 서론이 있고, 주제에 대한 연구사나 주제에 대한 반론까지를 포함하는 다양한 논의를 통해, 왜 저자의 논지가 옳은지를 드러내고 입증하는 본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는 결론이 있다. 그러니 한 덩이의 문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거기 담긴 저자의 질문과 고뇌, 길을 찾기 위한 연구의 노력, 잘 정리된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책은 인류가 글자를 발명한 이후 오랫동안 지식과 지혜를 담는 소중한 그릇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보를 찾기 위해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서론부터 결론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짧은 정보와 영상이나 동영상을 찾는 시대가 되었고, 공영방송에서 대한민국의 ‘난독’ 증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에까지 이르렀다.

 기독교,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책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만큼 많은 신학과 신앙서적을 생산한 종교는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에 맞선 프랑스 구교는 개신교인을 색출할 때, 성서 ‘책’이 나오면 체포했다. ‘책’이 개혁교인의 증거였던 셈이다. 책을 가진 신앙인들은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고 처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책’에서 멀어졌다. 간증이나 성공이야기 정도는 몰라도 진지한 질문으로 책을 정독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한쪽에서는 ‘성경필사’가 유행하지만, 예배시간조차 찬송 성경을 찾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예배당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성경 구절, 찬송 가사나 멜로디를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회 홈페이지에도 동영상이 넘쳐다.

 시대를 어찌 거스르겠나 싶기는 하지만, 책에서 건지는 지혜는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들고, 책에서 건지는 신앙 성찰의 깊이는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울 것이니, 생각만 더욱 많아진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런 문제에 관해서 토론하는 때가 올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성이 희박할 거라는 비관이 우세하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겨놓아야 하는가?

 요즘 한일 간 대립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부당하고 무례한 아베 내각의 처사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경제적으로 일본을 넘어서자는 ‘극일’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경제만일까. 문화적으로 책과 문서에 대한 태도에서도 일본을 앞서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문서선교’라는 개념은 나를 곤궁하게 만든다.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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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허물어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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