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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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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시고 활동하셨던 곳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이다. 갈릴리는 성경에서 “스불론 땅, 납달리 땅,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로 불렸다. 성경은 이 지역을 “사망의 땅, 그늘진 땅, 즉 “죽음과 절망이 있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마태복음 4장 12~16절).

갈릴리는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신 곳이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셨던 곳이요 부활하신 예수께서 가장 먼저 가셨던 곳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는 철저히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교회는 우는 자를 외면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로마서 12장 15절). 교회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 같이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한다. 교회가 자신을 존재하려는 순간 교회는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일제의 강점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3·1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나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교회가 민족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했을 때 교회는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교회는 일제로부터 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되고 순교를 당했다. 많은 교회들이 소실되고 파괴되었는데 제암리교회의 만행 사건은 교회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민족의 아픔과 슬픔과 염원을 함께 겪고 꿈꾸지 않으면 맛 잃은 소금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밟히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한반도에는 지난해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평화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평화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가치이다. 이제는 결코 역사의 계절을 뒤로 물릴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의 숙원은 한반도의 평화요 통일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다(에베소서 2장 14절).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평화를 위한 사명을 받았다. 교회는 어떤 종류의 불평등이나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국경, 혈통, 인종, 신분,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평화의 강물을 이 땅에 흘러 보내는 근원이 되어야 한다.

평화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희생의 터 위에 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평화를 주신 것 같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셔서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지금 평안과 기쁨의 공동체가 형성된 순간 그들이 안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 공동체 안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세상으로 보내셨다. 어두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나가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신 것이다. 가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를 누린 것, 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사랑과 평화를 누리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전파하라고 보내신 것이다. 세상 속에 가득 찬 어두움과 죄와 폭력과 두려움과 미움과 다툼과 분열을 몰아내고 평화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들도록 이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변화시키도록 제자들은 세상 속으로 파송됐다.

한국교회는 이 시대를 위해 거룩한 기름을 부음 받은 자로서 이 민족의 최대의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명을 위해 깨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불의와 불법과 폭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 한가운데로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민족을 위한 교회로 나설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성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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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한 교회, 고난받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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