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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클리박사 삼위일체론 연구발표

“교회에 삼위일체론이 왜 필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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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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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탑.jpg▲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코클리박사가 기도와 욕망과 성을 매개로한 삼위일체론 해석을 발표했다.
 
올해로 12년차를 맞은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에서 사라 코클리박사(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기도, 삼위일체론의 근원」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삼위일체론에 관한 색다른 접근이어서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코클리박사는 삼위일체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삼위일체론이 도대체 왜 필요하였는가? 왜 하나님이 ‘삼위일체적(triune)’이라고 처음에 이론화 되었는가?” 4세기 공의회 협상을 통해 결정된 삼위일체적 정통은 “기독교의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 안에 계시는 세 ‘위격들’이라고 규범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비범한 신학적 성취였다”고 코클리박사는 설명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심대한 신학적 및 영적 위험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정통은 적어도 반어적 비정통이 되는 잠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코클리박사는 삼위일체에 대해 ‘단선적 모형’과 ‘포함적 모형’을 구분한다. 단선적 모형은 “성부-성자 관계성에 일차적인 초점을 두기에 성령은 이 관계성을 교회에 이차적으로 조달하는 자가 된다. 이미 주목하였듯이 이 모형은 요한복음에서 막강하게 표현되며, 사도행전의 교회시대 이야기와 함께 확장됨으로써 추가적으로 확증된다”고 코클리박사는 설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함적 모형에서는 “성령이 단지 그리스도의 계시를 확장하는 분으로만 이해되지 않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성령은 피조영역이 하나님의 삶 안까지 실제로 따라가게 하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코클리박사에 따르면 단선적 모형이 승천과 오순절을 구분하는 사도행전에, 또한 그리스도를 대체하는 ‘다른 보혜사’에 관한 요한복음 예언에 암묵적으로 근거하는 반면, 포함적 모형은 우선 바울에게 근거하며 특히 로마서 8장에 지대하게 근거한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은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성령의 활기를 북돋워 주고 촉발하여 주시는 사역과 함께 행하는 협력적 활동”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클리박사는 “삼위일체의 본질은 하나님이 창조세계와 함께 지니시는 은혜로운 방식들이다. 즉, 창조세계를 성자의 삶 안으로 이끄시고 그것을 본받게 한다”며,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우선순위는 성령에게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이기에 성부의 확장을 가리키는 비유적 이름으로 전혀 환원 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코클리박사는 “기도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미분화된 신과 대화를 하고 그런 다 음에 이 대화를 ‘인격’(성령)으로 ‘위격화하도록’ 요청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의 지속적 행동에 관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기도가 “내면으로부터 인격적으로 및 신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점을, 그렇지만 그러한 활성화(성령)가 기도의 원천(성부)으로 전혀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주장하기를 원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코클리박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울에게 근거하는 것이며 또한 그를 어느 정도 넘어서서 명시적으로 삼위일체적 언어로 나아가는 것임이 이미 널리 인정된다”고 단언했다. 그러므로 바울의 입장이 아무런 반대도 없이 ‘정통적’ 삼위일체로 나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심오하고 중요한 통찰들이 있다”고 코클리박사는 강조했다. 예를 들면 기도의 대화가 엄밀하게 말해서 개인과 신적 단자(單子) 사이의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 재귀성의 운동이이다. 즉 “기도자 안에서 및 기도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행하시는 일종의 응답이라는 점은 관상적으로든 은사적으로든 기도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인식하는 바이다. 만약 내가 옳다면, 여기에는 성령을 ‘위격화하는’ 것으로, 즉 성령을 구별된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하게 타당한 경험의 압력이 존재한다”고 코클리박사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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