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9.07.02 13:37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43006950c8cd24966623cdd5a3e1e654_5haNY7rtEVoTogfySAsC.jpg
 
“이 자리에 여성 전도사도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있고, 맞은편 남자 전도사님의 부인되시는 분은 목사님이라고 하시니까 여성 목회자가 세 명이 있는 건데요. 제가 학부 때부터 ‘사모론’은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도통 ‘사부론’에 대해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모론/사부론’보다는 ‘부부목회자’라는 주제에 관해 관심이 더 많은데, 그 얘기도 좀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제 남편은 목사인데……” “아니, 목사님이셨어요?”

그때부터 내 남편은 지도목사가 가끔 의견을 묻기도 하는 ‘목사님’이 되었고, 나는 갑자기, 정말 황당하게도 ‘사모’가 되었다. “아이고, 사모님이셨구나.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을 남편으로 두셨으니 정말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상황을 나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무튼 내가 그 말을 한 뒤부터 몇몇 전도사들은 배우자를 호칭할 때 ‘사모님 혹은 사부님’이라고 하긴 했으나 프로그램 내내 전도사의 배우자는 ‘사모’로 불리워졌다. 어떤 강의시간에는 프린트물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심방 시 사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방 시 사모는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되셔야 한다. 사모라는 지위가 아닌 위치가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는 명예를 뜻하는 자리도 아니고, 영광의 자리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고난의 자리이다. 그러나 분명 ‘사모의 영향력’은 교회에 큰 방향이 된다. 사모님은 교회 안팎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게 은근한 영향력이 있다. 남편에 대한 영향력이다. 첫째, 아내는 절대로 남편의 메시지를 비판하지 말라. 비판을 혹시 받았다면 좋은 점을 지적해 주어라. 둘째, 사모는 교인들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목사에게서 캐내려 하지 말라. 셋째, 사모는 주일 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라. 넷째, 사모는 남의 이야기를 주의해서 잘 들어야 하고, 조언하는 일이 있을 때 급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사모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을 읽고 나서 강사는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모님들, 나대서 좋을 거 없어요”

그 자리에 있는 여성 전도사들을 마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목회자의 배우자를 ‘사모’로 통칭하고, 함께 온 배우자들을 그림자처럼 취급하고, 사모가 마치 명예를 탐하고 남편을 못살게 굴고 교인들의 정보나 빼내려 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이런 저급한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사모가 직분이 아니고 남성 목회자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사모의 역할’ 따위는 더는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단 한 번 등장하지도 않는 ‘사모’를 왜 그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제안한다. 이제 ‘사모’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사모’라는 말은 이미 교회 내 성차별적 구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배우자를 ‘사모’로 통칭하는 관습이 남아있는 한, ‘여성’ 목회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사부’는 교회 안에서 없는 게 좋을 존재가 될 것이며, 순종과 내조로 보이지 않게 조력하는 여성상과 사모라는 단어가 결합하여 남성 목회자의 배우자는 이중 구속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모’가 익숙한 만큼 우리도 성차별적 문화에 그만큼 익숙해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사모’를 운운하며 새로운 단어를 고민하는 노력이 없다면 새로운 세상도 오지 않을 것이다. 

/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향유옥합] 이제 ‘사모’라는 말은 쓰지 맙시다 (2)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