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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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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인목사.png▲ 최종인목사
 
죄책감·슬픔 억압해 속병으로 고통받는 노인 돌봄필요
자녀 잃은 노인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자녀를 잃은 상실감은 부모나 배우자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강렬하며, 지속 기간도 훨씬 길다고 알려졌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관계가 서구에 비해 강하게 밀착되어 있고, 자녀에게 투영되는 삶에 각별한 애착이 있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노인이 되어 겪는 자녀와의 사별은 그 자체로 극심한 충격이기도 하지만, 어리거나 젊은 자식보다 늙고 쇠약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어긋난 죽음의 순서에 충격과 비통함은 클 수밖에 없다.

예전에 자식을 잃은 교인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부모 돌아가실 때는 먼 산이 안 보이더니 정작 자식이 죽을 때는 앞뒤 산이 다 안 보입니다”고 했다. 그만큼 자녀 사별의 아픔이 크더라는 말이다. 자식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대처는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노인목회를 생각하는 교회는 자녀와 사별하는 노인들을 주목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별한 노인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려 한다.

여전히 죽은 자녀를 품에 안고 사는 노인이다. 노인들은 죽은 자식의 죽음을 언급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주변에 편하게 말할 수 없지만, 여전히 죽은 자녀에 대한 기억을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고 기억력도 희미하지만 죽은 자식에 대한 기억들은 생생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텅 빈 곳에 멈춘 시간을 보내는 노인이다. 자식은 떠났지만, 자식이 거하던 공간이나, 시간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고 믿는다. 그런 공간들과 추억들이 생각할 때마다 새록새록 배 나오는 짙은 그리움 때문에 많은 노인은 속병을 갖고 살기 쉽다. 그 때문에 부모들은 죄책감 속에서 슬픔을 억압한 채 빈껍데기가 되어 노인의 삶을 버티고 있다.

망가지는 몸과 마음을 갖고 사는 노인이다. 다들 그렇지는 않지만, 자녀 사별 이후 슬픔과 죄책감, 분노 등의 감정이 뒤엉켜 일상은 엉망이 되고 육체적, 심리적 건강이 심각하게 손상된다. 그러나 자식을 앞세운 부모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치료를 받거나 회복을 바라는 것 자체를 죽은 자식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여긴다.

하나님에 대한 양가감정도 있는 노인이다.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위로가 되었던 교회와 신앙이 막상 자식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위로나 희망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마음을 잡고 싶어도 자식을 먼저 데려간 하나님 앞에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주변의 위로도 전혀 귀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신앙 노인들은 사별의 충격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현실을 수용하면서 회복의 단계로 나가게 된다.

창세기에서 아벨을 잃은 노인 아담을 생각하게 된다. 어이없게도 형이 동생을 죽이는 참상을 목격했을 때 그 충격은 매우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담 부부를 위로해 주셨다. 그렇기에 노년에 자녀 사별의 충격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담은 충격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내와 동침했다(창세기 4장 25절). 자녀 사별 이후 회복을 위한 방법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담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불렀다. 하나님께서 다른 씨를 주셨다는 것이다. 자녀를 사별한 노인은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위로를 주신다. 그것을 깨닫고 슬픔에서 일어나야 한다. 자녀든지, 다른 가족이든지 모든 사별 이후에는 하나님의 위로 방법이 있다. 교인들은 그것을 발견해야 신속하게 회복된다. 셋도 자라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창세기 4장 26절). 신앙적 회복이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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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노인 24] 자녀와 사별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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