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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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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창.jpg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 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 「촛불」 의 전문

황금찬(黃錦燦)의 「촛불」은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수한 사랑의 실천이 희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시이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몸을 태우는 촛불의 희생으로, 누구나가 밝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촛불의 희생은 순수한 사랑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떠올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촛불의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자신의 몸을 드렸다는 데에 일치하고 있다. 

이 시는 촛불, 그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기독교정신의 시각에서 형상화했다. 촛불의 생명은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데에 있다. 즉 촛불의 생명, 산다는 것은 생명의 연소이며, 그 연소가 순수하고 온전한 것일수록 아름다운 희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사상에서 비롯된 형상화의 결과이다. 특히 촛불의 존재, 그 생명의 가치성을 통해 사랑의 실천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제1연은 촛불의 존재,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제3연은 촛불의 운명,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형상화했다.

제1연은 촛불의 ‘시작’과 ‘종말’을 노래하고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은 촛불의 탄생이며 출발이다. 그것은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해/출발하는 것이다”고 생명성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즉 촛불의 생명은 심지에 불을 붙이면 시작되고, 그 생명은 종말인 죽음을 향해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즉 책임과 역할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밝음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촛불의 희생에서 연유한다. “어두움을 밀어내는/그 연약한 저항”은, “누구의 정신을 배운/조용한 희생일까”라고 물음을 던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조용한 희생정신을 배운 촛불의 희생을 극대화시켰다. 이 시에서 ‘누구’로 지칭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촛불의 희생은 조용한 희생이며, 그 조용한 희생은 댓가 없는 희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과 일치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3연은 촛불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초 한자루의 한정된 생애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인 것이다. 이러한 촛불의 생애를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고 단정하고 있다. 촛불의 운명, 즉 “존재할 때/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을/모르고 있어”라고 일깨워 준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 정신은 희생이다. 촛불의 운명인 “한정된 시간”을 지니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주기 위해 “불태워 가도/슬퍼하지 않고”라고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춤추는 촛불-.”은 촛불의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촛불의 ‘한정된 시간’인 ‘순간’을 아름다운 꽃으로 향유하는 삶이다. 그 삶은 아름다운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 시는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떠올리고, 순수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촛불은 성서적으로 희생의 제물이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렸던 것처럼, 촛불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밝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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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1] 사랑의 실천위한 희생정신 - 황금찬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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