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1)

장로회신학대학교 소기천 교수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9.08.05 11:56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소기천교수.jpg
 
예수말씀은 “나쁜 열매 맺는 좋은 나무는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나쁜 나무도 없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 찔레에서 포도를 거두지 못하지 않느냐? 좋은 사람은 그 좋은 창고에서 좋은 것을 가져 오지만,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가져 온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그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고 한다. 예수말씀을 복원하면서 뒤에 나오는 ‘창고’라는 단어는 앞에 사용된 단어를 토대로 하여 추측한 것이다. ‘좋은 창고’는 ‘좋은 보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사람은 외모를 취하지만, 예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처럼 본질을 중시하신다. 교차대칭구조로 표현된 예수말씀은 자연의 이치가 창조주의 마음과 같아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순리를 말한다. 우리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예수말씀은 가시나무와 무화과를 그리고 찔레와 포도를 대조하면서, 뾰족한 가시나무와 찔레를 부드러운 무화과와 포도에 비유하신다.

우리말에 연결을 짓자면, ‘밴댕이 낯짝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뾰족한 가시나무와 찔레처럼 악한 말을 할 것이고,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화과와 포도와 같은 좋은 말을 할 것이다.

예수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순리로 돌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창세기 1장 26~27절)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본질과는 다르게 역행하는 언행을 한다고 고발하신다. 사람은 ‘순리로 쓸 것 역리로 바꾸어서’(로마서 1장 26~27절)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신 창조의 섭리(창세기 2장 24절)를 버리고, 남자가 남자로 여자가 여자로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여”(로마서 1장 27절) 동성애의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동성애를 ‘가증한 것’(히브리어 ‘토에바’는 허락하지 않은 것이란 뜻)이기에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을 읽어보라. 동성애자도 사람인데, 죽이라는 명령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진멸’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법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2세기에 마르키온이 진멸법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구약의 하나님을 저급하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거부하는 과오를 범하고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초기교회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헤렘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려는 창조의 본래 목적과 경륜을 외면하고,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그리고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음욕이 불태울 때, 이러한 동성애를 ‘가증한 것’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것’이기에 죽이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진멸법이다.

요즘 한국사회는 사회적 성과 제3의 성을 이야기하면서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성을 마치 양성평등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성은 가기 결정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의 권리’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축복이다. 

이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역행하고 성을 역리로 쓰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 예수말씀이 좋은 나무와 좋은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인간의 본질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보물과 같은 사람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1)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