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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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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일 뉴스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들은 수출규제가 대한민국 법원의 징용 판결 결과와 일본 참의원 선거와 맞물려 전략적으로 진행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외세로 인하여 겪는 아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또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탄압으로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많은 종교인은 전국 곳곳에서 기도회를 열어 눈물을 흘리며 저물어가는 나라를 위해 기도했었다. 

이화학당 학생들은 한국인 교사들과 함께 점심때마다 예배실에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이화학당 당장이었던 페인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학생들이 매일 같은 시간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이 이처럼 그 앞에 꿇어 겸손하게 기도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주실 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독여성들의 모습은 이미 이때부터 생겨난 아름다운 장면이다. 

또한 교회여성들의 나라 사랑의 모습은 ‘절제운동’으로 나타났다. 3·1 운동 이후 일본은 표면적으로 문화 정책을 펴면서 부드러운 인상을 심으려 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하게 우리 민족의 뿌리를 제거하려고 애썼다. 또한 아편, 술, 마약, 담배 같은 정신을 병들게 하는 향락품을 들여오고 일본식 공창제도를 만들어 퇴폐 문화를 심었다. 조선 청년들의 혼을 퇴폐, 향락적인 것에 물들게 하여 민족의식을 뿌리 뽑자는 음흉한 통치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선구자들은 정신, 도덕운동으로 절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절제운동이란 구체적으로 금주, 금연운동이며 공창폐지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교회여성이 중심이 되어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로 조직되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의 산파는 상동교회 교인이던 손메례부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이정규이지만 손씨 집안에 시집과 서양식으로 손씨 성을 따고 스크랜튼 대부인에게 세례를 받으며 ‘메리’란 세례명을 받아서 그것을 한문으로 표기해 손메례라 한 것이다.
손메례부인은 전국을 순행하며 절제운동 강연회를 가졌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를 창설했다. 회장은 유각경이 맡았고 손메례는 총무로 실질적인 일을 맡아 진행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조선의 금주 운동은 모든 운동 중에 가장 큰 운동이다. 육을 살리고 영을 살리는 운동이며 죽어가는 조선을 살리는 운동이다” 

이처럼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 여성들은 외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행동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여성들의 기도의 열정과 주어진 것에 자족하는 생활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각화된 무역 분쟁과 소비가 넘쳐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선배들의 정신이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시대의 어둠을 밝힌 선배들의 기도 소리를 기억하며 이 땅에 기도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길을 기도의 빛을 모아 함께 걸어갈 것이다. 

/기감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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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역사의 현장에서 실천한 나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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