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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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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창.jpg
 
사철 푸른 너를 심었노라
애타게 그리움이 스미여 쌓여
향방을 잃은 내 가슴 뜰에
노란 네 꽃을 어여삐 피워
연상 기다리노라 님만 기다리노라.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
구비치는 왕의 대열이
홀연히 뜰을 메워 내 앞뜰에 흐를 적에

잎을 깔고
비단처럼 너를 깔고
가지를 들어 횃불처럼 너를 들어

호산나——— 호산나———
목쉬게 터지게 외칠 날 내게 있어
아아 종려
사철 푸른 너를 심었노라.
         - 「종려(棕櫚)」의 전문

이 시는 오늘의 삶 속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의 의미와 상징을 형상화했다. 종려나무가 주는 성서적 상징성을 이 시의 바탕에 두고, 예수의 재림을 갈망한 신앙적인 고백시이다. 예수를 기다리는 열렬한 갈망의 신앙이 승화되었다.

이 시는 4연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예수를 기다리기 위해 준비하는 성숙된 신앙이 표현되어 있다. 예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재림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성숙한 신앙의 결과이다. 제1연은 내면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화자인 자기 가슴의 뜰에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 놓고 예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애타게 그리움이 스미어 쌓여”란 구절은 예수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다. 그것은 “노란 네 꽃을 어여삐 피워”와 “연상 기다리노라”란 구절에서 그리움의 절정을 볼 수 있다.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 놓고 노란 꽃까지 피워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리고 ‘연상’이란 언어를 통해 단시적인 마음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

제2연과 3연은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된 마음이다.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 재림할 예수가 앞뜰을 지날 때에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 가지를 횃불처럼 들어 환영하겠다는 마음의 의지이다.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은 이미 성숙한 신앙으로 예수의 재림을 예측하는 시기이다. 예수의 재림은 모든 정황으로 ‘먼 훗날’이 아니라, ‘어느 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신앙적 예측이다. 또한 ‘내 앞뜰’은 내면적인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다. 1연의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은 ‘내 가슴 뜰’이다. 그리고 3연은 재림한 예수를 맞이하는 자세이다.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나, 종려나무 가지를 ‘횃불처럼’ 들고서 맞이한다. ‘비단처럼’이나 ‘횃불처럼’이 주는 이미지가 예수를 귀한 존재로 부각시켜 준다. 제4연은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목이 터지게 ‘호산나’를 외치던 승리의 그때를 연상시켜 준다. 화자는 그때처럼 ‘호산나’를 목이 쉬고 터지게 외치며,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슴의 뜰에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놓았다고 고백한다.

이 시는 어느 날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고, 맞이할 성숙한 신앙인의 마음을 노래했다. 그 기다림은 가슴의 뜰에 종려나무를 심어놓은 신앙으로 승화되었다. 특히 예수가 재림할 때에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횃불처럼 들고서 맞이하겠다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그의 첫시집인 〈종려〉의 대부분의 시들은 가장 순박한 믿음의 자세에서 기다림으로 채색되어 있지만, 제2시집인 〈잔〉은 고뇌자로서의 열도하는 자세이다. “이 잔을 나에게서 면케 하소서/나는 방초동산 사슴되어 뛰놀고 싶습니다”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마신 잔을 그가 마신다는 동행자로서의 결의를 보여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그 자체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려는 몸부림과 고통 속에서 고민하고 얻는 귀중한 유산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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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3] 예수를 맞는 신앙인의 자세 - 석용원의 「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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