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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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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19-07-02 오후 1.54.15.png▲ 류중현목사
 
6월의 달력을 넘기기 전, 우리는 이 땅의 아픈 상처를 한 번씩 곱씹게 된다. 반세기 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은 이 땅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6·25전쟁은 한반도를 비극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참화로 국군 14만, 연합군 3만 7천, 중공군 15만, 북한군 52만여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피해도 컸다. 남한 24만, 북한 28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 중 13만 명은 민간인 학살에 의한 사망이었다. 이념의 갈등으로 군인들의 총칼이 민간인에게 향한 것이다. 3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137만여 명이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이 전쟁으로 인해 인적 피해를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적 피해 또한 막대했다. 전쟁 기간 남한의 가축 피해는 소, 돼지, 닭 등 가축 280만 마리에 달했으며 주택 61만 채가 파괴되었다. 900개가 넘는 공장이 파괴되면서 공업시설의 43%가, 발전 시설의 41%가 가동 중단되었다. 파괴된 서울의 처참한 모습은 기록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연합군 참전 군인들은 지금의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회는 이 땅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교육기관을 건립하고 의료원을 개원하여 서양의 의술을 도입하는 등 애국 계몽 운동과 사회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1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의 중심이었으며 만세운동을 이끌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임시정부의 주요 요직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국교회는 전쟁의 참화로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함께 하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가난했던 시절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다. 물질과 규모의 유혹에 빠져 희생과 사랑을 버렸다. 

화려한 성장 뒤에 감춰진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 성장의 상징과 같았던 미국 LA의 수정교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했던 로버트 슐러목사는 1980년, 1,800만 달러를 들여 엄청난 규모의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화려한 건물을 세운 지 33년 만에 파산을 신청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가톨릭교회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그리스도 대성당’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롤모델처럼 여겼던 수정교회가 더는 개신교회라는 이름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 리처드 핼버슨은 “기독교는 유럽에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되었다”라며 미국교회의 물질주의에 편승한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제 기업을 넘어 대기업이 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전한다고 하더라도 물질에 집착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는 모습은 울리지 않는 꽹과리와 같이 공허할 뿐이다.

분단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 땅에는 배고픔에 굶주린 영혼이 넘쳐나고 있다. 복음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포들이 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탐욕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버리고, 낮아지고, 부서져야 소망이 있다. 한국교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다.

/교통문화선교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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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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