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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홍박사, 개혁교회500주년 기념 연구발표

“츠빙글리는 루터와는 다른 독자적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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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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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19-08-12 오후 5.15.01.png▲ 개혁교회 50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대회에서 주도홍박사가 츠빙글리 연구를 발표했다.
 
츠빙글리는 루터주의자로 불리기보다 바울주의자로 호소
“하나님은 츠빙글리를 스위스에서 소중하게 사용하셨다” 
 
  2019년 개혁교회 500주년을 맞아 주도홍박사(전 백석대 부총장.사진)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여기서 츠빙글리가 ‘독자적 종교개혁자’란 사실이 강조됐다. 

  주박사는 두 가지 면에서 츠빙글리의 독자성, 즉 루터와의 무관함을 들었다. 첫째는 1519년 츠빙글리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확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주박사는 “이는 루터와 츠빙글리와의 정신적 무관함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이때는 츠빙글리에게 루터의 사상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다”고 강조했더. 둘째는 츠빙글리가 1516년, 1519년의 자신의 새로워진 설교를 제시하는 점이다. 주박사는 “이 시점이야말로 종교개혁으로의 공개적 전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츠빙글리가 자신의 독자적 종교개혁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루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종교개혁이 이뤄졌음을 증명하고자 함이었다. 

  츠빙글리와 루터의 관계는 몇 차례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첫 번째 단계는 1518년 가을에서 1520년 여름까지로 “루터에게 매료된 단계”이며, 둘째 단계는 1520년 여름부터 1522년 초까지로 “교회 정치적 이유로 루터와 조금은 거리감이 있어지는 기간”이고, 셋째는 1522년부터 1524년까지의 단계인데, 신학적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루터와의 조심스러운 관계 설정이 이루어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고, 마지막 단계는 1525년에서 29년까지인데 무엇보다도 두 사람 사이 “성찬에 대한 구별된 이해로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던 시기”이다. 

  이 가운데 주박사는 1522년 이후 1524년까지를 주목했다. 츠빙글리가 루터와의 신학적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게 되는 시기이다. “우리와 함께 루터는 공동으로 복음적 교리를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파가 아니라, 우리는 복음적이다”는 츠빙글리의 말에 주목할 것을 주박사는 당부했다. 

  츠빙글리의 <67개 논제에 대한 해제>(1523년)는 루터와의 관계를 직접 말하는 문서이다. 주박사는 “18조에서 츠빙글리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밝힌다. 그는 루터를 ‘하나님의 성실한 종’,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전사’로 일컬으면서도, 자신을 루터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는 사실이 아님을 밝히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박사에 의하면 츠빙글리는 자신이 왜 루터주의자가 아닌지를 여섯 가지로 밝힌다. 츠빙글리는 △루터를 알기 전에 ‘오직 성경의 원리’를 실천했고 △오직 성경에만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했으며 △교부들의 성경해석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중세교회와는 차별화된 오직 성경을 만방에 알리는 시점은 1519년이었으며 △마태복음 주석에서 주기도문 강해를 루터보다 앞서 출판했고 △교황청에서 취리히로 특사로 보낸 추기경들은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전에는 츠빙글리를 루터주의자로 정죄하지도 부르지도 않았고 △츠빙글리는 자신을 루터주의자라고 일컬음을 받기보다는 바울주의자 아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소했다 등이다. 이렇게 츠빙글리는 자신을 루터주의로 불리는 것에는 반박하면서도 루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마부르크 종교회의가 열렸던 1529년까지는 특히 성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루터와 츠빙글리가 날카롭게 대치했다. 주박사는 “이 기간에 츠빙글리는 루터와의 차별성을 내세웠는데, 루터는 종교개혁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조금은 분명하지 않은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자신은 달랐다”며,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복음의 정수를 바로 터득하여, 교황권, 연옥설, 성인들의 조작된 중보기도를 거부하였”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츠빙글리의 사상이 전적으로 독자적이지는 않다고 주박사는 평가했다. 왜냐하면 “츠빙글리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특히 츠빙글리에게 있어 믿음 대신, 복음의 역할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심사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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