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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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네시아 람뽕의 박명수 선교사, 비타민 공급하며 코로나극복에 최선
    ◇박명수선교사는 유치원사역을 통해 무슬림 주민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동료 선교사가 사망하는 사건 발생 한국교회 도움으로 밀림 지역에 우물을 파 사랑을 실천    인도네시아 람뽕주에서 사랑의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박명수선교사는 코로나라는 긴급상황 가운데서도 지속적인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유치원은 조금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 교사들이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아이들을 잘 돌봐 주어서 단 한 명의 아이들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박선교사는 “더 감사한 일은 그동안 새로운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서 수소문도 하고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렸는데, 드디어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감사하게도 유치원은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잘 통해서일 것이다”며, “이번에 오신 선생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라 기대가 된다. 바라기는 아이들을 통해 무슬림 엄마들이 마음을 열고 변화가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는 델타 변이바이러스로 인해 하루 확진자 수가 5만 명이 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의료시스템도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하루 2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어서 묘지와 화장장은 이미 포화 상태가 돼서 웃돈을 받고 묘지와 화장장을 알선하는 ‘브러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현지인은 물론 한인들도 코로나로 사망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선교사들 역시 코로나로 목숨을 잃거나 ‘에어 앰블란스’로 급히 한국으로 이송되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카르타에 이어 ‘람뿡’도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동료 선교사들이 코로나에 확진이 되고, 저와 함께 사역하던 사역자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목숨을 잃은 사역자 중 한 분은 박선교사를 도와 열심히 사역했던 분인데, 이제 갓 30살을 넘긴 젊은 사역자여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박선교사는 “어린 아들과 젊은 아내를 두고 너무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서 안타깝다. 한국으로 나오면서 함께 식사했던 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돌아가면 람뿡 선교를 위해 함께 열심을 내자고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은 몰랐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안타까움과 함께 기도를 부탁했다.      인도네시아에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현지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목숨을 잃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어서 박선교사는 현지 사역자들을 도울 방법을 백방으로 찾고 있다. 얼마 전에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사역자 역시 제대로 된 약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선교사는 “최근 들어 ‘람뿡’은 코로나에 확진되어 죽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각종 항생제와 관련된 약들이 동이 나고 비타민마저 바닥이 났다. 인터넷으로 사려고 알아봤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그나마 재고도 없어서 비타민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며, “이런 가운데 현지 사역자들로부터 면역력을 높여주는 비타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서 비타민을 공급할 방법을 찾다가 다행히 한국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1차로 사역자들에 필요한 비타민을 급하게 보내 먹게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타민만으로는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카르타에서 코로나 치료제를 구해서 사역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공급하려고 계획 중이다.      박선교사의 소속교단은 전방개척적인 전략을 가지고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사역자를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오지나 산꼭대기 또는 정글 지역에 교회가 있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그중 한 곳이 람뿡 미전도종족 지역에 있는 ‘방운레조’라는 교회인데, 그곳에 가려면 새벽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든 아이들을 차에 태워 험한 길을 8시간이나 오가야 했다. 특히 이곳은 바닷가라 물 사정이 안 좋아서 성도들이 오래도록 우물을 위해서 기도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모든 왕래가 끊겨서 도움을 받기가 어렵게 됐는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 교회에서 우물을 파주었다. 박선교사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눈 사랑이라 더 귀하게 여겨진다. 이 일로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사랑을 베풀어 주신 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9-13
  • 예수인사랑나눔복지센터, 지역주민 섬김으로 사랑을 실천
    ◇예수인사랑나눔복지센터는 활발한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주민 위한 세심한 섬김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버팀목 역할 ‘나도 들어갈 수 있는 교회’ 인식 심어 전도의 가능성 보여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로 192에 위치한 사단법인 예수인사랑나눔(대표=민찬기박사)은 2012년 12월에 개관했다. 이 재단은 행신동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소문이 자자하다. 지역사회를 섬기며 동시에 지역사회에 열려있는 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한 결과다.   본 재단의 조직은 꽤 체계적이다. 총 8개로 구성돼 있는데, ‘사회봉사위원회’, ‘어르신대학’, ‘무상급식’, ‘문화강좌’, ‘사랑나눔 상담소’, ‘장학위원회’, ‘사랑나눔 작은도서관’, ‘다문화/건강가정센터’으로 돼 있으며, 조직마다 특색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직인 ‘사회봉사위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조직되어 지역사회의 여러 어르신들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에 다가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매월 둘 째주 토요일에 모여 무료로 이·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매번 50명 이상 지역 어르신들이 찾아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을 엄선하여 직접 찾아가 쌀과 라면 등을 제공하는 일도 담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많은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들을 찾아 다가갈 계획이다. 이 밖에도 설이나 추석, 추수감사절 등 명절이 되면 특별히 소외된 가정이나 단체들을 찾아가 쇠고기와 떡국떡 등을 전달함으로써 힘이 되어주고 있으며, 매년 바자회를 개최하여 예수인으로서 참사랑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집의 수리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능력이 없는 분들을 찾아가 집수리를 해드리는 일도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버팀이 되고자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사회봉사위원회의 일원이 돼 지역사회의 힘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다.   ‘어르신대학’도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의 어르신들이 노년에도 자아성취와 즐거운 노후를 보냄으로써 각 가정들이 평안하고 더욱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밖의 조직으로는 평일 오후 점심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힘든 이웃들을 위한 ‘무상급식’, 누구나 참여하여 각종 악기와 그림, 스포츠를 배울 수 있는 ‘문화강좌’, 아동 및 청소년과 가족 및 부부의 고민을 공감하고 돕기 위한 ‘사랑나눔 상담소’, 지역사회의 가정형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위원회’가 있다. 또한, 2013년 인가를 받아 다수의 도서를 소장하여 무인대출시스템으로 운영 중인 ‘사랑나눔 작은도서관’,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 강의와 상담 그리고 각종 특강이 이뤄지고 있는 ‘다문화/건강가정센터가 있다.   예수인사랑나눔 이사장인 민찬기목사는 본 재단에 대해 “행신동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예수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전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라며, “각종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늘 힘써 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미래의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비전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한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라며, “예수님께서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막 6:37)” 하신 떡과 복음의 비밀을 마지막 과제로 알고 실천하기 위해 준비하는 재단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민목사는 “교회를 떠도는 신자가 점점 늘어나고 젊은이는 교회를 등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탕자처럼 갑작스런 시련과 아픔, 고난의 학교에 내몰리지 않으면 절대자를 찾지 않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파도가 일어나야 서핑보드를 탄다’는 말이 있듯 교회는 인생의 한계에 부닥친 사람들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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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1-09-13
  • 위담한방병원 확장·충주위담통합병원 개원
    최서형 박사, 국회에 제안해 세번째 공립 통합의학센터 건립 양, 한방 및 보완의학 접목 암, 치매, 담적병 등 난치 질환 치료   세계 최초로 담적을 발견해 위장병 치료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최서형박사(위담그룹 회장)가 지경을 넓히고 있어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최회장은 강남위담한방병원 병원장과 충주위담통합병원 설립자이다. 최회장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하면서 30년간 통합의학을 개발해왔다. 이제 그 결실을 전국적으로 맺고 있다.     세계 최초 담적 발견 최회장은 한국인 중 소화불량, 역류, 복통, 속쓰림과 같은 위장질환 증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목격했다. 또한 맵고 짠 음식 섭취와 빠르게 먹는 습관을 가진 국민들이 위장질환이 많다는 점을 분석하면서 세계 최초로 담적병을 발견했다.   최회장은 “담적이란 선천적으로 위장이 약하거나 과식, 폭식, 급식 등 바르지 못한 식습관으로 인해 위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가 위장 점막 조직에 쌓여 위장이 굳어진 상태를 뜻한다.”며, “위장이 굳어지면 위장 기능이 약해져 각종 소화질환이 발생되고, 독소가 온 몸으로 퍼져 전신질환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담적 치료의 핵심은 위장의 담 독소를 제거하고 위장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며, “담 독소를 약물로 제거하는 발효한약요법과 굳어진 위장 근육층을 조직을 풀어주는 아로마, 소적 등의 물리적요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담적의 세계적 발견과 위담그룹의 발전에 대해 교회 장로이기도 한 최회장은 “주님이 주신 지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담적병 치료의 세계화 최회장의 한의학적 업적은 중국 북경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이다. 중의학을 존중하는 중국에 최박사의 책인 〈밥통대반란〉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큰 사건이다. 최회장은 동서의학을 결합, 건강에 대한 새 장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최 박사는 담적병이란 새로운 병의 치료법을 발견했다. 책을 통한 예방 치료에도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전을 발판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국 분원을 설립해 가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입증된 통합의학을 기반으로 위장 건강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 우제아이엠(대표이사=태준), 한국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킬 미디에이터를 양성하기 위해 (사)새길과새일(이사장=최서형장로) 등을 설립했다.     통합의학센터 설립·개원 최회장은 대한담적한의학회를 설립해 한의학계에 담적의학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정부에서 최박사에게 중부권 통합의료센터를 위탁할 정도로 국민 건강 증진에 큰 역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정부 시책에 따라 충주시는 지난 6월 15일에 양·한방, 대체보완의학을 접목해 질병을 치료하는 충주위담통합병원(설립자 최서형박사, 대표원장 최도영박사) 개원식을 갖고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동 병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중부권 통합의학센터를 구상하면서 160억 원을 지원해 건립됐다. 총사업비 278억 원을 들여 시설면적 8,718㎡, 지하 1층 지상 3층 134병상 규모로 설립됐다. 주요 진료과목은 암, 치매, 난치성 위장 질환(담적병), 원인 미상의 심장 질환 등으로 현대 의학으로 잘 낫지 않는 질환들을 통합의학을 통해 치료한다. 검사센터에 내시경, CT, X-ray, 초음파, 경락 기능검사, 통증 감각 기능검사 등이 갖춰져 있으며, 치유센터에 아쿠아 마사지, 음악·미술치료, 아로마테라피 등의 시설을 갖췄다.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안보 소재 병원 내 온천 시설을 갖췄다. 또한 월악산의 산림을 이용한 숲 치료 프로그램, 약선 명인이 제공하는 유기농 식단이 제공되는 등 최고의 환경형 병원 시설을 갖췄다.     위담한방병원의 과거와 미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언제든지 예배 중심 생활과 지속적인 성경공부를 하는 최장로의 신앙이 밑바탕으로 깔려있다.   위담한방병원은 지난 1992년에 서울시 강남에서 한국 최초로 동서의학을 융합한 하나한방병원으로 개원했다가 부천으로 이전한 후 다시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소재 빌딩으로 이전해 왔고, 재차 대도시에 연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게 됐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9-01
  • 기도원서 사랑을 실천하는 박주희집사
    ◇광주기도원 김연위원장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설거지를 시작으로, 교회 청소 등, 밥짓기로 사랑의 실천 나보다는 이웃향해 섬기는 봉사가 더 기쁘고 행복한 삶 광주기도원(원장=김연위)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깨끗한 공기와 평안함이 남달랐다. 작은 산언저리에 자리 잡은 광주기도원에 특별한 사연으로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있어 화재가 되고 있다. 박주희집사(사진)가 이곳에 온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다.    박집사는 33세에 신내림을 받았다. 안 받으려고 도망도 다니고, 숨어도 보고, 별별 일들을  많이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당도 다녀봤다, 대순진리회도 가보고, 남묘호렌케교도 방문해 보고, 교회도 가봤다. 신내림을 안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아프고,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돌아다니던 중 양평에 있는 순복음교회에 들어가 예배하는데 말씀을 듣다가 뛰쳐나왔다. 말씀에 찔려서일까? 내 안의 다른 신이 방해해서일까? 어찌 된 건지 모르나 말씀을 듣을 수 있는 힘조차 주어지지 않은 박집사는 “내가 이것도 못 이겨서 어찌 내 가족을 구원할까? 어찌 내 자녀들이 신내림이 대물림되지 않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박집사는 작두를 심하게 타던 사람이다. 굿도 많이 해봤고, 점도 많이 쳐봤다. 지금은 그 일에서 손을 뗀지는 8년 되었다. “무당의 길을 벗어나려면 교회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내 자녀들이 이것을 물려 받으면 안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손녀딸이 태어났는데 딸에게 대물림이 안 되면 손녀딸에게 대물림된다는 말에 줄담배를 끊고 “나는 이겨야 해. 하나님이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팔이 부러져 하던 일을 못하게 됐고, 잘 나가던 식당 사업도 보증금 문제로 계속할 수 없게 되면서, 많던 재산도 탕진하게 됐다.    어느 날 교회 기도시간에는 목사를 비롯해 장로, 전도사 등 남자 7명이 잡고 기도하는데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박집사는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이 무당의 길에서 꼭 벗어나야 하는데,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모르고, 찬양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울고 있는데, 하늘에서 두루마리가 도로록 내 앞에 펼쳐지면서 글이 써져 있었다. 바로 주기도문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 주기도문을 다 외웠다”고 말하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 일로 인해 박집사는 더욱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고, 더 깊은 성찰을 하게 됐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오게 된 이곳에서의 생활은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생활이었다. 연세 많은 원장이 밥해서 식구들 먹이랴, 말씀 전하랴, 예배하고 찬양하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설거지를 시작하고, 교회 정리를 시작하고, 밥짓기를 시작했다.  기도원에 오고 가는 수많은 성도들과 손님들의 식사뿐만 아니라 기도원 이곳저곳 박집사님의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맘으로 봉사한지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박집사는 “봉사는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이 섬김은 만만하지도 않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며, “봉사하려고 하는데 그때 내게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급한 일이 생긴다면 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집사는 “이곳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찬양하며, 봉사하며 섬기고 있다”며, “식구들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며, 깨끗이 비운 그릇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봉사는 오직 낮은 자세에서 받들고 섬기는 마음이 바탕이 돼야 시작된다. 봉사의 모양은 다양하지만 봉사에 임하는 마음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으로 무장돼야 가능하다. 나보다 남을 우선하는 마음이 생겨야 봉사로 이어지는데, 박집사는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이타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나보다는 이웃을 향해 섬기는 봉사가 더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하나님과의 깊은 묵상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박집사의 사랑의 실천은 현재 진행중이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8-26
  • 다비다상조 ‘장례지도사’ 함명자집사, 사랑의 마음으로 ‘장례절차’를 진행
    ◇함명자 집사는 절박함 속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헌신을 허락하셨다고 강의 하고 있다.   절망과 같은 고난 속에서 기도하며 장례지도사 사명 감당 “내 가족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서비스 제공 노력”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은 분에게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장례지도사라고 한다. 다비다상조 함명자집사(광주성결교회·사진)는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장례자지도사이다. 함집사는 “일을 하기 전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나면 비록 참혹한 시신이라도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랑의 마음으로 장례의 절차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사실 죽은 사람의 육신을 대하는 일은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모두가 꺼리는 이 장례지도사의 길을 가게 됐을까?      평범한 삶을 살던 함명자집사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공무원이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그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이순신장군 갑옷을 입고 큰 칼과 엽총을 갖고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함집사는 남편을 병원에서 입원시켰고, 이후 큰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분당의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큰 고난의 시작이었다.     함집사는 “눈앞이 캄캄했다. 사업이 망하고, 남편까지 정신과적 질환으로 병원에 있으니 결국 나 혼자 힘으로 가정경제를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함집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니 새 힘이 솟았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며, “혹시 독자들 가운데 나와 같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래서 함집사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게 됐고 거기서 장례지도사 과정을 마친 후 2015년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게 됐다. 고난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2015년 다비다상조 사무실을 열었다.    함집사는 “처음에는 실습을 하면서 굉장히 무서웠다.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또 “한번은 작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셔 직접 염을 하며 모든 절차를 해냈다. 내 가족을 하고 나니 평온함이 찾아왔다”며, “그때부터 가족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장례지도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례지도사는 염에서 시작해 입관부터 화장까지 장례의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함집사는 “반드시 병원에서 장례절차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 관, 수의, 차량, 화장장 예약 등 모든 과정을 진행한다”며, “가족포함 3일 동안 300명일 경우 약 1200만 원 정도 비용이 나온다. 장례지도사를 부를 경우 약 40%의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장례지도사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함집사는 “여름에 산에서 자살한 경우는 시신이 부패해 악취도 나고, 그에 따라 일반이이 상상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장면도 있다. 그럴 때는 오직 기도 외에는 답이 없다”며,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동행한다는 믿음위에서 나가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장례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여성이라는 선입견도 힘든 것 가운데 하나이다. 함집사는 “상담하러 가면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자가 시신을 모시는 것에 어떤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이기에 더 섬세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함집사의 서비스를 경험한 많은 고객들은 친절과 정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돌보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무연고시신이다. 함집사는 “독거노인 같은 분들은 어느 누구의 관심과 돌봄 없이 생을 마감한다. 이런 분들의 마지막을 내가 모신다는 것에 큰 보람과 자부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함명자집사는 양양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학적부가 사라지는 기가 막힌 일을 당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새로운 내일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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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1-08-11
  •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호용한 목사는 18년째 한결같이 홀로사는 어르신을 위한 우유배달을 하고 있다.   집 앞에 우유를 배달해 어르신들 건강체크로 고독사 방지 역할 옥수중앙교회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의 영양보충 위해 시작   18년째 매일 우유 1개씩 배달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사역자들이 있어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옥수중앙교회 산하 사단법인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이사장=호용한목사·사진)은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7~8월에도 서울 21개 지역구, 매일 약 3000여 가정에 우유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첫 시작은 어르신들의 영양 보충을 위한 우유배달부터였다. 지난 2003년 서울 금호동 옥수중앙교회 주변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건강까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했다. 호목사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까”라고 고민하다가 우유가 생각났다고 전했다. 우유가 칼슘 등 영양소가 많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처음에 영양 보충을 위한 우유 배달이 안부를 전하는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호목사는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하다 보면 우유가 쌓여있을 때도 있었다”며 “이럴 때는 어르신들 건강이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고 전했다. 또한 “혼자 거주하다 보면 아프거나, 넘어져도 누군가에게 알리기가 힘들다”며 “지금은 쌓여있는 우유를 보면 우유배달원이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연락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매일 집 앞에 우유를 두고가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건강체크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고독사까지 방지하게 되는 역할도 한다.   현재 매일 3000여 가정에 우유를 배달하려면 비용도 꽤 소요된다. 이 우유배달 비용을 마련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처음 3년 동안은 후원자가 한 명이었다. 3년이 지나자 옥수중앙교회 교인들이 동참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교인 후원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경 〈배달의민족〉 회사가 첫 정기 후원사로 나섰다. 배민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점차 후원사들이 더 늘어났다.   배민 김봉진 의장은 어릴 적부터 옥수중앙교회를 다닌 인연이 있다. 2011~2012년 당시만 해도 사업을 실패한 상태였고, 배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우유 안부 운동’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월 큰 금액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호목사는 김의장에게 “또 망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가장 큰 후원사가 됐다. 현재 기부금도 많아졌고, 구성원들이 모여서 명절에 어르신들 방문해 인사드리고, 함께 소풍도 가며, 지난 겨울에 따뜻한 양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호목사는 “사실 배달의민족은 우유안부운동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며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잘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과 겸손함이 있는 김봉진의장”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자 소문을 듣고, 골드만삭스에서 찾아왔다. 골드만삭스는 당시 배달의민족에 투자를 한 상태였는데, 배달의민족에서 계속 우유안부로 후원금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 그때 ‘우유안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더니 얼마 후 마음을 담은 메시지와 함께 기부금을 보내왔다.   이후 호목사는 고민 끝에 사단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사단법인이 설립된 후 기업 후원사들과 개인 후원자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더 많은 지역과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배달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우유배달 혜택을 받는 어르신들도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대해 호목사는 “쌓인 우유로 고독사를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며 “작은 우유 한 팩으로 시작했던 일이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멈출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큰 사랑의 실천으로 발전하고 있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8-06
  • 비전교회 윤대진 목사, 신학교 설립
    이주민들, 밀린 월급을 받아주고 고민 들어주며 쉼터 설립 교회 출석 이주민노동자에게 신학 가르치고 사역자로 세워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비전교회(담임=윤대진목사·사진)는 7월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완화 발표에 따라 주일에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한 사역을 재개했다.   비전교회 주경야독의 주인공들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온 20대의 이주민 노동자들.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피곤할 법도 하지만, 이들은 교수의 강의를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수업에 몰두한다.   비전교회 교인들은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들이다. 비전교회는 여느 다문화교회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한 가지 중요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교회 안에 이주민들을 위한 신학교가 있다는 점이다. 2009년 4월에 개설한 아시아리폼드신학교(이하 ARTI)로, 이 학교는 2015년 첫 졸업생 4명을 배출한 이후로 국내외에서 이주민 신학교육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비전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윤대진 목사는 늦깎이 목사다. 하남시에 있는 한 대형교회에서 안수집사로 교회 내 세계선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이주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느끼게 됐고, 이후 신학 공부를 거쳐 목회를 하게 됐다.   그는 “1997년에 방글라데시로 비전트립을 갔는데, 지구상에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 와서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들을 만나게 됐고,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라고 말했다.   윤 목사는 그때부터 앞뒤 제쳐놓고 이주민들을 섬겼다. 밀린 월급을 받아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쉼터를 만들어주며, 그들만을 위한 예배를 마련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밖에 예배처소를 마련하면서부터는 자신이 직접 설교를 했는데, 그때 당면한 문제가 통역이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을 수소문해 예배를 인도하게 하는 등 도움을 받았다. 그마저 어려울 때는 한국에 유학 온 이주민 학생들을 데려와 예배를 인도하게 했다. 매번 그러기도 쉽지 않아 현지에서 사역자를 초청하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준비된 사역자도 많지 않을뿐더러 한국으로 초청했을 시 학비, 생활비, 사역비 등을 다 감당하기가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런 어려움과 필요를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윤목사는 한국에 온 이주민들, 특별히 비전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이주민 노동자들로 신학을 배우게 하고 사역자로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신학교를 세워 지속적으로 지도자를 양성한다면 저처럼 사역자가 없어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또 이들을 교육시켜 국내 이주민 선교 현장에 파송하면 사역자들의 고민을 많이 덜 수 있을 거라 생각됐죠.”라고 말했다.   윤 목사의 생각은 적중했다. ARTI 졸업생들은 한국에 있는 여러 다문화교회와 센터들에서 사역자로 살고 있거나, 고국에 돌아가 신학을 계속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비전교회 다문화 예배를 통역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사역자들 역시 ARTI 졸업생들이다. 이외 재학생들도 여러 이주민교회와 센터의 요청을 받아 예배를 인도하고, 양육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5월에 졸업한 한 학생은 이천에 있는 한 이주민교회로 파송했어요. 이천에 있는 캄보디아인들을 대상으로 토요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주일 오전예배를 인도하죠.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토착 교회를 개척하고, 종족 선교에 헌신하겠다는 각오예요.”라고 말했다.   윤 목사는 이 일에 특별히 중대형 교회의 관심과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이주민교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대형 교회들이 이주민 사역을 구색맞추기용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전념해야한다”며 “그럴 때 다가올 500만 이주민 시대를 감당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7-12
  • 리플리히 오케스트라 주재련단장, 발달장애인의 연주로 ‘행복’을 전한다
        병마와 싸우는 환우들에게 음악봉사로 ‘위로’와 ‘사랑’을 전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장애인들로 예술단 구성해 활동    리플리히청소년오케스트라는 청소년들과 주민, 그리고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이다. 악기연주를 통하여 청소년들의 성취감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취약계층 청소년들, 시니어세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과 함께 교류한다. 또한 한 부모 가정 아이들과 함께 마을 행사에 참여하여 지역문화와 연계해 연주를 함으로서 청소년들과 주민이 함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오케스트라이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난 2017년에 창단됐으며, 소수의 일반 청소년과 다수의 사회적 약자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무료 레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이렇게 배운 청소년들은 다시금 어르신 기관, 지역마을 행사, 주민센터, 구청 등을 통하여 음악 무료봉사와 아울러 천연 수제비누를 만들어 전해 드리는 행사를 해마다 20~30회나 진행하며 선한 영향력을 널리 펼쳐 왔다. 아울러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리플씨앗소리'로도 나눔을 넓혀 왔으며, 이곳에서는 발달장애의 특성과 관심에 맞는 악기를 선정, 배움을 줌으로써 장애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 왔다.    리플리히청소년오케스트라의 주재련단장(공감예수마을교회 반주자, 사진)은 “2016년에 구청에서 실시하는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취약계층과 발달장애인들에게 적성과 관심분야에 맞는 악기를 선택하게 하여 지도하면서 봉사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이 1년 단기사업이다 보니 더 이상은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그토록 행복해 하는 이들을 내 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껴안은 이들과  아무 지원 없이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2017년 1월부터 비영리단체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단장은 “한 장소에서 두가지 일을 할 수 없다하여 운영하던 음악학원마저 폐업신고를 하고 비영리단체인 리플리히청소년오케스트라만을 현재까지 이끌고 오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보증금은 모두 소진되고 임대료까지 지불하지 못하게 되어 쫓겨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주단장은 이런 사면초과의 상황에서 갈 곳이 없어 서울시의원 한분에게 무조건 편지를 썼다고 했다. “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사람이 있으면 저는 여기서 이 일들을 그만 두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면 제가 돌보겠으니 장소만 빌려 달라”는 주단장의 읍소에  서울시의원은 능동 어린이 대공원을 기존 사용자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로나발생 이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공간을 사용 못하는 것은 리플리히의 모든 연습과 연주일정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실망은 엄청났다. 리플리히단원들은 잠정적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나, 발달장애인들 경우에는 쉴 수가 없었다. 주단장은 자신이 살고 있는 옥탑방에서 보면대 몇 개, 전자 피아노, 첼로3대 만을 가지고 모여 연습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부활주일과 군종모임, 기독교100주년 기념관 연주회때 나눠 드리려고 천연수제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만 불이 나서 모든 가전제품과 악기 등 모든게 재가 되어 버렸다. 경찰차와 소방차 수십 대가 와서야 불이 소각되고 모든 전원과 수도관을 막은 상태로 1층 3층 사람들은 구청에서 마련해 준 모텔로 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며 주단장은 그 당시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주단장은 “우리는 후원을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면 된다.”라고 말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이들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켜 보았던 대한민국 리더스포럼 박창수 대표는 “장애인 청소년들이 장애를 극복하며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줘 감동적인 무대였다”,며 “특히 장애인을 두고 있는 부모와 가족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함께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이런 면에서 리플리히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밝힌 멋진 공연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 범죄예방위원회 윤태한 상임대표도 “장애인들이 저희 사무실에서 한 달 동안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 봤다.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운율이 되고 하나의 노래가 탄생했다”며 보는 자체로도 뿌듯했으며, 이들의 공연이 성공할 것임을 예감했다고 피력했다.    이렇게 모든 어려움을 딛고 다시 모인 발달장애인들만의 명칭을 ‘리플리히 거북이 음악예술단’이라 칭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주단장은 “리플리히 거북이 음악예술단원은 모두 발달장애 2급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고 대화는 잘 못하고 행동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오래 그리고 끝까지 간다.”라고말한다. 또한  “첼로의 네 줄을 긋는 연습을 3년동안 했다. 모두가 성인 연령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아직도 어린 아기이다. 긴긴 세월 연습한 솜씨를 이제는 심신이 지쳐있는 환우를 위해 우리의 웃음과 함께 우리의 정성이 담겨있는 마음과 음악으로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장거리 음악여행을 떠난다.”며, ‘7명이 떠나는 행복한 음악연주 여행’을 말했다. “우리 친구들은 혼자서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아침 10시 가가호호 방문하여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 속초 민박집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숙박을 하면서 마지막 연습을 한다. 부모를 떠나 밖에서 자본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적응도하고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들의 공연은 지난 8일 강원도 속초시 뉴스타트센터에서 있었으며 놀라운 감동을 전했다.   주단장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약자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라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문화적으로 변방에 있는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즐거운 기회를 주고 싶다.”라는소망을 피력한다. 또한 주단장은 “화재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당장 갈아 입을 옷조차 없어진 현실에 마음이 막막했는데, 순간 ‘아 맞아 내겐 리플리히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시편121편’말씀을 전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7-12
  • 꿈이 자라는 지역아동복지센터 박재민 목사, 다문화∙한부모 아동 위한 복지에 주력
    교육과정서지원, 음악과영어, 인성프로그램 등 과정운영    ⃟ 꿈이 자라는 지역아동복지센터아이들과 즐거운 한때   파주시 평화로 384-1에 위치한 자그마한 교회 꿈이 자라는 교회(담임=박재민목사,사진)’ 간판에는 ‘꿈이 자라는 지역아동복지센터’라는 이름도 같이 적혀있다. 장년교인보다 몇 배로 아동 청소년 교인이 많은 유일한 교회이다. 이곳 가까이에는 LG산단이 위치해 있어 이 지역 주민 중 다수가 이곳의 종사자들이며 주변에 다른 산업체들도 많았다. 이런 지역 특성상 이곳에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고 한부모 자녀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을 숙지한 이 교회는 이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어 주변의 칭송을 받고 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센터장인 박재민 목사는 이 사업의 시작을 “총신대학교 대학원 PhD 박사과정 공부하던 시절,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으로 부터 전통교회 담임 사역보다는 개척에 대한 권면을 듣고 다음세대를 향한 비전을 품고 서울에서 시작하여 오늘의 파주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공부방을 개척 사역과 병행하였고, 이곳 파주에 와서는 지역아동센터와 사역을 병행하게 되었다. 두 곳 모두 지역은 다르지만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심령을 치료하고, 주의 복음으로 꿈을 실어 주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어려운 길을 가는 것 또한 주님이 가라하신일임을 강조했다. 이 센터에는 현재 35명의 유,초,중,고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모여 교육, 문화, 정서지원 등 다방면의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다. 다문화아동들의 어려움인 언어의 문제, 외모에 따른 스트레스,.사춘기를 지나며 겪는 다양한 문제들 게다기 부모고향의 샤머니즘과의 갈등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문제들을 함께 해쳐가는 박목사는 “어린 시절부터의 환경이 크게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태어나보니 아버님은 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소천하여 하늘나라 가셨고 어머님은 나를 키울 자신이 없으셨는지 100일도 채 되지 않는 나를 버리고 타지로 가셨다. 할머니 아래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고충과 아픔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치료와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에 성장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다를 누구보다 이 아이들의 맘을 잘 이해 할 수 있어서인지 모든 아이들은 박목사를 아빠처럼, 친형제처럼, 친구처럼 잘 따르고 호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목사는 “우리 교회와 센터에 구성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다문화, 조모 조부, 한부모 가정 등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많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일반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보다 상처와 아픔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다문화의 경우, 외국에서 결혼을 위해 들어오는 여성들 대부분이 젊은 연령대이고 한국의 남편은 남성들은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문화와 언어와 의식에서 오는 여러 가지 차이로 갈등과 아픔이 일어나고 그것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으로 쌓여가게 된다고 했다. 박목사는 “이러한 아이들을 방치하면 훗날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처와 아픔을 치료 받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준비한다면 글로벌 시대에 매우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며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박목사는 “주님의 은혜로 교회와 센터가 좋은 소문들이 났다. 교육, 정서지원, 음악, 영어, 인성프로그램 등 다양한 과정들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다보니 시골 작은 곳이지만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회에서 매일같이 생활한다. 그런데 교회 주변의 산을 밀고 곧 그곳에 주택단지가 들어선다고 하니, 그나마 아이들이 뒷산에서 거닐며 놀 공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주님께서 조속한 시일 안에 믿음의 다음세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선물로 주시길 기도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또한 박목사의 장기적인 목표는 “서울에서 공부방, 영재스쿨, 파주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하며 아이들이 불신자 가정이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건 매일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환경과 교육 환경에 노출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의 큰 은혜가 스며들어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은 좋은 미션 스쿨들이 많으나 초등 중등 고등 과정은 많지가 않고, 대안학교로 존재하는 학교들이 있지만 신앙적 배경 안에서 교육하는 곳이 적고 있다하더라도 경제적인 문이 너무나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신앙의 배경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싶다면 보낼 수 있는 초 중 고 대안학교를 만들어 글로벌 인재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 센터는 복지부 산하 아동복지센터로 등록 되어있으나 실제 건물 대출금이나 부대비용은 교회에서 감당하고 교사임금 등은 최저임금 수준이라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박목사는 “믿음은 훈련이다. 믿음은 지속적인 기도와 앞선 세대들이 체계적으로 주의 복음 아래에 훈련을 시켜주어야 아이들이 신앙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더욱 강력한 다음세대를 책임질 신앙의 군사들이 곳곳에서 세워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최헌정기자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7-01
  •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한 사랑이 넘치는 공간
     한 사람을 위한 기독대안학교인 ‘달꿈’은 ‘달리다쿰’의 줄임말로서,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사랑과 능력이 담겨있다.  류목사는 “죽은 소녀를 살리신 하나님이 저를 살리셨고, 또한 저희 학교에서도 그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북혁신교육지구 ‘마을배움터’로 지정된 동학교는 약 18명의 자원봉사 선생들이 한 명의 학생 위해 헌신하고 있다. 더불어 충분한 상담을 통해 맞춤형 프로그램과 그에 맞는 전문 선생님을 배정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지하에는 학생의 체육활동과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1층에는 ‘쿰’ 커피숍과 학생의 영상학습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2층에는 선교사 등을 위한 침실과 공부방이 있다. 류목사는 “달꿈의 주인은 예수다. 예수의 마음으로 학생을 돌보다 보니까 학생이 아프면 함께 아프고, 학생이 결석하면 학교는 중단된다. 어린양 한 마리가 돌아올 때 기다리던 아흔 아홉 마리가 온전해지고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예수는 아셨다. 그 마음으로 한 학생의 영혼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류목사는 1980년 10월 5살 교통사고로 경희의료원 응급실에 입원을 했었다. 의사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아이는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깨어났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살게 된 아이는 퇴원하기까지 3년 동안 전도하며, ‘꼬마 목사’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화제가 됐다. 그는 생명샘교회 담임목사로서, 달꿈예술학교 교장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 교회/목회
    • 사랑의 실천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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