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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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하나님나라 신학과 한국교회 ③
    김형국 목사 행정 조직적 교회를 넘어 하나님나라적 교회구조로 전향 필요    만인제사장주의가희석화된것은교회가하나님나라사상을잃었기때문이다.그결과로평신도와 목회자라는구분은평신도와사제라는구교적분리에서크게다르지않게한국교회안에자리를잡고있다.사역자가부르심을받아교회를세우는일에전적으로헌신한일군으로서전문성도있고 그필요성도있지만,사역자가일반성도들보다우월하지도않고,교회를세우는일에사역자의역할과성도의역할이동등 되게있음에도불구하고,성도들은평신도로서사역자를기껏해야보조하는 모습으로전락했다.   한국교회는우리모든성도가하나님나라의백성이며,그하나님나라백성가운데어떠한위계도있지않다는사실을신학적으로정돈해야한다.이는유교적위계질서를하나님의권위와동일시한많은한국교회로서는매우어려운과제이다.그러나이제라도교회를세우고,교회사역을감당하는일에있어서성도의일반적역할과사역자들만이담당해야할전문성이정리되어야한다. 성경은다만 자비량또는타인 또는공동체의후원을받으며전적으로사역을하는사역자가있음을보여주고있는데,그들은성도들보다우월한것이아니라,부르심을따라성도를세우고,성도들이교회를세우게한다고말한다(엡4:12-13).   교회를하나님나라를받아들인자들의공동체라고볼때,교회속에서성도와 사역자의역할을하나님나라의관점에서정립하고실행하는일이시급하다.현재의상태를지속한다면, 하나님나라가드러나는교회보다는일반종교에서보이는사제와일반성도의구분이개신교속에서도그대로보여,하나님나라 운동공동체로서의교회의모습은전혀부각되지않고,하나님나라가갖는급진성역시약화될것이다.뿐만 아니라,하나님께서성도하나하나에게주신잠재력이 그대로 사장되어버리고,교회공동체는교회의최고지도자인목사의한계를넘어서지못해서,하나님나라의운동성은교회라는조직속에갇혀버리고결국사장되어버릴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이땅에오심으로말미암아하나님나라가시작되었고,그하나님나라를받아들인 사람들의공동체가바로교회라는신약성경의가르침은로마가원시기독교를합병한이후로천년이넘는세월동안왜곡되었다.교회는종교기관과조직이되어버렸다.이러한문제를극복하기위한공동체운동들이구교속에서도일어났지만,구교의전체적인흐름을주도한것은정치조직화된 기관으로서의카톨릭교회였다.종교개혁은만인제사장주의등을내세워새로운출발점을만들었으나,불행하게도이렇게정치조직화된교회의모습의한계를극복하는일을완성하지는못하였다.   대부분의개신교는구교가가지고있던교회론에 약간의수정을가하였지고세월이지나가면서종교개혁의정신이승화발전시키기보다는구교의큰틀에서벗어나지못했다.위에서살핀평신도와사역자를나누는구분이이러한변혁하지못한구교의대표적전통이라고할수있다.개신교는다양한교파가생겨나고,그교파는교파나름의조직을위해서교단을형성하고그교단내에서는중립적인의미의정치가있을수밖에없었다.그러나 결국세월이지나면서,개신교의대부분의교단과그교단에속한교회는삶의현장에서사랑을주고받으며살아가는공동체적성격보다는종교조직으로서정치적구조를갖춘기관으로전락하였다.                                                                                                                                                          / 하나님나라복음DNA네트워크 대표,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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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신학]마틴루터의 경제 이야기
    김현관 교수   경제 우선주의는 기독교 공동체성을 약화시킨다.       마이클센델(하버드대 철학)과 장하준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는 각자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오늘날의 경제 체제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장 지상주의는 공동체성을 약화 시키고, 공동선의 추구를 좌절시키며 복지국가의 이상향을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더 나은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경제 성장논리에 충실한 체제가 아니라, 가난한 자의 필요를 돌아보며 공동체의 복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분배 논리에 충실한 체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16세기의 경제적 상황에서 루터가 보여준 경제관은 오늘날의 교회에게 분명한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루터의 경제관은 우선, 경제정의와 공동체 경제 윤리를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을 경제 인식 원리로 가지고 있기에,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바른 경제적 실천 원리로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제시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신앙과 이웃 사랑이 통일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각자가 자발적인 동기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을 통하여서, 경제적 약자의 필요가 충족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이상적인 성경적 실천 원리들을 제시함과 동시에 냉철한 현실 인식도 가지고 있었기에, 두 왕국론에 근거한 세속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오른손과 왼손이 조화롭게 세상을 통치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복음으로 치리해야 할 사적인 영역과 법과 무력으로 통제해야 할 공적인 영역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고, 정부차원에서 행해져야 할 합리적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경제관의 원리들은 그의 자선관과 동일한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 안에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루터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는 종교개혁의 초기부터 경제적 약자를 돌아볼 것을 강조하였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이웃 사랑이 접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지점이었다. 또한 그는 분명한 마음의 동기로 자선을 행해야 할 것을 역설하였는데, 이는 중세의 시혜적 자선사상을 타파하고,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이웃 사랑에 의한 자선이 행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선의 문제를 개혁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두 왕국론 사상은 정부 차원에서의 구제 시스템 개혁과 관계법령의 제정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루터의 자선관은 개인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자선 행동의 차원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사회복지 제도로의 변경을 가져왔으며 이웃사랑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랑의 확고한 제도화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루터의 복지 원칙과 영향은 16세기의 중앙화된 빈자구호를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즉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에서 루의 사고를 종교 개혁과 함께 받아들였다. 홍주민교수(디아코니아대)는 서로 간의 역사의 다양성 때문에, 이들 각 나라에 관해 통일된 디아코니아적 모델을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복지 국가를 형성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 서울한영대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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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신학] 하나님나라 신학과 한국교회 2
    김형국목사   전도는 교회에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행사활동으로 전락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래서 회심자의 숫자가 거의 없다 시피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복음전도가 가져온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이다. 현실의 삶속에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 보다 죽은 후에 간다는 천당에 집중된 이러한 전도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불편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독교 외에도 택할 수 있는 정신적 종교적 대안들이 다양해진 현대 문화 속에서 죽은 후에 천당을 간다는 복음전도는 전도자들의 열정과 자신감과 설득력을 잃게 한다. 그러나 복음 전도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미 임했다는 선포이다.    예수께서 메시야로 이 깨어진 세상을 방문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 인류에게 선명하게 전달해 주었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메시야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셨고, 이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초청하고 계시다는 선포인 것이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미 임했다는 선포   그러므로 복음전도는 영혼을 얻는 사역을 넘어서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1;15)라는 선언이다. 이러한 선언은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선명하게 갖지 않는 목회자들 가운데는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불신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일이 거의 사라져 버린 목회자들도 많다. 결국 전도는 교회에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행사활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목회자들은 복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도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치고, 전략을 수립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도 이벤트를 진행하는 관리자의 위치에 거한다.    종교개혁이 가르친 매우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가 ‘’만인 제사장주의‘이다. 곧 사제가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지 않고, 우리 모든 신자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순종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서로를 목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세워나간다는 가르침이다. 더 나아가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들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가르침이다. 만인이, 곧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었다는 가르침은 구약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사명을 주실 때부터 꿈꾸셨던 것으로 교회가 제사장 나라가 됨으로 완성된 것이다 (창12:1-2; 출19:6; 벧전2;9; 계1:6; 5:10).     모든 성도는 하나님나라 안에서 차별이 없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상속자, 곧 예수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인 성도가 배제되고 목회자 몇 사람에 의해서 주도되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 한계를 태생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 하나님나라복음네트워크DNA 대표,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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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신학] 마틴루터의 경제 이야기 ⓶
    김현관   루터, 교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이어야 한다     루터가 살았던 15세기 말과 16세기는 그전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경제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시기로서, 현대자본주의는 이 시기 이후의 유럽의 경제 체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진정한 자본주의 생산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유입이 필요했는데, 그러한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6세기부터였다. 해외무역과 상업의 증가, 그리고 그로 인한 화폐 경제의 발전은 루터가 살던 지역에도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상업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 해외로부터 많은 양의 귀금속들이 유입되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야기했고, 그로인해 가장 피해를 본 계층은 바로 소작농들이었다. 그러나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당시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지않고 고리대금을 금지했던 기존의 교회 입장을 선회하여 고리대금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만들어 두었다. 은행가로부터 돈을 빌린 상인이 은행가에게 위험의 대가로 약간의 돈을 돌려주는 일은 굉장히 공정한 일이라고 교회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교회공동체를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대칭사회’로 보았다. 교회는 세속적 신분들에 좋은 모범이 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단지 고리대금업자들과만 연관시키지 않고, 교회가 교회로서 전체 사회의 악과 투쟁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정부를 향해서도 돈벌이에 열중하는 고리대금업자에 반대해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 “루터는 이자를 통해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더 이상 나쁜 일이나 죄가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덕이며, 명예로서 칭찬받는 세기적인 전환기에 대항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초기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빚어내는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았다. 신학자로서, 그리고 성직자로서 루터는 성서에 근거한 경제정의와 공평성에 대하여 선지자적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그의 비판의 창끝은 당시의 관행을 무비판적으로 순응해갔던 제도권 교회와 고리대금을 일삼았던 거대 상인집단들을 향해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자를 통한 자본증식이 점점 정당화 되어가고 있었던 독일 사회 전체에 대한 규탄이었다. 중요한 것은 루터는 개혁의 초기부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며 그의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을 넘어서, 철저히 사회 개혁적인 삶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본 주제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은 루터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할 때, 단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루터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정의와 공평성을 달성할 책임성을 정치적 권력에게로 돌린 것이다. 특별히 그는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이 많았으며, 그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차원에서의 개혁을 촉구하였다. 그는 교회는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의 구제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루터와 그의 동료 칼슈타트로 인하여 비텐베르크 시는 1522년 예배 개혁과 사회보장이 법제화 되었으며, 이와 같은 개혁은 짧은 시간에 그와 비슷한 시도를 위한 모델이 되었다.                                                           / 서울한영대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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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5년 동안에 해외선교사 6천명 감소
    자료: 한국세계선교협의회 KWMA           현재 지구상 80억의 인구 중에 기독교인은 26억이다. 비율로는 32%에 다다른다. 나머지 54억의 인구는 이슬람 20억, 불교 5억 5천만, 힌두교가 10억 등 많은 타 종교인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 여전히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인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라는 명령을 따라 선교사역에 계속 매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간 한국교회는 통계적으로, 국가의 인구에 비례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선교지에 파송해 세계 복음화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활동들에 몇 가지 문제점들이 보인다.    양적인 선교서 질적 선교로 전환해야 할 대안 마련 절실   ◆코비드19로 인한 선교사 감소·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이사장=이규현목사)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파송 장기선교사는 총 169개국 22,204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 통계는 동 단체의 2019년 통계인 28,039명과 비교하면 5년 정도 사이에 6천명 정도의 선교사 수가 줄었다는 결과를 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선교사의 수가 줄어든 대표적인 이유는 코로나19가 그 원인이다. 이 기간을 지나며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 위기를 지나 많은 선교사들이 복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피해를 온전히 복구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교회 성장세의 큰 하락 · 최근 한국기독교의 성장세는 가파른 하락을 보이고 있다.한국기독교목회자연구소는 한국사회의 탈종교화가 가속화되고, 개신교는 최악의 경우 10년 뒤엔 총인구의 10%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국민의 20%에 달하던 기독교 인구는 현재 15%까지 하락했다. 개신교인이 신앙을 포기하는 이유는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었다. 종교활동이 없는 사람들의 이전 종교는 개신교가 66%로 타종교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고,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도 30%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독교 전체의 상황은 선교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교회의 축소는 곧 선교지에 대한 물질적, 인적 지원감축으로 이어지고, 약화된 지원에 견딜 수 없는 선교사들은 사역에서 철수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많은 교회에서 최근 십 수년간 나타나고 있다.   ◆ 청년층 선교사들의 부재 심각 · 또 청소년과 청년층의 선교지원자가 감소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 장기 선교사의 연령 분포를 살펴보면 50대 이상이 전체 선교사의 65%를 차지하고 30대 이하는 8%에 불과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한국기독교의 ‘선교자원 부흥의 시대’였다. 특히 선교단체들이 십대와 이십대를 대상으로 펼친, 활발한 선교동원 행사에서 많은 선교자원이 배출되었다. 또 한국경제의 성장 맞물려 교회들의 단기 선교여행이 보편화되며 많은 선교사들이 배출되었다. 지금 활동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그 당시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전체적인 성장 하락세에 있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젊은 층이 되었다. 다음세대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세대에서 선교지원자를 배출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지금의 한국교회 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문제가 된다. 여러 방향의 논의가 진행 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부터 접근해서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인 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젊은 선교사를 미충원시 20년후 선교사 65% 감소 위기   ◆양적선교에서 질적선교로 전환 절실 ·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강대흥사무총장은 양적인 선교보다 질적인 선교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숫자 중심으로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삼는 등의 일은 코로나19를 거치며 비관적으로 여겨졌고, 현장의 선교사들로부터도 목표 숫자에 집착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며, “양적선교에서 내실이 있는 질적선교로 한국교회 선교의 궤도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궤도를 수정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미 선교지에 세워진 많은 교회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들을 더 강화하고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국가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도록 자립시키는 일이다. 더 이상 몇 개의 나라에 몇 개의 교회를 세웠다는 식의 ‘홍보성 뉴스레터’는 필요하지 않다. ◆ 다음세대에 맞는 선교지원 노력 필요 · 또 십대와 청년세대에 적합한 선교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선교연구원(원장=홍현철선교사)은 40대 이하의 젊은 선교사가 충원되지 않으면 ‘20년 뒤에는 선교사의 65%가 감소’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령화에 대한 문제와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과 투자는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다음세대 선교동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청년 사역 주체들과의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캠퍼스 선교단체와 교회목사와의 만남, 그리고 학원복음화협의회와 함께 ‘청년 미래 선교 써밋’을 개최하기도 한다. 지난 해 한동대에서 열린 선교한국 대회도 참석자 1,400여 명 중 650명이 선교지 파송을 약속했다. 젊은 선교자원들이 해외 선교지 소재 대학에 유학을 가도록 돕고, 각자의 전공대로 현지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선교사로 쓰임 받도록 하는 청년 맞춤형 선교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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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1
  • [신학] 마틴루터의 경제 이야기 ①
      김현관 교수   신자유주의경제 질서가 역사적으로 양산해 내고 있는 일련의 폐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는 성장 한계점에 도달한 세계 경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단기간에 걸친 급속한 경제 성장과 두 차례에 걸친 금융위기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한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가장 잘 설명되는 모범국의 예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신학자 울리히 두크로교수는 그의 책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한국의 경제적 상승은 전혀 자유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한국에서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하다는 개념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경제적인 자유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 경제적 구속과 부자유스러움을 갖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빈부의 큰 격차를 가져오게 되며 또한 이익 추구가, 윤리적인 면죄부를 얻어, 당연스러운 경제목적으로 자리하면서 끝도 없는 탐욕과 성장, 발전이라는 이념에 개인의 삶을 함몰시킨다. 이것은 브레이크 없이 일반도로를 달리는 고장난 자동차와 같은 모습이다.   마틴루터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경제관 이 글이 다루려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거나 경제학적으로 유용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는 않다. 그러한 논의는 본 논문의 전개 범위를 벗어날뿐더러 자본주의 체제 내에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존재하는 한 적절한 경제 시스템 자체에 대한 대안은 규제와 자율의 양축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의 신학 논문으로서 본 논의가 우선적으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내는 경제적 현실을 대면하여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성서적 원리들을 그들의 삶 안에 녹여내야 할 것인가’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무엇보다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개개인이 거듭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구속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우리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삶을 통해 모든 영역에서 악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 세상에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에 대하여 성서적 경제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책임감 있는 경제 주체자로서 속한 사회와 이웃을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서적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모색해 낼 수 있는 신학과 실천원리들을 가지고 있는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체제가 만들어내는 자본의 불평등한 분배와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 특별히 경제 논리에 적합하다는 미명 하에 소외되는 계층에 대하여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하여 본 글이 제시하고자 하는 답변은 ‘16세기 독일의 경제적 상황에서 루터가 보여준 경제 사상이 오늘날의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본 논의는 그 시기의 유럽에서 발생했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한 루터의 대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할 것이다. / 서울한영대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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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1

실시간 신학 기사

  • 침례신학대학교에서 ‘BIM Ministry’ 개최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침례신학대학교(총장=김선배) 교단기념대강당에서 침례교단 목회자와 사모, 교역자와 신학생을 대상으로 「BIM Ministry」가 진행된다.   동 행사는 침례교 성서 연구회(회장=신인철·사진)이 성서학과 목회 현장을 연결시키려는 목적에 따라 개최하는 세미나이다.    신인철 회장은 “B는 Bible, I는 Interpretation, 그리고 M은 Ministry를 의미한다. 건축에서 BIM이 집을 세우는 기둥 역활과 리모델링을 통해 세운다는 의미가 있듯이 성경 해석을 통해 목회를 세워간다는 뜻에서 만든 세미나이다.  세미나의 특성은 성서학자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한 본문을 목회자들이 어떻게 설교로 재구성하는지를 강의하게 된다. 저녁 시간에는 목회에 관한 다양한 부분을 공부하게 된다.”고 밝혔다.
    • 신학/선교/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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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7
  • 기독교학술원서 전호진박사 초청강연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박사)는 지난 17알 양재 온누리교회(담임=이재훈목사)에서  '제13회 학술원 해외 석학강좌'를 개최했다.이번 강좌에서 전호진박사는 「기독교는 서양 종교가 아니다」란 주제로 강연했다.   전박사는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탄생한 아시아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종교로 오해되어 아시아인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인구는 5%에서 7%에 불과하다. 또한 "대부분 아시아인은 아시아인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역사를 모른다"면서, "많은 교회가 외국교회의 지원을 받는 데 대한 경멸의 의미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고 했다.    전박사는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만든 것에 대해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만든 것은 계몽주의 사상이다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만든 것은 공산주의와 좌익 이데올로기이다.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비서구 국가들, 소위 제3세계는 이념적 공산주의와 제휴했다. △20세기 이슬람의 확산은 반기독교 정서를 부추기었다 1960년대 제3세계의 민족주의 운동은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만들었다.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제기한 모든 이슈들, 1938년 국제선교회가 다룬 선교의 토착화, 1960년대 일어난 해방신학 80년대 후반에 발전하기 시작한 종교다원주의 신학 등은 전통적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정치와 종교의 불순한 동맹은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배제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전박사는 "아시아는 기독교를 서양종교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초기 아시아는 기독교복음을 받았지만 문화와 정치가 기독교를 수용하지 않았다"면서, "초기에도 기독교는 시리아 종교 페르시아 종교로 오해받았다. 잘못된 신학과 영적 생명이 없는 기독교는 사라진다는 교훈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아시아가 배우는 모든 학문과 과학은 서양에서 왔는데 거기에 대하여는 서양이라는 접두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계몽주의와 신학적 결탁을 한 서구 자유주의 신학이 먼저 성경적 기독교를 서양 종교로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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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행복신앙세미나(2)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bog.or.kr)  2. 행복의 방향 전환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생각해야 될 부분은 ‘왜 사느냐?’입니다. 이는 인생의 목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이 여러 질문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까?” “왜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왜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왜 운동을 합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갑니까?” “왜 사람들과 어울려 취미생활을 합니까?”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의 공통분모는 행복 추구입니다.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도 불행해지기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과학자이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삶의 목적에 대해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두가 평생 동안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실제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입니다.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행복 추구는 헛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행복에 대한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독자들 중 서울의 잘 사는 지역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첫째 질문인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는 30퍼센트 정도만 “예.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질문인 “당신은 항상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항상 행복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고나 실패 등 어떤 불행의 조건들이 찾아오면 그때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행복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 4:13,14)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역시 완전합니다.   이 완전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을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행복을 얻으려면 행복 추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 세상에서 하나님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한 행복을 인류에게 가르치고 전해주고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셨던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인 것입니다. 회개는 방향의 전환이고 마음의 교체입니다. 즉, 천국이 가까운 것처럼 행복도 가깝지만 문제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먼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만일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향해 그 마음이 회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방향 전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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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5-10
  • 행복신앙세미나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 오피니언
    • 칼럼
    2022-05-04
  • 카도쉬아카데미, 성교육 표준안 발표
      초등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성교육내용 포괄 성경적 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신학적 기초   세속주의가 교회의 존재를 위협하는 시대에 성교육 역시 세속주의에 물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도쉬아카데미(공동대표=이재욱.최경화)는 성경적 성교육의 ‘스탠다드’, 표준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 이재욱목사는 이번 표준안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먼저 표준안을 발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카도쉬아카데미는 2019년 하반기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2018~2019년 시기에 교계에 성경 기반으로 한 성교육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각각 나름대로 교육을 해오고 있어서 무엇인가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작업에 돌입했고, 2년 만에 이번에 드디어 표준안을 만들게 됐다. 하나님께서 그 매뉴얼을 만들어 손에 들게 하셨다고 고백한다”고 말했다.   ‘성경적 성교육 표준안’은 초등학교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학년마다 큰 4개의 주제가 설정 되어 있으며, 내용은 여러 가지로 세분화 되어 있다. 그래서 1년에 4회기씩 교회 및 기독교대안학교 또는 일반학교에서 바로 강의할 수 있게 구성했다. 이번 표준안의 특징은 건강한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표는 “성경적 성교육이라 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한 신학적 기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려고 노력했으며, 믿음의 선배들이 작성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을 참고하여 강의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표준안 마련을 위해 20여 명의 카도쉬 전문강사들이 하루에 10시간 넘는 시간을 들여 진행했다. 이대표는 “선생님들 모두 1년 간 정말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으며, 그 어려운 교육자료들을 함께 만들었다. 저와 최경화 공동대표도 밤낮 수고하며 감수 및 지도에 시간을 쏟았다. 그 모든 수고 끝에 이번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졌다. 함께 수고한 선생님들과 스탭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또 “이 표준안이 각 교회와 기독대안학교 및 일반학교에 잘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세대들에게도 성경적 진리를 알아가는 귀한 열매를 맺길 바란다.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해 건강한 교회,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나가길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카도쉬아카데미가 준비한 <성경적 성교육 표준안>은 오는 5월 2일, 서울 사랑의교회 웨스트 채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카도쉬아카데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년에 4회기로 12년 총48개의 표준안을 만들었다. 표준안의 분량은 총 202페이지에 달한다.초등학생들은 1회기에 60분씩 강의를 진행하며, 현장에 따라 30분-30분씩 나눠서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1회기 90분 강의이며, 현장에 따라 90분 연속 혹은 40분-40분씩 나눠서 강의하게 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모든 회기, 해당 교육주제에 맞는 구체적인 교육계획안과 연계 활동 계획안도 갖추어 그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미디어를 주제로 하는 강의표준안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성교육 표준안은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인 이재욱목사(예장고신 참사랑교회)와 최경화 공동대표(예장합신 새하늘교회)가 집필하였다. 감수에는 이상원교수(전 총신대학원 조직신학), 김두식목사(고신 부산로고스국제크리스천스쿨 교장), 박광서목사(고신 기독교미래인재연구원), 김민호목사(대신 회복의교회), 박준우목사(합동 리바이벌북스 편집장), 황지영박사(고신대 기독교상담대학원 겸임교수), 민성길교수(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 이명진소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문지호회장(의료윤리연구협회), 남궁숙교수(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이창숙원장(숲속이삭어린이집)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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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6
  • 계시록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와 공의
      왜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멸망시키려는가에 대한 의문서 출발 하나님의 뜻과 그의 공의를 알고 읽어가면서 바른 해석에 도달   1. 요한계시록에 대한 칼럼 쓰기를 끝내셨는데 현재 느끼시는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저는 사회생활을 은퇴한 60세에 뒤늦게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를 연구하는 일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 비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창조론을 연구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했고, 현대과학적 창조론을 연구하면서 논문과 칼럼을 계속 발표했지요. 저는 창세기 창조론을 연구한 논문에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분의 이름에서 처음이라는 뜻의 “알파”를 떼어 “알파 창조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 무렵에 이사야 선지자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이 하나님은 그가 태초에 창조하신 “알파” 하늘과 땅을 불태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예언한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창조주 하나님은 왜 자기가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불태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시려고 하시는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신문]에 칼럼을 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이 그분의 “오메가 창조” 기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한계시록] 칼럼 연재를 마치면서 지금 매우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꽤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지요.   2. 의문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 말씀해주시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공의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요한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계시한 책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읽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예수께서 하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성경을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하지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도 바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과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 부름을 받은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생명책 심판을 통과하는 자들입니다. 심판이 계시록의 주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는 자에게 심판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나라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공의를 왜곡하므로 심판도 왜곡되고 있지요.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이 사탄의 미혹에 굴복하는 근본 원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악과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이 세상의 도정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고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사탄의 미혹을 배척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에서도 그의 공의를 반영하셨고, 마지막 심판에서도 그의 공의를 반영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으니 그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살아야겠지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공의로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3. 칼럼들을 읽어보면,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요한계시록 해석과 전혀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설명해 주시지요.   제가 다른 해석을 했다는 것들은 “예언의 말씀”에 없는 이 땅의 천년왕국과 휴거, 그리스도 재림의 때와 장소 등을 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 교회에 소속된 144,000명으로 왜곡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라고 말한 것들에 대해서지요? 그것들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리지요.   첫째,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따로 세워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는 바가 없는 것이고, 계시록에서 말한 “천년 동안”을 왜곡해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입니다. 계시록에서 말한 “천년 동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장막에서 지내도록 허락하신 보상의 시간이지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 사탄을 결박해서 무저갱에 감금해두라고 심판하신 형벌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영생하는 복은 천년왕국에서 천 년을 살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휴거라는 말은 데살로니카전서 4장 15-17절에 대한 해석적 오류입니다. 그 구절을 마지막 때에 처음 하늘과 땅에 불태워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창조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불태워지는 땅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 구절은 그들이 생명책 심판을 받기 위해 둘째 부활해서 그리스도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구절을 휴거로 해석하는 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자들이 겨우 첫째 부활하는데, 살아서 휴거된다고 말하는 자들은 누가 무엇을 했다고 죽지도 않고 그런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지요?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자기를 따르라고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둘째 부활에서 생명책 심판을 통과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겸손하게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뒤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기다려야지요.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장소를 안다고 하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거짓 서지자들은 큰 음녀의 자식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탄의 무리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환난의 마지막에 거짓 선지자들의 바벨론 교회까지 멸망시키고,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군대를 끌고 내려오셔서 살아서 깨어 있는 그의 성도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사탄의 무리를 불못에 던져 넣으십니다. 그리고 땅에서 죽은 자들을 모두 둘째 부활로 일으켜서 생명책에 적힌 그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알곡 성도들을 가려서 그의 혼인잔치에 초청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밖에 모르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그때와 장소를 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이지요.   넷째, 144,000명 인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따른 옛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144,000명을 자기 교회 신자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사탄의 영을 받은 바벨론 교회의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144,000명보다 무수히 많습니다. 이방인들이 무수히 인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탄에 미혹되어서 하나님이 잘라버린 옛 이스라엘의 원가지에 접붙임을 입어서 새 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거짓 선지자들의 교회를 떠나야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그의 복음을 계시로 다시 말해준 것입이다. 그것에서 “더하거나 제하는” 자들과 왜곡 해석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4.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사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앞에서 그의 창조목적을 말씀하신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의 나라 원형인 에덴동산에서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선이고, 따르지 않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지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선이고, 사망을 주는 사탄이 악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과 이야기가 바로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사탄이 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미혹할 것을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탄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의 후손들 역시 죄악이 관영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의의 심판을 초래했지요. 성경에서 그 대표적 사례가 노아 홍수 사건입니다. 홍수의 재난에서 살아남은 노아 가족의 후손들마저 하나님을 떠나 불의한 자들이 되었지요.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택하시고, 그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셨고,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 왕국을 허락하셨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 사탄의 미혹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초림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게 했지요.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죽인 사탄과 이스라엘을 당장 멸망시키는 보복을 하지 않으시고, 사탄에게는 “천년 동안”의 무저갱 감금을,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그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기 때문에 그 정도로 그치시고, 그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 이후에는 회개하고 거듭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됩니다. 회개하고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조상 아담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의 문화에 빠졌던 삶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지요.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5. 끝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을 위해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요한계시록을 읽는 방법에 대해 짧게 해야겠네요. 요한계시록을 읽으시되 문자주의에 빠지면 그대로 미로에 빠지게 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징들을 함정처럼 배치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공의를 알고 읽어가면, 계시의 방향과 사건의 구조와 순서가 보이게 됩니다. 무성한 잡초를 쳐내야 길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길을 따라가서 소망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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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9
  • 종말론적 창조론. 최종회
      23.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이미’, 그러나 ‘아직’)   요한은 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알고 행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서술했다. 그것은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두루마리는 그리스도가 일곱 인을 뗀 것과 요한이 천사에게서 받아먹은 작은 두루마리가 있다. “예언의 말씀”은 그 두 가지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이다. “예언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못다 이룬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완성하시겠다는 선포이다. 그 선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계시한다. 첫째는 사탄에게 미혹되어 그의 무리가 되는 자들과 음녀들의 교회에서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는 가라지 성도들은 멸망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둘째는 알곡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흘린 십자가의 피로 희게 되기까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다. 사실 “예언의 말씀”에 나타난 경고와 명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교리의 알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성도들이 “예언의 말씀”을 아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두루마리를 빨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왜곡된 해석에 미혹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사탄의 무리는 겉으로 금방 드러나지만, “예언의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 선지자는 바벨론 교회에서 활동하므로 겉으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고 따르면서 하나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라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개 “예언의 말씀”에 없는 이 땅의 천년왕국과 휴거, 그리스도 재림의 때와 장소 등을 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 교회에 소속된 144,000명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실상을 돌아보자.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꾸짖고 달래도 듣지 않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 세상의 영광을 탐하다가 결국 바벨론의 손에 그들의 왕국이 멸망 당하는 심판을 초래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 옛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참으시고 기다리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가 옛 이스라엘에 전파하신 복음의 요지는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에게 미혹된 옛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로마제국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했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여 감람나무 원 가지를 잘라내듯이 옛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듭난 이방의 성도들이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다(롬11:24). 새 이스라엘은 옛 이스라엘 144,000명과 같이 접붙임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다(계7:3). 인침을 받은 온 이스라엘은 그때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사탄의 무리를 멸망시키고, 이 땅에서 죽은 자들을 모두 생명책에 기록된 행위에 따라 심판하고 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의 ‘이미’ 오셨던 초림과 ‘아직’ 오지 아니하신 재림 사이에서 살아 간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하나님밖에 알 수 없는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동안 사탄 무리의 핍박을 이기는 것과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져 그들과 같이 멸망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동안 땅에서 고난을 이겨낸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초청되어 영생의 보상과 위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깨어서 그날에 입을 두루마기 예복을 그리스도의 피로 흠 없이 희게 되기까지 빨면서 “예언의 말씀”대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믿고, “아멘”해야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끝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1-12-21
  • 종말론적 창조론-22
      새 창조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 활약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가르친다.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과 사랑은 소망으로 수렴(收斂)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요건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망은 성도들이 죽기까지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의지적인 행위가 요구되는 소망은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험난한 장애물 경기처럼 느껴진다.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소망을 위해 온갖 고난과 시련을 넘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탄의 무리가 온갖 미혹과 고난과 시련의 핍박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들의 소망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 여러 곳에서 서술되고 있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요한계시록] 속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1:15)고 서술되어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그의 외아들 되시는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상태는, 요한이 21장에서 다시 서술하는 바와 같다.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계시하신 종말적 사건들이 모두 정리된 뒤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사탄의 핍박을 이긴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태초 때부터 돌이켜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땅에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 백성으로 아담을 처음 만드셨다. 그때부터 사탄은 아담을 미혹하는 반역 행위를 자행했다. 하늘과 땅을 오가며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인간을 미혹하던 사탄은 결국 하늘에서 전쟁에 패하고 쫓겨났다. 땅으로 쫓겨 내려온 사탄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미혹했다. 사탄에게 미혹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이 땅에 초림하신 그리스도를 로마 총독에게 반역죄로 고소하여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게 했다.   그 죄악의 대가는 엄정했다. 사탄은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되어 감금되는 형벌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144,00명을 제외하고는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첫째 부활한 자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셨다. “천 년”의 형기가 차면서 풀려나게 될 사탄은 그의 무리를 모아 다시 반역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신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그들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망시키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첫째 부활한 자들”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온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살아서 ‘아마겟돈’ 전쟁에 참전하는 자들과 ‘아마겟돈’ 전쟁 승리 후에 둘째 부활한 자들의 생명책 심판에서 “둘째 사망”을 사면받는 자들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요한 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가 새 창조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개관해 본다. 하늘⇀-------승천하신 그리스도---‘천 년 동안’ 첫째 부활자들의 목자---지상으로 재림 무저갱⇁----결박된 사탄----‘천 년 동안’ 무저갱에서 감금------------지상으로 풀려남 땅→그리스도 승천과 사탄의 감금 후--교회와 사탄의 무리와의 투쟁—사탄 8째 왕 등극—바 벨론 멸망과 대환난—그리스도의 재림--‘아마겟돈’ 전쟁—사탄의 군대 멸망—생명책 심판 —새 창조(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혼인 잔치(하나님 나라 백성)—하나님 나라 완성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1-12-07
  • 죽재 서남동박사 조명 학술대회
    민중신학을 개척·발전시켜 세계적 사전에 실리게한 공로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함께 하며 한국의 민주화 위해 헌신 죽재 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는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 재조명」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서광선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삼석 국회의원(무안,신안,영암군), 박우량 신안군수, 김은경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이 축사를 했다.   동 사업회 이사장 권진관박사(성공회대 은퇴교수)는 “죽재 서남동교수는 민중신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신학자이다. 서교수는 안병무교수, 현영학교수, 서광선교수, 김용복박사 등과 함께 한국의 민중신학을 개척하고 발전시켰다”며, “영문으로 Minjung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세계의 유수 영문 사전에 실리게 된 것은 민중신학의 공로라고 평가되고 있다”고 의미를 전했다. “서교수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두 번의 감옥생활(약 3년)을 함께 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고문과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66세의 아직 젊은 연세에 소천하여 민중신학의 완결을 보지 못한 채 한을 안고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2부에서 최성환교수(목포대 교수)가 「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민주주의 운동가로서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재조명」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교수는 “서남동의 민주화운동은 1970년대 초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 외 강연, 기도회 등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3년 2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겪었다”며, “그동안 서남동의 업적이 대한민국 민중 신학의 개척자라는 측면에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활동은 잘 알려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민주 투사의 삶을 살았던 그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형묵박사(한국민중신학회장)가 논찬했다.   이어 김성재교수(한신대 석좌교수, 전 문화관광부장관)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에 대한 재평가: 세계 신학에의 공헌을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박사는 “사실 성서는 당시 히브리 노예들, 가장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와 더불어 산 경험을 자신들의 언행으로 전승한 것이다. 그래서 성서언어는 신학자의 해석이 불필요한,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며, “그런데 신학자들이 성서를 해석한다고 하면서 지식인들의 어려운 개념 언어로 바꾸어서 자신들의 해석이 없으면 성서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신학자의 성서해석과 신학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서 본래의 성서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남동의 민중현장·이야기신학이야 말로 성서를 성서답게 회복시킨 정통신학이다. 따라서 이 신학은 소멸의 위기에 있는 전통신학과 교회를 살리는 생명의 신학이다”고 평했다. 여기에 한기양목사(울산 새생명교회)가 논찬했다.   끝으로 정상시목사(죽재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안민교회)가 「죽재 서남동목사기념관 사업 방향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발표했고, 박의배목사(목포 동안교회)가 논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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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1-12-02
  • 독일통일세미나서 페니히박사 발표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것에서 협력관계로의 전환 절실 “독일의 통일 주된 원인은 동독 내부에서의 변화였다”     ‘베를린 역사와 통일연구소’(소장=김현배목사, 베를린비전교회)는 지난 7일 베를린비전교회에서 ‘독일통일 31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첫 강의는 베르너 페니히박사(Dr. Werner Pfennig,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학, 역사문화학부 통일부 프로젝트 연구책임자)가 「독일 통일 이후 융합 과정 ?도전 과제 및 교훈」이란 주제로 진행했다. 페니히박사는 먼저 “전문가들이 분석할 때, 한 세기만 늦춰졌다면 독일통일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국 통일의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즉, 분단된 상태로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한반도의 동질성 또는 ‘모두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약해지고 통일의 정당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시대에 통일을 원하는 여론이 많았다. 북한도 원했다. 지금은 통일을 반대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이것이 통일한국으로 가는데 장애물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독일 통일 이후 사회 통합 및 융합 과정을 짧게 소개하고 그 속에 나타난 도전과제들과 문제점들을 소개하였다. 페니히박사는 독일정부가 그 당시 직면한 여러 도전과제 중 화폐통합과 복지 시스템의 확대라는 두 가지를 예시로 들며 설명했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이 큰 차이를 보였음에도 화폐를 통합하게 됐다. 그로 인해서 동독의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고 동유럽에서 활동을 주로 하던 동독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또한 동독의 공공자산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민영화 되었고 헐값에 팔렸다. 화폐통합이 결과적으로는 동독에게 경제적 쇼크로 다가온 것이다. 또 당시 서독의 복지 시스템을 동독 주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이것이 독일 통일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주원인 중 하나이다.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기 전에 건강 및 연금 보험 그리고 실업수당의 혜택이 동독 주민들에게 확대되면서 많이 비용이 발생하였다. 페니히박사는 한반도의 통일로 주제를 옮기면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강조하였다. 남북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에서 협력의 관계로 전환 되어야 하고 이 과정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친구는 되지 못해도 신뢰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독일통일이 가능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서독과 동독이 여러 경제협력을 통해서 상호신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날 대북제재로 인해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북한의 정권은 핵개발을 결국 이루어냈고 대북제재로 북한 주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북한의 상태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페니히박사는 한반도의 통일은 당사자들의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통일 문제의 주도권을 잡고 가야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지지했고 소련이 반대하지 않았다. 동독 주민들이 변화했다. 한국은 분단된 상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안정된 상태로 있다”며, “이 상황이 변화되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주도권을 가지고 협력, 대화, 의견교류를 해야 한다. 틀을 만들어 가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세력들이 대신 틀을 짤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르너 페니히 박사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두 가진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로, 북한의 안정이다. 변화는 우선적으로 북한 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독일의 통일 주된 원인은 동독 내부에서의 변화였다. 선 정상화 후 통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보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둘째로, 분단이 그 효용성을 잃어야 한다. 지금까지 분단 상태가 동북아 정세의 안정화에 기여했고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정상화된 남북 관계가 분단된 상태 보다 내부적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더 나은 상태로 판단되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짜야한다. 중국과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을 설득하면 일본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설득하는 힘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강한 의지와 하나 됨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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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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