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8(월)

신학/선교/해외
Home >  신학/선교/해외  >  신학

실시간뉴스
  • 감신대학서 '향림 설교 컨퍼런스'
    ◇ 김병삼목사가 예배와 설교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설교의 내용이 좋아도 회중과 소통없는 설교는 오류 경기도 분당에 만나교회(담임=김병삼목사) 브리지 미니스트리는 지난달 24일 서울 감리교신학대학에서 만나교회를 설립한 고 김우영목사의 삶과 사역을 기념하기 위한 「제2회 향림 설교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참석한 목회자들과 설교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교, 다시 세우다」란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서 주최 측은 “설교가 예배와 신학, 말씀과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다시 세워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이번 행사를 주최했다”며,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새로운 설교적 통찰과 실제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설교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기 위한 깊은 성찰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만나교회의 담임이며 고 김우영목사의 아들인 김병삼목사(만나교회)를 비롯해 전창희목사(종교교회)와 김경진목사(소망교회) 그리고 설민석대표(단꿈아이)가 강사로 나서 설교에 대한 네가지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먼저 강의에 나선 김병삼목사는 「예배와 설교」란 주제로 “설교는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성도들을 잘 지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내게 하는 것이다”며, “목회자 또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일상의 일들이 목회자 설교에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다. 목회자는 강단에서가 아니라 일상이 삶의 예배로 드려질때 하나님께 영광이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전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창희목사(종교교회)는 「신학과 설교」란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설교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아도 듣는 청중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아무런 가치없는 설교이다”며, "설교자의 의무에는 설교 내용을 잘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전달도 중요하다. 말씀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버려도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프로페짜이를 통한 설교자들의 모임과 나눔을 권장 또한 전목사는 "커뮤니케이션은 설교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이 균형을 잡을 때 효과적인 설교가 완성될 수 있다"며, "회중과 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 설교는 결국 설교의 능력을 파괴하게 된다"고 정리했다.   김경진목사(소망교회)는 「말씀과 설교」란 주제로 종교개혁 시대부터 이어져 온 목회자 말씀 묵상 모임인 ‘프로페짜이(Prophezei)’를 소개했다. 설교자들이 같은 본문을 연구하고 묵상함으로 깊이있는 성경핵석을 만들어내는 모임인 프로페짜이는 최근 들어 설교자들에게 주목되고 있는 설교준비의 한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목사는 “설교자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깊이있는 분석과 이해를 만들어 내는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보다 심도있는 성경연구와 이해를 위해 이렇게 함께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리고 성도는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구절이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 성경 본문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분석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대표도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방법에 대해 전했다, 그는 짜임새있는 원고와 호소력있는 전달방법 그리고 메신저의 태도와 자세, 호흡등 기술적인 방법을 통한 설교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말했다. “성경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충분히 그의 입장에서 설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콘퍼런스의 마지막 순서는 토크 세션으로 마무리됐다. 네 명의 강사가 한자리에서 설교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설교에 대한 토크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2-01
  • 아델포이교회서 메가(MEGA) 컨퍼런스
     제1회 메가 컨퍼런스가 아델포이교회와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컨퍼런스를 통한 평신도 선교사의 참여 확대를 논의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아델포이교회(담임=임동현목사)와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소장=김성욱교수)는 지난 15일 아델포이교회 본당에서 한국교회와 선교의 현재를 진단하고, 다가오는 세대를 향한 복음적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제1회 메가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에 열린 메가 컨퍼런스는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세대와 문화를 넘어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새 부흥을 일으키자는 비전을 가지고 진행됐다.   임동현목사(선교학박사)가 개회설교를 전하고 있다.   또한 이번 행사는 ‘선교적 교회’란 비전 속에 ‘학술 플랫폼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아델포이교회와 전 총신대 통합대학원장이자 총신대 선교대학원 명예교수인 김성욱박사가 주도한 메가컨퍼런스 조직위가 주관하며, 학술 컨퍼런스와 선교·복음 전파 사역을 위한 펀딩 조성 및 후원 기관인 그래프(GREF)의 후원으로 열렸다.   올해는 그 첫 번째 순서로, 「한국선교의 현재와 미래 - 한국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부른다」 는 주제를 가지고 지난 140년간의 한국 선교의 역사와, 우리 현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선교의 자화상, 다가오는 미래세대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선교 사역 전략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김성욱소장이 주제발표 통해 행사의 취지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주요 신학자와 선교 지도자들이 참여해, 특히 평신도 선교사의 역할과 참여 확대를 중심으로, 교회와 신학교 · 선교단체가 어떻게 협력하여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 이사장 임동현목사는 「예수님의 초대, 다시 복음으로」란 제목의 개회설교를 통해 “이번 행사를 통해오늘의 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생명력을 다시 회복하고, 세대와 문화를 넘어 모두가 복음으로 다시 서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며,    발제1 좌장 마민호교수 /  발제 유해석교수 /  논찬 하광민교수   발제2 좌장 마민호교수 /  발제 신경규교수 /  논찬 장훈태교수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 위에 굳게 설 때, 진정한 교회 부흥과 선교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포럼을 통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며 복음이 삶의 현장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함께 보고자 한다”고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동연구소의 김성욱소장은 “복음은 어느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 모든 영혼들에게 전파되어야 할 축복의 메시지이다. 우리에게 주신 선교명령(마28:19-29)1)은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주님오실 때까지 모든 주님의 제자들이 순종해야 할 지상명령이다”며,    “MEGA Conference는 단순한 학술모임이나 행사에 그치지 않고, 복음회복과 선교확산이라는 두 가지 핵심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자리이다. 이번 행사가 교회와 신학, 미디어, 선교단체를 잇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행사의 의미를 전했다.   발제3 좌장 구성모교수 /  발제 허주교수 /  논찬 김광성교수    발제4  좌장 김성운 교수  / 발제 성남용교수 /  논찬 조귀삼교수   이어진 발제시간에는 한국선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각 파트별로 나눈 총 8개의 논문이 발제됐다. 먼저 김성욱교수의 「한국선교는 전문인 선교사를 부른다」란 주제발표에 이어 유해석교수(총신대)가 「오해와 진실 :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순교에 대한 고찰」, 신경규교수(고신대)가 「근현대 선교 역사와 현대 선교」를 주제로 발제했다.    발제5  좌장 김성운 교수  / 발제 송동호선교사 / 논찬 김한성교수 또 성남용교수(선교와통문문화연구소)가 「한국선교의 현재와 미래」, 허 주교수(ACTS선교연구원)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의 선교목회적 리더십을 만나다」를 주제로 발제했다. 끝으로 송동호선교사(나무미션)가 「변화하는 세계 선교의 현장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선교적 과제와 제안」,    함태경박사(CGNTV 경영본부장)가 「한국교회의 미디어 선교」, 그리고유경하교수(총신대)가 「불확실성 시대의 일의 신학 : 볼프의 한게와 개혁주의적 일의 신학」을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1-19
  • 비전교회와함께하기운동본, 목회세미나
      ◇ 신바람목회세미나에서 유기성원로목사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설교자의 역할은 성경의 메시지를 바르게 전하는 것 비전교회와 함께하기 운동본부(회장=김진호감독)는 지난 4일 경기도 평택의 서정교회(담임=한명준목사)에서 유기성원로목사(선한목자교회)를 주강사로, 지역의 미자립 비전교회와 목회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제29차 신바람목회세미나」를 개최했다. 「목회와 설교」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전국에서 70여곳의 미자립 비전교회의 목회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기성목사가 「예수님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게 하라」를 주제로, 또 장로회전국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장호성장로(경진이레 대표)가 「리더의 덕목」을 주제로  각각 강의했다.    이번 행사에서 김진호감독 “어려운 환경의 비전교회들은 목회자의 신앙과 영혼의 상태가 중요하다. 목회자가 힘을 얻어야 교회가 산다”며, “이번 시간을 통해 목회자들이 힘과 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와 초대의 말을 전했다. 이어 강의에 나선 유기성원로목사는 로마서 15장 18절과 19절을 본문으로, 설교준비의 바른 방법과 설교자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 전했다. 유목사는 “설교자의 역할은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전하는 것이 전부이다”며, “설교를 잘하려는 욕심보다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유목사는 오늘 날 한국교회의 설교의 행태와 설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설교자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고 바른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설교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연예인이 된 것 같이 사람들의 평판이나 인기를 신경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오해이다“고 우려했다. 또 ”AI가 실생활과 목회현장에도 적용되는 시점에 설교에 대한 도움을 받는 도구들이 늘어나지만 설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성경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 체질화된 제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 AI가 만든 설교와 다르지 않다"며, ”설교자는 자기한 전한 메시지처럼 살아갈 때 가장 강력한 설교자로 세워지게 된다. 설교는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임을 기억하고 설교처럼 살지 못한다면 설교의 강단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선수범’은 참된 리더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덕목 유목사는 끝으로 주변 목회자들과의 비평활동의 중요함을 전하고 복음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 아울러 세속적 가치와 물질적 비용에 개의치 않는 검소하고 소탈한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설교자는 설교에 의해 회복되고 살아난다. 바른 설교를 통해 설교자 자신뿐이 아닌 한국교회를 살리는 설교자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리더의 본질은 솔선수범과 신뢰」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장호성장로는 자신의 신앙생활의 여정을 통해 익힌 신앙의 경험을 통해 목회자의 리더쉽에 대해 전했다. 장장로는 “솔선수범은 참된 리더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덕목이다. 자신의 말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리더가 있을때 그 집단은 활력을 얻고 성장한다”며, “리더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할 경우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의 존경받지 못한다. 참된 리더쉽은 언행일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도자가 물질에 대해 바른 신앙적 철학과 태도가 준비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성을 빼았는 것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는데 물질에 대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며 지도자의 성경적 물질관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비전교회와 함께하기 운동본부는 한국교회 내에서 미자립교회 및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대와 지원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전체 교회의 건강성과 목회 사역의 활성화를 꾀하는 단체이다. 목회자 재충전과 영성 강화, 목회 현장에서의 실제적 사역 방안 공유 및 연수를 통해 목회 현장의 현안을 나누고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1-11
  • 제 1회 MEGA Conference 메가컨퍼런스
      제1회 메가컨퍼런스 가 아델포이교회(임동현 담임목사)와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 공동주최로 열린다. "한국선교의 현재와 미래-한국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부른다"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컨퍼런스의 자세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 일 시 : 2025년 11월 15일(토) ○ 장 소 : 아델포이교회 (광명 KTX역 앞)  (경기도 광명시 양지로 19 유플레닛 어반브릭스 B동 3층) ○ 공동주최 : 아델포이교회,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 ○ 주 관 : 메가컨퍼런스 조직위 ○ 후 원 : GOSPEL REVIVAL FOUNDATION(GREF 그래프) ○ 문 의 : 02-899-0691     • 메가 컨퍼런스는 ‘Make Everyone Gospel Again’ (모든 사람이 다시 복음으로) 라는 슬로건 아래,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세대와 문화를 넘어 복음으로 다시 일어 서자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비전 속에 ‘학술 플랫폼 교회’ (Academic Platform Church)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아델포이교회(담임 임동현목사)와 前 총신대 통합대학원장이자 총신대 선교대학원 명예교수인 김성욱박사가 주도하는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소장 김성욱, 이사장 임동현)가 공동 주최하고, 메가컨퍼런스 조직위가 주관하며 학술 컨퍼런스와 선교 ·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한 펀딩 조성 및 후원 기관인 GOSPEL REVIVAL FOUNDATIONGREF (그래프) 원으로 열리게 됩니다.     • 올해는 그 첫 번째 순서로, ‘한국선교의 현재와 미래 - 한국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부른다’ 는 주제를 가지고 지난 140년간의 한국 선교의 역사와, 우리 현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선교의 자화상, 다가오는 미래세대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선교 사역 전략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마련됩니다. 내 주요 신학자와 선교 지도자들이 참여해, 특히 평신도 선교사의 역할과 참여 확대를 중심으로, 교회와 신학교 · 선교단체가 어떻게 협력하여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 또 이번 컨퍼런스는 ▲ 예배(Worship Service) ▲ 주제발표(Main Presentation) ▲ 논문 발표(Scholarly Paper Sessions) 로 구성되며, 총 21명의 교수와 박사들이 설교와 주제발표를 포함해 8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각 파트마다 좌장과 논찬이 함께 참여해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 선교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한국복음과선교연구소 김성욱 소장은 “MEGA Conference는 단순한 학술 모임이나 행사에 그치지 않고, 복음 회복과 선교 확산이라는 두 가지 핵심 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자리”라며,“이번 행사가 교회와 신학, 미디어, 선교단체를 잇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참가 등록은 2025년 11월 14일(금)까지 모바일 초청장 신청하실 수 있으며, 행사 당일, 현장 등록도 가능합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1-03
  • WEA는 어떤 단체이며 신학은 무엇인가(V)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KEF자문위원)     VIII.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복음주의 운동(로잔운동, WEA 운동, WRF 등)과 교류해야 한다. 교류단절은 4세기 어거스틴 때의 도나티시트 운동, 20세기 매킨타이어의 신근본주의 분리주의 길이다.   한국교회안에 있는 ICCC, 칼 매킨타이어가 주도한 신근본주의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근거하는 분리주의다.   미국에서 1930년대 일어난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2002)의 신근본주의는 초창기 미국 보수교회의 건전한 근본주의를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투쟁주의로 변질한 운동이었다. 그는 정통주의를 변호한 교양있는 근본주의자 메이천의 제자였으나 전투적인 성향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깊게 남겼다.   그는 1936년 미국장로교회(PCUSA)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1936년에 조직된 정통장로교회(OPC, Orthodoxy Presbyterian Church)에 합류했다. 그는 1년 뒤 1937년 OPC를 떠나 성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 BPC)를 조직했고, 1937년 페이스신학교(Faith Seminary)를 설립했다. ICCC가 들어가는 곳마다 교단들이 분열되고 파국을 맞았다.   예장합동총회는 처음에는 ICCC(국제기독교협의회)와 우호관계를 가지도록 결정했다가, 1961년 46회 총회에서 아에 ICCC와 교류단절하기로 결정하였다.(대한예수교장로교회(합동) 제 46회 총회회의록, 1961, 8-9). 교류단절에 대해 총신대 용산 교사(校舍)를 ICCC측에 돌려달라는 맥킨타이어 요구에 대하여 재단이사장 노진현 목사는 정중히 거절하는 서한을 보냈다. ICCC는 극단적인 분리주의로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제관계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기관으로 전략하였다.   지난해 세이협/한상협 및 광신대, 총신대 일부 교수들의 로잔운동에 대한 신사도/신복음주의 운동 주장에 대해 로잔신학위원회는 “이러한 비난 내용은 ICCC 칼 매킨타이어의 신근본주의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내용과 유사하다”며 “이에 대해 총신대 명예교수인 김성태, 이한수, 박용규는 문병호 교수의 언급을 또 다른 분리주의 길이라고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총신 후배 교수들은 선배 교수 김성태, 박용규, 이한수 명예교수들의 역사신학적 지혜를 경청하기 바란다. 그 지혜란 신근본주의의 배타적이고 분리주의길이 아닌 역사적 개혁신앙의 길이다.   한국의 청교도적 정통개혁신학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 자신(개 보수 교단)에만 머물지 않고 오는 10월 말 서울 WEA 총회를 통해서 아시아와 세계를 향하여 신학적 K-한류로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감신대, 협성대, 서울신대, 성결대학교, 나사렛대도 웨슬리 전통을 지닌 복음주의 신학을 계승하고 가르치는 신학교로서 한국교회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WEA는 여러 교파들의 복음주의자들도 포함하고 있다. 성결교단의 목회자들(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 등)과 신학자들(김상식 성결대 총장 등)이 함께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2. 근본주의는 일반은총을 등한시하여, 개인 구원 속에 일하는 은총으로 협소화며, 사회참여를 등한시하며, 신근본주의는 복음을 부정적 사고방식과 분리주의로 만들어 버린다.   근본주의는 역사적 개혁신앙을 개인적 구원 영역에만 제한시키며, 역사와 사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등한시하며, 역사와 문화를 사탄적인 영역으로 간주해버린다. 신근본주의는 이러한 근본주의 사상이 더욱 편협되게 나타난 부정적 분리주의적 사고방식 형태다. 그러므로 신근본주의는 극단적이고 편협된 근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 초기 근본주의는 찰스 핫지(Charles Hodge)와 워필드(B. B. Warfield)와 등에 의하여 고등 비평 등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학문적인 복음주의 변증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나, 후기의 신근본주의자들에 의하여 미국교회 안에서 조차 주도권을 상실하고 주변으로 밀려났다.   미국의 신근본주의 신학교 훼이스신학교(Faith Seminary)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분열되어 1937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칼 맥킨타이어에 의하여 설립되었고 1952년 필라델피아로 이전하여 지나친 신근본주의 분리주의 학교 운영으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2004년 메릴랜드로 이전한 후 2020년 메릴랜드 주교육부로부터 인가(認可)가 취소되어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   1971년 훼이스신학교에서 축출된 맥트래교수와 학생들이 미국 필라델피아 북서쪽에 설립한 비브리컬 신학교(Biblical Seminary)가 구 프린스턴신학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가 1940년대–60년대 인권운동으로 활개를 폈으나 지금은 너무 급진적으로 나가서 신학교 명맥을 유지하기에 어렵게 되었다.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교들은 침체하거나 타 유사 계열 신학교와 합병 내지 폐교 직전 상태에 있다   오늘날 로잔대회와 WEA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은 이러한 1930년대 극단한 신근본주의를 답습한 배타적 분리주의 사고방식에 따른 것으로 보아진다. 복음전파는 기독교 단체의 연합과 상호교류와 친교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미국내에서는 코넬리우스 반틸의 수제자인 존 프레임(John Frame), 조지 마르스덴(George M. Marsden),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등 정통개혁신앙을 지닌 새로운 젊은 세대 학자들이 역사적 개혁신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들과 교류하고 한국 청교도 개혁신앙을 지구촌에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3. 역사적 복음주의는 성경관에 있어서 성경의 무류(infallibility)보다 무오(inerrancy)를 받아들인다.   WEA 반대자들은 WEA가 무류(infallibility)를 받아들이지만 무오(inerrancy)를 믿지 않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WEA 성경관은 설립 선언문(1846)에서 “성경의 신적 영감, 권위, 충분성”을 분명히 고백하였고, 2001년 신앙고백문에서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그대로 신적으로 영감되었으며(divinely inspired), 무류하고(infallible),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며(entirely trustworthy), 신앙과 생활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the supreme authority in all matters of faith and conduct)”( WEA, 「복음으로 세계를 섬기는 꿈을 꿉니다」“ 2025 WEA 서울총회 조직위원회, 2025.9. 63쪽)임을 명시하였다. 또한 2021년 연례 보고서에서는 이 고백이 “변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지난번 8월 21일에 있었던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기자회견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은 거룩한 방파제를 만들어 불신앙의 파도를 막아야 한다”고 제 14회 WEA 서울 총회에 대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임원들(회장, 임석순, 선교위원장 문창선, 사회위원장 곽혜원)은 “우리는 성경의 무오(infallibility)와 무오(inerrancy)를 믿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천명합니다“라고 선언했다.(한국복음주의 협의회 선언문, 2025년 8월 21일)   역사적으로 무류(無謬)는 무오(無誤)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 ‘무오’라는 용어는 17세기 이후 개혁파 정통 신학자들이 ‘무류’라는 용어와 점차 병행하여 사용한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나 ‘무류’라는 표현은 본래 ‘무오’와 의미 차이가 없는 용어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역시 ‘무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무류가 무오를 전제 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두 용어는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에는 성경 무류(infallible)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성경 무오’(inerrant)라는 용어가 없다. ‘성경의 최고 권위’라고 되어 있다.”   성경무오(Biblical Inerrancy)는 성경이 기록한 모든 사실에 오류가 없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역사적·지리적·과학적 진술과 모든 사건 기록이 참되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라는 확신이다. 성경무류(Biblical Infallibility)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경 무오는 구원 진리에 오류가 없으며, 성경의 역사적 사실 기록에도 오류는 없다는 성경 무류와 같이 되어야 한다.( WEA, 「복음으로 세계를 섬기는 꿈을 꿉니다」“ 2025 WEA 서울총회 조직위원회, 2025.9. 63쪽.)   그런데 복음주의 좌파(열린 신론, 신정통주의, 유신진화론 등)는 역사, 사실, 과학에 오류가 있다는 의미에서 성경의 무류성(infallibility)을 부정한다. 이에 대해 정통복음주의는 구원의 교리와 행위의 규범은 물론 역사와 사실과 과학에 오류가 없음을 말하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천명하였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좌파는 성경의 무류성을 부정하나, 진정한 복음주의는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없다는 것만 아니라 구원의 교리와 행위 규범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는 무오를 받아들인다.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역사비평이 나오면서 복음주의 좌파들 가운데 성경에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데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Neo-Orthodoxy)도 이러한 입장에서 창세기의 역사성을 하나의 전설(Saga)로 보고, 역사적 사실성에 대하여 애매한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성경무류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신정통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성경은 신앙책이지 사실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고 한다면 창세기 기록이나 묵시록이나 예언서의 기록조차도 사실이 아닌 하나의 종교적 신화에 대한 기록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 말하는 바와 같이 창세기의 창조, 타락, 역사적 아담의 원죄가 시적 상상이 되어 버리고 다가오는 역사의 종말도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상상력이 되어 버린다 그럴때 성경은 더이상 우리 삶의 규범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의 기초로 삼는 토대는 성경이 원본에 있어서 전혀 오류가 없다는 유기적·완전·축자 영감설(organic, plenary verbal inspiration)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복음주의는 성경 무류와 성경 무오를 함께 받아들인다.(계속)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0-23
  • 한국개혁신학회, 니케아신경 학술대회
    ◇ 남서울교회서 열린 제60차 한국개혁신학회 기념학술회에서 참석자들이 행사를 기념하고 있다.   예수의 관한 아리우스의 오해에서 니케나신경이 형성 한국개혁신학회(회장=이경직목사)는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남서울교회(담임=이경직목사)에서 제60차 학술대회를 「니케아신경 1700주년 기념 학술대회」로 열고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에게 니케아신경이 제시하는 의미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신열목사(고신대 본회총무)의 사회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안인섭목사(총신대 본회부회장)의 기도와 이경직목사(백석대 본회회장)의 설교로 기념예배를 마치고 기조강연에 들어갔다.   먼저 김영한박사(기독교학술원장)는 「니케아신조가 주는 오늘날 의미」란 제목의 강의에서 “올해는 니케아 신경이 공인된지 1700 주년이다.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비롯한 이단을 단죄하고 정통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기독교회가 채택한 신앙 고백문이다”며, “아리안 논쟁을 해결한 니케아 신조는 니케아 회의에서 단 한번에 끝난 것이 아니라 그후 수십년 반대 신학적 세력과 정치적 절대권력인 로마황제의 친아리우스 신앙적 입장과 맞물려서 박해를 받는 연단을 거처 56년 후에야 비로소 결실된 신조다”고 니케아신경을 소개했다.   김교수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단호히 반박했다. 그들은 예수가 피조물이라면 인간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오직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인 성자만이 인류와 하나님을 화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니케아 공의회는 신학적 논쟁 끝에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라는 표현을 신조에 삽입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 즉 성부와 본질이 동일한 신적 존재로 공식 확립되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그의 저술은 소각되었다는 내용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또 김교수는 아리우스의 사상이 단절되지 않고, 현대 신학의 ‘열린 유신론(Open Theism)’ 등에서 변형된 형태로 나타남을 지적했다. 열린 유신론은 전통적 삼위일체 신론을 ‘독재적 신 개념’이라 비판하며,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전능성과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아리우스주의와 유사한 위험을 지닌다고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었으며,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 토대가 되었음을 강조한하며 강의를 정리했다.   니케아 신경의 의미는 과거의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이어 강의에 나선 조병하은퇴교수(백석대)는 「니케아 신앙고백의 역사적 의의」란 제목으로 니케아 신앙고백이 갖는 역사적 가치에 대해 논의했다. 조교수는 “니케아 신앙고백 연구에서 역사자료의 정확한 검증이 필수임을 강조한다. 그는 독일 교부학 연구를 통해 원문 사료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한국 교회 내 교회사 서술의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지적한다”고 전했다.   또한 “니케아 신앙고백의 의미는 단지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며, “니케아회의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가 신앙의 기준을 세운 신학적 승리의 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끝으로 그는 “1,700년이 지난 오늘, 니케아 신앙고백은 여전히 교회의 예배와 신앙고백 속에서 살아 있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 변치 않는 신앙의 기둥이며,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가장 오래된 고백문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고 강의를 마쳤다.   이외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백석대 김진하교수와 서울한영대 남성현교수 그리고 침신대 조동선교수가 강의를 진행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0-21

실시간 신학 기사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4)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수께 오는 사람들이 전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태복음 5~7장이 산상설교라면, 마태복음 8~9장은 기적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한다.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마태복음 8장이고, 바로 그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기적 이야기는 마태복음에서 보른캄과 헬트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론, 제자도, 신앙’을 보여주는 것 외에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수하는 선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복음서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인 백부장이 직접 예수께 나아와 간청을 드린다. 이것은 인종 교차적인 관점에서 유대인에게 이방인 선교를 고취하려는 의도이다.   이와는 달리 같은 치유 이야기 같지만, 누가복음 7장은 백부장의 ‘하인’이라 단어 대신에 ‘종’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백부장의 종이 다름 아닌 노예라는 사실을 부각한다. 마태복음에서 하인은 유대 사회에서 아랫사람을 의미하지만, 종은 그보다 더 낮은 계급 곧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통용되던 노예를 연상시키는 단어이다. 노예 신분이니까 무시할 수도 있지만, 소외된 사람에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는 누가복음의 관점에서 훨씬 더 적나라하게 종을 살리려는 백부장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예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백성의 장로들과 친구들을 차례로 보내면서 종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이들은 예수의 동족인 유대인들이다. 이것 역시 인종 교차적인 관점에서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인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유대인 선교를 고취하려는 의도이다.   예수말씀은 마태복음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 백부장이 그에게 왔다. 그가 간청하여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하인이 병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겠다”고 한다.   예수의 응답은 파격적이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는 표현은 단순과거 분사의 형태로 일회적인 사건을 강조하고, 또 미래시제는 미래의 즉각적인 응답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는 백부장의 간청이 있자마자 예수께서 가셨고, 그 치유의 순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순간에 미래의 사건으로 응답 될 것이라는 아주 미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예수의 화법은 백부장의 하인을 살리신 일이 종말론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치유하는 일이 인간사에 흔한 일인가? 아니다. 오직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이 이런 위대한 일을 행하실 수 있다. 바로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한 이야기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바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고 선언한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신적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서가 치유 기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가까이 계신 분으로 현현하신 놀라운 사건을 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예수의 신성을 모독하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도리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반복적으로 비하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실을 중시할 때, 과거에 한국교회가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유물론자들인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면, 이제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모독하는 이슬람의 총공세에 교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9-25
  • 한국기독교사연구원서 허정윤박사 발표
      국내활동 한계에 국외망명 결정하며 독립전쟁론 채택 “신민회 ‘자유문명국’에 기독교적 가치와 이상이 내재”     한국기독교사연구원(원장=박종현박사)은 연구원 창립 22주년을 맞아 지난 6일 한국기독교사학회와 함께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권 평박사의 사회로 시작한 이날 발표회에서는 허정윤박사(케리그마신학연구소·사진)가 「신민회의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일고」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의 주도로 결성된 비밀조직으로 신민회의 창립목적은 ‘유신한 자유문명국을 성립케 함’이었다. 이에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는 국내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국외망명을 결정하면서 ‘독립전쟁론’을 최고의 전략으로 채택했다. 망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민회의 존재를 알게 된 일제는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의 간부들을 대량 검거했다. 이에 대해 허박사는 “그 이후에 신민회 발기인들에게 닥친 일제의 탄압과 망명지에서의 현실 속에서 ‘독립전쟁론’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 되었다”며, “그 결과는 신민회의 분열로 나타나면서 이후 항일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4번의 분열을 주목했다.    첫째 단계의 분열은 1차 망명자 그룹의 청도회의에서 일어났다. 허박사는 “여기서 안창호의 점진파와 유동열의 급진파가 대립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급진파의 안이 채택되었으나,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둘째 단계의 분열은 이동영이 가족을 국내로 돌려보내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갔을 때 일어났다. 허박사는 “그곳에서 이동영은 이상설과 합류하여 대종교인으로 개종하고 말았다”며, 종교적 분열을 시사했다.      셋째 단계 분열의 주인공은 이동휘였다. 허박사는 “이동휘가 하바로브스크 군옥에서 남모르게 그를 구해준 하바로브스크시 볼셰비키당위원장 김알렉산드라의 후원으로 한인사회당을 조직하고 당위원장이 되었다”며, “이를 계기로 그는 신민회와 기독교를 완전히 버리고 볼셰비키즘으로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넷째 분열은 양기탁에게서 촉발됐다. 허박사는 “양기탁은 통천교를 창시하고, 선언서에서 이는 ‘기독교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며, “종교는 ‘자국을 숭배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언급했다.   허박사는 “3.1운동 이후 설립된 상해임시정부에 신민회 발기인들을 포함한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며, “이때에도 신민회의 급진파와 점진파의 독립운동 방법론이 임시정부를 분열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 ‘좌우대립’이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좌우대립 문제는 상해임시정부 시절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며, “그것이 임시정부의 정치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고, 그 존재와 권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패망 후 승전국 미국과 소련에 의하여 한반도에는 분열된 2개의 국가가 성립됐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9-25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3)
      예수의 첫 설교는 “그가 이 말씀을 끝마치셨다. 그는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 구절로 짤막하게 예수의 첫 설교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에 주로 활동하신 갈릴리에는 당시에 약 204개 정도의 도시들이 있었다. 첫 설교 이후에 예수의 활동무대는 공생애 사역의 전초기지인 가버나움으로 옮겨진다. 갈릴리 공동체의 활동무대 역시 가버나움에서 다시 출발한다. 가버나움은 당시에 1,700명 정도의 인구가 모일 만큼 갈릴리에서 분주한 항구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있다가 고침을 받은 후에 예수의 일행을 위해 수종을 든 이야기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공관복음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다른 병자들과 고침을 받은 이야기에 묻혀있을 뿐이다. 마태복음 8장 14~17절과 마가복음 1장 29~34절을 자세히 비교하여 읽어보라. 마태와 마가는 베드로의 장모 사건에 앞서서 이미 제자들이 부름을 받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곧 베드로도 이미 제자로 부름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지 그의 장모는 베드로 때문에 특별히 예수의 고침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누가복음 4장 38~39절은 짧지만 두 복음서와 다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는 5장에 가서야 비로소 나온다. 이 점에서 4장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고침을 받은 사건은 아주 특별하다. 고침을 받은 여인이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 드니라”(39절)는 표현을 통해서 아직 남성 제자들이 부름을 받기 전에, 이미 여성의 헌신을 통해 제자도의 핵심 기능에 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종들다’란 단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디아코니아의 동사형인 디아코네오이다. 바로 남성 제자들이 봉사의 제자도를 감당하기 이전에 여성의 리더십을 통하여 봉사의 원리를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건이 예수의 공생애 동안에 자주 일어나는데, 그 출발점이 가버나움이다. 마태복음과는 달리,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드로 장모의 사건을 다루면서 “회당에서 나와”(마가복음 1장 29절; 누가복음 4장 38절)라는 구절을 통해서 가버나움 회당과 이 사건을 연결 짓고자 한다. 이것은 가버나움에서 회당이 지닌 중요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태복음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사건 바로 직전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하인을 고친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다. 이렇게 사실상 공관복음서는 모두 가버나움을 중시한다.   왜 가버나움이 중요할까?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공생애를 이어가신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뿐만 아니라, 동서로 움직이는 예수의 이동경로에서 핵심적인 장소이다. 마가복음은 ‘건너편’(헬라어로 페란)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하신 것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심지어 마가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마가복음 6장 30~37절)은 유대인을 위해서 그리고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마가복음 8장 1~10절)은 이방인을 위해서 행한 기적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예수의 공생애가 미치는 활동영역은 가버나움을 넘어서 이방 여인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의 고향인 헷 족속(히타이트)이 자리를 잡았던 페니키아의 해변가인 두로와 시돈 지방까지 또한 북으로 서부 시리아인 안디옥까지 확장되어 나간다. 나사렛이 나자라 예수의 진원지라면, 가버나움은 예수말씀의 중심지이다. 나사렛이 예수께서 자라신 곳이라면, 가버나움은 제2의 고향이다. 가버나움을 기점으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나아가신다. 예수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기에 가버나움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9-06
  • 정요석박사 ‘에드워즈의 언약론’ 발표
      구속언약은 삼위 안에서 구속을 이루는 특정한 수단·방법 “성부는 성자와 협약에 의해 성자에 대해 새로운 권리획득” 제 4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이 지난달 26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신앙」이란 주제로 열렸다. 정요석박사(세움교회·사진)와 이상웅교수(총신대)가 강사로 나섰다. 이 중 에드워즈를 전공한 정박사의 발표에 많은 관심이 몰렸다.   정박사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언약론」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그의 언약신학을 분석했다. 에드워즈는 “사람의 구속이라는 특별한 일에 관하여 삼위일체의 위격들 몇 사이에 영원한 언약이 있다는 것은 성경에 의하여 명백하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구속언약은 “삼위의 존재의 질서 하에서 구속을 달성하는 특정한 방식과 수단들”이다. 정박사는 “이미 삼위의 존재의 질서 하에서 결정된 삼위의 권한을 에드워즈는 구속언약에 의하여 새로이 결정되는 것과 면밀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점을 정박사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즉 “삼위일체의 경륜에 의하여 이 세상의 율법수여자와 심판관과 처분자가 되는 권한은 성부에게 주어져 있는데, 구속언약에 의하여 이 권한이 성자에게 맡겨져, 성자는 성부를 대신하여 이 세상의 주와 심판자가 된다”며, “또 성부는 영원한 구속언약을 시작하는 이이고, 첫 번째 운동자이고, 수장으로서 모든 면에서 행동한다”고 말했다.   정박사는 왜 구속언약이 필요한지에 대해 “성부는 삼위일체의 다른 위격들에게 그들의 경륜적 위격을 침해하지 않는 것들은 단지 성부의 경륜적 특권만으로 그들에게 지시할 수 있지만, 신적 위격들의 영광을 침해하고 밑도는 것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협정에 의하여 이것을 행할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 한, 다른 위격들에게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성자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겪어야 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일들은 성자의 신적 위격의 영광을 침해하고 밑도는 것들에 해당하므로, 성자가 이렇게 하겠다고 성부에게 자유롭게 협정하여 주지 않는 한, 성부는 성자에게 성부의 특권으로 이것들을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박사는 “성부는 성자와의 협약에 의하여 성자에 대해 머리와 권위가 되는 새로운 권리를 얻어 그에게 위격 밑에 있는 것들을 지시하고, 또 그 협약에 의하여 성부는 성자에게 성공과 보상 등을 주는 새로운 의무를 갖는다는 것이다”고 요약했다. 그래서 위격들의 영광과 존엄에 밑도는 것이 사람을 구속하는 데 요구되지 않는다면, 구속언약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구속언약에 의한 두 위격의 이러한 종속은 비록 종류에 있어 새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성부와 성자의 경륜적 질서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 구속언약에서 성부가 성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성자가 성부에게 종속된다고 말한다”고 정박사는 지적했다. 그 결과 “에드워즈가 위격들의 영광과 존엄에 밑도는 것이 사람을 구속하는 데 요구되기 때문에 구속언약이 필요하다고 본 점은 그 주장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구속언약의 필요성에 대하여 매우 독창적으로 잘 설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9-06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2)
      예수말씀은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라고 안타까워하면서 행함을 일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듯이 이러한 예수말씀에 대해서 주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는 가장 예수의 가르침을 가깝게 따르고 있다(야고보서 2장 14~26절). 야고보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예수말씀을 찾아보면, 예수말씀의 평행귀가 복음서 이외에서 야고보서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  ‘주여, 주여’라는 부름말은 흔히 ‘주여 삼창’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주여 삼창’이 유래된 구절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다. 다니엘 9장의 기도를 읽어 보라. 특히 다니엘 9장 19절의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에 ‘주여 삼창’이 나온다. 인간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행동을 촉구하는 간청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일방적인 간청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말씀은 놀라우리만치 인간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다.  예수말씀은 “나의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모든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시내…가 저 집에 밀려왔어도… 그것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시내…가 저 집에 들이쳤는데 그것이 곧바로 무너졌고, 그것의 무너짐이 컸다”고 이어진다.  마태복음은 예수말씀의 ‘반석 위에 짓는 사람’이란 전승을 그대로 따르지만, 누가복음 6장 49절은 ‘흙 위에 집 지은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왜 이렇게 예수말씀의 중요단어가 반석에서 흙으로 변경된 것일까? 마태복음이 산상설교(마태복음 5장 1절)이고 누가복음은 평지설교(누가복음 6장 17절)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마태의 유대인이 유대산지의 반석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누가의 로마인이 살던 드넓은 평지를 중시한 표현이다. 그런데 평지의 흙에 집을 바로 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주추’를 두 번씩이나 언급하면서(누가복음 6장 48~49절) 집을 짓는 사람이 나름대로 수고를 하였지만, 역시나 ‘큰물이 나고, 탁류가 부딪칠 때’(48~49절) 집이 곧 무너지게 된다.  우리말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의 경영하는 모든 수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면서 인생이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을 일깨운다. 마태복음에서는 산상설교로(마태복음 5~7장), 누가복음에서는 평지설교로(누가복음 6장) 적용되었지만, 예수말씀이 ‘반석 위에 세운 집’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혜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사기 55장 8~9절)  인간은 미래가 불안한 나머지 모아둔 재산을 허비하며 부질없이 신접인도 찾아가서 점도 보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집 안에 부적도 들이고 심지어 우상을 모시기도 한다. 치성을 드리며 기도를 올리지만, 제 마음이 차지 않아서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까지 한다. 모두 신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의 발로이다.  예수말씀은 기껏 말씀을 듣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말씀하신 분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행동으로 보이며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길 것을 주문하신다. 당장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한 대로 행하라’는 말도 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옮겨야 할 차원을 일깨우는 말이다. 예수말씀은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한국교회가 기도는 잘하고 말씀을 듣는 데는 열심이지만, 행동과 실천이 미약하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8-12
  • 주동홍박사, 개혁교회500주년 기념 연구발표
    ▲ 개혁교회 50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대회에서 주도홍박사가 츠빙글리 연구를 발표했다.   츠빙글리는 루터주의자로 불리기보다 바울주의자로 호소 “하나님은 츠빙글리를 스위스에서 소중하게 사용하셨다”      2019년 개혁교회 500주년을 맞아 주도홍박사(전 백석대 부총장.사진)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여기서 츠빙글리가 ‘독자적 종교개혁자’란 사실이 강조됐다.    주박사는 두 가지 면에서 츠빙글리의 독자성, 즉 루터와의 무관함을 들었다. 첫째는 1519년 츠빙글리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확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주박사는 “이는 루터와 츠빙글리와의 정신적 무관함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이때는 츠빙글리에게 루터의 사상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다”고 강조했더. 둘째는 츠빙글리가 1516년, 1519년의 자신의 새로워진 설교를 제시하는 점이다. 주박사는 “이 시점이야말로 종교개혁으로의 공개적 전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츠빙글리가 자신의 독자적 종교개혁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루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종교개혁이 이뤄졌음을 증명하고자 함이었다.    츠빙글리와 루터의 관계는 몇 차례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첫 번째 단계는 1518년 가을에서 1520년 여름까지로 “루터에게 매료된 단계”이며, 둘째 단계는 1520년 여름부터 1522년 초까지로 “교회 정치적 이유로 루터와 조금은 거리감이 있어지는 기간”이고, 셋째는 1522년부터 1524년까지의 단계인데, 신학적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루터와의 조심스러운 관계 설정이 이루어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고, 마지막 단계는 1525년에서 29년까지인데 무엇보다도 두 사람 사이 “성찬에 대한 구별된 이해로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던 시기”이다.    이 가운데 주박사는 1522년 이후 1524년까지를 주목했다. 츠빙글리가 루터와의 신학적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게 되는 시기이다. “우리와 함께 루터는 공동으로 복음적 교리를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파가 아니라, 우리는 복음적이다”는 츠빙글리의 말에 주목할 것을 주박사는 당부했다.    츠빙글리의 <67개 논제에 대한 해제>(1523년)는 루터와의 관계를 직접 말하는 문서이다. 주박사는 “18조에서 츠빙글리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밝힌다. 그는 루터를 ‘하나님의 성실한 종’,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전사’로 일컬으면서도, 자신을 루터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는 사실이 아님을 밝히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박사에 의하면 츠빙글리는 자신이 왜 루터주의자가 아닌지를 여섯 가지로 밝힌다. 츠빙글리는 △루터를 알기 전에 ‘오직 성경의 원리’를 실천했고 △오직 성경에만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했으며 △교부들의 성경해석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중세교회와는 차별화된 오직 성경을 만방에 알리는 시점은 1519년이었으며 △마태복음 주석에서 주기도문 강해를 루터보다 앞서 출판했고 △교황청에서 취리히로 특사로 보낸 추기경들은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전에는 츠빙글리를 루터주의자로 정죄하지도 부르지도 않았고 △츠빙글리는 자신을 루터주의자라고 일컬음을 받기보다는 바울주의자 아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소했다 등이다. 이렇게 츠빙글리는 자신을 루터주의로 불리는 것에는 반박하면서도 루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마부르크 종교회의가 열렸던 1529년까지는 특히 성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루터와 츠빙글리가 날카롭게 대치했다. 주박사는 “이 기간에 츠빙글리는 루터와의 차별성을 내세웠는데, 루터는 종교개혁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조금은 분명하지 않은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자신은 달랐다”며,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복음의 정수를 바로 터득하여, 교황권, 연옥설, 성인들의 조작된 중보기도를 거부하였”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츠빙글리의 사상이 전적으로 독자적이지는 않다고 주박사는 평가했다. 왜냐하면 “츠빙글리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특히 츠빙글리에게 있어 믿음 대신, 복음의 역할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심사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8-12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1)
      예수말씀은 “나쁜 열매 맺는 좋은 나무는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나쁜 나무도 없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 찔레에서 포도를 거두지 못하지 않느냐? 좋은 사람은 그 좋은 창고에서 좋은 것을 가져 오지만,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가져 온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그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고 한다. 예수말씀을 복원하면서 뒤에 나오는 ‘창고’라는 단어는 앞에 사용된 단어를 토대로 하여 추측한 것이다. ‘좋은 창고’는 ‘좋은 보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사람은 외모를 취하지만, 예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처럼 본질을 중시하신다. 교차대칭구조로 표현된 예수말씀은 자연의 이치가 창조주의 마음과 같아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순리를 말한다. 우리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예수말씀은 가시나무와 무화과를 그리고 찔레와 포도를 대조하면서, 뾰족한 가시나무와 찔레를 부드러운 무화과와 포도에 비유하신다. 우리말에 연결을 짓자면, ‘밴댕이 낯짝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뾰족한 가시나무와 찔레처럼 악한 말을 할 것이고,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화과와 포도와 같은 좋은 말을 할 것이다. 예수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순리로 돌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창세기 1장 26~27절)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본질과는 다르게 역행하는 언행을 한다고 고발하신다. 사람은 ‘순리로 쓸 것 역리로 바꾸어서’(로마서 1장 26~27절)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신 창조의 섭리(창세기 2장 24절)를 버리고, 남자가 남자로 여자가 여자로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여”(로마서 1장 27절) 동성애의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동성애를 ‘가증한 것’(히브리어 ‘토에바’는 허락하지 않은 것이란 뜻)이기에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을 읽어보라. 동성애자도 사람인데, 죽이라는 명령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진멸’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법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2세기에 마르키온이 진멸법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구약의 하나님을 저급하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거부하는 과오를 범하고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초기교회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헤렘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려는 창조의 본래 목적과 경륜을 외면하고,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그리고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음욕이 불태울 때, 이러한 동성애를 ‘가증한 것’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것’이기에 죽이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진멸법이다. 요즘 한국사회는 사회적 성과 제3의 성을 이야기하면서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성을 마치 양성평등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성은 가기 결정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의 권리’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축복이다.  이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역행하고 성을 역리로 쓰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 예수말씀이 좋은 나무와 좋은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인간의 본질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보물과 같은 사람이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8-05
  • 김영한박사, ‘예수의 윤리’ 연구 발표
    ▲ 김영한박사는 나사렛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윤리는 율법의 폐기가 아닌 완성임을 강조했다.   예수는 율법과 예언의 정신을 사랑의 새 계명으로 제시 율법은 성령으로 예수를 믿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완성 기독교윤리의 핵심은 ‘사랑’이다. 이 사랑의 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이것은 이미 구약 모세의 율법이 가르친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윤리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한 김영한박사의 연구가 나와 큰 관심을 받았다.  김박사는 “예수는 전적으로 새로운 계명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와 선지자가 가르친 율법과 예언의 정신을 사랑의 새 계명으로 제시하신 것이다”며, “예수는 율법의 내면을 통찰하였고, 율법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바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는 율법의 가르침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하고자 한 것이다”며, “구약의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이다”고 설명했다. 김박사는 “예수의 사랑의 능력이 우리 마음속에 점화되면 산상수훈의 요구를 지킬 수 있게 된다”며, “사랑의 능력을 가지면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후히 빌려 줄 수 있다. 사랑의 능력을 가지면 원수에 대하여도 단지 미워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원수를 사랑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중생한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은혜를 강조한다. 그래서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율법의 준엄한 심판 때문에 두려워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경우는 사도바울로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은 성령으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새 사람의 성품을 가지게 된 것이다”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역사적 예수는 율법이 그가 보내실 성령 안에서 전적인 자발적 드림을 통하여 역동적으로 성취됨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김박사는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 아래 거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 진리가 그를 자유케 한다는 진리의 역설을 가르친다. 여기서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의 요구에 얽매어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가 인격으로 그 속에 계시게 될 때,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진리를 순종하게 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율법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역동적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김박사는 “오늘날에도 인간들에게 불편한 계명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물타기 기독교인들’이 있다. 동성애 이슈가 그것 중 하나다”며, “동성애에 대해 교회가 너무 강압적으로 반대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 의하면 동성애는 결단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그를 겸손하게 하신 ‘하나의 가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박사는 예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반대에만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선행을 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며,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고 주장했다. 또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을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박사는 이러한 반대운동과 더불어 선행운동을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김박사는 “성도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을 돌아보는 사회적 선행으로서의 아젠다를 실천하여 성도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8-05
  • 김영한박사, ‘예수의 윤리’ 연구 발표
    ▲ 김영한박사는 나사렛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윤리는 율법의 폐기가 아닌 완성임을 강조했다.   예수는 율법과 예언의 정신을 사랑의 새 계명으로 제시 율법은 성령으로 예수를 믿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완성 기독교윤리의 핵심은 ‘사랑’이다. 이 사랑의 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이것은 이미 구약 모세의 율법이 가르친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윤리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한 김영한박사의 연구가 나와 큰 관심을 받았다.  김박사는 “예수는 전적으로 새로운 계명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와 선지자가 가르친 율법과 예언의 정신을 사랑의 새 계명으로 제시하신 것이다”며, “예수는 율법의 내면을 통찰하였고, 율법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바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는 율법의 가르침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하고자 한 것이다”며, “구약의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이다”고 설명했다. 김박사는 “예수의 사랑의 능력이 우리 마음속에 점화되면 산상수훈의 요구를 지킬 수 있게 된다”며, “사랑의 능력을 가지면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후히 빌려 줄 수 있다. 사랑의 능력을 가지면 원수에 대하여도 단지 미워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원수를 사랑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중생한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은혜를 강조한다. 그래서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율법의 준엄한 심판 때문에 두려워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경우는 사도바울로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은 성령으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새 사람의 성품을 가지게 된 것이다”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역사적 예수는 율법이 그가 보내실 성령 안에서 전적인 자발적 드림을 통하여 역동적으로 성취됨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김박사는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 아래 거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 진리가 그를 자유케 한다는 진리의 역설을 가르친다. 여기서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의 요구에 얽매어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가 인격으로 그 속에 계시게 될 때,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진리를 순종하게 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율법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역동적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김박사는 “오늘날에도 인간들에게 불편한 계명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물타기 기독교인들’이 있다. 동성애 이슈가 그것 중 하나다”며, “동성애에 대해 교회가 너무 강압적으로 반대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 의하면 동성애는 결단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그를 겸손하게 하신 ‘하나의 가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박사는 예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반대에만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선행을 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며,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고 주장했다. 또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을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박사는 이러한 반대운동과 더불어 선행운동을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김박사는 “성도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을 돌아보는 사회적 선행으로서의 아젠다를 실천하여 성도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8-05
  • 설교연구원서 ‘27주년 기념세미나’
     6명의 성경 전문 강사진들 목회에 도움되는 강의를 기획  “목회자·신학생들, 강의통해 큰 도전과 감동 얻길 바래”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원장=서창원목사·사진)은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2일간 세곡교회(담임=박의서목사)에서 설립 27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하고, 「모세오경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란 주제로 6명의 전문 강사진들이 강의를 진행한다. 세미나의 강의들은 목회자들이 바른 성경이해를 바탕으로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광호목사(실로암 교회)는 ‘27주년 기념 감사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고, 「출애굽기 이해와 해석의 기초’」란 주제로 강의한다. 많은 저서들을 발간한 이목사는 이번 강의를 통해 개혁주의 입장에서 출애굽기의 장엄한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김두석교수(칼빈신학교)는 「창세기와 그리스도」란 주제로 강의하고, 황선우교수(총신대학교)는 각종 제사제도를 다루고 있는 레위기에 대해 「설교를 위한 레위기 연구」란 주제로 그 중심사상과 적용을 강의한다. 성주진교수(합동신학교 전 총장)는 「신명기의 보응사상과 설교」란 주제로 신명기의 ‘보응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강단에서 선포·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한다. 강규성교수(한국 성서대학교)는 민수기에 대한 개괄적 이해와 설교의 실제에 대해 「민수기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서문강목사(중심교회)는 모세오경 전체를 「계명과 복음」의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동 연구소장 서창원목사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여 큰 도전과 감동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며, “많은 이들이 세미에 참석하여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또한 저명한 학자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목회에도 훌륭하게 적용할 수 있는 접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7-3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