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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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모세오경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 ⑥
    김성욱교수 출애굽기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이제 모세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과 언약을 다시 갱신하면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은 세상속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역할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제 족장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은 한 국가적 규모가 되었으며 그들은 도덕법, 의식법 그리고 시민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모세를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언약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을 찾을 수 있다.   본격적인 구약의 선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아 제사장나라로서 사역을 기술하는 출애굽기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로울리는 “모세는 우리가 아는 최초의 선교사”라고 소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에게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소식을 알림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사건을 가지고 구약의 선교적 메시지를 찾는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방 민족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첫 이방 선교의 명령 모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애굽의 노예된 이스라엘에게 가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였다. 이러한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출애굽한 사역은 구약에 나타난 핵심적인 구속의 역사이며 구약성경의 메시지의 심장과 같은 것이다. 모세 언약에 나타난(출19:5-6)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을 볼 수 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여호와 앞에서 구별된 삶과 역할을 부여받았다. 언약이 요구하는 것이 거룩, 헌신 그리고 봉사인데, 여호와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봉사의 임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출19장에서 잘 드러난다. 모세의 인도로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맺으면서(출19:1-2), 모세를 통해 율법을 기록케 하심으로 특별히 모세 언약을 “시내산 언약” 또는 “율법언약‘으로 부른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언약은 성경의 구속사에서 특별한 율법의 위치를 보여준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적인 내용을 닮고 있다.   학자들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한 책을 가진 백성이 되었다.” 율법은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십계명은 주변의 이방나라들과 비교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인 수준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 의도를 표현 십계명은 도덕법으로서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도덕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팔머 로벗슨은 그의 “계약신학과 그리스도”에서 지금의 신약시대에도 모세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의미와 역할이 있으며, 구약시대와 함께 신약시대에 있어서 모세오경의 그 중요한 의미를 잘 제시하였다. 율법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고 율법이 오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의 신구약성경의 단절을 주장하는 주장에 대해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출애굽기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수가 늘어나서 하나의 국가 형태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특히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족속 사이에 시내 산에서 언약을 수립하게 되고 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분명한 이 땅에서의 위치를 나타낸다.                                                                            / 총신대 명예교수, 한국 복음과 선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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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7
  • [신학] 강남중앙교회, 월드사역 목회자 세미나
    ◇ 월드사역 목회자세미나 참석자들이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목회자의 사역과 네트워크 지원 강남중앙침례교회(담임=최병락목사)는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경기도 광주시 소망수양관에서 ‘2025 월드(W.O.R.L.D.)사역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목회자들을 지원하는 행사를 가졌다. 2023년부터 시작해 3회째를 맞은 ‘W.O.R.L.D.(월드) 사역은 △Worshiping church(예배하는 교회) △Oikos church(소그룹 목장교회) △Reaching-out church(나누고 돕는 교회) △Life-giving church(생명을 살리는 교회) △Discipling church(제자삼는 교회)의 첫 글자를 딴 의미로, 사역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최병락목사는 “W.O.R.L.D, 월드사역은 해마다 한 가지 사역에 집중해 5년 동안 교회의 모든 사역을 단단하게 세우는 것이며, 5년이 지나면 다시 예배부터 시작해 다섯 가지를 더욱 더 견고하게 하는 시스템이다”며, “월드사역을 통해서 모든 교회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신을 다시 이식시켰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한국교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 네트워킹이 많이 일어나서 서로의 기도 제목과 또 목회의 노하우들을 교환하면서, 힘을 얻고 시너지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이번 목회세미나는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이자 월드사역연구소 소장인 최병락목사가 주강사로 참여하고, 이은상목사(세미한교회)와 김요한목사(전주침례교회) 그리고 이성진목사(효민성결교회) 등도 각각 강의를 진행했다. 첫 강의에 나선 최병락목사는 먼저 척박한 이민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부흥시켰던 미국 세미한교회의 사역경험을 중심으로 한 「사역간증과 월드사역 방법 공유」를 주제로 강의했다.    좋은 교회의 모델로 예루살렘·안디옥·에베소교회 제시 최목사는 “미국에서 사역한 세미한교회는 예배에 목숨 거는 교회, 목장 소그룹으로 부흥하는 교회, 다른 교회를 돕는 교회, 생명을 나누며 선교하고 전도하는 교회, 모든 성도 제자되는 교회를 꿈꾸며 나아가기 시작했다”며, “이 비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15명의 성도로 시작했으며 워낙 성도가 없어서 ‘Worshiping Church’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Oikos Church’의 비전을 시작했고 열두 명이 목자로 지원해 이들을 1년간 훈련시켰다. 교회적으로 3년 동안 ‘Worshiping Church’를 진행했으며 성도들이 예배에서 은혜를 받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그렇게 힘든 과정으로 W.O.R.L.D.의 비전을 가지고 세미한교회에서 17년 동안 사역하면서 성도는 15명에서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이와 같은 비전을 품은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부름을 받아 지난 2019년 3월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제3대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됐다”며, “W.O.R.L.D.의 가치는 한꺼번에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 가지의 가치를 순환하며 5년에 한 바퀴를 도는 사이클이다. 지난 2020년부터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빠졌지만 이는 오히려 사역의 다양성과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간이 됐고, 위기 속에서 W.O.R.L.D. 사역이 더욱 빛을 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의에 나선 이은상목사(세미한교회)는 「4M’s of Church」에 대하여 언급했다. 이 목사는 “교회는 Mission(미션, 사명, 임무)으로 시작하여 Ministry(사역)을 하게 되는데, 이 때 규모가 커지며 Maintenance(관리유지)를 하는 단계를 거쳐 Museum(박물관)이 되면 안된다”며, “Mission(미션, 사명, 임무)에서 Ministry(사역)를 하면서 반드시 Multiply(재생산)을 해야 한다. 이에 교회는 초대교회의 사명을 가지고 재생산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예루살렘 교회, 선교적 교회의 모델인 안디옥 교회, 교회가 교회를 낳는 에베소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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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7
  • 모세오경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 ⑤
      김성욱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첫 이방 선교의 명령 창세기 12장 이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보다 확실한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우시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감을 보여준다. 창12장 1절부터 3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축복하신다. 그가 받은 축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복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의 특성은 아브라함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특별한 권리와 함께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장차 이방 족속들이 구원을 얻게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구약에 나타난 첫 이방선교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1)후손의 축복, (2)명예의 축복, (3)땅을 소유하는 축복, 그리고 (4)만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이다. 곧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내가 네게 복을 주겠으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받은 복이 이방인들에게로 전파될 것을 약속하셨다(갈3:14). 이것은 아브라함이 만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이 될 것을 언급한다. ‘축복의 근원’의 의미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복의 진원지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창39:5-6).   월터 카이저는 아브람과 그의 후손들이 그들의 시작 초기부터 선교사가 될 것이며, 진리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지 피터스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같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백성이 되게 하는 목적을 주시므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대응문화’ 세우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리스도의 구원 언약을 상징 창세기 12장 서두에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교의 소명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아브라함의 선택은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며, 그의 후손들의 행운을 위한 것도 아니며, 그의 원수들의 불행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인간 역사에서 새 장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은 세계 구속을 위한 도구였다.   로저 헤드런드는 아브라함의 선택은 단순한 아브라함 자신의 특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섬김을 위한 것임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권과 함께 책임, 특별히 선교적 책임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전체와 맺은 언약이며, 디 리더도 아브라함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여기 아브라함의 언약에 나타난 의미는 비이스라엘도 또한 여호와의 구속 드라마의 참가자로서 세계무대에 살도록 택하신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아브라함 후손들이 하나님과의 계약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특별한 권리와 함께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다. 존 칼빈은 아브라함 언약을 ‘구원의 언약’으로 해석하면서 구속사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질 든든한 구원의 언약임을 강조하였다.                                                                                / 총신대 명예교수, 한국 복음과 선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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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2
  • [신학]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의, 128차 정기학술대회
    아델포이교회에서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 아델포이교회(담임=임동현목사)는 지난 5일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의 제 128차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국내외 선교학자들 간 활발한 학문적 교류를 이어온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는 ‘기독교 선교와 사회’라는 주제로 이번 행사를 가졌다.      유경하박사가 '헌법상 권리로서 종교의 자유에 관한 선교신학적 고찰’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하베스트대학의 조귀삼박사를 좌장으로 유경하박사(총신대)가 ‘헌법상 권리로서 종교의 자유에 관한 선교신학적 고찰’을 주제로 발제했고, 침신대의 최원진박사를 좌장으로 송 섭박사(총신대)가 ‘AI시대의 효과적인 미디어 선교 방안’을 주제로 발제했다. 행사는 이후 종합토론을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특별히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젊은 나이로 지난달 천국의 부름을 받은 선교신학자 소윤정박사를 추모하는 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해피드리머스의 송은섭박사의 사회와 아델포이교회 임동현목사의 기도, 침신대 안희열박사의 설교로 진행됐다.   고 소윤정박사의 이전 활동모습을 보며 참가자들이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고 소윤정박사는 여러 대학에서 선교학을 지도했으며, <복음과 선교>의 편집장과 편집위원으로 봉사했다. 또한 SIM선교회의 이슬람선교 자문위원이었고,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외 회장을 역임하는 등의 활발하고 유력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신학자였다. 이후 소윤정박사는 최근 4년간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지난 3월 13일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장지는 경기도 성남시 장례문화사업소 무궁화공원에 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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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0
  • [신학] 모세오경에 나타난 선교메시지 - ④
    김성욱교수  하나님의 말씀은 선교의 기초이며, 교회의 사명은 선교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선교신학의 기초이며, 교회의 최대 사명인 선교의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오늘도 우리가 상고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서론과 같은 위치에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우주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언약의 기록인데, 곧,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원초적 복음(창3:15)메시지라 할 수 있다. 혹자는 구약은 율법이요, 신약은 은혜의 복음이라 구분하여 구약을 등한시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은 첫 부분부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증거한다.   화란의 개혁주의 선교학자 바빙크는 성경은 그 전체적인 관심이 전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국의 하나님임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리차드 라이더는 성경에 첫 부분에 언급된 것은 히브리인이 아니라 인간전체에 대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조상을 가진다. 창조 기사는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하는 선교의 기초가 되고 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다른 부분보다 특히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국의 하나님임을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물의 근원이시며, 온 피조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하나님의 우주창조는 구약전체 내용에서 매우 주요한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시99:1; 시100:1; 시98:4; 시97:1;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주의 것이라”(시24:1). 창조기사는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하는 선교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사실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세계에 대한 선교사명을 가진 자 곧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한다.   성경은  전 세계가 온통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강조 바빙크는 창1:1절 이하의 하나님의 창조는 마28:19-20에 나타난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필연적인 기반이며, 또한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적 메시지 속에 적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다. 그는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6-27).   조지 피터스(는 창세기 3장의 인간의 타락사건은 선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하면서 그의 선교신학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후11:3; 요8:44). 오늘날 인간의 모든 문제들도 타락사건의 결과로서 죄와 고통과 사망이 임하기 때문에, 타락한 인생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어떤 구제활동보다 구원이 필요하다. 인간타락의 결과는 인간의 개인적 고통과 사망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주적으로 공해, 경제불의, 착취 등의 사회악과 환경문제에까지 확대하여 나타났다(롬 8:21-23).     우리가 선교에 착심하는 이유도 바로 인간의 실존이 죄에 매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피터스는 죄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오늘날 선교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한다고 주장하면서, 죄의 문제에 대하여 현대교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대할 것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 총신대 명예교수, 한국 복음과 선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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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1
  • [신학] 디트리히 본회퍼-저항의 신학자
      ◇크리티아네 티츠교수    ◇ 김성호교수(번역)   크리티아네 티츠교수(스위스 취리히대)의 <디트리히 본회퍼-저항의 신학자>는 당시 신앙심의 발로 시대의 불의에 대한 저항을 실천한 신학자였고 신앙인이었던 본회퍼목사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신학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순교자로 여기고 있다.   그의 저항 저변에는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깊은 신앙심과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려 했던 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회퍼는 나치에 대한 저항 활동이 본격화하기 이전, 신학 수업의 마지막 단계였던 미국 유니온신학교 유학 시절부터 마태복음 첫머리 부분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가르침들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는가를 깊게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낱낱이 해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헤아려 왔다. 그래서 본회퍼의 불의에 대한 저항은 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고, 그에게 신앙과 신학은 하나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표본이요 모범적인 신앙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 왔다. 본회퍼의 삶은 그의 신학과 분리시킬 수 없다. 이 책은 본회퍼의 비범한 삶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상을 헤아리고, 그의 신학적 주제들이 어떻게 삶의 경험 속에 관철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 디트리히 본회퍼-저항의 신학자는 그것에 대한 평전이다. 저자는 “인간 본회퍼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은 그의 신학에 대한 논쟁을 피할 수 없고, 그의 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전기를 알야만 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또한 한신대학교 총장 강성영목사는 이 책을 추천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시대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고 타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본회퍼를 통해 우리는 오늘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며, “본회퍼의 삶과 신학은 기독교를 현실의 종교로 인식하고, 기독교인의 책임적인 삶은 현실에 적합한 사고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본회퍼의 삶과 신학을 설명했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아네 티츠교수는 본회퍼 연구로 독일 티빙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1999), 2004년도에 교수자격 논문을 썼다. 2008년 여름학기부터 2013년 여름학기까지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2013년 8월부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조직신학과 사회윤리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또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세계 본회퍼학회와 독일 본회퍼 학회 학회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디트리히 본호퍼, 저항의 신학자, 2013년>와 <칼 바르트, 모순된 삶, 2018)> 외에 조직신학 관련 저서가 다수가 있다.   이 책 디트리히 본회퍼-저항의 신학자를 번역한 김성호교수는 서울신학대학교(BA)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MDiv)을 수료한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석사학위(MA), 독일 오스나브뤼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2013년 세계본회퍼학회 선정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사상 연구, 2017>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타자를 위한 교회, 2018>가 있다(동연출판사 펴냄, 150X220 232쪽 값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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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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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의 근원은 ‘경건’
    ▲ 조나단 에드워즈를 주제로 한 2018 교리와 부흥 콘퍼런스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예수비전교회에서 열렸다.   에드워즈의 특징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추구한 부흥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에드워즈가 본 부흥의 본질   ‘2018 교리와 부흥 콘퍼런스’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양일간 예수비전교회(담임=도지원목사)에서 열렸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는 성경의 교리에 충실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예수비전교회가 개최한 것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목회를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강의는 도지원목사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을 주제로 진행했다. 도목사는 “에드워즈가 전통적인 청교도의 설교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성경본문을 간략히 해설하고 교리를 취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했다”며, “그리고 본문에서 추출된 교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증하고 발전시켰으며, 확증된 교리를 삶에 적용함으로 설교를 마쳤다. 이러한 설교형식을 따르면서 에드워즈가 보여준 탁월함은 체계적이고 치밀한 논증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드워즈는 그의 결심문이 잘 보여주듯이 경건훈련에 힘썼다. 비록 초기에 결심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너무 많이 의존하긴 했지만, 그가 무엇보다 경건을 엄격하게 추구한 점은 중요하다”며, “에드워즈의 목양에서 두드린점은 그가 노샘프턴 사람들에게 경건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목회초기 그는 그들의 도덕적 타락, 특히 젊은이들의 방종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일을 했다. 그는 ‘관용의 원칙’에 따라’ 주의 깊고 온화한 태도’로 그 일을 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훌륭한 결과로 나타났다. 에드워즈의 노력은 마침내 부흥을 가져오게 될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도목사는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에서 두드러진 사실은 그가 남다른 근면과 열심으로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추구한 점이다. 그에게 경건과 진리의 지식은 결코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서 드러난 경건의 권위로서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힘있게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목회에는 두 번에 걸친 괄목할 만한 부흥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록 그에게도 성경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서 나타난 한계가 있었고, 도덕적 결점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과 목회사역에서 일관된 자세로 진리와 경건을 추구했다”며,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목회자를 위한 중요한 본보기로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웅교수(총신대학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관」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이교수는 에드워즈의 부흥관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에드워즈가 생각한 부흥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다. 이교수는 “에드워즈는 부흥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전진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개인들은 진정한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고 성령이 나눠주시는 거룩함에 동참하게 되면, 공동체적으로는 영적인 생동감을 풍성하게 누리고 다방면에서 가시적인 개혁이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며, “에드워즈는 부흥을 더욱 더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부흥을 반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편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콘퍼런스에서 조현진교수(한국성서대학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경해석」이란 주제로, 양낙흥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경건생활」을 주제로, 박완철목사(남서울은혜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주제로, 서문강목사(중심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주제로 각각 강의했으며, 도지원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기초한 교회론과 목회철학 △성경의 교리에 충실한 교회의 부흥 △설교 실제를 주제로 세 차례의 특강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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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0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끝)
    ▲ 양신혜교수    칼빈은 자증성을 성경의 내용인 독트리나, 진리 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시켜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진리이며, 신적 위엄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객관적인 신적 권위의 토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칼빈은 그의 히브리서 4장 12절 주석에서 “결국 말씀이 인간들에게 항상 그 힘을 분명하게 드높이지 않았을 때조차 항상 어떤 형태로든 그 자체 안에 내재되어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부사 “어떤 의미에서 또는 어떤 형태에서”로, 칼빈은 성경이 지닌 객관적인 신적 권위를 ‘비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이 문장에서 칼빈은 성경의 객관적 힘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로써 성경의 권위를 수용함에 있어서 자유공간을 허락한다. 그렇지만 이 자유공간에서도 성서의 권위는 의문시되지 않으며, 성서가 지닌 자증성의 힘은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그들의 의지, 믿음과 삶을 판단하고 점검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그(하나님)는 혼의 모든 부분들을 관통하기 위해서 생각들을 점검하고 욕망을 간파하기 위해서 짧게 말해서 심판자로 증거하기 위해서 그의 말씀 안에 이러한 힘을 불어 넣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성경에 내재된 신적 본질을 ‘힘’으로 이해하여, “진리의 힘”, “주제의 위엄” 또는 “말씀의 빛”으로 표현하여 성경이 지니는 객관적 진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내재된 진리의 힘은 독자를 텍스트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텍스트의 진리의 힘이 주체로서 독자를 부르는 역할을 수행하며, 독자는 그 부름에 응답을 할 뿐이다. 이로 인해 텍스트와 독자와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된다. 성경에 내재한 진리의 힘은 성령의 개입으로 독자를 텍스트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시 말해서 읽기의 객관적 대상인 성경 안에 내재된 힘이 성령의 개입으로 독자 앞에서 그 텍스트의 세계를 펼침으로써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칼빈이 하나님의 위엄이라고 표현한 것과 동일하다. 이로써 성경은 읽기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으로 승화되어 텍스트의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지게 된다. 이 세계가 바로 이 성경의 자증성을 “우리에게” 펼쳐지는 진리의 세계로 이해한다.   칼빈은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서 성경을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 즉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비추는 빛으로 표현하여 성경에 내재된 힘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빛은 단지 믿는 자들에게만 효력이 발생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단지 밀폐되어 어둠에 갇혀 있는 책일 뿐이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께 “순종 가운데 모든 인간에게 믿음의 눈이 열리며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성경이 ‘빛’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이 “빛”은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우리가 확신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    이는 성령의 작용으로 깨끗하게 정화된 지식으로, 어떤 이론도 필요치 않은 지식이자 확증이다. 칼빈은 성경의 자증성을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실존적 경험에 근거한 그 지식을 다양한 논증들 가운데 최고의 증거이자 논증으로 다른 어떤 다른 어떤 논증보다 더 안심하게 머물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간주하였다.      요약하면, 칼빈은 성경의 자증성은 성경해석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이는 “신앙의 유비” 와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된다. 이 원칙은 성경의 세계를 우 리에게 열어주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식하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확증하도록 이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칼빈은 인간의 이성이 신앙의 세계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성령을 통한 인간의 순수한 이성에 의한 성경해석의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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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7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3)
    ▲ 양신혜교수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논쟁에서 성경의 신적 권위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와 연결시켜 교회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가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난 후에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는지의 문제로 넘어가는데, 칼빈은 이를 자명한 원리로서 어떤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서술하였다. 이러한 확실한 원리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 그리고 억측에서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한 확신에 근거한다. 이 성령의 내적 확증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인식의 내용은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인간의 사역을 통해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를 칼빈은 성경의 읽는 독자가 “하나님의 위엄”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두 가지 관점에서 서술한다. 첫째,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인간의 실존적 관계를 암시한다. 둘째, 성경의 가르침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성경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신적 권위를 내포한다. 이것을 칼빈은 하나님의 위엄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무엇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하는 지를 설명하는데, 그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어 ‘자증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확실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내적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확고하게 성서를 신뢰한다”는 사실과 “성경은 자증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성경에 대한 신뢰성과 성령의 내적 가르침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문장에서 성령의 역할을 가르치는 자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뒤따라 ‘자증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가 나오는데, 이 부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접속사(et)와 연결된 부사(quidem)이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확실하게 성경에 안주”하게 되는데, 이를 부연해서 설명하면, 바로 “성경은 자증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령의 내적 확증의 결과로 성경에 안주하다는 것과 자증성을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달아 접속사(neque)로 설명하는데, 이는 자증성을 포함한 부분장과 그 뒤에 오는 문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문장을 부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성적 근거들에 의한 논증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자증성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후, 마지막에 나오는 부사(tamen)는 ‘마침내 또는 결국에’라는 의미로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가 뒤따라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의 자증성은 동사 ‘안주하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자증성은 이성적 근거에 의한 논증을 넘어서는 사건이다. 셋째, 내적으로 일어나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이로써 성경이 자증한다는 것은 성령의 내적 가르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그의 선물로써, 강요 I.7.4에서 언급한 내용, 즉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한다는 것과 연결하여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그 자체로서 독자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말을 건넴’의 목적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도록 이끄는 데 있으며 이는 성령의 간섭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의 자증성은 성서의 어떤 객관적인 신적 본질을 형성하는 근거가 아니라 성령의 간섭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 “신적 호흡”으로 이것이 바로 다른 일반 서적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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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23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1)
    ▲ 양신혜 박사 성경의 신적 본질을 담보하는 객관적 증거로서의 자증성(autopistos)은 개혁교회의 교리로서 그 자리매김을 하여왔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에는 성경의 자증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성경의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서 감동과 권유를 받아 성경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게 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천상적이며, 그 가르침에 효력이 있으며, 그 문체가 숭엄하며, 그 모든 부분이 서로 일치하며 그 전체가 광대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사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을 완전히 밝혀 주며, 그 밖에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점들이 많으며, 전체가 비할 나위 없이 완전해서 이 모든 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풍성하게 증명하는 논거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틀림없는 진리와 하나님에게서 온 그 권위가 우리가 완전히 깨달으며 확신하는 것은, 성령이 내면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첫째, 교회의 증언이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교회의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둘째, 성경의 권위를 증거하는 성경 자체의 객관적 논거들을 제시한다. 이것들은 이미 칼빈이 그의 강요 I.8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 증거들을 개혁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나타내는 증거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확증된다는 점이다. 이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리고 말씀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성경의 신적 근거로서의 자증성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내적으로 확증에 도달하게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외에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루터는 성경해석학의 원리로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칼빈은 루터의 해석학적 원리를 그의 문헌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칼빈은 무엇을 성경해석의 원칙으로 삼은 것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칼빈이 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그리스어 자증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단어는 루터의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쯔빙글리나 부처의 글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가 칼빈의 성경해석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리라 사료된다. 왜 칼빈은 루터의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증성’이라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여 성경해석의 문제에 접근한 것일까?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칼빈의 자증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문헌을 분석하여 자증성이라는 의미를 칼빈이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분석을 토대로 칼빈이 자증성을 성경과 연결하여 자증성이란 단어를 강요 최종판에서 성경과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그 경우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칼빈의 자증성의 의미가 해석학의 출발점으로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고 해석학적 원칙으로의 그 활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토대로 칼빈의 자증성이 지닌 해석학적 의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으며, 어떻게 성경해석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서술하면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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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끝)
    ▲ 정일권 박사  지라르가 미메시스 그리고, 폭력과 성스러움에 깊이 천착하게 된 이유는 그가 2차 세계대전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지라르는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지라르는 당시의 경험이 얼마나 자신의 이론과 사상에 그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당시 그는 한 젊은 불가지론자였는데, 한편으로는 파시즘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전염적인 매혹에 사로잡히는데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젊은 기독교인 노동자 그룹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는 이후 자신의 종교적 헌신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라르는 이후 먼저 자신의 연구의 결과로 지적인 회심을 하고, 이후에 좀 더 종교적인 회심을 하게 되는데, 1959년 부활절에 그는 기독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0세부터 36세 때까지 교회와는 관련이 없었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좌파 사상가였던 지라르는 회심했다. 지라르는 서구정신사와 인문학 지평에서 기독교 복음을 변증하는 기독교 문화철학자이자 사상가다. 신화는 집단적 폭력과 그 희생양을 은폐하는 ‘거짓말’이며, 기독교 복음은 그 은폐된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희생당한 자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제 연구결과가 나를 이렇게 인도했기 때문”이라는 실존적 신앙고백을 하면서, 신비로운 회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저의 연구가 저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것이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뒤섞여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위대한 문학작품이 실제로 저로 하여금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지라르는 “기독교가 여전히 가장 생산성 높은 인문학”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지라르는 “어떤 인간도 희생양 메커니즘을 계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복음서는 “신화의 파괴”라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여정을 통해서 결국 유대-기독교적 문서들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현대주의자들의 정통주의가 원했던 것처럼,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에 적대적이었다. 그는 현대에 와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이 점차적으로 현대철학과 모든 “인간 과학들”에게 낯설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신화들 보다 더 낯설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폭력적으로 추방되고 배제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을 정당하게 복권시켜 평가하고자 한다. 르네 지라르는 오랫동안 미국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에서 교회봉사자로 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는 이 대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축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교회로, 미국 서부에서 가장 초기의 그리고 가장 유명한 초교파적 교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2016년 1월 이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에서 많은 학문적 친구들과 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르네 지라르의 추모예배가 이루어졌다.  스탠포드 대학의 부고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평가로 지라르를 추모했다:  “르네 지라르는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사상가들 중 한 명으로서 유행하는 정통주의들과 ‘주의들’을 무시한 도발적인 현자이며 인류 본성, 인류 역사 그리고 인류 운명에 대한 담대하고 광범위한 안목을 제공했다....지라르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쿠체와 노벨 수상자 후보로 거명되었던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구조주의자들, 후기구조주의자들, 해체주의자들 그리고 다른 진영들의 동료들에 의해서 향유된 유행적이고 (그리고 자주 찰나적인) 특징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들은 최신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르네 지라르의 사유는 기독교적이면서도 영성적이다. 모방적 욕망과 경쟁으로 인한 불타는 질투, 증오, 르상티망에 대한 그의 미메시스 이론은 갈등과 폭력의 원인을 가장 현실적으로 쉽게 설명하는 갈등이론으로서 국제적으로 그리고 학제적으로 평화이론과 평화운동에 폭넓게 적용될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내의 영성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르네 지라르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초대 교회의 사막의 기둥성자들의 기둥들이 모방적 경쟁으로 인해 점차 높아져갔다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만큼 기독교 성자라 할찌라도 모방적 욕망과 경쟁적 욕망의 장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지라르는 프랑스 여류 사상가 시몬 베유의 사상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적고 있는데, 시몬 베유는 사회적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지라르의 사유가 한국 목회와 신학 분야에도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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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3)
    ▲ 정일권 박사 지라르에 의하면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라, 신화를 죽이는 텍스트다. 지라르는 마침내 신화의 수수께끼를 ‘해독’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도 자신의 구조주의 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지나치게 신화를 언어구조주의적으로 파악하다보니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알아채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신화는 곧 언어다. 그는 신화를 언어학의 관점에서 해독하려고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강한 영향으로 언어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오이디푸스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를 지라르처럼 은폐된 희생양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라르의 저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의 2부의 제목은 「신화의 수수께끼」이며 3부의 제목은 「십자가의 승리」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기독교는 ‘신화의 계몽’이며,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계몽’이기도 하다. 신화가 집단폭력의 ‘수동적인 반영’이라면, 유대-기독교는 희생양과 모방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을 만들어내는 집단 장치에 대한 ‘적극적인 폭로’다.  지라르는 신화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복음서는 신화적인가?」라는 논문에서 지라르는 “세계의 신화들이 복음서를 해석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복음서가 신화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계시한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이교도 옹호자들은 복음서의 장면과 신화의 장면들의 ‘유사성’을 내세워 ‘기독교의 특이성’을 부정해 왔다.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아도니스와 같은 반신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하는 집단 형벌을 받았다. 이런 폭력은 사회의 무질서가 절정에 달하거나 질서 자체가 아예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데, 그 뒤에는 일종의 ‘부활’인 그 희생양의 당당한 재등장이 이어진다. 이 희생양은 다시 질서를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신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신격체로 격상된다.  창세로부터 은폐되어온 희생양 메커니즘에 관해 “이런 인류학적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꼭 필요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다. 십자가만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림으로써 희생양의 무고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사회학적 초월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참된 초월을 성령론적 차원에서 찾는다. ‘십자가의 해석학’이 ‘신성한 폭력’을 폭로하고 전복시키고 치유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박해의 문서로서 신화는 희생양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 복음서는 이러한 박해의 문서인 신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로서 읽혀지기도 한다. 박해의 문서인 신화와 계몽의 문서인 복음서가 구분 없이 이해되어왔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복음서는 신화의 문자적인 정반대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수난에서는 신화와 정반대의 것이 발생했다. 예수의 ‘처형의 신성화’는 발생하지 못했다.  지라르는 “나의 작업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위한 하나의 노력이며, 이는 정통 신학을 복원시키는 것이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연구들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제시함으로 신학자들을 돕는 것에 헌신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 “종교적 상대주의는 다른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형이상학적 확신이다”고 그 동안 풍미했던 종교다원주의와 문화상대주의적인 담론들을 비판한다. 어거스틴의 사상과 지라르의 분석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이 말해야 하는 것의 3/4이 이미 어거스틴의 사상에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지라르는 자신의 이론의 가장 잘 알려진 핵심들은 이미 성경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은 ‘일종의 주석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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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2)
    ▲ 정일권 박사 지라르에 의하면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라, 신화를 죽이는 텍스트다. 지라르는 마침내 신화의 수수께끼를 ‘해독’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도 자신의 구조주의 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지나치게 신화를 언어구조주의적으로 파악하다보니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알아채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신화는 곧 언어다. 그는 신화를 언어학의 관점에서 해독하려고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강한 영향으로 언어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오이디푸스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를 지라르처럼 은폐된 희생양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라르의 저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의 2부의 제목은 「신화의 수수께끼」이며 3부의 제목은 「십자가의 승리」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기독교는 ‘신화의 계몽’이며,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계몽’이기도 하다. 신화가 집단폭력의 ‘수동적인 반영’이라면, 유대-기독교는 희생양과 모방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을 만들어내는 집단 장치에 대한 ‘적극적인 폭로’다.  지라르는 신화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복음서는 신화적인가?」라는 논문에서 지라르는 “세계의 신화들이 복음서를 해석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복음서가 신화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계시한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이교도 옹호자들은 복음서의 장면과 신화의 장면들의 ‘유사성’을 내세워 ‘기독교의 특이성’을 부정해 왔다.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아도니스와 같은 반신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하는 집단 형벌을 받았다. 이런 폭력은 사회의 무질서가 절정에 달하거나 질서 자체가 아예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데, 그 뒤에는 일종의 ‘부활’인 그 희생양의 당당한 재등장이 이어진다. 이 희생양은 다시 질서를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신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신격체로 격상된다.  창세로부터 은폐되어온 희생양 메커니즘에 관해 “이런 인류학적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꼭 필요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다. 십자가만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림으로써 희생양의 무고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사회학적 초월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참된 초월을 성령론적 차원에서 찾는다. ‘십자가의 해석학’이 ‘신성한 폭력’을 폭로하고 전복시키고 치유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박해의 문서로서 신화는 희생양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 복음서는 이러한 박해의 문서인 신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로서 읽혀지기도 한다. 박해의 문서인 신화와 계몽의 문서인 복음서가 구분 없이 이해되어왔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복음서는 신화의 문자적인 정반대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수난에서는 신화와 정반대의 것이 발생했다. 예수의 ‘처형의 신성화’는 발생하지 못했다.  지라르는 “나의 작업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위한 하나의 노력이며, 이는 정통 신학을 복원시키는 것이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연구들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제시함으로 신학자들을 돕는 것에 헌신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 “종교적 상대주의는 다른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형이상학적 확신이다”고 그 동안 풍미했던 종교다원주의와 문화상대주의적인 담론들을 비판한다. 어거스틴의 사상과 지라르의 분석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이 말해야 하는 것의 3/4이 이미 어거스틴의 사상에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지라르는 자신의 이론의 가장 잘 알려진 핵심들은 이미 성경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은 ‘일종의 주석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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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한국장로교신학회서 '창조와 신앙고백' 주제로 학술발표회
    역사적 회상은 창조를 배경, 창조언약의 연장선서 이해 필요 정통교리로 이어온 ‘무로 부터의 창조’,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 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회가 지난 17일 온누리교회에서 열렸다.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이승구교수)는 지난 17일 온누리교회(담임=이재훈목사)에서 ‘제31일 학술발표회)를 열고, 창조론에 대한 장로교신학적 입장을 고찰하고 올해의 신학자상과 공로패를 전달했다. 이날 발표회는 권오윤박사(ACTS)와 김은수박사(백석대), 이신열박사(고신대), 우병훈박사(고신대)가 각각 발제했으며, 박덕준박사(합신대)와 장호광박사(안양대), 백충현박사(장신대), 박재은박사(총신대)가 각각 논평했다. 권오윤박사는 「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진정한 회복:폰 라드의 ‘역사적 신앙고백’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제했다.  권박사는 폰 라드에 대해 “역사적 신앙고백 안에 창조나 시내산 사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주로 포로기 이후의 본문들에서 발견된다는 가정하에 창조교리는 구속사에 부가된 신앙적인 진술이라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역사적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본문과 본문의 전후 문맥에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신명기 26장은 ‘역사적 신앙고백’이 아니라 ‘역사적 회상’이다. 신명기는 단순히 하나님의 구원을 진술하는 구원사의 요약이 아니라 출애굽과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을 회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이 선취되었음을 확언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속과 성취를 내용으로 하는 역사적 회상은 창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창조언약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가 언약의 신학적 근거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며, “창조는 신앙고백에 의해 형성된 구속사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경이 가장 먼저 선언한 진리다.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해가 신학적으로 구속에 대한 이해보다 우선함을 분명히 한다. 신학의 출발점은 구원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고 강조했다. 권박사는 “구약성경이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신앙고백이라는 폰 라드의 견해는 성경을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며,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지 ‘신앙고백’이 아니다. 성경의 강조점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어떻게 알리셨느냐에 있다. 상실된 창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창조를 구약의 지평으로 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닌, ‘역사적 신앙고백’에 대한 ‘성경적’논의 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은수박사는 「공교회 신조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창조교리와 현대적 도전들에 대한 재조명(I)  : ‘무로부터의 창조’(Ceratio ex Nihilo) 교리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제했다.  김박사는 고대 공교회 신조들과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정통 개혁파 신앙고백서들에 나타난 ‘창조교리’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살피면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에 대한 성경신학적 관점과 교리사적 관점에 주목했다. 김박사는 “성경의 기록자들이 당대 고대근동의 우상숭배적인 이교문화와 세계관과 치열하게 대결하며 ‘참된 성경적인 세계관’을 제시했고, 그와 동일한 이유로 교회역사를 통해 교부신학자들이 당대의 그리스철학이나 영지주의와 대결하며 성경의 참된 가르침으로서 ‘무로부터의 창조’교리를 더욱 엄밀한 신학적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정립한 것을 계속하여 온전히 ‘성경적인 참된 교리’로 수납하여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시대의 잘못된 철학이나 신학사상들 및 곡해된 과학적 우주론 등에 근거하여 도전해 오는 수많은 세계관들과 대결하며, 성경이 가르치고 공교회가 정통교리로 지속적으로 고백해 온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성경적으로 더욱 올바르고 정확하게, 또한 신학적으로 더욱 정교하고 풍성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이신열박사는 「루터의 창조론에 나타난 과학적 사고: <창세기 강해> 1장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제했으며, 우병훈박사는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조론 :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기독교의 응답>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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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0
  •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제프리 토마스 박사 초청 정기세미나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멸시는 분열과 부패로 직결 신앙인들에게는 매일의 삶을 변화시켜야 나갈 의무가 있어 ▲ 제프리 토마스 박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서창원박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위치한 세곡교회(담임=박의서목사)에서 ‘제32기 정기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개혁교회 목회와 가정사역」이란 주제로 제프리 토마스 박사(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명예신학박사・사진)를 초청해 열렸으며, 서창원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와 임경근목사(다우리교회)가 특강을 진행했다.제프리 토마스 박사는 바울서신에 나타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의 관계에 대해 강의했다. 첫 강의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토마스 박사는 “사도바울에 따르면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인해 보이지 않고 실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늘의 주님에게 푹 빠져있는 아내가 될 가능성은 없다”며 “바울은 ‘이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범사에 남편들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즉각적인 우리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이 명령이 무시되면 여성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으며 실지로 다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님에게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할 수 있게하는 능력이 있다”며, “그렇게 될 때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 주님이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주제의 네번째 강연에서 토마스 박사는 부모에 대한 공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마스 박사는 "만일 우리가 교인으로서 이 계명을 준수하여 우리의 부모를 공경한다면 우리는 생존하고, 성장하고, 부흥하게 될 것이다"며, "교회성장이란 결국 한 성도가 거룩하게 살며 순종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이다"고 말했다.이어 "하나님은 부모에게 맡겨주신 의무들을 진지하게 여기는 공동체들을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투덜거림과 다툼과 언쟁과 무례함이 있는 가정에도 있어보았고, 그래서 그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올 때에 기뻐하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존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과 조화로움이 가득한 가정에도 있어보았다"며, "권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겸손과 공경함을 보이는 가정,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는 가정이 더욱 안정감이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전했다. ▲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의 ‘제32기 정기세미나’는 제프리 토마스 박사가 가정사역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토마스 박사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며, “목사의 가르침을 반대하기 위해 목사를 대적하는 움직임이 있는 곳, 그러한 교회는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을 공경하지 않고 멸시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분열과 부패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양육하라」란 주제의 마지막 강의에서 토마스 박사는 ‘아버지 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마스 박사는 “우리자녀들을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양육하라고 명령한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실천할 몇 가지 단순한 방식들의 요구사항들이 있다"며, “실패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보다 나은 아버지가 될 힘을 구해야 한다. 언제나 아버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 됨으로부터 별거되는 시간은 없다. 남아 있는 세월동안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변할 수 있으며, 매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토마스 박사는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쓴 서신에서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가독들의 맛을 낼 수 있다"며, "여러분의 아버지됨은 하나님의 아버지됨을 반사하는 것이다. 작은 일들과 불완전한 방식으로도 본이 된다면, 여러분이 가진 제한적인 능력과 허물들을 가지고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준다면,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로 부름을 받은 자로서 참되게 가족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순종하고 아버지 됨의 모든 기쁨과 책임감을 다 수용한 다른 경건한 아버지의 반열에 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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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8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1)
    ▲ 정일권 박사 2015년 겨울에 타계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기독교의 헤겔”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의 로버트 베론 주교는 마녀사냥의 텍스트로서의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십자가의 승리를 인문학적으로 논증한 지라르가 20세기와 21세기 세계교회에 공헌한 바가 너무 크기에 지라르를 21세기의 교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은 예수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같은 신화라고 주장하기 위해 켈수스를 인용하는데, 켈수스는 예수도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켈수스 이후로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과 교회를 공격하는 주장을 지라르가 신화의 수수께끼를 해독함으로 결정적으로 반박하게 된 것이다. 이후 상술하겠지만, 지라르 자신도 켈수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왜 예수가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이시스와 같은 신화가 아님을 논증했다. 지라르는 니체,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프로이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학자다.  2010년 경에 이루어진  저명한 기포드 강좌에서 어느 학자는 지라르의 이론이 니체 철학을 한 번 더 전복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라르의 이론은 그의 죽음 이후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신들은 잔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다.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라고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는 당대의 최고의 기독교 변증학자 지라르를 소개한다. 이 신문에 의하면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한게 된 이유는 그의 비교신화학을 통해서 소위 이교적 신들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을 명확하게 구분했기 때문이다. 신들이 잔인하고 악마적인 폭력적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그들이 인간 제사공동체에 의해서 희생양으로 몰려서 집단적이고 폭력적으로 살해 된 이후에 신성화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성스러움이 그러한 야누스적이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신들을 제작해 낸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이후로 2000년 동안 새로운 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디오니소스라는 새로운 미래의 신의 도래를 갈망한 니체와 하이데거는 다시금 신들의 도래를 철학적으로 노래했다. 하이데거도 기독교적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 구약학자 로핑크는 20세기 신학자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 인문학자 지라르가 복음서를 다시 서구 정신사의 중심에 세웠다고 했다.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은 그의 주저 <폭력과 성스러움>을  당시 <르 몽드>지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72년은 인문학의 연보에 하얀 십자가가 그어져야 한다.” <르 몽드>지는 또한 이 책을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지라르의 야심찬 기획은 ‘인문학의 기독교화’를 위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2006년 독일 튀빙엔 개신교 신학부는 지라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작업에 영예로운 상을 수여했다. 이 시상식에서의 지라르 강의는 「복음서는 신화의 죽음이다」는 제목으로 소개 되었고, <학문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튀빙엔에서 신학 부분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독일어판에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후기를 쓴 학자는 위르겐 하버마스 이후 독일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다. 지라르의 기독교 변증론은 독일 철학계에서도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책에서 지라르는 후기기독교 시대 혹은 신이교시대의 일부 신학자들의 종교다원주의적 자기세속화의 유행을 거스리면서 다시금 십자가의 승리를 인류학적으로 증명하고 선언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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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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