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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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실대 캠퍼스선교의 새방향을 제시
    숭실대학교는 소그룹채플을 통해 캠퍼스선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사진은 채플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   멘토와 학생이 신앙과 삶에 대한 이야기 나누며 관계형성 채플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학생의 인식변화 사례도 증가  숭실대학교는 소그룹채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채플로 캠퍼스선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채플은 기존의 대그룹채플과 달리 강의시청 후 소그룹별로 나눔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숭실대학교는 소그룹의 멘토는 지역의 교회 목회자와 성도, 캠퍼스선교단체 간사 등이 맡고 있다. 특히 올해는 CBMC 소속 22명의 멘토들과 인근지역 청년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소그룹에서 학생들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기 이후에 관계를 가지는 것도 권장하고 있다. 숭실대학교는 지난 2021년부터 소그룹채플을 진행하고 있다. 만족도 또한 90%가 넘을 정도로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채플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한 학생들도 증가하고 있다.     채플의 방식은 아이스브레이킹 시간과 10분 내외의 강의시청 후 소그룹원들과 함께 영상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 채플 이후에는 신앙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가진다. 현재 소그룹채플은 1학년을 대상으로 1학기 8번의 70분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200여명의 멘토들이 소그룹채플을 섬기고 있다.    숭실대학교는 올해부터 소그룹채플을 더 세밀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글로벌선교센터를 창립했다. 이곳에는 센터장을 맡은 김유준교수를 비롯해 4명의 학원선교사와 한 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그룹채플뿐 아니라 유학생을 위한 사역도 계획 중에 있다. 글로벌선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유준교수는 “코로나로 인해서 3년 동안 신입생들이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런 시기에 소그룹채플이라는 방식으로 학교로 목회자와 평신도리더들이 오는 것은 대학선교 역사에 중요한 일이다.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캠퍼스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이 사역이 중요하다”면서, “여러 기독교대학이 소그룹채플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들을 위해서 9월말에는 소그룹채플 컨퍼런스를 하려고 한다.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미션스쿨들에도 소그룹채플로 변화를 준다면 캠퍼스와 연계해서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숭실대 1학년 학생이 3천여 명이 된다. 이 학생들이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채플시간이 끝나면 멘토들이 학생들과 차도 마시고 식사를 가지는 시간도 가지면서 학생과의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다”면서, “고기도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우리교회 한 번 놀러와 봐’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소그룹채플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이러한 멘토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분들은 자원봉사로 오신다. 시간과 물질을 학생들에게 쏟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해서 청년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된다. 무너져가는 대학청년부에 새로운 물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원선교사로 활동하는 배요한전도사는 “나는 학부를 신학교를 나오고, 신대원도 들어가면서 내 주변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비신자들과 대화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서 기독교신앙을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 채플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가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다른 멘토들을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생들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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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4-03-26
  • 정신회복 등 산림치유로 복음전파, 바이블아카데미 원장 신길자교수
    신길자교수는 서로사랑하는 성도들을 양성하는데 힘쓰고 있다(사진은 러사아권역 여성 사역자들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비신자들을 교회로 초청하는 매개체로 산림치유 활용  서로 사랑으로 이웃사랑 실천하는 지도자양성에 중점     바이블아카데미 원장이자 미국 오이코스대학 교수인 신길자교수(사진)는 서로사랑을 실현하는 사역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특히 양성한 산림치유 지도사들로 복음전파의 길을 열고있다.  미국 오이코스대학(총장=김종인목사)은 신교수의 주도로 산림치유 경영학과를 만들었다. 산림치유는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서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이다. 이 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하면 1급 산림치유지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산림치유 지도사는 산림을 활용해 대상별 맞춤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전문가로 국가자격 전문가이다.    이러한 산림치유는 기독교계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각광받고 있으며, 여러 대학이 이러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치유지도사가 되면, 치유의 숲이나 자연휴양림 등을 운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산림치유가 중요한 것은 교회나 기관 등에서 복음전파에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도구이며, 비신자들을 교회로 초청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온라인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어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지원해 저렴한 비용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신교수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학위를 취득하는 일도 생기면 좋겠다. 특히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청년들이 이러한 사역을 알아 도움이 됐으면 한다”면서, “목회자들도 이 과정을 이수해서 산림치유지도자가 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특정한 일을 선택할 때 그것은 개인의 적성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산림치유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면서, “특히 자연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이러한 것도 자연 속에서 할 때 더 큰 효과를 낼 수가 있다. 많은 학교에서 이러한 과정을 개설하면 좋겠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접목해서 청년수양회 등에서도 자연을 누릴 시간이 있으면 한다”면서, “대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고 이러한 것을 통해서 전도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바이블아카데미는 △목회자 재교육 △출판을 통한 문서선교 △평신도교육을 통한 제자화 △서로사랑으로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한 요구 제시에 힘쓰고 있다. 이곳을 통해서도 산림치유에 대해서 소개할 계획이다.     신교수가 바이블아카데미 소속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서로사랑이다. 특히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말로만 말하는 신앙이 아닌 행함으로 나갈 수 있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미디어선교회와 함께 성경교육을 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러시아권역의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여성사역자들을 위한 교육도 진행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숙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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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
    2024-03-26
  • [신학] 선거와 한국기독교 3
    배덕만 교수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대한 날카롭고 예언자적인 태도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이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선거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면서, 각 선거에서 개신교가 참여ㆍ대응했던 방식도 함께 검토했다. 이제. 이런 역사와 제언을 토대로 곧 총선을 앞둔 개신교인들을 향해 몆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번 선거을 통해, 개신교는 특정 이념 및 정당과 자신을 배타적으로 동일시 해왔던 오랜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분단과 냉전을 배경으로 남한에서 재구성된 개신교는 ‘반공, 친미, 친자본’의 전위대로 맹활약을 해왔다. 덕택에, 특정 권력층이 부여한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특권적 지위를 획득ㆍ유지하기 위해, 개신교는 복음을 타협하고 예언자적 책임도 회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따라서 특혜와 특권을 부여했던 특정 정권 및 이념과의 밀월관계도 청산하고 철저하게 “백의종군”해야 한다. 그래야 "빛과 소금"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착오적 극우세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둘째, 당분간 광장에서 함성을 멈추고, 골방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분명히, 개신교가 한국의 문화를 선도하고, 정치와 경제를 이끌었던 때가 있었다. 수와 양은 여전히 소박했지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은 비범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개신교는 몸집이 급속도로 거대해지고 힘도 막강해졌다. 장로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법안을 폐기시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전성기가 막을 내리자, 광장에 모여 폭언과 망언의 말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장에 빈번히 다수가 모여 막말을 쏟아낼수록, 사회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혐오감은 급상승했다. 동시에, 개신교 내부의 모순과 오류가 만인의 상식이 되면서 어느 새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분명히, 개신교가 담대히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광야와 골방으로 물러날 때가 아닐까? 분명히 세상이 듣도록 함성을 외쳐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침묵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셋째, 이익집단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ㆍ공적 종교로 성숙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에서 개신교가 보여준 모습은 과거에 향유하던 특권을 유지 혹은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 집단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선거의 존재 이유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그 순간 개신교는 자신이 또 하나의 이익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기적 욕망으로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세상에서 보편적 가치와 공적 진리를 전파하여 상생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고등종교의 본질이고 사명이다.    그런 숭고한 책임과 역할을 포기하는 종교는 단지 미신과 사이비일 뿐이다. 따라서 개신교가 이기적 욕망에 집착하여, 보편적ㆍ공적 가치를 외면할수록 한국사회에서의 입지는 빠르게 축소될 것이다. 반면, 타자를 존중하고 공동체적 이상에 충실할수록,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용기 있게 내려놓을수록, 한국사회는 개신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이번 선거가 개신교에게 성숙과 변화의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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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4-03-22
  • [신학] 위기의 한국교회와 하나님나라의 문화공동체
      김선일 교수                                                   오직 교회만이 자신들 밖의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의 문화와 구원의 문화가 교회 내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의 세계관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면, 두 문화의 확립을 토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핵심 실천인 선교와 전도의 문화가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선교’의 원래 뜻은 세상으로 보냄 받음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도는 개인의 회심을 목표로 한다. 선교는 세상에서 복음을 구현하는 삶이라면, 전도는 그 복음에 기초한 개인을 위한 구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선교학자 데이나 로버트(보스턴대)가 비유한 것처럼, 선교와 전도는 몸과 심장의 관계와 같다. 선교가 총체적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몸에 비유할 수 있다면, 전도는 생명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심장과 같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선교 사역에는 교육, 의료, 환경운동, 정의구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선교적 실천들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것은 바로 복음전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의지하는 인간으로 거듭남이 없이 선교는 지속적인 추동력을 지닐 수 없다. 이는 전도와 선교의 유기체적 이해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니는 추동력을 강력하게 견지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선교적 방향성을 겸비하게 해준다.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나 레슬리 뉴비긴 등에 의해서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에서 유래하며, 하나님이 세상과 이웃에서 역사하시는 일에 대한 민감한 관심과 참여라는 인식을 기초로 최근 선교적 교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이 ‘하나님의 선교’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운동에서 기본 착상을 빌려온 것은 맞지만, 복음주의 권의 선교적 교회론은 하나님-세상-교회라는 구도에서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구도를 확대 갱신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은 하시는가?’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던진다. 선교적 교회론이 공동체를 중요하게 다루며, 하나님의 선교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선교적 문화, 즉 선교적인 공동의 생활 양식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개인에게는 선교적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게 할 것이다.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다”라는 심오한 선언을 남겼다. 나치에 항거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또한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 교회가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선교는 교회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리듬이 지역과 이웃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선교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위한 몇 가지 선한 실천들을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타인을 향한 관심과 환대의 리듬이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 건물과 집회 지향의 삶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웃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이 아닌, 소그룹과 공동체가 함께 헌신하고 상상하며 참여하는 생활의 양식이어야 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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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12일, 한국세계선교협서 자신학화 심포지엄
               한국세계선교협의회(사무총장=강대흥선교사·사진)는 다음달 12일 광림교회에서 자신학화 심포지엄을 「세계기독교 시대의 한국선교신학의 모색」이란 주제로 진행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선교계가 일관되게 공유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신학 정립을 위해 진행한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박기호교수(퓰러신학대)의 「조동진박사 선교신학의 재발견-제3세계 선교신학을 중심으로」, 안교성교수(장신대)의 「현지인중심의 동반자 선교신학과 세계기독교」, 안건상교수(총신대)의 「제3세계교회의 선교신학」이란 제목으로 발제가 진행된다.    이 단체 관계자는 “한국선교는 서구교회의 약화와 세계기독교 형성의 상황 속에서 제8차 NCOWE를 통해 한국선교의 방향전환과 제3세계교회와의 선교협력 강화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선교계 내에서 일관되게 공유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신학’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있다”면서, “이에 50년 전부터 한국선교를 포함한 비서구권 선교의 미래를 예측한 ‘조동진 박사의 선교신학’, 서구선교의 맥락을 이어온 ‘동반자 선교신학’, ‘제3세계 교회의 선교신학’ 연구를 통해 한국선교의 선교신학적 고찰을 위해 다음과 같이 자신학화 심포지움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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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4-03-21
  • 교회여성사연구팀, ‘전도부인’ 세미나
    ◇교회여성사연구팀은 「선교140주년에 돌아보는 한국선교와 전도부인」이란 세미나가 진행했다.     복음전파위한 사역에 삶 바친 두 전도부인의 사명을 조명 타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한 모습 공유    교회여성사연구팀이 주최하고, 에큐메니컬 선교연구회가 주관한 세미나가 연동교회(담임=김주용목사)에서 지난 7일 「선교 140주년에 돌아보는 한국선교와 전도부인」이란 주제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복음전파사역에 힘쓴 두 전도부인의 삶을 살피고, 그 의미를 모색했다.    「캐나다장로교회 선교와 전도부인」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서선영박사는 시베리아 최초의 전도부인인 오한나를 소개했다. 서박사는 “오한나는 1907년 한반도를 휩쓸었던 대각성의 시기에 성령의 역사를 충만하게 체험하게 되고 단순한 부인권서에서 전도부인으로 성장했다”면서, “ 그러던 중 1910년에는 블라디보스크토크에 있는 조선인교회에서 복음을 전해달라는 최관흘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함흥을 비롯한 함경도지역의 교회여성들의 지원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거기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 동안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소학회를 세워 남녀 학생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조직화하는데 힘써 수행했다”면서, “함경도로 돌아온 이후로는 전도부인의 일과 마르다 윌슨기념 여자성경학원의 기숙사 사감직을 병행하며, 계속해서 루이즈 맥컬리와 짝을 이뤄 일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장로교회 선교부는 간도와 시베리아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실상을 파악한 뒤 그곳으로 선교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1910년에 유능한 전도부인 오한나를 과감하게 파송해 시배리아 조선인교회를 도왔다”면서, “비록 오한나가 총회의 결의를 거쳐 파송되지 않았으나 1926년 총회의 결의로 파송된 한가자보다 16년 앞선 1910년에 시베리아로 갔던 그에게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선교사라는 타이틀을 붙여 본다”고 말했다.   「정동에서 연못골로 온 선교부: 미북장로교회 선교와 전도부인」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여교역자회 사무총장 김은정목사는 “신마리아는 1873년 태어나 신여성의 시대가 본격화된 1921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마리아는 정신여학교의 기초를 다지고 초기역사를 만들어간 교사였다”면서, “그리고 신마리아는 선교사의 고용인에서 전도부인과 교사로 나중에는 기독교여성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신마리아는 1910년을 전후해서 평양여자 성경학교를 수학했다. 성경학교 졸업생들은 전도부인으로 사경회를 인도하거나 중등 수준의 여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성경공부는 개인의 삶을 위로할 뿐 아니라 배움의 동기를 자극했고 삶의 고통을 배움과 성장의 동력으로 바꾸어 기독교 사역을 비롯한 사회활동으로 이끌었다”면서, “그리고 성경학교 참여는 여성의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지역의 기독교 여성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여성의 활동공간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신마리아는 옛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기독교적 신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신마리아는 개종 초기부터 남다른 행동과 실천이 기독교 신앙에서 나오는 것임을 분명히 말했다. 선교사들이 신마리아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가족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변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삶의 태도에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마리아는 헤론 부인의 성경반에서 신앙을 고백한 후 30여 년에 걸쳐서 기독교 안에서 개인적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배움을 추구했다”면서, “여선교사들은 신마리아가 교회와 학교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나가면서 맡은 업무에 맞게 역량을 키워나가도록 도왔다. 이렇게 해서 신마리아는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좀 더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의 불행을 돌파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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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4-03-10

실시간 신학/선교/해외 기사

  • [선교사 통신] “선교관은 선교사들의 가장 큰 복지”
        캄보디아 프놈펜 현지에서 7년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교육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학생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국어를 가르쳐 통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깜뽕스프, 깜뽕짬 등에서 사역을 활발히 하고 있다. 침례교 목회자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파송교회 없이 시작하다보니 아주 적은금액으로 사역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선교사들의 생활에 비해서도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쉰이 넘어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왔는데 유교집안의 장손이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길이었다. 지금은 대학의 한국어학과 대학생 5명, 다른 비즈니스 4명, 일본어학과 4명, 고등학생 6명, 중학생도 3명 등이 함께 교육받고 있다. 여러 사역중에 교육사역을 선택한 것은 어려서 산골에서 살았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진짜 사역의 큰 목표가 된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에 선교를 많이 하는데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관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대형교회들이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관을 운영하여 주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나같이 한국에 파송교회도 후원교회도 없어서 갈 곳이 없는 선교사를 위하여 잠시 머물 장소가 마련된다면 선교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지난 7년간의 선교사역 동안 한 번의 안식도 없었다. 한국도 2년 만에 들어왔다. 몸은 스트레스로 혈압은 180-200까지 올라갔고 심장은 협심증 증세를 보였다. 캄보디아에서 의사들이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가라고 하여서 왔지만, 시설격리 2주와 병원 치료 후에는 갈 곳이 없었다. 병원 치료 후 갈 곳이 없는 나에게 세계선교연대(대표=최요한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선교관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선교연대측은 나를 위하여 약700여만원의 경비를 추가로 부담하면서 선교관에서 살수 있도록 배려해주어 지금도 거주하고 있다. 병든 몸으로 갈 곳이 없는 선교사의 아픈 마음은 눈물이 먼저이다. 선교관은 선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이다. 한국교회가 진짜 선교사들의 필요와 도움이 절실한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박기석 캄보디아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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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하늘샘선교회 박영애선교사
        대마도 히타카츠 지역에서 2년간 사역한 박영애선교사(하늘샘선교회·사진)는 최근 세계선교연대(대표=최요한목사)를 통해 일본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1월부터 사역을 중단하게 된 박선교사는 대마도선교에 대해 “히타카츠 지역은 한번도 교회가 세워진 역사가 없을 정도로 기독교가 약하다”며, “일본 전체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현실에서 혼자 아날로그식으로 독서회와 식당 등 현지인들과 1:1로 함께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일본인의 일반적인 종교의식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기독교가 1%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기독교는 전도를 하지 않았던 결과로써 1%가 아니라 기독교의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반한 개인으로서의 신앙이 일본의 일반적인 종교문화와는 융화력, 친화성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박선교사는 “일본 본토뿐 아니라 대마도의 물가가 참 비싸다. 한국에서 물건을 가지고 가는 길도 막힌 상황에서 일본선교에 대한 사명을 한국의 모든 교회가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며, “온전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고 나를 위하여 새 생명을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일본에 알리는 일에 앞으로도 헌신하겠다”고 전했다.
    • 신학/선교/해외
    • 선교
    2020-09-16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한국교회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 긴밀히 교류하고 선교와 복음화의 영향력 넓혀야한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전)AEA신학위원장/ (전)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숭실대 명예교수   머리말   보수 복음주의 신학자 연대(김명혁, 김상복 강승삼, 박용규, 성남용, 이승구, 이은선, 박명수 교수)가 2020년 9월 11일 성명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예장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제105회 총회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 World Evangelical Alliance)와의 교류단절을 재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이 이슈의 교회사적 신학적 중요성을 감안해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발표하고자 한다.   필자는 유럽에서는 1971년부터 독일 하이델베르그대, 마르부르크대, 보쿰대에서 7년간, 영국에서는 1989년 캠브리지 신학부에서 1년간, 1990년 미국에서는 예일대 신학부, 프린스턴대에서 2년 등 총 10여 년 간 신학을 연구하고 그곳 신학 및 교회 지도자들을 만난 국제적 경험, 2002년-2019년까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 2008년-2016년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의 신학위원장으로 봉사한 선교와 복음화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WEA 연대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교단 총회를 앞두고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 이슈 논란으로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세계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데 힘써 주기를 예장 합동측과 한국교회 각 교단 총회에 호소하고자 한다.   I. 한국교회는 기독교이후 시대에 지구촌 복음주의 연대의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WEA는 신앙적으로 매우 건전한 세계적인 복음주의 연합체의 모임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전 세계 기독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기독교회협의회(ICCC), 세계복음주의연맹(WEA)로 재편되어 진행되었다. 오늘날 세계 복음주의 계열의 연합으로는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 미국복음주의협회 (NAE), 미국복음주의신학회(ETS),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등이 긴밀하게 유대관계를 맺으며 세계복음주의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들 기구들은 성경의 완전무오성(Biblical Inerrancy)을 비롯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분명하게 표방하는 국제기구들이다. WCC는 신학적으로 많은 변천을 맞으며 기구 공학적 연합방식과 자유주의 신학, 특히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수용 논란으로 인하여 영향력을 상실했고, ICCC는 부정적 사고(negative mentality)와 극단적 분리주의(radical separatism)로 흘러 이제는 유명무실한 국제기구로 전락했다. 이에 반해 WEA는 전 세계 6억의 복음주의 개신교 인구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계승하고 세계선교운동에도 큰 역할을 감당해왔다. 오늘날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130여년 만에 세계적 교회로 성장한 생동적이고 역동적 교회가 되게 하셨다. 한국교회는 지구촌 시대에서 세계기독교의 수호자로서 세계교회 안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를 위해서 합동교단의 WEA와의 교류단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II. WEA는 1846년 영국에서 10개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창설된 복음주의단체다.   WEA는 WCC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서 1846년 영국에서 설립되었다. 당시는 시대적 상황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한참 번창하는 시대요, 성경적으로는 독일로부터 밀려온 역사적 비판학(고등비평), 과학적으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으로 진화론이 시작하던 시기요, 정치적으로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적 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67)으로 공산주의가 일어나, 19세기 중엽 세계가 혼란하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영적으로 어두운 사상들이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던 시대에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성경적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고자 1846년 창립되었다. 진화론, 자유주의 신학, 공산주의 발흥에 맞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변호했다. 1900년대 중엽 까지는 이 기구는 일차적으로 창립멤버 기구인 영국복음주의 연맹(British Evangelical Alliance)이었다. 이 기구는 유럽과 북미에서 불규칙적인 지원을 받다가 1951년 21개국이 모여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라는 새 명칭을 갖게되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오늘날 WEA는 130여개 나라 교회들의 연맹이요 100개 넘는 국제 기구과 협력하는 세계적 복음주의 연합기구가 되었다. (자료: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ritannica, World Evangelical Alliance, religious organization. https://www.britannica.com/topic/World-Evangelical-Alliance).   1950년대부터 일어난 빌리 그래함의 복음화 운동은 복음주의 운동을 더욱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운동으로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20세기 후반에 형성된 또 하나의 괄목할만한 복음주의 운동은 1974년 로잔에서 시작된 「로잔 세계복음화운동」이다. 이러한 복음주의 운동이 모두 WEA와의 연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WEA의 신앙고백서는 예장 통합, 합동, 고신 교단의 신앙고백과 다른 것이 없다. 성령으로 감동된 성경의 완전 유기적 영감(plenary organic inspiration)과 완전무오설(plenary inerrancy),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대속의 죽음, 육체적 부활과 육체적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 구원과 성령의 거듭남, 성령의 역사, 구원 받은 자의 생명의 부활과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의 부활 등 예장 통합, 합동, 고신 교단의 신앙고백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III. WEA는 오늘날 신학적 이슈인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필자는 2013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 Asian Evangelical Alliance)에 AEA회장 김상복 목사(횃불 트리니티 명예총장)와 함께 한국복음주의 신학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필자는 AEA 신학위원장으로서 2013년 신학선언(AEA 2013 Theologcial Declaration)를 기초하였다. 2013년 AEA 신학선언은 ‘오늘날 세상과의 대화’ 항목에서 다음같이 선언하였다: ”교회는 타종교와 현대적 세계관과 대화함에 있어서 사도적 전통이 결정적인 것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라는 신앙이다. 따라서 본 선언은 타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그러면서도 타종교에 대한 포용의 자세를 견지한다. 교회는 다른 전통을 존중하면서 대화할 때 기독교 비전의 정합성과 매력성을 겸허히 설명해야 한다. 교회는 종교다원주의를 경계하면서 공동선을 위하여 다른 종교와 세속단체와 공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김영한, “1973 로잔의 개념, 현 시대 속에서 보다 구체적 천명,”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입력 : 2013.09.17. 21:21, 크리스천투데이). WEA가 WCC와 상당한 공동분모를 가지면서도 차별성이 있는 것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데 반하여 WEA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제시하면서 명료하게 결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WEA는 공동선을 위하여는 타종교와 협력을 한다는 점이다.   IV. 역사적 개혁교회는 분리주의 노선에서 탈피하고 세계적 복음주의 교회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역사적 기독교는 하나의 보편적 사도적 거룩한 교회(One Universal, Apostolic Holy Church)로서,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교제하고 신앙적인 교류 속에서 성장 발전해 왔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 등이 복음주의 연대 속에서 교류했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는 항상 분리되거나 도피하지 않고 이웃과 형제 사랑 속에서 세계선교와 복음화를 위하여 협력해왔다.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기독교학술원, 한국 로잔위원회,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한국개혁신학회 등은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연대 속에서 세계복음주의 운동에 함께 협력하고 있다. 로잔대회를 비롯한 선교운동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선교운동에도 WEA(세계복음주의연맹)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번 제 105회 총회에서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 단절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통에서 그동안 좋은 모범을 보여온 예장 합동교단이 만일 WEA와 단절하고 교류를 중지하게 된다면 예장합동은 해외 선교 활동에 있어서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합동 총회와 교단은 한국교회의 보수 복음주의를 대표하여 국제적으로 보수 복음주의 기관과 연대를 강화하고 해외 선교를 선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내적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는 보수 복음주의 교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대한민국을 복음화해서 남북통일과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IV. 예장 합동 총회의 결정은 한국교회 선교단체와 신학자들의 세계교회 복음주의단체와 연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WEA는 약 6억 명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연합체이다. 현재 7개 대륙 복음주의연맹들이 있고 129개 교단과 국가별 연맹들, 대학생선교회(CCC), 국제기독학생회(IVF), 월드 비전(World Vision), 컴패션(Compassion) 등과 같은 150개의 선교단체들이 회원 기관으로 가입해 있다. 성경이 오류가 있다는 유오설(有誤說)에 맞서 성경의 완전영감과 완전무오사상을 천명한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의 시카고 성명서(The Chicago Statement)을 작성해 낸 신학자들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미국복음주의협의회(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미국복음주의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같은 복음주의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장합동총회가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단절을 결의하거나 재론한다면 이것은 한국교회 내의 보수 복음주의 진영을 혼란스럽게 할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수호하고 성경적 가치를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한국교회와 세계복음주의 선교단체와 신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큰 흐름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V. 예장 합동총회는 세계복음주의 연맹 등 세계복음주의교회와 신학적 연대를 강화할 때다.   예장 합동은 한국교회 안에 보수 복음주의 연대를 해오며 한국교회의 보수 복음주의의 성장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한국교회를 성경적 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지도록 하는 일에 선구적 역할을 감당했다. 지금은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이 도전과 세속화의 거센 물결 앞에 선 한국교회는 보수 복음주의 세력이 함께 연합하여 힘을 모아 맞서야 할 때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예장 합동이 제105회 총회(2020년 9월)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와 교류 단절을 결정하거나 재론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4년 동안의 많은 논의와 연구를 거쳐 2019년 104회 총회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는 합동교단의 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교류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총회 신학부의 보고를 받기로 총대들이 신중하게 결정한 사항을 1년도 지나지 않아 재론하는 것은 결코 예장 합동 총회는 물론 한국교회 전체의 복음주의 연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보수 복음주의 신학자 연대, ‘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2020년 9월 11일, 김철영 기자 기사입력: 2020/09/12 [05:59] 최종편집: ⓒ newspower). 만일 재론하여 탈퇴하고 교류를 끊는다면 이는 보편적 거룩한 사도저 교회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몸에서 자신을 잘라내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라는 기대한 역사적 문명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역사적 기독교의 사명을 망각하는 것이다.   맺음말   2005년 예장합동이 개혁측과 연합하고 이번 총회에서 구 개혁 측 출신 첫 총회장이 될 소강석 목사는 그동안 한국교회 연합에 있어서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번 제 105회 총회에서 아름다운 리더십을 통해 이번 예장합동이 고립주의나 분리주의가 아닌 보수 복음주의 연대를 통해 오늘날 지구촌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한다. 분리주의 길은 역사적 기독교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4세기에 로마 박해시 배교자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공교회를 떠난 도나티스트들(Donatists)의 분리주의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다. 역사적 개혁교회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기독교 교단들과 교류를 하는 것이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인 보편적 거룩한 사도적 교회에 소속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장 합동이 WEA(세계복음주의연맹)과 교류를 끊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계복음주의운동에 헌신하고 공헌하는 영향력 있는 국제적 교단으로 도약하고, 참으로 훌륭한 세계적인 신학 및 목회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교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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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6
      기독교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적 무신론 비판하기(1)   기독교 창조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① 우리 우주(하늘과 땅)를 창조하셨고, ②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고, ③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세 가지 믿음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것은 창세기 1장에서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 창조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확산은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과학적 무신론과 생존을 건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논쟁의 성패는 자기의 주장을 사실적으로 잘 논증하고, 상대의 주장에서 허위 사실을 어떻게 잘 비판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의 세 가지 믿음을 토대로 하는 기독교 창조론의 관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해보기로 한다.   ① 현대물리학과 양자이론이 우리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그것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빅뱅우주론이다. 빅뱅우주론은 우리우주의 물질과 물리법칙이 빅뱅의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빅뱅우주론을 제대로 알면 우리 우주의 창조와 관련한 논쟁의 핵심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는 빅뱅우주론을 하나님이 우주 창조론의 방법으로 사용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이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빅뱅우주론에서 ‘특이점’ 이론이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한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한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물질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과학의 토대이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 에너지 총량이 영원불변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빅뱅우주론에서 ‘특이점’ 이론은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우주의 물질이 아주 작은 점 하나의 크기로 응축된 ‘특이점’ 상태로 있었으며, 그것이 빅뱅의 재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의 ‘특이점’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한 것이다.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E=mc² 상태로 보존된다. 그렇다면 빅뱅은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한 에너지 총량의 일부가 우리우주의 물질을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E=mc² 상태로 보존된다.   기독교는 우리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빅뱅우주론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라도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하는 특이점’ 이론은 배척해야 한다. ‘특이점’이론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빅뱅의 원인자이신 창조주의 존재를 가리려는 허위 이론이기 때문이다. 사실 빅뱅 이전에 에너지가 인력에 의하여 ‘특이점’으로 응축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 인력은 빅뱅이 만들어낸 물질에서 발현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전화(轉化)를 작동하는 원인이 없다면, 영원히 보존될 뿐이다. 빅뱅우주론에서 빅뱅을 작동한 원인자(原因者)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기독교가 우리우주를 만들어낸 빅뱅과 빅뱅 이후 만유인력 등의 물리 법칙들이 작동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면, 과학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그 원인을 하나님의 창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과학이 그 원인자이신 ‘하나님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거나 ‘간격의 하나님이냐?’라고 반문한다면, 기독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출3:14)라고 대답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신 하나님은 빅뱅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고, 바로 빅뱅의 원인자이시다. 빅뱅이 과학적 사실이고, 그 원인자의 존재가 필연적 조건이라면, 그 원인자로 인정할 수 있는 존재는 기독교가 우리우주의 창조주로 설명하는 하나님밖에 없다.   과학주의 시대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열역학 제1법칙이나 빅뱅우주론 등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시다. 빅뱅은 하나님이 우리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에너지를 물질로 전화한 사건이다. 그런 설명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 신화의 신 ‘히데스’(음부)의 열쇠를 자신이 가졌다(계1:18)고 하신 것과 같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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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선교사 통신] 코로나19로 이동제한 위기 우려
      지난 7월에 이곳의 가까운 거리를 나가면 마치 코로나19의 상황이 끝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 어느 곳을 가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볼 수 없었고 음식점과 카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코로나19는 끝났다.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8월이 되면서 휴가철을 맞이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유입된 관광객들을 통하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당국에서도 갑자기 늘어난 확진자로 인해 8월 26일 기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트, 관공서 등)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 3,000디나르(약 130만원)의 벌금과 구금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아마도 당국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현재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더 좋지 않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비판을 하며 폭동까지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7월에는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지방에서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과 같이 통신망이나 PC에 대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동제한이 되면 모든 것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 일수록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더욱 붙들려 있어야 함을 느낀다. 감사하게도, 이곳의 한 선생님께서 인도하시는 현지인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 금요일 밤마다 함께 손을 모으고 있다. 함께 손을 모으고, 찬양을 하고, 서로의 손 올림 제목을 나누며 중보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제가 ‘아버지로부터 참 많은 복을 받았구나’ 였다. 그리고, 함께 모임을 하는 현지인들이 삶에서 얼마나 어렵게 자신의 사역을 지키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직접 듣게 되는 시간이었다. A형제는 얼마 전에 집에서 쫓겨났다. 지낼 곳이 없어 모임 하는 곳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또 다른 B형제는 다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가 그곳에서 마음이 맞지 않고 뜻이 달라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땅에 모든 가정 안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분열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길 바라는 소망이 생겼다. /김00 중동Tu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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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8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V. 하나님을 아는 인격적 지식 제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고 인도함을 받음   패커의 대표작으로 ‘이 시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1960년대 격월로 발간되던 「복음주의 잡지」 편집자가 기독교의 기본에 대해 시리즈로 써 달라고 한 것을 5년 동안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다. 이 저서를 통하여 그는 칼빈처럼 “책 한권의 사람”(homo unius libri)으로 알려졌다. 칼빈의 대표적 저서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라면 패커의 대표적 저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1973)이라고 평가된다.   패커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경이로움을 강조하였다. 그의 신론 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패커는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패커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책을 통해 믿음의 열조들이 간 그 오래된 길을 따르라는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패커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오늘의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고 그의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저서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된다. 이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공에 대해 패커 자신은 깜짝 놀랐고, 이 때문에 패커는 ‘신학’과 ‘영성’을 연관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러한 일에 자기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패커는 성경을 아주 중요시하면서 성경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시대의 계시라고 하지 않으며, 이 성경에 근거해서 그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려고 애쓴다. 이 일에 과거 신앙의 선배들, 청교도들이 좋은 모범이 됨을 잘 드러내 준다. 과거의 청교도 신앙 선배들처럼 성경에 근거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 그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삶을 살며 신자들이 그런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Knowing God’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즉 ‘Knowing about God’을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단순한 명제적, 정보적 지식으로 머리에만 남는 지식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아는 관계적·체험적 지식이며 마음을 변화시키는(transformational) 지식이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 지식(general kwowledge)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인격적 지식(personal kwowledge)임을 패커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점을 밀도있게 논의하였다. 패커는 피력한다: “어떻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렇게 하는데 필요한 규칙은 간단하지만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 배운 각각의 진리를,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들(주권, 전능, 전지, 편재, 영원, 거룩, 의, 진노, 사랑, 은혜, 자비 등등),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권능의 사역들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을 논의하면서,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교하도록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패커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전도의 책임을 감당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복음전도의 책임을 무시하는 일부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의 약점들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설교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구약 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홈니와 비느하스)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고 신앙 가르침을 받고 자랐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사무엘은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이들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경멸하고 하나님에 드린 제물을 강탈하는 죄를 범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오늘날 신자라고 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신학을 한다고 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가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힘써 알자고 선포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호 6:1-3). 호세아가 선포한 바같이 힘써 하나님을 알라고 성심(誠心)과 열성(熱誠)을 다해 선포하는 설교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패커의 충고를 수용하고, 설교의 주제를 다시 하나님으로(Back to God!) 재정향해야 한다. 설교자들의 설교가 변화될 때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 축도 변화될 것이다. 패커는 오늘날 기독교이후 시대에 미주의 복음주의자들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거룩성, 선하심, 은총과 사랑에 관하여 최고의 학문의 전당인 옥스퍼드에서 체험하고 배웠던 지식을 활용하면서 그가 가진 재능, 지혜 그리고 천부적인 능력으로 말하고 저술 활동하였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   V. 칭의 교리의 수호   패커의 저서 ‘칭의의 여러 얼굴’( Here We Stand: Justification by Faith Today, Oak Hill College, 1986; 김형원 역, 이레서원, 2016)에서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영국 성공회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칭의 교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다양한 시각으로 요약한 내용인데 동방정교회나 로마가톨릭의 칭의론도 다뤄 입체적 비교가 가능토록 했다. 책의 원본은 1986년 출간됐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칭의론과 관련된 오늘의 논쟁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이와 관련된 구절들이 등장한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新)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책은 칭의의 기원과 정의, 근거, 성화, 전가, 최후 행위 심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패커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강조한다고 해서 함부로 전통적 구원관을 포기하고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동시에 오직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설교한다고 해서 이를 값싼 구원론으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패커는 이 편집서 서문에서 칭의론을 “기독교 교리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귀하고 생기있는 성경적 교리”라고 본다. “이는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붙잡을 수 있는 진리”이다. 패커는 칭의론을 신론적이며, 인간론적이며, 성령론적이며, 교회론적이며, 종말론적이며, 복음적이고, 목회적이고, 예전적이라고 특징지운다. 칭의론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을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신론적”이다. 칭의론은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에서 인간론적”이다. 칭의론은 “성육신과 구속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기독론적”이다. 칭의론은 “예수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일이 성령사역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적”이다. 칭의론은 “교회의 정의와 건강함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적”이다. 칭의론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을 지금 여기에서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종말론적”이다. 칭의론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영혼한 화평으로 초청한다는 의미에서 복음적”이다. 칭의론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정체성이 성도 간 교제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목회적”이다. 칭의론은 “성례를 해석하고 성례 예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예전적”이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종교개혁 칭의론을 거부하고 수정주의적 주장을 천명하였다. 새 관점 학파의 대표 주자 영국 성공회 신학자 톰 라이트(Thomas Wright)는 “첫 칭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최후 심판 때의 마지막 칭의는 전 생애를 통해 성령의 인도 아래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新)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패커는 이에 대하여 무게있는 논평을 제시했다. 톰 라이트(N. T. Wright)에 대해 패커는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신학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에 대해서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전문적인 수준으로 새로운 관심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현대교회가 이 문제를 완전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고 피력한다.   패커는 ‘개신교 신학에서의 칭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가 있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며 형태가 왜곡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실로 생명줄이자 송영이며, 찬양의 외침이자 승리의 노래다.” 그럼으로써 패커는 전통적인 복음주의권이 새 관점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패커는 칭의론과 관련해 “개혁주의 교리의 기초는 타락한 인간의 전적 무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르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하심이며 이것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VI. 개혁적 성공회 신자: 성공회 신자로서 성공회를 보다 성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패커는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를 성경적으로 변화시키기 원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영국 교회 안에서 영국 교회를 변화시키기 원했던 역사적인 비분리주의 청교도 선조들을 아주 닮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성공회 교회인(Churchman)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패커는 1926년 7월 22일 글로쳐스터셔(Gloucestershire) 북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차로 유명한) 트위닝(Twyning)에서 보잘 것 없는 영국 하위 중산층 가정(lower-middle-class family)에서 태어났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부친은 큰 서부 철도회사의 서기(a clerk for the Great Western Railway), 어머니는 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교사로서의 패커의 자질은 모친으로부터, 꼼꼼히 글쓰고 정리하는 자질은 서기인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았다 할 수 있다. 장자로 태어난 그는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의 부모를 따라 14살에 견신례도 받았지만, 이 때도 참된 회개나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것을 아니었다.   패커는 1944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였고, 후에 신학으로 편입하였다. 대학 진학 후 패커는 재즈 밴드의 클라리넷 연주자와 옥스퍼드 기독학생연합(Oxford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 OICCU)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패커의 회심은 그가 18세 되던 해인 1944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그리스도의 몸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 고전(classics) 전공 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이루어진다. 1944년 가을학기에 개강한지 3주가 지난 10월 22일에 패커는 세인트 알데이트 교회(St. Aldate Church)의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나이 많은 목사의 설교가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그 후반부에 그 설교자 목사가 소년일 때 성경 캠프에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가에 대한 도전 받았다는 신앙 간증이 학생 패커의 내면에 영적 사건을 일으켰다. 패커는 자신을 그 목사와 동일시하면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기로 결단했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국 성공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따르는 청교도 신자가 된 것이다.   패커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고전을 전공하여 1948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런던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학교인 옥크힐 신학교(Oak Hill Theological College)에서 1948-1949년 교사(instructor, tutor)로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패커는 1949년 영국 성공회 사제를 훈련시키는 기관의 하나인 옥스포드의 위클리프 홈(Wycliffe Hall)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하고, 1952년에 부제(deacon)가 되고, 1953년에 버밍험 대성당에서 성공회 사제(priest)로 임직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버밍험의 하본 히스(Harborne Heath)에 있는 센인트 존스 교회에서 부목사직 assistant curate)을 수행하면서, 옥스포드에서 리처드 백스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D. Phil., 1954). 논문을 썼다. 죠오지 너트올(Geoffrey Fillingham Nuttall, 1911–2007)의 지도 하에서 그가 쓴 논문은 「리처드 백스터 사상에서의 인간의 구속과 회복」이라는 400페이지 넘는 논문이었다.   신학교수로서 패커 생애의 전반부는 영국 브리스톨 그리고 옥스포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5년에 그는 가족과 함께 브리스톨로 가서 1961년까지 틴대일 홀(Tyndale Hall)에서 가르쳤다. 1961년 옥스포드로 돌아와서 1961-1962년 옥스포드 라티머관 도서관의 사서(Librarian of Latimer House in Oxford), 1962년-1969년 존 스토트와 함께 설립한 복음주의 연구센터의 관장(Warden)으로 봉직했다. 1970년 복음주의 계간지의 편집인이 된다.   그 이후 패커는 계속해서 영국 성공회 목사들을 훈련하는 기관에서 가르쳐 왔고, 옥스포드 학부 때부터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지질학자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의 초청에 따라 1979년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전트 컬리지 신학 교수로 갔을 때도 캐나다 성공회에 속한 밴쿠버에 있는 세인트 존스 성공회(St. John's Vancouver Anglican Church)에 속해 있었다. 그는 어찌하든지 성공회가 점점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였고, 성공회에 속한 복음주의 전통을 대변하는 인물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좀 더 성경적 방향으로 성공회를 이끌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직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오래된 직제를 유지하고 있어 성도들 중에 선출되어 임직한 장로 제도가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면서, 목회자와 함께 치리를 감당한 직분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공회는 계속해서 직제에 있어 낡은 관습을 고집하였고, 전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고 더 폭넓은 방향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패커와 그의 동조자들의 노력은 결국 무색해졌다.   이때 패커는 오래 전인 1966년 10월에 마틴 로이드-존스가 ‘복음주의자들의 전국 회의(the 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영국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한 교단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제안했던 바를 다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 로이드-존스는 성공회 같이 교리적으로 혼합된 교회들로부터 나와서 독립적인 복음주의 교회들의 연합체를 형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회의 의장 역할을 하던 존 스토트는 로이드 존스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영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의 심각한 균열이 있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때 패커는 20년간 함께 청교도 콘퍼런스를 개최한 로이드 존스와 함께 하지 않고 존 스토트의 입장에 섰다. 그리하여 패커는 동료요 선배인 로이드 존스로부터 결별을 당했다. 이는 교회의 연합이 중요하다는 패커의 공교회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패커가 속해 있는 교회인 캐나다 성공회에서 가장 큰 회중인 세인트 존스 교회(St. John’s Church)가 캐나다 성공회에서 분리해 보다 복음주의적인 아르헨티나 교구와 하나가 되려고 하였다. 패커에게 다음 두 가지 죄목이 뒤집어 씌웠다: ①캐나다 성공회의 교리와 치리를 공적으로 거부한다 ②캐나다 성공회 밖의 다른 종교적 단체와 하나됨을 추구했다. 패커로는 영국 성공회가 임직 때에 부여 했던 말씀과 성찬을 섬기는 목사의 권한을 박탈한다(revoked)는 결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국 성공회로부터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 그러자 세인트 존스 교회는 캐나다 성공회 네트워크(the Anglican Network in Canada=ANiC)에 속하였고, 이곳은 다시 2009년 북미 성공회(the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에 속하였다. 패커 자신은 영국에 있을 때나 캐나다에서나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이를 좀 더 복음주의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성공회 자체가 일종의 분열을 한 셈이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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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5
      기독교 창조론과 과학적 무신론   현대인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학을 부정하는 일부 근본주의 신자들의 그릇된 행태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그동안 틀려서 뒤집힌 이론이 많으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성경과 과학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모세의 토라를 믿었던 고대의 유대교는 이후 몇 개 종파로 나뉘면서 해석과 사용하는 성경이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를 개혁하면서 탄생한 기독교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더 많이 일어났다. 교회가 동로마 정교회와 서로마 가톨릭교회로 분열된 이후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만이 성경해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폐해는 가톨릭교회에서 면죄부 판매사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만인사제설이 등장했다.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각종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는 신자들의 해석은 제각각 달랐다. 전통적으로 천동설을 믿었던 기독교는 과학혁명을 촉발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지동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탄압했다. 교황은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해서 종신토록 자택연금형을 받도록 했다. 로마가톨릭교회가 과학을 탄압하고 배척하고 있을 때, 종교개혁에 의하여 태어난 개혁교회도 그런 입장에 동조했다.   기독교 전체가 과학을 거부했지만, 과학은 굴복하지 않고 점점 정밀하게 만들어지는 관측기구를 사용하면서 오류를 수정하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현대과학은 슈퍼컴퓨터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나노 반도체를 만들고, 미크론(㎛: 0.001㎜) 치수로 부품을 가공 및 조립하는 기술로 첨단과학 시설의 도시와 휴대폰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현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첨단과학이 만들어낸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과학을 부정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행위는 자기모순이요 자가당착이다. 성경해석권을 개방한 이후 개혁교회에서 유대교 수준의 문자주의적 성경해석을 하는 근본주의 경향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개혁교회가 고대 유대교 수준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역설을 넘어선 퇴행적 모습이다.   기독교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것과 관련된 논란은 근본주의자들의 창세기 해석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된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은 현대인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1920년대에 안식교회의 근본주의 창조과학자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믿고 노아홍수 기사를 바탕으로 홍수지질학을 만들어서 단일격변설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우겼다. 그들의 행위는 당시 진화론의 공세에 맞서 기독교리를 방어하려고 했던 공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 근본주의자들이 안식교회 창조과학의 잔재를 답습하는 것은 현대 개혁교회를 무지의 종교로 격하시키는 문고리 역할을 할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고대 히브리인들의 수준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과 교회의 존재를 미래사회에서 고립시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물리적으로 연구하는 진정한 과학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현대물리학과 양자이론은 하나님의 물질적 창조법칙을 거의 밝혀낸 상태이다. 현대 개혁교회가 비판할 대상은 유물론과 진화론이 결합한 과학적 무신론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과학적 무신론에서 비판해야 할 문제는 적지 않다. 그러나 그 핵심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정보(DNA)가 오파린이 주장하는 생명의 기원과 다윈이 주장하는 종의 기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는 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 창조론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을 깨뜨리는 일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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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 [선교사 통신] 3개월 동안 중단된 예배의 재개
    23일 0시 기준 IN국는 신규확진자가 최대치를 갱신하여 7만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누적확진자 수가 3백만명을 넘어섰다. 많은 활동이 위축되고 중단되는 상황 가운데 영적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8월 20일 IN국의 정부발표에 따르면 IN국의 수도에서 실행한 항체검사에서 29.1%가 이미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인구 2천만명 가운데 이미 600만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3일 0시 기준 IN국의 신규확진자 수는 7만명(706,138) 이상이고 누적확진자 수가 기록상으로는 3백만명이다(3,043,436). 실재로는 수도만해도 600만명이니 전국적으로는 6천만명에서 1억명 사이가 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 감염자수는 기록된 감염자수보다 20~30배가 되기 때문이다.   IN국에서는 3월 22일부터 5월 중순까지 3개월동안의 전국적인 봉쇄로 인하여 예배의 시간을 제대로 가질 수 없었다. 6월부터 봉쇄가 완화되기 시작한 후 우리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왔다. 그리고 주일에는 통행금지 시간을 피하여 이른 아침에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8월 16일부터는 봉쇄가 해제되어 정상적으로 함께 모여 주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0세 이하의 어린이와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집회에 참여할 수 없다. 사회적거리두기, 마스크착용과 소독제사용은 정부시책에 따라 실천하고 있다.   교인들은 금요일과 주일마다 예배와 기도회를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누구든지 교회건물에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했기에 일부 자매들은 매일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모였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 교인들 가운데 감염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하여 장기간 봉쇄정책이 지속되는 동안 경제활동이 제한되었고 또한 우리 교회사역에도 많은 제한을 받았다. 3개월간 엄격하게 봉쇄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집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예배를 위해 모일 수 없었다. 온라인 예배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 교인의 90%가 일용직 종사자들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소지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지 않고 믿음이 견고하지 못한 새교인들 가운데 약 30%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재개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려운 때를 겪으면서 하나님을 찾아오는 새로운 교인들도 있어 감사하고 있다. 위기와 재난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존하게 한다.  /곽요한·심은혜 서남아IN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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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1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4
      ‘알파 창조론’과 ‘오메가 창조론’   ▲지금까지 ‘알파창조론’을 연재했는데 알파창조론은 무엇인가? = 알파창조론은 창세기 1장을 범위로 하고, 히브리어 원어를 텍스트로 삼았다. 창세기 1장 안에 알파창조론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고, 나머지는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모세의 설명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저자인 모세는 그가 살았던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으로 창조의 계시를 설명했다. 그래서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알파창조론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탈피하여 과학적 사실과 일치하는 기독교 창조론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연구와 연재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현대과학의 사실과 모순되지 않게 하는 해석의 틀을 찾는 것이 어려운 과제였다. 성경과 과학이 충돌할 때 많은 현대인들은 과학을 따르고 성경을 배제한다. 이런 면에서 현대 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 창조론을 제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동안의 ‘창조론’에 대한 문제는 무엇인가? =1920년대에 안식교회에서 시작한 창조과학의 전통을 청산할 필요성이 있다. 첫째, 창조론의 범위를 벗어난 주장이 들어 있다. 단일격변설은 노아홍수가 현재 지구의 지질을 형성했다는 주장인데, 홍수 지질학은 현대 지질학과 전혀 맞지 않으므로 현대인들이 수용하지 않는다. 둘째로 지구나이를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현대 물리학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으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수준이다.   ▲인간창조의 목적을 새롭게 해석했는데 설명해 달라. =창세기1:26, 28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이 수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이 창조목적이다. 지금의 코로나사태는 이러한 창조명령을 인간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창조론의 경쟁이론인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 설명해 달라. =과학적 무신론은 진화론과 유물론의 결합이론이다. 이 이론을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하는 기독교적 운동의 필요하다. 생명의 기원과 종의 기원에서 창조론과 무신론은 대립한다. 생명의 기원에 있어서 생명이 물질에서 자연 발생하는 화학적 메커니즘이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또 종의 기원에서 생물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이른바 ‘오메가창조론’을 구상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계시했다. 알파창조론이 있으면 논리적으로 오메가 창조론이 있어야 한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창조계시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신천지를 비롯한 여러 이단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여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과학적 지식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과 자연에서 관심을 돌리게 되면 결국 진화론과 유물론이 과학을 점령하게 되고, 기독교는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과학적 지식을 아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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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7
  • [선교사 통신] 학원과 사립학교 등 개강 금지
    M국은 지난 4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표되자마자 바로 락다운을 실시하여, 4월 새해 맞이를 축하하며 진행했던 물 축제(보통 일주일 진행)를 전면 중단시켰다. 이 곳 사람들은 락다운 규정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지난 6월까지 우리 동네에서 밖으로 나와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외국인으로부터 발생한 전염병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나도 최근에 와서야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번 사태의 보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1910년까지만 해도 세계 땅 면적에 인간이 거주한 비율이 18%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지금은 거의 89%의 땅을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네요. 자연히 바이러스와 같은 숙주를 찾는 생물은 오래 생존가능하고 편만이 거주하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결과인 거 같다. 개혁장로교 신학교는 지난 7월 21일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비와 입단속 속에 2학기를 개강하였다. 평소 6월에 개강하여 9월 중순까지 학기를 마쳤으나, 이 곳 정부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발표 이후 5명 이상 모임을 금지시켜서 개강을 미루었다. 아직도(8월 현재) 정부는 모든 사립학교와 기숙학교, 학원 등의 교육기관에 대해 개강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양곤에는 더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11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최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양곤 시내는 뉴노멀 시대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분위기 입니다. 예전처럼 세무서와 법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상관없이 20~30명이 모여 기다리고 있고, 외곽은 마스크 쓴 사람이 드물 정도입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일부 학원들과 사립학교들은 정부 방침과 상관없이 이미 학생들을 불러 놓고 수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신학교도 어차피 법과는 거리가 먼 학교인 관계로(이곳은 1960년 이후 어떤 신학교도 허가를 내준 적이 없는 관계로) 정문을 꼭 닫고 2학기를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 바깥 출입이 불가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나무를 타고 담장을 넘어 뭘 사 먹고, 어떤 이들은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다 걸리곤 한다. 한 사람의 신실한 사역자로 거듭나기가 너무도 힘이 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 사역을 잘 감당하길 기도하고 있다. /김바울·이안나 서남아M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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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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