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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과 진실함의 아가페사랑!
지금 시대가 사랑이라는 표현은 홍수가 난 것처럼 넘쳐나지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 마치 진정한 사랑은 가뭄이 든 것처럼 갈등과 상처, 대립과 분열의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 공동체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님을 볼 때 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독교 사상가로 유명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표지는 십자가 장식품이나, 물고기 표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요일4:1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 대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보내신 그 사랑인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영혼들의 상처를 품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 대속을 통해 최고 사랑의 실천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삶, 다시 말해 생명 살리는 영혼 구원의 사랑을 삶의 현장에서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사랑의 핵심인 동시에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예수 생명이 있는 자는 예수 사랑을 실제로 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사도 요한은 요일3:18에서 우리에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사랑이 실천적 아가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인을 가르켜 이러한 비판을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에 가면 손과 발은 없고 입만 둥둥 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입으로만 외치고 실제 삶의 모습을 통해 영향력을 입히는 경우가 적기 때문임을 볼 수가 있다. 영적 영향력은 단순히 말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적 아가페 사랑을 했을 때 상대방은 여기에 반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예원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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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사랑의 실천’만이 인류가 사는 길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혼돈스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내다 보았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시대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하였다. 나는 2차 대전 전에 교육 사업을 시작할 때인 젊은 시절부터 그것을 내다 보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런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약육 강식의 방법으로는 살 수가 없다. 이것은 역사의 섭리이다. 결코 사람의 뜻이 아니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몇천 몇 만 년이 지난 뒤에 사람의 역사가 정말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그런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러다가 내가 제2의 문선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염려도 하지만, 나는 문선명식으로 내가 곧 예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육영 사업자로서, 사회 가업가로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또는 가장 부족하고 가장 죄 많이 짓고 가장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속죄하듯 외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그냥 과거의 역사 속에서 악의 소굴에 빠지고 만 채 다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을 살리려고 ‘사랑의 실천’에 몰두했고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나에게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그 책임을 느끼고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어서 좀처럼 그 실체를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부피보다도 세상을 물들이는 사약의 농도가 더 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도 그저 요원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험난한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이 세상을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 고귀한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나온 존재로서 그런 마음과 행동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더도 말고 덜고 말고 ‘사랑의 실천’ 정신이 온 인류의 마음 속에 주령주령 열리고 지상 위에 낙원이 하루 빨리 이룩될 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도 어서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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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지금 건강한가?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야 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소명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분의 사역에 진실하게 동참하고 있는가?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의 뜻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 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리에 갇혀 다투는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국교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의 비전(Mission)은 무엇이었는가? 그 사역을 본받는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정책과 철학이 과연 국민과 한국교회의 눈높이에 맞게 실현되고 있는지,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물어야 할 시점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성평등부 신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동성애 합법화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성경적 가치와 교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에, 진영을 넘어 한국교회가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다양한 운동과 여가 활동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자체 점검과 갱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는 본질을 잃는 변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갱신이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기득권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율법화되어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진영 논리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자아 성찰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자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국민과 신앙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정되고 일 잘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또한 함께 기도하고, 함께 협력하여 저출산, 사회 양극화,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웃으며 사는 나라를 원한다. 다툼이 아닌,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 교회가 먼저 그 본을 보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한국교회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한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도록, 한국교회가 세계가 흠모하는 교회가 되도록, 지금이 바로 우리가 새로워질 때다./그리스도의교회 총회장·부안창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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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다윗 대통령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성서의 다윗임금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윗은 위기 앞의 거인이었다. 다윗에게 골리앗이라는 절대 위기가 있었다면 오늘 우리에겐 안보, 통상, 민생이라는 골리앗이 있다. 하나도 우호적인 것은 없다. 우리 국민들 앞에 버티고 선 저 골리앗을 멋지게 무너뜨리는 새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다윗은 책임의 리더였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불리한 처지가 되면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것은 지도자의 덕목은 아니다. 새 대통령께서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국민을 보듬어 주었으면 한다. 다윗이 목동시절 사자와 싸울 때 그는 그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사자와 싸웠다. 이것이 책임있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가하면 다윗은 포용의 임금이었다. 즉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이루어낸 대통령이었다. 다윗은 남쪽 작은 유다지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파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통일의 임금이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념과 진영, 지역과 정당을 초월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선거를 치른 후 갈라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새 대통령이다. 외교 국방 통상 민생등 우리앞에 놓여진 과제를 풀기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모두가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하나로 뭉쳐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는 일은 새 대통령의 몫이다. 다윗에게도 실수와 약점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이스라엘을 통합하고 통일시킴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큰 임금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성군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군주였고, 최대의 영토와 경제력을 창출한 통일왕국을 건설했다. 다윗이 수천년전 남북으로 분단된 작고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강병부국을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의 새대통령도 같은 일을 못하리하는 법은 없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그분은 우리 국민 모두의 다윗임금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시기를 기도한다/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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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가정의 행복, 인생의 성공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미국의 핸리 포드입니다. 포드가 자동차업에 성공한 뒤 자기 집을 한 채 짓기로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기대하기는 핸리 포드가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저택 안에는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포드는 자기가 어렸을 때 살았던 땅에다가 아주 작은 집을 짓고 이곳이 자기가 살 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포드의 집을 방문한 회사 간부가 너무 실망해서 “사장님! 집이 너무 초라합니다. 다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 포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만 크게 지었다고 행복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헨리 포드는 행복한 가정은 겉으로 나타난 건물이거나 고급스러운 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이 눈으로 나타난 외형만을 생각하고 더 큰 집, 더 큰 아파트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집이 커야 행복도 커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집(House)은 있으나 가정(Home)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명예와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5월은 어린이날(5월 5일)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이 있기에 가정의 달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 자신의 가정을 되돌아보며 과연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태초에 교회나 국가를 만들지 아니하시고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인간이 그 가정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으나 안타깝게도 최초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불행해지고 만 것입니다. 이들은 에덴 낙원에서 쫓겨난 후 그의 자녀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문제로 갈등과 시기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의 가정이 되고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을 가정의 달인 5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선진국이 되었으나 아직도 이 사회는 저출산 국가와 자살 1등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가정이 주님을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면 저출산 문제도 그리고 자살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내 자녀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부흥과 성장에만 몰두하지 말고 가정 만들기 운동에도 적극 나서는 한국교회가 될 것을 간곡히 바랍니다. 아멘/기감 전 감독회장·도봉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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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
“한국 교회가 위기 속에 있다”는 인식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단순히 성도수의 감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영향력을 입히는 본질적 모습이 퇴색되어 가고 있음에 심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을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데살로니가 공동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의 열매를 사실적으로 맺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의 열매였다. 바울은 먼저 믿음의 역사를 언급한다. 여기서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work다. 우리의 믿음은 추상적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에는 반드시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 Luther)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열과 빛을 분리할 수 없듯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행함은 분리할 수 없다.” 구원은 절대 우리의 행함과 상관이 없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행함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수고’는 헬라어로 ‘코포스’라고 하는데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필요한 엄청난 수고”를 뜻한다. 마치 아기를 낳을 때 산모가 진통을 겪는 것과 같은 수고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없이는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 단어는 “계속해서 경주하는 노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수고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택함받은 자가 맺어야 할 열매는 소망의 인내다. 여기에서 소망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역경 가운데서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는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가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보여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는 감사의 복음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예원교회 담임,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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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과 진실함의 아가페사랑!
- 지금 시대가 사랑이라는 표현은 홍수가 난 것처럼 넘쳐나지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 마치 진정한 사랑은 가뭄이 든 것처럼 갈등과 상처, 대립과 분열의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 공동체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님을 볼 때 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독교 사상가로 유명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표지는 십자가 장식품이나, 물고기 표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요일4:1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 대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보내신 그 사랑인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영혼들의 상처를 품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 대속을 통해 최고 사랑의 실천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삶, 다시 말해 생명 살리는 영혼 구원의 사랑을 삶의 현장에서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사랑의 핵심인 동시에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예수 생명이 있는 자는 예수 사랑을 실제로 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사도 요한은 요일3:18에서 우리에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사랑이 실천적 아가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인을 가르켜 이러한 비판을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에 가면 손과 발은 없고 입만 둥둥 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입으로만 외치고 실제 삶의 모습을 통해 영향력을 입히는 경우가 적기 때문임을 볼 수가 있다. 영적 영향력은 단순히 말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적 아가페 사랑을 했을 때 상대방은 여기에 반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예원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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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사랑의 실천’만이 인류가 사는 길
-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혼돈스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내다 보았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시대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하였다. 나는 2차 대전 전에 교육 사업을 시작할 때인 젊은 시절부터 그것을 내다 보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런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약육 강식의 방법으로는 살 수가 없다. 이것은 역사의 섭리이다. 결코 사람의 뜻이 아니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몇천 몇 만 년이 지난 뒤에 사람의 역사가 정말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그런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러다가 내가 제2의 문선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염려도 하지만, 나는 문선명식으로 내가 곧 예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육영 사업자로서, 사회 가업가로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또는 가장 부족하고 가장 죄 많이 짓고 가장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속죄하듯 외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그냥 과거의 역사 속에서 악의 소굴에 빠지고 만 채 다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을 살리려고 ‘사랑의 실천’에 몰두했고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나에게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그 책임을 느끼고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어서 좀처럼 그 실체를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부피보다도 세상을 물들이는 사약의 농도가 더 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도 그저 요원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험난한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이 세상을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 고귀한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나온 존재로서 그런 마음과 행동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더도 말고 덜고 말고 ‘사랑의 실천’ 정신이 온 인류의 마음 속에 주령주령 열리고 지상 위에 낙원이 하루 빨리 이룩될 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도 어서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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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사랑의 실천’만이 인류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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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 한국교회는 지금 건강한가?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야 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소명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분의 사역에 진실하게 동참하고 있는가?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의 뜻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 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리에 갇혀 다투는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국교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의 비전(Mission)은 무엇이었는가? 그 사역을 본받는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정책과 철학이 과연 국민과 한국교회의 눈높이에 맞게 실현되고 있는지,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물어야 할 시점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성평등부 신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동성애 합법화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성경적 가치와 교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에, 진영을 넘어 한국교회가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다양한 운동과 여가 활동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자체 점검과 갱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는 본질을 잃는 변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갱신이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기득권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율법화되어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진영 논리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자아 성찰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자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국민과 신앙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정되고 일 잘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또한 함께 기도하고, 함께 협력하여 저출산, 사회 양극화,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웃으며 사는 나라를 원한다. 다툼이 아닌,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 교회가 먼저 그 본을 보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한국교회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한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도록, 한국교회가 세계가 흠모하는 교회가 되도록, 지금이 바로 우리가 새로워질 때다./그리스도의교회 총회장·부안창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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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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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다윗 대통령
-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성서의 다윗임금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윗은 위기 앞의 거인이었다. 다윗에게 골리앗이라는 절대 위기가 있었다면 오늘 우리에겐 안보, 통상, 민생이라는 골리앗이 있다. 하나도 우호적인 것은 없다. 우리 국민들 앞에 버티고 선 저 골리앗을 멋지게 무너뜨리는 새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다윗은 책임의 리더였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불리한 처지가 되면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것은 지도자의 덕목은 아니다. 새 대통령께서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국민을 보듬어 주었으면 한다. 다윗이 목동시절 사자와 싸울 때 그는 그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사자와 싸웠다. 이것이 책임있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가하면 다윗은 포용의 임금이었다. 즉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이루어낸 대통령이었다. 다윗은 남쪽 작은 유다지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파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통일의 임금이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념과 진영, 지역과 정당을 초월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선거를 치른 후 갈라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새 대통령이다. 외교 국방 통상 민생등 우리앞에 놓여진 과제를 풀기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모두가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하나로 뭉쳐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는 일은 새 대통령의 몫이다. 다윗에게도 실수와 약점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이스라엘을 통합하고 통일시킴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큰 임금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성군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군주였고, 최대의 영토와 경제력을 창출한 통일왕국을 건설했다. 다윗이 수천년전 남북으로 분단된 작고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강병부국을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의 새대통령도 같은 일을 못하리하는 법은 없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그분은 우리 국민 모두의 다윗임금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시기를 기도한다/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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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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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다윗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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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가정의 행복, 인생의 성공
-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미국의 핸리 포드입니다. 포드가 자동차업에 성공한 뒤 자기 집을 한 채 짓기로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기대하기는 핸리 포드가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저택 안에는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포드는 자기가 어렸을 때 살았던 땅에다가 아주 작은 집을 짓고 이곳이 자기가 살 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포드의 집을 방문한 회사 간부가 너무 실망해서 “사장님! 집이 너무 초라합니다. 다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 포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만 크게 지었다고 행복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헨리 포드는 행복한 가정은 겉으로 나타난 건물이거나 고급스러운 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이 눈으로 나타난 외형만을 생각하고 더 큰 집, 더 큰 아파트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집이 커야 행복도 커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집(House)은 있으나 가정(Home)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명예와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5월은 어린이날(5월 5일)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이 있기에 가정의 달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 자신의 가정을 되돌아보며 과연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태초에 교회나 국가를 만들지 아니하시고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인간이 그 가정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으나 안타깝게도 최초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불행해지고 만 것입니다. 이들은 에덴 낙원에서 쫓겨난 후 그의 자녀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문제로 갈등과 시기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의 가정이 되고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을 가정의 달인 5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선진국이 되었으나 아직도 이 사회는 저출산 국가와 자살 1등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가정이 주님을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면 저출산 문제도 그리고 자살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내 자녀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부흥과 성장에만 몰두하지 말고 가정 만들기 운동에도 적극 나서는 한국교회가 될 것을 간곡히 바랍니다. 아멘/기감 전 감독회장·도봉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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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가정의 행복, 인생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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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
- “한국 교회가 위기 속에 있다”는 인식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단순히 성도수의 감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영향력을 입히는 본질적 모습이 퇴색되어 가고 있음에 심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을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데살로니가 공동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의 열매를 사실적으로 맺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의 열매였다. 바울은 먼저 믿음의 역사를 언급한다. 여기서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work다. 우리의 믿음은 추상적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에는 반드시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 Luther)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열과 빛을 분리할 수 없듯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행함은 분리할 수 없다.” 구원은 절대 우리의 행함과 상관이 없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행함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수고’는 헬라어로 ‘코포스’라고 하는데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필요한 엄청난 수고”를 뜻한다. 마치 아기를 낳을 때 산모가 진통을 겪는 것과 같은 수고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없이는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 단어는 “계속해서 경주하는 노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수고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택함받은 자가 맺어야 할 열매는 소망의 인내다. 여기에서 소망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역경 가운데서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는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가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보여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는 감사의 복음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예원교회 담임,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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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과 진실함의 아가페사랑!
- 지금 시대가 사랑이라는 표현은 홍수가 난 것처럼 넘쳐나지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 마치 진정한 사랑은 가뭄이 든 것처럼 갈등과 상처, 대립과 분열의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 공동체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님을 볼 때 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독교 사상가로 유명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표지는 십자가 장식품이나, 물고기 표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요일4:1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본질적 모습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 대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보내신 그 사랑인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영혼들의 상처를 품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 대속을 통해 최고 사랑의 실천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삶, 다시 말해 생명 살리는 영혼 구원의 사랑을 삶의 현장에서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사랑의 핵심인 동시에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예수 생명이 있는 자는 예수 사랑을 실제로 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사도 요한은 요일3:18에서 우리에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사랑이 실천적 아가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인을 가르켜 이러한 비판을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에 가면 손과 발은 없고 입만 둥둥 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입으로만 외치고 실제 삶의 모습을 통해 영향력을 입히는 경우가 적기 때문임을 볼 수가 있다. 영적 영향력은 단순히 말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적 아가페 사랑을 했을 때 상대방은 여기에 반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예원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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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과 진실함의 아가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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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사랑의 실천’만이 인류가 사는 길
-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혼돈스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내다 보았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시대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하였다. 나는 2차 대전 전에 교육 사업을 시작할 때인 젊은 시절부터 그것을 내다 보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런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약육 강식의 방법으로는 살 수가 없다. 이것은 역사의 섭리이다. 결코 사람의 뜻이 아니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몇천 몇 만 년이 지난 뒤에 사람의 역사가 정말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그런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러다가 내가 제2의 문선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염려도 하지만, 나는 문선명식으로 내가 곧 예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육영 사업자로서, 사회 가업가로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또는 가장 부족하고 가장 죄 많이 짓고 가장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속죄하듯 외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그냥 과거의 역사 속에서 악의 소굴에 빠지고 만 채 다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을 살리려고 ‘사랑의 실천’에 몰두했고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나에게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그 책임을 느끼고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어서 좀처럼 그 실체를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부피보다도 세상을 물들이는 사약의 농도가 더 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도 그저 요원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험난한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이 세상을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 고귀한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 나온 존재로서 그런 마음과 행동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더도 말고 덜고 말고 ‘사랑의 실천’ 정신이 온 인류의 마음 속에 주령주령 열리고 지상 위에 낙원이 하루 빨리 이룩될 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도 어서 죄인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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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사랑의 실천’만이 인류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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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 한국교회는 지금 건강한가?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야 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소명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분의 사역에 진실하게 동참하고 있는가?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의 뜻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 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리에 갇혀 다투는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국교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의 비전(Mission)은 무엇이었는가? 그 사역을 본받는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정책과 철학이 과연 국민과 한국교회의 눈높이에 맞게 실현되고 있는지,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물어야 할 시점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성평등부 신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동성애 합법화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성경적 가치와 교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에, 진영을 넘어 한국교회가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다양한 운동과 여가 활동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자체 점검과 갱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는 본질을 잃는 변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갱신이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기득권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율법화되어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진영 논리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자아 성찰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자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국민과 신앙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정되고 일 잘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또한 함께 기도하고, 함께 협력하여 저출산, 사회 양극화,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웃으며 사는 나라를 원한다. 다툼이 아닌,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 교회가 먼저 그 본을 보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한국교회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한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도록, 한국교회가 세계가 흠모하는 교회가 되도록, 지금이 바로 우리가 새로워질 때다./그리스도의교회 총회장·부안창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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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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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다윗 대통령
-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성서의 다윗임금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윗은 위기 앞의 거인이었다. 다윗에게 골리앗이라는 절대 위기가 있었다면 오늘 우리에겐 안보, 통상, 민생이라는 골리앗이 있다. 하나도 우호적인 것은 없다. 우리 국민들 앞에 버티고 선 저 골리앗을 멋지게 무너뜨리는 새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다윗은 책임의 리더였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불리한 처지가 되면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것은 지도자의 덕목은 아니다. 새 대통령께서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국민을 보듬어 주었으면 한다. 다윗이 목동시절 사자와 싸울 때 그는 그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사자와 싸웠다. 이것이 책임있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가하면 다윗은 포용의 임금이었다. 즉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이루어낸 대통령이었다. 다윗은 남쪽 작은 유다지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파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통일의 임금이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념과 진영, 지역과 정당을 초월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선거를 치른 후 갈라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새 대통령이다. 외교 국방 통상 민생등 우리앞에 놓여진 과제를 풀기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모두가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하나로 뭉쳐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는 일은 새 대통령의 몫이다. 다윗에게도 실수와 약점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이스라엘을 통합하고 통일시킴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큰 임금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성군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군주였고, 최대의 영토와 경제력을 창출한 통일왕국을 건설했다. 다윗이 수천년전 남북으로 분단된 작고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강병부국을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의 새대통령도 같은 일을 못하리하는 법은 없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그분은 우리 국민 모두의 다윗임금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시기를 기도한다/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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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가정의 행복, 인생의 성공
-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미국의 핸리 포드입니다. 포드가 자동차업에 성공한 뒤 자기 집을 한 채 짓기로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기대하기는 핸리 포드가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저택 안에는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포드는 자기가 어렸을 때 살았던 땅에다가 아주 작은 집을 짓고 이곳이 자기가 살 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포드의 집을 방문한 회사 간부가 너무 실망해서 “사장님! 집이 너무 초라합니다. 다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 포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만 크게 지었다고 행복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헨리 포드는 행복한 가정은 겉으로 나타난 건물이거나 고급스러운 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이 눈으로 나타난 외형만을 생각하고 더 큰 집, 더 큰 아파트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집이 커야 행복도 커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집(House)은 있으나 가정(Home)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명예와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5월은 어린이날(5월 5일)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이 있기에 가정의 달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 자신의 가정을 되돌아보며 과연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태초에 교회나 국가를 만들지 아니하시고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인간이 그 가정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으나 안타깝게도 최초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불행해지고 만 것입니다. 이들은 에덴 낙원에서 쫓겨난 후 그의 자녀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문제로 갈등과 시기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의 가정이 되고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을 가정의 달인 5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선진국이 되었으나 아직도 이 사회는 저출산 국가와 자살 1등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가정이 주님을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면 저출산 문제도 그리고 자살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내 자녀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부흥과 성장에만 몰두하지 말고 가정 만들기 운동에도 적극 나서는 한국교회가 될 것을 간곡히 바랍니다. 아멘/기감 전 감독회장·도봉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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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가정의 행복, 인생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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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
- “한국 교회가 위기 속에 있다”는 인식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단순히 성도수의 감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영향력을 입히는 본질적 모습이 퇴색되어 가고 있음에 심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을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데살로니가 공동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의 열매를 사실적으로 맺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의 열매였다. 바울은 먼저 믿음의 역사를 언급한다. 여기서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work다. 우리의 믿음은 추상적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에는 반드시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 Luther)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열과 빛을 분리할 수 없듯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행함은 분리할 수 없다.” 구원은 절대 우리의 행함과 상관이 없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행함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수고’는 헬라어로 ‘코포스’라고 하는데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필요한 엄청난 수고”를 뜻한다. 마치 아기를 낳을 때 산모가 진통을 겪는 것과 같은 수고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없이는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 단어는 “계속해서 경주하는 노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수고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택함받은 자가 맺어야 할 열매는 소망의 인내다. 여기에서 소망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역경 가운데서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는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가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보여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는 감사의 복음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예원교회 담임, 예장 개혁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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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적자 인생
- 성경은 나누라 주라 도우라 함께 하라고 권면하신다. 특히 율법서에는 많은 계명들이 있다. 그 모든 계명들의 주어는 내가 아닌 너이다. 그래서 모든 계명의 정신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돕고 함께 하고 나누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마25:40)이라고 강조하신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런 경우를 비유로 주신 말씀일 것이다. 광야를 지나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다. 그때 그곳에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다. 그들은 그 위기의 사람을 목격하고도 그냥 가 버렸다. 자칫 잠시 머물다가는 자신도 그런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은 그렇게 그냥 지나가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자책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 곁을 지나간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그 상황을 목격하고 주저하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돕고 보살피고 협력해서 살려낸다. 그 사마리아인은 그 시대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해온 사람이다. 그 비유의 의도는 그 시대 양심과 영적 타락상을 고발하기 위한 비유였다. 그리고 주님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인가 하고 진지하게 물으신다. 그 곁을 지나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그것도 문제지만 누가 그 사람을 도와준 진정한 이웃인가를 강조하신다. 오늘 이 시대를 보면 강도만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우리 주변 가까운 곁에 있다. 엊그제 산불로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일찍이 없던 규모의 산불이었다. 그 산불로 졸지에 집과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수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하였다. 얼마나 망연자실할까. 어느 순간 갑자기 상상도 하지 못한 불길이 내 집을 삼켰고 내 터전을 불태워버렸다. 그 사람들이 오늘 강도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아마 사마리아인의 관심일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손길, 배려, 격려, 돌봄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자인생들이다. 이같은 강도만난 사람들을 헤아리고 관심쏟다 보면 쌓아놓고 무관심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주머니와 중보기도 곳간이 적자를 면할 날이 없게 된다. 우리로 하여금 적자인생으로 살아가도록 격려와 은혜를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이 곁에 계시기에 우리는 매일의 삶이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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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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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적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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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사순절 문화적 금식 및 절제 실천하자.
- 사순절은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애통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간절히 구함으로 신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에 필요한 영적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가지는 기간이다. 40일간은 특별히 그동안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지나쳐 온 죄나 은밀하게 행한 죄를 회개하며 새사람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기간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 안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죄성을 슬퍼함으로 옛사람(죄성)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의 본성)의 옷으로 갈아 입는 성화의 삶을 훈련하는 기간이다(엡 4:22-24). 오늘날 우리나라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관련 국론이 분열하여 찬성과 반대 국민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의 입장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자기중심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나라의 혼란 속에서 우리들이 자기의 입장을 표명하되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며, 헌법 기관의 심판을 기다리며, 이 기관의 이념에 따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르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죄와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며 중보 기도하는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역사 이래 오늘 시대만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우리나라를 헬조선(hell朝鮮)이라고 부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시대만큼 탐욕과 과소비 향락이 만연한 시대도 찾기 어렵다. 기독교인들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에는 기독교와 신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오늘날 대한민국에 만연한 국가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의 책임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순절 기간동안 기독교인들은 금식과 특별새벽기도 등 영적인 절제와 청빈의 삶을 실천하자. 그러나 거기에 더해 음식과 의복 그리고 생활방식 등에서도 비싸고 화려한 것들을 피하는 등 육적인 절제와 청빈의 삶도 실천하도록 노력하자. 이를 위하여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구하는 오락이나 유흥 향락을 피하고 문화적 금식을 함으로 영적 육적 경건의 훈련을 했으면 한다. 탐욕, 과소비, 향락을 멀리하고 물질적 금식 뿐 아니라 문화적 금식을 실천하자. 가난한 이웃, 소외계층, 외국인, 탈북민을 돌아보아 구제에 힘쓰자. 사순절 기간 동안 교회와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낮아지심의 의미를 기억함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들을 돌아보아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실직자 가족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 고아, 독거 노인, 가출 청소년, 청소년 가장, 노숙자, 쪽방촌 등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자.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탈북민 등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 또는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을 찾아 사랑의 나눔과 구제를 실천하자. 우리의 북한 동포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중동 가자지역에서 고통당하는 이재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전쟁과 살육과 재난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의 작은 것들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도록 힘썼으면 한다. / 기독교학술원, 샬롬나비대표,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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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사순절 문화적 금식 및 절제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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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빛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태양 등 자연계의 빛이 있고, 또 하나는 피조 되지 않은 빛이 있는데 그 빛은 태초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비추시는 빛이다. 한편 사람도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과 그의 후손인 인간들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성육신하신 인간 예수이시다. 만약에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지 않고 성부 하나님 본체 그대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면, 하나님 자신은 형이상학적 존재로서 고통을 체휼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경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죄와 파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며 육체적 고통, 정신적, 영적 고뇌를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이 곧 십자가라고 하였다. 바울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하였다. 성 프란시스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뒤, “오! 주님 제가 죽기 전 저로 하여금 저의 육체와 영혼이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신 뜨거운 사랑을 저의 마음속에 간직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주안에서 믿음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뜨거운 피가 지금 우리의 가슴에 떨어지고 있으며 그 피가 마음속에서 회개와 사역의 동력으로 역사하고 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은 마치 그의 공생애 초에 산상에서 선포하셨던 팔복에 대한 결론과도 같이 진귀한 교훈을 남기셨다. 그중에 마지막 운명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신 말씀은 인류 구속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였다는 승리의 외침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개선의 부르짖음이요, 사탄의 왕국을 정복한 승리의 함성이었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해서 만민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예장합동선목측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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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실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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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도는 예수파입니다
- 미국에서 목회할 때 어느 식당에 갔다가 서로 마음이 상하여 헤어지는 어르신들을 보았습니다. 시국에 관한 견해 차이로 심히 다툰 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욕설을 퍼붓고 나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 정치가 달라진다고 미국에 사는 두 분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것 같은 데, 친구 사이를 가를 만큼 심각하게 다투는 것이 웃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두 어르신이 다툰 내용은 어느 정치적 사건을 두고 “좌파”가 옳다, “우파”가 옳다 하는 문제였습니다. 각각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정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우파는 인간에게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좌파는 <평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편의상 구별하여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파든 좌파든 그 본질과 목적은 국민의 살림살이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든 인간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삼는 것입니다. 역사상 독재자들은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것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치세가들은 이데올로기보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풍성하게 하며, 화평하고 하나 되게 하려고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식탁에 올라오는 파김치보다 못한 것이 파벌논쟁입니다. 양파나 한파는 몸에 좋은 것이지만, 우파나 좌파는 허구한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이런 허구적인 논쟁에 휩쓸려 국론을 분열하고,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고, 우정을 망가뜨리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엣날 덕망있는 선비들은 ‘야(野:민간)’에 있을 때는 ‘조(朝:조정)’를 근심하고, ‘조’에 있을 때는 ‘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늘 조야(朝野)가 협력하여 국사를 잘 다스리므로 백성들에게 태평성세를 살게 했습니다. 요즘처럼 조는 야를 정복의 대상으로, 야는 조를 타도의 대상보고 으르렁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9) 그러므로 기왕에 파에 속하려면 예수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얼마전 예장 고신교단 총회장님과 만났습니다. 고신 총회장님께서 저를 환영해 주시며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는 우리 예수파들이 연합하여 선교14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와 일치와 협력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도 오늘날 양극화가 심화되어 국민들의 탄식이 깊은 한국사회와 교회에 ‘희망의 신호’라고 동의했습니다. “막힌 담을 헐고 하나되게 하시는 예수님”(엡2:14)을 본받은 고신 총회장님과 함께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 나가는”(엡4:3) 예수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님은 모두 예수파입니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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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도는 예수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