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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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후안무치의 세대
         우리는 염치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에 살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은 허탈함을 넘어 절망에 이르는 수준이다. 국민소득 삼만불·경제대국·일류아이티산업·조선산업·K문화 등 정량적 면에서 선진국에 가까워졌으나, 정상적 면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이러한 괴리가 오늘 진통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성취를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정치꾼들·법률보다 이념에 따라 판결하는 판관들·저울을 속이는 장사꾼들·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환자들을 나 몰라라하는 의사들·사람을 쉽게 죽이고도 자책이 없는 살인자들 그리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큰소리 쳐대도 아무렇지 않는 세대에 우리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정말 인간다움을 포기한 듯한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모습일까! 생명경시·물질만능·이기주의·도덕불감증·가치관상실 등 이런 것들의 극복없이는 사회의 병폐는 치유될 수 없으며 국가의 밝은 미래는 담보되지 못한다.    이제 교회가 하여야할 일은 뚜렷해졌다. 우리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성경적 가치관 회복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회교육과 학교교육이 붕괴되고 가정교육마저 상실된 현시점에서는 교회교육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공공의 선이 우선되는 가치관·너와 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통합·도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건설·각자의 깨끗한 삶과 정직한 삶 그리고 나라사랑함,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고 교회도 존재하기 어렵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한국교회가 이 일을 감당함에 있어 절대적 명제는 하나님께 의뢰함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나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 나라를 보우하사 아름답고 튼튼하고 정의로운 나라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부여하실 세계사적 사명을 감당하며 그 안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되게 하소서 아멘” /서울신대 전 총장·한기총 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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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3-05
  • [사랑의 실천] 성경으로 돌아가자.
       종교개혁자들이 뼈를 깎는 자성과 함께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해 체득된 신앙의 노하우, 생명을 내건 투쟁의 목표는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사도들의 전승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사선(死線)을 넘나들면서까지 이렇게 항거(Protest)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반추해 볼 때 교회가 부흥하던 다섯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 시기는 A.D 100년을 전후해 사도들이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던 시기요, 두 번째는 A.D 300년에서 430년 사이 황금의 입으로 불리며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전했던 크리소스톰과 기독교의 교리체계를 확립한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수도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2세기에서 13세기로 이때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를 말씀으로 밝히던 시기입니다. 다음은 16세기인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펼쳐졌던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에서 존 웨슬리와 요나단 에드워드, 찰스 스펄전 등이 주도하던 각성 운동의 시기입니다.    지난 2천 년 역사 가운데 다양한 교회들과 메신저들이 존재 하였지만 이 다섯 시기에 가장 안정되고 성경적인 건강한 부흥을 이룩하였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 보니 로고스로 기록된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올곧게 전하던 말씀의 사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회복과 부흥을 갈망하는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자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두말없이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회복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의 회복이며, 이렇게 될 때 실추된 교회의 권위 역시 회복될 것이고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신인(神人)관계가 뒤틀린 데서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시 147:18) 그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고 살리는 일(시 119:50)을 하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성육하셨기에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예수님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길 때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평안해지듯 말씀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신측 총회장·예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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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2-20
  • [사랑의 실천] 선한 목자 리더십
        성서에 나오는 여러 비유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슴뭉클한 비유가 있다. 바로 목자와 양떼의 비유이다. 그런데 이 비유속에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외에 더 깊은 내용이 있다. 바로 양떼는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목자가 앞서가면 따라간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양떼가 그 목자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꼴을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그 목자에게 맡길만큼 절대적으로 목자를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 목자에 대한 백퍼센트의 신뢰가 없다면 양들은 그 목자의 음성을 무시할 것이다. 그때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해 볼 수 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전적인 신뢰로 그 목자를 따를 수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이름 몇 번 불러주고 엉덩이 서너번 두드려 주었다고 양떼들에게 그 목자의 음성을 믿고 따르는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르기 까지는 생명을 나누는 전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목자는 아침마다 우리에 들어가 양들을 쓰다듬으며 잠에서 깨웠을 것이다. 더러운 양들은 목욕을 시켜 주었을 것이고 상처난 양은 싸매주고 치료해 주었을 것이다. 눈꼽 낀 양은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 주었을 것이다. 더러는 약한 양이나 병든 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목자는 밤새도록 그 양을 가슴에 안고 토닥여주었을 것이다. 양들이 위급에 처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구해주었을 것이다.        그 목자는 양들이 잠들기 전에는 먼저 잘 수 없었고 양들이 먹기 전에는 먼저 식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양들은 목자를 믿게 되고 목자의 음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속에서 작은 목자이다.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목자이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목자이다. 직원들에게는 사장님이 목자이다. 백성들에게는 대통령을 포함하는 모든 지도자들이 목자이다. 조만간 나라의 일군을 뽑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다.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지도자, 백성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려주는 지도자, 백성들이 전폭적으로 그 음성을 듣고 의심없이 따라가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그런 참으로 선한 목자같은 나라의 일군들을 기대한다면 너무 지나친 한 마리 양떼의 과욕일까?/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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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2-05
  • [사랑의실천] 야곱의 씨름
       주님을 쫓아 사는 것은 종종 아픔이 따른다. 어떤 경우는 한시적이나마 나를 낳아준 부모를 버려야 할만큼 뼈아픈 일도 생기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물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런 것들에 얽매여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은 평생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뿐 결국 손에 쥐는 것은 허무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하는 회한이 그를 잠식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참 용기를 아는 사람들은 한시적인 이런 고통들을 참아낸다.야곱이 그런 인물이었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멀쩡하던 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잘 모를 만큼 극심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가진 이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결심으로 그 샅바를 놓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간혹 이런 고통 속에 처해진다. 일주일마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바쳐야 하고 그러다 보니 세상 일에 또는 사람들과 소홀해지기 쉽다. 이런 것은 그래도 감수하기가 쉬울 수 있으나, 내가 세상에서 취득한 모든 경험과 재산, 가치관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치면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    마치 자기 스스로를 송두리째 부인해야 하는 것만 같아 자기 안에서 또 다른 자기가 극심하게 반발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과거를 완전히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말씀하신 것도 세상의 것은 일단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는 작업이며, 영원히 사는 길을 가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의 편에 서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인생의 짧은 경험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역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고 자기의 보잘것없는 헌 부대를 버려야 한다.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독을 내미는 부모는 없다. 이것이 독인지 떡인지 미리 먹어보는 위험을 감수할망정 자식을 사망의 길로 이끄는 부모는 없다. 하물며 태초부터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신 분이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이끌겠는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높고 깊다. 야곱이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을 받기까지 그 또한 연약한 인간이었고 얄팍한 경험과 지식을 잣대 삼아 세상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만일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참으면서도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우리의 손에 무언가 쥐고 있는 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굳게 믿고 실천한다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서 영원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예장 합동한신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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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1-23
  • [사랑의 실천] 인생의 커다란 밑거름
         1977년 3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여 입학식을 한지 벌써 46년의 세월이 금방 지나가버렸습니다. 고 김연준 총장님의 훈화의 말씀과 교훈(校訓)인 ‘사랑의 실천’이 가슴에 뜨겁게 와닿았습니다. 그해 1학년 1학기말 종강파티를 마치고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져 한 달 반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병석에서 신음했습니다. 그러다 아픔 속에 있던 저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을 읽고 죽을병에 걸려 고생했던 것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기적적인 치유로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오게 되었습니다.     행당동산을 떠난지 46년이 흘렀지만 그 때의 ‘사랑의 실천’은 그 후로도 저의 일생의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야간신학교(성서침례신학교)와 함께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수도경비사령부 군종사병)에 다녀와서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프린스턴신학대학원(신학석사)과 시카고신학대학원(철학박사)에 가서 공부할 때도 ‘사랑의 실천’은 저의 학업의 기초가 되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는 말씀을 따라 치유상담을 연구하고 치유목회에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전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26년 째 가르치다가 정태기총장님의 뒤를 이어 총장이 되고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의 총회장까지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저의 신앙과 삶의 기초가 된 행당동산에서의 ‘사랑의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려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다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9~17)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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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1-09
  • [사랑의실천] 탈북 가정에 복음통일의 마중물
    ◇ 고향에 갈 수 없는 탈북·다문화가족들이 추석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붕어빵을 굽던 삶에서 영혼을 낚는 어부의 삶으로 전환 예수마음교회. 탈북 어린이들을 통일한국 인재로 양육   강화에 자리한 예수마음교회의 담임인 이무열목사(사진)는, 사업의 실패로 어려워진 생계를 잇고자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고, 1년 반을 매일 전도지를 나눠주며 장사했다. 그런 그에게 교회 성도들은 “물고기 빵만 구울 게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기도 끝에 교사로 봉사하고 있던 그는, 그저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씀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광신학대에 입학했다. 그 후 이목사는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준 것 같이 너도 탈북자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어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연고도 없는 김포에 무작정 정착했다. 한국에 가족이 없는 탈북 청소년 10명과 함께 개척교회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택에서 아이들과 살며 이렇게 탈북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하는 소중한 교회가 탄생되었다. 이목사가 시무하는 예수마음교회는 크게 3가지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 ‘우리두리하나센터’ 사역이다. 이 센터는 탈북 청소년·다문화가정 및 위기가정(아동학대 등) 청소년 “5대 영역의 빈곤 퇴치”를 목표로 2012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5대 영역의 빈곤퇴치는 △경제적 빈곤퇴치 △사회 정서적 빈곤퇴치 △교육을 통한 지적 빈곤퇴치 △영양실조 및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신체적 빈곤퇴치 △인간의 존엄성을 알게 하는 영적 빈곤 퇴치를 말한다. 두 번째는 ‘진심예배’ 사역이다. 매월 네째 주 주일에 '진심예배‘가 열린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과 북의 성도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예배하며, 남한과 북한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자는 의미를 담아 ’진심‘이라 이름 지었다. 이목사는 “예수마음교회에 북한에서 온 친구들만 공동체를 이루면 또 하나의 북한이 되고 마는 상황을 많이 봤다”며, “남한 아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진심예배는 여느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완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전문가를 초청해 통일에 관한 강연을 듣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통일 한마당‘ 사역이다. 매년 명절에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 가족들을 위한 위로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에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갈 수 있는 고향도 없는 외로운 나그네 같은 이들이 서로 위로하고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다. 참석자들은 매년 서로를 가족처럼 챙기며 풍성한 한가위를 보낸다. 송편을 비롯해 북한의 전통음식인 두부밥과 인조고기를 만들어 먹으며 정을 나누고, 윷놀이 등의 게임으로 마치 고향에 있는 것과 같은 명절 기분도 누리게 된다. 이목사는 “참석자들이 행복한 통일 한국을 이곳에서 경험하길 바란다”며, “다양한 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한다. 끝으로 이목사는 “통일이 되어도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을 처음부터 환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때문에 이 아이들이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성장해서 통일한국에 가교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바램을 전했다. 예수마음교회는 지난 달 25일 성탄절에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성탄찬양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탈북·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산타가 되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우리 사회의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로 진행되었다.   또 이목사는 예수마음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역인 ’숨, 쉼, 삶 힐링센타‘사역에도 많은 기도를 부탁했다. 이 센타는 쉼과 안식이 필요한 탈북인과 일반인들을 위한 안식의 터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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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12-26

실시간 사랑의 실천(칼럼) 기사

  •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 한영훈목사 최근에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로 인해 주변 국가들과 다양한 측면에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미 사드 문제로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여 관광을 비롯한 경제 제제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적대 국가인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하여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여 한국 경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군용기는 중국과 함께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들어와 독도 영공을 침범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불안정한 국제정세는 한국 사회를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하였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도전과 위협이 증가하는 시기에 한국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한국교회는 점증되는 강대국의 영향력에 직면하여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군사적 지배와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세금 납부를 강요한 로마의 경제적 압박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로마를 물리치려는 열성 당파의 과격한 정치, 군사적인 방식을 거절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여 로마의 경제적인 세금 정책에 면죄부를 주었다.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질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죄로부터 영혼을 구원하여 사단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 창조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국가의 백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 백성을 창조하는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열강들의 움직임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처럼 세상의 흐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유익한 방향으로 국제질서가 형성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기독교 복음이 세상에 확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혼 구원이 최우선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본질적인 문제인 만큼 선교적인 마인드로 세계 질서의 재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광복절이 열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해방을 넘어 죄와 사단의 영향 아래 고통받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출애굽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해 본다. 여기에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의 나아갈 영적인 길이 있다. /서울한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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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8-06
  • 전원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자연 안에 살면서도 자연을 초월하여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통제하고 이용한다. 이용하기 위하여는 인간이 만든 도구로 자연을 인공화해야 한다. 인공적인 기술 문명이 발달될수록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진다. 생활의 편리와 번영을 위하여 현대 기술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거기에 집결한다. 도시화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은 자취를 감춘다. 흙은 시멘트의 굳은 껍질속에 눌려 버리고 나무나 풀은 뿌리째 뽑혀 나가고 그 자리에 건물이 서고, 푸른 언덕은 불도저 앞에 허물어져서 대단위 주택 단지가 세워지게된다. 도시 속에서 자연이 저절로 사라져 간다. 인간이 자연에 굴복해서도 안 되지만, 인간이 자연을 학대하고 그 아름다움을 빼앗고 황폐하게 하는 폭군 노릇을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자연을 보호하고 그것이 본연의 생태를 간직하면서 인간 생활과 협동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을 보면 자연이 얼마나 학대받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도시화의 급속한 과정을 밟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인간은 도시 속에서 자연의 천연성을 잃고 비인간화의 구렁 속에 던져질 것이다. 탐욕과 살벌한 경쟁 의식과 부정과 부패가 갈수록 인간성을 먹어 들어갈 것이다. 이른바 선진 국가 사회에서 청년들이 기성 세대에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주로 기성 사회의 지나친 인공적·비자연적인 생활 양태에 싫증을 느낀 까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생활 구조 속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는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새로운 생활 기류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도시의 심각한 공해 문제도 이런 전원화 운동에 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원의 아름다움과 그 건전성, 천연성이 새로운 생활 가치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농공 병행 정책과 아울러 전원화의 생태학적 평가도 실행되어야 한다. 전원화 운동을 위하여는 도시와 농촌의 경제권을 일원화해야 하겠지만 우선 교통의 편의와 문화의 교류, 그리고 보건 위생 시설의 개선 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책이 실현되기까지는 전원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는 체념 상태에 머물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우선 도시와 농촌의 생태를 비교하여 전원의 가치를 드높이는 운동부터 장기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복잡하고 긴장된 도시 생활이 인간에게 미치는 노이로제 증상의 급증과 농촌의 자유롭고 유장한 삶, 도시의 각박하고 답답한 공가과 농촌의 시원스럽고 넓은 공간감, 맑은 공기와 자연 그대로의 산하 등등을 소개하여 도시인의 전원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겠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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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30
  • 기독교교육이 필요한 시대
    인류는 지금 두 가지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이다. 구글에 속한 ‘딥마인드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기사의 역사적인 대국이 벌어진 지 3년이 지났다. 대국 이후 교육부와 전국의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재양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혁신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의 도전 역시 심각하다. 현재 추세라면 급격한 온난화를 피할 수 없고 해수면 상승을 비롯해 파국을 초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로 인해 생명체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견해에 있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로 나뉘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를 위협했던 여러 도전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많은 기회와 자유를 선사했듯 4차 산업혁명도 궁극적으로는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낙관주의의 인간이 죽음조차도 극복하고 신체를 교환해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는 트랜스 휴먼, 즉 신인류의 탄생까지 기대한다. 반대로 비관주의자들은 인공지능과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절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인공지능을 ‘마지막 발명품’이라고 부르며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 것라고 주장한다. 또한 지구환경을 ‘가이아’로 비유하며 인류에게 받은 상처를 깊기에 인류 문명을 파괴함으로써 복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두 가지 도전은 모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과 아울러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고 깨닫는 실천적 학문이다. 기독교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돌보고 사명을 부여받았고, 다른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성공회대 총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24
  • 자사고 폐지보다 대입제도부터 개선하자
    자사고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약칭이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라 불리는 국정과제와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 관계법령 제·개정에 의거하여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학교별로 다양하고 개성있는 교육과정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고등학교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수익자가 교육비를 부담하고, 교육과정 운영도 학교가 선택하는 자율학교다. 사립법인의 재정자립도와 학교경영의 투명성 및 장학제도, 학생후생복지제도 등을 종합평가하여 학교를 선정하며,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지정된다.  학교의 운영은 교육개혁의 목표가 학교현장에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며 현행 교육관계법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규제를 최소화하여 자유롭게 학교를 운영하여 궁극적으로는 각급 학교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다양한 학교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신축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교사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교육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든 교육활동에 관한 사항을 단위학교 자체에서 결정하고 조성할 수 있다.   좋은 취지로 설립된 자사고가 적폐청산의 대상처럼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까지 내걸고 있는 현실은 또 무엇 때문일까?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교육감의 정치적 이념 때문에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지구촌 한마을시대의 유능한 인재양성을 위해서 자사고는  필요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빈부의 격차로 발생되는 교육의 불평등 문제는 사회적 합의로 풀면 된다. 자사고 문제는 대학입시제도의 문제라고 본다. 자사고의 폐지보다 대입제도부터 개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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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18
  •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위기란 위험하지만 기회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위기로 알고 돌이키면 한국교회가 다시 살고 부흥할 수 있으나 위기로 인정하지 않고 이대로 가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촛대를 옮기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성장케 하심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경종의 소리와 세상 사람들의 쓴 소리에 귀를 막고 있었기에 자기 혁신 없이 교회가 부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여기 저기서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가중되고 있고 세상도 깜짝 놀랄 일을 서슴없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각 교회의 총회장(감독)선거나 연합기관의 회장을 선거하는 일에 노골적으로 금력이 난무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물질과 성적 타락과 폭력과 명예의 다툼은 끊임없이 세상에 보도되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영적 권위는 이미 상실되고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향해 개독교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어느 누구도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처럼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도리어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처럼 쇠퇴해 가고 있는 징조가 이미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이 책망하신 말씀에 우리 모두 청종하고 회개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국교회가 살고 다시 부흥의 축복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어느 젊은 목회자가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고〉란 책을 썼는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에 절망이 되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 교회가 세상을 향해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게 되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이 기회에 초심의 신앙, 결심,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감 전 감독회장·비전교회와함께하기운동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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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18
  • 거짓 이기는 정직한 삶
     거짓은 허위, 사기, 헛소리, 가짜란 말로 쓰인다. 거짓말의 종류로 유언비어, 거짓증언, 아첨하는 것, 약속을 어기는 것 등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을 하는 자의 결과는 심판과 저주가 가득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업으로 받는다”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눈 뭉치처럼 자주 하면 커진다. 한 번 하면 두 번 하고, 열 번 하면 백 번 하는 게 거짓말입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창호는 “농담으로도 거짓을 말하지 말라. 꿈에라도 정직을 잃었거든 통회하라”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농담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 탈무드에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설 수 없는 사람을 거짓말을 하는 사람, 중상모략하는 자, 이간질시키는 자, 불순종하는 자, 교만한 자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조사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여 조사한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 번꼴로 총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사람이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이라도 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공인들이 상습적으로 쉽게 거짓말을 하거나, 정치적 득실 때문에 상대를 모함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너무 짙어졌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뻔뻔하게 변명을 일삼는 낯 두꺼운 모습을 너무 자주 보인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최근 구직자 1026명을 대상으로 ‘취업성공을 위해 거짓말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당한 수준으로 거짓말하는 것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에서 거짓말하는 것으로 총 53.7%가 거짓말을 할 의사가 있다고 나타났다.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나라가 잘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거짓말하면 망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흥하는 축복을 받자.  /강남금식기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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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09
  • 가문의 철학으로 여깁니다
    ▲ 김연준박사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양대학교의 교훈은 ‘사랑의 실천’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독교 신자이니까 기독교의 사랑과 연결지어 성경에서 그 말을 가져온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종교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성장기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가 있는데, 굳이 근원을 따지자면 철학적인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자산에 나의 인생 철학을 보태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비록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참된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랑의 실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실천’이라는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할 때에는 교회나 사회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세기 전에 나는 이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의 실천 정신임을 간파하고 줄기차게 그것을 외쳐 왔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은 내가 처음으로 만들고 또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당시의 학생들은 잘 이해를 못했으나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이해를 한다고 하였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해 온 것도 사랑이란 먼저 주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당시에는 어려서 그 깊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사회에 나가서 현실에 부딪혀 보니까 저절로 터득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교직원들 가운데도 ‘사랑의 실천’을 가훈으로 정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가정과 가족 구성원으로까지 넓고 깊게 확산되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훈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점이다. 우리 사회의 개개인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의 인류 모두가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는 때가 오면 인류의 역사는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생각하고 또 교훈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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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7-02
  • 지도자 다윗
    ▲ 이홍렬목사  토끼가 이끄는 백 마리의 사자보다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의 토끼가 강하다는 의미의 말이 있다. 리더십의 중요성을 설파한 말이다.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다시 한번 살펴볼 인물이 있다. 바로 다윗 왕이다.  다윗은 유대 역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만든 인물이다. 여러 가지 신앙적 차원에서의 공과가 있으나 리더십의 측면에서는 참으로 기억할 점이 많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다윗의 포용의 리더십이다. 비록 통일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북쪽 10지파의 정서는 여전히 사울을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사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다. 이때 다윗은 몰락한 사울 집안에 남아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가 므비보셋이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온전히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를 데려다가 아들처럼 온전한 왕자 대접을 했다. 재산을 나눠주고 하인들을 붙여주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던 원수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포용했다.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도 없었다. 짐이 되면 되었지 도움이 못 되는 인물이었다. 바로 여기, 원수의 손자까지도 포용하는 그 넓은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모든 백성의 마음까지도 통일시킬 수 있었던 다윗 리더십의 본질이었다. 다윗을 한 번 더 들여다보자. 정적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보셋의 신하가 자신의 왕을 배신하고 그의 목을 쳐서 다윗에게 가져온다. 이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이스보셋의 목을 쳐온 그 장수들을 죽여 수족을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 비록 원수 사울의 아들이지만 그 사울 가문의 권위와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은 북쪽 10지파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마주 서서 노려보고 째려보기’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직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없다. 평화가 사라진다. 다윗은 자신의 정적인 사울까지도 포용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의 리더십이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우리 교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 다윗 같은 포용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새길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6-26
  • 감정과잉시대
      유통이나 서비스업계에는 ‘진상’이라는 속어가 있다. 진상은 임금님께 지방특산물을 바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진상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 워낙 패악이 심해 백성들이 ‘원망’의 뜻을 담아 ‘진상’을 회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례한 말과 태도로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행위, 또 그런 사람”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진상’은 감정과잉사회의 특징으로 감정조절 불능의 ‘또라이’를 말한다. 진상에는 양대 법칙이 있다. 하나는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줄 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진상은 주로 유통업계에서 만나는 고객들의 갑질을 비유하면서 유행했지만 이제는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형태로 번지면서 우리 모두 너나없이 진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이루어낸 역사를 통해 70년 전 같은 출발선에 있던 국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높은 민주, 권리, 평등의식과 정의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진상들이 판을 치는 감정과잉사회에서 살아야 하나. 혹시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집단 ‘진상’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구촌은 냉정한 사회다. 자칫 우리들의 감정과잉사회가 지구촌에서 ‘진상’이 되지 않도록 할 때가 됐다.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배려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진상 짓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하고, 비용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정치판의 싸움질은 이런 진상의 모범답안 같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진상의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우리 모두는 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옳기만 한가?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한 것은 ‘진상’일까? 정상일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진상’일까? 정상일까? 감정과잉시대는 진상들의 갑질시대다. 기독교인은 예수의 피 앞에 사랑의 빚진 자다. 이 빚진 자의 겸손이 감정과잉시대의 치유가 될 것이다.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명예회장·서울성서교회 원로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6-19
  • “화합되는 민족혼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크신 은총을 온 누리에 펼치자 이 땅 위에서 삶이 의미를 갖게 하셨나이다. 보이는 산과 바다 흐르는 계곡 속에서,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하늘의 섭리를 보게 하셨나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이 이웃이 사촌이었던 선인들이 고수해 왔던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아끼고 가꾸며 사랑을 나누어 먹고 살게 하셨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땅이 둘로 나눠져 있나이다. 새도 날아다니고 하늘의 흰구름도 하나로 보이건만 땅은 둘로 나눠져 버렸나이다. 역사의 주가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천지의 주재가 되셔서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구원의 은총을 선포하셨기에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리나이다.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 형제가 되는 내 핏줄 혈육에게 의심과 미움, 증오의 칼날을 갈고 형제된 내 핏줄을 적으로 삼았나이다. 남과 북이 한 동포인데도 온 강산이 피로 물들게 되었고 그 핏빛이 온 산야에 적셔 스며듦으로 인하여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그어 놓았나이다. 주여 우리의 우매함을 포용해 주셔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새 삶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시옵소서. 형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형제의 심장에 칼을 꽂고 져 하는 생각과 이념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의 심장부에 성령의 역사로 태동하셔서 먼저 남북의 교회가 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그 다음 겨레가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셔서 통일의 새 날과 평화의 잔을 마시게 하옵소서. 예정하신 그 날에 휴전선 철망이 새 조국의 건설 자재로 쓰여지게 하시고 육중한 무기들이 농기구가 되며 가공할 핵무기가 어둠을 밝히는 새빛되어 민족의 서광이 환하게 비쳐오게 하옵소서 하늘에는 영광의 노래가 퍼지고 땅에는 통일을 껴안는 평화의 기쁨이 충만케 하시며 땅 아래 불 밑에서 도도히 정의의 물줄기가 강산을 휘감게 하옵소서. 한라산 정상에서 백두산 정상으로 서로가 화답하는 순결한 민족혼이 정기되어 서리게 하옵소서. 즐거운 환희와 꽃향기가 강산으로 평화되어 퍼지게 하옵소서. /예장 합동한신측 증경총회장, 목포중부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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