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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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한국교회는 가난과 빈곤의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빈곤퇴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은 성경에서 큰 주제이다. 무엇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굶주림과 가난에 대해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5천명의 사람들이 굶주렸을 때 예수님은 그 배고픔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봤다면 대중들에게 집에 가서 알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굶주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한 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다. 비결은 감사와 나눔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 작은 것을 받고 감사한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라고 했다. 그랬을 때 5천명이 함께 먹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 사건에 주목해야한다.    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개인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오늘날 빈곤은 개인의 차원을 떠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현상, 즉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빈곤의 구조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워킹 푸어의 기원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가난한 자들로 나위는 심각한 양극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조적이고 심각한 양극화는 인간을 더욱 비참한 존재로 만들 것이고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치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시민사회와 더불어 함께 나서야 한다. 물론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정치권의 몫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지를 위해 기부와 선행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자기비움이야 말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상을 더욱 높여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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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개혁은 과제가 아니라 생존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을 맞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1517년 독일의 한 작은 성당문에 붙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새로운 역사, 문명, 사상, 종교의 시작이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과 유산 위에 서있다. 그래서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망해가는 조선에 개혁과 변화를 이끌었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이 교회에서 장로가 됐고, 백정의 아들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됐다.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던 소녀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후예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한 두 해의 문제는 아니다. 또 종교개혁을 맞을 때마다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개혁을 실천할 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개혁은 과제가 아닌 생존이 됐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더 깊은 침체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방향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친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있던 것을 회개하고 반성해야 한다. 부흥하고 성장했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건물보다는 한 영혼을, 성장보다는 나눔을, 권력보다는 섬김이라는 개혁의 본질로 나가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변화와 개혁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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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생명보호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등 기독교단체가 참여하는 ‘생명을 위한 40일간의 기도’가 시작됐다. 전 세계 64개국 900개 도시에서 10만명이 참여하는 이번 기도는 매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교회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73년 여성의 합헌적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전투지가 되었다. 기독교적 가치 및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기독교 진영과 이를 적대시하는 또 다른 진영의 권리(동성결혼 합법화,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법 등)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프로라이프는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의 슬로건으로서 개별적인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저마다의 정체성과 고유의 활동을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궁극적으로 ‘생명권 보호’라는 기독교적 생명윤리를 지향한다. 프로라이프는 낙태 허용을 주장하는 ‘프로초이스’ 진영과 첨예한 대립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 대립은 단순히 개인의 의견 대립, 또는 시민단체 간의 대립을 넘어 ‘공화당 대 민주당’이라는 정당적 대립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많은 프로라이프는 단체들은 고유의 활동들을 통해 임신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돕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위기임신센터 운영, 산전 무료 초음파검사 제공, 상담 서비스, 낙태 클리닉 앞에서의 시위, 낙태 반대 행진, 청소년 교육, 교회와 협력을 통한 생활 보조, 입양 연계 뿐 아니라 낙태 반대 입법을 위한 의정활동까지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실제로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현재 미국에는 낙태 클리닉보다 임신 돌봄센터가 더 많아졌다.   성서는 태아 역시 존엄한 생명이라고 제시한다. 따라서 교회는 태아를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기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산모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한다. 산모가 건강해야 태아도 건강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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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0-05
  • 총회서 위임한 안건, 임원회 처리 주목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총회장=배광식목사)를 비롯한 통합측과 고신측, 백석측 등 장로교단 총회가 폐회했다. 이번 총회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기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로 말미암아 단 하루만에 회무를 처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부분 총회에서, 정해진 안건, 총회예산안 등을 통과한 후 총대들이 위임한 안건과 각종 분쟁 사건 등은 총회임원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또한 회의록채택 등 잔무도 임원회에 위임하고 파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합측과 합동측의 경우, 과거 4박 5일간 처리하던 회무를 처리하다 보니까, 잔치 분위기에서 치러지던 총회 임원선거 수기 투표를 하지 않고, 전자투표로 실시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합동측 총회에서 실시된 임원선거 시간에 총회 현장을 벗어나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결국 총회에 출석한 총대수와 곧 이은 투표에 참여한 총대수가 다른 역사상 초유의 결과가 나와 일파만파 파장이 일고 있다. 서기는 재석수를 계수도 하지 않았고, 기표소 앞 선거인명부 설치 및 본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이날 총회 출석 총대는 총 1,180명이었고, 3개 교회로 분산돼 전자투표방식으로 투표한 결과 총투표수가 1,436명으로 처음 출석총대수보다 256표 더 많았다. 이에 따라 18표차로 낙선한 목사 부총회장측이 이를 문제 삼아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총회 임원회가 기각했다. 3년 전에도 제104회 총회에서선관위가 위탁한 전자투표업체 시스템 오류로 인해 임원선거와 재판국원·선거관리위원 투표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제 9월 총회가 끝났다. 이후 총회 임원회가 위임받은 안건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 안건들은 교회성장과 부흥, 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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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0-05
  • 사립학교법 논란이 우려된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지난 8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논란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예정된 수순이다. 핵심은 인사권 문제이다. 개정한 내용에 따르면 교원을 임용할 때 필기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험을 시·도교육감에게 위탁하도록 한다 것이다. 사실상 정부가 인사권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사립학교법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는 선교 이래 가장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는 학교 설립정신과는 무관한 인사가 학교 이사로 선임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개방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개정안대로라면 신학대학교 이사에도 타 종교인이 들어 올 수도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실제로 경기도 안양의 한 기독교대학에서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교육으로 기여한 부분은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혁혁하다. 봉건적 조선에 기독교는 근대적 교육의 정신과 시설을 심었다. 그리고 이 뿌리에서 자주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끝내 해방과 독립을 쟁취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과 어려움 속에 대한민국이 지금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교육의 힘이었다.         정부는 한국교회가 이룬 이러한 교육적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결정했으니 너희는 따르라’는 식의 강압적인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계가 어떤 이유에서 반발하는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 더욱이 현 정부는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대화와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왜 정부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는지 그 원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기도교계통의 사립학교에서 교원임용을 두고 소위 ‘사학비리’가 횡횡하고, 그래서 결국 당사자들이 감옥에 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정부의 진지한 소통과 교계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서로 함께 할 때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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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9-13
  • 추석과 추수감사절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이다. 해마다 음력 8월 15일에 지키고 있으며,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신라시대에는 가배라고 하였다. 그 말이 변하여 ‘가위’가 되었다.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에 「춘조월 추석월」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추석에는 햅쌀과 술과 떡을 빚고, 갖가지 음식과 오색과일을 갖추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또한 산소에 찾아가 성묘를 하고 효의 사상도 나타냈다.     이 추석을 맞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교회가 11월 셋째주일에 지켜왔던 추수감사절은 추수가 지난 후에 지켜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정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시기는 추석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전했다. 미국에 이민을 왔던 청교도들이 거친 땅을 개간하여 감자와 밀, 옥수수를 심고 수확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후에 미국 국회에서는 11월 제4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고, 전 국민이 이날을 추수감사절로 지켰다. 미국에서는 이 추수감사절과 12월의 크리스마스, 봄의 부활절과 함께 국민의 3대 축제로 지켜 내려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미국의 선교사가 전한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주일로 지켜 왔지만, 일부 교회들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해 왔었다. 이에 따라 추석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교회가 늘고 있지만, 교회에 따라 9월이나 10월의 주일을 선택해 지키는 교회도 늘고 있다. 11월 셋째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이 깨진 것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 시기를 연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교회의 실정에 따라 지키는 것보다, 어느 주일을 정해 지키는 것도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선교 이전의 전통문화를 배격하지 않고, 수용하여 접목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단시 말고,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기독교문화로 창조하여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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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9-13
  • 농어촌교회에 대한 상생정책이 시급하다
    농어촌교회가 생존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새신자보다 천국에 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농어촌교회 목회자는 ‘장의사’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농어촌교회는 한국교회의 모판이자 어머니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농어촌교회에서 자란 교인들이 산업화 속에서 대거 도시로 이주하면서 대형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농어촌교회는 한국교회의 젖줄이자 어머니였다. 농어촌교회가 없었으면 지금 한국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농어촌교회를 지원하고 도우려는 한국교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목회포럼은 수년 동안 명절에 고향방문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명절에는 고향 교회 가서 예배하고 헌금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모범이 되는 일이다.   각 교단별로 농어촌선교를 강화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상비부 가운데 그냥 형식적으로 농어촌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실제적으로 농어촌교회와 목회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상생의 신학이 필요하고 절실하다. 농어촌교회를 단지 시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동반자로 바로보고 나가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 대전환이 없다면 모든 대책이라는 것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농어촌교회를 돕는 것은 공동체성과 개교회주의를 극복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받았으니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농어촌이 붕괴되고 그 교회들이 문을 닫는다면 결국 그 부정적 효과는 도시에 있는 교회들에게 밀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위기가 닥쳤으니 나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공동체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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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3
  • 교단총회 임원 입후보자 자정 기대
    오는 1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백석·대신측 교단 정기총회를 필두로 전국교단이 총회를 개회한다.   이번 총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기를 기점으로 세상 전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 교단 갱신을 바라는 총대들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역사가 바뀌어도 양지를 찾아 오랜 세월 기득권을 누리며 정착한 이들과 혁신을 부르짖는 세력이 한국기독교 내에서 물밑 접전을 벌이고 있다.   마치 고대철학에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논쟁이 벌어진 것과 같다. 성경에서는 밀레도라고 기록된 밀레토스학파 이후 운동성과 존재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존재와 생성’에 관한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 생성 혹은 운동을 강조하는 흐름 쪽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처음 주장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을 싫어해서 산 속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온갖 식물을 먹으며 살았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보다는 조용하게 사색하며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세한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피타고라스 등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먼저 만물유전설(萬物流轉說)을 주장했다고 플라톤은 분석했다. “판타 레이(panta rhei, 만물은 흐른다)”라는 설을 폈다.   이에 대한 예화로 강물을 들었는데,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갔다가 다시 담근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왜냐하면 상류에서 흘러온 강물은 발을 적시고 계속 하류를 향해 하염없는 흘러가기 때문이다. 상류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은 계속 하류로 흘러내려 간다. 이제 한국교회가 역사 물줄기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 과거 총회 임원 선거를 치르면서 돈 살포 의혹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 또 돈 살포 금권선거, 저서 표절 시비, 교회 부흥 방법의 이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세상 국회의원도 사퇴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번 총회가 자정되고, 갱신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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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3
  •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통합에 임하라
    그 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보고 있지 못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새롭게 임원진을 구성하고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교회연합에 조건 없는 통합을 제안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교총 소강석대표회장은 연합기관의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분오열된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요 축복된 일이다. 분열보다는 통합, 갈등보다는 화합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기독교의 근본진리이다. 연합기관의 통합은 분열과 갈등의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보여주기 식 통합, 사익을 위한 통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만일 이런 마음으로 통합을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분열, 또 다른 갈등으로 가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통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을 이루려면 가장 먼저 사익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한기총이 사분오열된 근본원인이 어디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대표회장 하기 위해 금권선거를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해묵은 이단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하나였던 단체는 쪼개져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주도권, 자리, 돈에 대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통합에 임해야 한다.   기관의 통합을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있다. 직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조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다른 교단에서 이단성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모든 기득권과 욕심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통합이 또 다른 치명적 분열을 야기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애써 통합해놓고 다시 분열돼는 악순환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형 교단 중심의 통합이 아닌 중소형 교단도 함께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는 배려하는 통합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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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5
  • 금권선거를 퇴출하자
    9월에 전국 교단 정기총회가 잇달아 개회된다. 한국교회 교계와 교단의 선거 체계가 마치 세상권력 집단의 선거와 비슷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일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독교에 선거라는 것이 왜 생겼을까? 에른스트 트뢸취가 좬기독교사회윤리좭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줬다.   에른스트 트뢸취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핍박을 당해 순교자가 속출해 숨어 다녔기에 소공동체를 이뤘고, 외형적 종교 형식이나 법보다는 성례전적 본질에 충실했다. 교회의 대표가 되면 순교를 당할 위기에 처하기에 좋아할 리가 없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당하기 전에 번민했고, 주기철 목사가 부인이 면회 오기 전에 타협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교회대표를 뽑았고, 뽑힌 사람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두려움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4세기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한 이후 중세시대로 접어 들면서 기독교 대표가 돈과 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 주위에 다가가게 됐다.    그래서 얻어지는 이득이 많아져 대형화되기 시작했고, 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 종파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너무 심해져 공정하게 중앙 진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거제도가 생겼다. 그리고 중앙에 진출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회법을 강화했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는 확연히 달랐다. 중세교회는 지나친 권력으로 성경의 권위 위에 군림했다. 그래서 르네상스와 함께 종교적 본질로 돌아가려는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중세로마교회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추후 한국교회는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수직적 상향식 선거제도에서 탈피해 초대교회 유형인 수평적 순환식 선출제도로 변화돼야 한다. 이제 전국교단 선거제도도 초대교회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금권선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돈으로 표를 사려는 매표행위로 비난을 받아왔다. 이제는 교단을 바르게 이끌고 갈수있는 정책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교회상과 교단상을 정립해 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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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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