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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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주간, 신앙 성숙의 길로 삼자
       매년 맞이하는 고난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자기 십자가’를 체험하는 기간이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께서 3년간의 공생애 끝에 이제 스스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고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임을 공식 선언하시면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일 직전까지를 절기로 삼아 주의 고난과 은혜를 경건히 기리는 한 주간의 절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고난주간이란 말은 성경 속에는 기록이 없다. 다만 고난주간이 교회의 절기로 자리하면서,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형식화되고 관습화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숙은 고난주간을 맞아 ‘자기 십자가’를 지는 분명한 체험이 필요하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예수님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시키셨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은 십자가 안에서 이미 끝났다. 이제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인은 주님이다.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육신을 부인해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고난주간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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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4-03-13
  • [사설] 해외선교사의 현실과 성경적 선교지원
      선교는 세속적 경제구조와 맞물려 진행되지 않는다.   2010년을 전후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특별히 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많았고, 인도나 터키 등 자신들의 종교가 분명한 나라들에서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일이 많았다. 그 국가들은 주로 비자를 연장 해주지 않던가,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일들을 했다는 이유를 근거로 진행한 일종의 박해였다. 이런 일들이 최근 한국인 선교사의 수가 줄어든 원인 중에 하나가 됨은 분명하다. 또 그런 박해는 예상된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선교사 감소의 원인 중, 큰 이유는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 저하라는 것은 자명하다.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활은 교회의 지원과 성도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한국적 선교시스템에서, 교세의 감소로 지원이 약해지고 또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개인성도 감소로 개인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다. 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싸우는 현장의 선교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선교는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믿음에 의지한다.  우리의 선교는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란 말씀, 또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라는 말씀에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든 세상 끝까지 전파해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를 애써 왔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현재 교회의 경제상황과 인적 상황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직 독생자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언약의 사랑과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다.  교회는 먼저 우리의 것을 떼어 놓기 전에, 내 쓸 것을 것을 줄이고 양보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고 헌신해야 한다. 가난한 이웃과 열방에 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세상 경제의 논리가 아닌, 하늘 경제의 풍성함과 기적을 전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선교하고 있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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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퀴어 축제’, 반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올해도 이른바 ‘퀴어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한국교회는 한목소리로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우리는 동성애, 근친상간, 소아성애 등을 옹호하는 퀴어신학을 반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퀴어신학이 지지하는 낯설고 이상한 동성애는 창조섭리인 양성질서에 반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4) 결국, 동성애는 성경의 주제가 아니고 부차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금기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게 신학의 보편적 주제가 될 수는 없다. 퀴어신학의 주제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동성애가 신학의 핵심이 돼야 하고 동성애에 대한 모독과 억압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학의 주제는 창조자 하나님과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의미한다.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과 인류 보편의 성 윤리와 맞선다. 비도덕적이고 괴기한 성적 관행이다. 남성 동성애의 경우 배설기관과 생식기관의 비정상적 접촉이 반복된다.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의학적 질서와도 맞지 않는다. 동성애는 결국 괴기한 행위일 뿐이다.   결혼과 가정은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 결혼과 양성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생산되며 사회와 국가와 인류는 존속될 수 있다. 이성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결혼, 즉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 양성결혼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의 복이요 인류 생존의 조건이요 기반이다. 따라서 동성애 반대는 이 시대 교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교회는 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에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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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9
  • 모범이 되는 기독교가정이 되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계로 얻은 자녀들로 구성된 혈연공동체인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의식주를 함께 나누는 생활공동체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이런 전통적인 가정에 대한 이해와 가정의 형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독신과 혼전동거의 증가와 더불어 결혼율의 감소, 동성애와 성전환 그리고 동성결혼 등 세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가정에 대한 이해와 형태들이 나타남으로 전통적 가정관과 가정형태가 도전과 위기를 만나고 있다.   먼저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질서로 제정하신 천부적 제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하나가 되는 인간의 결혼제도는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의 연합과 사랑의 사귐을 이루는 언약관계를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고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은 창조의 질서를 넘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구속받은 교회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의 관계로 하나님의 영적 생명의 연합을 나타내는 신비로 이해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함으로 영적인 신비를 드러내야 한다. 온전한 부부간의 사랑과 연합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와 구속에서 나타나는 결혼과 관련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이러한 결혼언약의 영적신비를 기억함으로 반드시 영적 생명을 함께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 곧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이혼과 재혼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세상에 모범이 되는 기독교 가정을 이뤄가는데 온 힘을 기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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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9
  •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우려한다
    지난 2020년 6월 29일 자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그 안에 전통적인 기독교윤리와 배치는 되는 조항이 있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법 2조 1항에서 성별을 남성, 여성, 그리고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 이는 성을 인식, 표현, 인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이 의미는 생물학적 인체구조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이는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입장이다.   성적지향에 대해 차금법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차금법의 취지와는 달리 레위기 18:22, 20:13에서 동성애를 윤리적인 악한 행위로 간주하여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이것들은 정언명령으로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는 서술법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이 준수해야 할 명령이다.   또 동법 제3조 가항에서 모집과 채용을 포함하는 고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차금법이 법제화되면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에서 교수나 교수지원자가 동성애자로 밝혀지게 될 때 채용을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 된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가 요구하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을 때에도 채용을 거부하면 불법이 된다. 이러한 경우 기독교 학교는 학생 구성에 있어 기독교 학교의 특수성이 희생될 수 있고, 신학교는 교회의 목회자 양성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독소조항으로 인해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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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주일학교 교사양성에 힘쓰자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미래의 근간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주일학교가 무너진다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으며, 또 많은 통계들은 주일학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너진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는데서 출발한다.   주일학교 교사는 먼저 학생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의 관심과 고민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며 친구라고 불렀다.   좋은 교사는 좋은 상담자이다. 세익스피어는 “13세부터 20세 사이의 시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아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청소년 시기에 고민과 갈등이 많다는 증거이다. 교사는 상담자로서 학생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주일학교교사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신앙성숙을 돕는 자다. 교사는 성경지식을 주입시키는 자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이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주변 환경, 학습 환경, 생활환경의 장애물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별히 예배시간에 교사들이 먼저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모범이 되도록 한다. 예배시간 엄수, 지각?결석 등을 하지 않고, 예배시간에 교사들 간의 잡담을 삼가야 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일 때 주일학교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스승의날, 스승의 주일을 보내면서 한국교회의 미래인 주일학교 활성화를 위해 좋은 교사의 야육에 모두가 힘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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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5-11

실시간 사설 기사

  • 전국교회, 예배회복 기도운동 열풍
    전국교회가 코로나19 침체기에서 벗어나기위해 대대적인 기도운동을 시작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장=소강석목사)는 지난 3월 2일 새에덴교회에서 제105회 총회 기도회복운동 ‘프레어 어게인’ 설명회를 가졌고, 지난 3월 7일 광명교회(최남수 목사)에서 프레어 어게인 출범감사예배를 했다. 이어 전국 9개 권역별 연합기도운동을 지난 3월 21일 제주도 동홍교회(박창건 목사)를 필두로 6월 27일까지 지역 거점교회들에서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합동측은 오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새에덴교회에서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개최한다.   이처럼 강력한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19 팬데믹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장기간 비대면 온라인주일예배로 인해 성도들이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퇴락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종준 목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합동 증경총회장)는 “교회의 생명은 모임인데, 코로나19로 인하여 모이는 교회로서 그 기능과 역할이 불가피하게 축소되고 무너졌다”며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의 정체성이 회복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팬데믹기에 온라인 영상예배로 전환해 실시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시청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또 모임과 훈련과 신앙 활동을 통해 계속 성장해야 할 교회가 모든 신앙 활동을 멈춰 게으름과 나태, 낙심과 좌절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다시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주일학교도 교회출석을 중단하고 온라인 영상으로 주일예배를 대처하다보니 그런 것들이 습관화돼 현재 도산 위기에 놓인 교회가 많아졌다. 다음세대가 회복 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다음세대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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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가정은 교회의 ‘사랑의 시원’이다
    5월은 가정과 관련한 행사가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집중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정감 있는 단어가 ‘가족’이다. ‘family’의 어원은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의 첫 글자들을 합성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먼저 가정을 세우시고 이어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기에 가정은 그리스도의 몸(엡1:23)인 교회의 사랑의 시원(始原)이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빌립보교회는 ‘루디아’라 하는 자매 집에서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성령을 모신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는 참믿음의 가정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합된 곳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 4가지, 사람에 대한 계명이 여섯 가지인데 사람에게 주신 여섯 가지 계명 중에서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가정과 관계된 계명이다. 구약에 있는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거듭난 모든 성도들에게 명령하는 말씀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3). 우리나라에는 부모공경을 귀중하고 중요시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부모 공경하는 것이 점점 등한히 되고 있다. 따라서 가정의 달의 귀중함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이 깨달아진 사람은 그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처럼,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이웃과 교통이 어려운 환경에서 가정의 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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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방사능 오염수 방류, 창조질서 파괴
    한국교회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바다로 배출키로 한 결정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대표회장=소강석목사)는 충격과 분노 입장을 표하고 즉각 철회 요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방사능 물질은 체르노빌 지역 사례처럼 30여년이 지나도 오염된 상태로 남아 있기에 위험하다. 암 유발, 기형아 출산, 유전자 변이 등을 일으키는 아주 위험한 물질이다.   이젠 하나님이 창조하지도 아니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재고를 해야 할 때이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에덴동산과 바벨탑에서 찾을 수 있다. 폴 리꾀르가 말했듯이 아담 사건을 ‘상징설’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에덴동산 파괴 본능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멀어졌고, 이로 인해 땅도 엉겅퀴를 내며 사람과 멀어졌다. 하나님-사람-자연이 모두 멀어진 것이다.   인간의 타락이 극에 달할수록 하나님의 품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죄성으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게 된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에덴동산 파괴 본능을 갖고 자연 친화적이기 보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마음을 갖고 탐욕 어린 눈으로 자연을 바라 본다. 그래서 흩어져 작은 소공동체를 이루어 자연과 친화하며 살기 보다는 시날 평지의 바벨탑처럼 높은 대규모 탐욕 탑을 쌓아 올리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 높은 도시의 탑을 유지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의 에너지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인공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방사선을 농축해 인공적 방사선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이 도시의 엄청난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투자에 비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욕심으로 수명이 다한 노후 시설이었던 후쿠시마 원전을 연장 사용하다가 지진으로 인해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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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2
  • ‘부모를 공경하라’란 계명을 지키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로 지키고, 8일은 ‘어버이날’로 지켜 왔다. 대부분 교회마다 첫 주는 ‘어린이주일’. 그리고 둘째 주는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다. 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생각하고,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핵가족 시대에 효도는 오늘날 가정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500여 년 동안 유교문화와 봉건사회의 대가족제도와 가정윤리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어버이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존경심을 잊어버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파괴되는 현실이다. 산업사회가 안겨준 결과중의 잘못된 경우이다.   인간은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부모가 없이는 이 세상에 생명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를 통해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양육을 받아 성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 부모의 나으신 사랑과 양육한 수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구약의 계명중 제5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란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집단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에 대한 자녀의 책임을 다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부모에 대한 효도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예수도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 극진히 효도하였다. 예수는 십자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 자기 어머니의 여생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였다.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삶에서 부모에 대한 사랑과 봉사, 효를 보고, 그와 같이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주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란 계명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삶을 지녀야 한다. 부모에 대한 효는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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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2
  • 선거공영제를 정착시키자
    장로교단 산하 봄 노회가 대부분 마쳤다. 합동측과 통합측, 그리고 기타 총회 산하 노회들이 총회임원들을 추천했다. 이 후보자들은 9월 총회를 앞두고 선거전에 들어갔다.   합동측의 경우, 제106회기를 이끌어갈 총회 임원후보 추천이 마무리됐다. 총회장 후보에 배광식목사(대암교회),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권순웅목사(주다산교회)와 민찬기목사(예수인교회)가 추천됐고, 장로부총회장 후보로 노병선장로(오산비전교회)와 서기영장로(대전남부교회)가 추천됐다. 허은목사(부산동현교회)가 서기 후보로, 부서기에 고광석목사(광주서광교회), 김종택목사(발안제일교회), 이종석목사(광교제일교회), 한종욱목사(등대교회)가 추천돼 4명의 후보가 추천돼 경합을 벌이게 됐다. 이외 회록서기에 이종철목사(두란노교회), 부회록서기에 한기영목사(전주은강교회), 회계 후보에 홍석환장로(강북성산교회), 부회계 후보에 지동빈장로(강변교회)가 추천됐다.   이처럼 대부분 경선을 벌이게 될 선거에서 지난날에 자행된 돈살포 부작용이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총회가 돈으로 움직여지게 되면, 부정부패가 싹트게 돼 있다. 이를 가리켜 소강석총회장은 “생태계가 망가져 있다”고 표현했다. 교단의 미래를 위해서는 돈이 아닌 인물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 선거공영제가 되고 돈 안쓰는 선거가 정착해야 한다.   에이든 윌슨 토저(Aiden Wilson Tozer)는 『내 자아를 버려라』는 책에서 “싸구려 복음주의는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즉 예수를 믿었지만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을 가진 이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싸구려 복음주의자는 행복과 부흥은 많이 이야기하지만 결단은 없다”고 지적했다. 디이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믿었다고 하면서 삶이 따르지 않는 것은 싸구려 구원”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켜 교단과 교회를 병들게 하는 구습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선거 변혁을 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5-07
  • 모범된 가정공동체를 만들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 날로, 8일은 어버이 날로, 20일은 성년의 날로 지키고 있다. 대부분 교회에서도 이 주간의 주일에 따라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 성년주일 등으로 지키고 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중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남녀로 하여금 결합하여 가정을 이룩하도록 하였다. 가정은 남녀의 결합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로서 이뤄진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언약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제도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가정은 인격자인 남녀가 결합하여서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사랑과 평등, 자유의 관계가 존중되지 않고, 무시될 때에는 가정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개인은 가정공동체의 일원이며, 가정공동체는 사회구성의 기본단위이다. 민주사회는 개인과 건전한 가정의 단위로 형성된다. 건전한 개인과 가정이 없이는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 건전한 가정의 문화와 윤리를 발전시켜 나갈 때만이 성숙한 민주사회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고, 인간중심의 이기적인 관계에서 성립된 가정은 영속하기 어렵다. 하나님중심으로 가정이 형성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다. 인간중심으로 나갔을 때에는 그 가정은 유지하기가 어렵다. 서양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산업사회와 기술문명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가정의 부부관계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야기되었다. 우리나라도 서양사회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이 표면화되고 있다. 그것은 해마다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은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협동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부부가 동등한 권리와 평등한 위치에서 사랑하고 순종하는 모범된 가정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은 성서의 가정윤리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5-07
  • 교인 감소세에 대한 대책 수립 절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전국 연회가 개회되고 있다. 사무처리에 여념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회무에서 중요한 안건으로 한국교회의 미래와 부흥에 관한 정책들이 다뤄져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래 전부터 교세가 감소세로 접어 들고, 교회발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한 온라인예배 시대가 다시 도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기에 비대면 온라인주일예배를 하면서 3분의 1의 교인만이 소속 교회 온라인예배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나 교인들의 신앙 수준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총회가 전도와 부흥, 그리고 선교에 대한 헌의안을 심도있게 다뤄 한국교회의 미래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통계위원회(위원장=조재호 목사)는 지난해 8월 13일, 교단 교회 현황을 집계했다. 이에 따르면, 교세가 전체교인 수가 1.85% 감소해 최근 10년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기독교 전문 리서치업체인 바나그룹(Barna Group)의‘2020 교회 현황(State of the Church)’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내‘실천적 기독교인’(Practicing Christian) 35%만이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출석하던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32%가“코로나19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다녔던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세 명 중 한 명만이 등록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은 다른 교회로 갔거나 여러 교회 온라인예배를 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점점 믿음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전국 교단들이 가장 중요한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4-22
  • 교회, 코로나 대처 지혜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교회 또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한때는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것처럼 언론에서 몰아간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로인해 교회는 전도는커녕 예배도 제대로 모여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아무런 경험치없이 대응하다보니 우왕좌왕한 면이 있다.   정부가 교회 예배와 집회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전에 교회가 선재적으로 방법을 제시하거나 또는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그로인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몇 프로 모이라면 모이고 모이지 말라면 모이지 못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생겼다.   그 가운데 몇몇 교회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며 대면예배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개교회가 대처할 문제라기보다는 총회나 한기총같은 교회연합기구가 정부를 상대로 해야할 사안이다. 그런데 교회연합기구가 그 일을 못하는 가운데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고 있는 입장이다. 교회가 코로나 사태를 정부보다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으면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국가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고 있지만 언제 이 코로나가 극복되고 종식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교회연합기구나 교회가 무기력하게 있다보면 또 다시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를 수용해야한다.   이제는 임기응변식의 대처와 대증요법으로는 안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다보면 결국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미 코로나가 발생한지 15개월이 지났다. 과거의 잘못된 대응방법을 돌아보고 앞으로 코로나가 극복될 때까지 각 단계별로 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교회를 위하고 또한 대국민 이미지도 좋은 것인지 미리 대처방안을 준비하는 것이 과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할 지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4-22
  • 이만희방지법 발의, 방역 처벌 기대
    작년 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당시 명단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 등 방역당국에 혼선을 초래했던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교주 이만희)가 지난달 14일 열린 신천지 창립 37주년 기념예배에서 방역 위반 혐의 무죄 판결 결과를 홍보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법무법인 태평양 등 국내 굴지 변호사 팀을 배경으로 한 승소였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6일, 국회에서 역학조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요구를 방해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이만희 방지법’이 발의됐다. 증거장막성전이란 신천지교주가 신천지 창립 이전 과거에 몸담았던 장막성전에 근거한 것이다. 원래 장막은 모세가 하나님께 지시를 받아 광야에서 천으로 만든 성막(회막)이다.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로마 황제 도미티안(A.D.81-96)이 기독교를 말살 할 때 순교의 길을 가는 교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묵시적 형태로 기록한 편지이다.(A.D.94-95) 그러므로 계시록은 예수를 대면한 사도요한이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고 로마제국의 박해로 말미암아 멸절의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순교(殉敎)로 신앙을 지켜 나갈 것을 격려하기 위해 묵시문학의 형식을 빌어 쓴 세 편의 편지다.(계1:18-20) 즉 하나님이 로마제국을 심판하게 된 것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모진 고난을 받거나 죽음의 길을 걸어 간 성도들이 흘린 순교의 피와 기도와 찬양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계14:2-3,15:2)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다’는 것은 약속의 목자가 영계의 천국을 보고 그와 같이 이 땅에 증거장막을 창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진정한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고 이 세상의 악마의 세력인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은 곡해된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4-22
  • 4.19의 정신을 계승하자
    4.19혁명은 한국의 현대사에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규탄과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4.19정신은 광주민주화항쟁으로 이어져 이 땅에 자유와 정의를 실현시켜 오고 있다. 4.19정신으로 군사독재도 막아냈고, 부패된 권력도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19는 한국의 지성과 양심의 발로이었다.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에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또한 4.19는 정의의 실현이었다. 3.15부정선거가 국민의 주권을 유린하고, 금권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할때에 국민의 정의를 사회와 국가에 실현하도록 하였다. 또 4.19는 민족주체성의 발로였다. 우리 민족이 8.15의 해방을 가져오게 되고, 6.25의 공산침략을 물리쳤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민주우방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4.19는 우리 국민주체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 잡은 것이다.   4.19를 통해 우리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주체성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각 분야에서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국가와 민족은 주체성 위에 수립할 때에 발전하고 영속할 수 있다. 주체성이 없는 국가와 민족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홍수와 같은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에는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4.19는 우리 스스로가 민족과 국가발전에 주체적으로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4.19정신은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고, 각 분야에서 주체적인 발전과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4.19이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 결과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문화대국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4.19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4.19정신으로 이 땅에 평화통일도 성취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와 민족의 영원한 번영도 이룩해야 한다. 4.19주역들의 희생에 의한 정신을 계승해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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