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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은 하나님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14)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또한, 기복신앙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에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공중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필연적인 단계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고난은 축복입니다! 고난은 오히려 우리에게 나아갈 힘을 주고, 우리가 해야 할일들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온전히 진리로 살아갈 motivation을 줍니다. 고난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불순물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여, 오히려 그것을 제거하여 우리의 영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며, 우리 삶의 앞에 놓였던 길들을 정리해서 하나의 direction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에 대한 온전하고 명확한 분별력을 주는 기회인 것입니다!   한편, 사탄에 속한 사람들은 사탄의 일에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많은 크리스천들도 이 일에 무지불식간에 동참하게 됨을 봅니다. 이 땅에서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일에 동참하게 됨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재정을 추구하는 크리스천들도 이러한 일에 동참하게 됨을 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통과 교제가 안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영적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악한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속한 자들이라고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영적분별력의 부재로 인해, 또한 그들의 이 땅에서의 재정과 축복을 바라는 세상적 욕심으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저 내가 축복을 받고 사는 기복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삶을 전적으로 걸고,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전쟁의 삶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저 기복적인 신앙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는 변화되어야 할 많은 영역들이 있고, 땅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성도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진리로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일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그러한 진리와 그에 따른 변화를 말씀으로 선포하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길러내고 양육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세상의 그 땅으로 강력히 나아가서 변화를 일으킬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충만이 강력히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은 16:15)   우리의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구원도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재정구축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서 이 길을 택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으로부터 오는 축복보다는, 재정구축으로 오는 축복이 더욱 명확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을 통치하는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땅을 통치하게 되는 과정까지도, 주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할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에서,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하고 거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이것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 제뉴인글로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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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7
  • 하니프(David Hanif) 작가의 「Hope」
        하니프(David Hanif) 작가의 「Hope」는 형형색색의 고무풍선을 자전거에 매달고 달리는 이색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형편을 알게 되면 충분히 그의 마음속에 내재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에 온 인물로 지금은 법무부 위촉 사회 통합 이민자 멘토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수십 년간 전쟁과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은 작가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지난 3월 12일 KBS의 이웃집 챨스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알려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가 알듯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탈레반이 있는 나라로 특히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무역 센터 알카에다 테러공격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16년 전에 한국에 왔지만 20년 전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동신교회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 고통을 겪은 그는 이 풍선들처럼 서로 어우러져 사랑하고 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국의 봄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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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7
  • [에레모스 영성10] 광야를 닮은 소리(1)
    광야로 일컬어지는 곳을 연상할 때 떠올려지는 첫 이미지는 ‘거칠다’일 것이다. 영어표현 그대로 와일드(wildness)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약간의 의미를 덧붙여 야성(野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야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거칠고 투박한 채로 남아 있기에 자연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에 비해 문명이나 문화는 사람의 인위적 행위가 더해지게 된 결과물인데 이에 따라 더욱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고 오히려 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창조의 세계 저 편의 암울한 파괴 현장을 목도하게도 한다.   구약 신명기는 ‘다듬지 않은 돌’로 하나님의 제단을 쌓도록 하고 그러한 돌들 위에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고 가르친다. 자연석에 쇠 연장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인류의 문명사가 이어져나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문명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바뀌어도 결코 변치 말아야 할 그 무엇, 즉 하나님께 대한 충직한 신앙 그 자체를 성경은 ‘자연석’으로 상징하고자 했다. 곧 벧엘 야곱의 돌 그리고 요르단 강 길갈의 12개의 돌이 그것이다. 변하지 않는 돌, 변하지 말아야 할 돌 그래서 신앙은 그러한 돌과 함께 대대로 기억되고 기념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나는 ‘광야를 닮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광야의 그 자연스러움, 꾸밈없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 다소 거칠게 느껴지고 세련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구약 성경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배경사에 등장하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바벨로니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과는 대조되는 순박한 이스라엘의 구속사에서 우리는 광야의 풍미(風味)와 광야의 야성(野性)을 닮은 영성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 이른바 광야의 소리가 주는 울림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울림을 전하고 싶다.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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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6
  • 성서와 생활 [22] 그리스도인의 영성- 성만찬의 영성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또한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를 지성소 안으로 이끄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림을 받게 된 것이다. 십자가를 대할 때마다 주님이 구원의 영원성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성만찬을 행함으로 구원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기를 원하셨다.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십자가를 잊어버리면 주님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는 “~갓 죽임을 당한 것”계5:6같아야 한다.    예배의 현장 속에서 성만찬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들의 축복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태도에 있다.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 자리는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일에 있음을 보여주신다. 세상에 속하여 죄의 유혹에 빠져 의심 많은 자들을 온전케 하는 것은 십자가를 기념할 때이다. 흔들리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안전한 구원의 피난처가 된다.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십자가의 구원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어린양이 있다. 계시록이 보여주는 놀라운 사실은 어린양에 대한 영성이다.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은 십자가의 영원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새로움을 통해 주님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에서 매일 밝히 보이는 사실이 되어야만 한다. 십자가를 잃어버린다면 영적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갈3:1십자가를 통해 항상 감동을 받는 믿음이라야 한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생각 속에 십자가의 사역은 살아 역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항상 새로운 길이 되어야 한다. 항상 살아 있는 영원한 십자가의 계시를 통해 감동받는 영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성이 있다면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의 이상을 새롭게 볼 때 죄에 대하여 영원히 죽은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죽는 믿음의 체험을 매일 새롭게 가지게 한다. 십자가의 죽음이 함께 함으로 그 피가 우리를 옛 창조의 근거를 제거해 버린다. 혈과 육이 제거되니 화를 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로써 성만찬의 예식은 예배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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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14) 나로 네 용모를 보게하라
    우리는 앞서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치자 꽃이 피고 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린다. 이를 영적으로 잘 깨달았다. 즉 장차 있을 환란과 주 재림과 천년왕국의 신비한 비밀들이다.    2:13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하였도다. ‘무화과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들이 구원의 열매를 내는 것은 무화과나무로서 푸른 무화과 열매를 내는 것이다. 또 포도 넝쿨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참 포도나무에 붙은 넝쿨은 제자들을 가리킨다. 또 제자와 같은 신앙인 순교한 자들을 가리킨다.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 것은 만왕의 왕이신 재림하신 주께 찬송하며 영광 돌리는 것을 말한다. ‘일어나 떠나자’는 ‘함께 떠나자’고 말씀하심과 같다. 앞의 10절에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는 신부에게 ’일어나서 함께 떠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단계를 거쳐 온 것이 13절이다. 본문에 ‘함께 떠나자'는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도의 신앙을 진전시키시는 주님의 역사를 계시한다. 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곳으로 주님과 함께 떠나자는 말씀이다.    2:14 바위틈과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 오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고 나로 네 음성을 듣게 하라. 네 음성은 달콤하고 네 용모는 아름다움이라. '오 나의 비둘기야'는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를 부르는 호칭이다. 여기서 신부 성도 될 자의 호칭이 바뀐 것은 신앙이 더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마10:16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했다. 즉 비둘기는 신부의 신앙 정절을 가리킨다. 주님이 사랑하는 신부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정절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중심이 되면 ‘오 나의 비둘기야’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바위틈과 가파를 산 은밀한 곳에서는 깎아진 절벽 밑의 검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바위틈 은밀한 곳은 악한 들짐승과 바다의 짐승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난처로써 안성맞춤이다. 이와 같은 피난처는 곧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를 피난처로 삼고 있는 자는 풀무 불이나 사자 굴에 들어갈지라도 끝까지 신앙 정절을 지킨다. 우리의 피난처가 어디인가? 참 피난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라 하심은 신부의 용모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신부 얼굴에 면사포를 쓴 것과 같이 가리워서 오직 신랑 예수에게만 보여준다. 신랑 예수님만이 신부의 얼굴 위에 있는 베일을 벗겨서 보실 수 있다. 그럼 왜 신랑 예수님이 신부의 얼굴을 보려고 하나? 얼굴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온몸으로 열매 맺고 이긴 것의 결과는 얼굴에 영광이 나타난다. 사람의 인격의 대표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신부의 용모를 보기 원하시는 것은 네 자신의 온몸(인격)이 변화된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도의 신앙 변화의 마디마디가 있었다.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던 때가 있었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던 때도 있었다.      앉은뱅이처럼 신앙의 침체기도 맞았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일으켜주셨다. 주님과 한 몸 되어 주님의 사랑을 채워주셨다. 계속하여 변화시키는 역사를 해주셨다. 이제 얼마나 변화됐는지 신부의 모습을 보려고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온전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인격으로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 또 주님은 신부의 음성 듣기를 원하신다. 음성은 사상을 의미한다. 주님 없이는 못산다고 울고불고하던 상사병이 고쳐진 것이다. 즉 인본적인 신앙에서 신본적인 신앙으로 바꿔진 것이다. 그 신부의 사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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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성서와 생활 [21] 그리스도인의 영성-십자가 생명의 영성
       십자가는 주님의 사역으로 끝나지 않고 믿는 자들의 길이 되어야한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뜻은 인간 죄를 대속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을 십자가의 역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십자가는 체험을 통해 우리의 일상의 삶이 되기를 원하신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서 생명을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4:12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예수님의 생명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자랑했다.갈6:14‘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사도 바울을 주님을 위해 모든 고난을 견디셨다. 십자가를 최고의 능력으로 여기고 주님을 위해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십자가가 바울의 삶에서 살아 있는 생명이요 정신으로 충만하였다. 그 결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던 사울 바울의 삶을 배워야 한다. 주님을 위해 언제라도 죽음에 넘겨질 각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체험을 하게 된다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모든 말을 체험적으로 알아 성령의 통로가 될 것이다. 전하는 말과 함께 행할 능력도 줄 수 있는 십자가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7:38    주님의 십자가를 나의 몸에 계속 적으로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고 했다. 우리의 생명도 십자가의 생명을 가진 자라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사도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는 날마다 경험하는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들을 주님의 정신으로 견딜 수 있어야한다. 바울처럼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는 십자가의 생명으로 성령의 통로가 되어야만 한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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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0

실시간 칼럼 기사

  • [당신의 뇌] 모성박탈의 뇌와 정신건강(7)
      모자간 사랑이 아이의 사회적 성공 등 인생을 좌우한다. 옥시토신이 인류의 사회적 접착제라 불리는 소리가 여기에 있다.   초등학교 입학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님은 큰 아이의 등·하교로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형제 아이들과 시간조정을 위해 부모 자신도 모르게 TV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 시청을 조장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   뇌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생후 3세까지는 신체, 인지, 정서 등의 뇌 발달이 결정적 시기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어떤 정보라도 잘 흡수하는 시기이다. 좋은 정보가 뇌에 들어오면 좋지만 나쁜 정보가 들어오면 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유아기의 뇌는 그 어떤 정보를 필터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나쁜 정보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뇌의 결정적인 시기인 생후 3세까지는 특히 유해한 정보는 뇌에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뇌에 해가 되는 자극물을 피해야 한다.    예를 들면 폭력적인 영상물,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TV 프로그램, 과도한 언어학습, 간접흡연, 알코올 등이 영유아기에 피해야 할 자극물이다. 이러한 자극물은 뇌세포를 직접 파괴하기도 하고 결정적 시기를 맞고 있는 뇌가 스폰지처럼 흡수해 각인하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이다./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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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8
  • 좁은 문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작은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 문 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누구든지 이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무심결에 그 문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문 뒤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내가 너를 택하였단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일들을 겪게 되는데,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였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순간순간 언제나 함께하셨던 놀라운 분의 섭리를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이 동행하셨고 이 일을 이루셨구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심을 고백하며, 믿으며, 무릎 꿇고, 가슴 여민다. “창세 전에…우리를 택하사…우리를 예정하사…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내 영혼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주께서는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나의 모든 길과 나의 모든 행위를 아시오니…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함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고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시 139:2~16, 개역한글)   이루어지고 나면 알게 된다. 이루어지기 전에 깨닫는 것이 은혜이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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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8
  • [건강교실] 여름철 귀질환 (상)
      여름철에는 휴가를 맞아 바닷가에 다녀온 후 달콤한 휴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귀에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기온이 높고 습한 여름철에는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되며, 특히 물놀이나 잦은 샤워 등으로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귓병이 잘 생긴다.   귀가 아프면 다 중이염인가? 흔히 귀가 아프면 다 중이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다. 일단 귀는 외이(귓구멍), 중이(고막과 고막안쪽 공간), 내이(달팽이관과 반고리관)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여름철에 흔히 병이 생기는 곳이 바로 외이와 중이이다. 흔히 귓구멍이라고 부르는 터널 구조가 외이가 되며, 이곳에 염증이 생기면 외이도염이라고 부른다. 중이는 고막과 고막 안쪽의 공기가 차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귀가 아프면 모두 중이염이 아니고 이곳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를 중이염이라고 한다. 즉 귓병은 모두 중이염이 아니며, 여름철에 흔히 생기는 귓병은 중이염 보다는 귀의 입구인 귓구멍의 피부에 염증이 생기는 외이도염이 훨씬 많다. 외이도염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10명 중 1명이 경험하는 흔한 질병이다.   물놀이 후에는 귀 후비지 말고 반드시 말려야 한다. 물놀이 후에 생기는 귓병은 거의 대부분이 귓구멍의 피부에 염증을 일으켜 생긴 경우가 많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귀를 무리하게 후비다가 물러진 귓구멍의 피부에 상처를 내서 이 상처 부위를 통해 세균이 침투하면서 염증이 생겨 발생한다. 수영장의 물 표면에 많이 있는 녹농균은 수영장의 소독약인 염소에 쉽게 죽지 않고 30도가 넘을 때 잘 자라기 때문에 여름철 귓병의 주 원인균이다. 습한 환경에서는 세균 이외에도 가려움, 통증 등을 유발하는 곰팡이가 귓구멍에 자라기도 한다.   물놀이 이후에 귀가 가렵고 먹먹하거나 잘 안 들리는 경우, 귀를 후빈 후 귀가 아프고 붓는 경우, 진물이 흐르다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고 입을 벌리기 힘든 경우도 있다. 특히 귓바퀴를 당길 때 통증이 심해지면 외이도염을 강력히 의심할 수 있다.   물놀이 후에는 더러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거나 금속성의 귀이개를 사용해 귀를 후비지 말고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끗한 면봉으로 긁지 않고 물기만 흡수해 내든지 선풍기를 틀고 귀를 대고 말리는 것이 좋다. 이비인후과를 방문하여 귀를 깨끗이 소독을 하고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면 깨끗이 나을 수 있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방치할 경우 만성적인 가려움을 일으키는 만성외이도염이나 중이 쪽으로 균이 파급되어 중이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통증이 심하지 않고 가려움증이 심한 외이도염의 경우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방법으로 식초 세척법이 있다. 귓구멍의 피부는 원래 산성보호막이 있어 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므로 일반 식초를 생리식염수와 1:1로 섞어 귀를 세척하여 산성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세척액의 온도를 체온으로 맞추면 큰 불편함이 없이 할 수 있다. 단 고막에 구멍이 있는 만성중이염 환자에서는 하면 안 된다.   야외활동으로 인해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경우 귀에 알코올 등을 넣어 벌레를 죽이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여름철에는 야외활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 귀안에 벌레가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종류로는 파리, 모기, 개미, 하루살이, 나방, 바퀴벌레 등이 들어갈 수 있다. 귀는 아주 예민한 기관이기 때문에 귀에 벌레가 들어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생긴다.   살아있는 벌레를 그냥 꺼내려다가는 좁은 귓구멍 안에서 발버둥치는 벌레로 인해 귓구멍의 피부에 손상을 주거나 심한 경우 고막에 손상을 주어 고막이 뚫어지기도 한다.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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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8-28
  • [칼럼]깨어있으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주신다. 어떠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우리가 어찌 장차 살아가야 하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에 연관하여 구체적으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 곧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어찌 깨어있으라는 것인가? 주 재림이 가까운 이 때는 곧 노아의 때와 같다.    그 홍수 심판전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방주 예비한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 받았다. 반면에 이를 알았으나 믿지않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들 소견대로 육신과 세상에 휩쓸려 살다가 결국 진멸된 것이다. 이를 옥에 갇힌 영이라고 했다(벧전3:18-21). 이는 우리의 거울이요, 오늘날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교훈이 된다. 이를 진실로 깨닫는 지혜와 믿음이 있다면 오늘 노아 방주 같은 우리의 심령 성전을 어찌 지을 것인가?   또 이에 전념, 대비하는 깨어 있는 자 되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두 가지 비유를 들면서 주님은 우리들의 삶과 우리의 생활 태도에 대해 깨우치신다. 데려감을 받은 자, 즉 밭의 일꾼과 맷돌 가는 여인의 중심같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이다. 오직 재림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중심이어야 한다. 또 은혜 받은 말씀을 어떤 중심으로 증거 해야 되나? 하는 문제인 것이다. 요컨대 먼저 우리 자신들의 신앙중심이 재림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재림하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그를 증거할 수 있느냐? 즉 순교 신앙 위에 서 있느냐는 것이다. 주님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강조하신다. 즉 주님이 어떤 시간에 오실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재림 하실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주님은 주 재림과 대환란, 또 이를 알기 위한 표징으로 ‘무화과 나무 비유를 주시어 그 때를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 환란 날 순교할 자, 그리스도의 신부 될 자들의 신앙에 선 자들을 뽑으신다.    그 숫자가 차는 때를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왜요? 우리 자신들모두가 아직 그 수에 채워지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히 그 자리로 올라서야 됨이 곧 ‘깨어 있는 것이다.   주님은 끝으로 마24:43-44에서 이것을 알라. 만일 그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 것인지 알았더라면 그가 깨어있어 자기 집을 뚫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것이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에게 그 도둑이 누구지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정체와 그 등장에 관하여 미리 알고 있다면? 그러면 깨어 있으리라. 그리고 이기리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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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3
  • 부르심과 일컬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사울을 찾으려 다소로 가서 안디옥으로 함께와 교회에서 일 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4~26) 처음으로 안디옥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었고 (창15:6, 롬4:5, 갈3:6) “아브라함”이라 새 이름으로 불러주시고 (창17:5)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약속하셨다. 유대교, 기독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속에 있을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말3:1, 롬9:13)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 새 이름으로 불러주시고(창32:28)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이루게 하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1:41)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은 받은 자라는 어원이 있으며, 헬라어 번역이 그리스도이다. 안드레와 시몬을 보시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요1:42)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16:18) 이름은 존재와 부름에 합당한 자격과 의무가 주어지고 은혜와 축복의 열매를 맺는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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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3
  • [칼럼]사랑의 실천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롬 5:8) 우리를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아버지께 간청하실 만큼 고통의 길이지만 우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이처럼 사랑의 실천은 희생이 뒤따르고 고통이 뒤따른다.   필자는 여기서 거창한 사랑의 실천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인지를 나누고 싶다. 필자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3초의 여유를 갖는다.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기 전 3초의 여유를 가지고 혹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오는 사람이 있는지 기다리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사랑의 실천이라 믿는다. 필자는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손에 젓은 물을 닦기 위해 근처에 마련된 손 닦는 종이를 하나만 뽑아 사용하고 사용한 종이를 가장 작은 크기로 말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런 행동은 작게는 종이를 절약하고 크게는 산림을 보호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한 종이를 가장 작은 크기로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청소하시는 분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가능한 종이 한 장만 사용하고 손을 닦은 종이를 작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을 부탁한다.   이 역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지면상 이제 한 가지만 더 나누려고 한다. 필자는 운전을 할 때 도로의 형편상 차가 겨우 두 대 지나갈 수 있는 도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게 되면 의식적으로 도로의 왼쪽에 정차하여 오른쪽 길을 열어둠으로 우회전하는 차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출구의 도로가 이와 같은 상황이어서 거의 매일 이런 경험을 하곤 한다.    많은 경우 어떤 운전자는 직진을 하려고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도로 전체를 점령하고 서 있기 때문에 우회전하는 차들도 기다릴 수밖에 없고 결국 원활한 교통을 방해하는 일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운전의 습관도 사랑의 실천이라고 사료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특히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합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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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3
  • [‘주 예수’를 닮는 복음의 일꾼 8회] 주께서 요구하신 선함과 착함의 몫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뜻을 위해 순복하여 사랑의 실천과 인내로 승fl    성경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주께서 분부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이 세상 끝까 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심대로 주의 뜻을 위한 십자가의 능력과 연계이다.    곧 복음을 듣는 자들이 믿고 좇아 새 생명을 얻는 은혜와 성화이다. 이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생명을 얻게 되는 기쁨이다. 인내로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 가를 지는 필요를 발견케 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언약처럼 말씀과 기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에 따른 능력과 사랑 그리고 이를 위한 절제이다. 지혜로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주 신 말씀이다.    그러기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가운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를 돌이켜 사람의 본분을 할 수 있도록 교훈하신다. 자기부인을 하지 못하여 제 십자가를 지지 못한 자들을 돌이켜 신본주의 신앙의 지침을 알고 순복할 수 있는 분별함이다. 곧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행하는 주종의 관계 성립을 원하심이다. 말씀을 듣는 자들은 지혜를 얻으려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지식을 얻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고 악에서 마음이 떠나는 명철을 얻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의 본분이다. 주의 말씀은 가르쳐 주는 지도자가 없이는 알 수 없기에 영적으로 거듭난 주의 동역자들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이요 생명의 말씀인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복하고 순복케 해야 선을 이룰 수 있다. 주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으니 복음에 관한 지혜의 필요와 순복할 수 있는 주종의 관계 성립을 위한 주의 요구이시다. 예수의 하나님되심과 창조주로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절대자임을 알고 성령의 구속사역 이심을 좇아야 한다. 성경 말씀 가 운데 십계명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한 사랑의 지침들을 조명 했다.     그리고 말씀에 순복할 수 있도록 신본주의 자세로 행할 주기도문 등 요리문답에 연계하여 강조함이다. 주종의 관계를 형성하여 오직 주의 종으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함을 확증케 한다. 사람의 본분을 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주께 드려져 선한 영혼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많은 달란트를 남겨 주의 나라가 확장되어져 주의 뜻이 주님 원하심의 사랑 실천과 절제 그리고 마귀의 일이 멸해지는 능력으로 연계이다.    사람 살리는 일이 계명을 지 키는 일이며 주를 경외하는 일로 써 이웃 사랑의 실천이고 이를 위 한 서로 사랑이다. 주의 뜻이 땅에 서도 이루어지도록 복음의 빛을 발하여 소금의 직임을 감당해야 함을 확증하는 바이다. 온 인류를 새 생명으로 거룩함이 덧입혀지도록 전도와 선교이다. 이를 위해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동역자로 참 예이다. 이 몫이 주께서 원하시는 일용할 양식이기에 거듭나 주의 영 이 있는 산 자로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그리스도의 사신들임을 확증케 한다. 그러므로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는 자들로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여정이 되도록 복음의 확산을 위해 절제하며 사랑을 나눠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는 선함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선한 열매가 가득 맺히게 하는 비결이다. 또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실천의 착함임을 확증한다. 주님을 본받는 자들로서 육체는 후패 해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과 성화로 세워가는 주의 나라 공동체와 이를 위한 여정의 선함과 착함임을 확증케 한다. /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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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 [‘주 예수’를 닮는 복음의 일꾼 7회]동역자의 서로 사랑으로 복음 확장
    한 몸을 이룬 지체들, 연합된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선한 사역으로 부흥 로마서 16장은 서로 사랑의 새계명을 주신 주님의 의도하심을 연계하여 교훈을 찾게 한다.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을 일일이 천거하며 열거된 자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임을 확증시켜 준다. 곧 주와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이니 필요한 것들을 요구할 시 공급하여 주의 제자화가 확장될 수 있도록 서로 사랑을 강조함이다. 서로 사랑의 지체들은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다. 이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요한일서 4장~5장에서 밝힌다. 특히 사랑의 계명 실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의에 확증이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는 말씀의 확증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심이다. 더불어 시편 133편 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 하심의 증거로써 서로 사랑에 대함이다. 거듭난 지체들의 사랑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선한 열매를 맺힘이기 때문이다. 곧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지체들의 연합된 사랑은 선을 이루는 주의 나라 확장과 계명들 실천이다.   서로 사랑으로 인한 이웃 사랑이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결과를 가져와 주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한 법이라는 증거이다. 주께서 십자가 사역을 이루신 사랑의 결과가 믿는 자들이 죄사함 받아 새 생명으로 제자화에 몫을 하는 본이다. 주의 영이 있는 자들이 연합하여 사랑하라는 이유와 목적도 생명으로 주께 속하게 하는 선을 위함이다. 곧 주를 믿고 좇아 새 생명을 얻고 얻게 하는 목적임을 확증해 준다. 영적 교회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 연합하여 오직 살리는 일에 몫을 하는 서로 사랑의 아름다움이다. 그 결과 주의 전의 기능을 실천함임을 확증케 한다.   그러므로 주를 사랑한다 하면서 거듭난 자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를 사랑함이 아니다. 이를 거듭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주를 미워함이며 주의 뜻에 순복하지 못함임을 확증해 준다. 그러기에 거듭난 자들은 한 몸을 이룬 지체들로서 서로 사랑하여 내주하시는 성령의 구속사역에 참예하는 존재의 목적이다.   그 결과 이웃의 영혼이 죄사함받아 새 생명에 이르게 되는 아름답고 선함의 결과이다. 영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선은 곧 주를 사랑하여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전도이며 착한 일이고 주의 나라를 확장케 하는 그리스도 사신의 몫이다. 주님의 뜻대로 주의 영이 있는 자들이 행해야 할 구속사역에 참예이다. 더불어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이다. 이와같이 지체들의 서로 사랑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필수이며 새 계명을 주신 이유이다. 주께서 이를 분별하도록 너희가 죄인과 세리보다 나은게 무엇이냐는 비유를 하셨다. 지혜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주의 백성이 되길 소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목적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은 주를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여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새 계명 실천으로 피차 마땅함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로서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선한 공동체의 지체들이 이를 확증케 한다. 서로 사랑으로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자들이 어떤 역경과 시련이 온다할지라도 인내하며 충성하는 이유임을 확증케 한다. 주의 나라를 부흥케 하는 이웃 사랑 실천을 위함이기에….  /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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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 [건강교실] 침묵의 병, 간암 (하)
      최근에는 부작용이 적은 먹는 항암제가 개발되어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왔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먹는 항암제의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장비의 방사선 치료가 개발되어 있으며, 이 역시 다른 치료에 적합하지 않는 환자에서 좋은 치료 성적을 보이고 있다.   간암의 근치수술 중 한가지는 간이식이다. 간이식은 과거에 여러 가지 문제로 실험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면역억제제가 발견된 이후 1983년에 비로소 미국국립보건원에서 확립된 임상치료수단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처음으로 뇌사자 간이식을 시행하였고, 1994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간이식을 처음으로 성공하면서 간이식이 안정적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뇌사자 간이식을 포함하여 연 1000례 이상의 간이식이 국내에서 시행이 되고 있고, 1년 생존율이 90% 이상, 3년 생존율도 80%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비교적 초기 간암이면서 간이식이 가능한 경우, 치료성적도 상당히 좋다. 특히 간암의 크기가 작고 개수가 적으면서 간결변증이 심하여 다른 치료법을 시행할 수 없을 경우 고려해 볼 수 있다. 물론 진행된 간암은 간이식의 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간결병증과 간암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으므로 가장 이상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다.   간암을 예방할 수 있는 생활습관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B형 간염, C형 간염, 알코올 간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B형 간염의 경우 예방백신이 상용화되어 있기 때문에 혈액검사에서 B형 간염에 대한 면역 항체가 없는 경우 백신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코올 간질환의 경우에는 반드시 절주나 금주를 하는 것이 필요하고 C형 간염은 예방백신이 아직 상용화 되어 있지 않지만, C형 간염의 경우 주로 혈액이나 성관계로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혈액이나 타액에 노출되지 않도록, 면도기, 손톱 깎기, 칫솔은 다른 사람과 같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가급적 문신, 피어싱은 하지 않는 것이 좋고, 불가피한 경우 반드시 일회용 장비로 시술하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잠재적인 위험인자인 지방간도 조절을 하여야 하는데 지방간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적극적인 체중 감량, 적절한 식이요법, 꾸준한 유산소 운동이다. 운동은 지방간 치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혈압 및 혈당을 내리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며, 뼈와 근육을 건강하게 해주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빠르게 걷기, 자전거타기, 조깅 등 유산소 운동을 일주일에 3번 이상, 한번에 3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식사는 세 끼를 챙겨 먹되 과식을 피하고 골고루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야식을 피하고 기름에 튀긴 음식보다는 삶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으며, 열량이 높은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술을 끊는 것도 필수적이다. 알코올에 의한 간 손상의 초기 상태인 단순 지방간은 술을 끓으면 정상으로 회복되므로 가능하면 빨리 끊는 것이 좋다.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음주량을 줄이면 간 손상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되므로, 금주를 실천하기가 어렵다면 술 마시는 횟수나 주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간장약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으로, 원인을 없애지 않고 간장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과학적 근거 없는 생약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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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 [칼럼 4]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
    서울시립대학교 유종현 교수   전 세계가 기후 위기에 공감하고 탄소중립을 향하고 있다.   이전의 글로벌 탄소 감축 목표였던 파리협약이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선언적이고 자발적인 목표였다면, 탄소중립은 국가별 순 탄소 배출량을 0으로 설정하는 명확한 목표와 함께 다소의 강제성을 띠는, 실제적 목표라 할 수 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전 세계 탄소의 90%를 배출하는 140여 개 국가가 2050년 전후의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으며, 특히 탄소배출 1위 중국과 2위 미국이 참여하여 국제적 공조가 기대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22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제4차 전체 회의 심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 '제3차 국가 기후 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이번 '제3차 국가 기후 위기 적응 강화대책'에는 △기후 감시예측 시스템 과학화 및 대국민 적응정보 접근성 제고 △미래 기후위험을 반영한 사회 인프라 개선 △기후재난 사전 예·경보 강화 및 취약계층에 대한 피해 최소화 △모든 주체가 함께하는 기후 적응 추진 등의 과제가 담겼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심화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예측을 기반으로 미래 기후위험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적응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며 “국민, 지자체, 시민사회, 산업계 등 모든 적응 주체와 협력을 통해 기후 위기 적응대책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 30년간(1991년~2020년)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30년 내 탄소 감축을 경험했던 해는 단 4번에 불과하며, 이 중 두 차례(1998년, 2020년)는 외부적 요인(1998년 IMF,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것이다.     즉, 우리의 노력으로 탄소 감축에 성공했던 시기는 과거 30년 사이 2014년, 2019년뿐이다. 그나마 최근 탄소배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감소세로 전환되는 경향을 볼 수 있지만 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중요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참여와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비록 산업계가 탄소배출의 주요 주체라 하더라도, 산업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적극적인 탄소 감축 노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기후정책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참여와 함께 시민의 관심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도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례 없는 기후정책과 실천 방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중에는 탄소포인트제도와 같이 보상 기반의 유도정책이 있는가 하면, 에너지 요금 상승이나 내연기관 차량 구매금지와 같은 강력한 규제정책이 있을 것이다.     탄소 감축을 위해 나와 내 가정의 희생이 요구되고, 낯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국교회총연합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나부터 실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와 지역사회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모두의 주체적 노력을 통해 2050 탄소중립 목표가 달성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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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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