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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희년'오늘,다시
     이 소영       “오랫동안 꿈을 그리던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13년 전에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적어 놓은 글귀이다. 20세기 프랑스 작가인 앙드레 지드(André Gide)가 남긴 명언이다. 그 당시 좋아했던 문구였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 났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처음 남긴 그 날의 나를 기억해 보면, 지금 내가 ‘희년함께’라는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 꿈같이 여겨진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적었을까? 그때가 아마 나의 꿈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신앙이라 믿었던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여러 기독교 단체와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성경의 희년 정신을 바탕으로 토지정의를 위한 실천운동을 하고 있는 ‘희년함께’를 만나게 되었다. 사적인 믿음에서 공적인 믿음(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참여한 독서 모임에서 내 인생의 책들을 마주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예수원 설립자인 故 대천덕 신부의 《토지와 경제정의》와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진보와 빈곤》이었다. 희년 강의가 너무 좋아서 한 번도 빠지지 않으려, 한 구절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트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성경을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공부하며 읽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공부하고 훈련하며 배움의 열정과 기쁨이 있던 시절이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또 울려서 드디어 듣는 사람의 가슴이 끓어오른다. 지금 세계에는 강한 정신과 고결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감옥에 갇혀있고, 인생에서 피어나는 진선미를 철의 수레바퀴가 깔아뭉개고 있다.” - 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中 -   그 이후로 오랫동안 희년함께 회원의 자리에 머무르다 지난 2022년 2월부터 정식으로 희년함께 실무자의 자리로 오게 되었다. 희년함께/희년은행 사무와 행정을 담당하며 간사로 근무한 지 어느덧 2년이지나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13년 전에 처음 참여했던 독서 모임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지난 주부터 ‘헨리조지와 함께 기도하기’라는 주제로 희년함께 실무진뿐만 아니라 단체회원들도 함께 《진보와 빈곤》 책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13년 만에 인생의 책을 다시 만나니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있다. 그동안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새로움과 깨달음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특별히 “왜 사회가 진보할수록 빈곤이 생기는가”에 대해서 사회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시 그 시대가 지닌 과거 경제사상을 깨뜨리고 자신의 논리를 펼쳐가는 헨리조지의 노력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서 헨리조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멋진 글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진보와 빈곤》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함께 읽고 대화하고 나의 인생 구절을 만나기도 하면서 서로의 기도가 되어 지금 우리 시대에서 제2의 헨리조지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땀의 가치는 땀 흘린 이에게, 땅의 가치는 모두에게”   올해는 특별히 희년함께가 출범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희년함께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며 새롭게 그려갈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내가 희년함께에서 일하고 있는 자리는 2년 전 하나님 품으로 떠난 남편이 오랫동안 담당했던 일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을 견디며 아픈 몸에도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숨이 다할 때까지 희년의 사역을 감당해온 남편의 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남편의 자리를 대신 이어받아 일하고 있는 ‘희년함께’는 40년 동안 희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이 땅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려운 숙제들을 잘 감당하며 풀어가고 어려운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이끌어주고 배려해주는 헨리조지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 틈에서, 올해부터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게 된 사역팀장과 함께, 단체의 역사를 배우고 책 모임을 하면서 새롭게 알아가며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희년함께의 사역 활동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며 공부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13년 전 내가 희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마주했던 기쁨과 열정으로 한 구절 한 구절 놓치지 않으려 노트에 빼곡히 적었던 것처럼, 헨리조지가 가진 열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희년함께가 땀 흘려 걸어왔던 길을 희년의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힘차게 나아가려 한다. 천천히 오래 꼭꼭 씹으면서.. / 희년함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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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향유옥합] 구원은 하나님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14)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또한, 기복신앙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에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공중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필연적인 단계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고난은 축복입니다! 고난은 오히려 우리에게 나아갈 힘을 주고, 우리가 해야 할일들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온전히 진리로 살아갈 motivation을 줍니다. 고난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불순물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여, 오히려 그것을 제거하여 우리의 영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며, 우리 삶의 앞에 놓였던 길들을 정리해서 하나의 direction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에 대한 온전하고 명확한 분별력을 주는 기회인 것입니다!   한편, 사탄에 속한 사람들은 사탄의 일에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많은 크리스천들도 이 일에 무지불식간에 동참하게 됨을 봅니다. 이 땅에서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일에 동참하게 됨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재정을 추구하는 크리스천들도 이러한 일에 동참하게 됨을 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통과 교제가 안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영적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악한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속한 자들이라고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영적분별력의 부재로 인해, 또한 그들의 이 땅에서의 재정과 축복을 바라는 세상적 욕심으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저 내가 축복을 받고 사는 기복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삶을 전적으로 걸고,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전쟁의 삶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저 기복적인 신앙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는 변화되어야 할 많은 영역들이 있고, 땅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성도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진리로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일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그러한 진리와 그에 따른 변화를 말씀으로 선포하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길러내고 양육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세상의 그 땅으로 강력히 나아가서 변화를 일으킬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충만이 강력히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은 16:15)   우리의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구원도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재정구축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서 이 길을 택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으로부터 오는 축복보다는, 재정구축으로 오는 축복이 더욱 명확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을 통치하는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땅을 통치하게 되는 과정까지도, 주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할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에서,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하고 거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이것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 제뉴인글로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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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7
  • 하니프(David Hanif) 작가의 「Hope」
        하니프(David Hanif) 작가의 「Hope」는 형형색색의 고무풍선을 자전거에 매달고 달리는 이색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형편을 알게 되면 충분히 그의 마음속에 내재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에 온 인물로 지금은 법무부 위촉 사회 통합 이민자 멘토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수십 년간 전쟁과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은 작가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지난 3월 12일 KBS의 이웃집 챨스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알려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가 알듯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탈레반이 있는 나라로 특히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무역 센터 알카에다 테러공격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16년 전에 한국에 왔지만 20년 전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동신교회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 고통을 겪은 그는 이 풍선들처럼 서로 어우러져 사랑하고 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국의 봄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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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7
  • [에레모스 영성10] 광야를 닮은 소리(1)
    광야로 일컬어지는 곳을 연상할 때 떠올려지는 첫 이미지는 ‘거칠다’일 것이다. 영어표현 그대로 와일드(wildness)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약간의 의미를 덧붙여 야성(野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야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거칠고 투박한 채로 남아 있기에 자연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에 비해 문명이나 문화는 사람의 인위적 행위가 더해지게 된 결과물인데 이에 따라 더욱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고 오히려 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창조의 세계 저 편의 암울한 파괴 현장을 목도하게도 한다.   구약 신명기는 ‘다듬지 않은 돌’로 하나님의 제단을 쌓도록 하고 그러한 돌들 위에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고 가르친다. 자연석에 쇠 연장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인류의 문명사가 이어져나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문명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바뀌어도 결코 변치 말아야 할 그 무엇, 즉 하나님께 대한 충직한 신앙 그 자체를 성경은 ‘자연석’으로 상징하고자 했다. 곧 벧엘 야곱의 돌 그리고 요르단 강 길갈의 12개의 돌이 그것이다. 변하지 않는 돌, 변하지 말아야 할 돌 그래서 신앙은 그러한 돌과 함께 대대로 기억되고 기념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나는 ‘광야를 닮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광야의 그 자연스러움, 꾸밈없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 다소 거칠게 느껴지고 세련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구약 성경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배경사에 등장하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바벨로니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과는 대조되는 순박한 이스라엘의 구속사에서 우리는 광야의 풍미(風味)와 광야의 야성(野性)을 닮은 영성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 이른바 광야의 소리가 주는 울림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울림을 전하고 싶다.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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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6
  • 성서와 생활 [22] 그리스도인의 영성- 성만찬의 영성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또한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를 지성소 안으로 이끄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림을 받게 된 것이다. 십자가를 대할 때마다 주님이 구원의 영원성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성만찬을 행함으로 구원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기를 원하셨다.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십자가를 잊어버리면 주님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는 “~갓 죽임을 당한 것”계5:6같아야 한다.    예배의 현장 속에서 성만찬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들의 축복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태도에 있다.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 자리는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일에 있음을 보여주신다. 세상에 속하여 죄의 유혹에 빠져 의심 많은 자들을 온전케 하는 것은 십자가를 기념할 때이다. 흔들리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안전한 구원의 피난처가 된다.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십자가의 구원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어린양이 있다. 계시록이 보여주는 놀라운 사실은 어린양에 대한 영성이다.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은 십자가의 영원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새로움을 통해 주님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에서 매일 밝히 보이는 사실이 되어야만 한다. 십자가를 잃어버린다면 영적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갈3:1십자가를 통해 항상 감동을 받는 믿음이라야 한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생각 속에 십자가의 사역은 살아 역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항상 새로운 길이 되어야 한다. 항상 살아 있는 영원한 십자가의 계시를 통해 감동받는 영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성이 있다면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의 이상을 새롭게 볼 때 죄에 대하여 영원히 죽은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죽는 믿음의 체험을 매일 새롭게 가지게 한다. 십자가의 죽음이 함께 함으로 그 피가 우리를 옛 창조의 근거를 제거해 버린다. 혈과 육이 제거되니 화를 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로써 성만찬의 예식은 예배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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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14) 나로 네 용모를 보게하라
    우리는 앞서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치자 꽃이 피고 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린다. 이를 영적으로 잘 깨달았다. 즉 장차 있을 환란과 주 재림과 천년왕국의 신비한 비밀들이다.    2:13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하였도다. ‘무화과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들이 구원의 열매를 내는 것은 무화과나무로서 푸른 무화과 열매를 내는 것이다. 또 포도 넝쿨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참 포도나무에 붙은 넝쿨은 제자들을 가리킨다. 또 제자와 같은 신앙인 순교한 자들을 가리킨다.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 것은 만왕의 왕이신 재림하신 주께 찬송하며 영광 돌리는 것을 말한다. ‘일어나 떠나자’는 ‘함께 떠나자’고 말씀하심과 같다. 앞의 10절에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는 신부에게 ’일어나서 함께 떠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단계를 거쳐 온 것이 13절이다. 본문에 ‘함께 떠나자'는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도의 신앙을 진전시키시는 주님의 역사를 계시한다. 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곳으로 주님과 함께 떠나자는 말씀이다.    2:14 바위틈과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 오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고 나로 네 음성을 듣게 하라. 네 음성은 달콤하고 네 용모는 아름다움이라. '오 나의 비둘기야'는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를 부르는 호칭이다. 여기서 신부 성도 될 자의 호칭이 바뀐 것은 신앙이 더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마10:16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했다. 즉 비둘기는 신부의 신앙 정절을 가리킨다. 주님이 사랑하는 신부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정절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중심이 되면 ‘오 나의 비둘기야’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바위틈과 가파를 산 은밀한 곳에서는 깎아진 절벽 밑의 검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바위틈 은밀한 곳은 악한 들짐승과 바다의 짐승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난처로써 안성맞춤이다. 이와 같은 피난처는 곧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를 피난처로 삼고 있는 자는 풀무 불이나 사자 굴에 들어갈지라도 끝까지 신앙 정절을 지킨다. 우리의 피난처가 어디인가? 참 피난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라 하심은 신부의 용모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신부 얼굴에 면사포를 쓴 것과 같이 가리워서 오직 신랑 예수에게만 보여준다. 신랑 예수님만이 신부의 얼굴 위에 있는 베일을 벗겨서 보실 수 있다. 그럼 왜 신랑 예수님이 신부의 얼굴을 보려고 하나? 얼굴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온몸으로 열매 맺고 이긴 것의 결과는 얼굴에 영광이 나타난다. 사람의 인격의 대표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신부의 용모를 보기 원하시는 것은 네 자신의 온몸(인격)이 변화된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도의 신앙 변화의 마디마디가 있었다.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던 때가 있었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던 때도 있었다.      앉은뱅이처럼 신앙의 침체기도 맞았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일으켜주셨다. 주님과 한 몸 되어 주님의 사랑을 채워주셨다. 계속하여 변화시키는 역사를 해주셨다. 이제 얼마나 변화됐는지 신부의 모습을 보려고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온전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인격으로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 또 주님은 신부의 음성 듣기를 원하신다. 음성은 사상을 의미한다. 주님 없이는 못산다고 울고불고하던 상사병이 고쳐진 것이다. 즉 인본적인 신앙에서 신본적인 신앙으로 바꿔진 것이다. 그 신부의 사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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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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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교실] 맑은 눈으로 여름나기(2)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선글라스는 빛의 양이 적게 투과되어 동공이 많이 열리므로 반드시 자외선 차단처리가 된 제품을 사용하여야 한다. 특히 백내장 환자나 당뇨로 인한 망막 합병증이 있는 환자도 자외선처리 안경을 착용하여야 한다. 그중 자외선 양이 가장 많은 낮 시간을 피해서 활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컴퓨터 모니터를 오래 보면 눈 깜박임 횟수가 줄어들면서 직장인 중에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많다. 여름철에는 사무실에 있는 동안 창가 쪽에서는 지나친 자외선과 열을 피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에어컨 바람에 의한 안구건조 악화는 상당히 심각하다.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은 안구에 직접 닿지 않게 방향을 조절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이용한 작업은 50분 작업 후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눈 건강뿐만 아니라 근골계의 통증도 예방할 수 있다. 가습기를 이용해서 습도가 적절히 유지되도록 하며, 눈의 피로가 심할 때는 인공눈액등을 사용하여 안구를 적셔주면서 휴식시간을 갖고, 안구건조증이 지속될 때는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야외활동을 하는 중에는 더위로 인해 수분손실이 많아지므로, 충분한 수분보충과 인공누액 사용을 함께 해주는 것이 안구건조에 의한 염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럴 때 심하게 눈을 비벼대면, 각막의 상처를 만들게 된다. 바이러스성 결막염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여 직접 접촉뿐 아니라 간접 접촉에 의해서도 전파되므로 치료보다는 전염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즉시 손을 깨끗이 씻고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경우에는 수건을 꼭 따로 사용해야 한다.   안약을 넣거나 눈을 만진 다음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며 눈이 가렵거나 눈물, 눈곱이 많을 때는 직접 손을 대지 말고 티슈 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개 2~3주 안에 호전되지만, 이후 각막에 나타나는 상피하 혼탁이 나타나 길게는 수 개월간 지속되기도 한다. 심한 각막염이 발생되거나 이차적인 세균감염 발생시에는 각막혼탁이나, 결막유착등이 발생될 수 있으므로, 전문의에 의한 진료가 꼭 필요하다.   여름이 되면 누구나 산과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여름철은 겨울과 달리 자외선양이 2~3배 정도 많아진다. 자외선의 조사량이 가장 많은 때는 6~7월에 걸쳐서이며 하루 중 자외선량이 가장 많은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이다.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게 되면 누적된 자외선 노출로 인해 백내장이 좀 더 일찍 발생될 수 있으며, 최근 성인실명의 원인으로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황반변성의 경우도 자외선 조사량이 위험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해변이나 골프장에서는 직사광선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자외선에 쉽게 노출되어 일시적으로 눈이 충혈되고 아픈 광각막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막으려면 해변이나 산 또는 라운드 중에 차양이 넓은 모자와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구름이 낀 날씨에도 자외선의 영향은 지속되므로 이때도 자외선 차단을 꼭 시행하여야 한다.   이 외에 자외선을 차단하는데 있어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렌즈의 자외선 차단율을 구별하기 어렵고, 제품에 부착된 상표의 UV마크를 보고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렌즈색이 짙을수록 자외선 차단효과가 무조건 큰 것은 아니므로, 정확히 선택하여서 사용하여야 한다.   효과적인 자외선 예방법으로 반드시 자외선 투과방지 처리가 된 보호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여야 한다. 흐린 날에도 자외선 차단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장시간 야외에서 이동시에는 우산을 이용하거나, 차양 달린 모자를 착용하고 안경의 크기는 큰 것을 이용하는 것이 충분히 차단해주어 눈을 보호하는 데 적합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선글라스는 빛의 양이 적게 투과되어 동공이 많이 열리므로 반드시 자외선 차단처리가 된 제품을 사용하여야 한다. 특히 백내장 환자나 당뇨로 인한 망막 합병증이 있는 환자도 자외선처리 안경을 착용하여야 한다. 그중 자외선 양이 가장 많은 낮 시간을 피해서 활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컴퓨터 모니터를 오래 보면 눈 깜박임 횟수가 줄어들면서 직장인 중에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많다. 여름철에는 사무실에 있는 동안 창가 쪽에서는 지나친 자외선과 열을 피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에어컨 바람에 의한 안구건조 악화는 상당히 심각하다.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은 안구에 직접 닿지 않게 방향을 조절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이용한 작업은 50분 작업 후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눈 건강뿐만 아니라 근골계의 통증도 예방할 수 있다.   가습기를 이용해서 습도가 적절히 유지되도록 하며, 눈의 피로가 심할 때는 인공눈액등을 사용하여 안구를 적셔주면서 휴식시간을 갖고, 안구건조증이 지속될 때는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야외활동을 하는 중에는 더위로 인해 수분손실이 많아지므로, 충분한 수분보충과 인공누액 사용을 함께 해주는 것이 안구건조에 의한 염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양대구리병원 안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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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3
  • [향유옥합] 교회리더와 성
      사람들은 교회를 이끄는 리더를 보며 그들에게 성직자란 인상을 받는다. 그러한 인상 속에서 교회 리더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기에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는 단상이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교회 리더를 바라보는 이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리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터이다. 성직자라는 의식이 존재한다면 교회 리더는 우선 자신이 성스러운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교회 리더가 저지르는 성문제가 많이 불거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이 성적 윤리의식이 좋지 않음에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불린 이들이 하나님께서 거룩함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신앙과 성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부단히 연구하면서 한국교회 교단 내 주요 구성원이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가부장적 구조로 인해 발생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점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몸은 기독교의 부활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활동하는 모든 작용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적 능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몸이 좋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 맺음이 올바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과 매우 깊은 연관성을 지닌 몸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자신이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성의 권력과 자본의 연관성으로 일어나는 사회의 사건들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연합 구조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손해를 입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교회 속 여성들이 더더욱 노예처럼 일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회자가 사역을 하면서 목회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구조로 교회가 구성됐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신 모습이 아니며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공동체이기에 누구 하나 고통받아 이익을 취하는 자세를 버리고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화되어야 한다.   권력에 의한 여성 착취의 현장에서 여성들이 침묵당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고 친족 살해가 일어나고 여성이 피해를 보면 이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시도가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다.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인간의 존엄성, 권리 등을 무시하는 풍토가 일어나는데 이는 교회로 볼 수 없으며 여성과 성을 함부로 다루는 집단은 하나님께서 버린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삼권분립이 된 세속 사회와 달리 교회는 목회자가 교회 조직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로 자성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상태이다. 이는 교회의 역사는 지금까지 남성 목회자에게 복종과 순종을 강한 점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삶의 주체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교회의 진정한 리더는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목회자는 단지 좀 더 하나님께 헌신하고 자신을 내어놓는 소명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더욱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성과 성 사이의 긴장감을 갖고 교회를 이끌면서 건전한 모임 속에서 목회자는 성 윤리를 세우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웨스트민스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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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3
  • 코로나19 사태, 지혜롭게 대처하자
      코로나19사태로 선진국이나 후진국, 북반구나 남반구 가릴 것 없이 온 지구촌에 비상이 걸려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의료산업의 발전, 안정적인 의료체계,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수고와 희생 등으로 나름대로 잘 대처하여 ‘K방역’이란 명칭까지 얻어서 국격도 높이고, 진단키트 등 방역 물품을 온 세계로 수출까지 하게 되어 불행 중 다행이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코로나19의 확산은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온 세계가 제 2의 팬데믹을 우려하고 있는 요즈음 코로나사태의 종식을 위해서 교회와 정부가 지혜로운 대처로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러한 교회와 정부의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는 다가올지 모를 위협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회는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와 온전한 예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우리 기독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에 방역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완전히 버리고, 교회 안에서나 세상 속에서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히 준수함으로 방역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온전한 예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한국교회는 이웃들에 모범을 보이며 세속의 가치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복음의 가치를 드리워야 한다.   기독인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사태 초기에 진지한 기도나 주안에서의 깊은 고민 없이 코로나 감염 공포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쉽게 교회 공예배 포기 결정을 해버렸다. 이로 인해 교회는 온갖 박해와 전쟁 속에서도 목숨 걸고 드리던 온전한 예배의 전통과 기준이 흔들렸고, 질적 양적인 급격한 퇴보를 가져왔음을 깊이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방역 준수와 동시에 온전한 예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인들은 음식점, 까페, 직장, 학교, 스포츠센터 등 곳곳을 다 다니면서도 코로나 감염에 대한 염려로 1시간 동안의 교회예배조차 소홀히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구원자, 생사화복의 주관자로 믿는 자가 취할 바른 자세인가를 스스로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신앙은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정부는 교회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두 가지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중 한 가지는 교회에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주문하고, 더 나아가 방역수칙 준수의 모범이 되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교회가 코로나19사태가 빨리 종식되도록 역사의 주관자요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교회를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위험이 높은 다중집회시설로만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교회 집회를 못하도록 막을까 하는 방법만을 찾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 이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인본주의적 발상이요 교만이다. 이 사태의 신속한 극복은 인간의 노력에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망각하고 인간의 힘에 의존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되려 더 큰 어려움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깨어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결국, 코로나19사태의 지혜로운 대처법은 교회는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로 모범이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하는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정부에 협력하고, 정부는 교회에 대하여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의 모범이 됨과 동시에 나라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이 사태를 빨리 종식시키는 지혜로운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와 정부가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서로 협력하는 길이 이 코로나19사태 종식의 첩경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더 이상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피해를 보지 않기를 기도한다. /세계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한국사회발전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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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 누구를 위하여 돌을 던지고 있나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소속인 명성교회는 현재 원로목사님이신 김삼환목사님이 미사리 해양교회에서 쫓겨나다시피 피난 나와 강동구 명일동 미개발지역인 버스종점 조그만 상가건물 2층에서 1980년 7월 6일 십자가를 세우고 “칠년을 하루같이” 와 “오직주님”을 표제로 세우고 개척한 교회이다.   원로목사님의 간절하신 새벽기도를 주님께서 알아 들으셨는지 주변에 대형 아파트들이 건설되면서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하여,국내 장로교 역사상 최초로 10만 이상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초대형교회로 도약 하였다.   김삼환 원로목사님은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낮은 자세로 강단에 엎드려서 눈물로 기도 하면서 오직 십자가의 사명을 다하는 종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40년간 주변눈치를 안보시고 묵묵히 실행하신 분이다. 교회를 부흥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복음화 운동에도 앞장서서 전 세계 수십개 오지국가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기독교 복음화에도 앞장서 왔다. 또한 세계 최초로 여주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소망교도소(아가페교도소)의 건립에 기독교 지도자들의 힘을 하나로 화합 시키고 추진해서, 주변 반대를 잘 극복하고, 어렵사리 교도소를 무난하게 완공하여, 한순간의 실수로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온 죄수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복음화 시키어, 출소 후 또다시 죄를 짖고 재수감이 안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교화 시키고 있다.   요즘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있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가서 꽃다운 인생을 바친 할머니들의 노년을 편하게 생활 하시도록 ‘나눔의 집’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관리비용도 수십 년간 제공 하였다. 그리고 국내 전국도시에 장학관을 건립하여, 어렵게 배우는 인재들을 키워서 국내 및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로 양성 하였다.   따라서 명성교회가 국내 기독교의 부흥 발전은 물론 국내 정치, 경제발전의 지도자들을 양성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원로목사님이 은퇴 하면서,명성교회에 대해서 사회 및 기독교내에서 세습을 강행 하였다는 수많은 비판을 하는 것도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명성교회소속 교인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80프로 가까운 찬성으로 김하나목사를 초빙하는데 동의하여 어쩔 수 없이 강행하였음을 다시 한 번 부언헤 드린다.   물론 통합장로교 교단에서 교회헌법에 위배 된다고 극렬한 반대를 한 것도 인정한다. 그래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 생전에 하신 말씀을 상기 하여 보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에 답이 있다고 본다. 돌을 들고 치라고 하던 군중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돌을 내려놓고 한순간에 도망가다시피 살아졌다.   이제는 더 이상 불협화음을 내지 말고 율법으로만 정제하고자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을 불살라 버리고 진정한 회개와 용서를 통하여 긍휼을 베풀고 하나로 뭉치는 장로교로서 거듭나길 기도한다. 주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는 장로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명성교회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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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14
      세계로부천교회 ‘새 생명 초청 전도축제’에서 성도들에게 찬양과 간증을 통해 큰 은혜를 끼쳤으며, 지금도 복음사역에 매진하고 있는 찬양사역자 김민석 갓페라 가수를 소개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왔던 그의 삶들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한다.   김민석은 교육자(교사)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작은 할머니를 얻으셨는데, 무당이었다. 김민석이 어릴 때에는 무당할머니가 굿판, 푸닥거리를 하면 먹을거리가 많아 좋았지만, 철이 들어 교회를 다니면서 영적인 전쟁이 일어났다. 무당 할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고 2때 부흥회를 통해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응답을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무당집에서 신학대학에 가기란 불가능한 것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몰래 신학교에 입학한 사실을 아신 아버지는 불같이 진노하셨다. 그러나 그는 죽기로 결심하고 3일간 단식투쟁을 하자 아버지는 결국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김민석은 신학을 하면서 찬양이 너무 좋아 해외 선교를 시작했고, 1992년 제11회 전국복음성가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면서 찬양 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동상을 수상하고 극동방송 공개방송에 찬양 사역자로 처음 초대 받았는데, 진행하시는 최미 찬양사역자(사모)가 교통사고가 나서 오지 못했다. 바로 그가 대타로 얼떨결에 방송을 진행하면서 김민석 사역자는 지금까지 방송진행자로 28년 동안 쉼 없이 극동방송과 기독교방송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다.   김민석 전도사는 신학을 마치고 방송 진행자로 열심히 살아가다, 35살에 돌연 성악을 전공하겠다고 침례신학대학원 음악목회 대학원에 입학했다. 성악가들 대부분은 교회 출신인데, 이들은 오페라 아니면 팝페라(팝+오페라 묶음)의 꿈을 갖고 있다. 그가 찬양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로운 장르는 없을까 고민하다 새로운 장르 갓페라(가스펠+오페라 묶음)를 만들어 보겠다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김민석은 “주님 부족한 제가 세상 적으로 실력이 뒤지지 않을 때 갓페라를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민 14장 28절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그는 이 말씀 붙들고 이태리 로마로 유학길에 올랐다. “내 말이 네 귀에 들린 대로 내가 시행하리라”, 그는 5년간 유학하면서 국제 콩쿨 3개 입상을 했고, 갓페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학 간지 6개월 만에 국제 콩쿨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자 낙심이 되었지만, 그 다음날부터 24시간 음악을 때어 놓고 산적이 없을 정도로 갈망하고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3번씩이나 발성법을 가르쳐 주셨다. 다시 6개월 후 12월 팔레르모 국제 콩쿨에서 3차까지 모두 통과하고 입상을 했다. 5년 간 유학을 마치면서 김민석은 의기양양하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독창회 마치고 바로 갓페라 앨범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갓페라 음반을 만들고 싶어 시작하면 일이 터지고 또 터지고 해서 4번 만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김민석 찬양가수는 답답한 마음에 믿음의 아버지, 대전 한밭제일교회 이영환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의 믿음의 아버지는 단 한마디를 하셨다. “사역자가 살길이 무엇인지 아니? 겸손이야.” 그는 이 한마디에 그 동안의 사역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자 그 자리에서 자복하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일천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자, 새벽예배가 다시 살아났고, 하나님은 영적인 삶뿐만 아니라 육적인 삶도 회복시키시고 응답 하셨다.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려라”. 그래서 10년 만에 응답하신 갓페라 음반이 나오게 되었다.   이후 하나님은 김민석 사역자가 늦은 비를 통해 축복하신다는 말씀처럼 사용하기 시작하셨다. 영적인 삶이 회복되면서 지경이 넓어지는 축복을 주셨다. SBS스타킹ㆍKBS 단짝 . MBC컬투의 배란다쇼 등 많은 지상파에 출연하게 되었고, 갓페라 음반이 나오기 전 지상파를 통해 사역을 열어주시고 갓페라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김민석 가수는 2018년 5월 20일 이날을 잊을 수 없다. 오전과 오후 집회를 하는데,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계속 반복이 되었다. 기억 상실....... 이날 하루 생각을 모두 사라지게 한 날...... 부족한 그를 살리시려 계획하신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유럽으로 성지순례가신 이영환 목사님께 울면서 전화한 그의 아내..... 유럽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김민석 사역자가 익산 원광대학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악한 사탄을 결박하는 기도를 받고 병원에 도착해서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결과는 어떤 이상도 없게 하셨다. 이 병은 뇌출혈이나 뇌경색 또는 정신병을 동반하는데 아무 이상이 없게 치료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김민석 찬양가수는 늘 고백한다. “찬양하며 순교하길 원합니다. 다윗이 찬양 할 때 악신이 물러가고 바울과 실라가 찬양 할 때 묶인 것이 풀린 것처럼 부족한 저의 찬양을 통해 동일한 역사를 베풀어 주소서.” 김민석 갓페라 찬양가수가 걸어온 그 길에 성령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게 인도하셨던 것처럼, 독자 모두의 삶속에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고난의 시간을 맞이했더라도 지금 바로 일어나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길 소망한다.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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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13
      동방의 끝 작은 나라 한반도에 복음을 들고 입국한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생명의 진리, 예수그리스도를 전해 주었고 학교와 고아원, 병원, 사회복지 시설들을 우리나라에 세워주었다.   우리나라 초기 여러 선교사들 가운데, 아더 태펀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皮漁鮮)선교사를 소개하며, 선교의 헌신에 대한 열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는 1837년 3월 6일 ~ 1911년 6월 3일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생명의 말씀을 전했다. 피어선 박사는 미국의 장로교 목회자이자, 성경교사 양성가이며, 선교운동을 활력 있게 펼쳤던 예수님의 참 제자였다. 그는 피어선성경기념학원(현 평택대학교)을 세우는데 중요한 기반을 놓았던 인물이다. 피어선 선교사는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던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 이론가로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져 있다.   피어선 박사는 일만 삼천 개 이상의 설교문과 연설문 등을 집필하였다. 심지어 60권 이상의 책을 집필 할 정도로 활발한 작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에는 선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지성과 영성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던 기독교 지식인 중에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피어선 박사는 특히 한국교회가 기억하는 언더우드와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 총무이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회사가 로버트 엘리엇 스피어(R.E.Speer) 교수, 이슬람 선교의 개척자 사무엘 M. 즈웨머(Samuel Zwemer), 기독교청년회(YMCA) 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의 지도자로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 한국의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 S. Gale)박사 등을 크고 작은 선교적 지원으로 도왔고, 그들과 선교 동역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우리나라 수많은 선교사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시작된 해에 언더우드는 피어선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며 깊은 교제를 시작하였다. 언더우드는 피어선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세계선교평론의 조선 거주 편집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후에 ‘피어선성경기념학원’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학교설립을 주도하였고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피어선 선교사는 절친한 친구인 무디와 함께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1886년 미국 노스필드에서 학생자원운동(SVM) 단체를 창설하여 셔우드 에디(Sherwood Eddy), 존 모트(John R. Mott), 헨리 윈터스 루스(Henry Winters Luce), 타임지 잡지 창설자 Henry R. Luce의 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대학 청년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었다. 미국의 학생들은 여기에 도전을 받아 조선과 청나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십자가 복음을 들고 머나먼 이방인의 나라들까지 선교사로 떠나갔다.   피어선 선교사는 매우 열악한 여건에서도 성경을 공부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 받아서 성경학교 설립을 약속하였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1911년 1월 조선을 떠나 일본, 미국 LA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간 후 1911년 6월 3일 74세로 이 땅에서의 복음 전파 사명을 다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생이 있는 천국으로 가셨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였다.   피어선 선교사의 유족과 친구들, 후원자들이 피어선 박사의 유언을 따라 조선에 초교파적 성경학교를 설립한 것이 1912년 서울 서대문구 협성신학교 내에서 시작된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다. 이 성경학원을 전신으로 하여 1980년 조기흥 전 총장에 의해 대학설립인가를 받았고, 1981년 평택으로 학교를 옮겨 피어선성서신학교로 개교하였다. 1990년 12월,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여 피어선대학으로 개명하였으며, 1996년에 근거지명을 따라 평택대학교로 재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의 어두운 영적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지병을 안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찾아온 피어선 선교사의 충성스러운 예수의 제자 정신을 깊이 생각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 피어선 선교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19 사태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아더 태펀 피어선 박사가 십자가의 길로 걸어갔던 발자취를 반추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반드시 승리하는 신앙의 길로 나아가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피어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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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쉽게 배우는 한의학 19] 변증후란 무엇인가?
      항생제의 빈번한 사용은 면역력 감퇴의 원인 소아 ‘변증’은 태독을 흩으고 형제 이루는 과정 산후조리 방법은 이정도로 마무리 하고, 아기를 키우다 보면 잦은 잔병으로 힘들어할 때가 많다. 특히 감기 장염 설사 발열 열성경련 태열(胎熱) 등으로 부모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예쁜 아기가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오죽 좋으련만.   옛날 엄마들은 아기에게 열이 나면 조금은 기다려보고 치료하고자 했으나, 요즘은 조금의 미열만 생겨도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참으로 걱정스럽다. 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한 세균뿐만 아니라 뱃속의 유산균 같은 유익한 장내 세균도 함께 사라지게 되어 질병에 대한 저항력(면역력)이 부족해져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사라지게 된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대략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열이 나게 된다. 이 열은 아기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다(변증 ; 변하기 위하여 몸이 쪄지는 열이 난다). 누에가 한 잠을 자고 나면 성장하고, 뱀도 성장 주기 마다 허물을 벗듯이, 아기가 한 달을 주기로(정확히는 32일 마다) 열이 나면서 성장하는 것을 “변증후(變蒸候)”라고 한다. 이런 변증열은 해열제를 복용하지 않고 그냥 두어도 저절로 사라지는데, 해열제를 먹이면 성장하다가 중단하는 격이 된다.   소아의 변증(變蒸)은 태독(胎毒)이 흩어지는 것이며, 음양(陰陽)과 수화(水火)가 혈혈기(血氣)에 증울(蒸鬱)해서 하여금 형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오장(五臟)의 기를 변화시키고, 칠정(七情, 감정)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변증은 아이의 시기를 끝마치고 사람(인간)이 되는 것이다. 변(變)은 변해서 오장을 낳는 것이고 증(蒸)은 육부(六腑)를 기르는 것이다. 변은 기가 오르는 것이고 증은 몸에 열이 나는 것으로 경증(輕症)은 열이 나고 약간 땀이 나는데 마치 놀란 것과 비슷하고, 중증(重症)은 열이 심하고 맥이 어지러우면서 빠르고, 토하기도 하고 땀이 나기도 하며, 답답하여 울고 갈증을 느낀다.    경증은 5일이면 사라지고 중증은 7,8일이면 사라진다. 그 증상은 감기와 비슷한데, 단지 변증(變蒸)은 귀와 꽁무니가 차갑고 윗입술 중간에 물고기눈알 같은 흰색의 수포가 생긴다. 치료는 화평한 약으로 약간 땀을 내던가,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으니 경솔하게 약을 쓰지 말아야 한다.   32일마다 변증열이 나고, 매번 변증을 할 때마다 성정(性情)을 깨우쳐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오장육부와 의지가 성장해서 그런 것이다. 세속의 말에 ‘아이는 아프면서 큰다, 아기가 아프고 나면 안하던 짓을 한 가지씩 한다’고 하는 것이 모두 이런 뜻이다. 처음 32일 만에 열이 나는 변증을 하면 신장이 완성되어 공포 두려움 같은 겁이 생기고 뼈가 속에서 단단해져서 목을 가누게 된다.. 실제로 생후 1달이면 아이가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상한 물체보다는 소리에 반응을 해서 움찔거리게 된다.    64일에 열이 나서 신장의 표리(表裏) 장부인 방광이 완성된다. 96일에는 심장이 완성되어 웃기 시작하고 혈맥이 소통하기 시작한다. 대개 100일 전후한 백일잔치할 때가 되면 아기가 방긋방긋 웃어주는 모습에 온 집안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게 되고, 어른들은 아기의 웃는 모습을 보고싶어서 얼르느라 정신이 없게 된다.  /경희신창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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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실로암] 소외가 없는 교회를 꿈꾼다
    요즘은 ‘소외’가 어디서나 일어난다. 결코 이런 소외문제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종교공동체 안에서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인간소외’의 문제들이 ‘악’이라는 의식조차 들지 못하게끔 우리 사회 저변에, 그리고 교회의 저변에 파고 들었다. 이미 무의식화 되어 버린 인간소외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나 스스로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에 우리는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낀다. 나의 느낌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소외는 사회적으로 타인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된다. 나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렇게 간단하게 소외시켜 버린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는 만큼, 더욱 더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셨듯, 우리가 다 죄인이라면 우리는 타자에게 돌을 던지며 그들을 소외시킬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감싸고 아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타자를 소외시키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도 않고, 그 어떤 진리를 담고 있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개인감정’일 뿐이다. 그것도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일 뿐이다. 그러한 감정은 ‘소모’라는 형용이 참 잘 어울린다. 우리는 왜 타자를 미워하며 적대시하고 소외시키는 감정에 우리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소외와 감정소모가 언제나 정의의 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기독교인들에게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동성애인들이나 소수 종교인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그것도 하나님의 정의를 이유로 소외시킨다. 이러한 소외와 공격을 그들 스스로는 전혀 공격과 소외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부모가 아이의 일탈을 바로 잡듯 스스로 타자의 일탈 훈육한다고 망상한다.    이러한 망상과 선동은 그 누구에게 득이 되는가. 이런 소외를 담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정의를 외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개인적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신념이 훼손되는 것이 불쾌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부정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정상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치장한다.    과거 세대 사람들은 이런 논리가 통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논리가 더 이상 안 통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 논리가 통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청년으로서 이러한 타자를 향한 공격을 기독교인들이 멈춰주길 기대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이 타인들을 쉽게 재단하고 정죄하며 공격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그 정도만 해도 교회 다니는 것이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지금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다. 교회가 약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그 무리에서 함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예수소망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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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공명현상과 감사의 에너지(4)
      2) 타인의 존재에 대해 감사해야합니다. 타인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까지도 무의미합니다. 타인이 존재하기에 나의 가치도 돋보이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3) 자신의 환경이나 직장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에 교회가 있다는 것 △우리 가정이 있다는 것 △우리 자녀가 있다는 것 감사가 없으면 그 사람은 불평 하는 것이 따놓은 밥상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오늘저녁 이 시간 감사를 찾아 주께 감사를 하면 무한대의 축복을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4) 나를 만드셨고 환경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일반계시 : 달, 별, 땅 / 자연계시 △특별계시 / 성경계시 ※ 감사 Note를 만들어라 (일기장)  •자신  •이웃(자녀, 친구, 타인)  •환경  •하나님   감사를 하다보면 더 큰 감사를 얻게 됩니다. 감사는 무한대의 복입니다. 감사는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는 공명현상을 통해 축복을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감사의 에너지는 파동으로 전달되어 더 많은 축복의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 바로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이루는 첩경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현재를 보장하는 축복이요 •감사는 건강을 보장하는 축복이요 •감사는 미래를 보장하는 축복입니다.    오늘도 감사의 복을 심어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보고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경기大 상담·심리치료 전문 硏교수·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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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성경의 죽음 18] 하나님의 사람 다윗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성경에서는 한두 줄로 그의 인생의 종말을 기술할 뿐이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사무엘도 그랬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이 죽음 이후를 거창하게 꾸미거나, 혹은 후손들이 고인의 죽음을 놓고 화려하게 묘사하려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죽어 어디에 묻힌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있을 때 열심히 잘 살지 죽은 후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의 일생이 풀과 같고 꽃과 같이 시드는 인생인데 이 땅에서 얼마나 영화를 기대하는가? 등의 생각들이 머리에 스친다.   다윗 왕의 죽음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그 위대한 다윗,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불릴만한 다윗도 막상 죽음 묘사는 단 두 줄뿐이다.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성에 장사되니,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심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열왕기상 2장 10~11절).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을 다스리다가 나이 70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는 목자였다. 아버지의 목장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는데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고 훗날 왕 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목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신분도 미약하고 천한 사람이었으나 대부분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다윗 역시 그러했다. 그는 적들에게는 담대하고 용맹한 사람이었으나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는 겸손하고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음악가였다. 고향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며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지었다. 심지어는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 다닐 때도 노래를 만들었다. 왕 위에 오른 후에도 성가대를 조직하고 찬양을 불렀던 음악가였다. 그래서 그의 노래 상당 부분이 시편에 수록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킨노르’라 불리던 악기, 한글 성경에는 수금, 영어로는 하프라 불리는 악기를 연주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라고 할 정도로 상당한 연주력이 있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사무엘하 23장 1절)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였다.   그는 사랑받는 자였다. 그의 이름 ‘다윗’의 뜻 그대로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다윗은 미갈 공주의 사랑을 받았으며, 미갈의 오빠인 요나단도 다윗을 사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을 사랑했고, 평생 그를 죽이고자 했던 사울 왕도 최초에는 그를 사랑하였다.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싶다 했더니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고 달려가 물을 길어왔을 정도로 동료 군사들도 그를 사랑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만나서 마음에 꼭 드는 자라고 할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죽음의 순간에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면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용맹스러웠던 다윗이 생을 마감한다. 그는 아들 솔로몬에게 두 가지 유언을 한다. 하나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유언이며, 다른 하나는 끝까지 말씀을 지켜 하나님을 섬기라는 유언이다(열왕기상 2장 2~3절). 아들에게 주는 유언인 동시에 그 자신의 삶의 요약이기도 했다. 그는 후퇴를 모르는 용맹한 대장부였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던 인물이다. 아들에게 그런 유언처럼 살았던 인물이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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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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