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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만족하셔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기록들을 볼수 있는데 6일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7째 날에 쉬신 것이다. 물론 6일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이 계산 하는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과 다름을 학자들이 말하고 지질 연구가들이나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을 알라고 했다.(벧후 3:8 )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에는 천 년이 한 점에 불과한 것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의 작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기 넘치는 만물 들 위에 무지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노아의 홀수 때 노아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견고하듯이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영원하여 보시기에 더 좋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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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8)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성령의 전이 되고, 우리 심령 성전을 잦나무와 같은 진리의 특성, 즉 첫째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으로 완공해야 하는 것이다.   2:1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샤론' 은 엘리야가 이적을 베푼 갈멜산에서부터 욥바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이다. 이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하는 애굽 땅과 달리 그곳은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는 땅이다. 위에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받으며 오직 그것으로 만족하며 위에 계신 하나님만 앙망하는 땅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샤론의 평야같이 많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것을 가리켜 장미라고 하는 것이다. 재림하실 주님의 신부 신앙에 올려 세워진 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한량없이 많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일,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로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부된 자는 "나는 사론의 장미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샤론의 장미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한량없이 많은 것이다.   '골짜기'는 낮은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백합화는 꽃 중에 향기가 가장 진동하는 백색의 꽃이다. ‘나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장 낮고, 낮은 데서 향기를 최고로 발하는 신부의 신앙 모습을 가리킨다. 내가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지고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또 더욱더 낮아지게 되어져서 겸손과 온유가 충만하여 오직 신랑이 되는 주님만을 지극히 높이면 최고로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춰볼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골짜기의 백합화이다. 최고로 주님을 높이고 높이되 자신들은 최고로 낮아지고 낮아진 것이 바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데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자기 자신이 골짜기의 백합화가 되어지면 주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는 자로서 100% 순교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2:2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나의 사랑도 딸들 가운데 그러하도다. '딸들'은 1:5의 예루살렘의 딸들과 같은 예수 믿는 신자들을 지칭한다. 예수를 믿는 대다수의 교인 중에 신부 성도는 특별한 다른 무엇이 있다. 신부 성도는 주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자이다. 그래서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특별하다.’ 고 말하는 것이다.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는 바람이 불 때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사방에서 찌르게 된다. 문맥상 ‘가시나무’ 와 ‘딸들’ 은 동격이므로 딸, 즉 육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신부 성도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여 가시나무처럼 찌르는 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백합화는 가시나무에 찔림을 당하는 신부 성도를 계시하는 것이다.    신부 성도인 백합화는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서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가 마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가 되는 것은 순교자의 명부에 녹명이 된 자를 가리킨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찔러대는 것이 심하다. 장차 주 재림전에 있을 7년 환란에 들어가면 더욱더 찌르는 핍박이 심하게 된다. 그러면 백합화는 향기를 더욱 토해 내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육적인 요소가 있으면 가시나무와 같은 딸들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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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향유옥합] 그 사랑 신비의 거룩
       성경은 최고의 사랑에 증거이다. 무엇이 사랑인지 지혜로 알게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적용한다. 주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면 주를 헛되이 경배하게 함임을 성경은 경고한다. 이는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가르쳐 지키게 하여 죄사함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몫을 하게 하는 주의 제자화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와 배우라고 하셨다. 온유와 겸손한 자는 주종의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복음을 전하여 사랑의 실천을 하는 종으로 두 계명 지킴의 살리는 몫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거룩과 주의 제자화로 믿음과 성화임을 깨닫게 한다. 성령과 동행하여 구속 사역에 참예한다면 영적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주의 나라 확장을 가져온다. 이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기 때문이다. 롬8장5~8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증거 하셨다.    즉 거듭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적용은 도덕과 윤리로 육체를 중심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사랑의 뜻을 알 수 있으며 행할 수 있음을 발견케 한다. 곧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의 실천은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속 사역의 몫이며 생명으로 살리는 사랑이다. 도덕과 윤리의 사랑을 한다면 거듭나게 하지 못하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심을 깨닫게 된다.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셨다. 로마서에는 많은 부분 이를 분별하도록 증거한다.    곧 성경 해석 적용은 육을 중심으로 한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영혼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영생을 상고하는 목적이다. 오직 주를 믿고 좇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랑의 개념을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 살리는 진리를 가르쳐 주 안에 속하도록 지키게 할 것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신 확증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계명을 실천한 사랑의 결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사랑의 기준은 도덕과  윤리로 자신들이 심판자가 되어 육체대로 판단 적용이아니다. 원죄를 입고 태어난 자들의 그릇된 선과 악에 대한 육의 기준이다. 복 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의 시작이 되도록 주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그 자취를 좇아야 한다.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사랑은 주의 영이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으로 믿음이 온 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말씀에 입각한 사랑을 실천해 살리는 몫을 함이다. 곧 사랑은 주를 믿고 좇아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을 살 리어 주의 제자화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신비의 거룩을 바로 알게 되는 지혜의 사랑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 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아멘/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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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성서와 생활 [16] 그리스도인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따르는 자들이어야한다. 이는 십자가의 은혜를 넘어 ‘은혜 위에 은혜’요1:16의 역사에 참여하기위함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다만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사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함을 최종목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 요3:36을 주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알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영성을 통해 주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 생명수로 흘러 넘치는 생활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이 있는 분은 오직 예수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요5:12라고 하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을 믿어야한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상태로 만족할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의 열매에 이르러야만 한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얼마나 애통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라고 하셨다.    주님이 받을 세례는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이셨다. ‘한 알의 밀알’요12:24 이 되어 죽으심을 통해 많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라고 하셨다. 주님의 살을 주심으로 우리로 주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이러한 진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진리가운데로 나아가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참 생명되신 우리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하셔야만 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훈련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사람이기보다 주님의 영을 의지하여 사는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신다./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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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에레모스 영성 4] 시험의 땅, 광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마태 4:3)    여러 날 먹지 못하여 주린 상태에 있는 예수에게 사탄은 말했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으뜸은 식욕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실감한다. 먹어야 산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한다. 이런 굶주림으로 연명하는 이들을 제쳐놓고 왕 노릇으로서의 메시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당신이 나라님이 되어서 우리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에게 향하는 당연한 요구이며 따라서 사탄은 민중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먹는 빵으로 사는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인가? 내가 빵을 만들어 민중을 배불리 먹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왔는가? 내가 백성들을 만족 시켜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나? 그분은 때로 5병2어의 기적을 베풀며 수천 명의 먹거리를 해결하기도 하였으나 배불리 먹고 난 사람들이 그런 기적 때문에 예수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했다. 왜냐하면 빵 때문에 따르는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메시아적 공생애 기간은 빵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빵이 되는 길이었다. 그분의 가장 큰 관심은 육적 생명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명을 위한 영적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원하였다. 그분 자신도 바로 ‘그 말씀’으로 사탄과의 대척점을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끝내 유대인의 왕을 넘어서는 온 인류의 왕,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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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7) 우리집은 백향목과 잣나무다
      부활체이신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주님이 신부 성도에게는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송이로다.   1:16 보라, 너는 어여쁘며 나의 사랑하는 자야,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우리의 침상도 푸르도다.   ‘우리의 침상’이니 신랑 예수님과 신부 성도가 함께 사용하는 침상이다. 침상에 들기 전에 입맞춤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1:2). 또 목자를 찾아갔다. 또 집을 짓는 단계를 거친다. 침상이 푸르리니 생명이 자라남이다. 활기차게 약동한다. 계속하여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영적 의미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녹보석 같다(계 4:3)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임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영광을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입혀주실 것을 계시하신다.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때 받은 그대로가 아니라 항상 푸른 초목의 녹색과 같이 새롭게 된다. 즉 처음 받은 영광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신다. 재림하실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 분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임당했었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다. 한없이 존귀하게 되시어 하늘보좌에 좌정하신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장차 7년 환란날에 신앙 정절을 지킴으로 반드시 순교하게 되리라. 이 순교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순교케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 재림때 첫째부활의 영광(계 20:4~6)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체이신 영광의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나도 부활체, 즉 첫째부활의 영광을 받은 자이다. 첫째부활의 영광이 성도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요, 복이다. 성도의 부활 순서가 고전 15장에 나온다. 주 재림때 부활하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은 나중에 부활한다- 주님 재림때 순교자들이 먼저 첫째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온다. 신랑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바울도 이것을 더 좋은 부활이라고 증거했다(히11:35).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의 침상이 푸르르다. 곧 녹보석 같다고 하시는 것이다.   1:17 우리 집의 들보들은 백향목이요,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로다.    우리 집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성도가 함께 사는 집을 가리킨다. 복되고 환희가 넘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나는 순교를 통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입은 신부가 된다. 또한 재림하시는 영광의 주님은 신랑이 되어 함께 사는 우리집이 되는 것이다. 백향목은 백색의 향나무 같아서 수명이 천년까지 산다. 우리집의 대들보가 백향목이라함은 우리집이 천년간 향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향이 무엇인가? 7년 환란 때 하나님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해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다.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첫 번째 부활한 자들이다. 재림주님이 세운 왕국에서 천년동안 주님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하며 감사찬송하는 것이 백향목의 향이다. 재림하신 주님과 첫째 부활한 신부 성도가 부활체로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의 날들이 우리집의 대들보라고 한다. 우리가 이를 미리 믿음의 실상으로 누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라고 했다. 잣나무는 성전재료이다. 노아방주도 잣나무로 지었다. 잣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또 물에 잘 썩지 않는다. 이것은 잣나무 같은 진리의 특성을 계시하는 것이다. 즉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것같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영광을 바라보며 생명 길로만 나아가는 진리이다. 또 휘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 순교할지언정 비진리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진리이다.    또한 물에 썩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진리 특성을 가리킨다. 이 잣나무진리는 곧 첫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성전을 잣나무의 특성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즉 첫째부활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 우리의 서까래가 되며 우리집 짓는 재료인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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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2-20

실시간 칼럼 기사

  • [향유옥합] 창조의 계절과 생명의 물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했던' 창조의 때를 떠올린다. 그때 그 기운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바다 가운데 현존하고 계심을 느낀다. 그런데 자꾸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하며, 들녘의 모든 풀이 말라 죽어야 합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죄악 때문에, 짐승과 새도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내려다보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12:4)”는 안타까움에 내밷는 탄식이 터져나온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우리 일상은 여전히 핵발전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그 안전성을 보증했다고 말하는데, IAEA는 핵 산업의 촉진과 확산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다. 태평양에 새로운 방사능 물질을 풀어놓는 것이 지금도 바다로 흘러들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무겁다. 후쿠시마 어민들과 일본 전국어민연합도 방류를 반대했다. 방류는 결국 일본은 물론이고 주변국 시민들의 건강, 바다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오염수 투기에서 얻을 이익은 전혀 없다. 태평양 주변국들의 연합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전문가 패널들의 질문에, IAEA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며칠 전 일본은 핵 오염수의 방류를 시작했다. 사고가 아닌 국가라는 이름으로 합의 하에 버렸다.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을 앞으로 30년 동안 방류하면서 후손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떠넘길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마음이 추스려질지 가늠이 안된다. 핵, 방사능 오염수는 눈을 뜨고 바다를 봐도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육안으로 볼 수는 없을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바다 생물들과 그에 기대어 사는 이들과 어떻게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누구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우리 삶은 물론이거니와 지구 이야기는 이어질 수 없다. 잠시 멈추어 마음을 바다로 향해보자.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방류를 멈출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특별히 지금 우리는 창조의 계절을 살고 있다. 호주의 노먼 하벨이 구상한 후로 미국의 데이비드 로드와 H. 폴 샌트마이어가 협력하여 더욱 발전시킨 절기다. 보통 교회력은 예수님의 생애를 따르기에 창조주 하나님께 집중할 특정한 시기가 없지만, 기후위기 시대이니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그리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로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한다. 몇 해 전부터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이 시기에 하나님의 창조를 묵상하는 ‘풀꽃과 나무, 일상 속 물건’ 등을 묵상하게 하는 40-50편씩 편지를 나눴다. 올해는 ‘화성으로 간 책방’과 함께 세계교회가 한 마음으로 ‘생명의 물’을 묵상하면서 묵상꾸러미와 함께 13주간의 묵상레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문의 [ecochrist@hanmail.net](mailto:ecochrist@hanmail.net)). 주님이 오시는 대림절이 오기 전까지, 물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톺아보며, 온 천지를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되새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지어다(암 5:24)" 우리 모두는 도도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강에 합류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를 ‘마신’ 사람은 각자 자기 삶의 자리에서 시냇물이 되어야 한다. 기후 불의와 생물 다양성 파괴에 취약한 공동체를 위해 생태 정의를 실천할 때이다./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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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0-31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5회] 주의 뜻과 바람이 지혜로 미션 되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의 말씀임을 성경은 입증하여 확증케 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하신 말씀에서 적용의 지혜를 얻는다. 주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셨다. 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셨으며 요한일서2장15~17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는 말씀에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발견한다. 그러기에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다고 하시어 새 패러다임으로 사랑이란 개념을 아가페 사랑으로 연계하여 실행케 하신다. 주의 자취를 좇는 삶이다. 새 생명을 주는 사랑이 영원한 사람의 본분이며 주의 뜻임을 확증케 한다. 갈라디아서 2장19~20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심과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신앙의 지침이다. 곧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살리는 주 경외함에 두는 삶임을 확증해 준다.     새 피조물된 종들로 거듭났기에 자신을 살리신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함을 원칙으로 삼는 주종의 관계 성립이다. 곧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속사역에 참예이다. 이럴 때 주의 거룩한 자녀들이 탄생하여 주의 나라가 확장 되어지기에 주의 자녀로 회복은 주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좇아 사는 몫이라 할 수 있다. 이 일이 거듭난 자들의 일용할 양식으로써 산제물로 드려져 많은 과실을 맺게 되는 착한 행실이 된다. 더불어 주님의 기쁨이 충만케 되어 자신의 기쁨 또한 충만케 되는 행복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이다. 이를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시며 그 결과 희락을 누릴 수 있는 일임을 확증해 주었다. 야고보서2장22절 “행함이 믿음과 함께 일하고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느니라”하신 말씀에 화답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셨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시어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알고 좇게 하셨음을 확증하는 바이다. 새 피조물들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신을 살리신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함을 확증케 한다. 이와같이 주종의 관계를 성립한 자들이 종의 몫을 바로 하여 많은 이들이 의에 이를 수 있도록 사람의 본분을 하며 지키는 일이다.     곧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일임을 확증해 준다. 즉 사람 살리는 일을 하여 주의 제자화로 주를 사랑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드려지는 삶을 일컫는다. 아무리 땅에서 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하였다 할지라도 전도서 6장3절은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라고 하시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의 양식과 비결인지 지혜로 확증해 준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고 종으로 사는 몫의 주께서 약속하신 행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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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4회] 여호와 집에서 영원한 생명의 행복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후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주님과의 대면을 기대    성경 말씀은 참 행복을 알게 하시어 말씀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신다.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일이며 계명을 지키는 일로써 주를 사랑하는 일과 연계이다. 이를 위해 나를 따르려면 각기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신 말씀에 순복을 해야 한다. 누구든지 주 안에 종의 몫을 배워야 함을 발견케 하여 지혜를 얻게 하심이다. 종의 몫의 실현은 주인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로 지체들을 세울 수 있는 비결이다. 주님은 창조주로서 믿고 좇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영혼 구원자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심과 같다. 곧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언약대로 이루어짐이다. 이를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해석 적용해야 함을 찾게 하시어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영혼 구원으로 적용을 한다. 영생에 소망을 가진 자들은 위에 것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이다.     영에 속한 자로서 주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몫을 하는 주의 종들이다. 곧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구속사역에 참예하여 살리는 몫에 주를 경외하는 자로 사는 자이다. 복음을 알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덕을 끼치며 남의 유익을 위하여 주께 하듯 섬기는 자라 할 수 있다. 곧 골로새서 1장9~10절 “이로써 ~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는 기도를 드리며 좇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는 연계된 공동체를 확장케 하는 사랑을 확증하는 바이다. 다시말해서 주의 뜻을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좇아 복음으로 살리는 주 말씀 안에 순복을 확증케 한다. 주께서 강건케 하심은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하심의 몫이다. 또한 목적임을 확증한다. 곧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는 말씀에 아멘 한다.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 몫에 드려지는 지체들임을 확증해 준다.     그러므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심을 확증하는 바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지체로 주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가 되어 생명에 이르게 하는 여호와 경외함을 하는 제자로 확증이다. 행복의 결국은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자가 받을 생명의 면류관 주실 주님과의 대면이다. ‘주님을 생각만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죽음 앞에서도 설렘을 갖게 한다. 부르심의 선하신 뜻대로 땅에서도 참 행복을 알고 누리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는 나그네 여정이다. 기뻐하며 천국에 소망을 갖고 산 믿음의 결국 이긴 자의 영혼이 되어 사람의 본분을 하고 주께 돌아감을 행복의 참 의미로 누리고 이를 경험케 하신다. 주를 뵐 수 있는 천국에 가는 여정이기에 행복한 이 땅의 마침이 설렘으로 벅찬 시간임을 확증케 된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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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최 은 작가의 「the unexpected beauty」
      최 은 작가의 「the unexpected beauty」는 십자가 형태의 공간 속에 생동하는 꽃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인한 기쁨을 나타내는 듯 하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의 길이 어디있는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가를 연구하고 공부를 해서 그 길을 찾게 된 것이 아니라 전 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하셨다.(마22:14) 모든 사람이 청함 받았을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온전히 믿고 변화를 받아 갑자기 마음속에 기쁨의 꽃이 피어나기를 작가는 염원하고 있다/정재규(미술평론가 · 대석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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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바울 복음
      구약은 온전히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역사 이야기이고, 하나님께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함이니라”(사43:21)하시고 그들에게 계명과 말씀을 맡겼으며 그들의 역사 속에 직접 간섭하셨다. 신약의 복음, 기쁜 소식은 메시야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세상의 죄를 책임져 주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3:16) 누구든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도 초기 기독교에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도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의 복음서에  하나의 숨겨놓은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이 비밀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그리스도의 비밀인데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며 내게 주신 하나님 은혜의 선물로 내가 그 일꾼이 되었다고 기록한다.(엡3:3~13)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롬11:25~26, 롬11:11, 행28:28)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으니,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8~9)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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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변두리 소수자⑦] 뒷골목의 전도사
      깜깜한 새벽에 동네가 요란하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섰던 청년 전도사가 차에 치어 숨졌단다. 그러자, 그 근방에서 호객하며 살아가는 한 젊은 여인이 달려 나와 그 남자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운다. 그 전도사는 그 여자의 방에서 함께 지내던 관계이다. 그 전도사는 며칠 전에 그 여인을 찾아 와 “소년 시절에 잘못 했다”하며 용서를 빌고, 실컷 두들겨 맞았었다…   김성일의 단편소설 <뒷골목의 전도사>를 거꾸로 정리한 내용이다. 만약 이런 사건이 오늘 일어 났다면, 미디어는 어떤 부분을 부각하여, 어떻게 기사화 했을까? 그 기사를 읽은 성도들과 시민들의 관심은 무엇일까? 전도사와 그 여인? 그 관계? 그들의 속사정? 그 얽힌 내용? 그 전도사가 소속한 교단의 어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고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분이었다. 그 분이 어느 해 연초에 윤락가를 찾아가, 그곳 여인들과 화투 놀이를 하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화기애애한 사진과 함께 인간미 있는 분으로 평가하여 사람들이 흐뭇해 한 내용이었다.   아마 그 중에 어떤 여인은 즐거움과 함께 눈물이 났을 것 같다. 나도 그 신문 기사를 오려 내 노트에 붙여 보관하였는데, 얼마 전에 그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저 사진 속에 누구에게 주목을 하셨을까?’   나는 얼마 전 이주민들의 예배를 위해 교회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왜 우리는 저 뒷골목, 저 아래 동네로 쉽게 들어가지 못할까?’, ‘성스러운 곳에 가까이 오지 못한 그들에게 그러면 누가 갈까?’ 평지에 안전하게 머무르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 이들, 그리고 죄인들을 만난다고 예수님을 불경하다고 했던 이들…. 나도 그 부류의 범주를 벗어나기를 어려워했었다.   성경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 앞에 끌어다 놓고 참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종교인들은 예수에게 의도적으로 질문을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함께 했던 사람들도 참소자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죄인의 곁에 함께 서있을 수 있을까?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길은 일반적 사역으로 안 된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불경하다’고 정죄할 구실을 많이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을 사흘 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선동할 수 있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은 “사람들아 자신들을 보라”하며, 그 죄 많은 여인을 구하셨다. 구원에 관심 없는 종교인들은 모래를 씹으며 갔을 것이고, 군중들은 ‘아니면 말고’하며 흩어졌다.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양들을 찾아 뒷골목으로, 아래로 내려 가셨다. 나도 그래서 주님을 만났다. 나를 부르셨다. ‘저 건너편에도 가자’고.   “우리가 저 뒷골목과 저 아래로 내려가도 괜찮을까?” “예수님만 그럴 수 있지...” 친구 목사의 답이다.   그렇다면, 사역은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몸은 여기에 마음만은 저 건너편에... 아, 저 동네에도 불이 켜져 있다! 저 뒷골목과 저 아래에도...      *김윤곤목사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구약 및 상담학) 학위를 받고, 앵커리지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17년 시무했다. 미국장로교 대서양한미노회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다종족 주민 협력 프로젝트 등을 위해 7년간 선교사로 지냈다. 김목사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목양적 단상과 영감을 이민자·목회자·선교사·다문화 사역자의 관점에서 나눌 예정이다. (격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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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7
  • [당신의 뇌] 성 호르몬과 정신건강(3)
      뇌 크기와 피질 두께, 수용기 분포 등의 차이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의 전두엽은 아주 다르게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좌측 전두엽은 우측 전두엽과 달리 기능하며, 이런 차이는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여자의 경우 뇌량이 더 두꺼워 두 반구간의 기능이 더 통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들의 뇌는 대부분 반구간의 교류가 우수한 반면, 남자들의 뇌는 대부분 반 구내의 교류가 우수하다. 그런가 하면 인지수행에 대한 검사에서는 언어 과제일 경우에는 여자가 더 우수한 반면, 시공간 과제일 경우에는 남자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남녀 간의 행동과 뇌의 차이는 유전과 환경 요인의 산물이다.   남녀 각 성의 유전적 특성은 전혀 다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유전자는 생물학적 과정을 시작하고 점검할 뿐만 아니라 뇌구조의 해부학적 성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뇌 부위로는 기억, 사회적 행동, 정서처리 및 정서반응과 관련된 부위를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남자와 여자들이 보이는 행동이나 기능의 차이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해 내려온 과거 생활양식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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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6
  • 사울이 바울되는 변화의 힘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친 증인들의 옷을 맡았던 자로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한다. (행 7:58).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행 8:1) 사울이 교회를 진멸할새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잡아 오려 함이라. (행 9:1~2)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직접 뵙고(행 9:3) 확실하게 방향 전환을 했지만, 유대교 전통에 열심이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이다” 회심한지 14년이 지난 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는 사울이 태어난 다소까지 찾아가 사울과 함께 안디옥으로 와서 일 년간 큰 무리들을 가르치매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11:24~26)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초기에 사울이라 기록하였으나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행 13:9)” 비로소 바울이라 기록하고 그 후 모든 성경에 바울로 기록되었다.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어 이름이다. 당시는 헬라어 중심이어서 이방인에게 헬라어가 친숙했음이라. “이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8) 사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정교사가 되셔서 필요할 때마다 직접 나타나 알려주시고 확신을 주셨으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바울 되게 하셨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기점으로 BC와 AD로 나뉜다. 누구에게나 생의 전환점이 있다. 사람은 예수 영접하기 전과 영접 후로 인생이 갈린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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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4
  • [칼럼] 그의 길을 지켰다
         욥기 23장 10절에서 12절에서 하나님의 길과 내가 택한 길이 나온다. 하나님 입의 명령을 준행하고 있지만 우리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너무도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고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리라는 말씀이다. 먼저 ‘하나님의 입술의 명령과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지켰다.’ 했으니 이는 과연 어떤 명령을 준행 했다는 것일까? 바로 오늘 이때에 따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임을 특별히 가리킨다. 이는 주 재림 전에, 또 큰 환란날에 이기는 말씀이다.    재림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는 특별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부활과 더 좋은 부활의 견고한 진리에 서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것과 관계된다. 그 다음 내가 그의 발걸음을 따랐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적으로 초림하신 주님이 걸어가셨던 고난과 핍박의 생애를 가리킨다. 또 우리가 그의 고난 받으심 같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신에 교회를 위하여 채우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거적인 주님 발자취 따르는 것과 달리 내가 그의 길을 지키며 벗어나지 아니 하였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늘 보좌에 영광 받고 좌정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그분의 하시는 역사를 가리킨다. 그분의 역사가 그분의 장차의 길이다. 이미 우리가 상고한바 이사야 2장 3절 ‘마지막 날들에 가장 높은 산으로 주의 전을 세우시리니 우리가 그리로 올라가자 그리하면 그가 그의 길을 가르쳐 주시리라. 그러면 우리가 그의 길을 행하리라.’ 하였다. 이는 ‘그의 길이’ 그가 지금 이때에 하시는 역사이며 이를 요한계시록 6장 9절에서 11절에서 단적으로 가르쳐주시고 있다. 즉 순교할 자들의 수를 채우시는 것이요, 또 환란날의 하나님의 종들의 수인 14만 4천을 채우시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이와 같은 주의 길을 깨닫게 되면 어찌하든 순교할 자의 그 수에 들도록 믿음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또 더욱더 높은 경지를 향해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길을 지켜 나가게 될 것이다. 이를 가리켜 내가 주의 길을 지켜 따랐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 하시면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나의 인본적인 사상과 고집, 내 속에 있는 육적인 찌꺼기와 불순물을 빼내시리라. 하나님의 길을 끝까지 마치게 하기 위해 나를 정금같이, 다이아몬드 보석 같이 단련해 주시리라. 그러므로 주님 역사와 그의 길을 내가 가도록 해 주시리라. 아멘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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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3
  • [당신의 뇌] 성 호르몬과 정신건강(2)
      성 호르몬 분비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 의해 조절되는데 시상하부가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하면 뇌하수체에서 여포자극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을 분비하여 남성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여성에서는 에스트라디올과 프로게스테론 분비를 촉진시킨다.   여성의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은 우울증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진다.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지면 여성은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우울하고 초조감, 무력감, 수면장애, 과식, 성욕감퇴 등을 쉽게 느낀다. 그러한 이유로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낮아지면 월경전이나 폐경기 여성이 우울증이 잘 걸리는 것이다. 또 여성은 감정의 뇌인 변연계가 남성보다 더 크기 때문에 유대관계가 와해되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남자의 뇌는 여자의 뇌보다 약 8~10% 크다. 남녀 간 뇌구조의 차이 중 하나는 전두엽을 덮고 있는 피질의 두께다. 남자의 경우 우측 전두엽피질이 좌측 전두엽피질보다 두꺼운 반면, 여자의 경우에는 양쪽 전두엽의 피질두께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여자의 경우 에스트로겐 수용 기가 전두엽 전반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지만, 남자는 고르지 않다. 전두엽에 있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통로의 분산 정도에서도 성차가 나타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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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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