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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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만족하셔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기록들을 볼수 있는데 6일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7째 날에 쉬신 것이다. 물론 6일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이 계산 하는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과 다름을 학자들이 말하고 지질 연구가들이나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을 알라고 했다.(벧후 3:8 )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에는 천 년이 한 점에 불과한 것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의 작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기 넘치는 만물 들 위에 무지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노아의 홀수 때 노아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견고하듯이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영원하여 보시기에 더 좋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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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8)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성령의 전이 되고, 우리 심령 성전을 잦나무와 같은 진리의 특성, 즉 첫째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으로 완공해야 하는 것이다.   2:1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샤론' 은 엘리야가 이적을 베푼 갈멜산에서부터 욥바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이다. 이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하는 애굽 땅과 달리 그곳은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는 땅이다. 위에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받으며 오직 그것으로 만족하며 위에 계신 하나님만 앙망하는 땅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샤론의 평야같이 많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것을 가리켜 장미라고 하는 것이다. 재림하실 주님의 신부 신앙에 올려 세워진 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한량없이 많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일,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로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부된 자는 "나는 사론의 장미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샤론의 장미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한량없이 많은 것이다.   '골짜기'는 낮은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백합화는 꽃 중에 향기가 가장 진동하는 백색의 꽃이다. ‘나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장 낮고, 낮은 데서 향기를 최고로 발하는 신부의 신앙 모습을 가리킨다. 내가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지고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또 더욱더 낮아지게 되어져서 겸손과 온유가 충만하여 오직 신랑이 되는 주님만을 지극히 높이면 최고로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춰볼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골짜기의 백합화이다. 최고로 주님을 높이고 높이되 자신들은 최고로 낮아지고 낮아진 것이 바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데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자기 자신이 골짜기의 백합화가 되어지면 주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는 자로서 100% 순교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2:2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나의 사랑도 딸들 가운데 그러하도다. '딸들'은 1:5의 예루살렘의 딸들과 같은 예수 믿는 신자들을 지칭한다. 예수를 믿는 대다수의 교인 중에 신부 성도는 특별한 다른 무엇이 있다. 신부 성도는 주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자이다. 그래서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특별하다.’ 고 말하는 것이다.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는 바람이 불 때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사방에서 찌르게 된다. 문맥상 ‘가시나무’ 와 ‘딸들’ 은 동격이므로 딸, 즉 육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신부 성도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여 가시나무처럼 찌르는 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백합화는 가시나무에 찔림을 당하는 신부 성도를 계시하는 것이다.    신부 성도인 백합화는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서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가 마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가 되는 것은 순교자의 명부에 녹명이 된 자를 가리킨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찔러대는 것이 심하다. 장차 주 재림전에 있을 7년 환란에 들어가면 더욱더 찌르는 핍박이 심하게 된다. 그러면 백합화는 향기를 더욱 토해 내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육적인 요소가 있으면 가시나무와 같은 딸들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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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향유옥합] 그 사랑 신비의 거룩
       성경은 최고의 사랑에 증거이다. 무엇이 사랑인지 지혜로 알게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적용한다. 주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면 주를 헛되이 경배하게 함임을 성경은 경고한다. 이는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가르쳐 지키게 하여 죄사함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몫을 하게 하는 주의 제자화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와 배우라고 하셨다. 온유와 겸손한 자는 주종의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복음을 전하여 사랑의 실천을 하는 종으로 두 계명 지킴의 살리는 몫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거룩과 주의 제자화로 믿음과 성화임을 깨닫게 한다. 성령과 동행하여 구속 사역에 참예한다면 영적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주의 나라 확장을 가져온다. 이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기 때문이다. 롬8장5~8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증거 하셨다.    즉 거듭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적용은 도덕과 윤리로 육체를 중심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사랑의 뜻을 알 수 있으며 행할 수 있음을 발견케 한다. 곧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의 실천은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속 사역의 몫이며 생명으로 살리는 사랑이다. 도덕과 윤리의 사랑을 한다면 거듭나게 하지 못하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심을 깨닫게 된다.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셨다. 로마서에는 많은 부분 이를 분별하도록 증거한다.    곧 성경 해석 적용은 육을 중심으로 한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영혼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영생을 상고하는 목적이다. 오직 주를 믿고 좇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랑의 개념을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 살리는 진리를 가르쳐 주 안에 속하도록 지키게 할 것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신 확증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계명을 실천한 사랑의 결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사랑의 기준은 도덕과  윤리로 자신들이 심판자가 되어 육체대로 판단 적용이아니다. 원죄를 입고 태어난 자들의 그릇된 선과 악에 대한 육의 기준이다. 복 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의 시작이 되도록 주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그 자취를 좇아야 한다.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사랑은 주의 영이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으로 믿음이 온 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말씀에 입각한 사랑을 실천해 살리는 몫을 함이다. 곧 사랑은 주를 믿고 좇아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을 살 리어 주의 제자화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신비의 거룩을 바로 알게 되는 지혜의 사랑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 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아멘/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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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성서와 생활 [16] 그리스도인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따르는 자들이어야한다. 이는 십자가의 은혜를 넘어 ‘은혜 위에 은혜’요1:16의 역사에 참여하기위함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다만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사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함을 최종목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 요3:36을 주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알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영성을 통해 주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 생명수로 흘러 넘치는 생활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이 있는 분은 오직 예수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요5:12라고 하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을 믿어야한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상태로 만족할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의 열매에 이르러야만 한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얼마나 애통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라고 하셨다.    주님이 받을 세례는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이셨다. ‘한 알의 밀알’요12:24 이 되어 죽으심을 통해 많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라고 하셨다. 주님의 살을 주심으로 우리로 주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이러한 진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진리가운데로 나아가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참 생명되신 우리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하셔야만 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훈련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사람이기보다 주님의 영을 의지하여 사는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신다./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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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에레모스 영성 4] 시험의 땅, 광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마태 4:3)    여러 날 먹지 못하여 주린 상태에 있는 예수에게 사탄은 말했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으뜸은 식욕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실감한다. 먹어야 산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한다. 이런 굶주림으로 연명하는 이들을 제쳐놓고 왕 노릇으로서의 메시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당신이 나라님이 되어서 우리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에게 향하는 당연한 요구이며 따라서 사탄은 민중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먹는 빵으로 사는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인가? 내가 빵을 만들어 민중을 배불리 먹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왔는가? 내가 백성들을 만족 시켜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나? 그분은 때로 5병2어의 기적을 베풀며 수천 명의 먹거리를 해결하기도 하였으나 배불리 먹고 난 사람들이 그런 기적 때문에 예수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했다. 왜냐하면 빵 때문에 따르는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메시아적 공생애 기간은 빵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빵이 되는 길이었다. 그분의 가장 큰 관심은 육적 생명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명을 위한 영적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원하였다. 그분 자신도 바로 ‘그 말씀’으로 사탄과의 대척점을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끝내 유대인의 왕을 넘어서는 온 인류의 왕,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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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7) 우리집은 백향목과 잣나무다
      부활체이신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주님이 신부 성도에게는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송이로다.   1:16 보라, 너는 어여쁘며 나의 사랑하는 자야,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우리의 침상도 푸르도다.   ‘우리의 침상’이니 신랑 예수님과 신부 성도가 함께 사용하는 침상이다. 침상에 들기 전에 입맞춤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1:2). 또 목자를 찾아갔다. 또 집을 짓는 단계를 거친다. 침상이 푸르리니 생명이 자라남이다. 활기차게 약동한다. 계속하여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영적 의미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녹보석 같다(계 4:3)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임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영광을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입혀주실 것을 계시하신다.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때 받은 그대로가 아니라 항상 푸른 초목의 녹색과 같이 새롭게 된다. 즉 처음 받은 영광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신다. 재림하실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 분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임당했었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다. 한없이 존귀하게 되시어 하늘보좌에 좌정하신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장차 7년 환란날에 신앙 정절을 지킴으로 반드시 순교하게 되리라. 이 순교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순교케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 재림때 첫째부활의 영광(계 20:4~6)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체이신 영광의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나도 부활체, 즉 첫째부활의 영광을 받은 자이다. 첫째부활의 영광이 성도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요, 복이다. 성도의 부활 순서가 고전 15장에 나온다. 주 재림때 부활하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은 나중에 부활한다- 주님 재림때 순교자들이 먼저 첫째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온다. 신랑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바울도 이것을 더 좋은 부활이라고 증거했다(히11:35).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의 침상이 푸르르다. 곧 녹보석 같다고 하시는 것이다.   1:17 우리 집의 들보들은 백향목이요,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로다.    우리 집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성도가 함께 사는 집을 가리킨다. 복되고 환희가 넘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나는 순교를 통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입은 신부가 된다. 또한 재림하시는 영광의 주님은 신랑이 되어 함께 사는 우리집이 되는 것이다. 백향목은 백색의 향나무 같아서 수명이 천년까지 산다. 우리집의 대들보가 백향목이라함은 우리집이 천년간 향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향이 무엇인가? 7년 환란 때 하나님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해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다.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첫 번째 부활한 자들이다. 재림주님이 세운 왕국에서 천년동안 주님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하며 감사찬송하는 것이 백향목의 향이다. 재림하신 주님과 첫째 부활한 신부 성도가 부활체로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의 날들이 우리집의 대들보라고 한다. 우리가 이를 미리 믿음의 실상으로 누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라고 했다. 잣나무는 성전재료이다. 노아방주도 잣나무로 지었다. 잣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또 물에 잘 썩지 않는다. 이것은 잣나무 같은 진리의 특성을 계시하는 것이다. 즉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것같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영광을 바라보며 생명 길로만 나아가는 진리이다. 또 휘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 순교할지언정 비진리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진리이다.    또한 물에 썩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진리 특성을 가리킨다. 이 잣나무진리는 곧 첫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성전을 잣나무의 특성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즉 첫째부활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 우리의 서까래가 되며 우리집 짓는 재료인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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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0

실시간 칼럼 기사

  • [에레모스 영성 3] 광야의 의미
      시베리아 하면 하얀 설원이 떠오르고, 몽골 하면 푸른 초원이 연상되며, 스위스 하면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가 그려진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둘러싸인 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북쪽 지방의 헤르몬 산지와 갈릴리 호수가 있기는 해도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이어지는 유대 산악지대는 일컬어서 광야로 불려진다.    광야는 연단과 시험의 현장이다. 용광로에서 달구어진 쇠붙이가 풀무질과 담금질을 거쳐 강한 철근으로 만들어지듯이 사람에게도 때때로 그러한 과정이 요구된다. 유대 민족이 선택의 집단이 되고 택하신 분의 뜻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그러한 집단 훈련 장소로서의 광야가 필요하였으며, 세례요한이 본격적으로 요르단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사역을 하기 전에도 광야의 삶이 요구 되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 기도, 그 안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광야 생활이 농축 되어있으며 세례 요한의 오랜 광야 수도 기간이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품고 세례자 요한을 품고 인류역사와 더불어 하늘의 뜻을 품을 수 있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쳐야 하는 시험대 위에 그분 자신도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이 땅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인간 조건, 인생 여정, 삶의 애환을 모두 한 몸에 쓸어 담으셨다. 곧 체화, 체득, 체휼의 영성을 쌓아갔던 것이다.   겹겹 첩첩의 토양과 토질 그리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대하며 이런 것이 마치 우리네 삶의 인생여정이 아닐까 하는 상념을 잠시나마 가져보았다. 지난여름 방문했던 유대 광야에서.  /가락재 영성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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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건강교실] 신장 이식 (하)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예후는 어떨까?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서 매년 보고되고 있는 통계에 따르면, 국내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은 신장이식 기증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혈연이나 비혈연간의 생체 이식에서는 5년 이상 환자 생존율이 약 96.01%이고, 뇌사자 신장이식에서는 약 90.27%로 보고되고 있다.   ‘신장이식 환자의 이식신 생존율’은 이식을 한 신장의 정상기능 여부에 따른 확률을 가리킨다. 이 역시 신장이식 기증자와의 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년에 약 85.4%로, 이는 미국 장기이식관리센터(UNOS)가 발표한 이식신 생존율인 1년에 98.5%, 5년에 90%, 10년에 77.1%과 대등한 수준이다.   또한 이식 신장의 거부반응으로 기능을 잃었더라도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며, 다시 투석을 하거나 신장이식을 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신장이식을 받은 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장 이식은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장이식을 받고 나면 투석으로부터 해방되지만, 수술 이후에 조심하시고 신경써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수술 후 회복기에는 몸의 변화에 대해서 적응하고 안정화 되는 기간이 필요하다. 수술 후 영양 관리도 중요하다. 적절한 열량과 단백질의 공급, 충분한 수분섭취를 통한 안정된 체중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식수술 후에는 이식된 신장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감염에 특히 취약한 시기들을 거칠 수밖에 없다. 초기에 예방적 항생제, 항바이러스 치료를 잘 받더라도 거대세포바이러스나 BK 바이러스처럼, 감염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손 씻기, 가글, 마스크 착용 등 위생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익히지 않은 해산물이나 고기를 주의해야 하며, 예방접종은 의료진과 상의하여 진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면역억제제를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으며,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는 것이다. 규칙적인 복용, 즉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의 약을 잘 복용해야 하며, 적절한 혈중 농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적정 복용량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처럼 수술도 중요하나,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한 치료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말기신부전이 진행되어 이에 대한 투석은 노폐물을 제거하는 신장의 기증을 어느정도 대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신장이 하는 모든 기능을 대체할 수는 없는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신장이식의 경우는 이식된 신장이 기능을 함으로써 평균수명의 연장, 투석과 신부전의 진행으로 인한 다양한 합병증의 진행을 막는다. 또 투석으로 인한 시간, 비용, 불편함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어 삶의 질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금기사항이 없는 경우에는 가장 근본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기에, 신장이식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관심과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병원 간이식팀은 생체 간이식뿐만 아니라 응급으로 진행되는 뇌사 간이식 또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또한, 기증자 간 절제 수술을 100% 복강경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양대병원 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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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기억이 보인다(6)
    부모로부터 언어적 학대나 정서적 방임을 당하거나, 무관심도 충격적 경험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모두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다. 군대에서 선임이나 동료에게 당하는 구타나 성폭력 등 모든 가혹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충격적 경험이나 반복되는 스트레스는 정신적 외상이 되어 인지적, 감정적 및 사회적응을 잘하지 못하도록 한다. 정신적 외상은 환경이나 대인관계, 그리고 정신건강의 취약성을 지니게 함으로써 마침내는 임상적인 증상이나 장애(병)로도 얼마든지 발전되는 것이다.   정신적 외상의 근원지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언어폭력이나 학대, 그리고 정서적 방임들이 애착 외상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 학교폭력이나 왕따, 집단따돌림은 정신적 외상의 소인이 되고 이후 충격적 경험을 하게 되면 자아가 무너져 여러가지 정신병리를 야기시키게 된다.   어릴 때 부모와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실패하면 인간관계나 사회적 부적응, 그리고 마침내 정신건강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취약성의 기질을 만들 수 있다./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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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2
  • [건강교실] 신장 이식 (상)
      신장 이식은 말기신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사구체 여과율이 15~29%로 감소되는 4단계부터는 신장내과 의사의 진료를 받고 투석 혹은 이식과 같은 신장 대체요법에 대해 준비 및 시작을 고려해야한다. 하지만 투석을 시행하더라도 점차적으로 말기신부전은 진행이 되고, 이로 인한 심혈관 병증과 같은 여러 합병증들이 발생하여 사망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신장 이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공여자는 수혜자와 어떤 조건이 맞아야 할까? 이식을 고려하게 되면, 우선 신장 내과나 이식 외과 진료 후 장기이식센터의 전문 간호사에게 상담을 받게 된다. 공여자가 있는 경우 생체 신장이식을 시행하게 된다. 이 경우 공여자, 수혜자가 충분히 결정할 시간을 준다. 이식 진행을 결정하게 되면 기증자, 수혜자 각각 건강상태에 대한 검사를 시행한다. 또한 사회복지사가 이식대상자와 기증자 간의 서류심사 및 상담을 통해 이식의 순수성에 대한 상담 평가 후 공여자가 이식이 가능하다. 또, 수혜자가 이식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승인 후 수술을 진행한다.   우선 공여자와 수혜자 간의 면역학적 일치가 어느정도 되는지 검사를 시행하고, 전신건강상태에 대해 평가한다. 신장 기증자는 만 16세~65세 사이, 신체검사 상 건강한 자로, 신장기증을 자의로 원해야만 한다. 또한 검사를 통해 신장이 해부학적 및 기능적으로 정상인 것이 확인되어야 하며, 당뇨병, 심한 고혈압, 간염, 악성 종양, 정신과적 문제가 없어야 한다. 최근에는 신장기증을 위하여 혈액형이 일치할 필요는 없게 됐나, 조직 적합성 교차 반응 검사에서는 거부 반응이 없어야 한다.   적절한 이식 공여자가 없는 경우 투석을 시작한 후,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하여 뇌사공여자이식 즉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게 된다. 가족이나 친척 등이 기증하는 ‘생체 신장이식’도 흔히 이루어지고 있다. 장 한쪽을 기증한 공여자의 경우 일상 생활에 문제는 없을까? 신장 한쪽을 기증한 공여자의 경우에는 한쪽 신장을 기증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약 70-80%까지 기능이 회복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말기 콩팥질환으로 진행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수술 후 기대수명 또한 일반인보다 짧지 않다. 대부분의 기증자의 경우 기증을 하더라도 안전하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신기능 및 전신상태에 대한 추적관찰은 필요하다.   신장이식 수술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전신마취를 시행 후, 피부는 서혜부에서 우측이나 좌측 하복부를 따라 20∼25㎝ 정도 비스듬히 절제하게 된다. 신장 이식할 위치로 가장 좋은 곳은 장골와 부위이다. 양측 하복부의 서혜부와 방광이 가까워서 이식신장의 동정맥과 요관을 환자의 동정맥과 방광에 연결하기 쉽다.   기증자에서 떼어낸 신장은, 동맥은 동맥끼리, 정맥은 정맥끼리 그리고 요관은 방광에 연결되어 이식된다. 수술은 보통 4시간 가량 소요되나 상황에 따라서 더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또한 최근에는 환자의 나이나 상황에 따라 적응증이 올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기존의 절개 방법이 아닌 로봇을 이용한 수술도 시행되고 있다. /한양대병원 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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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기억이 보인다(5)
      현대사회의 문화발달은 가속화 되지만 스트레스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자고 제도를 만들고 개혁하고 노력하는데도 스트레스나 각종 사고는 정신적 외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눈만 뜨면 수많은 사건과 사고, 질병과 불행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흔들고 예기치 않던 불안과 불안전한 환경으로 정서적 혼란까지 야기시키고 있다.   트라우마는 병명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폭넓게 쓰는 단어이다.   스트레스는 가정이나 학교, 직장 그리고 군대 어느 곳에서든 출현되며 보편화되고 이것이 반복되거나 그 외 충격적인 사건들이 가중되면 곧바로 정신적 외상에 노출된다. 이처럼 충격적 경험은 스트레스가 되고 외상이 되는 것이다.   대학에 낙방하는 것도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다. 폭력을 당하는 것도 무시를 당하는 것도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명퇴되거나 조기 퇴직하는 것도 충격적 경험이며 그 무엇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화재사고, 재해나 재난을 당하는 것은 더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든가 자해나 자살하는 것도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고, 교통사고나 사기 당하는 것도 충격적 경험이 될 수 있다./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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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6) 주님은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 송이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면 순전한 눈이 되어진다   주님은 내게 영원히 썩지 않는 몰약향이 되신다. 또 온 밤을 이기는 주님의 몰약 주머니가 내게 있도다.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 송이로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한다. 엔게디는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사울을 피하여 숨었던 엔게디 광야에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삼상23:29). 나의 사랑하는 이 예수님이 내게 엔게디 포도원이라는 것은 다윗의 경우와 같이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이다. 또 요새요, 요새 교회가 되시는 것을 말한다. 신랑 예수님이 나를 신부 되도록 세우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것이 엔게디 포도원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2장, 3장의 금촛대교회이다. 종말에 그리스도 신부 세우는 금촛대교회이다. 또 주님은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송이라고 했다. 캠퍼송이(고벨화)는 중동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마치 우리나라에 봉숭아꽃과 비슷하다. 캠퍼송이는 꽃잎이 노랑 빨강 흰색이 있다. 그중에 노란색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게 노란 캠퍼송이와 같이 평화·평강이 되심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은 '먼저 지옥 갈 염려가 없이 구원해주신 평강이다. 또한 환란날에 배도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 주실 평강이 되신다. 흰색 캠퍼송이는 성결·거룩을 상징한다. 주님이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분이므로 내게 흰 캠퍼송이시다. 빨간색 캠퍼송이는 사랑을 상징한다. 마치 홍보석 같다고 말씀했고 주님의 보혈을 쏟으시어 날 사랑하신다. 또 성령을 부어주시되 일곱 영으로까지 충만히 부어주시어 예언의 철장권세도 주신다. 또 순교도 하게 하시니 사랑의 캠퍼송이로다.   1:15 보라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도다. 보라, 너는 어여쁘며 너는 비둘기의 눈을가졌도다. 주님이 성도를 보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어여쁘게 보신다. 우리 자신은 죄악과 부패성만 나오는 존재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님의 마음·생각·성품으로 일치 되어져 가면 주님이 어여쁘게 보시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가 계시므로 나의 신앙이 자라고, 내 안에 주님이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송이가 되시어 나를 순교케 하신다. 주님이 내게 신랑이 되어지면 주님이 '오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아름답구나' 하시는 것이다. 어여쁜 성도의 눈이 비둘기의 눈과 같다는 것은 비둘기의 속성을 통해 영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하신다(마 10:16). 제자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양들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이리들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보냄받은 제자들이 사명 감당하다가 이리들에 의해 죽임당하지만 끝까지 신앙 정절을 지키는 것이 비둘기처럼 순결한 것이다. 이와같이 나의 사랑하는 어여쁜 자는 비둘기의 눈을 가져서 순결한 신앙 안목으로, 신앙의 절개가 있다는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다. 네 눈이 순전하면 네온 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만일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도 어두워 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면 순전한 눈이 되어진다. 비둘기의 눈을 가지면 예수님의 눈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되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신실하시고 순종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뀐다. 처음 믿을 때와 중간, 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칭찬하시는 비둘기 눈을 가지기를 바란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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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성서와 생활 [14] 그리스도인의 영성-생명의 영성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이 생명을 가진 자 마다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만 구원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해 그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어주신 것이다. 이러한 생명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 장성한 자의 믿음인 것이다.롬8: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한다.잠19:3.이 생명은 우리 안에 없는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이 생명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믿는 자는 이미 이 생명이 있음을 아는 것이 영적이 자녀라고 볼 수 있다. 이 생명은 우리 육체로부터 오는 사망의 생명과 싸워 이기게 한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될 뿐 만이 아니라 그의 생명도 얻게 하시려는 것을요20:31아는 것이 우리의 완전한 믿음이다. 또한 이 생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더 큰 구원으로 나아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한다.   생명이 왕노릇하는 권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이시다.약1:12.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생명을 사모하는 자마다 모든 시험을 견디게 된다. 이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므로 주님께서 얻으신 부활의 생명에 이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난보다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서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되어야한다. 참된 생명은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주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자 하는 자 마다 계:2:10 생명의 왕노릇 하는 길을 가야한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가는 동안 참된 생명딤전6:19을 확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마다 생명이 왕노릇하도록 사망과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불신과 불안의 육적 생각을 영(말씀)이 주는 확신과 기쁨의 생각을 따라롬8:6생명의 법을 적용하는 길이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은 우리의 삶을 보다 힘있고 소망적인 길로 안내하여 생명이 왕노릇하는 영성을 미리 누리게 한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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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향유옥합] 슬퍼하는 복
      우리 저마다 기억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 겁니다. 제게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풍경들이 그런데요. 그 중 한 곳은 강원도 삼척입니다. 매년 봄이면 유채꽃 축제를 보러 우리는 맹방 해변에 갔습니다. 그곳은 노란 유채꽃이 바다만큼, 시리게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진 곳이었죠. 제가 사랑하는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방문한 삼척의 모습은 제 기억과 아주 달랐습니다. 깎여나간 해안선과 흉물스러운 구조물들, 헤집어진 산이 보였습니다. 지금 삼척에는 국내 마지막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가 가동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석탄 이송터널 등 부대시설 마련을 위해 맹방해변은 파괴되고 있고, 삼척주민들은 대기오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삼척의 모습과, 기후위기 시대에 새롭게 가동을 시작한다는 블루파워 석탄발전소의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스쳐지나갔던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을 모티브로 한 윤동주의 「팔복」입니다. 마태복음은 복 있는 사람을 열거하며, 그 중 하나로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는데 이는 위로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마태 5:4)’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곤 마지막 문장을 거듭 퇴고하다 결국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맺습니다. 학생이던 시절에는 이해되지 않던 이 시가 활동가로 현장을 다니다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참 복이 있는데,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영원히 슬퍼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 어딘가에 슬퍼하는 단 한 존재라도 있는 한 슬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발생한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오염과 피폭을 염려하는 일본 시민들과 후쿠시마 어민들을 만났습니다. 방사성 오염수뿐 아니라 오염토와 원전 재가동, 핵연료 재처리 시설 등으로 다시금 핵부흥을 꿈꾸는 일본정부는 후쿠시마를 기억하며 원전과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일본의 시민들은 경주 월성원전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폭으로 갑상선 암에 걸리고, 어린이들의 몸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어도 ‘문제없다,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는 수명만료 된 원전을 더 사용하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 짓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죠. 같은 슬픔의 얼굴들은 경주 외에도 울진, 울산, 부산, 영광에도 있습니다. 이 발전소에서부터 출발하는 송전탑 아래 마을주민들의 눈물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는 슬퍼할 여유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만 슬퍼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자녀의 축복과 재산, 건강 등의 복을 기도하지만, 예수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또 윤동주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께 슬퍼하는 복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비록 슬퍼할 것이 너무도 많아 영원할지라도, 여러분의 슬픔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억하며, 올해 3월 16일 토요일에는 원자력 발전과 석탄발전을 넘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시민들이 모입니다. 또 9월에는 기후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느끼는 이들이 모여 행동합니다. 슬픔에 동참하고, 행동으로 바꿔내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한국YWCA 시민운동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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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에레모스 영성 2] 광야의 의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여정은 광야였다. 광야는 길이었고 삶이었고 훈련이었고 깨달음이었다. 광야 생활 40년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온 세상에 그분의 뜻을 펼치도록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테스트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 연단의 터전을 광야로 삼으셨다. 수르 광야, 신 광야, 시내 광야, 바란 광야가 바로 그러한 장소였다. 광야를 히브리어로는 ‘미드바르’(מדבר)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דבר)와 어원을 같이 한다. 신명기 1장은 이렇게 시작 한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 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이 한 구절에는 광야(미드바르)와 말씀(다바르)이 함께 나온다. 해석하면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된다. 달리말해서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의 지성소이다. (*참고로 지성소를 ‘드비르’(דביר)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도록 하시는데 그 장소를 광야로 택하시는 것이다.    광야는 ‘있음’과 ‘없음‘의 구별이 뚜렷한 곳이다. 즉 존재와 무의 개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분은 ‘없음’을 통하여 ‘있음’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없는가?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의 눈을 감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닫게 하시고 그 대신 우리의 귀를 열게 하신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게 하기 위함이다.   광야는 길 없는 길이며, 길 아닌 길이다. 그리고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그런 길이다.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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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에레모스 영성1] 광야의 의미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난 뒤에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한 일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일이었다. 광야는 ‘에레모스’(έρημοϛ) 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서 황량한 곳,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사막이나 빈들, 한적한 곳 또는 외진 곳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그런 유대광야에서 40일의 금식 기도를 하시면서 사탄의 시험을 견뎌야 했다. 그 시험은 돌들을 빵으로 만들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거나, 세상의 권력을 한 손에 쥘 수 있는 영광을 얻는 것이었다. 예수는 말씀으로 이 유혹을 잘 물리치셨고 나중에는 천사들로부터 시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광야는 이름 그대로 척박한 곳이다. 마을이나 도시로 발달하기 좋은 강이나 샘이 풍성한 곳이 아니다. 농사나 목축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여 버려진 땅이다. 광야는 아브라함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같은 문명권이 아니며 요르단 강이나 갈릴리 호수 같이 사람 살만한 지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곳을 찾을 까닭이 없는 외면이나 거부의 땅이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그 광야로 사람을 이끄신다. 그리고 그 땅으로 발을 내딛는 이에게 하늘의 말씀을 내리신다. 예수께서도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그곳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광야는 물적 풍요로움 대신에 영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곳이다. 일반적 거처인 밭이나 들판이나 마을을 뜻하는 ‘아그로스’(άγρός)와 대조되는 에레모스, 그곳에서 영성가들은 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유혹과 천사의 시중을 더욱 진하게 체험 했다./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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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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