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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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춘선작가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만족하셔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기록들을 볼수 있는데 6일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7째 날에 쉬신 것이다. 물론 6일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이 계산 하는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과 다름을 학자들이 말하고 지질 연구가들이나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을 알라고 했다.(벧후 3:8 )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에는 천 년이 한 점에 불과한 것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의 작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기 넘치는 만물 들 위에 무지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노아의 홀수 때 노아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견고하듯이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영원하여 보시기에 더 좋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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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8)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성령의 전이 되고, 우리 심령 성전을 잦나무와 같은 진리의 특성, 즉 첫째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으로 완공해야 하는 것이다.   2:1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샤론' 은 엘리야가 이적을 베푼 갈멜산에서부터 욥바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이다. 이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하는 애굽 땅과 달리 그곳은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는 땅이다. 위에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받으며 오직 그것으로 만족하며 위에 계신 하나님만 앙망하는 땅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샤론의 평야같이 많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것을 가리켜 장미라고 하는 것이다. 재림하실 주님의 신부 신앙에 올려 세워진 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한량없이 많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일,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로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부된 자는 "나는 사론의 장미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샤론의 장미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한량없이 많은 것이다.   '골짜기'는 낮은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백합화는 꽃 중에 향기가 가장 진동하는 백색의 꽃이다. ‘나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장 낮고, 낮은 데서 향기를 최고로 발하는 신부의 신앙 모습을 가리킨다. 내가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낮아지고 낮아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또 더욱더 낮아지게 되어져서 겸손과 온유가 충만하여 오직 신랑이 되는 주님만을 지극히 높이면 최고로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춰볼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골짜기의 백합화이다. 최고로 주님을 높이고 높이되 자신들은 최고로 낮아지고 낮아진 것이 바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데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자기 자신이 골짜기의 백합화가 되어지면 주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는 자로서 100% 순교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2:2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나의 사랑도 딸들 가운데 그러하도다. '딸들'은 1:5의 예루살렘의 딸들과 같은 예수 믿는 신자들을 지칭한다. 예수를 믿는 대다수의 교인 중에 신부 성도는 특별한 다른 무엇이 있다. 신부 성도는 주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자이다. 그래서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특별하다.’ 고 말하는 것이다.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는 바람이 불 때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사방에서 찌르게 된다. 문맥상 ‘가시나무’ 와 ‘딸들’ 은 동격이므로 딸, 즉 육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신부 성도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여 가시나무처럼 찌르는 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백합화는 가시나무에 찔림을 당하는 신부 성도를 계시하는 것이다.    신부 성도인 백합화는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서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가 마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가 되는 것은 순교자의 명부에 녹명이 된 자를 가리킨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가시나무가 백합화를 찔러대는 것이 심하다. 장차 주 재림전에 있을 7년 환란에 들어가면 더욱더 찌르는 핍박이 심하게 된다. 그러면 백합화는 향기를 더욱 토해 내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육적인 요소가 있으면 가시나무와 같은 딸들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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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 [향유옥합] 그 사랑 신비의 거룩
       성경은 최고의 사랑에 증거이다. 무엇이 사랑인지 지혜로 알게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적용한다. 주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면 주를 헛되이 경배하게 함임을 성경은 경고한다. 이는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가르쳐 지키게 하여 죄사함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몫을 하게 하는 주의 제자화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와 배우라고 하셨다. 온유와 겸손한 자는 주종의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복음을 전하여 사랑의 실천을 하는 종으로 두 계명 지킴의 살리는 몫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거룩과 주의 제자화로 믿음과 성화임을 깨닫게 한다. 성령과 동행하여 구속 사역에 참예한다면 영적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주의 나라 확장을 가져온다. 이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기 때문이다. 롬8장5~8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증거 하셨다.    즉 거듭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적용은 도덕과 윤리로 육체를 중심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사랑의 뜻을 알 수 있으며 행할 수 있음을 발견케 한다. 곧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의 실천은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속 사역의 몫이며 생명으로 살리는 사랑이다. 도덕과 윤리의 사랑을 한다면 거듭나게 하지 못하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심을 깨닫게 된다.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셨다. 로마서에는 많은 부분 이를 분별하도록 증거한다.    곧 성경 해석 적용은 육을 중심으로 한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영혼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영생을 상고하는 목적이다. 오직 주를 믿고 좇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랑의 개념을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 살리는 진리를 가르쳐 주 안에 속하도록 지키게 할 것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신 확증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계명을 실천한 사랑의 결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사랑의 기준은 도덕과  윤리로 자신들이 심판자가 되어 육체대로 판단 적용이아니다. 원죄를 입고 태어난 자들의 그릇된 선과 악에 대한 육의 기준이다. 복 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의 시작이 되도록 주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그 자취를 좇아야 한다.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사랑은 주의 영이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으로 믿음이 온 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말씀에 입각한 사랑을 실천해 살리는 몫을 함이다. 곧 사랑은 주를 믿고 좇아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을 살 리어 주의 제자화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신비의 거룩을 바로 알게 되는 지혜의 사랑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 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아멘/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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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성서와 생활 [16] 그리스도인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따르는 자들이어야한다. 이는 십자가의 은혜를 넘어 ‘은혜 위에 은혜’요1:16의 역사에 참여하기위함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다만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사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함을 최종목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 요3:36을 주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알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영성을 통해 주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 생명수로 흘러 넘치는 생활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이 있는 분은 오직 예수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요5:12라고 하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을 믿어야한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상태로 만족할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의 열매에 이르러야만 한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얼마나 애통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라고 하셨다.    주님이 받을 세례는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이셨다. ‘한 알의 밀알’요12:24 이 되어 죽으심을 통해 많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라고 하셨다. 주님의 살을 주심으로 우리로 주님의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이러한 진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진리가운데로 나아가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참 생명되신 우리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하셔야만 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훈련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사람이기보다 주님의 영을 의지하여 사는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신다./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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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에레모스 영성 4] 시험의 땅, 광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마태 4:3)    여러 날 먹지 못하여 주린 상태에 있는 예수에게 사탄은 말했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으뜸은 식욕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실감한다. 먹어야 산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한다. 이런 굶주림으로 연명하는 이들을 제쳐놓고 왕 노릇으로서의 메시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당신이 나라님이 되어서 우리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에게 향하는 당연한 요구이며 따라서 사탄은 민중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먹는 빵으로 사는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인가? 내가 빵을 만들어 민중을 배불리 먹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왔는가? 내가 백성들을 만족 시켜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나? 그분은 때로 5병2어의 기적을 베풀며 수천 명의 먹거리를 해결하기도 하였으나 배불리 먹고 난 사람들이 그런 기적 때문에 예수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했다. 왜냐하면 빵 때문에 따르는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메시아적 공생애 기간은 빵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빵이 되는 길이었다. 그분의 가장 큰 관심은 육적 생명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명을 위한 영적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원하였다. 그분 자신도 바로 ‘그 말씀’으로 사탄과의 대척점을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끝내 유대인의 왕을 넘어서는 온 인류의 왕,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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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7) 우리집은 백향목과 잣나무다
      부활체이신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주님이 신부 성도에게는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송이로다.   1:16 보라, 너는 어여쁘며 나의 사랑하는 자야,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우리의 침상도 푸르도다.   ‘우리의 침상’이니 신랑 예수님과 신부 성도가 함께 사용하는 침상이다. 침상에 들기 전에 입맞춤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1:2). 또 목자를 찾아갔다. 또 집을 짓는 단계를 거친다. 침상이 푸르리니 생명이 자라남이다. 활기차게 약동한다. 계속하여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영적 의미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녹보석 같다(계 4:3)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임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영광을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입혀주실 것을 계시하신다.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때 받은 그대로가 아니라 항상 푸른 초목의 녹색과 같이 새롭게 된다. 즉 처음 받은 영광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신다. 재림하실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 분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임당했었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다. 한없이 존귀하게 되시어 하늘보좌에 좌정하신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장차 7년 환란날에 신앙 정절을 지킴으로 반드시 순교하게 되리라. 이 순교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순교케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 재림때 첫째부활의 영광(계 20:4~6)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체이신 영광의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나도 부활체, 즉 첫째부활의 영광을 받은 자이다. 첫째부활의 영광이 성도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요, 복이다. 성도의 부활 순서가 고전 15장에 나온다. 주 재림때 부활하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은 나중에 부활한다- 주님 재림때 순교자들이 먼저 첫째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온다. 신랑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바울도 이것을 더 좋은 부활이라고 증거했다(히11:35).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의 침상이 푸르르다. 곧 녹보석 같다고 하시는 것이다.   1:17 우리 집의 들보들은 백향목이요,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로다.    우리 집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성도가 함께 사는 집을 가리킨다. 복되고 환희가 넘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나는 순교를 통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입은 신부가 된다. 또한 재림하시는 영광의 주님은 신랑이 되어 함께 사는 우리집이 되는 것이다. 백향목은 백색의 향나무 같아서 수명이 천년까지 산다. 우리집의 대들보가 백향목이라함은 우리집이 천년간 향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향이 무엇인가? 7년 환란 때 하나님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해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다.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첫 번째 부활한 자들이다. 재림주님이 세운 왕국에서 천년동안 주님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하며 감사찬송하는 것이 백향목의 향이다. 재림하신 주님과 첫째 부활한 신부 성도가 부활체로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의 날들이 우리집의 대들보라고 한다. 우리가 이를 미리 믿음의 실상으로 누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라고 했다. 잣나무는 성전재료이다. 노아방주도 잣나무로 지었다. 잣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또 물에 잘 썩지 않는다. 이것은 잣나무 같은 진리의 특성을 계시하는 것이다. 즉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것같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영광을 바라보며 생명 길로만 나아가는 진리이다. 또 휘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 순교할지언정 비진리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진리이다.    또한 물에 썩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진리 특성을 가리킨다. 이 잣나무진리는 곧 첫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성전을 잣나무의 특성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즉 첫째부활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 우리의 서까래가 되며 우리집 짓는 재료인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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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0

실시간 칼럼 기사

  • 성서와 생활[4] 그리스도인의 영성 -감사의 영성(4)-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은 크나큰 복음에 대한 것임을 시편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게 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말씀 대로 사는 길이 바로 성취된 복음 안에서 사는 길이다. 사망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 생명이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생활을 말한다.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고 주님의 생명이 나로 천국생활을 구현하게 하실 것이다 이미 성취된 사실인 복음에 감사함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신다. 이로인해 우리의 마음은 생명수 샘물이 흘러나와 청결함을 얻게 된다. 마음이 청결함은 매우 중요하다.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에 대한 감사가 우리로 풍성한 승리를 가져다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승리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을 때 만이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우리를 다음과 같이 부탁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5) 주님의 간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악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주님의 승리로 인해 믿을 수 있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왕으로부터 구원받은 시점에서 감사함이 종료되지 않는다. 애굽에서의 구원 이후에 오는 보호하심의 더 큰 구원의 섭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우리의 처지이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시136:23)고 하신 점이다. 우리는 육에 속한 비천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죄에 매여 죽을 수 밖에 없는 비천한 자들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돌보시사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셨다. 비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할 자는 바로 그의 자녀들 뿐이기 때문이다. 매일의 생활에 감사로 깨어있는 자가 그분의 자녀이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구속 함을 받은 그의 자녀들의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늘의 아버지의 인자하심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의무이며 성품이 되어야 한다. 감사를 배우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신다.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을 모르는 삶이 된다. 감사가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되는 믿음의 역사를 소망할 뿐이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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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2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8회] 주님의 뜻을 위해 부르신 선한 목적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성화로 순복케 하시는 은혜, 감사와 감격의 여정  성경은 거듭나게 하심의 목적을 시편 23편 3절 “내 영혼을 소성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신다는 말씀에서 발견케 한다. 새 피조물의 존재 목적은 주와 복음을 위해 쓰시기 위함임을 찾는다. 주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의 길로 인도이다.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돌이켜 예수를 창조주 구원 주로 믿어 새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선을 위함이다. 주의 영이 있는 자들에게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구속사역에 순복케 함이다. 이는 주를 믿지 아니하여 거듭나지 못한 채 죄에 머물러 있는 죄인들을 주의 백성으로 회복하시어 주의 나라 확장이 주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몫에 참예이다. 사단의 영에 사로잡혀 육신이 이끄는대로 사는 어리석은 자들을 위한 구속이다. 말씀으로 견인하시는 섭리의 화답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도록 하는 몫이 거듭나게 하심의 목적임을 확증케 한다. 죄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의 몫이 존재의 목적으로 사명임을.... 이에 디도서 2장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라”고 몫을 발견케 하신다. 거듭난 자들은 주의 영이 있기에 주의 뜻과 요구하심을 믿음으로 순복할 수 있다. 주께서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대속제물이 되어주신 그 자취를 좇도록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곧 주께 받은 새 생명의 가치와 새 피조물의 몫은 주의 제자화이다. 이를 알고 선하신 뜻에 몫을 존재의 목적에 두는 새 가치관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사랑을 주께로부터 받았기에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구속함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음이다.     모두가 주의 제자가 되게 하는 제자화를 위한 사랑의 실천이다. 주를 믿고 좇는 자들에게 하나님과 그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심과 더불어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 죄라 하신 의미를 연계하여 본다. 또 어떻게 하여야 주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는 물음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살피도록 이끄신다. 믿는 것이란 단순한 예수의 그리스되심을 믿는 것만이 아니다. 주께서 본을 보이신 그의 자취를 좇는 것까지이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이를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이를 확증해 준다. 곧 성경 기록 목적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다. 또 디모데후서 4장 17절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하심과 같은 사명 감당이다.    그러므로 거듭나게 하심의 선하신 목적대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이웃 사랑을 행하는 사명의 여정임을 알고 실현케 하신다. 복음을 전하여 전도로 승리하는 감사의 여정이 되도록 주님을 위해, 주님을 향해, 주님에 의한 순복의 그리스도 사신의 삶이다. 거듭나게 하시어 말씀으로 견인하시는 은혜 위에 은혜이다. 곧 주와 복음을 위하여 순복하는 삶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일이며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와 감격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새기며..../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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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2
  • 정성구박사 칼럼
      며칠 전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하며 정상에 올랐다. 구단주도 선수들도 펜들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20대에 LG의 우승을 봤던 사람이 이제는 장년이 되었고, 장년 때 LG의 우승을 보았던 사람이 어느덧 노인들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승리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가 하면,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꺽꺽 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다른 팀을 응원하는 펜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가정도 3대에 걸쳐 LG 펜이었다. LG와 KT가 자웅을 겨누는 다섯 번의 시합은 울고, 웃고 괴성을 지르며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완전히 신들린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내 편의 승리가 바로 나의 승리로 착각하는 일종의 대리 만족이라고나 할까?   사실 나는 운동과는 열 촌이 넘는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체육 점수는 늘 60점이었다. 겨우 과락을 면하고 턱거리한 셈이다. 나는 본래 병약하게 태어났고, 일제 강점기에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구 떡>을 해 먹던 아이였다. 그러니 발육이 잘되지 않아 4세까지 일어서지를 못했다. 또한 해방은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가장 가난했고, 6.25 전란으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도시락을 싸간 일도 없고 미국의 구호물자 옷을 줄여서 입고 미국에서 보내 준 분유를 물에 타서 먹으면서 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나는 하도 병약해서 목이 너무 가늘어 보이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성구야! 너 목 떨어질라! 조심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다. 그런데 내가 장년이 되고 난 후에 가끔 <야구>와 <축구>를 T.V를 통해 참 재미있게 본다.   최근까지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종편 방송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요즘 누가 종편 방송의 뉴스를 보는 분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방송들은 말 그대로 편파 방송이고 고약한 이데올로기와 인본주의 사상을 방송하고 있었다. 몇 해 전에 어느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의 배경에는 북한의 인공기처럼 생긴 것을 띄웠다. 그래서 나는 방송국에 항의를 했고, 방송국 직원의 ‘윗선에 알아보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요즘 종편 방송국들이 국회 중계방송을 여과 없이 방송하고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다. 정책 질의는 거의 없고 장관을 불러놓고 이놈 저놈 하지를 않나, 인신공격으로 상대에게 무안을 주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마치 상대를 죽일 듯이 욕하고 빈정대는 국회의원들은 다음번 선거에는 꼭 심판이 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더구나 사기 치고, 거짓말 하고, 돈 해먹은 사람의 동영상을 방송에서 특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식 밖의 인물들이 국회의원이랍시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청문회 후보자를 몰아세우고 면박을 주는 것을 민주투사로 부각시키는 것도 참으로 꼴불견이다. 그러던 차에 이번 야구는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나는 야구의 룰도 모르고 할 줄도 모르지만, 오래전에 미국 L.A에서 박찬호 선수가 나오는 ‘LA다저스팀’을 구경한 것이 야구장에 간 것이 처음이었다. 경기는 참 재미가 있었다.   40년 전의 일이다. 당시 MBC 청룡의 사주는 이웅희 사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웅희 선생은 언론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는 후일 문공부 장관을 거쳐, 용인에서 국회의원만 내리 3번을 했던 정치 9단이다. 1980년대 초 내가 대학 총장이었을 때, 정신 문화원 지도자 교육을 받은 바 있다. 그때 나는 이웅희 당시 MBC 사장과 한 조가 되어 며칠을 같이 보낸 것이 생각난다. 당시 이웅희 사장은 우리에게 MBC 청용(오늘의 LG) 을 말하면서, ‘야구가 참 재미있는 것이 꼭 윷놀이와 같다. 한순간에 순위가 뒤바뀌고 한 방의 홈런으로 역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 야구다’라고 했다. 즉 윷놀이도 상대방의 말이 앞서가다가도 우리 쪽에서 갑자기 <모>와 <윷>이 나오면 상대를 단번에 집어삼키고 세를 역전 시키는 재미와 감동은 야구와 윷놀이가 닮았다는 것이다. 물론 야구는 투수와 타자들의 고른 실력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야구공도 둥글고, 야구 배트도 둥글게 생겼으니 한 번의 홈런, 한 번의 안타가 전세를 바꾸는 짜릿한 재미는 불안한 현대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하지만 우연한 한방, 우연한 안타를 기대하고 살면 안 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한 방에 기대를 걸고 도박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더구나 민주화를 구호로 30여 년 동안 써먹은 방법으로 또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해 엉터리 사기술로 국민을 사지로 몰아가려는 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한방을 기대하고 사기로 돈을 끌어모으고, 온갖 미사여구와 허풍으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홈런을 기대하는 정치꾼들은 이제는 배제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기독교계에서도 착실한 성경 연구와 경건 훈련을 쌓아서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일꾼을 키워야지, 자기희생도 없고, 세상의 소금과 빛도 못되면서 우연의 한방이 있을 것이라는 축복의 기대를 가르치면 안된다.   ‘야구는 윷놀이와 같다!’는 이웅희 사장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된다. 그러나 인생은 야구도 아니고, 윷놀이도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과 성령을 따라서 거룩한 걸음을 걸어야 한다.   <역전인생>은 <오직 말씀>과 <오직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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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1
  • 성서와 생활[3] 그리스도인의 영성 -감사의 영성(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 이러한 감사는 주 예수그리스도가 베풀 세례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에서 나온 것처럼 장차 아들도 사망을 이기고 나옴을 보여 주신다. 우리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심을 받았다. 죄의 종살이에서 주님의 승리로 자유함을 얻게 된 사실을 감사하게 하신다.    먼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러한 감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감사는 아들의 이름으로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감사는 애굽에서 구원받은 감사로 끝나지 않는다. 실로 감사는 구원의 관문인 세례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다. 수많은 악의 세력에서 건지심을 감사하라고 하신다. 모든 악으로부터 보전하여 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구약의 구속의 감사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의 예표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다.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이에게’감사하라고 하신다.    이는 ‘우리를 원수 마귀 대적에게서 건지심을 감사’하게 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을 이길 수 있음으로 인해 감사해야 한다. 주님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되어 감사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시편 136편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하라고 반복하여 외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음의 은혜를 입었는지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신다. 우리도 전에는 악이요, 육이요, 죄인이요, 멸망할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악을 주님이 이기신 사실로 인해 이길 수 있음을 감사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감사는 오늘날 주님의 승리로 완전한 감사에 이르게 하셨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눅10:19)주심을 감사함으로 아들의 영으로 충만케 하셨다. /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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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성서와 생활[2] 그리스도인의 영성 -감사의 영성(2)-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시136:6) 천지창조의 둘째 날에 대한 감사이다.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그러나 이 땅은 죄가 들어오므로 하나님의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이후에 노아를 통해 새로운 땅으로 조성되어진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땅에 대한 비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도래를 예비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땅에 대한 감사를 배우게 하신다. 땅을 물 위에 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질 나라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권위가 충만한 땅에 대한 약속을 감사하기를 바라신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천지창조의 넷째 날에 대한 감사이다. ‘해로 낮을 주관하신 자에게’,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 천지창조의 넷째 날에 대한 감사를 더욱 강조하고 계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주기도문에서 찾을 수 있다. 주께서 빛으로,그의 몸된 교회로 큰 광명이 되심을 감사하게 하신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신다. 이러한 감사는 이스라엘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손과 팔로 인한 것임을 기억하게 하신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친히 구원하심을 감사하라고 하신다. 어머니가 그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오직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낳으시고 돌보신다. 이에 대해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인자하심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 일은 아들의 영으로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일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그의 인자한 사랑을 아는 아들을 통해 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하나님께로 난 아들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5:19)라는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해 준다. 감사의 위치는 구원받은 자들로 아들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는 놀라운 축복인 것이다.  /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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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7회] 지혜로 좇는 사랑 실천과 앎에 대해
      오직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리는 제자의 삶으로 순복에 의한 성화  로마서 12장 1~2절은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시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권하셨다. 오직 주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일에 참예하여 온전하신 뜻을 위한 사랑 실천에 증거이다. 부르신 목적에 연계로 존재의 몫을 하여 선한 열매로 영광 돌려 드리도록 믿음의 성화를 위함이다. 이 세대는 자신을 위한 자들로 육에 속한 자들이다. 이들은 주종의 관계를 성립하지 못해 아직도 종의 몫을 우선순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본문은 이처럼 주의 영이 없는 이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로마서8장5~8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심의 이유로 확증해 준다. 주의 영이 없는 자들은 주의 일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의 뜻대로 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배움을 갖고 종의 자세로 몫을 하려는 사랑의 실천에 힘써야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복함임을 확증케 한다. 결국 존재의 목적이 주의 복음 전하기에 유익함임을 발견케 한다.    죄에서 구원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자유케 하심은 주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하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신령한 예배라는 표현으로 삶에서 전도로 이웃들을 살리는 일에 참예하여 주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과 동행임을 확증해 준다. 이를 알고 행할 수 있는 주의 종들은 위엣 것에 가치를 두고 주를 경외하여 사람 살리는 몫에 가치를 두고 믿음을 행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화답하는 여정으로 늘 성령과 동행하는 참 주의 친구로 장성한 성화를 이룬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이에 더 큰 사랑이 없음의 연계이다. 곧 주와 거듭난 자의 사랑의 줄은 어떤 것도 끊지 못할 것의 믿음이다. 요한일서 5장 18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절대 지키심과 견인으로 믿음의 성화임을 확증케 한다. 곧 주를 안다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과 감사로 기쁨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지혜이다.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믿음의 성화로 얻는 행복과 기쁨은 주 안에서 진리로 자유케 되어 선을 이루는 것들임을 확증케 한다. 곧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화답하는 몫이 기쁨과 행복의 비결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새 생명의 가치를 알고 말씀에 순복하는 자들은 소망을 갖고 오늘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드리는 지체의 삶임을 확증해 준다. 외식하는 자를 본받지 아니하고 정욕을 위해 구하지 아니하며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과 하늘로부터 온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주의 친구된 주의 백성들의 지혜로 행복이다. 곧 바꿔진 새 가치관의 행복은 풍성한 생명으로 범사에 감사이며 온전케 하는 주의 뜻에 가치를 둔 앎으로 견인된 믿음의 성화임을 확증해 준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는 행복을 영위하는 지혜의 비결임을.../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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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6회] 주와 복음 위해 사는 새 피조물의 몫
      다시 사신 주님의 자취를 좇는 기쁨과 행복을 알고 행하게 하신 주 은혜 성경은 새 피조물이 된 기쁨과 감사를 주님 사랑과 연계하여 행복한 몫을 발견하게 한다. 그 사랑의 감격과 감동을 체휼하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살리신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변화이다. 더불어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몫에 자세를 자각하게 한다. 주께서 목숨을 주고 얻게 한 의인으로 칭의이기에 그 값비싼 구속에 대해 사랑의 계명을 지켜 성화임을 확증케 한다. 주로 인하여 새것이 되었기에 그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었다는 그속이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존재의 목적을 갖는 신앙인이 됨이다. 살아도 주를 위함이며 죽어도 주를 위함이라는 종의 존재 목적이며 오직 주를 위해 거룩함을 드러내는 착한 행실과 선함을 위한 성령의 내주임을 확증케 한다. 주님의 사랑에 의한 십자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더 많은 이들이 주의 백성이 되는 일에 몫을 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랑의 실천 몫이다.   주님처럼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듣는 자들이 주와 합하여 한영을 이루는 거듭남에 초점을 맞추는 정체성을 확증해 준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시어 사단의 일이 멸해지고 주의 것이 된 주의 백성들로 더욱 선을 이뤄가시는 주의 섭리로 승리의 선포이다. 주의 자녀로 회복된 자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새 피조물로서 영생을 누리게 될 주의 것으로 인치심이다. 디모데후서4장6~8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는 신앙의 삶에 유종의 미를 확증시켜 준다. 이를 위하여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명하심이다.   곧 성경은 교육하여 의에 이르게 하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 주의 뜻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후서4장13~14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는 확증이다.   그러므로 주의 기쁨이 충만케 되는 비결대로 진리를 사수하는 자들을 확산시켜 이전보다 더 주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본을 삼게 하심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하신 전도자의 말씀을 살피게 한다. 주의 뜻에 합당히 주의 제자가 되는 일에 몫을 하는 지체들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거듭난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복 있는 자이다. 주의 영이 있는 자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하고 고난을 인내로 기쁨을 일궈내는 자들이다. 곧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주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그리스도 사신의 몫을 하는 자임을 확증케 한다.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 주를 위함임을 알기에 사랑의 빚 진자로서 많은 이들이 주 날개 아래 들어와 쉴 수 있는 구속사역에 참예임을 확증해 준다. 주 경외함으로 인한 살리움으로, 주의 원하심을 위한 행함이 참 행복을 위함임을......./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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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향유옥합]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연습
        “아무개아버님 잘 지냈어요?” “잘 지냈지, 어서들 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냅니다.     매주 금요일, 따밥은 노숙인들이 계시는 텐트촌에 방문해 준비된 도시락을 전달하고 한 주간 어찌 지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의 안부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긴 인생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렇게 깊어진 관계를 통해 우리는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발견합니다.   따밥(따뜻한 밥차)은 성남시 야탑과 모란, 신흥에 계시는 약120명의 노숙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주일마다 도시락과 한 주간을 살아갈 물품(컵라면, 햇반, 생수, 커피 등)을 전하는데, 한 끼의 도시락을 전하는 걸음이지만, 이 걸음이 쌓여 서로를 향한 친구요 이웃이 됩니다. 그렇게 따밥은 교회로, 비영리단체로 지역의 노숙인들을 위한 삶의 예배를 드립니다.   따밥의 핵심가치는 함께그리고 존중입니다. 따밥은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연습을 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줍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함께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며, 함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밥은 이웃의 경계를 확장합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이웃, 특별히 소외된 이웃, 노숙인은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끝으로 따밥은 서로를 존중합니다. 노숙인들의 현재의 삶은 판단 되어질 일이 아니며, 모두에게 있을 인생의 실패와 아픔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함으로 아프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섬기는 훈련을 해 나갑니다. 이 연습이 무르익어 서로를 감동케할 때 우리는 큰 기쁨을 경험합니다.   소개된 사역을 중심으로 따밥교회는 다양한 교회의 모델이 요구되어지는 시대에, 조금은 다른 옷을 입고 세상 속에 복음의 힘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찾아가는 교회입니다. 이 사역이 지속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그리고 지역 교회들과 연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현재 지역의 다섯 교회들이 매주 밥을 짓고, 도시락을 포장하는 일, 또한 후원천사들의 손길이 모여 함께 사역을 연합합니다. 사역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기적들이 필요를 따라 공급되는 일은 물론, 도움을 준다 생각했던 우리에게 내민 노숙인들의 따뜻한 섬김과 용기의 말은 우리의 눈가를 적십니다.   힘든 순간들.....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간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될 기쁨과 감사가 우리 안에 고백 되어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앞장서 일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2022년 12월 성탄절 주간, 혹독한 추위에 돌아가신 노숙인분은 저희 멤버들이 정성껏 사랑과 마음을 전했던 분입니다. 매일같이 일기를 쓰며 저희에게 가족도 외면한 인생을 돌보아준다며 감사 인사를 겸손하게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해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 “세상은 혹독하다 그런데 나를 돕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이 짧은 글에 멤버들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했던 그날 밤, 늦은 시간에 찾은 둘째 아드님은 한없이 울며 저희에게 감사 인사를 건내고 가족장으로 쓸쓸하지 않게 한 노숙인의 삶이 마무리되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런 일들이 지면에 다 기록할 수 없으나 이 시간과 사건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들입니다.   한 봉사자분이 이야기합니다. “따밥은 성경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써내려가는 듯하다 느낍니다.”   바라기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앞에 돌아서지 않을 용기와 믿음이 우리 안에 자라나기를 그래서 묵묵히 그리고 겸손하게 이 부름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따뜻한 밥차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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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건강교실] 눈 건강을 지키는 법 (상)
      최근 들어 일상생활이 온라인, 모바일화 되면서 스마트폰을 통한 근거리 작업이 매우 증가하고, 이에 따른 눈의 피로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근거리 작업은 많아지고 황사,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소도 눈을 위협하는 만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피로한 시대가 아닐까? 최근 11월 11일 눈의 날을 맞이해 눈 건강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먼저, 정기 검진으로 눈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안과에서 눈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거나 무언가 떠다녀 보인다든지, 물체가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든지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보는 데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안과에 방문하여 검사를 받고, 필요시 빠른 치료를 받는 것이 눈의 질환으로 인한 시력 상실과 합병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꼭 증상이 없더라도 고령, 당뇨나 고혈압 등 전신 질환, 녹내장 등 안과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안과에 방문하여 정기적인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구체적 상황 별 정기 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에 따라 눈의 굴절 이상(근시, 원시)이 변하는 소아, 성장기 청소년들은 가급적 6개월 간격으로 눈의 굴절 상태(도수)의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둘째, 성인도 세극등 현미경 검사, 안저 검사 등 안과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당뇨나 고혈압 등 눈에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전신 질환이 있는 경우, 적어도 매년 안저 검사를 포함한 정기적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백내장이나 황반 변성 등 시력을 위협하는 주요한 질환들은 퇴행성 질환으로 노인에 주로 발생한다. 65세 이상에서는 특히 백내장과 시신경(녹내장), 망막 질환 여부에 대한 정기적인 안과 검사가 더욱 필요하다.   또한 안구 건조로 인한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주변 환경이 건조하며 눈에 자극 증상이 잘 발생할 수 있는 가을 및 겨울철에는 안구건조증 예방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인공눈물을 주기적으로 점안하여 눈 표면에 충분한 눈물층을 유지하여 안구건조로 인한 증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건조한 환경이 문제가 되므로, 가습기 등을 통해 실내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환경적인 차원에서 안구 건조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눈 깜빡임은 눈의 수분층을 골고루 퍼지게 하여 눈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 TV, 스마트폰의 사용은 눈 깜빡거림을 줄여 눈 표면이 마르게 되어 이로 인한 안구 건조증 증상을 잘 일어나게 한다. 따라서 장기간 사용시에는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눈의 피로를 풀어주거나, 안구 건조증 증상을 느끼는 경우 인공 누액을 점안하는 것이 좋다. 눈물 흘림 혹은 안구 건조증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되는 경우, 안과를 찾아 전문의의 검진을 받고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눈 건강에 해로운 자외선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눈에 좋은 음식, 눈 건강을 지키는 생활수칙 등을 전한다. /한양대병원 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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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수면이 보인다 (4)
      그 밖에 7일 동안에 하루를 쉬는 주간리듬, 춘하추동의 4계절 리듬도 사람들의 생활을 규정한다. 여성의 경우 약 1개월을 주기로 하는 생리 주기도 생활리듬의 하나이다.   이같이 빛이나 기온 또는 습도 같은 외부의 물리적 환경이 생활리듬을 규정하나 내분비(호르몬)라는 생체축의 주기성도 생활리듬을 규정한다. 사람의 활동은 밤낮의 변화나 달 또는 계절의 변화에 따르게 되어 있으나 그 주기성은 생체의 생물학적 활동의 주기성과 일치하게 되어 있어 결코 자연현상의 변화만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생체에는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있어서 생체활동의 변화를 조절한다. 이 시계를 내인성리듬 또는 체내시계라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뇌의 시교차상핵이다. 잠자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송과체에서 분비되는데 1~2시간 이후가 되면 잠이 들게 된다.    이 시계와 환경으로부터의 입력에 의하여 형성되는 생체 리듬의 주기가 환경조건의 주기와 일치할 때, 즉 동조될 때 생체의 내적 환경은 평형을 유지하게 되고 그럴 때 건강한 잠을 자게 되며 따라서 정신도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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