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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알면 정신건강이 보인다 (1)
천재지변이나 참사 등, 외상을 경험하여 병을 앓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환자들은 뇌의 신경가소성에 의한 원리에 의해 삶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 것을 보게 된다. 충격적인 사건을 체험한 후 대부분의 환자들은 기존에 인식했던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바꿔버려 파괴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이러한 것은 외상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뇌의 신경가소성 기능으로 인해 뇌의 구조가 변질되고, 그 기능도 변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스트레스와 경험의 기억이 지속되는 동안 환자는 내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불안한 상태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없어 고통 받게 된다. 사건을 통한 자신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뇌의 가소성에 의해 삶은 파괴적이게 된다. 20세기 신경과학의 가장 획기적인 발견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울신경(Mirror Neuron)이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거울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추듯이 우리 뇌에는 거울신경이 있다. 1990년도 중반, 이탈리아의 지아코모 리졸리티와 그의 연구진은 원숭이들이 포도를 먹을 때 그것을 보고 있던 다른 원숭이들이 포도 먹는 모습을 볼 때와 똑같은 신경이 점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를 ‘거울신경’ 또는 ‘공감신경’이라고 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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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5:1~16)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 38년된 중풍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다. 영원 전부터 나를 아시고 나를 택하셨으나 주님은 내게 먼저 물으신다. 나의 주권을 인정하시고 소중히 여기신다.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신다. 믿음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이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가 대답하였다.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소.”(요5:1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시었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인데 유대 토라와 히브리 구전 법에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39가지 더 첨부되었다. 바느질도 못하고 불도 켤수 없다. 하루에 2000규빗(약900m) 이상 걷지 못한다. 추수, 탈곡 금지 규정에 의해 이삭을 자르거나 비벼서 먹을수 없다. 구덩이에 빠진 어린양도 구해 올릴 수 없다. 먹이를 던져주고 올라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막2:27~28)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일을 행하고 일곱째날은 창조주를 기억하며 거룩하게 지켜라. 우리의 일생을 마치고 저 천국 이르러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전생(全生)을 들고 간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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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교실] 편도선염 및 편도선염 수술(상)
찬 공기에 건조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건조한 날씨는 구강 환경도 건조하게 만들어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그러다 목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입을 벌리고 입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는 편도선에 염증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일반적인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임에 반해 편도선염은 세균성 질환이므로 치료 약물이 달라진다. 편도선에는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편도선 염증’(급성편도선염)과 크기가 커져있는‘편도선 비대’(만성편도선염) 이 두 가지 병이 가장 흔히 발생한다. 또한 어린이들의 코골이도 편도선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목이 아프면 다 편도선의 염증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목 안에는 편도선 이외에 목안 뒤쪽 벽인 ‘인두’나 목안 아래쪽 성대주위인 ‘후두’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이때도 목이 아플 수 있다. 그럼 어떤 경우에 편도선 때문에 목이 아픈 건지 알 수 있을까? 편도선에 염증이 생긴 경우는 △침 삼키기 힘들면서 △고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아주 심한 특징이 있다. 특히 심한 경우 밥도 먹기 힘들어지며 숨쉬기도 힘들어 질 수 있다. 집에서 입 안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거울로 들여다보면 알 수가 있다. 목 양쪽에 호두모양의 편도가 평소보다 커져 있으면서 빨갛게 부어있고, 심할 경우 하얗게 고름이 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편도선은 괜찮은데 목젖 뒤의 벽이 빨갛게 도드라져 있다면 인두염일 가능성이 많다. 편도선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기능을 하는가? 입안을 벌리고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내면서 목 안쪽을 보면 목젖 양쪽으로 편도가 큰 사람은 호두알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보일 것이고, 작은 사람은 쭈글쭈글한 덩어리가 보일 것이다. 편도는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오는 세균 등을 걸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세균 자체의 감염이 많이 발생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편도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편도선은 대개 소아에서 점점 커지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에는 점점 작아지게 되고 성인이 되면 평소에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경우 성인이 되어도 비정상적으로 계속 커져 있을 수 있으므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편도와 아데노이드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심한 목감기인 급성 편도선염의 경우는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아프며 고열이 나고 몸이 춥고 떨리며 머리도 아프고 뼈 마디마디가 쑤시는 것처럼 아프면서 간혹 귀가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만성 편도선염으로 인해 자주 목감기가 걸리거나 항상 커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통증은 없지만 목에 뭔가 걸려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가래를 뱉을 때 악취가 나는 노랗고 좁쌀만한 덩어리가 나와 불쾌감을 주게 된다. 충치가 없고 별다른 이유 없이 입에서 냄새가 나면 편도선염이 원인인 경우도 많다. 다음에는 이 편도선염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보자.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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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지킴의 순복으로 기쁨의 화답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과 희락의 특별 은혜 성경은 사람의 죄인된 정체성을 알게 한다. 더불어 주로인해 구원 받고 자녀된 정체성 회복을 은혜로 주신 사랑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담의 후예들은 원죄로 인해 사단에 매인 자들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쉼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신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랑 메시지를 밝히 증거 하시어 구원의 도를 좇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보람과 행복으로 만끽하게 되는 영혼 구원의 발견이다. 이를 살리는 일이라 하시어 누구든지 주를 영접하면 주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신 상고 목적에 화답을 찾는다. 이처럼 주께서 열어 놓으신 십자가의 길로 들어간 자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선함의 말씀이다. 영생의 길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종으로 회복이며 이들에게는 불변의 구원임을 확증해 준다. 이를 거듭남이라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시어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신다. 더불어 이 길은 이웃 사랑의 실천과 함께 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증거 하신다. 살아 있을 때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언약의 법칙이다. 이를 알고 좇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열어 놓으신 구원의 도이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누구나 한번은 죽음에 이른다. 그러기에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을 더 선호하라고 하셨다. 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도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씀한다. 하지만 거듭난 자들은 육체의 년 한이 끝난다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으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부활 생명의 존재임을 밝혀준다. 이와같이 계명에 순복한 자는 새 피조물로써 삶의 존재목적을 이웃 사랑의 실천에 두는 주의 백성이다. 주로부터 거듭남은 영생을 얻은 천국백성으로 주의 은혜임을 깨닫게 된다. 이 땅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영생에 소망을 두고 몫을 하는 여정이다. 구원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를 영접할 수 있고 복음을 듣고 새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특별은혜이다. 결국 생명을 얻은 자의 마침은 죽음과 동시에 천국 입성이며 영생을 누리는 부활이다. 이 삶은 은혜로 주께서 이끌어 가시는 복된 여정으로 주께서 견인임을 확증해 준다. 거듭난 자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있기에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로 위에 것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소망이다. 영생에 소망을 가진 믿음은 생명과 희락과 평안의 행복한 여정이다. 이를 알고 얻게 하기 위한 산 자들의 전도는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무명한 자일지라도 주 안에서는 유명한 자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주께서 목자가 되셨기에 천국백성으로 영혼에 부족함이 없는 부유함이다. 곧 모든 것에서 자족하게 하는 범사에 감사로 항상 기뻐하며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화답을 한다. 은혜를 입은 주의 자녀임을 확증한다. 즉 말씀 가운데 주의 자비와 긍휼로 나의 나됨이 주의 은혜임을 알고 사랑의 빚진 자로서 화답케 된다. 주를 안다는 것은 생명으로 거듭남이며 영생이다. 오직 창조주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주께서 죽고 부활을 나타내 확증해 주셨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회복한 자는 주님 밖에 믿을 이가 없음을 알고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순복으로 화답을 한다. 주 없이 살수 없다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성령의 견인으로 사랑하심을 확증케 된다. 주와 한영을 이룬 자들이 이웃 사랑의 전도로 얻게 되는 약속된 충만한 기쁨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곧 진리에 거하는 복된 자들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선을 이루어 사랑의 화답함을 확증한다. 그 사랑이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며 전도로 화답함임을 새기며.../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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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종교 문제에 대한 진지성과 치열성① -오승재의 단편소설
20대의 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가 생의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수학 공부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이후에는 아예 수학 교수로 생활을 하며 문학의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었던 사람이 생의 후년에 들어와 다시 문학 쪽으로 회귀하는 기이한 삶의 궤적을 보인 이가 소설가 오승재(1933- )이다. 그는 1959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로 등단하였고, 그 후 한남대학교 수학 교수로서의 직을 영위하다가 은퇴한 후,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 작가의 문학적 업적으로는 은퇴 후 70대에 들어와서 펴낸 그의 창작집 <神 없는 神 앞에>(2005)와 80대에 들어와 펴낸 <급매물교회>(2014)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제일교회>와 <대성리교회>, 그리고 <신 없는 신 앞에>… 등 합계 12편의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으며, 후자에는 <급매물 교회>와 <목갈치 교회의 목사>, <넘을 수 없는 벽>… 등 합계 17편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필자는 상기 작품들 중에서 <제일교회>와 <대성리교회>, 그리고 <급매물 교회>와 <목갈치 교회의 목사> 등 무슨무슨 ‘-교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소설들을 오승재 작가의 “4대 ‘교회 시리즈’ 작품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교회 시리즈 작품들 속에서 오 작가의 예리한 필치가 번득이며, 한국 교회의 타락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데, 이 방향에서의 비판의식을 따라잡을 다른 작가를 우리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상기 작품들 중에서 필자는 먼저 앞의 소설집(2005)에 실려 있는 <제일교회>란 단편소설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제일교회>는 한마디로 표현해 재미있는 소설 작품이다. 그 재미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강한 풍자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풍자성은 일종의 반어적 풍자성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를 연상시키는 이 ‘제일교회’는 무엇이나 제일이요 최고이다. 그런데 다른 일로 최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독교회의 일로 제일이요 최고니까 그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 있어서도 역시 제일(최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음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이 제일교회에 대한 풍자가 그 극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고 사랑하였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고 할 크리스천들은 당연히 가난한 걸인들을 옹호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걸인들을 다 사랑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교회에 예배보기 위해 출입하는 걸인들에 한해서만이라도 배려(사랑 베풀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인간인지라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교회(예배당)에서 최소한 그들에 대한 노골적인 천대 행위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모든 것에 최고(제일)인 ‘제일교회’는 걸인들에 대한 천대(문전박대)에 있어서도 역시 최고이다. 이 일로 그 교회의 원목사와 부목사 사이에 의견대립이 일어나고, 부목사가 거지를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하자 난처해져 버린 원목사는 결국 그 부목사를 인천의 어느 작은 교회로 쫓아버린다. 이런 원목사의 배후에는 영향력이 매우 큰 방 장로가 도사리고 있다. 이들 연합세력은 위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도 않는 편이다. 말하자면 그 교회의 담임목사와 시무장로가 합세하여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반기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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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
히브리서 3장 6절에서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집을 맡은 아들이니 만일 우리가 확신과 소망의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하신다. 또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바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주님이 사도일까요? ‘내가 아버지로부터 보냄 받았다.’(요20:21)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보냄 받은 유일무이한 한 분이요, 대문자로 사도가 곧 주님이시다. 사도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참 아버지를 알게 하신다. 또 그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성령 부어서 사도들로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신 분이 곧 대문자 사도이시다. 또 우리의 고백하는바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대제사장이면서 또 제물이 되신다. 그래서 자기 몸을 친히 제물로 드린 것이다. 즉 영원속죄구원의 단번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서 이미 제사장 멜기세덱으로 계시면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주신 분이셨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멜기세덱 계열에 따른 대제사장 예수이시다. 그리고 현재도 대제사장으로 계시어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늘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신다. 이 그리스도 예수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스럽다 했지요. 왜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충성한 모세의 영광도 크지만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의 온 집, 즉 우리들의 심령의 집을 직접 지어 주시는 분이시요, 아들이시다. 내가 제3일에 성전을 세우리라.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제3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들이 성전임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것인 우리가 곧 심령성전이다. 이 성전을 건축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모세보다 더욱 영광 받으시기에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이 확신과 소망의 기쁨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으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히3:6)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 그리스도 예수가 곧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히10;21) ‘우리를 구원하시어 아버지의 영광을 받게 해 주실 분이 곧 그리스도 예수이심을 확신하고 끝까지 붙잡는다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하신다. 그의 집이라 함은 재림하시는 그 그리스도 예수의 집이라. 즉 그의 아내라는 것이다. 그의 아내가 희고 깨끗한 세마포로 예비 됐다고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심령 성전의 건축이 그리스도 예수로 완공 됐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집이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실시간 칼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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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신앙세미나 18
-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행복의 의식 전환 “모든 가족에게는 크고 작은 비밀이 존재한다. …비밀의 유형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자신의 DNA를 체크해보는 테스트가 인기를 끌면서 가족 내 비밀이 더 이상 숨을 곳을 잃고 있다.”(중앙일보, 2019.2.14) 위의 기사처럼, 현재 미국에서는 100달러 정도의 가격에 DNA 테스트 업체 50여개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특히, 과학저널인 ‘지놈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21년까지 자신의 DNA를 테스트했거나 해보겠다는 사람의 수가 1억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DNA는 각 생명체의 특성에 대한 정보들이 입력되는데, 그 정보가 후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유전 물질입니다. 그래서 DNA를 통해 생명과 유전에 관한 여러 테스트가 가능합니다. 한 번은 미국의 애틀랜타 에몰리 대학에서 벚꽃 향기를 추출해서 쥐들에게 풍겨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벚꽃 향기만 맡게 하면서 쥐들의 DNA 검사를 해보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벚꽃 향기를 풍겨주면서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전기를 바닥에 흘려보냈습니다. 그러자 쥐들이 엄청나게 놀라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10일 간을 계속 시행한 후 쥐들의 DNA를 검사해 보니 DNA가 변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DNA가 변해 있는 수컷 쥐들과 그 실험을 받지 않은 암컷 쥐들과 교미를 시켜서 새끼가 나왔는데, 고양이와 전기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새끼 쥐들도 벚꽃 향기를 풍겨주니 깜짝 놀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그 새끼 쥐들도 수컷 쥐들의 DNA를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그 후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죄와 불행의 DNA가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죄와 불행의 DNA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만날 때 변화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 “고통에 대한 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 행복은 없다. ... 의식을 바꾸면 고통은 반드시 행복이 된다.”(스카이데일리, 2019.3.7) 위의 기사는, 행복은 고통에 대한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불행에서 행복으로의 전환은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한 왕이 큰 상을 주겠다면서 백성들에게 꽃씨를 받아 잘 가꾸어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왕궁에서 주는 꽃씨를 받아 화분에 심고 온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 역시 정성껏 꽃씨를 돌보았지만 싹조차 트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아이는 혹시 흙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어 흙을 바꿔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왕이 지정한 날이 다가왔습니다. 온 백성이 형형색색의 고운 빛깔과 향기를 품는 꽃들을 예쁜 화분에 들고 왔습니다. 왕은 천천히 백성들 사이를 지나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꽃들 앞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왕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이고 빈 화분을 들고 있는 아이 앞에 오자 왕의 얼굴이 펴지며 “어째서 빈 화분을 들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임금님, 정말 죄송합니다. 꽃씨를 화분에 심고 아무리 정성껏 가꾸었어도 싹조차 나지 않아서...” 아이의 답변을 듣자 왕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봐라, 이 아이에게 큰 상을 내려라! 이 아이만이 진실의 꽃을 아름답게 피웠도다!” 사실 왕이 백성들에게 준 꽃씨는 이미 삶은 것이었습니다. 왕이 상을 주고 싶었던 사람은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거짓된 사람이 아니라, 아무 꽃도 피우지 못하는 진실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마 12:34) 예수님은 선(善)의 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충고하신 반면, 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이 없는 모습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인간의 진실된 모습임을 받아들이는 행복의 의식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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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신앙세미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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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 그 변증법적 통일의 명제(4)-이청준의
- 조백헌 원장이 쌓아 올리려던 바벨탑은 황희백 장로들의 저항에 부딪치며 끝내 붕괴돼버리고 말았다. 이 작품이 일견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태동한 시대적 배경으로서의 70년대 상을 우화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정치적 자화상까지를 또한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언젠가 TV 사극 <용의 눈물>이 조선 개국 이후의 당대 현실을 재현한 데에만 그 의의를 지닌 것이 아니라 그 이상, 즉 그 사극이 진행되던 그때의 한국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역할까지도 동시에 담당함으로써 세간의 인기를 크게 얻었던 사실과도 유사한 것이라고 하겠다. 현대의 이 나라 통치자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동상에의 욕망이 “우리 모두의 천국” 건설보다는 “당신들만의 천국” 건설에 더 열을 올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을 우리 모두가 확인하고 난 뒤에라야, 우리 사회에 요즘과 같은 총체적 난국(難局)이 조성된 사실과 그 원인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그 난국 형성이란 것은, 현대판 원생들의 거센 반발의 기운이 이 사회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히 증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대체 어떤 결과가 도출될 것인가. 소설 속의 지난 주정수 원장은 우리 역사상의 군사집권자 일파(곧 朴/全/盧 등의 前 위정자)를, 그리고 지금의 조백헌 원장은 현직 대통령을, 다음으로 황희백 장로는 모 야당 대표를 연상시키는 면이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동상 건립’에만 더 열을 올린 결과가 돼버린 과거의 주정수 원장보다는 ‘낙원 건설’을 크게 내세운 지금의 조백헌 원장이 그 명분상 더 나은 입지적 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과도 같이, 철권통치를 능사로 삼았던 과거의 군사 독재자들보다는 언필칭 법치의 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현직 대통령이 그 명분상으로나마 확실히 더 나은 위치를 점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 대통령의 ‘법치 낙원’의 건설 복안은 과연 ‘우리 모두의 천국’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만의 천국’을 위한 것인가. 만일 지금껏 ‘당신들만의 천국’ 건설에 열을 올려온 것에 불과했다면 오늘의 조백헌 원장은 부득불 현대판 황 장로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 이 소설 작품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라 하겠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에 조성된 극단의 난맥상은 확실히 황 장로와 원생들의 연합 세력이 이미 조 원장의 바벨탑 건조 계획에 일단의 혐의를 품고 대항적 자세를 확고히 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암시적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조백헌의 바벨탑 건설의 청사진이 실은 황희백 장로의 거센 항거에 부딪치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이란 절차를 거치며 궤도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의 조백헌’의 바벨탑 축조의 청사진도 주님 이름으로의 엄숙한 선서를 통해 ‘우리 모두의 천국’이란 목표와 지향점을 찾아 그 궤도수정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이 소설은 우리 모두에게 역설하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비정치적 세계를 다룬다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의 정치철학이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소설은 일종의 정치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의 작품 속에 기독교적 세계를 멀리한 것처럼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이 작품에서도 보게 되듯이 가장 기독교적 메시지가 충만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것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은 바벨탑 신화에 도전하는 강력한 우상파괴 정신으로써 자유와 평등 및 정의와 사랑이란 기독교적 덕목을 확고히 내세운 작품이라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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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 그 변증법적 통일의 명제(4)-이청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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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을 내라
- 마태복음 14장 24절부터 33절까지 주님은 제자들이 가장 시달리고 지쳐 있을 때 찾아 오셨다. 그리고 “기운을 내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격려 하신다. 이 격려는 사람들의 위로와는 달리 실제로 힘이 샘솟게 하신다. 오늘날 코로나 팬대믹등으로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며 격려해주시는 주님이시다. 실제적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시켜 주시는 참된 격려이다. 오늘 본문은 보리빵을 먹은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첫째부활의 진리의 말씀은 곧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빵이다. 이를 먹은 자들은 반드시 여러 환란과 고통을 거쳐야 될 것임을 계시한다. 물론 여기 배는 종말의 금촛대교회를 계시한다. 바다와 바람은 죄악 세상의 마귀 역사이다. 파도는 그가 일으키는 환란을 상징한다. 밤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오신다. 이는 한 밤중에 가장 지치고 힘든 제자들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이시다. 즉 보리빵인 첫째부활의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종말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심을 계시한다. 또 이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한 밤중에 신랑 예수를 맞이하는 것과도 같다. 장차 7년 환란중에 순교시켜 주시러 오시는 주님을 계시한 것이다. 이는 우리를 그의 신부로 확정 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 주님은 “기운을 내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초월적인 권능으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이다. 그러데 유령이 아닌가 하여 두려워 소리치고 있는 제자들이다. “나는 유령이 아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라.”고 힘들어하는 제자들에게 새 힘을 주신다. 내니 두려워 말라. 즉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내 안에서 능히 이기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기운을 내게 하신다. 주님은 생명의 빵이요, 보리빵 다섯 덩어리이시다. 친히 고난과 연단, 핍박, 십자가 죽음, 부활의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승리에 승리를 하신 분이시다. 이렇게 이기신 보리빵 다섯 덩어리 되신 그 주님 안에 있는 너희들은 당연히 내가 이긴 그 싸움을 싸우는 것이 되리라. 너희들도 능히 내 안에서 이기리라. 그러니 “기운을 내라.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벗어나서 마귀나 악령 역사를 보고 두려워하면 즉각 바닷물에 빠지듯 하리라. 그러나 주님은 자기에게 온 자는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기운을 내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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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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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함께 가는 여정
- 여성 홈리스 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어느덧 11년이 되었다. 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홈리스’ 라는 명칭은 낯설고 어떤 경계를 갖게 하는 언어였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적 이미지가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게으름, 알콜중독 등 경쟁적인 사회에서 낙오된 이미지를 떠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끝도 없는 냉혹한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 과연 홈리스 그들 자신의 문제라고 만 볼 수 있을까? 쉼터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누구도 홈리스가 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며, 인생의 힘든 여정에서 막다른 상황에 내몰려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 막다른 상황이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장 힘들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결국 쉼터에 올 수 밖에 없었다는 선택은 동일했다. 경제적 상황 악화, 질병, 가족 단절 이 세 가지 원인이 중첩되었을 때 노숙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여성일 경우 가정폭력이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구라도 이와 같은 요인 중 하나라도 겪게 된다면 큰 스트레스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함, 만회할 수 있는 경제력, 이 모든 것을 상실한 상태에서 상처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까지… 과거로부터 현재진행형인 인생의 고통 한 가운데 서 있는 분들이 바로 ‘홈리스’ 그 분들일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쉼터까지 오게 된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분명해 지는 생각이 있다. 바로 그 분들이 나의 스승이라는 자각이다. 고통 한가운데서 삶을 살아내려는 모습이 나에게는 그 자체로 삶에 대한 경외를 가르쳐 준다. 엄마와 함께 입소한 영아기 아기의 맑은 웃음을 통해 내면 깊이 와 닿는 뭉클한 깨달음이 있다.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되어 져야 하는지를 그 어린 아기가 미소를 통해 나를 가르친다. 쉼터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폭력의 위험을 피하고,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치유하면서 힘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입고 있는 옷과 3,000원이 전부였지만 쉼터에 와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자립해 나가기도 한다. 쉼터 입소인을 대상으로 해마다 욕구조사를 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1위는 항상 주거에 관한 사항 이다. 주거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가 있으면 당연히 ‘홈리스’라는 낙인도 붙지 않는다. 주거와 함께 중요한 부분은 지속적인 경제활동이다. 쉼터에 계신 분 대부분 일을 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일을 하길 원한다. 주거와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삶의 토대를 안정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홈리스 주거복지 및 일자리 지원 정책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향상된 면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홈리스 정신질환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회복과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주택을 제공하는 ‘지원주택’ 제도가 있다. 도입 초기에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지원주택에는 사회복지사가 상근 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시설과는 다른 형태로 입주민이 각자의 사적인 주거공간을 통해 지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여 홈리스나 생을 포기함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은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길로 이끌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5)는 주님! 주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내일의 집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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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함께 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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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주는 교훈
- 오 헨리의 단편소설『마지막 잎새』와 아일랜드의 민요 『아 목동아』는 가을을 배경으로그리고 나무 잎과 꽃을 소재로 쓴 글이자 노래이다. 그토록 여름에 푸르고 싱싱하던 나무 잎과 곱고 향기롭던 꽃들도 겨울이 오면 죽어 땅에 떨어지듯 인간도 누구나 종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글이자 노래이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만물 중에서 가을풍경이 보여주는 자연 계시는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거두면서 땀 흘려 일한 삶의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 늦가을에 잎과 꽃이 시들어 땅에 떨어져 시드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는 것같이 허무함과 종말을 의식하기도 한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4장에서 가을을 배경으로 누구나 맞이할 인생의 끝자락인 겨울을 주지시키면서 각별한 교훈을 주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쓰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했다. 바울은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사명자의 길을 경주하듯 달려왔으며 믿음을 지키고 살아왔다”고 하였다. 한편 바울은 다가오는 겨울 옥살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디모데에게 겉옷과 가죽종이에 쓴 성경을 겨울 전에 서둘러 가져오라고 부탁을 했다. 종말을 상징하는 영적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먼저 믿음을 방해하는 환경에 맞서 도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어느 시대나 위기가 없는 때는 없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에 힘씀으로 능력을 받아 영적 장애에 도전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음으로 죄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며 자신이 지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성령을 받아 주님의 일꾼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사야 처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며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일생을 맡길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명자로 불러 쓰신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종말인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장차 주님 앞에 가서 칭찬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자./ 예장 합동선목총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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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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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
- 조혜경 작가의 「touch」 라는 작품은 우리가 알듯이 일반적으로 만진다는 의미로 쓰여지지만 성경에서는 흔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잡혀 가시던 날 제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오른쪽 귀를 떨어뜨리자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며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신다.(눅 22:50,51) 또 두 사람의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애원할 때 주님은 그들의 눈을 만져 보게 하신다. 이토록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고 동정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작가는 명암의 색채 변화로 이를 보여주고 있다. 어둠 속을 밝게 비추어 주는 아름다운 색채의 하모니(harmony)가 돋보인다/정재규(미술평론가·대석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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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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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 율법의 요구 3회]서로 사랑 실천, 생명에 들어간 확증
- 화목제물 되신 주께서 원하시는 주의 자녀로의 회복 위한 사랑의 계명 성경은 주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시어 그 사랑의 대상이 온 인류임을 확증해 주신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다. 곧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주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구속사역에 성령과 동행케 하여 주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선함이다. 이를 위해 그 자취를 좇도록 본을 보이심이라고 하셨다. 곧 계명들을 주심은 모든 죄인들이 주의 은혜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서로 사랑의 실천으로 이웃 사랑임을 찾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이 일에 하나님의 의로 쓰시기 위해 거듭나게 하신 이유와 목적임을 확증해 준다. 특히 요한일서에 새 계명인 서로 사랑을 강조한 이유이다.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은 주님과 한 몸을 이룬 지체들로써 성전의 기능을 위한 존재의 목적이다. 더불어 거듭난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서로 사랑은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의 주 사랑임을 확증케 한다. 주께 신령한 몸으로 드려지는 제물로써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섭리이다. 더 나아가 제사장과 재물의 몫으로 연계된 이방인들의 죄사함을 위한 이웃 사랑이다.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인 것같이 너희도 이와같이 행하라’는 요구하심에 담긴 화답.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 하신 말씀이 이를 확증해 준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증거이며 영생을 얻은 자라는 확증으로써 서로 사랑의 실천은 생명에 들어감을 확증해 준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은 거듭나 주를 경외하는 자로서 마땅한 하나님 사람의 본분임을 확증케 한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 가운데 거듭난 자를 미워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거듭난 형제를 반드시 사랑하며 마땅히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하나 된 지체임을 새기게 하신다.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고 하심의 증거이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들을 지킬 때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 안다”고 하신 말씀이다. 더 나아가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시어 성령의 견인하심을 확증해 주신다. 거듭난 형제들과 주 안에서 한몸을 이룬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여 성령과 동행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임을 확증케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녀를 봄이 심히 기쁘다’고 하셨다. 거듭나 주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이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로서 아버지와 하나임을 발견케 하셨다. 더불어 주님과 동역자들의 같은 기쁨은 서로 사랑으로 이웃 사랑의 실천에 순복하는 주의 백성들의 확장임을 확증케 한다. 주께서 부르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기쁨이 주를 사랑하는 자녀들로 주의 말씀에 순복과 충성이다. 곧 서로 사랑하게 하시어 이웃 사랑 하게 하심은 주인 되신 주께서 소원하시는 주의 자녀로의 회복을 위한 사랑임을 확증하는 바이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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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 율법의 요구 3회]서로 사랑 실천, 생명에 들어간 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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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정신건강(2)
- 잠들기 직전 혹은 이완 중에 발생하는 세타파는 기억력을 촉진시킨다. 일반인들도 통찰이 일어난다거나 창의적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세타파를 경험할 수 있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이 어떤 어려운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가 갑자기 해결책이 발견되는 난관의 돌파가 이루어질 때 세타파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골치 아프게 오랫동안 끌어오던 문제가 해결되어 긴장이 이완됨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세타파 발생현상은 난관 돌파, 통찰력의 순간, 또는 깨우침과 같은 직관이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 세타파의 출현은 뇌 속의 산화질소 발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가 어떤 문제로 좌절하고 있거나 허덕이고 있을 때 베타파가 발생한다. 이러한 베타파가 나타날 때는 정서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이다. 한 뇌파 연구에 의하면 연구자가 피험자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를 제시했더니 피험자가 온갖 노력 끝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접근법을 찾았는데 그 순간 뇌파는 세타파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떤 연구자는 피험자의 학습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피험자의 뇌 속에 세타파 발생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또 다른 연구자는 세타파를 야기할 수 있는 교수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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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정신건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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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정신건강(2)
- 잠들기 직전 혹은 이완 중에 발생하는 세타파는 기억력을 촉진시킨다. 일반인들도 통찰이 일어난다거나 창의적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세타파를 경험할 수 있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이 어떤 어려운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가 갑자기 해결책이 발견되는 난관의 돌파가 이루어질 때 세타파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골치 아프게 오랫동안 끌어오던 문제가 해결되어 긴장이 이완됨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세타파 발생현상은 난관 돌파, 통찰력의 순간, 또는 깨우침과 같은 직관이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 세타파의 출현은 뇌 속의 산화질소 발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가 어떤 문제로 좌절하고 있거나 허덕이고 있을 때 베타파가 발생한다. 이러한 베타파가 나타날 때는 정서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이다. 한 뇌파 연구에 의하면 연구자가 피험자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를 제시했더니 피험자가 온갖 노력 끝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접근법을 찾았는데 그 순간 뇌파는 세타파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떤 연구자는 피험자의 학습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피험자의 뇌 속에 세타파 발생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또 다른 연구자는 세타파를 야기할 수 있는 교수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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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정신건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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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교실] ‘중족골통’의 치료
- 발가락 끝부터 발꿈치까지 병이 안 생기는 부위가 없지만 발의 볼이 있는 부위는 가장 흔하게 통증을 일으키는 부위이다. 여기서 발의 볼이란 흔히 신발을 고를 때 볼이 좁다 넓다고 하는 그 부위이다. 그 중에서 둘째, 셋째, 넷째 발가락 뿌리 쪽의 발바닥이 아픈 경우를 의학적으로 ‘중족골통’이라고 한다. 가만히 서있을 때나 걸어다닐 때 이 부위에 통증을 보이고, 손가락으로 발바닥과 발등을 쥐고 누르면 통증을 나타난다. 흔히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에 굳은살이나 티눈이 있고, 발가락들은 갈퀴모양이나 망치모양으로 변형되거나, 발가락 등에 굳은살이 많이 생기게 된다. 중족골통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중족골에 대한 과도한 압력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경우에 잘 생기며, 그 외에도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첫째 원인은 장딴지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져 있거나 아킬레스건이 짧아져서 발목관절이 발등 쪽으로 젖혀지지 않는 경우이다. 흔히 굽이 높은 하이힐이나 키높이 구두를 신는 경우, 점프나 달리기를 많이 하는 운동선수, 사무실 의자에 앉았을 때 의자가 다리 길이보다 높아서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 평소에 발목의 스트레칭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 등에 흔하며,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걸어가면서 바닥에 발을 내딛을 때 무게중심이 발바닥 전체에 골고루 분산되지 않고 발의 앞부리와 볼에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둘째 원인은 발의 횡아치가 무너지는 경우이다. 사람의 발에는 두 개의 아치, 즉 종아치와 횡아치(중족골아치라 불리우기도 함)가 있는데, 정상적으로는 첫째와 다섯째 발가락이 다른 중간의 세 발가락보다 더 많은 체중부하를 받게 되는 아치형태의 횡아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 발가락뼈들을 연결하고 지지하는 인대가 약해지거나 파열된 경우, 또는 발의 고유 굴곡근육이 약해져있는 경우에 횡아치가 무너져서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그 예로써 △엄지발가락 외반증으로 인해 엄지발가락의 중족골이 안쪽으로 벌어지면서 볼이 넓어지는 경우 △교통사고로 발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지는 경우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볼이 있는 부위의 관절들이 부어 있는 경우 등이다. 셋째 원인은 요족 변형이 있는 경우로서 발의 종아치가 정상보다 더 굴곡돼 발의 볼에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며 대개는 유전성이다. 그외 원인은 발목관절에 생기는 관절염으로 인해 발목 관절이 굳어지면 걸을 때 발의 앞부리로 걸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시멘트나 타일로 만든 딱딱한 바닥에서 오래 걷는 경우, 작업용 장화와 같이 바닥이 단단한 신을 착용할 경우에도 또한 발생할 수 있다. 그 외 발의 볼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신경종, 중족골의 피로 골절, 중족골두 무혈성 괴사, 각화증과 사마귀 등이 있다. 병의 진단은 발의 진찰 검사, 엑스레이 촬영(체중부하상태), 혈액 검사, 발바닥압력검사, 핵의학검사(골주사검사), 필요하면 초음파촬영, MRI, 근전도검사 등을 시행하여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근육이 뭉쳐서 생긴 것이라면, 운동치료만으로도 증상이 좋아질 수 있는데 장단지 근육을 스트레칭 시켜야 한다. 중족골통이 있는 경우 통증 부위의 압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흔히 발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반사적으로 굴곡시키게 된다. 이러한 경우, 능동적인 발가락 굴곡운동을 통해 발의 고유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을 시행하여 중족골두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일 수 있으나, 평소에는 이런 운동을 안 하다가 갑자기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발가락 굽힘 근육이 뭉쳐서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뚱뚱한 사람은 체중을 줄여야 통증이 없어진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있는 경우에는 보조기 치료가 필요한데, 증상이 경미한 경우엔 신발을 환자의 발에 맞도록 바꾸거나 신발깔창을 변형시키면 된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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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교실] ‘중족골통’의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