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31(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또 내 영을 부으리라
      사도행전 2장 18절 말씀은 17절과 전혀 다르다. 17절은 초대교회 오순절의 때에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어 자녀들은 예언하고 청년들은 환상보고 노인 즉 장로들은 꿈을 꾸리라 하신다. 이 17절의 그 대상, 그 시기, 또 내 영이 서로 다르다. 여기 18절의 남 여종들은 성령시대인 17절의 최고 영적 단계인 장로들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음을 계시한다.   또 이들은 19절부터 21절에서 말씀하듯이 주의 재림 직전의 때,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같이 변하는 종말의 7년 대환란날에 예언하는 종들을 말씀하고 있다. 또 18절의 ‘내 영을 부으리라.’ 함도 지금 은혜시대가 아닌 환란날에 일곱 영을 부어 주리라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금기름 발리운 자(슥 4:12)는 일곱영 받은 자를 계시한다.   요컨대 이 18절의 남 여종들은 7년 대환란날에 사역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이요, 144,000을 가리킨다(계 7:3-4). 이들에게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한 일곱 영(계 1:4, 3:1, 4:5, 5:6)을 부어주어 주 재림의 예언을 하리라. 신약교회의 최초 순교자가 스테판이요, 그는 은혜시대 종들인 여섯명과는 달리 사도행전 6장과 7장을 통해서 계속 성령충만을 더해가서 결국 일곱 번째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장엄한 순교를 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일까요? 지금 성령시대와는 전혀 달리 환란시대가 오면 적그리스도나 그 우상을 경배 강요할 것이다.   그때에 이를 거부하여 순교한자들이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라 했으니 엄청난 순교가 있게 될 것이다. 이 순교할 자들에게 주님은 스테판을 미리 계시 기관으로 쓰시어, 스테판과 똑같이 일곱영들로 충만케 하실 것임을 계시했다. 일곱중 스테판 만이 사도행전 6장 8절에서 세 번째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모든 고난, 역경을 모두 은혜로 받는 것이다. 또 능력 충만으로 네 영들로 충만했다.   최고의 권능인 철장권세를 받아 적그리스도를 대적, 승리, 순교한다. 또 계속 다섯 번째 지혜의 영으로 충만했다. 모든 될 일과 하나님의 말씀 등을 다 깨달아 알게 한다. 대언의 영으로 충만하여 위협하는 적그리스도 앞에서도 담대히 대언한다. 일곱 번째로 그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하늘 영광의 기쁨으로서 돌 맞아 죽임당하는 고통도 능히 이기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이같이 일곱 영으로 충만케 하소서.’ 그리고 ‘이기게 하소서.’ 기도합시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6
  • 뇌는 일평생 변화한다 (3)
      인간은 신경세포를 상실하기도 하는데 나이가 들면 경험에 의해 뇌의 시냅스를 더 많이 발달시키기도 한다. 피질의 연합영역에서의 시냅스들은 가소성을 유지할 기능이 더 높아서 경험, 즉 학습에 의해 변화될 수도 있다. 요즘 우리교육 중에 ‘평생학습’은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평생학습을 통해 뇌가 발달하게 되고 뇌는 스스로 조직화하는 능력 때문에 뇌의 시냅스를 증가시켜 건강한 뇌의 기능을 하게 된다.   반복학습의 원리도 뇌의 가소성을 이용한 좋은 학습방법이다. 자극은 뇌의 가소성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일생동안 받는 자극은 끊임없이 시냅스의 형성과 뇌를 재구조화하는 역할을 한다.   쥐를 대상으로 미로를 헤쳐 나아가도록 훈련시키든가 복잡한 환경에 노출시키면, 피질에서 시냅스의 가지가 증가하게 된다. 특히 태어나서 0~3세는 뇌 발달의 절정기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성인기나 노년기에도 뇌의 가소성 원리는 작용되기 때문에 오감을 통한 자극을 주면 시냅스의 형성과 재구조가 일어나게 된다.   또한 ‘생각’은 뇌의 가소성을 크게 구축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뇌의 가소성 기능에 의해 뇌는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뇌의 가소성 기능에 의해 뇌는 그대로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트레스는 뇌의 가소성을 크게 나쁘게 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4
  •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요2:13~22)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예루살렘 성전 앞 마당에서 제물을 파는 사람과 환전하는 사람들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상을 뒤엎으시고 쫓아 내셨다.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예수를 믿더라.   예루살렘 성전은 해발 750m 정상에 있는데 세 번 건축 되었고 세 번 파괴되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대하 3:1) 첫 번째 솔로몬 성전은 BC 957년 시작 7년 동안 지어졌고 BC 587년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다. 두 번째 성전은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선지자 에스라에 의해 BC 536년 시작하여 BC 516년 완성되었으나 BC 169년 시리아 안티오커스에 의해 파괴되었다. 세 번째 성전은 이두매 사람 헤롯이 정치적 야심으로 BC 20년 시작하여 80여 년 동안 건축되어 AD 64년 완성되었으나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수께서는 유대 절기에 따라 헤롯의 성전에 아기 예수로, 12살 소년으로, 그리고 이 성전을 정결케 하셨으며, 이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요한복음에 의거하면 공생애 중 3번의 유월절을 지키셨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3:16-17 새번역)   임마누엘~!!! 우리는 주님의 네 번째 성전이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4
  • [건강교실] 프란시스코 고야와 '난청'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카프리초스(변덕)」, 「5월 3일의 처형」 등의 작품을 그린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다. 하지만 1792년에 고야는 청각을 잃게 되며,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전기 작품과 후기 작품으로 나뉠 정도로 난청은 화가로써의 고야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야가 청각을 잃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매독설이다. 매독 자체에 의해서도 난청이 생길 수도 있으며, 매독 치료를 위해 사용한 수은 연고가 수은 중독에 의한 뇌증(encephalopathy)을 일으켰다는 설이다. 둘째는 그의 물감에 포함된 납이 납중독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고야는 난청과 동반될 수 있는 건강 염려증과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질환이 심해질수록 점점 그의 그림은 소심해졌다.   당시 18세기에는 매독이 유행했다. 그러나 매독만으로 그가 말년에 앓았던 신경학적인 질환들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당시에는 매독 치료로 수은 연고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수은이 중심신경에 작용하여 수은 떨림, 우울증 등을 일으켰으며, 말초 신경에 작용하여 시신경염과 어지러움증, 구내염, 장염, 신장 질환들이 부작용을 일으켰다. 매독 치료로 수은 연고를 사용한 것은 16세기에 시작돼 3세기 동안 유지됐는데, 매독의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안료 중 일부 색은 천연에서 얻은 무기물로 제작했는데, 이 중 납을 포함한 색들이 있어서, 피부나 호흡기로 이를 장기간 접촉할 경우, 동맥경화와 신경병들이 생기게 된다. 가장 유명한 납중독에 의한 뇌증은 실신, 환청, 섬망, 우울증과 치매를 일으키기도 하며, 난청과 어지러움증, 팔의 마비를 일으키게 된다. 고야가 말년에 심한 진행성 청각장애, 발작적 어지러움증, 우울증, 환청, 팔의 마비가 있었다는 점은 납중독을 강력하게 의심하게 한다.   난청은 귀 영역에서 생기는 가장 흔한 증상으로, 이에 원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하다. 난청은 크게 신경에 문제가 생긴 ‘감각신경성 난청’과, 소리가 전달되는 고막, 중이 등에 문제가 생기는 ‘전음성 난청’으로 나눌 수 있다. 감각신경성 난청은 유전성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비유전적인 경우, 산전 감염, 세균, 바이러스, 매독균에 의한 염증성 질환, 외상, 나이가 듦에 따라 생기는 노인성, 소음성 난청, 돌발성 난청, 대사 이상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전음성 난청은 만성 중이염, 고막 천공, 이소골 질환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난청의 진단은 귀 내시경, 정밀 청력검사와, 뇌파 검사, CT, MRI 등의 검사를 통해 진단하게 된다. 난청의 치료는 약물치료, 수술, 보청기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와우 이식, 중이 이식, 뇌간 이식 등의 의술이 발달하고 있어 이 치료법들도 주목 받고 있다.   고야는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질병으로 많이 고통을 받았으며 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많이 갈등한 것을 알 수 있다. 고야가 현대적인 이비인후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난청이 많이 진행되기 전에 치료를 받았었더라면, 그의 작품들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지 한 번 생각해 본다. 반대로, 그의 천재적인 작품들이 그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본다. /한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3
  • 행복신앙세미나 28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은혜 안에서 누리는 참된 행복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 3:7~10)   본문의 사도행전 3장 7절부터 10절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 오는데 이 사람이 걷고 뛰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본인도 깜짝 놀란 가운데 너무나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앉은뱅이가 걷고 뛴 것 때문에 행복해하며 하나님을 찬미한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길을 지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것을 볼 텐데 그렇게 걷고 뛰는 것 때문에 행복해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걷고 뛰는 것으로 인해서 행복해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을까요? 그것은 그 사람 마음에 걷고 뛰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면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걸었고 또 뛴 것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걷고 뛴 그 자체가 그를 행복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채워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가 행복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풍성하거나 좋은 조건을 갖추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행복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으로 걷는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부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결코 행복하고 만족해할 수 없습니다. 천사장 루시퍼는 다른 피조물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행복해하거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받은 것들을 통해 마음이 교만해져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더욱 불행해졌습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피조물로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하나님이 주신 그 모든 것들이 은혜가 되지 못했고, 은혜가 빠졌기에 만족해하지 못한 채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만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위치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다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으로 타락한 후 영원한 멸망을 당해야 되는 가장 불행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생을 살면서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무능력을 발견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인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1
  • ['그 사랑' 거룩한 성화 2회]본을 보이신 주님 자취를 좇는 여정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 되리라 하신 선한 뜻에 참예     성경은 예언하신대로 성취하시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한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마귀를 진멸하신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인 천국을 이루실 경륜이다. 주의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시는 영생과 안식이다. 이를 위해 오신 주님의 목적을 밝히 찾게 하신다. 이에 제자들을 향해 마태복음5장13~18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다.   본문에 소금의 직임은 자신을 녹여 썩지 못하도록 사람 살리는 자의 몫이다. 빛의 직임도 자신을 태워 밝히는 아가페 사랑이다. 두 직임은 비유로써 주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의 계명 실천이다. 이를 착한 행실로 표현하셨다. 산상수훈 중에서 오리를 가자고 한다면 십리를 가주고 겉옷을 요구하면 속옷까지도 주라는 비유와 같이 이웃 사랑에 몫과 지침이다.   전도를 하는 자의 자세로써 남의 유익을 위한 믿음의 성화를 일컫는다.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아카페 사랑을 위함이다. 곧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을 가르친 교훈이다. 메시야로 오신 목적에 대해 아버지의 뜻을 완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예언하신 말씀의 성취를 위한 주의 뜻을 좇는 여정이어야 함을 찾는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빼앗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하여 주의 경륜을 이루시는 메시야 보내심의 이유와 목적을 확증케 한다. 주로 인한 새 피조물의 몫은 부르심의 이유와 할 일에 지침을 바로 알 때 주를 좇는 여정이 기쁨과 감사로 늘 기도와 더불어 확장케 됨을 발견케 한다. 이럴 때 주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그 십자가의 자취를 좇는 착한 행실이 된다.   이를 소금과 빛의 직임으로 주셨다. 교회에 덕을 세우며 남의 유익을 위한 착한 행실이다. 이타주의로 아가페의 사랑을 위한 일이다. 오직 생명을 얻게 하여 주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에 존재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로써 이미 자신의 육체는 죽었노라는 고백과 동시에 주를 경외함의 신본주의 자세와 몫이다. 곧 종의 몫에 태인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한 착한 일에 참예이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실천하는 사랑으로써 구약에 계시된 영생의 길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하여 주의 백성으로 회복, 창조의 목적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에 쓰시기 위해 주께서 보이신 본이다. 이를 위해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으며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이라 증거 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된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주의 경륜이다. 주의 백성들로 회복시켜 영광을 받으시는 주의 섭리로 이루어 가는 구속사이다. 이를 위해 주께서 본을 보이신 십자가의 자취를 좇게 하심이다. 곧 주와 한 영을 이루어 주의 마음을 알고 그 자취를 좇는 새 피조물들의 성화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해질 때까지 존재 목적에 성화임을 밝힌다. 주는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새 피조물로 자녀 된 자들이기에 자원하는 사랑 실천의 여정임을 확증케 한다. 날마다 이를 행할 우리의 몫에 지침으로 성화의 지혜이다. /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3-01-10
  • 두 번째 성령 충만
      오순절 날에 120명의 주님 제자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 표로서 성령에 의하여 다른 방언, 즉 ‘글로싸’로 말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했다. 또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자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 또 사도행전 3장 6절에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자 즉시 일어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것이 첫 번째 성령 충만이요, 즉 예수로 충만함이다.   이들이 또 사도행전 4장 31절에 두 번째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그 결과 이들은 하늘 소망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래서 이 땅의 자기 것을 자기 소유로 주장치 않고 오직 하늘나라의 영생을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서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쓰며 한 마음, 한 혼이 됐다. 그리고 더욱 강력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다. 이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자신들이 부활하게 될 것도 소망함을 가리킨다. 즉 하늘나라의 산 소망으로 충만한 것이다.   이와 같이 두 번째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을 사도행전 6장 5절에서 믿음과 성령 충만하다고 말씀했다. 이들은 은혜 시대인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 받는 기준임을 사도행전 6장 6절에서 계시했다. 또 사도행전 2장 17절에 ‘자녀들은 예언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 즉 장로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이는 육신 나이가 아닌 영적 세 단계임을 계시한다. 즉 자녀가 예언함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함이니 이는 영생의 말씀이요, 장차 될 예언적인 것이다. 또 이어서 더욱 영이 장성한 청년은 환상을 보리라. 이 환상은 성경 말씀의 환상이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 등은 아주 어려운 환상의 예언이다. 이를 잘 깨닫고 풀어서 또 증거하는 것이 청년이 환상을 보는 것이다.   또 더욱 온전한 자리에 오르면 노인이 된다. 이 노인들은 원문에는 ‘프레스뷔테로이’ 로 장로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꿈을 꾸리라.’ 이는 육신의 꿈이 아니다. 장차 하늘나라의 영생의 삶을 이 땅에 살면서 미리 당겨서 믿음의 실상으로 누리는 것을 말한다. 꿈이 깨면 하늘에서 영광을 입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두 번 성령 충만하여 이 같은 자리에 올라야 될 것이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3-01-09
  • 뇌는 일평생 변화한다 (2)
      프리온 단백질은 좋은 신경신호에 반응하여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나, 나쁜 신경신호에도 반응해 우리 몸에 해악을 끼친다. 우리가 근심, 걱정, 두려움 등 유해한 감정에 사로잡혀있거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으면 나쁜 신경신호를 생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어린 시절은 뇌의 가소성이 극대화하는 시기이다. 뇌 발달에는 민감기라는 것이 있는데, 뇌는 자극을 끊임없이 주어야 하고, 계속해서 자극이나 환경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눈으로 보는 자극을 통해 후두엽이 발달되고, 언어발달에도 민감기가 있듯이 이때 오감을 통한 자극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귀는 듣는 자극을 통해 측두엽이 발달된다. 눈을 가려놓으면 눈은 영원히 못쓰게 된다. 우리의 성격도 어린 시절에 어떤 자극을 주었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로 달라지는 것이다.   성격은 대체로 50%가 태어나서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는 성장하면서 만들어진다. 가장 중요한 환경이나 자극을 통해 성격도 2~3세 안에 결정되며 나머지는 18~25세에 완성되는 것이다. 성격은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지어지는데 그것은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가바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뇌의 가소성 때문에 어떤 자극을 주느냐, 어떤 환경을 주느냐에 따라 뇌는 그렇게 조형되는 것이다. 학습 또한 뇌의 가소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 오피니언
    • 칼럼
    2023-01-06
  • 요한의 육하원칙(六河原則)
      요한은 세례요한의 증언으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한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요2:1) ‘이런 일’이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던 그 날이다. ‘사흘째 되던 날’을 되짚어 돌아보면, “그 이튿날,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시몬에게 반석의 의미로 베드로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으며, 그 이튿날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 삼으셨다”(요1:35~43)   이런 일이 있은지 사흘째 되던 날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다. 요한복음서에만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 이야기이다.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이 함께 갔다.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자 “여자여,(유대에서는 어머니를 높이는 존칭어로 사용한다) 나와 상관없어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라고 슬며시 일러둔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제 퍼서 손님들께 갖다주어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사도 요한은 육하원칙에 의거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사건을 두고 헬라인들은 “어떻게?”라고 묻는다고 하고, 히브리인은 “왜?”냐고 묻는다고 한다. 물음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되었을까?” 답이 준비될 것이고 “왜 물이 포도주 되게 하셨을까?” 성경에 정답이 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으로 이런 기적을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2:11).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믿음은 기적의 출발이며 은총의 선물이다.    /한강장로교회 권사·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3-01-06
  • [향유옥합] 공동체 회복을 위해
      새해는 새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시작한다. 한국교회도 새롭게 변하길 바란다. 세상이 교회를 비판한 지는 오래되었다. 실망했다는 거다. 교회 내부에서도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누가 개혁대상인지 모를 정도로 모두가 주장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교회가 변하지 못한다면 버려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있는 새해 벽두에 한국교회를 돌아봤을 때 그동안 달라진 게 있을까. 한국교회라는 이름의 비판대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교단 임원단일까, 조직교회일까, 기독교인들을 통칭하는 걸까? 비판 대상의 실체가 분명치 않아서 변화가 없는 건 아닐까.   참사 초기 교회는 많은 물자와 사람을 동원하여 팽목과 안산과 서울의 현장을 지원하고 도왔다. 교단과 교회와 개인들이 전국 곳곳에서 지원한 덕분에 봉사자와 물품이 넘쳐났다. 하지만 훈련 받지 않은 그들은 유가족에게 상처도 함께 주었다. 돌이켜보니 교회는 타인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고, 교인들은 배우지 않았다. 태도가 친절하면 다 용인된다고 생각한다. 슬프고 아픈 이를 위로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묵묵히 곁에 머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현장에서 본 기독교인은 완벽하게 가해자였다. 그동안 교회는 무엇을 했던 걸까?   세월호 도보 순례에서 만난 호신대의 오현선목사는 도보 순례라는 큰일을 시작하면서 자원한 제자들을 가르쳐서 보내고 있었다. 행동과 말과 할 일을 일일이 가르치느라 그는 지쳐있었지만 이를 통해 학생들은 말없이 서있는 법을 견뎌내는 훌륭한 기독학생으로 변화해갔다.   교회의 개혁은 어쩌면 쉽고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돌아보는 일, 그의 말을 들으려 하고, 마음을 읽으려는 일, 내가 무엇을 행동하기에 앞서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다리는 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머무는 일, 이런 태도 혹은 마음이 한국교회에 없다! 개혁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보고 있다. 교회의 단단한 성을 허물고 그 속에 갇힌 부드러운 살들을 만나면 그게 개혁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 개혁은 기치로써는 훌륭하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루터 이전에도 수많은 이들이 교회개혁을 말했고 배척당했다. 루터가 위대한 것은 그 교회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이집트 탈출이 그랬고, 초대교회가 그랬다. 끊임없는 출애굽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굳은 교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탈출공동체는 이미 시작되었고 시민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대구에서 4년 동안 진행했던 세월호 예배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연민으로 연대한 탈출공동체를 형성했다.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예배 공동체였다. 함께 울고 위로와 격려를 했다. 그것은 기독교의 초기 공동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오는 9주기 추모예배를 드리게 되면 또다시 그들은 함께 모일 거다. 아픔을 나누고 기도하고 격려를 주고받기 위해 모인다. 이제는 이태원의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도 연대하게 될 거라고 본다. 광주 참사가 세월호의 과거라면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픔과 분노와 연민으로 연대하여 형성되는 종교공동체는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한국교회는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대구 누가교회 담임목사,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 오피니언
    • 칼럼
    2023-01-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