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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교실] 겨울철 발 관리
      눈 내리는 겨울철, 긴 부츠는 장딴지를 감싸주기 때문에 찬바람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발의 통풍은 안 좋기 때문에 습기와 냄새 배출이 안 된다. 부츠는 우선 일반 구두보다 무거워서, 마치 가벼운 모래주머니를 발등에 달고 다니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발목을 위로 젖히는 근육에 무리가 가고, 발등이 자주 아플 수 있다.   자신의 무릎 아래 다리길이에 맞는 부츠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의 다리길이보다 긴 부츠를 신을 경우에는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가죽과 마찰되기 때문에 상처가 날 수 있다. 장딴지가 굵은 사람이 좁은 부츠를 신으면 장딴지가 가죽과 마찰되면서 붉은 발진이 생길 수 있고, 장딴지가 가는 사람은 부츠의 가죽이 아래로 흘러내려 접히면서 복사뼈나 아킬레스건과 마찰이 돼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구두를 살 때 발이 다소 부은 저녁 무렵에 고르는 것이 좋으며, 발가락 끝에서부터 구두 끝까지 약 1cm의 여유가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좋은데, 특히 겨울철 신발은 여름용에 비해 조금 더 큰 것을 골라야 두꺼운 양말을 신고도 발이 들어간다. 구두 바깥 창은 잘 미끄러지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겨울철 빙판 길에 넘어지면서 다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구두코가 뾰족하고 굽이 높은 부츠는 하이힐 구두에 비해서 발가락에 더 큰 부담을 준다. 왜냐하면, 같은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하이힐은 자주 벗어 발을 쉬게 할 수 있지만 부츠는 그렇게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굽의 부츠는 신지 않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는 기온이 낮고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온몸의 피부도 건조해지지만 각질층이 많은 발의 피부는 더 건조해진다. 한여름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듯이, 한겨울 건조한 날씨에 발바닥은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면서 피부가 터지게 마련이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은 주거 환경의 특징상 밀폐된 공간에서 온도는 높고 상대적으로 아주 건조한 환경이므로 더 심하게 피부가 터질 수 있다. 두꺼운 각질층이 갈라지면서 피부 속 깊숙이 붉은 살이 드러날 정도가 되면 너무 아파서 건드리지도 못하며, 특히 발바닥의 체중이 실리는 부위의 피부가 갈라지면 걷기도 힘들게 된다. 갈라진 부위가 닿지 않도록 이상하게 절룩거리며 걷다 보면 허리도 아파지고 어깨와 온몸이 다 쑤시게 된다. 이런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요통의 원인이 발바닥에 생긴 균열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요통만 치료하게 되고, 잘 낫지 않으면 의사 탓만 하게 된다. 발을 치료해야 허리가 안 아파진다.   발의 피부가 터지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능한 발바닥의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보습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이나 바세린을 발뒤꿈치에 바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발바닥의 각질층이 두꺼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욕할 때마다 물에 불은 발바닥의 두꺼운 각질층을 갈아내며, 각질 연화제가 포함된 연고를 발라서 치료할 수도 있다. 피부 속 깊숙이 붉은 살이 드러날 정도로 갈라진 경우에는 이차적으로 세균 감염이 될 수 있으므로 피부과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으며,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상처가 빨리 아문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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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6
  • 행복신앙세미나 27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불행의 기대와 행복의 단계   “평생 행복을 좇고 사는데 번번이 행복에 배반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니얼 길버트가 내놓은 답은 명쾌하다. 우리는 속고 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의 정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 그대를 속이는 것은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뇌였다.”(한겨례, 2018.4.26)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의 저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행복에 대한 기대감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갖는 행복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행복을 가로막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도 등장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위와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시며 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새 땅에서 복을 주겠다고 하시니 ‘그곳에 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지’ 하며 얼마나 기대를 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래와 같이 그 땅에 기근이 오자 그 기대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불행의 땅으로 느끼도록 하여 결국 떠나게 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창 12:10)   사실 하나님이 주신 땅은 복되었지만, 그는 불행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삶을 기대한 그의 기대와 달리 더 크고 귀한 복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는 구절처럼,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의 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당신을 찾는 복된 사람으로 만들고자 그 땅에 그가 해결할 수 없었던 기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인류를 이 땅에 허락하시고“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램애 3:33)는 구절처럼, 본심과 달리 인생에 여러 고난을 주신 것은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찾는 축복을 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욕구는 인간의 행동 요인으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충족되어 높은 단계로 성장해간다.”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1943년에 발표한 ‘인간의 동기와 성격’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욕구 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안전, 애정소속의 하위 3단계 욕구와 존경, 자아실현의 상위 2단계 욕구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최초로 체계화된 욕구 이론으로 심리학, 마케팅, 조직론 등 현대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켜도 온전한 행복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켰던 사례는 고대 로마 귀족들과 솔로몬 왕을 들 수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천년 동안이나 세계 문명의 중심지의 지배자였던 로마의 귀족들은 원하는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산해진미와 수많은 쾌락을 탐닉했던 로마 귀족들의 화려함과 사치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지만, 그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3대 왕 솔로몬 역시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전 2:10)라고 하며 모든 쾌락을 누려보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그 모든 수고의 결과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이는 인간 욕구 단계의 한계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살전 5:23)이라고 하면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몸의 욕구와 혼의 욕구와 영의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인 몸의 욕구는 몸의 쾌락을 위한 것이고, 중간 단계인 혼의 욕구는 애정, 존경, 자아실현 등 정신적인 쾌락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영의 욕구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닌 영원한 세계에 대한 욕구로 온전한 행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모든 욕구를 누려도 영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기에,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성경은 행복의 마지막 단계인 영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길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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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4
  • [‘그 사랑’ 거룩한 성화 1회] 기쁨 가득한 새해 새 날들의 대 행진
      새로운 피조물들의 성화로 물든 감동의 물결, 온 세상 복음이 가득차게   2023년 새 피조물들의 성화로 사랑의 연속이다. 전도서는 오직 거듭나 새 피조물이 되어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본분의 결과만이 남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풀의 꽃과 같이 짧은 나그네 여정 주를 알고 경외하는 삶만이 길이 남을 사람의 본분임을 가르친다. 새 가치관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곧 행복할 수 있는 미션과 비젼을 깨닫게 하여 그 길로 인도하는 사랑의 복음이다. 새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 그리고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사역에 성령과 동행하는 여정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때가 되면 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돌아가야 한다. 본향을 향한 그 이별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도 알린다. 복음은 심판을 위해서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살아 있는 동안 땅 위에서 누릴 평안을 위함이다. 육신의 소욕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되 바다를 메울 수 없음 같다고 한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이 짧은 인생, 무엇을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얻었다 함도 아님을 발견케 한다. 무엇이 소중한지 지혜를 구하게 한다.    지혜는 은혜 가운데 순복하게 하는 말씀으로 삶의 기쁨과 존재의 목적을 하도록 이끌며 위로를 준다. 모든 것이 다 헛되지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만이 소중한 것임을 발견케 하여 소망을 얻게 한다. 이로 인한 영생과 삶의 충만한 기쁨임을 연계시켜 알게 하는 사랑이다. 곧 구분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남게 하는 사람의 본분임을 찾게 한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여 존재의 목적을 하게 하는 견인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고 좇게 하는 거룩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해야 보람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 지혜를 준다. 그리하여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두 계명의 사랑임을 발견한다. 영원한 생명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두 계명의 지킴임을 확증해 준다.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정체성을 새기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전도의 몫으로 남게 하는 목적이다. 거룩한 구별된 삶은 이웃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주께 죄사함을 입는 은혜를 덧입게 하는 새 생명의 구속사에 참예이다. 이를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했다. 결국 이를 통한 주의 경륜의 이루심이며 영생이기에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것이 헛되지만 이 사랑만이 남는다는 것을 확증케 한다. 새 피조물의 성화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범사에 감사와 이를 위한 기도이다.    야고보서 3장17~18절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하신다. 곧 사람의 본분을 하며 사는 존재의 목적은 거룩이며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이 충만케 되는 언약이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이 일에 실천을 위한 화평케 하는 삶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자와 신실하심이 정녕 함께 하는 복된 여정임을 확증해 준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인한 성화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사랑이다. 곧 주께서 본을 보이신 십자가의 사랑을 좇아 나타나는 거룩이다. 생명의 풍성함으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새 피조물들의 부흥과 복음의 확산이다.   그러므로 지혜로 정체성을 회복한 지체들의 새해 새날들이 오직 주의 말씀에 화답하여 부흥케 될 온 세상에 복음이 가득 차는 비젼 성취이다. 이를 위해 주를 좇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신 사랑이다. 위로부터 온 지혜의 거룩은 성화로 이김이기에.../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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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 나의 오순절 명절
      오늘 오순절 명절은 레위기 23장 15절에서 17절의 하나님의 명절이며 또 우리의 명절이 된다. 이는 초실절부터 세어서 50일 되는 날이 곧 오순절 명절이다. 특히 빵 두 덩어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계시한 것이다. 즉 오순절 성령강림하심으로서 선민 유대인만이 아닌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드려질 것임을 계시한 것이다. 특별히 누룩을 넣음도 특별한 말씀이다. 즉 누룩과 같이 오순절 성령으로 온 세상에 구원이 확산될 것을 가리킨다.   이는 예수님이 승천 직전에 미리 말씀하신 바와 같다.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모인 곳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그들 위에 머물더라.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들이 다 하나가 됐지요. 이는 주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하나요, 자신들이 성령 세례를 받게 될 것을 사모하는 중심이 하나이니 120명이 한 사람같이 하나가 됐다.   오늘날 종말 교회도 이와 같아야 될 것이다. 이때 갑자기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이는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하고도 절박한 심정임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머물렀다. 이는 바로 보혜사 성령 되심을 가리킨다. 왜요? 이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불로 나타낸 것이다(눅12:49).   하나님은 이 성령을 주시어 우리로 영생구원케 하실 크나큰 사랑이다.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른 방언들로 말했다. 성령 충만함이란? 오직 한 분이신 성령에 사로잡혀서 성령으로 말하고 성령으로 일하는 것이 곧 성령 충만이다. 이들이 성령 충만한 표가 바로 나타났다. 성령이 발설케 하신 대로 다른 방언, 즉 ‘글로싸’로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120명의 모국어, 디알렉토스는 히브리어인데 성령이 그들을 통해 친히 말하심이 다른 방언이요. 그것이 곧 성령 충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함을 듣는다.’ 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므로 바로 우리도 각자에게 이같이 해주시는 것이 곧 나의 오순절 명절인 것이다.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것이다.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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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8
  • [세계교회 전망] 팬데믹과 기후위기 극복·평화의 길
    신임총무 중심,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역할 모색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각자자리서 평화를 만들어야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이한다. 2022년은 세계교회협의회 제11차 총회가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성공적으로 열리고, 소망 가운데 마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교회는 제11차 총회의 정상적 개최를 기뻐하기보다 다음 총회까지 8년간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나누었다. 세계적 전염병과 국지전 규모를 넘어서는 전면전의 발발, 그리고 지구적으로 계속되는 기후위기가 주는 경고들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해야 하는 긴급한 제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망과 교회의 책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지도력이 이끄는 교회   2020년 4월 이후 대행 체제로 이어졌던 총무 자리가 채워졌다. 2022년 6월 18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토리아대학교 신학대학장 제리 필레이 박사를 제9대 총무로 선출하였다. 남아프리카 연합장로교회 목사인 필레이 신임총무는 2023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새로운 총무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모색할 것이다.  그와 함께 제11차 총회에서 독일 바이에른복음주의루터교회의 하인리히 베드포드-스트롬 주교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신임 의장단에는 멀린 하이브 릴리 목사(자메이카침례교연합)와 빅켄 아이카지안 주교(아르메니안사도교회)가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아시아를 비롯한 8개 지역 의장들도 새롭게 선출되어 지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게 된다. 새롭게 선출된 이들 지도력이 다음 총회까지 8년간 카를스루에 총회의 주제와 각 위원회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 총무의 실무능력과 유럽교회 의장의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 세계교회의 일치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아름다운 열매가 있기를 기대한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교회   세계교회협의회는 제11차 총회를 준비하면서 세계교회가 응답해야 할 우리 시대의 중대한 도전 여섯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 도전은 1) 코로나19, 2) 기후변화, 3) 불평등, 4) 디지털 혁명, 5)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과 확신의 상실, 6) 평화를 정의를 부르짖는 세상이다. 처음 두 가지 주제는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중차대한 위기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인류공동체가 신앙과 도덕으로 함께 맞서야 하는 도전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 이 도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이 도전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제11차 총회의 첫 전체회의 주제였던 「창조의 날」 발표는 참가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후 정의를 위한 행동에 참여하면서 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피가 땅과 하늘의 모든 것을 화해시키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골로새서 1장 19-20절). 향후 8년 간 새로운 지도력을 중심으로 교회의 실천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연대하여 대응할 것이다. 8년 후의 지구가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지구의 미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인류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하여 ‘기후위기, 지속가능한 발전, 경제정의 위원회’를 신설하는 안이 상정되어 많은 동의를 얻었다. 구체적인 조직과 재원 마련 등을 논의하여, 2023년부터 당면한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책임이다.  평화를 만드는 교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러시아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다. 일치는 정의와 화해와 함께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을 바라보며 이번 총회의 주제로 표현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이 교회에 있다.  2023년은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앞장서서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특별히 새해는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계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여전히 필요하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은 한국교회의 사명이며 세계교회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협력해야 할 지속적인 과제이다. 한국교회는 아시아의 교회들과 함께 아시아 각 지역의 분쟁의 종식을 위하여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세대간, 지역간, 성별간, 인종간 분쟁과 대립을 넘어서는 화해와 일치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우리의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공동의 행동’(act together)을 요청한 총회 메시지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망으로 출발하고, 평화를 위한 교회의 책임을 다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목사·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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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신년에세이] 새로운 은혜
      새해에 우리가 대면하게 될 새로운 나의 모습들에 기대감을 가져야    고난을 두려워 말라  우리에게 필요한 힘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다. 새해에 많은 일들을 도전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우리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보다 더 필요한 마음의 자세는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 두려움이 큰 만큼 이길 힘과 싸울 힘과 견딜 힘도 커지는 법이다. 밤이 깊을 수록 아침은 찬란하고 밤이 오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두려움을 이긴 자들은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사망을 이기는 힘은 오직 이 부활의 소망 안에 있을 때이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다.   이 은혜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많은 고난과 싸우는 법을 익히 알게 되었다. 이 싸움은 소망 안에 깨어 있는 일이다. 우리의 몫은 따지지거나 불평하는 데 있지 않다. 사망을 이긴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참 소망 안에 머무는 일이다. 고난과 맞서 볼수록 이러한 사실은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계획된 노선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직면할지라도 여전히 감당할 힘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당황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릴 때 참고 인내하고 바라는 믿음의 기본적인 성품을 조성해 주신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속에서 새로운 성품을 만드시고 새로운 영역 안에 진입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오직 새해에는 새 은혜가 덧입혀질 뿐이다. 각자가 경험하는 것이 고통이든, 성공이든 상관없이 다만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사람이 받을 은혜  새해에 우리가 대면하게 될 새로운 나의 모습들에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잃어버린 자존심 보다 깨어진 꿈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게 하신다. 이 사실을 주목한다면 시련의 불 속에서 타 버릴 것은 작은 염려와 불안뿐이다.   새해에는 나를 응원하고 강하게 할 새 힘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사람이 받을 은혜이다. 잃어버린 만큼 담대해지며 고통을 받은 것만큼 내면은 더욱 강하게 되어 불 속에서 건진 정금처럼 자신 안에 새로운 내면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새해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도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셔서 죄의 성분들이 제거된 정금같은 자신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할 뿐이다.   관용의 삶 위한 길 나의 환경에 감사하는 것은 나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자신에게 먼저 너그러워질 때 타인에 대한 감정도 보다 섬세한 배려와 친절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관용은 주님의 심판도 이길 힘이 되어 주신다. 우리가 새해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거룩함이다. 경건의 훈련들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감정의 자아를 소멸함에 있다. 뜻이 있는 자마다, 우리의 삶은 거룩함에 이르는 경건의 훈련장이 되어 줄 것이다.   나와 통하고 나와 맞는 환경이 아니더라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나의 뜻과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이루기보다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생각들을 드러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길은 궁극적으로 모순이 없음으로 반드시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새해에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순종을 통해 다툼이 없는 곳에 이르자. 이 순종의 삶이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의 삶이기 때문이다. /대전반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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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 뇌는 일평생 변화한다 (1)
      오늘날 과학자들은 뇌가 기본적으로 일평생 재조직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그 자체의 구조와 기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가소성(Plasticity)’이란 경험이나 환경에 의해 뇌의 신경계가 변화된다는 뇌의 유연성을 일컫는 말이다. 뇌의 가소성의 발견은 결국 치유와 건강에 유익을 주는 놀라운 발견이기도 하다.   뇌는 어떤 환경이나 자극 그리고 경험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의 기능 때문에 심리장애나 정신장애를 치유케 한다. 최근에 와서 많은 자극과 훈련을 통해 뇌는 활성화할수록 뇌세포의 수가 증가하고 뇌세포 간의 연결고리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뇌의 변화는 청소년기를 지난 성인은 물론 노년기에도 일어난다.   또한 뇌의 시냅스 안에 엄청난 양의 프리온 단백질이 있다. 프리온 단백질은 장기기억 또는 자가 유지기억의 생성을 도우며 뇌의 신경가소성에도 기여한다. 이 엄청난 양의 프리온 단백질은 장기기억 또는 자가유지기억의 생성을 도우며 뇌의 신경가소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무언가 생각하고, 배우는 동안 우리의 뇌 안에서는 변화와 재구축의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인 것이다. 프리온 단백질은 좋은 신경신호에 반응하여 놀라운 기능을 발휘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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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리니 (요3:3~5)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 되게 하신 표적을 보고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일부러 늦은 밤에 찾아온 것 같다. 그의 첫 질문은 마치 신앙고백처럼 들린다.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이런 표적을 행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게 이르노니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소리를 들어 아는 것 같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누구든지 이를 믿고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후 대제사장들과의 율법 논쟁에서 니고데모의 증언이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할수 없다.” 고 항변한다.(요7:51)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유대 사회 지도자로 요한복음에만 세 번 기록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몰약과 침향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요19:39)   당시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알고 섬겼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더구나 보혜사 성령님의 은혜에 대해 아는 바 없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본질은 한분이시나 세분으로 존재한다는 기독교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인데 AD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립 되었다. 거듭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우리의 죄를 위하여 사망의 값을 치러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이를 알고 믿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하나님과의 시간, 카이로스다.    /한강장로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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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 [건강교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상)
      코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코골이는 누웠을 때 뒤로 쳐지는 구조물 즉, 혀가 뒤로 쳐져서 기도를 좁히거나, 느슨하고 긴 목젖, 늘어진 인두점막주름 등이 수면 중 긴장도가 떨어져 진동하여 소리를 내게 된다. 특히 음주 혹은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등의 약물 복용, 신체가 피곤한 경우는 이러한 근육들의 긴장도가 더욱 떨어지게 돼 코를 안 골던 사람도 술을 마신 후에나 피곤한 경우에 코를 골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아에서는 편도나 아데노이드가 커서 호흡을 방해하고 코골이를 발생시킨다. 그 외에 비염, 코 가운데 칸막이 뼈가 휜 경우, 축농증 등 코 자체의 병으로 코가 막혀 코로 숨을 쉬기 힘든 경우에 숨을 들여 마실 때 코 뒤쪽 인두강에 음압이 발생하여 기도가 좁아져 코를 골수도 있는다. 평소 괜찮던 사람이 감기나 알레르기로 코막힘이 생기면 코를 골게 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코골이의 증상은 무엇일까? 코골이는 수면 중에 목을 포함하여 상기도가 좁아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좁은 기도를 통하여 호흡을 하게 되면서 소음이 발생한다. 본인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보통 배우자들이 이 코를 고는 소리에 의해 발견하게 된다. 간혹 숨을 멈추는 무호흡이 동반되면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껴서 내원을 한다. 대개 코골이가 있으면 무호흡이 동반하게 되므로 코골이는 무호흡을 찾아내게 해 주는 표시로서의 선기능도 한다.   이 외에도 밤에 자주 뒤척이거나 깨는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마르거나 두통이 심한 경우, 낮에 책을 읽거나 운전 중에 졸림증을 느끼는 경우, 고혈압이나 뇌졸중의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무호흡의 동반률이 매우 높다.   코골이는 왜 치료해야 할까? 코골이가 심해지면 ‘상기도저항증후군’이 발생하며, 이것이 더욱 심해지면 수면무호흡증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시에 10초 이상 호흡기능이 멈추거나 저하되는 현상으로 대개 저산소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방치하면 그 자체로서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수면무호흡증은 △고혈압 △허혈성 심장질환 △천식 △뇌졸증 △당뇨 △비만 △위산역류증 △야간뇨 등과 같은 전신질환과 빈번하게 동반이 된다. 만약 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기존에 앓고 있던 전신질환이 심해지고, 무호흡증을 치료하면 전신질환의 치료가 잘 되는 등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코골이 및 수면무호흡증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관심과, 일반적으로 이를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며, 반드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심각한 질병이다.   코골이는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코골이의 진단은 우선적으로 수면시간이 적절한지, 수면에 방해가 되는 약제, 음주, 흡연, 카페인 섭취 등 수면위생이 괜찮은지 살펴보는 것부터 출발한다. 다음 편에 코골이의 자세한 진단법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보자. /한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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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 행복신앙세미나 26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행복의 씨앗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대중가요 제목이 있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하는데, 왜 많은 사람이 갈구하는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할까요?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와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등등. 그런데 크게는 조건적인 사랑과 무조건적 사랑으로 나누어집니다.   조건적인 사랑은 말 그대로 조건을 따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학벌, 재산, 외모 등 흔히 결혼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좋은 조건들을 가진 사람이 받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조건을 갖추려고 애를 쓰지만, 사실 조건적 사랑은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변질되어 결국 조건적인 사랑은 눈물과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는 성경 구절처럼, 사랑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조건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한번 사랑하면 변하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 좋은 조건을 갖추듯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도 조건을 갖추려고 합니다. 즉, 선하게 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한 것으로 심각한 착각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위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드릴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떤 선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 아무 선한 조건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조건적 사랑 안에서는 불행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행복의 씨앗인 것입니다.   “현대 의학은 병의 근원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증상을 치료시키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병의 치료는 하지만 근본 치유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수도꼭지의 물은 놔둔 채 흘러내린 물을 계속 걸레로 닦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그런데 꺼져있던 망가진 엔돌핀 유전자를 다시 킴으로 영혼의 치유까지 가능케 하는 것은 무조건적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이상구 박사, 복음과 현대의학 강연 중)   2019년 목양교회에서 이상구 박사 초청 특별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상구 박사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내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분으로 엔돌핀 박사로 유명한 의학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첨단을 걷는 현대 의학이 인류의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한 채 다만 치료만 할 뿐임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통해서만 치유가 가능함을 역설했습니다.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치료와 치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치료는 영어로 ‘Therapy’라고 하고 치유는 영어로 ‘Healing’ 이라고 하며, 치료(治療)는 ‘병 고칠 료(療)’를 쓰고, ‘치유(治癒)’는 ‘병 나을 유(癒)’를 사용합니다. 즉, 치료는 병을 고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치유는 병을 낫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두 단어 모두 병을 해결하고자 하는 부분에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치료는 외적인 몸에 국한되어 있다면, 치유는 내적인 영혼의 회복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8~14)   성경은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 사람들의 영혼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내적 치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의 만족과 참된 즐거움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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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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