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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 새해메시지
      갈등과 분열이 심각한 이 땅에 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는 한국교회의 60대, 70대, 80대의 과거와 현재 지도자들이 삽결줄이 되어 남북통일 전에 먼저 남남통일과 교회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다양한 교회와 교단, 기관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하나임을 믿고 선포하며 이미 하나임을 축하한다. 남남통일과 교회통일 없이 남북통일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남남통일과 교회통일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에 통일된 민족을 이루어 대한민국이 세계를 축복하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기를 원한다. 남북통일 전에 남남통일과 교회통일이 시급하다.   남한의 갈등과 분열이 위험수위에 와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를 진지한 토론을 통해 대부분 국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모아 상승적 발전을 추구하는 제도이다. 오늘의 상태는 갈등과 분열을 극단화해 가는 하향적 퇴보를 지속하고 있어 국민은 실망과 분노와 고통을 느끼고 있다. 남남통일이 없이 남북통일은 요원하다.   한국교회는 교단도 교회도 기관도 많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성 속에서 하나를 이루시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서로 간 은사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과 분열이 존재한다. 조직적 하나가 아니더라도 성령께서 이미 우리를 영적으로 하나로 만들어주셨다(엡4:1-6). 이 영적인 진리를 믿고 기뻐하며 함께 축하하는 한 해가 되기를 힘쓰려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는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함이로소이다”(요한 17:21-23).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방법은 성령께서 서로 다른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세상이 보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지체들을 이미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의 조직적 능력이 이룬 것이 아니요 성령께서 영적으로 이루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하나됨을 세상이 알게 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교회통일과 남남통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열심히 기도하며 이루는 중심세력이 되어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루어 세계를 축복하는 민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 대표(80대 실무모심이)·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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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5
  • [향유옥합]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탄절을 맞이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십자가의 도가 세상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가장 큰 축복임을 압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하나님의 전략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전도하십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절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영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일하셔야, 영혼구원이 이루어짐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대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사업하면서, 많은 세상 사람들과 많은 크리스천들까지도 향방없고 방향성없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삐뚤빼뚤 가치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가치관과 정체성도 없이 살아갑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주님을 순전하게 섬겨야하는 모습들이 불순하게 변질되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너무나 절망스럽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 밖에 없는 것인가! 왜 가장 전면에 세워져 있는 하나님의 리더들이 유독 재정을 바라보며 나아가는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재정은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나아가면서 재정이 채워지는 것과, 처음부터 재정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일 것입니다.본인의 기본은 하지 않으면서 재정만 추구하는 크리스천을 보면서, 세상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세상사람들은 기본이라도 하면서 재정을 바라보는데,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재정만 바라보고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팔아서 재정을 채우려는 이들의 시도들을 봅니다.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이중적일 수 있는지를 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함과 신실함을 요구하는 것인지 더욱 더 알게 됩니다. 요즘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대신 맘몬의 영인 재정을 섬기고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을 느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들에게 면전에서 배신을 당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을 매일 배신하고 대적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재정과 맘몬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용서하여주시고, 저희에게 강력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욱 더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재정과 맘몬을 바라보는 이 시대의 잔인한 현실을 변화시켜주시옵소서! 주의 은혜를 저희에게 베풀어주시고,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저희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저희의 죄악을 말갛게 씻어주시고 저희의 죄를 깨끗이 제하여주소서. 주님께 책망받지 않는 자로 끝까지 견고히 남기 원합니다! 이 땅의 소욕에 흔들리지 않도록 강력히 붙잡아주시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게 도우소서! 주님께 칭찬받는 자로 남아있게 끝까지 도우소서. 아무리 세상적으로 자산을 모으고 명예를 모으고 구축해도, 예수님을 만나는 날에는 소용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마음만이 남을 줄로 믿고, 그것만이 빛을 발할 줄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12:10) 지혜자는 스스로를 정결케 갈고 닦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누가 스스로를 정결케 갈고 닦는지 아실 것입니다. 주께서 마지막 때에 이들을 주의 동역자로 온전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직 지혜있는 자들은 온전히 깨달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시온에서 빛을 비춰주십니다! 이제,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께서 비춰주시는 빛을 바라보며 사는 삶임을 알게 됩니다. 저희가 평생동안 주님의 빛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축복하여주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의 크신 긍휼을 내려주소서! Waymaker이신 주님께서 가장 진리의 길을 열어 보여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지혜로운 분이시니, 가장 지혜로운 길을 저희에게 보여주소서. 저희가 그 길을 따라가기 원하나이다. 하나님!  저희의 속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저희의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주소서! 세상의 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정결하시고 맑은 영으로 채워지게 기름부어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의 아름답고 정결하신 영이십니다. 주께서는 상한 심령을 좋아하십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올려드리게 하소서.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소서! 온 역사를 관통하는 진리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소서! 하늘보좌의 문을 열어주시고, 주님의 크고 놀라우신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저희가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지 말게 하시고, 본질과 진리를 추구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먼저 일하게 역사하여주소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들을 더욱 많이 보기 원하나이다! 주님의 영으로 생명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기름부어주소서! 오직 주님만이 새로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재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시옵소서! 주께서 새로운 사람들을 이 땅에 새롭게 일으켜주시기를 기도올려드립니다!   이들과 새로운 땅과 하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글로벌아트전시기획사 제뉴인글로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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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3
  • 뇌세포, 일평생 만들어진다(3)
      뇌세포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Cell)도 계속 만들어진다. 어떤 혈구세포는 몇 시간마다 계속 변화하고 미각 수용기세포는 10일마다 대체되며, 피부세포는 매일매일 바뀌고 근육세포는 완벽하게 새 근육세포로 바뀌는 데 15년이 걸린다.   지난 10년동안 과학자들은 심장은 그 근육이 태어날 때부터 고정돼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장기였다. 그러나 이 역시 세포전도(세포주기), 세포재생을 경험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25세가 되면 심근세포의 1%가 매년 교체된다. 하지만 75세가 되면 그 비율이 매년 0.5% 이하로 떨어진다. 신경발생을 촉진시켜주는 신경영양인자는 바로 뇌유래 신경영양인자(BDNF)이다.   BDNF는 새로운 신경세포(뉴런)를 생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초의 성장을 촉진해 주고, 기존의 신경세포를 보호한다. 또 시냅스 형성과 신경세포간의 연결, 생각하고 배우고 하는 고도의 뇌기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을 고무하며 생존을 돕는다.   또한 신경발생을 방해하는 요인은 만성 스트레스이다. 반복되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는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신경발생을 방해한다. 신경발생을 방해하는 요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코르티솔 수치 상승이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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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뇌세포, 일평생 만들어진다(2)
      과거에는 건강한 생활만이 뇌세포의 손상을 막는다고 학자들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성장과정 중에 뇌의 특정영역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임신한 여성의 후각 신경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발생하며 신경발생은 전전두피질 뿐만 아니라 해마, 그중에서도 특히 치상회(dentate gyrus)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태어나는 것을 신경발생(Neurogenesis)이라고 한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성인의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건기억과 공간탐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인 해마의 치상핵, 학습과 습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조체, 후각망울 등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난다.   또한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드는 신경발생은 뇌 속에 있는 액체로 차 있는 공간인 후구로 가는 측뇌실 부근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뇌에서 신경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은 계속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특히 해마, 편도, 그리고 대뇌피질과 같이 새로운 학습에 관여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신경세포를 형성하는 능력을 유지한다고 밝혀지고 있다. 운동은 기억에 관여하는 측두엽과 계획 및 판단에 관여하는 전전두엽에서 새로운 세포를 생성한다. 뇌세포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Cell)도 계속 만들어진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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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그 사랑’ 율법의 요구 11회] 아버지 사랑을 나타내 주신 메시야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이 되도록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사랑 실현임   성경의 주요 키워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셨다. 메시야이신 예수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으며, 대속제물이 되심은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영적 살리심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곧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 생명을 주시는 죄사함이기에 세상이 알 수 없고 줄 수 없는 사랑임을 발견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출현 시 선지자 세례요한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대해 증거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온 세상이 예수로 인해 생명을 힘입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알고 증거 할 수 있도록 물세례를 허락하라 하셨으며 이 일로 인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죄인들을 위해 주께서 십자가 사역을 이루시어 영혼 구원 하실 사랑이기 때문이다. 곧 예수의 사랑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랑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한 영생이며 살리움의 영혼구원임을 알게 하신다. 즉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사단의 종으로 태어난 죄인들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어주신 예수의 사랑이다. 이로 인해 영생을 얻게 하는 주의 백성화이다. 이를위해 길 예비자인 세례요한이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대한 증언으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소명을 받음이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이유에 대해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거든 그가 네가 증거할 그리스도이심을 알라 하셨기에” 이를 보고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고 확증해 주었다. 또한 “참 빛 ~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증언을 함이다. 다시 말해서 “보라 ~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여 예수의 대속제물 되심과 하실 사역을 알리었다. 그 메시야 예수는 창조주 구원자 하나님이심을 증거했고, 예수를 믿고 좇아 영생에 이르게 됨을 선포함이다. 이를 통해 계시된 구약의 증거로써 신약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언대로 확증해 사역과 연계한 말씀들임을 찾게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하신 말씀에 화답이다. 더불어 영생에 이르는 최고의 사랑임을 확증해 준다. 곧 예수로 인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길 예비자를 보내시어 주되심을 증거하게 하셨고 예수를 좇아 지체된 자들로 선을 이루어가는 주의 사랑을 확증케 한다. 그러기에 주께서 주신 사랑은, 복음으로 영혼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와 동역자들의 사랑 실현이다. 그 결과 새 생명으로 회복하는 구속 섭리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그 사랑이 응해질 수 있도록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곧 지체들이 주를 경외하여 드려지는 사랑 실현이 율법의 요구이며, 영혼 살리는 사역에 주와 동역임을 확증케 한다. 사랑으로 살리는 것은 영이기에 .../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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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요4:42)
      유다에서 갈리리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가 있다. BC.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그곳에 이주해온 이방인들과의 혼혈로 사마리아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기 싫어해서 직선거리로 가지 않고 돌아서 갈릴리로 가곤 했다. 예수님은 투덜거리는 제자들에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자 하시고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때가 여섯시쯤, 지금 시간으로 낮 열두시였다.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나에게 물을 좀 주시겠어요?” “당신은 유대인 같은데 어떻게 사마리아사람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요?” 여인은 이미 야곱의 우물에 대한 내력도, 영원한 생수에 대한 의미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말씀을 풀어주시는 예수님께서 선지자 같다는 생각이 들자 곧 여인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그리심산) 예배를 드려 왔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한다고 하니 어디서 예배를 드리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남편 다섯의 상처가 있었으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었음이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면 된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알고 ( 믿나니 )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여인은 즉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아라 이분이 그리스도 메시야이십니다” 동네 사람들이 여인의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었다.   “그들이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매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다”(요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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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성聖과 속俗, 그 첨예한 대립상(2) -유재용의
      <성자여 어디 계십니까?>는 박요단이란 이름의 기독교회 전도사와 권미림이란 이름의 어느 뒷골목 창녀 신분의 여자가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참으로 기이한 인연에 의해 맺어진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교회의 전도사와 매춘굴의 창녀가 서로 만나, 후에 한 쌍의 부부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도 독자를 약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데가 없지 않다고 보겠다.   그러나 그런 사실보다 더욱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경로로 그리 되었든 일단 부부가 되었으면 이후부터는 남녀가 서로 신뢰하고 살아가도록 양측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은 그러한 부부간의 정상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내 쪽의 새로운(아니 구태의연한?) 외도로 인해 그 가정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들고 있는 실상을 옆에서(이웃들이)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개척교회를 시작한 젊은 목회자와 어느 사창가 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매춘부의 만남이란 상황 설정에서 독자는 이미 성(聖)과 속(俗)의 첨예한 대립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삶의 방향(양식)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양자 간에 첨예한 대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작가가 설정한 전도사 신분의 박요단이란 인물이 어떤 위인이냐에 따라 두 사람의 상호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적일 것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냐가 결정될 것이다.   가령 박요단이 창녀 권미림을 단순히 ‘가련한 여성’ 정도로 보아 버리는 데서 그쳤다고 한다면 그들의 상호 관계가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그들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대립적인 기운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상식적 의미에서의 대립 내지는 관념적 수준의 대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관념적 수준의 대립이 아니라 실제에서의 첨예한 대립의 관계 그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그렇게(첨예한 대립의 관계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 박요단이 여주인공 권미림을 한 불쌍한 여인 정도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그녀를 반드시 그 악의 소굴에서 건져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데 그 근거가 있다고 보겠다. 박요단이 권미림을 그 죄악의 소굴에서 건져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집념을 보인 것은 그의 기독자(목회자)적 양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신흥도시 계림으로 목회처를 마련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곳에서 맨 먼저 만나게 된 이들이 두 여성이었다. 하나가 권미림이고 또 하나는 장귀녀란 소녀였다. 이들 중 후자는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성역>의 한 주인공인 장귀동이란 남자와 마치 긴밀한 혈연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독자가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작품상으로 장귀동과 장귀녀가 둘 다 고아원 출신의 불행한 배역으로 등장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요단은 이들 두 여인들 중에서도 우연히 장귀녀와 먼저 만나게 되었다. 왜냐면 그녀는 버스터미널에서 외지인들을 숙박업소로 인도하는 안내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소개로 박요단은 마리아여관이란 데로 인도되었고, 거기서 다음 단계로 접대부 권미림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로지 순진하기만 했던 목회자(전도사) 박요단은 여기서 세상이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하여 새로이 알아가게 된다. 즉 너무도 생생한 현장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엄청나리만큼 생생한(적나라한) 현장 학습이 그의 목회철학을 180도로 변화시켜 놓은 것 같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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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주의 제자가 되려면?②
      지난번 제자신앙①에 이어서 오늘 누가복음 14장 31절부터 35절로 말씀을 상고하겠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라고 주님은 제일 먼저 제자 조건을 말씀하신다. 이는 부모형제, 처자를 초월하고 심지어 육신의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고 나를 좇으라. 그것이 제자이다.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여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순교 믿음을 미리 예비해야 됨을 망루 공사 비유로 말씀하셨다.   주님은 이어서 또 비유로 적군이 대적하여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대적 2만을 자신의 병력 1만으로 능히 물리칠 수 있는지 숙고하리라.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됐고 순교신앙을 가진 자만이 전쟁할 때 그 수가 두 배가 넘는 적군일지라도 1당 백, 1당 천의 일사각오의 기세로 싸우고 능히 승리할 수 있으리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대적자와 화친하리라. 화친한다면, 이는 육신 몸은 살게 돼도 마음과 영혼은 대적 원수에 패배한 것이요. 그들과 한편이 되는 것임을 가리킨다.   즉 7년 대환란의 장차 큰 영적 전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순교할 신앙의 자리에 올라서 있지 못하다면 결국 우리는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에게 화친하고 말리라. 즉 배도 타락하고 말 것임을 계시한 것이다. 또 33절에 이와 같이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여기서 ‘버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가진 것,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인 우리 목숨까지도 버려야 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주님 제자의 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 장막을 떠나라. 주를 위해 세상을 이기라. 이는 곧 순교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소금이요, 하늘나라 영광에 합당한 열매 맺는 기쁨으로 승리하는 주님의 제자들이라고 하신다.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는 맛내는 소금이다.’ 라고 인정하신다. 이 소금은 하늘의 영생의 기쁨이요, 이 기쁨이 우리를 주를 위해 남은 생애를 불사를 수 있게도 하시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이같은 주님 제자가 되어야 하리라.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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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0
  • 땅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 2:14)”   성탄절이 되면 “땅에는 평화” “Peace on Earth”라고 인사를 전한다. 누가복음을 보면 천사들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에게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한 후 부른 찬송 속에 이 말이 나온다. 세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더럽고 비위생적인 구유에 신생아를 눕혀야 했던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제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소망이다. 나는 첫 아이를 낳고 그 기쁨과 감격에 천 기저귀를 일일이 다림질했던 적이 있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긴 했지만 면 소재 기저귀 천을 깔아 기저귀를 갈곤 했다. 내 소중한 아이 몸에 닿는 천이 구겨져 있는 게 내키지 않아 정성 뻗치게 기저귀천을 반듯하게 다렸었다. 그렇게 잠이 모자라던 산모시절에 그저 평범한 엄마라고 여기는 나조차도 이렇게 평소에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곁에서 말려도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축의 여물통에 갓 태어난 아기를 누인 그 모습에 소위 아버지 하나님이 영광까지 받으셨다니?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니 할 말이 없으나, 그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오신 갓난아기 예수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니? 그냥 아무 생각없이 관습적으로 들어왔던 예수 탄생의 풍경이 아이를 낳아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담하다 못해 기괴하게 보인다.   그토록 참담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가 어떻게 이 땅에 평화를 주었을까 묵상해 본다. 서구인들에게 평화, Peace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동양의 평화(平和)는 ‘쌀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갖는 상태’라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이다. 더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평화, 샬롬은 몸과 마음과 영혼 그리고 물질적으로 안정된, 전인적인(holistic) 평화이다.   누군가는 집값이 폭락해도 집 한 칸 장만할 수 없을 때 다른 누군가는 몇 백 채의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사회는 성경이 말하는 평화로운 사회가 아니다. 누군가는 강단에서 상처주는 말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 때, 교인들은 생각과 고민과 의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교회도 평화로운 교회가 아니다. 성평등, 세대간 평등이 없고, 평등을 위한 시스템과 환경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교회는 평화로운 교회가 아니다.   ‘이 땅에서 평화’로운 상태가 되려면 가진 자와 박탈당한 자 양쪽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평화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은 자신이 누려야 할 평화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 가진 자, 가해자는 자신이 누려야 할 샬롬의 권리를 양보할 필요가 있다. 권력의 최고봉이요 소위 왕중왕이신 분이 그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오신 것은 평화를 위한 극적인 권한 이양이라 할 것이다. 우리를 품에 안고 돌보셔야 할 분이 우리 품에 자신을 맡기셨다.   ‘Peace on Earth’를 위해 최소한 성탄절만이라도 권한 이양, 자리 바꿈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절기 때마다 어린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찬양과 율동으로 재롱잔치를 하는데, 성탄절만은 장로님과 목사님들이 어린이들에게 재롱잔치를 하며 웃음거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점심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남성들이 한다면? 자리 바꿈을 할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치며, 사자가 양과 함께 풀을 뜯는 평화의 세상을 성탄절 하루만이라도 누려봤으면 좋겠다. 땅에서는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하시기를!/ 미국장로교 세계선교부 동아시아 책임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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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9
  • 행복신앙세미나 25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죄와 불행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정상회담 때 기미(氣味)상궁 역할을 했던 수행원들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아시아경제, 2019.3.28)   위의 기사처럼, 과거 조선시대에도 왕의 수라상 음식을 사전에 맛보고 검식했던 기미상궁을 두었습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독재자들이 정적의 독살기도를 막기 위해 일종의 기미상궁을 두곤 했습니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독살 기도설에 불안감을 느낀 히틀러가 15명의 기미상궁을 두었고,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도 식사할 때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판별하기 위해 보안요원을 입회시킨다고 합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출애굽기에 보면, 위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자기 집의 출입구 좌우에 바르면 그 피를 보고 재앙이 넘어간 것입니다. 마치 한 번 타버린 곳은 다시 탈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양이 먼저 희생을 당했기에 또 다시 희생을 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 어린 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 받을 죄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출입구 좌우에 피를 바르는 이유는 입국자들을 먼저 만나는 입국 심사관처럼, 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찾아오는 모든 것들을 예수님이 문지기가 되셔서 먼저 만나서 확인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왕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미상궁과도 같이, 예수님도 당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즉, 출입구에서 예수님이 먼저 들어오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만나보신 후 재앙이 없고 유익한 것들만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하시는 것입니다.   매년 6월 6일은 현충일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여야 정당 대표들이 모여 국민의례를 하며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 서로 정치 이념이 다를지라도 매년 마다 현충일이 되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드린 순국선열을 기르고 감사를 드리는 추념식을 드리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희생한 이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아낌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 생명의 희생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나옵니다.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겔 43:27)   즉, 번제를 통해 감사제를 드리라는 것인데, 여기서 번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온전히 생명을 드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죄를 씻어준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시 50:8)라는 구절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에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희생 제물로 온전히 죄에 대한 심판을 막아줍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영원한 번제를 드린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죄를 온전히 씻음 받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의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행복을 누리는 감사제를 드릴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위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 받을 죄와 불행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죄와 불행을 끝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기억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행복의 감사제를 드리는 축복된 삶을 누구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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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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