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29(일)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그 사랑’ 율법의 요구 7화] 주의 말씀은 기쁨과 힘이며 소망임
        정체성 회복하여 구속사역에 동참은 최고의 기쁨과 행복한 새 가치관   복 있는 자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서 말씀이 빛이 되고 등불이 된다고 하였다. 또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고 말씀을 바로 지켜 영생에 이르게 되는 복임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주께서 요한복음 15장 10~11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계명을 지키는 일은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케 되는 비결임을 찾는다. 현실에서 행복하게 전도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힘의 새 가치관 증거이다. 세상 사람들은 유물사관적인 것에 의한 기쁨이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은 전도하여 보이지 아니하는 영혼구원에 기쁨이며 힘이 되는 말씀이 실체이다.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은 주의 기쁨이며, 주와 내가 한 영을 이루었기에 하나 된 기쁨의 목표임을 알 수 있다. 전도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할 때 주의 기쁨이 자신 안에 충만케 되는 새 가치관의 정립이다. 다시말해서 주를 경외하여 그 명령을 좇는 일은 말씀에 순복하는 존재의 목적을 바로 하는 행복임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구속사역에 동참할 때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새 가치관이다. 요한이서 4절에서도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하시어 이를 확증해 준다. 또한 요한삼서 3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하셨다. 곧 말씀 안에 거하여 주를 사랑한 결과 성령과 동행으로 이웃 사랑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게 되는 주 안의 희락이다. 또한 이 기쁨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할 수 있는 힘이 되며 어느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이다.   디도서 2장 11~14절과 요한복음 10장 9~10절은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사랑과 연계이다. 선한 열매를 많이 맺히게 하시려고 깨끗케 하심이며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 하신다. 이로인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되리라는 시편23편의 소망을 갖는다. 결국 땅 위의 수고를 마치고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주님 품에 안기게 될 영적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확증이다. 곧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며 안식에 이르게 될 주의 경륜의 섭리이다. 그런즉 주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이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자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심이다. 더 나아가 새 생명을 얻은 자가 새 피조물로써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이웃 사랑의 실천을 하는 힘으로 작용이다. 그리하여 성령의 동행으로 나타나는 인자하심과 선하심의 결과 큰 기쁨의 제자화로 확장이다. 이 일을 할 때 주의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칠 것이며 산 자로서 온전케 되는 삶으로 양육해 가시는 주의 은혜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영적 주의 전으로써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전도는 기쁨과 힘의 비결로써 존재의 목적이다. 나지 아니할까 염려치 않고 주의 영광을 위한 존재들이 말씀에 순복하여 이루어가는 온전한 기쁨의 행위이다.     즉 계명을 지키라고 하심은 마땅한 수고의 댓가로 주시는 행복한 기쁨과 힘이 되기 때문에 주의 은혜로 하는 주의 일을 더욱 견고케 한다. 주께서 동행 하시는 구속사역에 참여는 기쁨의 충만이며 더 견고한 믿음 위에 공동체가 날로 더해지는 주의 은혜이다. 우리 안에 주신 주의 기쁨은 주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게 될 소망을 하늘에 둔 복 있는 자에게 힘과 성화의 비결임을 확증케 한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2
  • [‘그 사랑’ 율법의 요구 6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견인
    긍휼 베푸심을 담은 계시의 말씀, 지혜로 찾은 존재의 목적과 새 가치관     성경은 위로 가운데 인내로 소망을 준다. 시편 23편4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증거 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십자가 군병으로 쓰신다는 것이다. 곧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연계이다. 사람 살리는 구속사역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려고 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이 일은 주님과 동행하여 보람되고 행복한 삶으로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은혜이다. 주의 의로 쓰시기 위한 거듭남이기에 영적 성전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주의 영으로 순복하게 하는 견인이다. 곧 주의 영이 있으면 주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대로 순복하여 주의 일에 존재의 목적을 삼게 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이를 위한 새 가치관의 존재 목적이다. 주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심이 우리를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고 하신 사랑을 지혜로 알게 하셨다. 아담과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한 자들 위에도 죄가 왕노릇 하게 되었음을 찾게 하심이다.   그러기에 거듭나게 하심은 죄인들을 주의 자녀로 회복하는 일에 쓰시기 위한 주의 섭리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주님을 경외하는 이웃 사랑으로 주의 나라 확장이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같다. 다시 말해서 새 언약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이루실 죄인들의 영혼구원이다. 주의 백성으로 회복하실 주의 뜻이기에 성전재건을 원하신 계시임을 지혜로 찾는다. 곧 성전 재건은 영적 주님의 백성들로 회복하는 예언이 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인들이 영혼구원을 받아 주의 백성으로 회복하는 주의 뜻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주의 자녀로 회복됨을 원하시기 때문에 성전 재건의 영적 의미는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게 하는예표와 계시라 할 수 있다. 즉영적 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의 사역에 거듭난 주의 자녀들을 축복의 통로로 쓰시는 예언이다. 이 일에 주께서 오시어 본을 보이셨고 그 자취를 좇게 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신 아버지의 뜻이다. 오직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그 교훈을 좇아 생명에 이르도록 화답하게 하는 십자가 사역이다. 또 죄인들과 주님의 관계에 화평케 하는 몫임을 찾는다.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창녀를 아내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같은 이유와 목적을 찾게 하신다. 죄인들을 돌이켜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는 일에 거룩한 십자가를 지게 하는 주의 일임을 발견케 한다. 이 일이 거듭난 사람의 본분이며 주의 명령이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라고 하신 전도서12장13절 일의 결국에 증거이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 이유와 목적에 대한 지혜의 결론이다. 주의 영으로 거듭나 주의 뜻대로 온 세상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달란트를 남기는 본분이다. 또한 거룩한 주께서 오신 목적과 성령으로 견인하시는 이유임을 찾게 하셨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덧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 몫이 이방인들을 살리는 영적 구속사역에 성령과 동행임을 확증케 한다. 화평케 하는 복음으로 이웃 사랑의 몫이다. 곧 이 일이 주의 뜻대로 이웃들이 생명 얻게 되는 주의 섭리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말씀으로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신 선하심에 지혜로써.../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2
  • 보지 않고 믿은 자
      요한복음 20장 24절에서 29절까지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나온다. 이는 그 이름과 별명, 즉 디두모라는 그 뜻이 쌍둥이이란 의미이다. 이는 그의 신앙 상태와 그의 정체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에게 둘이 있는 것이다. 세상 것, 육적인 것과 또 하늘 영적인 것도 추구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과 같이 있다가도 틈만 나면 다른 데로 빠져나가곤 하는 도마이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 초실절날 저녁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셨다. 그들은 주님 부활을 목격하고 믿고 그 주님과 하나로 연합한 자들이 되었다. 즉 제자들은 부활의 첫 열매들이 된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복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 도마는 없었다. 초실절 주일의 한 주간이 지난 후 팔일 후에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신다. 이는 도마가 부활의 첫 열매들이 아닌것임을 계시한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으나 전혀 믿지 않는 도마였다. 이를 믿게 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주님이시다. 왜 믿지 않을까? 그가 쌍둥이란 이름과 같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믿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적 생각, 인본적 사상에 사로잡힌 바 되어 주님 부활은 절대로 믿지 않는 것이다. 몸이 죽으면 썩어 흙이 되고 만다는 사람 생각 때문에 주님이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도마는 말하기를 “내가 주의 손의 못 자국을 직접 보고 내 손가락으로 못자국에 대어보고 또 주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노라”고 한다.   도마의 말을 다 듣고 도마의 상태를 잘 아시는 주님이 그를 찾아오신 것이다. “평강이 있으라” 하신다. 이는 앞서 두 번씩 평강을 주신 것과 다른 평강이다. 즉 도마에게만 해당되는 평강이다. 죽어라 믿지 않는 너를 끝까지 믿게 하시는 주님이 곧 평강이시다. 왜요? 불신앙의 저주 아래 도마를 내버려두지 않으시려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네가 손가락을 넣어서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신다. 그대로 도마는 했고 확인 후, “나의 주여, 나의 하나님이시여” 라고 드디어 고백했다.   주님은 “네가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은 자가 복 있다” 즉 오늘날 성령으로 주의 부활을 증거 받았을 때 그 말씀 그대로 믿고 그 부활의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복 있다. 이 복은 부활의 첫 열매들의 복을 계시한다.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2
  • [건강교실] 겨울철 알레르기성비염 퇴치법 (상)
      겨울에는 찬 기온으로 인해 야외활동이 줄고 실내에 거주하는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집먼지 진드기에 감작이 된 환자들은 대개 실외에서 활동을 할 때에는 증상이 별로 없다가 집먼지 진드기가 주로 기생하는 집안에 들어오게 되면 증상이 시작되거나 심해질 수 있다. 집먼지 진드기는 주로 고온다습한 여름철에 번식을 하여 숫자가 증가하는데, 가을-겨울을 거치면서 그 개체수는 감소하더라도 공기 중에 항원의 농도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창문을 열어젖히자. 그래서 집안의 먼지와 진드기 항원을 모두 밖으로 날려 버리자. 집안에서만 놀려고 하는 자녀들을 밖으로 몰아내자. 알레르기비염으로 고생하는 자녀들을 집먼지 진드기로부터 자유롭게 하자.   실내 집먼지 진드기 항원의 농도를 낮추기 위한 생활요령이 있다. 알레르기비염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치료법이 원인항원에 대한 회피요법이다. 즉 원인을 찾아내어 가능한 피하라는 것이다. 실내에 먼지나 각질이 없을 수 없다. 진드기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각질을 먹고 살고, 진드기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크기가 꽃가루와 유사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진드기의 배설물들이 먼지와 함께 집안 공기 중에 떠다니고, 이것을 들이마시면서 알레르기비염의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적절한 방법으로 실내 항원의 농도를 낮추면 증상개선에 도움이 된다. △창문을 열어 자주 환기를 시킨다 △실내습도는 50%, 실내온도는 20℃ 이하로 유지한다 △양탄자와 소파 등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침구류는 2주에 한 번 이상은 60℃ 이상의 온수로 세척한다. 가족 중에 증상이 심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철저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계절성 비염과 통년성 비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과거에는 꽃가루에 감작이 되어 주로 봄, 가을철에 증상이 나타나는 계절성 알레르기비염과 집먼지 진드기와 같이 실내항원에 감작이 되어 연중 증상이 나타나는 통년성 알레르기비염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알레르기학회에서는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 즉 1주일에 4일, 1년에 4주를 기준으로 간헐성과 지속성 알레르기비염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일상생활, 수면, 취미활동, 학업 등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에 따라서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을 하고, 각각의 상황에 맞는 치료법을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증상개선을 위해서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을 받고, 또한 그 심한 정도에 따라서 환자에 맞는 치료법을 잘 선택받아야 한다.   그리고 비염에는 알레르기비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증상은 알레르기비염과 유사하더라도 항원에 감작이 되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일단 알레르기비염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피부반응검사가 필수적이며, 비즙도말검사 필요한 경우에는 비유발검사를 해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1
  • 뇌 건강의 길은 운동 (3)
      뇌의 주요 협응 중추는 바로 소뇌이다. 소뇌는 모든 뇌의 뉴런들의 절반가량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척추동물에서 관찰되는 뇌의 한 부분으로 주 기능은 감각인지의 통합과 운동근육 즉 골격근 활동의 조절을 담당하고 언어와 같은 인지기능과 두려움, 쾌락 반응에도 관련되어 있다. 어떤 운동을 선택할지를 전두엽에서 계획하고 그 실행을 위해 근육의 협응을 관여하는 것은 소뇌이다. 즉 운동 명령전달 경로에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소뇌활동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알코올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뇌의 활동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거나 스포츠(골프, 테니스, 또는 탁구)가 그리고 춤과 같은 좋은 협응운동이 도움이 된다. 뇌 체조의 저글링은 뇌에 특별히 좋은 운동이다.   음악은 뇌를 탁월하게 만든다. 인간의 뇌는 두 개의 반구로 분할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우측반구는 음악의 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뇌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영역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만들고 들을 때 우리는 양쪽 두뇌 반구를 모두 사용한다. 음악은 많은 기능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음악치료를 하면 뇌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기대 뇌·심리 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1
  • 광야의 소리 (요1:6~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 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4) 이스라엘은 바다 같은 호수 갈릴리를 벗어나면 국토 대부분이 광야이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흙더미 절벽뿐이다. 우리나라 산야는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잡초가 터를 잡는다. 농가에서는 봄이 오면 잡초와의 전쟁부터 시작한다. 돌아서면 어느새 한 뼘씩 자라나니 산은 언제나 초록색 푸르름이다. 그러나 유대 광야는 잡초 한뿌리도 없다. 우기 때가 되면 가파른 산길 절벽 길 따라 파란 잎 한 줄 겨우 꼬불꼬불 거린다. 낮의 해를 가려줄 나무 한 그루 없다. 온통 붉은 흙덩이 벌거숭이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에 생수 같은 한줄기 요단강이 흐른다.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례요한이라 그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요1:6~8)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던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 사해가 있다. 죽음의 바다라는 뜻의 사해(死海)는 이름만 들었을 때 왠지 지저분하고 욕심 많은 시꺼먼 색 바다를 떠올렸었다. 그러나 실재 사해 바다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에메랄드 푸른색 가득하고 두 팔 벌리고 누우면 두둥실 떠오른다. 해수면보다 400m 밑에 있으니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다. 바로 이곳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정해 주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선택된 민족으로 40년 빚어지는 곳이 이곳 광야이다. 광야는 히브리 말로 “미드바르”라 하는데 ”말씀하시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앞장서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며 날마다 동행해 주시는 곳이 광야이다. 주께서 40일 금식하신 곳, 그 또한 이곳이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4~5)   광야는 훈련의 장이다. 그러나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2-11-21
  • 사랑과 정의, 그 변증법적 통일의 명제(7)-이청준의
      네 발 가진 부정한 짐승의 환상을 보고 난 후(행10:1~16), 로마 군대의 이탈리아 부대 백부장 고넬료, 곧 전형적인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나서(10:24~48), 베드로가 무섭게 변화된 이방인 선교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존재(new beings)로의 인격적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그냥 담아두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었다. 그는 생전의 예수, 또는 부활 후의 예수를 통하여 이방 구원의 뜻을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선민으로서의 특권의식에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이방 선교의 길을 배타적으로 차단해온 결과를 초래했었다. 말하자면 지도자로서 그는 신학적 견해의 한계성과 신앙 행태 면의 취약성 등, 단점들을 드러내고 있었던 셈이다.   교권주의와 특권의식에만 젖어 공동체의 일체성 유지에는 실패했고, 선교의 기선은 헬라주의자 무리와 새로이 등장한 사도 바울 등에게 넘겨줘버렸으며, 후에는 남은 공동체의 성원들마저 수난당하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던(12:1~2) 베드로였지만, 짐승의 환상을 보고 난 후 완전히 회개하여 고넬료 백부장에게 세례를 베풀고 나서는 이방인 선교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그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그의 변화에 있어서 스데반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스데반 중심의 헬라파 무리는 이방인 선교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라면 순교당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 결과 그가 종국엔 순교에 이를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곧 실천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사실이 일시 그를 용납하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그(스데반)의 순교 후 두고두고 반성의 근거로 작용했을 법하다. 바로 이와 유사한 일이 병원장 조백헌 개인에게도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과거 주정수 원장을 믿지 못했었던 원생들로서는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을 쉽게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마도 간척 사업에 강제 동원되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된 그들은 조 원장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때 황희백 장로등이 나서서,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하고 바람직한 결실을 얻기 위해 조 원장과 협상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건의안을 조 원장에게 전했던 것이다.    <이 일에 일신을 위해서는 물 한 모금 사사로이 취하지 않을 것, 이 일을 하는 동안 일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공훈이나 명예도 좇지 않을 것, 또 보답을 바라지 않고 우상도 만들지 않을 것.> 이는 조 원장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육성으로 직접 서약하게 한 타협안이었다.   조 원장이 처음에 무슨 의도로 오마도 간척 사업을 시작했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그러나 황 장로등의 상기 협상안을 그가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시작한 그 사업은 엄청난 제약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의 황 장로는 베드로에게 있어서의 스데반과 같다.) 조백헌은 기한이 되어 이 섬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돌아왔다.   그때는 지도자가 아닌 보조자 신분의 일개 시민으로 온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크게 변화된 사람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푼 후 공동체 지도자가 아닌 일개 이방 선교사로 새 길을 걷게 된 일을 연상시킨다. 이 모든 사실들이 ‘조백헌 원장의 모델은 바로 베드로’라 보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오피니언
    • 칼럼
    2022-11-15
  • 주님이 주신 두 평강
        요한복음 20장 18절에서 23절까지 주님이 부활하신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요? 자신들은 예수님을 잡아다 죽인 유대인들이 그 예수님의 제자들인 자신들을 가만둘 리가 없으리라고 본 것이다. 즉 잡혀 죽을까봐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벽을 통과하여 나타나셨다. 주님 몸은 부활하신 영체로서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신다. 이를 본 제자들이 기뻐했다. 주님이 분명 살아나셨고 자기들과 함께 하시고 있는 것이다.   또 평강을 주셨으므로 기뻐하는 것이다. 이 평강은 무엇인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평강이다.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려 버리신 부활의 권세와 능력이 곧 평강이다. 이 평강을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죽음이 없게 됐다. 비록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잡아다 죽인다하여도 주님처럼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니 두려울 것이 없게 됐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첫 번째 평강이다. 또 본문 21절에 주님은 두 번째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하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신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보내신 것같이”라고 했다.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시며 일하셨고 이때 오직 평강과 기쁨으로 임하셨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복음과 진리를 증거하고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셨다. 그럼에도 주님을 따르기는커녕 비방하고 대적하며 주님을 죽이려 혈안이 된 지도자들이었다. 이때 주님은 나의 기쁨을 너희 제자들에게 주어 너희 안에 내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요15:11). 주님은 오직 아버지 뜻이 이뤄지는 것이, 또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그 일이 기뻤고 평강으로 충만했다.   이와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이 제자들을 일하러 보내고 또 오늘날 우리들을 보내시리라. 이때 주님과 같이 평강으로 충만하라고 하신 것이다. 진리를 증거할 때 대적하는 자들이 아무리 많을 지라도 평강과 기쁨으로 넉넉히 이겨내라는 말씀이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상급도 크리라는 소망으로 인함이다. 주님은 두 평강을 주신 후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이는 주님이 성령을 부어주시어 복음을 증거케 하시리라. 그러면 죄인들이 회개하고 죄사함 받게 되리라. 이것이 주님이 주신 평강이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2-11-15
  • 행복신앙세미나 22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행복을 보장하는 의의 옷       “믿음의 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의인데, 전적으로 수동적인 의 즉 우리는 받기만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허용하는 의이다. 인간의 양심이 안식과 자유를 얻는 것은 오직 수동적인 의로 인해서이다.”(미주중앙일보, 2018.04.24)   위는,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준 종교개혁의 핵심 진리인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기사입니다. 즉,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하시면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죄악을 담당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준비하신 의를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쉬운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빌 게이츠라고 할 때 우리가 빌 게이츠 같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 경우와 빌 게이츠의 재산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재산을 얻게 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려면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예수님의 의는 누구나 얻기만 하면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고 온전해질 수 있는 행복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아이언맨’의 슈트 소재인 타이타늄(Titanium)은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가졌지만, 제조 방법이 매우 까다롭고 비용 또한 비싸기 때문이다.”(산업일보, 2019.3.1)   위는 얼마 전 국내 연구진이 강하면서 유연한 성질을 동시에 갖는 순수 타이타늄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음을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타이타늄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영화 ‘아이언맨’을 탄생시킨 최첨단 금속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으로 세계 최강의 무기업체를 이끌었던 억만장자 CEO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만든 무기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깨닫고 ‘타이타늄’이란 특수한 금속으로 강력한 슈트를 만들어 입고는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악당들을 무찌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친히 만드신 옷이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무화과나뭇잎을 따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 그 허물을 온전히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든 치마는 바람이 불면 떨어지고 햇볕이 내리쬐면 말라비틀어지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가죽옷은 그들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죽옷이 만들어지려면 어떤 짐승이 반드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죄 없는 짐승의 희생으로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이 옷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드신 의의 옷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옷을 입게 되면 다음의 구절처럼,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 오피니언
    • 칼럼
    2022-11-15
  • 주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요한복음은 당시 세계 공통어인 헬라어로 집필됐다.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진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밝힌 바 없이 오직 “주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로 다섯번 기록했다. 첫 번째는 최후의 만찬에서 (요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 품에 의지하여 기대어 누웠는지라”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는 왼팔에 상체를 기대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먹는다.(마8:11,눅 7:38, 요13:35). 두 번째는 *제자들이 다 도망갔으나 ( *막14:50 , 요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께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니… 예수님께는 친형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누이들이 있었다(마13:55). 형제 야고보는 초대교회 지도자가 됐고 야고보서를 기록했다. 세습적으로 이들이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당연했으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셨다. 그때, 그날, 그 시간부터, 사랑하는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셋째로 안식 후 첫날 빈 무덤에 (요20:1)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갔다. 넷째로 디베랴 호수에서 (요21:7)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는 베드로를 따라 디베랴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찾아오신 주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이르되 주님이시라. 다섯 번째로 베드로의 죽음을 예언하실 때(요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했던 그 제자를 보고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니까? 물었다. 그러자 주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더라도 네게 무슨 상관있느냐 하셨다. 골고다 이후 요한은 순교도 못 하고 항상 마리아를 모시고 다녔으며 요한과 마리아의 무덤은 에베소에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요21:24)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 오피니언
    • 칼럼
    2022-11-1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