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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7) 우리집은 백향목과 잣나무다
      부활체이신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주님이 신부 성도에게는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송이로다.   1:16 보라, 너는 어여쁘며 나의 사랑하는 자야,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우리의 침상도 푸르도다.   ‘우리의 침상’이니 신랑 예수님과 신부 성도가 함께 사용하는 침상이다. 침상에 들기 전에 입맞춤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1:2). 또 목자를 찾아갔다. 또 집을 짓는 단계를 거친다. 침상이 푸르리니 생명이 자라남이다. 활기차게 약동한다. 계속하여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영적 의미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녹보석 같다(계 4:3)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임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영광을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입혀주실 것을 계시하신다.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때 받은 그대로가 아니라 항상 푸른 초목의 녹색과 같이 새롭게 된다. 즉 처음 받은 영광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신다. 재림하실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 분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임당했었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다. 한없이 존귀하게 되시어 하늘보좌에 좌정하신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장차 7년 환란날에 신앙 정절을 지킴으로 반드시 순교하게 되리라. 이 순교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순교케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 재림때 첫째부활의 영광(계 20:4~6)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체이신 영광의 주님과 우리가 함께 누워있는 침상이 푸르르다. 나도 부활체, 즉 첫째부활의 영광을 받은 자이다. 첫째부활의 영광이 성도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요, 복이다. 성도의 부활 순서가 고전 15장에 나온다. 주 재림때 부활하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은 나중에 부활한다- 주님 재림때 순교자들이 먼저 첫째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온다. 신랑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바울도 이것을 더 좋은 부활이라고 증거했다(히11:35).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의 침상이 푸르르다. 곧 녹보석 같다고 하시는 것이다.   1:17 우리 집의 들보들은 백향목이요,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로다.    우리 집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성도가 함께 사는 집을 가리킨다. 복되고 환희가 넘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나는 순교를 통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입은 신부가 된다. 또한 재림하시는 영광의 주님은 신랑이 되어 함께 사는 우리집이 되는 것이다. 백향목은 백색의 향나무 같아서 수명이 천년까지 산다. 우리집의 대들보가 백향목이라함은 우리집이 천년간 향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향이 무엇인가? 7년 환란 때 하나님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해 순교한 성도들의 찬양이다.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첫 번째 부활한 자들이다. 재림주님이 세운 왕국에서 천년동안 주님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하며 감사찬송하는 것이 백향목의 향이다. 재림하신 주님과 첫째 부활한 신부 성도가 부활체로 함께 사는 기쁨과 행복의 날들이 우리집의 대들보라고 한다. 우리가 이를 미리 믿음의 실상으로 누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서까래들은 잣나무라고 했다. 잣나무는 성전재료이다. 노아방주도 잣나무로 지었다. 잣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또 물에 잘 썩지 않는다. 이것은 잣나무 같은 진리의 특성을 계시하는 것이다. 즉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것같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영광을 바라보며 생명 길로만 나아가는 진리이다. 또 휘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 순교할지언정 비진리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진리이다.    또한 물에 썩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진리 특성을 가리킨다. 이 잣나무진리는 곧 첫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성전을 잣나무의 특성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즉 첫째부활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 우리의 서까래가 되며 우리집 짓는 재료인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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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0
  • 성서와 생활 [15] 그리스도인의 영성예절의 영성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고전14:3 아니시다.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 ‘품위있고 질서있는 삶’고전14:40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사랑의 생명을 주셨다. 이 사랑의 생명은 고린도전서에 이름과 같이 선한 열매를 풍성히 나타내는 능력이다. 그 중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고전13:5 라는 말씀이 있다. 사랑은 예절을 알게 한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예절이 없다는 말이며 이것은 곧 혼란과 무질서를 의미한다. 사랑의 생명이 있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으로 예절을 잃지 않게 한다.    이러한 질서에는 말의 예절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부터 예의 있는 말을 배워야 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의 예절을 통해 가정에 천국의 질서를 세워야한다. 부부의 관계 속에서도 이러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부의 도리가 된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해야한다. 이러한 가정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예의 바른 가정이 되게한다.    행동과 태도와 의복에도 마땅한 예절이 있어야 함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의복을 가정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입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상대방을 향한 예의이다. 특별히 문둥병에 걸린 옷과 같은 형태나 남녀 구분이 없는 옷을 피해야한다.신22:5 물건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에는 던지지 말아야한다. 쟁반에 받히거나 공손히 손으로 전달해야한다. 칼이나 가위 등은 위험한 부분을 돌려서 전달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특별히 가정 안에서 이러한 예의를 잘 행하여 평안한 가정을 세워야한다. 가장 친밀한 가족 간에 마땅한 예절이 실종되면 악한 본능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예절에는 음성의 예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말의 내용과 방법에 따라 음성에 미움과 사랑이 드러난다. 악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합당한 음성의 예절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말에는 부드러운 어조가 필요하다. 함부로 말하거나 거짓된 것을 말해서는 안된다. 거친 어조와 교만한 억양도 예의가 없다. 자신을 동정하는 억양이나 자신을 사랑하는 억양도 합당한 표현이 되기 어렵다. 자신의 희생을 나타내는 표현도 합당하지 않다. 오직 사랑의 생명에서 나오는 무례하지 않은 언어의 영성을 갖춘 예절을 필요로한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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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0
  • [향유옥합] 마음화장
    마음화장   김영임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화장하기를 멈추었다. 아이가 엄마를 맘껏 만지게 해 주고 싶었고, 아이와 맘껏 얼굴을 비비고 싶어서였다.  첫째 아이 하늘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며칠 전, 나는 화장품 세트를 새로 구입했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 드디어 나도 학부모가 된다는 기대와 설렘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변에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선배 엄마들 얘기를 들으니 같은 반 학부모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반 모임'을 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이 30대 초에 시작된 터라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처음 학부모가 되는 나로서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하늘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화장을 하고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거울을 보고 또 보며 학교를 향해 출발하려는데 여덟 살 아들 하늘이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 임신, 출산, 육아를 계속하며 화장을 한 적이 몇 번이 안되다 보니 하늘이는 화장한 엄마 얼굴이 너무 낯설었나보다.   사실 화장한 얼굴이 어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 딴엔 처음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과 기대로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어 바르고  꾸민다고 꾸몄건만...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도 나는 간단히 화장을 지우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입학식에 참석했다.  입학식 내내 다시는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후에 준비한 화장품세트는 언니에게 무료나눔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이제는 '얼굴화장' 대신 ‘마음화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회생활에서 여자가 화장을 하는 건 ‘기본예의’라고 말한다.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예쁜 옷을 입고 말도 행동도 품위 있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 안에 미운 생각과  미운 말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접착식 거울을 사서 내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씽크대 앞에 붙여두었다.  식사 준비를 하다가도, 과일을 씻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곤 한다.  환하게 웃는 연습도 해보고, 재밌는 표정도 지어보고,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 뭘까 생각도 해봤다. 무엇보다 씽크대 앞에 붙여둔 거울을 보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매일 반복되는 분주한 일상 속에  나의 표정이 어느새 굳어져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나의 불편한 감정 때문에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차 한잔하고 싶다며 별안간 찾아온 손님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함으로, 겸손함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가야겠다. 쉽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이 더해가는,  '마음화장'을 해야겠다.                                                                                                                                                                                                     / 서예가, 춘천벧엘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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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6) 주님은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 송이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면 순전한 눈이 되어진다   주님은 내게 영원히 썩지 않는 몰약향이 되신다. 또 온 밤을 이기는 주님의 몰약 주머니가 내게 있도다.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 송이로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한다. 엔게디는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사울을 피하여 숨었던 엔게디 광야에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삼상23:29). 나의 사랑하는 이 예수님이 내게 엔게디 포도원이라는 것은 다윗의 경우와 같이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이다. 또 요새요, 요새 교회가 되시는 것을 말한다. 신랑 예수님이 나를 신부 되도록 세우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것이 엔게디 포도원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2장, 3장의 금촛대교회이다. 종말에 그리스도 신부 세우는 금촛대교회이다. 또 주님은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송이라고 했다. 캠퍼송이(고벨화)는 중동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마치 우리나라에 봉숭아꽃과 비슷하다. 캠퍼송이는 꽃잎이 노랑 빨강 흰색이 있다. 그중에 노란색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내게 노란 캠퍼송이와 같이 평화·평강이 되심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은 '먼저 지옥 갈 염려가 없이 구원해주신 평강이다. 또한 환란날에 배도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 주실 평강이 되신다. 흰색 캠퍼송이는 성결·거룩을 상징한다. 주님이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분이므로 내게 흰 캠퍼송이시다. 빨간색 캠퍼송이는 사랑을 상징한다. 마치 홍보석 같다고 말씀했고 주님의 보혈을 쏟으시어 날 사랑하신다. 또 성령을 부어주시되 일곱 영으로까지 충만히 부어주시어 예언의 철장권세도 주신다. 또 순교도 하게 하시니 사랑의 캠퍼송이로다.   1:15 보라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도다. 보라, 너는 어여쁘며 너는 비둘기의 눈을가졌도다. 주님이 성도를 보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어여쁘게 보신다. 우리 자신은 죄악과 부패성만 나오는 존재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님의 마음·생각·성품으로 일치 되어져 가면 주님이 어여쁘게 보시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가 계시므로 나의 신앙이 자라고, 내 안에 주님이 엔게디 포도원의 캠퍼송이가 되시어 나를 순교케 하신다. 주님이 내게 신랑이 되어지면 주님이 '오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아름답구나' 하시는 것이다. 어여쁜 성도의 눈이 비둘기의 눈과 같다는 것은 비둘기의 속성을 통해 영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하신다(마 10:16). 제자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양들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이리들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보냄받은 제자들이 사명 감당하다가 이리들에 의해 죽임당하지만 끝까지 신앙 정절을 지키는 것이 비둘기처럼 순결한 것이다. 이와같이 나의 사랑하는 어여쁜 자는 비둘기의 눈을 가져서 순결한 신앙 안목으로, 신앙의 절개가 있다는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다. 네 눈이 순전하면 네온 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만일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도 어두워 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면 순전한 눈이 되어진다. 비둘기의 눈을 가지면 예수님의 눈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되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신실하시고 순종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뀐다. 처음 믿을 때와 중간, 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칭찬하시는 비둘기 눈을 가지기를 바란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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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성서와 생활 [14] 그리스도인의 영성-생명의 영성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이 생명을 가진 자 마다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만 구원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해 그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어주신 것이다. 이러한 생명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 장성한 자의 믿음인 것이다.롬8: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한다.잠19:3.이 생명은 우리 안에 없는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이 생명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믿는 자는 이미 이 생명이 있음을 아는 것이 영적이 자녀라고 볼 수 있다. 이 생명은 우리 육체로부터 오는 사망의 생명과 싸워 이기게 한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될 뿐 만이 아니라 그의 생명도 얻게 하시려는 것을요20:31아는 것이 우리의 완전한 믿음이다. 또한 이 생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더 큰 구원으로 나아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한다.   생명이 왕노릇하는 권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이시다.약1:12.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생명을 사모하는 자마다 모든 시험을 견디게 된다. 이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므로 주님께서 얻으신 부활의 생명에 이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난보다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서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되어야한다. 참된 생명은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주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자 하는 자 마다 계:2:10 생명의 왕노릇 하는 길을 가야한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가는 동안 참된 생명딤전6:19을 확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마다 생명이 왕노릇하도록 사망과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불신과 불안의 육적 생각을 영(말씀)이 주는 확신과 기쁨의 생각을 따라롬8:6생명의 법을 적용하는 길이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은 우리의 삶을 보다 힘있고 소망적인 길로 안내하여 생명이 왕노릇하는 영성을 미리 누리게 한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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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향유옥합] 슬퍼하는 복
      우리 저마다 기억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 겁니다. 제게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풍경들이 그런데요. 그 중 한 곳은 강원도 삼척입니다. 매년 봄이면 유채꽃 축제를 보러 우리는 맹방 해변에 갔습니다. 그곳은 노란 유채꽃이 바다만큼, 시리게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진 곳이었죠. 제가 사랑하는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방문한 삼척의 모습은 제 기억과 아주 달랐습니다. 깎여나간 해안선과 흉물스러운 구조물들, 헤집어진 산이 보였습니다. 지금 삼척에는 국내 마지막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가 가동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석탄 이송터널 등 부대시설 마련을 위해 맹방해변은 파괴되고 있고, 삼척주민들은 대기오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삼척의 모습과, 기후위기 시대에 새롭게 가동을 시작한다는 블루파워 석탄발전소의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스쳐지나갔던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을 모티브로 한 윤동주의 「팔복」입니다. 마태복음은 복 있는 사람을 열거하며, 그 중 하나로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는데 이는 위로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마태 5:4)’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곤 마지막 문장을 거듭 퇴고하다 결국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맺습니다. 학생이던 시절에는 이해되지 않던 이 시가 활동가로 현장을 다니다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참 복이 있는데,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영원히 슬퍼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 어딘가에 슬퍼하는 단 한 존재라도 있는 한 슬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발생한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오염과 피폭을 염려하는 일본 시민들과 후쿠시마 어민들을 만났습니다. 방사성 오염수뿐 아니라 오염토와 원전 재가동, 핵연료 재처리 시설 등으로 다시금 핵부흥을 꿈꾸는 일본정부는 후쿠시마를 기억하며 원전과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일본의 시민들은 경주 월성원전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폭으로 갑상선 암에 걸리고, 어린이들의 몸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어도 ‘문제없다,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는 수명만료 된 원전을 더 사용하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 짓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죠. 같은 슬픔의 얼굴들은 경주 외에도 울진, 울산, 부산, 영광에도 있습니다. 이 발전소에서부터 출발하는 송전탑 아래 마을주민들의 눈물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는 슬퍼할 여유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만 슬퍼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자녀의 축복과 재산, 건강 등의 복을 기도하지만, 예수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또 윤동주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께 슬퍼하는 복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비록 슬퍼할 것이 너무도 많아 영원할지라도, 여러분의 슬픔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억하며, 올해 3월 16일 토요일에는 원자력 발전과 석탄발전을 넘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시민들이 모입니다. 또 9월에는 기후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느끼는 이들이 모여 행동합니다. 슬픔에 동참하고, 행동으로 바꿔내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한국YWCA 시민운동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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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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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예수’를 좇는 참 행복 4회] 여호와 집에서 영원한 생명의 행복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후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주님과의 대면을 기대    성경 말씀은 참 행복을 알게 하시어 말씀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신다.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일이며 계명을 지키는 일로써 주를 사랑하는 일과 연계이다. 이를 위해 나를 따르려면 각기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신 말씀에 순복을 해야 한다. 누구든지 주 안에 종의 몫을 배워야 함을 발견케 하여 지혜를 얻게 하심이다. 종의 몫의 실현은 주인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로 지체들을 세울 수 있는 비결이다. 주님은 창조주로서 믿고 좇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영혼 구원자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심과 같다. 곧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언약대로 이루어짐이다. 이를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해석 적용해야 함을 찾게 하시어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영혼 구원으로 적용을 한다. 영생에 소망을 가진 자들은 위에 것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이다.     영에 속한 자로서 주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몫을 하는 주의 종들이다. 곧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구속사역에 참예하여 살리는 몫에 주를 경외하는 자로 사는 자이다. 복음을 알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덕을 끼치며 남의 유익을 위하여 주께 하듯 섬기는 자라 할 수 있다. 곧 골로새서 1장9~10절 “이로써 ~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는 기도를 드리며 좇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는 연계된 공동체를 확장케 하는 사랑을 확증하는 바이다. 다시말해서 주의 뜻을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좇아 복음으로 살리는 주 말씀 안에 순복을 확증케 한다. 주께서 강건케 하심은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하심의 몫이다. 또한 목적임을 확증한다. 곧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는 말씀에 아멘 한다.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 몫에 드려지는 지체들임을 확증해 준다.     그러므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심을 확증하는 바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지체로 주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가 되어 생명에 이르게 하는 여호와 경외함을 하는 제자로 확증이다. 행복의 결국은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자가 받을 생명의 면류관 주실 주님과의 대면이다. ‘주님을 생각만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죽음 앞에서도 설렘을 갖게 한다. 부르심의 선하신 뜻대로 땅에서도 참 행복을 알고 누리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는 나그네 여정이다. 기뻐하며 천국에 소망을 갖고 산 믿음의 결국 이긴 자의 영혼이 되어 사람의 본분을 하고 주께 돌아감을 행복의 참 의미로 누리고 이를 경험케 하신다. 주를 뵐 수 있는 천국에 가는 여정이기에 행복한 이 땅의 마침이 설렘으로 벅찬 시간임을 확증케 된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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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최 은 작가의 「the unexpected beauty」
      최 은 작가의 「the unexpected beauty」는 십자가 형태의 공간 속에 생동하는 꽃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인한 기쁨을 나타내는 듯 하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의 길이 어디있는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가를 연구하고 공부를 해서 그 길을 찾게 된 것이 아니라 전 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하셨다.(마22:14) 모든 사람이 청함 받았을 때에 회개하여 주님을 온전히 믿고 변화를 받아 갑자기 마음속에 기쁨의 꽃이 피어나기를 작가는 염원하고 있다/정재규(미술평론가 · 대석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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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바울 복음
      구약은 온전히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역사 이야기이고, 하나님께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함이니라”(사43:21)하시고 그들에게 계명과 말씀을 맡겼으며 그들의 역사 속에 직접 간섭하셨다. 신약의 복음, 기쁜 소식은 메시야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세상의 죄를 책임져 주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3:16) 누구든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도 초기 기독교에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도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의 복음서에  하나의 숨겨놓은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이 비밀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그리스도의 비밀인데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며 내게 주신 하나님 은혜의 선물로 내가 그 일꾼이 되었다고 기록한다.(엡3:3~13)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롬11:25~26, 롬11:11, 행28:28)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으니,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8~9)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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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31
  • [변두리 소수자⑦] 뒷골목의 전도사
      깜깜한 새벽에 동네가 요란하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섰던 청년 전도사가 차에 치어 숨졌단다. 그러자, 그 근방에서 호객하며 살아가는 한 젊은 여인이 달려 나와 그 남자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운다. 그 전도사는 그 여자의 방에서 함께 지내던 관계이다. 그 전도사는 며칠 전에 그 여인을 찾아 와 “소년 시절에 잘못 했다”하며 용서를 빌고, 실컷 두들겨 맞았었다…   김성일의 단편소설 <뒷골목의 전도사>를 거꾸로 정리한 내용이다. 만약 이런 사건이 오늘 일어 났다면, 미디어는 어떤 부분을 부각하여, 어떻게 기사화 했을까? 그 기사를 읽은 성도들과 시민들의 관심은 무엇일까? 전도사와 그 여인? 그 관계? 그들의 속사정? 그 얽힌 내용? 그 전도사가 소속한 교단의 어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고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분이었다. 그 분이 어느 해 연초에 윤락가를 찾아가, 그곳 여인들과 화투 놀이를 하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화기애애한 사진과 함께 인간미 있는 분으로 평가하여 사람들이 흐뭇해 한 내용이었다.   아마 그 중에 어떤 여인은 즐거움과 함께 눈물이 났을 것 같다. 나도 그 신문 기사를 오려 내 노트에 붙여 보관하였는데, 얼마 전에 그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저 사진 속에 누구에게 주목을 하셨을까?’   나는 얼마 전 이주민들의 예배를 위해 교회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왜 우리는 저 뒷골목, 저 아래 동네로 쉽게 들어가지 못할까?’, ‘성스러운 곳에 가까이 오지 못한 그들에게 그러면 누가 갈까?’ 평지에 안전하게 머무르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 이들, 그리고 죄인들을 만난다고 예수님을 불경하다고 했던 이들…. 나도 그 부류의 범주를 벗어나기를 어려워했었다.   성경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 앞에 끌어다 놓고 참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종교인들은 예수에게 의도적으로 질문을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함께 했던 사람들도 참소자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죄인의 곁에 함께 서있을 수 있을까?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길은 일반적 사역으로 안 된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불경하다’고 정죄할 구실을 많이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을 사흘 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선동할 수 있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은 “사람들아 자신들을 보라”하며, 그 죄 많은 여인을 구하셨다. 구원에 관심 없는 종교인들은 모래를 씹으며 갔을 것이고, 군중들은 ‘아니면 말고’하며 흩어졌다.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양들을 찾아 뒷골목으로, 아래로 내려 가셨다. 나도 그래서 주님을 만났다. 나를 부르셨다. ‘저 건너편에도 가자’고.   “우리가 저 뒷골목과 저 아래로 내려가도 괜찮을까?” “예수님만 그럴 수 있지...” 친구 목사의 답이다.   그렇다면, 사역은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몸은 여기에 마음만은 저 건너편에... 아, 저 동네에도 불이 켜져 있다! 저 뒷골목과 저 아래에도...      *김윤곤목사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구약 및 상담학) 학위를 받고, 앵커리지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17년 시무했다. 미국장로교 대서양한미노회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다종족 주민 협력 프로젝트 등을 위해 7년간 선교사로 지냈다. 김목사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목양적 단상과 영감을 이민자·목회자·선교사·다문화 사역자의 관점에서 나눌 예정이다. (격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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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7
  • [당신의 뇌] 성 호르몬과 정신건강(3)
      뇌 크기와 피질 두께, 수용기 분포 등의 차이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의 전두엽은 아주 다르게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좌측 전두엽은 우측 전두엽과 달리 기능하며, 이런 차이는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여자의 경우 뇌량이 더 두꺼워 두 반구간의 기능이 더 통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들의 뇌는 대부분 반구간의 교류가 우수한 반면, 남자들의 뇌는 대부분 반 구내의 교류가 우수하다. 그런가 하면 인지수행에 대한 검사에서는 언어 과제일 경우에는 여자가 더 우수한 반면, 시공간 과제일 경우에는 남자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남녀 간의 행동과 뇌의 차이는 유전과 환경 요인의 산물이다.   남녀 각 성의 유전적 특성은 전혀 다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유전자는 생물학적 과정을 시작하고 점검할 뿐만 아니라 뇌구조의 해부학적 성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뇌 부위로는 기억, 사회적 행동, 정서처리 및 정서반응과 관련된 부위를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남자와 여자들이 보이는 행동이나 기능의 차이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해 내려온 과거 생활양식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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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6
  • 사울이 바울되는 변화의 힘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친 증인들의 옷을 맡았던 자로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한다. (행 7:58).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행 8:1) 사울이 교회를 진멸할새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잡아 오려 함이라. (행 9:1~2)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직접 뵙고(행 9:3) 확실하게 방향 전환을 했지만, 유대교 전통에 열심이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이다” 회심한지 14년이 지난 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는 사울이 태어난 다소까지 찾아가 사울과 함께 안디옥으로 와서 일 년간 큰 무리들을 가르치매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11:24~26)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초기에 사울이라 기록하였으나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행 13:9)” 비로소 바울이라 기록하고 그 후 모든 성경에 바울로 기록되었다.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어 이름이다. 당시는 헬라어 중심이어서 이방인에게 헬라어가 친숙했음이라. “이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8) 사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정교사가 되셔서 필요할 때마다 직접 나타나 알려주시고 확신을 주셨으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바울 되게 하셨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기점으로 BC와 AD로 나뉜다. 누구에게나 생의 전환점이 있다. 사람은 예수 영접하기 전과 영접 후로 인생이 갈린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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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4
  • [칼럼] 그의 길을 지켰다
         욥기 23장 10절에서 12절에서 하나님의 길과 내가 택한 길이 나온다. 하나님 입의 명령을 준행하고 있지만 우리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너무도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고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리라는 말씀이다. 먼저 ‘하나님의 입술의 명령과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지켰다.’ 했으니 이는 과연 어떤 명령을 준행 했다는 것일까? 바로 오늘 이때에 따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임을 특별히 가리킨다. 이는 주 재림 전에, 또 큰 환란날에 이기는 말씀이다.    재림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는 특별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부활과 더 좋은 부활의 견고한 진리에 서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것과 관계된다. 그 다음 내가 그의 발걸음을 따랐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적으로 초림하신 주님이 걸어가셨던 고난과 핍박의 생애를 가리킨다. 또 우리가 그의 고난 받으심 같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신에 교회를 위하여 채우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거적인 주님 발자취 따르는 것과 달리 내가 그의 길을 지키며 벗어나지 아니 하였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늘 보좌에 영광 받고 좌정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그분의 하시는 역사를 가리킨다. 그분의 역사가 그분의 장차의 길이다. 이미 우리가 상고한바 이사야 2장 3절 ‘마지막 날들에 가장 높은 산으로 주의 전을 세우시리니 우리가 그리로 올라가자 그리하면 그가 그의 길을 가르쳐 주시리라. 그러면 우리가 그의 길을 행하리라.’ 하였다. 이는 ‘그의 길이’ 그가 지금 이때에 하시는 역사이며 이를 요한계시록 6장 9절에서 11절에서 단적으로 가르쳐주시고 있다. 즉 순교할 자들의 수를 채우시는 것이요, 또 환란날의 하나님의 종들의 수인 14만 4천을 채우시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이와 같은 주의 길을 깨닫게 되면 어찌하든 순교할 자의 그 수에 들도록 믿음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또 더욱더 높은 경지를 향해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길을 지켜 나가게 될 것이다. 이를 가리켜 내가 주의 길을 지켜 따랐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 하시면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나의 인본적인 사상과 고집, 내 속에 있는 육적인 찌꺼기와 불순물을 빼내시리라. 하나님의 길을 끝까지 마치게 하기 위해 나를 정금같이, 다이아몬드 보석 같이 단련해 주시리라. 그러므로 주님 역사와 그의 길을 내가 가도록 해 주시리라. 아멘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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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3
  • [당신의 뇌] 성 호르몬과 정신건강(2)
      성 호르몬 분비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 의해 조절되는데 시상하부가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하면 뇌하수체에서 여포자극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을 분비하여 남성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여성에서는 에스트라디올과 프로게스테론 분비를 촉진시킨다.   여성의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은 우울증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진다.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지면 여성은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우울하고 초조감, 무력감, 수면장애, 과식, 성욕감퇴 등을 쉽게 느낀다. 그러한 이유로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낮아지면 월경전이나 폐경기 여성이 우울증이 잘 걸리는 것이다. 또 여성은 감정의 뇌인 변연계가 남성보다 더 크기 때문에 유대관계가 와해되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남자의 뇌는 여자의 뇌보다 약 8~10% 크다. 남녀 간 뇌구조의 차이 중 하나는 전두엽을 덮고 있는 피질의 두께다. 남자의 경우 우측 전두엽피질이 좌측 전두엽피질보다 두꺼운 반면, 여자의 경우에는 양쪽 전두엽의 피질두께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여자의 경우 에스트로겐 수용 기가 전두엽 전반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지만, 남자는 고르지 않다. 전두엽에 있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통로의 분산 정도에서도 성차가 나타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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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건강교실] 현대인의 발과 건강(상)
      우리 몸에서 가장 학대를 받는 부위가 있다면, 그것은 발일 것이다. 온갖 지저분한 것은 다 밟고 다녀야 하고, 좁은 신 안에서 숨도 못 쉬고 땀냄새에 절어야 한다. 작은 신을 신고 한번 고생을 했으면 다시는 신지 말아야 하는데, 다음날 다시 또 발보다 작은 신을 신고 나선다. 발이 불편하다고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도 드물다. 발이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룻밤 자고나면 대개는 발이 안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안 찾는다. 병원을 찾아가도 의사선생님들도 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별 뽀족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냥 ‘두고 보자’든지, ‘그냥 그대로 지내시라’든지 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지내온 상식 중에는 ‘새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프다’라는 것이 머리 속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새 신발을 신고 나서 발이 아프다는 것은 발과 신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싸움에서 발이 이기면 신발 가죽이 늘어나 신발 모양이 틀어지고, 반대로 싸움에서 신발에 이기면 발이 신발모양처럼 변형이 된다.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은 처음 신는 순간부터 발이 편하게 느껴진다.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병원에서도 발에 관한 의료서비스를 활발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에 관한 의료서비스는 초보적인 단계라 할 수 있다.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의학지식이 세계적인 수준과 견준다고 할지라도, 환자들에게 실제로 해줄 수 있는 보조기나 깔창, 구두 등의 제작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아직 시장이 넓지 않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어서 이런 것에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발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첫째로, 하이힐을 신지 말자. 하이힐은 구두 뒷굽의 높이가 3센티미터를 넘는 경우에 하이힐이라고 한다. 뒷굽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우리 몸의 무게중심은 땅에서부터 멀어져 위로 올라가게 된다.    즉, 우리 몸은 불안정해지고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기 위해서 온몸의 근육들을 긴장시키게 된다. 특히 뒷굽이 뾰족하고 좁은 경우에는 발목을 삐지 않으려고 더욱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근육들이 긴장을 하게 되니까,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목뒤도 아프게 되며, 근육을 긴장시키느라고 힘을 다 써버리기 때문에 쉽게 피곤해진다. 뒷굽만 높은 구두는 체중을 앞쪽으로 쏠리게 한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허리를 뒤로 젖히며 걸어야 하기 때문에 요추전만증(허리 등뼈가 마치 임산부처럼 앞으로 튀어나오며 구부러진 것)이 생길 수 있다. 발뼈들은 뼈들이 좌우로 둥글게 아치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횡아치라고 한다. 뒷굽이 높은 구두는 체중이 앞으로 쏠리게 되므로, 점점 횡아치가 무너지게 된다.    또한 하이힐은 앞부리가 뾰족하기 때문에 엄지발가락은 둘째발가락쪽으로 기울어지는 엄지발가락외반증이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외반증은 발의 횡아치를 더욱 무너지게 만든다. 발의 횡아치가 무너지면 대개 둘째, 셋째, 넷째발가락 뿌리부위에 굳은살이 생긴다. 또한 발가락들은 좁은 앞부리 속에서 겹쳐지고 구부러지는 변형이 생기면서, 발가락 등쪽에 굳은살이 생긴다.    정리하면, 하이힐은 △허리와 어깨 및 목뒤의 통증 △전신피로 △요추전만증 △엄지발가락 외반증 △둘째, 셋째, 넷째발가락 뿌리부위에 굳은살 △발가락 등쪽에 굳은살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발의 건강을 위하여 하이힐을 신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관절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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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사랑의 실천] 어떻게 기뻐할까?
      전국 시대, 철인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는 진심편에서 군자 유삼락(君子有三樂)이라 했습니다. “군자란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을 말하는데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것으로서, 첫째 즐거움은 부모구존 형제무고(父母具存 兄弟無故)로,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둘째 즐거움은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으로,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셋째 즐거움은 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추사체로 유명한 완당 김정희의 삼락은 일독, 이색, 삼주라 했는데, 一讀은, 책 읽고 글 쓰고 항상 배우는 선비 정신을, 二色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변함없는 애정을, 三酒는, 벗을 청해 술잔 나누며 세상과 인간사 얘기하며 풍류를 즐기는 것을 꼽았습니다. 기쁨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정의는 “욕구가 충족 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소멸 되지 않는 영원한 기쁨, 하드웨어에서 주어지는 기쁨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통해 주어지고 채워지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은 100곡 이상의 심포니와, 80곡 이상의 소나타를, 또 천지창조를 위시한 거대한 오라토리오를 남겼는데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작곡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에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다시 말하면 곡이 좋아서 내가 기쁜 게 아니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지니까 좋은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공부를 위해 6살때 부터 집을 떠나 생활해야 했던 불우한 하이든이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하이든의 음악을 보면 기쁨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기쁨을 가지니까 악보가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는 이 하이든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성경에도 기뻐하라는 말씀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도 나옵니다(시 37:4).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폐가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여호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소유한다는 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는 것이요, 내가 그분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될 때, 그 분이 나의 소유가 될 때, 주인이 될 때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분을 소유하는 것, 그 분을 기뻐하는 것, 그 분을 송두리째 차지하는 그런 개념입니다. 그럴 때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울 수 없고, 두려울 수도 없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예장 합동한신측 총회장·예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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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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