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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의 치료 운동, 생활습관, 식이요법(1)
      최근의 한 연구결과를 보면 환자들은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비약물적 치료로 ‘운동 및 취미생활’ 39.8%, 정신과 외래에서 심리적 문제 상담 34.7%, 정신과 의사와 개별치료(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부부치료 등) 11.9%, 종교적 치료 및 정신수양(안수기도, 선, 단전호흡, 굿 등) 6.8%, 한약, 건강식품, 식이요법 0.8%를 꼽았으며 약물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답변한 환자는 12.7%였다. 즉, 약물치료와 운동 및 생활습관, 식이요법 등이 대등한 치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우울증은 거의 전적으로 약물치료로 호전되는 질환이다. 과거 심리적인 접근으로 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부부치료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었지만, 이는 환자가 약물치료에 대한 불합리한 거부반응에 대한 대체치료법으로서만 의미가 있었을 뿐 치료효과는 약물치료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실 환자에게 치료법의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다양한 치료법이 있어야 하는데 의학 상식적으로 치료법이 많은 질환은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확실한 치료법이 존재하는 우울증의 치료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므로 우울증의 치료에 의사가 골몰해야 할 과제는 어떻게 하면 약물치료의 순응도를 높일 것인가이다.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약물치료가 선택되지 않는 경우는 약물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뿐으로 전신상태가 허약한 노인성 우울증, 임신, 항우울제에 비특이적인 과민반응 정도이며 이런 경우 비약물적 요법이 고려되지만 (전기경련치료, 심리치료, 광선요법, TMS 등 의학적으로 인증된 비약물요법) 그밖에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운동, 식이요법, 생활습관 개선 등이 대체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   서두부터 이런 딱딱한 논의를 개진한 까닭은 이 글이 자칫 잘못 호도되어 엉뚱한 치료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데 일조를 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운동, 식이요법, 생활습관개선은 통상적으로 자기관리(self-care) 요법이라고 한다. 자기관리 요법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첫째,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에 주치의와 상의하여 약물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병행하는 경우 둘째, 우울증이 아닌 약간의 우울증세가 있어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셋째, 성공적인 우울증 치료 후 약물치료와 병원방문을 끊고 재발의 방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먼저 운동은 지구력과 근력, 유연성 등을 향상해 주는 역할을 하며 운동으로 엔돌핀이 증가하게 되어 우울감을 낮춰주기 때문에 치료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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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6
  • 재난과 재해의 국가들을 돕는다.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 전병금목사
      전병금원로목사(강남교회 사진)는 45넌간 목회를 하며,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C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전목사는 활발할 활동으로 진보와 보수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목회자이다. 지난 2016년 은퇴한 전목사는 현재 사단법인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으로서 각종 재난과 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을 돕고 있다. 전목사는 구호단체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서 “지난 45년간 교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은퇴를 하고는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2016년도 4월에 은퇴를 한 전목사는 같은 해 여름부터 동 단체의 이사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구촌구호개발연대는 네팔, 방글라데시, 배트남 등의 나라를 돕는데 힘쓰고 있다. 첫 시작은 네팔이었다. 전목사는 강남교회 담임시절 네팔에 지진이 나 성도들이 간이집을 짓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은퇴 후 그곳에 간이집이 아닌 반영구적인 집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67체의 집을 건축했다. 집뿐 아니라 수도시설과 교회당, 어린이집 등을 건축하며 지역사람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 네팔 내 타지역에도 보건소와 도서관 컴퓨터교실 등을 건축했다. 이 중 컴퓨터 교실은 그 지역에 젊은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취업을 할 수 있게 도왔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들과 베트남 지역에 소수민족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전목사는 “이 지역뿐 아니라 앞으로 재난 지역이 생기면 계속 확대하면서 도울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목사는 이 사역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걷는 일과 강남교회에서 원로목사로서 석달에 한번 말씀을 전하는 일 말고는 따로 하는 일이 없다고 밝혔다   50년 전 본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힌 전목사는 한국교회가 신자 수는 많지만, 신뢰도가 많이 추락했음을 지적했다. 전목사는 “지난해 갤럽조사를 보면 개신교의 신뢰도가 많이 낮다”며, “하지만 본래 한국교회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목사는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의 미신타파. 한글보급. 학교와 병원설립 등 많은 일을 했고, 독립운동을 주도한 사실 등을 언급했다.     전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많이 성장한 것은 좋았지만 성장하면서 개교회주의에 치중했다. 희생하고 섬기는 인재를 키우지 못했다”며, “많은 인재를 배출되었지만 이들이 기독교인의 향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낮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선교초기의 김구, 안창호, 이상재, 이승만 같은 훌륭한 인물들이 기독교인이다”며.“그런 인물들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제2의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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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1
  • 예장 대신측 부총회장 송홍도목사, “교단에서 전액 장학금 지급해 신학생 양성”
    종교적 기능인 아닌 복음의 전문가 영성할 신학교육 실현 교단의 정체성인 개혁파신학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측 부총회장 송홍도목사는 동 총회 직영신학교인 대신총회신학연구원의 발전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송목사는 “우리교단 개혁주의의 특성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의미한다. 우리는 신학교에서 귀한 배움을 배우고 있고, 목회현장에 나가 여러 가지를 감당할 때에 삶과 가정 그리고 학업, 이 모든 피조세계가 오로지 그에게서 말미암고, 이 삶의 종결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위치를 잘 깨달아야 한다. 나의 존재 이유를 잘 정립해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주님께 나오고 주님에게서 말미암고 주님께로 돌아간다는 이 인생의 성공 기초인 놀라운 사실을 믿고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송목사는 “대신교단은 고봉 김치선박사가 세운 대한신학교를 구심으로 자생적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 장로교단이다. 교단선언문에 역사적 개혁파신학과 신앙을 명시할 정도로 철저한 개혁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며, “이 대신교단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직영하는 신학교육기관이 대신총회신학연구원이다”고 소개했다.   또 “우리 교단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구 백석측과 무리하게 통합하는 과정에서 교단이 갈라졌고, 대한신학교의 후신인 안양대는 타종교 매각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단의 신학교육기관이 크게 위축되고 말았고, 교단의 정체성인 개혁파신학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없었다”며, “이러한 시행착오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교단이 중심이 돼서 후보생을 위탁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대신총회신학교가 출발하게 됐다”고 전했다.   대신총회신학교는 크게 두 가지의 비전과 목표를 갖고 목사후보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송목사는 “본 학교는 오로지 학문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전적으로 대신총회가 필요로 하는 목사후보생을 양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학위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목회자를 양성하는 학교이다”며, “교수부터 학사행정에 이르기까지 총회가 지원하고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목사는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의 신학교육기관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대신총회신학원은 100% 교단의 지원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사건이다”며, “이렇게 철저한 교단중심의 시스템을 통해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종교적 기능인이 아닌 복음의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단순한 종교적인 기능인을 양성해서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 급급한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며, “목회는 단순히 설정한 목표를 향한 성과를 위해서 기능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는 전인적 차원의 인간관계와 삶의 나눔과 섬김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고 역설했다. /안계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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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9
  • 청소년 바로 세우기•복지사업 등 열중
        최낙중원로목사(사진)는 1972년 6월 22일 관악구 판자촌에서 개척을 시작으로 2018년 10월 14일 은퇴에 이르기까지 46년을 해오름교회에서 사역한 후 은퇴했다. 최목사는 사역하는 동안 목회자, 선교사, 신학대 교수 등 84명의 영적 지도자를 배출시키며 열정적인 사역을 이어 왔다.   최목사는 “은퇴는 했지만 나는 은퇴(retire)를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운다는 re-tire라 생각한다. 은퇴 이후의 삶을 그렇게 새 타이어로 새로운 길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며 은퇴 전부터 해오던 한국교회를 위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목사는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바로세우기운동협회 이사장과 대표회장으로서 현재도 기독교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장학사업을 통해 프랑스 로렌 대학교 최고의 섹스포니스트와 서울대학교 음대에 최연소합격자인 바이올리니스트를 후원하고 있으며,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지원하고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반대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차별금지법 폐지를 위한 일을 하고 있으며, 세계성시화운동본부의 서울대표회장을 맡아 세상의 빛과 소금된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의 증인된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운동을 진행 중에 있다.   최목사는 이뿐 아니라 기아대책의 이사 겸 서울지역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전문적인 복지사업 수행을 위해 사단법인과 함께 사단복지법인과 재단법인으로 구성해 통합운영하고 있으며, 국제구호개발과 국내복지, 대북지원사업 등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최목사는 관악구 기독교총연합회 총재로 약 450개 교회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최근 동 연합회에서는 관악구청 광장에 성탄트리를 점등했다. 이날 설교를 통해 최목사는 “예수의 탄생이 세상에 기쁜 소식이었듯이 우리 교회가 세상에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며, “관악구의 모든 교회가 각자 역할을 잘하고 성도 개개인이 맡겨진 일을 다 하면 지역이 변하고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목사의 목회 철학은 “주의 종은 주님이 쓰는 연장이다. 연장 중에는 녹슬고 부러져서 버림받은 연장이 있고, 쓰고 또 써 닳아 없어지는 연장이 있는데, 나는 쓰임 받고 또 쓰임 받다가 없어지는 연장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은퇴 후에도 일이 많아져서 힘들긴 하지만, 더 열심히 힘을 내야겠다는 도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영혼을 살리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바로 세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목숨 걸고 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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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5
  • “비전교회와 목회자유가족 돕기에 전력” ─ 기감 전 감독회장 김진호 목사
    대한기독교감리회 감독회장을 역임한 김진호감독은 은퇴 이후 ‘비전교회 함께하기 운동본부’와 ‘목회자 유가족돕기 운동본부’에서 섬김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김감독은 “은퇴 전에나 후나 비전교회를 섬기는 일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를 20차까지 했다가 코로나로 잠시 쉬고, 지난 11월 2일에 21차 세미나를 도봉교회에서 진행했다. 60명의 비전교회 목회자를 모시고 그들에게 격려하고 도전을 주고 힘을 얻는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부흥을 하려면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상생이 너무나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상생의 공동체이다”며, “작은 교회는 감리회에서 50%, 전체를 보면 70%를 차지한다. 큰 교회는 책임감을 갖고 작은 교회가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님 앞에는 큰 교회, 작은 교회란 구분은 없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한국교회의 건강한 부흥을 위해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상생은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이다. 국가적으로도 양극화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중차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안에 있는 양극화를 잘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와 국가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 안의 양극화가 극복돼지 않기에 작은 교회 목회자는 여러 가지 세상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꼭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감독은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김감독은 “목회자 유가족은 교계의 사각지대고, 강도만난 이웃 가운데 하나이다. 감리교 안에서 11년째 유가족 돕기 운동을 해오고 있다”며, “특히 놀라운 것은 여수의 진남제일교회에서 1억을 운동본부에 헌금해서 감독회장을 모시고 기증식을 열었다. 현재 감리교 안에서 200여명의 유가족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고 있다. 그 중 꼭 도와야할 가정이 50여 가정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감독은 “기독교신문은 지난 50여 년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정론직필을 한 대표적 교계신문이다. 앞으로도 이 사역이 잘 이어져나가길 기도한다”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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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8
  • 찬송대학의 고성진교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찬송의 예배회복을”
    교회음악의 찬송가학 등 전반적 이론과 실기를 무료로 교육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베아오페라예술원에서는 격조 높은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 나온다. 「고성진찬송대학」에 참석한 40여명의 학생들이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고성진교수(사진)의 지휘에 맞추어 드리는 찬송이다.     정규대학 못지않은 커리큘럼으로 3년 과정으로 진행되는 동대학은 음악 장르, 악전대위법, 화성학, 악곡의 형식, 기보법, 성악의 기초, 찬송가학, 작곡·작사법 등 교회음악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과 실기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고교수는 “대학 1~2년은 기초적으로 찬송가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3년차에는 성가곡까지 다룰 예정이다. 청소년, 목사님, 음악전공자 등이 유입되어서 공부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찬송예배 리더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교수는 한국교회 예배에 대해서도 “지금 대부분 예배는 목사님의 설교 중심이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이기에 예배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내려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찬송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찬송의 예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성가대의 찬양에 있어서도 성도들은 마음으로 동참하지만, 듣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예배 한 시간 전에 모여서 회중찬송가를 연습하여, 본 예배때 부르는 것이 진정한 찬송의 예배이며, 이렇게 변화해 가야 한다는 것이 고교수의 주장이다.   또한 고교수는 “예배시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복음성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은 줄어들고 있다.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에 호도하며 즐기고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찬송가의 문제점도 보완·수정하여 계승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대로 된 찬송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목사님들이 찬송가를 배워서 가르쳐야 한다. 배우고 싶어서 부르시면 기꺼이 가서 가르쳐 드릴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도하는 예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격에 맞춘 예배이다. 복음성가는 예배 외에 불러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배는 예를 갖추어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의 예배이다. 사람을 향하는 가스펠 송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교수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이 있다. 영은 가슴이며, 머리는 이성이다.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인 찬송을 드려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받으실까 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을 바르게 찬송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2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인 지금까지 교수, 성악가로 만드시고, 달란트와 노하우를 갖게 하신 것은 지금 이 때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찬양하는 것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이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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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5
  • 고신대 신대원장 신원하 교수
    고려신학대학원장인 신원하교수는 기독교윤리학자로도 저명하다. 그는 70년대, 80년대 군부독재로 인한 사회를 보며 불의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이 고민이 그를 기독교윤리학자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지점에 대해 “한국교회를 향한 언론의 비판에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며 3대종교 중 가장 많은 구제와 섬김을 함에도 신뢰도 면에서는 다른 두종교에 비해 떨어진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에 대해 “로마 카톨릭이나 불교처럼 중앙 집권적이지 않기 때문에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목사들, 정치적 이념을 토대로 성도들을 이끄는 목사들이 있으며. 이러한 점 때문에 식자층의 비판과 청년층이 교회를 떠나갔다 또한 대형교회 세습문제도 대두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교회 비판세력들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목사들의 신뢰를 높이기 △ 정치적 이념이 아닌 복음에 힘쓰기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고려신학대학원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정원대로 학생을 받지 않고 엄선한 소수를 받아 왔으며,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고신총회와 개교회의 후원이 운영에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학생들이 교육전도사로 섬기는 교회에서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좋은 문화가 있음을 강조했다.   오는 2월 신대원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그동안 미뤄왔던 공부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는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며, 하나님께서 허락을 해주신다면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일하고 싶다며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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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1-12-02
  • 예장 합동복음측 총회장 정재은목사
    정재은목사는 조금 늦은 나이인 1984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울 강서구에서 재적 1000여명 출석 600여명 목회 한 바 있다. 30년 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조카들을 양자 삼아 예수를 믿게 하려는 욕심으로 고향인 화천에 교회를 세워 일반목회를 하면서 몸이 불편 하거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면서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목사는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과실나무를 직접 기르고 수확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 면 더 많은 양의 수확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린 것만큼 ‘행복한 나눔’ 의 열정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1만여평의 부지에 예수마을을 만들어 한 가구당 150평 정도의 마당을 품은 전원주택을 짓고 분양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며 주말엔 함께 예배하는 일이다. 공동시설로 산책길, 운동시설, 캠핑장 등을 만들고 가족이 방문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도 확보 할 예정이다. 터 닦기 공사를 진행 중이고 젊은 시절 건설업을 했던 실력을 발휘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원생활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구상에 대해 정목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있는 삶도 있고. 슬픈 삶도 있다.”며, “사방을 보아도 높은 벽만 보일때도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하지만 실망은 없다.”며, “왜냐하면 어디에도 하늘은 보이니까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에는 빛이 존재한다.”며, “빛은 우리에게 있어 희망을 준다.”고 전했다. 따라서 “내 옆에는 이웃이 있고 이웃 옆에는 사회가 있고 사회 옆에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있기에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며 “우리는 나를 가치 있게 하며 남을 귀하게 여기며 살기에도 하루가 짧은 것 같아 열심을 다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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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 한국교회의 미래목회 포럼을 준비 - 기침미래포럼 이사장 지 덕 목사
      지난 15년 동안 사단법인 기독교한국침례회미래포럼 이사장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목회를 최전선에서 지켜온 지덕목사는, 수도권 원로목사 모임과 여러 가지 맡은 일들을 진행하기 위한 회의참석과 준비 등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기침미래포럼에서 진행되는 제14차 포럼을 준비하며 아주 바쁜 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 포럼은 국제아카데미 대표 이춘근박사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인 안희열박사가 강사로 초대해 「미·중 패권 경쟁과 이슬람」이라는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관계된 사람들의 초청 및 오는 이들의 식사와 그 외 포럼과 관련된 준비사항을 의논하고 진행하는 일로 바쁜 일상이다.   또한 최근 증경총회장이었던 교단의 후배 목사중, 몇 사람의 사모님이 소천했다. 평생 함께했던 아내의 빈자리로 인한, 외로움과 어려움을 먼저 혼자되어 지금도 홀로 지내고 있는 지목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을 초대해 식사와 차를 나누며 시간도 보낸다. 지목사는 후배 목사들에게 “웬만하면 재혼해서 살아라”라고 권면한다.   지목사는 “원로모임을 가다 보니 모두가 몇 달 사이에 시력이 안 좋아지고, 관절이 안 좋아지고, 며칠 사이 건강이 안 좋아지는데 혼자서 사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나는 자녀들도 세명의 아들이 있지만, 목회자로 사역하느라, 교수로 학생들 가르치느라, 파리가 앉았다 후딱 일어나는 것같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권면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목사는 종종 후배 목사들을 만나면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고, 성지순례나 동행할 수 있는 자리는 꼭 동행하며 대화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권면한다며, 행복한 노후생활에 아내의 동행이 중요함을 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일 부흥회를 자주 다녔다. 부흥회는 호세아 6장 1절 말씀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라는 주제와, 요한계시록 3장 19절 말씀으로 「열심을 내자, 회계하자」란 주제로 목회중심, 교회중심의 말씀을 전한다.    지목사는 “부흥회를 하고 나면, 결속이 잘 되고, 성도들이 교회에 더 성실하게 봉사하고, 그 수 또한 많아졌다는 전갈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1-12-02
  • [대담] 창립 131주년 맞은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서진한목사
    131년전 한글출판에 원칙을 세우고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 연합기관으로 한국교회 위기와 문제를 극복하는 출판 준비  대한기독교서회가 창립 131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는 23일 기념예배를 드린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지난 10월 5일 이를 기념하는 뜻 깊은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 행사는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사도 큰 관심을 갖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만큼 서회의 역사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한편 인터넷 매체의 비약적인 발달로 출판 환경은 이전과는 달리 점점 위축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회의 역사와 의미,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해 서진한 사장님에게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서사장=기독교서회가 1890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 131주년입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념행사를 할 상황이 아니어서, 올해 130주년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역사를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130주년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큰 역할을 하였던 지난날이 자랑스럽지만, 그 역사를 계승해야 할 오늘 우리의 과제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서회는 1890년 장로교 선교회와 감리교 선교회가 만나서 연합기관을 만들며 출발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서사장=기독교서회는 장·감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선교연합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대한성서공회조차 기독교서회가 설립되고 나서 5년이 지나 영국성서공회의 지부로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한국에 교단이라는 형태의 조직이 생겨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고 교단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선교 초기나 한국교회 초기에는 연합의 정신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신앙이고, 하나의 교회이니 교파가 달라도 서로 협력하여 선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장·감이 주축이 되었다고 하나, 서회의 초대 전임총무는 본윅이라는 구세군 사관이었습니다. 교파의 벽을 넘어 모두 하나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교단 중심주의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연합사업은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단의 힘보다 대형교회의 힘이 더 커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해외선교도 교회별로 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정입니다. 따라서 공교회의 연합활동은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선교 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라는 생각으로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는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동의 선교활동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 ▲서회와 한글 보급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회의 출판물이 한글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한글’을 주시한 이유와 서회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서사장=15세기에 반포된 한글은 수백 년 동안 공식 언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문과 국문이라는 이중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한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운데 부녀자들을 위시한 민중들만이 언문으로 불리는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내한한 선교사들은 한글을 배우는 것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고유문화와 전통, 종교와 역사를 접하였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글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한글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인식한 선교사들은 ‘선교 언어’로 한글을 채택하고 성경과 찬송가, 각종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발행했습니다.    조선예수교서회 헌장 제2조에 보면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 간행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한글 출판의 원칙을 세운 서회는 많은 영역, 많은 종류, 많은 부수의 책을 한글로 펴내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하였고, 한글이 겨레의 주류 언어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서회는 단행본 이외에도 많은 정기간행물을 발행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특히 월간 「기독교사상」이 한국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고 봅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그동안 「기독신보」, 「새벗」, 「가정생활」 등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발행해 왔습니다. 현재 발행하고 있는 정기간행물은 격월간 묵상집 「다락방」과 월간 「기독교사상」입니다. 「기독교사상」은 1957년 6·25한국전쟁이 끝난 뒤의 혼란 중에 창간됩니다. 창간사를 보면 당시 기독교서회는 전후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상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바른 신앙처럼 바른 사상을 세워야 한국사회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   「기독교사상」은 창간 이후 한국 지성계의 대들보 역할을 하면서 한국사회와 민족, 그리고 교회와 신학을 위한 매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의 비종교화, 세속화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이 소개되었으며,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이 배태되었습니다. 5공 시절에는 6개월간 정간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한편, 한국 기독교의 다양한 신학사상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찬송가 관련 저널발행해 연구심화  ▲서회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구성을 보면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이 참여하는 연합기관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참여하는 회원이지만, 교회협의회에 속한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협의회는 기독교서회가 활동을 시작한 뒤 약 30여 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면서 조선기독교공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이 출범에 도리어 기독교서회가 크게 기여하였을 것입니다. 해방 후 기독교공의회는 기독교연합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는데 이때에도 교회협의회는 종로의 기독교서회 건물 내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서회는 교회협의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에 있습니다만, 기관의 성격과 역할이 다릅니다. 기독교서회는 활자 또는 출판을 통해 선교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협의회는 회원교단과 기관들의 회비를 기본으로 삼지만, 기독교서회는 자립적 재정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 최초의 찬송가인 『찬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찬송가를 발행해오고 있는데요, 초기 찬송가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현 찬송가의 문제는 무엇인지, 또 찬송가의 발전을 위해 서회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창립 초기부터 찬송가를 개발하고 발행해 왔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 조사(돕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서양 찬송가를 번역하였고, 또 당시 조선인들이 쉬 접근할 수 있도록 5음계를 감안하여 편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보고서에는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찬송소리가 좋아서 찬송을 배우게 되고, 찬송을 제대로 부르고자 손녀에게 한글을 배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찬송은 노래였기 때문에 당시 못 배운 분들, 특히 부녀자나 아동들이 쉽게 익힐 수 있었고, 이것은 복음전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에 한국교회의 찬송가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신편』, 『신정』, 『부흥성가』로 분열되었을 때도 기독교서회는 기독교연합회(교회협의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교단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결국 하나의 찬송가 『합동찬송가』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찬송가는 한국교회의 연합, 동시에 분열의 궤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래 찬송가는 교회연합기관과 교단들이 관리하는 책이었으나, 일제하부터 이권을 생각한 사람들의 분열 획책, 또 최근 몇 십 년 사이에는 이권을 염두에 둔 일반 출판사업자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한국교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국교회가 이처럼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찬송가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적 심성, 한국인의 신앙고백, 한국적 선율이 아름답게 구현된 찬송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현재 한국 신앙인들이 애창하는 동시대 음악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3년부터 찬송가공회가 설립되면서, 이런 연구의 역할이 찬송가공회로 넘어갔습니다만, 기독교서회는 향후 교회음악, 혹은 찬송가 관련 저널을 발행해서 이 분야의 논의와 연구를 심화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사명을 모색할 출판 준비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출판사로서, 또 연합기관으로서 현재 기독교서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의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서사장= 활자의 시대, 출판의 시대가 급격히 기울어 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서회는 출판을 도구로 삼아 출범한 연합기관이라 여전히 글자와 문서를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6·25한국전쟁 이후 북쪽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월남했고, 남쪽에 여러 개의 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신학교 숫자가 많아진 것은 교단 분열의 탓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의 재정은 극히 열악했고 더 심각한 것은 교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학교들이 신학교육기관협의를 구성하고 기독교서회에 교재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기독교서회는 초기에는 번역서, 이후에는 한국인 저술서 등 각종 신학교재들을 개발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학교육기금의 도움도 받고 수십 년 동안 찬송가 판매의 이익금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학교의 재정이 기독교서회보다 훨씬 커졌고, 신학교 출판부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신학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면서, 새 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모색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로는, 신학교의 신학과 교회 목회 및 신앙생활의 괴리, 교회 내 청년 신도의 급격한 감소, 교회와 사회의 장벽 혹은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기도가 절실합니다.   청년의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의 언어는 이미 한국사회에 소통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님이나 신부님의 인생살이 관련 책은 비신앙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의 책은 딱 교계 안에서만 회자됩니다. 이 현실이 소통의 벽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는 한국사회에 가치관에서나 생활태도, 한글 보급이나 의료, 교육 등 문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이제 빛바랜 추억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몇 가지 점들과 관련해서 기독교서회의 새로운 일들을 모색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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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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