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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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와 생활 [19] 그리스도인의 영성-부활(새창조)의 영성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살전4:14) 사실은 영원한 복음이다. 이 복음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딤후2:8)를 그리스도인이라한다. 복음을 영접한 자는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다. 아담 이후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천국의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부활 이전의 세계는 사망이 왕 노릇하는 사탄의 제도 아래 있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의 세계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8:2) 아래 있게 된 것이다. 부활이라는 새로운 창조 안에는 죽음이 사라졌다.  부활의 승리를 통해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하셨다. 부활이 가져온 것은 옛 창조를 끝내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마주하게 되면 십자가를 통해 옛 사람이 죽었다는 계시를 받게 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서 죽은 자신을 장사지내야 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세례(침례)를 통해 시인하게 된다.   십자가를 통해 아담에게서 나온 모든 것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함으로 그의 부활과 연합되는 길로 나아간다.(롬6:5) 하나님은 십자가로 옛 세상에 속한 것을 다 제거하셨다. 그리고 부활의 새로운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부활이 가져온 새로운 것을 의지하여 살게 하셨다. 이것은 믿는 자에게 놀라운 복음이 된다. 주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한량없이 주신다는 복된 사실을 알게 하셨다.   십자가로 우리를 제거하시고 부활로 인해 새 생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주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부활이 내 안에 들어와 새로운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부활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육의 성분으로 살지 않게 된다.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영적 기능을 가지고 새로운 왕국인 새 세계로 들어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부활 생명이 선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부활 생명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신다./대전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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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11) 노루들과 들 사슴들로 부탁한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나를 욥처럼 건포도 되게 하시어 순교하기까지 감사·찬송하게 하신다.   2:7 오 너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노루들과 들 사슴들로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그가 원하기까지는 내 사랑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     예루살렘의 딸들은 신부 성도가 아닌 육적 신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신부 성도가 사랑하는 이를 노루와 들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다. 노루와 들 사슴 같은 주님이 원하기까지는 절대 내 사랑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루와 사슴의 특징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금방 알아차리고 날렵하게 도망가고 만다. 주님이 노루와 들 사슴 같으시니, 그분이 지금 나를 껴안아서 하나로 결합 된 상태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언제까지 신부 성도와 이 같은 한 몸 된 상태를 원하실까? 주님이 내게 들어오셔서 주님의 진리의 사랑을 깨우쳐 나의 아구까지 채우시되 내가 진리를 증거 하는 자가 되기까지 원하신다. 여기서 왜 주님을 노루나 들 사슴으로 비유하였나? 이는 그들의 특성인 굽이 갈라진 것, 약초만 먹는 것, 맑은 물을 마시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즉 노루와 사슴이 굽이 갈라진 것은 레위기 11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거룩한 것에 속함을 뜻한다.     이와 같이 주님은 거룩한 분이시며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또 노루가 땅을 밟지 않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 되신다. 노루는 약초만 먹고 자라서 몸 전체가 사람에게 약이 되는 것과 같이 주님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 되신다.  또 맑은 물만 마시는 노루와 같이 주님은 진리의 생수가 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사해주셨다. 그의 피를 힘입은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계속하여 일곱 영까지 충만케 부어주신다.   2:8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여! 보라, 그가 산들 위로 뛰며 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 도다.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주님의 음성은 육신의 귀에 들리는 그런 소리가 아니다. 영의 귀로만 들을 수 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심령에 세미하게 주님의 말씀과 뜻을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이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는 자는 그 사람 안에 과연 예수님이 계실지 의심이 된다.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이 들리듯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부어주신 성령이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신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성령이 깨우쳐 주신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몇 마디의 말씀만을 일일이 깨우쳐 주는 차원이 아니라 인격자이신 주님이 인격자인 내게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모든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대화하듯 말이다. 첫 번째로 깨우쳐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다는 것이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성령으로 알려주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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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
    배에스더목사 (마르페선교 센터장)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쩜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터널을 지나간 뜻하여 한숨을 돌리고 쉬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터널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의 삶은 왜 이리도 잘 안 풀릴까? 하나님은 정말 나를 돕고 계시는 것이 맞을까’를 생각이며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가 믿음의 영적인 눈을 뜨고 보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되면 일어날 수 있는 흔한 현상이라고 본다.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말씀들을 놓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사역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형태의 질병과 싸우고 있는 성도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질병에서 나아지길 위해 늘 간구한다. 나 또한 그랬었기에 백번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질병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라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언급하셨다.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꽃길만 걸으며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꽃길이란 역경과 고난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삶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과 질병 속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연연해 있지 않고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모든것이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감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가 오히려 모든것에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감사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하는 사람들 중에 여러 형태의 중독의 문제로 만날 때가 있다. 사실 중독을 끊어 내기란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호소를 외면할 수가 없다.    중독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별히 기독교인이면서 중독에 빠져 산다는 것은 수많은 죄책감과 함께 자기 비하에 이르게 되므로 많이 위험하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을 먹어 보기도 하고 입원치료도 받지만 여전히 이들은 또 다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중독에서의 치유.......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지만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 이들이 잊은 것이 있다. 감사이다. 허덕임의 중독 속에 감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내가 주도하려 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주도 하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감사는 모든 중독에서 자유로워지는 첫 걸음이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고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감사하기를 시작해 보라 놀라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거듭 나는 날이 속히 오리라 믿는다. 모든 질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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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에레모스 영성7] 광야를 길 삼아
    산 좋고 물 좋고 풍치 좋은 자연 환경, 광야에는 그렇게 즐길만한 것들이 없다. 또한 광야를 간다 하더라도 쉽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넓은 길은 상인들의 무역 거래를 위해 생겨났거나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마찻길이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의 품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야에는 그러한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넓은 길은 다 놔두고 길도 아닌 광야 길을 걷도록 하였다. 홍해를 길로 만들어 걷도록 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은 광야를 길로 삼아 걷도록 하셨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약속의 땅, 가나안 까지 열하루면 되는 지름길을 놔두고 40년의 세월 동안 광야를 걸어야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길은 어떤 의미일까? 모세는 이집트 왕 파라오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광야로 내 보내라’(출애 5:1)는 말씀을 전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는 광야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조상의 이러한 광야 체험을 대를 이어 간직하고 기억하였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명 8:2)는 말씀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왕국을 세운 뒤에도 줄곧 되뇌어지면서 마음 한복판에 새겨졌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 여정 그 자체가 순례자의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서 이집트의 시내 광야를 걸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홍해도 길이 되고 광야도 길이 될 수 있었다면 그런 점에서 광야는 길 그 자체가 아닐까. 광야 어느 한 쪽으로 길을 내지 않더라도 그 모두를 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우리도 구름 기둥으로 또 불 기둥으로 고백되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이미 광야로 내 보내진 존재이니까.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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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백석대 이사장 박요일목사
    백석대 이사장인 박요일목사는 말씀과 기도중심의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지난 세월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고 감사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했다.   박목사는 고려대 법대 졸업후 총무처 문화공보부에서 공직으로 5년간 일하다가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또한 성결대, 백석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강성교회를 설립하여 41년간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16년간 백석총회 유지재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197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으로 출발한 강성교회는 1996년 백석총회에 가입했고, 강성교회 재산을 총회에 기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7년 유지재단을 세웠다. 유지재단은 영안교회와 흰돌교회, 그리고 강성교회가 함께 세웠고, 박목사는 초대 이사장부터 다섯 번 연임하며 총회와 재단을 위해 봉사했다.   박목사의 설교에는 한결같은 원칙이자 철칙이 하나 있다. 설교주제를 목사의 재량으로 정하지 않고, 성경에 쓰여진 순서와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목회철학이다. 강성교회는 매 주일 새벽 5시 30분 예배, 그리고 오전 9시와 11시 예배, 오후 찬양예배가 있다. 예를 들어, 성경본문 1~5절을 새벽에 전하고, 6~10절은 오전예배때 전하고, 11~15절을 오후에 전하는 방식이다. 매 주보에는 그날 설교문이 그대로 담겨있다. 수요예배 설교는 지난 주일예배 설교를 복습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주중에 교인들은 주보에 쓰인 지난 설교문을 읽고, 한주간 말씀 속에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또한 구역예배 인도자에게는 다음 주일 설교문을 보내주어 말씀을 예습하도록 한다.   이 원칙을 지난 40여년간 한결같이 지켜왔다. 그동안 설교가 생뚱맞거나 엉뚱한 주제가 아닌, 때마다 필요한 말씀이었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고 박목사는 고백한다.   박목사는 “하나님은 고정된 말씀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오래된 말씀이지만 그것을 전할 때 말씀은 생명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어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힘이 발휘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목사의 설교준비는 마치 ‘어머니가 밥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100% 무공해는 어렵지만, 저공해로 영양가 있는 밥을 지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목사는 신약과 구약을 골고루 섞어야 한다며, 어느 한쪽을 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박목사는 “세상의 법은 오심을 방지하기 위해 3심 재판제도를 둔다. 설령 사형이 선고되더라도 사면복권이나 재심의 기회가 있다”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한번 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잘못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언제나 옳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심판을 두려워하며 평소에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교회를 향해 말씀중심으로 가야할 것을 권면했다. 그는 “목회자가 깨어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말씀중심으로 가야 한다. 성경에 모든 답이 있고, 길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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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정론] 예수부활의 현대적 의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확실성을 가진 역사적 사실이다. 단순한 생명 회복도 아니요, 윤회도 아니요, 환상적인 영적 부활도 아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살과 뼈가 다시 살아난 육신의 부활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절대적 필연성을 가진 사건이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었다면 성경도 거짓이 되고,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성도들은 불쌍한 자 중에 더욱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트만과 같은 실존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타심을 가진 진정존재가 이기심을 가진 비진정존재를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개인의 의지적 결단의 차원보다 훨씬 높은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적어도 네 가지의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부활은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하나님이 승리하신 사건이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 예수님만 죽이면 자기가 승리하리라고 생각하여 세상의 정치권력, 종교권력 모두를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다시는 죽으실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마귀를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패배자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리가 확정되었다.   둘째로, 부활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에서 진리가 승리한 사건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비진리가 진리를 죽이려 했지만, 진리는 다시 살아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비진리를 따르는 자는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히 사는 영생이다.   셋째로, 부활은 사랑과 미움의 싸움에서 사랑이 승리한 사건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가득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부활 사건은, 미움의 사역은 실패할 것이요, 사랑의 사역은 승리함을 보여준 사건인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 가장 낮아짐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보여주는 빛이다.   넷째로, 부활은 생명과 사망의 싸움에서 생명이 이긴 사건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25절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셨다. 사망은 인류의 마지막 원수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린 사건이다. 사망의 그늘 아래 거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 소망을 건네주신 것이다.   2024년 부활주일을 맞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따르고, 사랑을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승리를 경험하시기를 기원한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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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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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를 갈망하는 성도의 눈물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진 된지 수개월 만에 전 세계를 점령군처럼 지배를 했고, 계속해서 바이러스 확산세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면서 선진국이나 후진국들이 모두 무차별 공략을 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방역당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규제조치를 선포함에 따라, 교회역시 대형교회나 소형교회가 대부분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대치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한편 교회 출석예배를 갈망하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심히 갈급한 상태여서 성전예배의 길이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대면예배를 못 드릴 경우에는 온라인 예배를 하지 않고 주보와 설교문 등 예배자료를 각 가정에 우편으로 발송을 해서 각자가 주일과 주중에 대면예배를 드리도록 조치하고 있다.   지난주일 교회 중직자 몇 사람만이 교회에 모여서 오전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성도들의 가정에 전화로 심방을 했다. 그중에 92세 된 권사님이 전화를 받더니 ‘목사님,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6.25전란 때를 제외하고는 주일 예배를 교회에서 한 번도 못 드린 적이 없었는데 이게 웬 일이지요’라고 하면서 통곡을 하는데 나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최근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수많은 교인들이 물질문명과 세상쾌락에 유혹을 받고 마치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해서 교회를 떠나고 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믿음을 마귀에게 송두리 채 도난당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영적싸움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이런 질병이 사라지지 않고 팬데믹(pandemic)시대가 지속된다면 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믿는 자의 수난기인 우리 시대의 특징은 가치관의 혼돈이다. 믿음의 가치를 상실한 이때에 교회는 신앙의 절대적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예배 없는 성도의 삶은 죽은 신앙이며 예배를 통해서만 신앙을 유지 또는 성숙시킬 수 있고 피조물인 인간이 예배를 통해서만이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와 영성이 회복될 수 있다. /예장 합동선목 전 총회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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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0-09-25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26
    구한말(舊韓末) 한국교회의 시작과 발전, 부흥의 과정에서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영혼을 사랑했으며, 초기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쌓아올린 성과 때문에 교만에 빠져 있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을 담아 우리나라에 입국한 소중한 선교사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데 테레사보다도 18년 앞서 여성들과 소외되고 외면 받는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소록도에 한센병 요양시설을 만들게 한 장본인으로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생애를 살았던 진정한 예수의 제자인 주인공 서서평 선교사이다.       서서평(徐舒平)은 1880년 9월 26일 독일 남부 비스바덴에서 미혼모 안나 셰핑의 딸로 출생했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Elisabeth Johanna Shepping)으로 미국에 있던 어머니에게 가톨릭 신앙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의절을 당했다. 그러나 1911년에 동료 선교사 포사이더(Forsythe)로부터 그녀의 인생에 최대 터닝 포인트가 되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이 있는데, 그곳에는 의료시설, 위생관념조차 부족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의사에 의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은 엘리자베스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 소명으로 간호사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장로회에서 파송하는 해외선교사로 자원하게 되었다.   드디어 엘리자베스가 32세 때인 1912년 2월 20일에 조선으로 향하는 여객선 코리아호(S.S.Korea)를 탔다. 약 20여 일 동안의 항해 끝에 그녀가 한 번도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조선의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녀는 성격이 급하고 활발하여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자국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한국어로 조선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열심히 배웠다. 조선에 입국한 서서평은 파송선교회의 스케줄에 의해 서울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 양성 교육과 기독교 선교활동에 임무를 받아 최선을 다해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 후 1919년 전국적인 3.1독립만세운동이 불길같이 터지자 서서평은 만세운동에서 부상당한 조선인들을 친절히 치료해 주었다. 또한 투옥된 독립 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하며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일제가 서울 세브란스 의료 활동을 금지시키자 그녀는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가 선교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광주 제중원의 간호사로 의료,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서서평 선교사는 지방으로 내려온 후부터는 목포, 제주도, 전주와 군산, 광주 등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여성들에게 성경공부와 삶에 절대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구암 예수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그녀의 탁월한 기획력과 사업 수완을 동원하여 타병원에 비해 한국인 조수, 입원 환자 수, 진료횟수가 월등히 높은 성과를 내는 병원 경영의 발전을 보였다. 그녀는 병자, 간호학교, 육아사업, 윤락여성구조, 빈민구제, 이일학교 설립의 사역으로 헌신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된장국에 보리밥을 좋아하고 검은 고무신을 싣고 다니며 전도와 교육, 사랑의 실천을 하는 동안 만성 풍토병과 영양실조, 극도의 약한 체력의 상태로 그녀는 54세인 1934년 6월 광주에서 22년 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소천 하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동전 7전, 강냉이 가루 2홉, 담요 반장, 다른 반장은 다리 밑에서 자고 있는 걸인에게 나눠졌다. 마지막까지 조선 땅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시신마저 병원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였고 그녀의 장례는 광주 최초로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한센병 환자, 노숙자 수천 명의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광주의 ‘어머니’라고 울부짖으며 애도의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그녀는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 108번지 선교사 묘원에 고이 잠들어 있다.   생전에 서선교사는 ‘조선의 어머니’로서 14명을 양아들, 딸로 입양하고, 매년 4만 여명 이상의 여성들을 만나 교육시켰다. 여자 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학교 전신)를 설립하였으며, 조선여성절제회, 여성전도회연합회, 조선간호부회, 부인조력회 등을 조직하여 소중한 한 여성으로 성장하도록 기독교 정신으로 선교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2017년 4월에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가 영화관에서 개봉되어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미혼의 몸으로 타국에 와서 진정한 십자가 희생과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며 무소유의 생활로 나보다 더 약한 자를 위해 살다가 천국으로 이사한 서서평 선교사를 기리며 우리도 그녀의 신앙과 삶에서 교훈을 얻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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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9-23
  • 나돌섬선교회 대표 이천식목사
      “십자가를 짊어진 그리스도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복음의 메시지를 다시금 깨달아 이를 알리고 실천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천식목사(사진). 파주시교회시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천식목사는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사실을 알리고자 나무 십자가 조각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이웃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전한 이목사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인간을 위해 내놓으신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 또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며, “길거리에 버려진 나무를 보면서 세상 속에 버려진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이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나무 십자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지는지 깨닫게 됐다”며, “그 무엇보다 크신 사랑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담는다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천식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보여 주신 희생을 우리가 묵상하여 그분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를 마음속 깊이 새기길 희망하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보여 주셨던 섬세한 손길을 기독교인이 느꼈으면 좋겠다”며, “한국교회가 가르침과 전파, 치유로 대변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변화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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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지파운데이션 박충관대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파운데이션(대표=박충관·사진)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후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8월,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 랑콤(대표=크리스티앙 마르코스 아르나이)이 ‘랑콤×수지 뷰티 북 판매 수익금’을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을 위한 생리대 16,800팩으로 동 단체에 기부 했다. 랑콤은 지난 5월 배우 수지와 뷰티 북 ‘OBSESSION WITH SUZY’을 통해 모든 여성들의 당당한 자신감과 진정한 행복을 응원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아냈으며, 뷰티 북 판매 수익금 전액을 생리대로 지파운데이션에 기부함으로써 여성으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될 여성청소년들의 행복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파운데이션 관계자는 “판매 수익금을 이렇게 생리대로 기부해 주신 랑콤과 배우 수지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랑콤 관계자는 “배우 수지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해 주신 덕분에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에게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모든 여성들의 진정한 행복을 응원한다”고 전했다. 동 단체는 2016년 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국제개발협력NGO이며, 국내 아동·청소년지원사업, 독거노인지원사업 등을 비롯해 해외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교육지원, 보건의료사업 등 활발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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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실로암]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내게 어린놈이 분수에 맞지 않게 유난떤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나는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시간이 되면 죽게 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고를 위해서 보험도 드는데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해서 덮어두는 것은 내 성격이 견디기 힘들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 오랜 삶을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지독하게 후회스러운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방문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집을 난장판을 벌이고 돌아가는 어린 조카처럼(난 아직 조카가 없다만) 잘 다스리고 있는 줄 알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내 속에서 난장판을 벌일 때가 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지난 시간들이 혹시라도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미래의 내가 되지 않도록 나를 건드린다. 과거의 것들을 마주하는 것은 지금도 괴롭지만 그나마 성장한 것은 괴로움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후회하는가’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와도 같다. 내가 이전 어린 시절에 후회하던 것들은 다른 청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 되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완전히 자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가지 통찰을 얻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변하면서 취향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후회하게 될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고 이 말은 또 이전에 후회하던 것들 중에는 ‘내가 왜 그런 것을 후회했지?’ 생각하게 될 것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바라기 때문에 내게 고통이 되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없어도 덤덤한 것들, 저것을 소유하기 위해 목숨 걸었다면 큰일 날 뻔했을 것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후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난 마지막 때에 후회하긴 싫다. 난 소위 ‘세상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물질이나 쾌락이나 권력이나 하는 따위의 것들(이것을 죄악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자유롭지는 않기에 나름 이 마음가짐에 거짓이 없도록 노력한다. 마치 실수로 유튜브로 결말을 봐버린 영화가 재미없고 따분한 것처럼 가질 만큼 가져보고 놀 만큼 놀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들로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빠듯한 점심시간에 아내와 식사하고 10분 낮잠 자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행복감은 이해와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럴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존재방식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처음 지음 받았을 때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해와 사랑이 가득하길 원한다. 그래서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 깨어진 것들이 사역의 짐으로 느껴진다. 복구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지만 건드리지도 못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훗날 마지막에 후회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공동체를 더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싶고 그렇게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고 때로는 진흙탕 물을 솟구쳐 올리는 땅처럼 후회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배우고자 한다. 어리석고 한심한 내 자신을 깨닫게 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스멀스멀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끌어 주실 것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신뢰한다. 또한 나를 이끌어주듯이 저 사람도 이끌고 계실 것이기에 난 후회할 짓을 좀 덜했으면 좋겠다.  /강릉중앙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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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쉽게 배우는 한의학 27] 아토피성 피부염(2) - 아토피의 원인
      주지하다시피 아토피는 단순히 피부질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전적 배경에서부터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면역학적 이상, 피부 장벽의 이상, 환경적ㆍ사회적 인자 및 심인성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토피는 아직 그 원인이 규명되어 있지 않은 난치성 질환으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다. 이제 아토피를 유발하는 원인들을 찾아보고 그 내용을 살펴보는데, 아토피를 유발하는 원인들은 동시에 아토피의 악화 요인이기도 하다. 1) 환경적 요인: 먼저 공기오염 문제로 오존층 파괴되어 햇빛은 옛날의 햇빛이 아니고, 냉난방을 위해서 실내 공기를 밀폐하며, 더구나 현대인은 야외활동이 거의 없이 대부분을 실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문제이다. 환경오염 물질로는 각종 해로운 화학 물질과 합성세제 외에도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종이와 플라스틱용기와 음식물을 담는 스티로폼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생활용품들에서 화학 물질이 나오고 있다. 생활환경과 작업환경에 의해 의류와 먼지의 자극에 의해서 가려움이 심해지고 긁으면 표피가 벗겨지고 출혈이 생기며 2차 감염이 될 수 있다. 피부에 직접 작용하는 세제는 보건위생의 입장에서 보면 필수적인 생활용품에 해당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세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니 피부가 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렇다고 세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같은 차원에서 화장품도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또한 시멘트 구조물은 습도조절이 쉽지 않아서 생활환경을 건조하게 하는데, 이것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유발하는 인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새 책, 새 장난감, 새 가구, 새 옷 심지어는 신문 등 수많은 환경오염이 아토피를 유발하고 악화시킨다. 새집증후군: 건물을 구성하는 건축자재에서 각종 오염 물질이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새집증후군을 야기하는 시멘트이다. 신축 가옥이나 빌딩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현기증, 구토, 안통(眼痛), 가려움증 등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는 건축 자재에 사용되는 포름알데히드나 휘발성 유기화합물, 라돈과 석면 등이 원인 물질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내 공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오염 물질에 대한 규제와 기준치 설정 등 적극적인 정책과 연구가 필요하며, 각 가정에서는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가 잘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확실한 대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집먼지진드기(헌집증후군): 주거환경의 관리를 위한 생활 개선 중 중요한 것은 집먼지진드기의 사체와 배설물이 호흡기관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과 습진 등의 피부질환을 유발하고 아토피는 60% 이상이 이 때문에 발병한다고도 한다. 또한 헌집증후군이라 하여 오래되고 낡은 주거환경에서 발생하는 집 안의 먼지에 집먼지진드기가 기생하면서 발생하는 배설물과 진드기의 사체가, 인체의 호흡기관으로 흡입되어 알레르겐으로 작용하여 면역력을 떨어뜨려서 자가면역성 질환을 유발한다는 설도 있다. 진드기가 서식하기 쉬운 환경을 개선해 주고, 진드기가 기피하는 초극세사로 만들어진 침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경희신창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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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9-16
  • JC무역 임재현대표
      보건마스크·대인소독기 등 코로나 방역위한 상품 판매“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선교사역 활발히 전개해 나가야”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스, 에볼라,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까지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다. 이제는 손 소독과 열 체크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시점에 다다랐다. 철저한 방역만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손 소독, 열 체크, 전신 소독이 동시에 가능한 대인소독기를 보급하고 있는 회사가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C무역 임재현대표(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임대표는 V-Rex 대인소독기를 전국에 유통·판매하고 있다. 임대표는 “V-Rex 대인소독기는 교회, 학원, 식당, 빌딩 등 다중이용시설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제품은 센서에 의해 살균액(차아염소산수)이 자동으로 분사되는 방식이다. 개별분사, 연속분사로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아염소산수는 미국, 일본 등에서도 식품첨가물로 승인될 만큼 안전한 소독제로 강한 살균력을 발휘하는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다”고 덧붙였다. 또 “V-Rex 대인소독기는 바퀴가 장착돼 있어 이동하기가 편리하고 부스형태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외부 유입물질을 차단함으로 사람의 전신을 소독하기에 안성맞춤이다”고 설명했다.  임대표는 회사를 운영하기 전에는 C국에서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였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만 7년간 사역을 감당했다. 회사 설립 배경을 묻자 “국내에 입국해서도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선교에 관한 콘텐츠를 제작, C국 선교사역을 계속 이어 나가던 중 자금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포기할 수 없어 자비량으로 선교를 위해 JC무역 회사를 설립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사역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더 활발히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하나님께선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 자연을 만드시고 인간이 창조된 이후에도 자신의 섭리를 이 세상에 끼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사역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복음전파라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지키는 데에는 항상 힘써야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 문화가 바뀌고 문명의 형태가 바뀌듯 코로나19의 시대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선교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교회가 힘써야 한다”라는 것이 선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라고 밝혔다. 대인살균소독기 사업과 더불어 마스크를 보급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임대표는 “전도·선교용, 심방용, 가정용, 일상생활용 등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며, “마스크는 모두 국내산이다. 사용 용도에 따라 그에 맞는 로고를 새겨 넣어 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임재현대표는 찬양사역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극동방송에서 ‘우리 교회 좋은 교회’라는 프로그램을, CTS기독교티비에서 ‘실버파워 무지개’를 진행했다. 또한 크리스천뮤직 전문 채널 CMTV에서는 국내 찬양사역자들이 다수 출연하는 찬양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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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9-16
  • 인간관계의 원리 (5)
      3. 이웃을 기쁘게 한 기쁨은 사랑으로 충만한 기쁨이어야 합니다.빌레몬 1:7에 “내가 너희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위로를 얻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기쁨은 사랑으로 충만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전제로 기쁨만이 남을 기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사랑이 없는 기쁨은 진정으로 기쁨이 아닙니다. 사랑 가득한 가슴이 우리 이웃에 많은 기쁨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4.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상대를 대접한 행위입니다.인간관계의 기독교의 황금율이 있습니다. “무엇이 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데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눅6:31)입니다. 대접하다의 원어는 포이에오(poievw)인데 ‘베풀다’의 뜻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으면 합니다.남이 자신에게 베풀 때 저절로 기쁨이 넘칩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상대를 대접하는 행위입니다.5.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결국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본문 2절에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성경에 보면 주의 일을 염려하며 어찌하여 주를 기쁘게 할꼬(골전8:32)하는 자가 있습니다. 장가 간 자가 세상을 염려하며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고전 8:33)하는 자가 있습니다. 시집 간 자가 세상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남편을 기쁘게 할꼬(고전8:34)하는 자도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의 덕도 세울 수 없습니다. 신앙의 덕도 세울 수 없습니다. 진실로 네 이웃(약자)을 기쁘게 하는 것은 정신건강의 제일 가는 조건입니다.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는 정서가 안정된 자요,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자입니다. 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는 감정과 지성을 잘 조절하는데서 생깁니다. 인간관계를 이루는 일은 이웃의 필요로 알고 채워 주는 그런 관계가 될 때 선을 이루고 덕을 이룰 수 있습니다.세 번째 원리는 서로 수용하는 일입니다.본문 7절에 “이러므로 그리스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하였습니다.강한 자나 약한 자나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인간관계의 원리는 서로 수용하는 일입니다. 수용은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성격이나 환경 그리고 습관이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이 수용입니다.1. 서로 다른 성격을 그대로 수용해야 합니다.인간관계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성격입니다. 성격유형은 Enneagram에서는 9가지 성격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모든 성격마다 강점이 있는 반면에 약점이 있는 법입니다.이러한 점을 거부할 때 부부갈등이나 조직의 갈등, 사회적 갈등까지 야기 시키는 것입니다. 8유형은 지도자형으로서 힘이 강하고 지배적인 사람으로서 모든 성격유형 중에서도 가장 독립적이며 타고난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지만 타협은 못하고 “욱”하는 성격의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9유형은 조정자형으로써 평화롭고 편안하며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모든 성격 유형 중에서 가장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유형이지만 우유부단하고 끔적도 않는 곰같은 고집을 지닌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1유형은 개혁자형으로써 합리적이며 원칙적이며 완벽주의 사람으로 모든 성격유형 중에서 타고난 부지러움과 근면을 바탕으로 빈틈없이 근검절약하는 유형이지만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고 과도한 비판과 지적을 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0-09-16
  • [성경의 죽음 28] 풀과 같은 인생일진대
      월요일에 훌쩍 가족과 함께 춘천에 와서 강원대학교 앞 유유자작, 조용한 카페에 앉았다. 오늘은 공지천을 걷고 싶어 왔다. 여기 춘천에는 예전에 잠깐 군 생활을 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는 이도 없고 만날 이도 없어서 편안하게, 자유롭게 걸었다. 춘천은 봄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봄내골’ 춘천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 마을버스 뒤 꽁무니에도 ‘봄봄’이란 글이 정겹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여기는 가을도 좋다. 이제 제법 서늘해진 가을날씨에 공지천을 걸으면 매우 좋다. 졸졸 흐르는 공지천 맑은 물소리도 좋고, 풀벌레 소리도 좋다. 무엇보다 가을 초입의 파란 하늘이 보기 좋다. 대부분 하천 주변이 그렇듯 공지천에도 풀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강아지 풀이 반갑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들꽃들은 대부분 작게 수줍게 소박하게 피어있다. 그래서 애잔하기도 하고, 더 마음이 쓰이는 꽃이기도 하다. 이사야 40장 6절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우리 인생들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누구나랄 것이 없이 풀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놀라운 업적을 남기거나 남들이 할 수 없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단언하기를, 그런 모든 인생들도 풀이라고 하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창세기의 설명처럼 여호와의 기운이 처음 붊으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운이 다시 불 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봄바람 같은 여호와의 기운이 온 들판에 불기 시작하면 움트고 싹들이 돋아나지만, 여름 바람 불어오면 짙게 녹색으로 물들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하나둘 시들어 버리고, 초겨울 바람 불면 들꽃은 하나둘씩 땅에 떨어지고 만다. 뉴스를 보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겁을 먹거나 불안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뉴스를 보며 기도하자고 권한다. 지금도 뉴스에는 온통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다. 권력이 오래갈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 동참하고, 자기 의를 주장하고, 남들을 비방하며 외치는 사람들이 뉴스 화면에 가득하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은 흐르고 멸망의 때는 가까이 오는데 여전히 회개하지 못하는 인생들을 향해 선언한다.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선지자의 경고를 들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인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사야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이사야 40장 8절). 이사야의 예언은 고레스 왕의 해방선언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다. 도저히 구원의 날이 올 것같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날이 선포된 것이다. ‘말씀의 성취’ 오늘 이 시대에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은 인생들에게 선지자처럼 여전히 외쳐야 한다.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 어느덧 우리 인생에 죽음은 가깝게 다가오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 것이기에 오늘도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죽음 앞에서 여러분이 붙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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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마라나타 13] 장자의 명분
      리브가는 아들들이 태 속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 여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리브가는 먼저 여호와께 묻고 여호와께 대답을 받았다(창 25:22). 어머니로부터 태교의 교훈을 받으며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태아 때부터 알고 마음으로 소원한 것 같다. 아브라함 할아버지하고 15년을 함께 살았고, 어머니 리브가를 고향 땅에서 맞이하신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하나님 중심 장자의 특권을 가슴 깊이 새긴 것 같다. 부모의 명에 따라 밧단하람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도 꿈에 보고, 하나님도 만나고, 약속하신 축복의 계승도 확인받고, 베개 삼았던 돌에 기름을 부어 제단을 쌓았다. 우물가에서 곱고 아리따운 라헬을 만나 첫눈에 사랑하고, 삼촌이 제안한 14년의 품삯을 단 며칠처럼 여기고 섬겼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지만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나님의 편애는 어디서 오는가 ?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고, 에서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으며, 그것은 망령된 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12:16~17) 에서는 자신의 아내를 맞는 일에도 에서 “스러웠다.” “에서가 헷 족속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니, 에서의 아내들로 말미암아 나는 나의 생명이 싫어졌다.” 리브가는 탄식을 한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천사를 놓지 않았고, 이스라엘이라 칭함을 받았다. 그에게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계승되었다. 장자의 특권을 누리려면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다짐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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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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