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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2) - 김은국의
       신이 제 구실을 할 때의 순교자와 그렇지 못할 때의 순교자는 그 개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의 순교자가 전통적인 것이라면 후자의 순교자는 탈전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두 부류의 순교자들이 제시되는데, 하나는 12명의 죽은 순교자들이고, 또 하나는 1명의 산 순교자(신 목사)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열두 명의 죽은 목사들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자냐 하면, 또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다시 말하면 순교자로서 떳떳한 죽음을 한 목사들이 아니었으므로) 이 작품에서의 실질적인 순교자는 신 목사 한 사람에 국한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자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만은 계속 남아있게 하는 위력을 발하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여기서 순교자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한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일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의 정치적 탄압이 어떻게 기독자들의 자기정체성을 잃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체험기로 루마니아 목사 R. 범브란트의 <하나님의 지하운동>과 불가리아 목사 H. 포포프의 <믿음 때문에 당한 고문> 등을 들 수 있다. 범브란트 목사나 포포프 목사의 수기 속에서 동료 목사를 배신하는 이들이 불가불 출현했던 것처럼, <순교자>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배신자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배신자들이 자신의 영달이나 편의를 위해 그리 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심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길이 없는 나머지, 인간의 약점에 스스로 굴복해   그리된 것이므로 이런 행위에 악의적 해석을 내릴 수만은 없는 것인 줄 안다.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 배신자들의 치부를 숨겨주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다름 아닌 신 목사와 장 대령이다. 그러나 결과야 같다 치더라도 동기 면에서 볼 때 두 사람의 관용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신 목사의 경우, 그 자신이 목도한 배신자들의 추태를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문자 그대로 ‘종교적’ 순수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보장교인 장 대령이 배신자들의 실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사실을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의식이 뚜렷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장 대령도 그런 은폐 작업을 통해 무슨 악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저의를 지녔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어떤 정치적 의도에 그 사건을 짜 맞추려는 기본 입장만은 견지했다고 하는 데서 두 사람의 ‘종교적’ 동기와 ‘정치적’(군사적) 동기가 동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사정 모두를 다 알고 있는 독자에게 신 목사는 그렇게 비쳐지지만,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신도들이나 일부 목사들에게 신 목사는 오히려 배반자로 몰리고 있다. 그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은 공산군에게 잡혀간 목사들 열네 명 가운데서, 열두 명이 죽고 두 명은 살아남게 되었을 때 그 살게 된 두 명 중의 하나가 바로 신 목사였기 때문이다(그중 한 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으므로 크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 목사는 처음 동료 목사들이 살해될 때 자신은 그 현장에 없었노라고 말했다가, 후에 그 말을 번복하고서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무언가 뒤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으로 평양 신도들에게는 비쳐졌던 모양이다. 물론 이때의 신도들이란 대개 자신들의 담임목사를 졸지에 잃게 된 슬픈 양떼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목자를 잃은 허전함에 싸여 있다가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신 목사를 목격하게 되면서 신도들은 극도의 분노에 떨게 되었고 급기야는 신 목사의 거처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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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3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1) -김은국의 〈순교자〉
      순교 또는 배교의 문제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주제로 삼아 쓴 소설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의 작품들로는 아무래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위대한 몰락〉, 〈여자의 일생〉 등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작품으로는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상〉과 김성일의 〈제국과 천국〉 등을 들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 대열에 좀 애매한 위치로 서게 될 김은국의 〈순교자〉도 한 몫 끼게 될는지 모른다. 이 말은 〈순교자〉가 국내 작품으로 인정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생존 시에 김은국 작가가 미국 국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은국의 〈순교자〉는 국내 작품으로 거론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외국(미국) 작품으로 치기도 석연찮은, 참으로 국적 미명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인상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김 작가)를 제쳐놓고 한국 기독교소설을 운위하기가 매우 궁색하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어떻든 그는 한국 혈통의 작가요, 한국인의 숨결과 정신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한국적 배경을 떠나서 그의 소설 세계가 성립되기 어려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에 불가피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1964년에 나온 이 작품(원작)은 그 2년 뒤(1966)에 나온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많은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극도의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될 때 거기서 순교와 배교의 문제가 발생하며, 자동적으로 순교자와 배교자의 출현도 있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시절의 노바티아누스파와 도나투스파가 겪었던 일들이 이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가 된다고 보겠지만,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무수히 반복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다루었다는 면에서(만) 〈순교자〉와 〈침묵〉이 유사하다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소설들은 그 공통의 주제, 곧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루되 앞서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신 부재의 문학’, 또는 ‘신 침묵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 정신에 기초하여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고 하는 면에서 두 작품은 상호 크게 유사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역시 당대에 유행하던 ‘신 부재(침묵)’의 사상이나 ‘신 죽음의 신학’이라고 할 기독교 신학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유(類)의 문학 작품들이 다분히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긍하게 만든다고 하겠다. 슈사쿠의 작품 〈침묵〉은 그러니까 ‘신의 침묵’이라고 할 때의 그 ‘침묵’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김은국은 그의 〈순교자〉 속에서 주인공 신 목사의 입을 통하여,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 모독적 발언을 해 대는 것이다. 말하자면 목사 신분인 사람에게서 저런 발언이 다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일반 독자들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치명적 발언을 해 댄다는 것이다. 이는 신 목사에 의해서 신은 인간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면적을 거의 잃어가는 대신, 그만큼 그 잃어진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메꾸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신의 침묵의 시대에, 또는 신 부재(내지는 죽음)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인간의 일이란, 그 부재(또는 죽음)의 신의 영역을 인간 스스로 보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신 목사는 그의 실천행위로써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신 목사의 언어나 행동이 초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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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8
  • 미물들의 메아리 없는 항변(하) -이청준의
    그러는 동안 진범이 체포되었고, 그 범인이 바로 아들이 다니던 주산학원의 원장 선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알암이 어머니는 격렬한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럴 때 다시 김 집사가 나타나 범인을 증오로 대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써 대할 것을 권고해 온다. 그러는 김 집사의 말에 반발심을 느끼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바꿔 먹고 범인을 용서해 주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그녀는 사형수를 찾아가 용서의 증거를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열려 가던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꽉 닫히고 말았다. 그 이유는 사형수가 처형을 앞두고 기독교에 귀의해 마음의 평안을 이미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 일을 그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보다 먼저 그 범인을 용서해버린 하나님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은 자기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고 하는 데 대한 분노가 신(神)을 향해 치솟았던 것이다.   주님께서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아가 버렸으므로 다시 그를 용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신의 공평한 사랑이라면 자신은 차라리 신의 저주를 택하고 말겠노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 범인에 대한 처형 소식이 들려온 직후 그녀는 자신의 너무도 인간적인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진(自盡)하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한 마리의 벌레처럼 신의 발뒤꿈치에 밟혀 죽고 만 셈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화자, 즉 그녀의 남편은 그 처지가 ‘벌레’의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잃은, 넋 잃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게 된 남편 역시 미물과도 같은 미약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작품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제기해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신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에 대한 해결책이 따로 없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마치 당연지사라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 침묵의 신에 대해 작가는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니 섭리니 사랑이니 하는 추상적 관념으로 감싸져 있는 기독교의 교리나 계율에 대하여 작가는 도전하고 있다. 그는 알암이 이야기와 알암이 어머니 이야기를 내세웠고 그것을 ‘벌레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이 미물(들)의 외침에 제발 좀 귀 기울이시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이쯤 이야기하고 보면 ‘벌레’라는 말의 함축적 의미가 매우 넓게 확대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벌레 이야기〉는 단지 알암이와 그 어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처지에 처해 있는 오늘의 미약한 신앙인, 나아가 우리 인간 모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벌레 이야기〉인 셈이다.   별 신앙 없이 교회에 나다니고 헌금을 하곤 했던 기복신앙의 소유자 알암이 어머니에 대하여 독자들, 특히 기독교 신도인 독자들은 별로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결국 범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말하자면 불신앙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애초에 그렇게 나약한, 곧 벌레와도 같은 존재라고 하는 이해를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할 때 그녀의 고통과 아픔을 깨닫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너무도 다양한 고통의 양상들을 지금껏 종교가 너무 안일하게 다루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차제에 해봄직도 하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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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5
  • 미물들의 메아리없는 항변(상) - 이청준의
      작가 이청준의 소설집 〈벌레 이야기〉(심지, 1988) 속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 〈벌레 이야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 속에 보이는 ‘벌레’ 이야기는 작품 자체 속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에 나오는 무슨 벌레[갑충]의 모습 같은 것을 이 소설은 조금치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여기에서의 벌레란, 미물(곤충)과도 같은 하찮은 존재인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 속에 미물과도 같은(‘벌레’와도 같은) 존재는 화자인 남편(‘나’)에 의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알암이 어머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미 현세의 여인은 아니다. 그녀는 벌써 생명을 잃은 존재로서, 그녀가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그 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이 작품은 진술해 보여주고 있다. 결과를 이야기한다면, 알암이 어머니는 이를테면 신의 횡포에 의해 그녀의 생명을 잃었던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의중은 이 점을 분명히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신에 의해 벌레와도 같은 미물로 취급되어 죽음에 처하게 된 여인이 바로 알암이 어머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기독교 세계관을 옹호하고자 하여 쓴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오히려 기독교적 계율에 도전하려는 의도를 더 많이 지니고 쓴 작가의 문학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설을 기독교문학 작품이라고 강변하려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작품이 기독교문학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소재를 갖고 씌어졌으며, 또 기독교의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기독교의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고도 진지한 물음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간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비기독교적인 세계에서는 논의되기 힘들 것이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알암이)을 유괴당해 결국 피살체로 목도하게 된 아내의 고통스런 모습과 막바지에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처절한 아픔을 남편인 ‘나’의 시점에서 묘사한 작품이 〈벌레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갓 올라온 순진무구한 소년 알암이가 아무런 죄 없이 주산학원 원장 선생, 곧 알암이의 스승에 의해 납치되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현장을 보고 독자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벌레 이야기〉라는 제목에 보이는 벌레는 죽은 알암이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이 작품 속에는 두 마리(?)의 벌레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미물인 벌레가(어린 알암이가) 속절없이 죽어갔으나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아내 역시 불가피한 미물이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자살을 감행하기 전까지는 굳이 그녀에게 미물이란 표현을 쓸 만한 사정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피살체로 발견되고 나서 그 사실을 목도한 아내가 겪는 심적 고통은 극한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이웃집에 사는 김 집사 아주머니가 끈질기게 접근하여,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 집사로서는 결코 악의 없는 접근이요, 친절이기도 하였다. 처음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알암이 어머니는 그 정성에 감복했던지 마침내 동의하고 교회에도 나가게 된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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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6
  • 김대건 신부의 적극적인 순교 자세(중) - 이병주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고(故) 이병주 작가의 이 가톨릭 역사소설의 이해를 위해 잠깐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대건은 1821년 태생(충남 당진)으로 1836년 프랑스 신부 모오방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그해 12월 최방제, 최양업 등과 함께 유학길에 올라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여 신학 수업을 받게 된다. 1845년(8월)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 후 1846년(9월)에 사형선고를 받아 새남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말하자면 1820년대부터 1840년대 중반까지의 20수 년 간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이르기는 데 두어 차례의 박해가 앞서 있었다. 신해년의 박해(1791) 및 신유년(1801)의 大박해, 곧 신유사옥(辛酉邪獄) 등이었다. (이들 중 특히 후자, 즉 신유박해에 대해서는 서기원의 역사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을 통해 그 실상이 어떠했던가를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김대건이 모오방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뒤 마카오로 떠날 때(1836)까지 그 어간에는 별 박해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카오에서 정신없이 신학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던 1839년에 이르러 고국 조선 땅에서는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상을 신학수업 중이었던 김대건 소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일은 1839년 1월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조선 땅에 세 명의 외국 신부들이 들어와 있었다. 앵베르 주교, 모오방 신부, 샤스땅 신부 등 프랑스 출신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조선에는 약 1만 명 정도로 신도들이 불어나 있었다. 그러나 무서운 박해가 일어나게 되자 많은 신도들이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국가 권력이 단순하게 교회를 박해한다고만 해도 많은 이들이 다칠 것이었지만, 사정은 그렇게 단순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세도가(勢道家)들 간의 알력과 당쟁의 와중에 기독교도들이 일종의 희생물로 제단에 바쳐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헌종 5년 기해년(1839)에 일어난 박해, 곧 기해사옥(己亥邪獄)의 배후에는 어떤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었던가? 선왕 순조의 비(순원왕후)는 안동 김씨로서, 헌종이 어린 나이로 등극하였을 때 대왕대비로 섭정을 맡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주교에 대하여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써 왔는데, 그 이유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천주교도였던 정약용이 의술로 치료를 해 준 일이 있었고, 더욱이 효명세자가 서거하자 그 일이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효명세자의 부인은 풍양 조씨였고, 이 조씨 일파에서는 김 대비의 대(對) 천주교 온건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교회를 박해함으로써 결국은 김씨 세도의 축출까지를 획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원왕후 김씨의 오라버니 김유근 역시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가졌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정계에서 물러나고 행정의 실권이 우의정 이지연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새 정승 이지연이 천주교 박멸을 주창했으므로, 섭정 순원왕후는 본의 아니게 대세에 몰려 이를 허락함으로써 박해의 분위기가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 고관들이나 하급 관리들도 이지연 정승에게 영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천주교 탄압도 말하자면 그 움직임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14세의 소년으로부터 79세의 노파에 이르기까지 이 고난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파급된 박해에 의해 체포된 자의 수가 300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 박해가 끝날 즈음에는 순교자의 숫자만도 113명에 이르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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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1
  • 김대건 신부의 적극적인 순교 자세(상)-이병주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작가 이병주(1921-92)의 실명소설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소설 김대건’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역사상의 실재 인물인 김대건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교역자(성직자) 신분의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 작품으로 완성한 일들이 ‘소설 김대건’의 출현 이전에 몇 작가들에 의해 시도된 바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연희 작가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1983)란 제목의 소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의 특수 목회에 종사한 맹의순 전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에서인지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도 그만큼 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작품이 나온 바로 다음 해(1984)에 이병주의 작품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나왔다.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서로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이 두 작품들이 1인칭 시점의 작품들 못지않은 간증적 효과를 크게 거두고 있는 것은 두 작품들의 후반에 삽입된, 주인공들 자신의 서간문들이 상당한 분량으로 배열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확연히 다른 점은 이 작품이 일종의 역사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에만 충실한 탓인지, 이 작품이 소설인지 아니면 전기(傳記)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독자들로 하여금 갖도록 만들고 있다.   1838년부터 시작된 마카오 경리부에서의 신학수업 장면들만 아니었더라면 이 작품은 분명히 하나의 ‘김대건 전기’로 되어 버렸을 개연성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후반의 많은 편지글들의 나열이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왜냐면 허다히 나열된 김대건의 서간문들은 그것이 결코 작가에 의해서 소설적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김대건 자신에 의한 편지글 자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양의 신부들에게 김대건 자신이 보낸 거의 비슷비슷한 서간들, 아니라면, 얼마간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서간들을 거듭 나열한 것은 독자들에게 매우 지루한 느낌을 가져다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을 금치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하나의 전기 작품이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 그 이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게 되었으리란 짐작을 하게 한다. 결과를 두고 말하자면 사실이 그러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신부인 김대건이 살았던 시대(19세기)의 역동성을 살리고, 그 속에서의 우리 민족의 비운과 천주교의 전래에 따른 신도들의 수난, 그리고 그러한 여건 하에서의 김 신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의 고뇌와 순교라는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밀도 있게 다룰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독자들의 그런 기대에는 미흡한 작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저 전기적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처리한 속에서 약간의 소설적 요소를 가미시킨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다. 차라리 그러려면 아예 ‘김대건전’을 처음부터 시도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이런 유(類)의 작품들이 대체로 테마로 삼게 되는 어떤 순교나 배교 등의 문제에 정면 도전을 하고 있지도 못하고, 또 김대건 신부 자신의 개인적 고뇌나 아니면 신앙적 승리의 개선을 부각시키는 일에도 결코 득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제의식이 희박한 소설이 기독교문학 작품으로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교훈을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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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6
  • 경북 김천 황악문학회 활동 활발
    김천과 상주지역 목회자와 평신도 시인들이 모여 정기모임 작품 속에 기독교적 색채 드러내 문학을 통한 신앙의 삶 표현     경상북도 김천지역의 기독교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 배명식목사(모동제일교회)를 비롯한 목회자와 평신도 시인과 앞으로 등단을 준비하는 20여명이 지난해부터 모여 황악문학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김천에 위치한 복전교회(민길성목사)의 사모가 운영하는 ‘로뎀나무’란 커피숍에서 모여 문화교류를 하고 있다.   문학회 회장인 시인 배명식목사(사진)는 황악문학회에 대해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에 걸쳐 있는 황악산 주변 지역에서 평소 문학에 관심을 가진 담임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정기적인 시낭송회와 작품품평회로 모이는 문학모임”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배목사는 “문학을 통해 신앙의 삶을 표현하고 그 작품으로 전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모임은 상주 모동제일교회에 부임한 배목사가 지역 내에서 시인이라는 소문이 돌며 주위에서 문학에 관심을 가진 목사들이 개인적인 교제를 가지면서 시작되었고, 김천 복전교회 민길성목사의 사모가 운영하는 ‘로뎀나무’ 커피숍에서 2020년 11월부터 정기적으로 모이기 시작해 문학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모임의 역사는 짧지만 회원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단단한 문학회로 성장하고 있다. 회원은 20여명 정도이나, 벌써 민길성목사와 이상원목사(상주영오교회)가 문단에 등단하였다. 또한, 박연수목사 등 몇 사람이 등단을 준비하고 있다. 회원들은 네이버 밴드 ‘황악문학‘밴드에 수시로 글을 올리고,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문학공부와, 시낭송회, 그리고 품평회를 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하여 회원 전체가 모이는 정기모임은 자제하고 있으나 몇 사람이 모이는 ‘번개모임’과 황악산 일대의 거주하는 기존 등단시인을 찾아가는 ‘시인순레’를 통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밴드 ‘황악문학.시낭송회’에서 시와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모임의 구성원이 목회자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사상을 작품 속에 녹여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앞으로 기독교 문단의 빛나는 인재들로 활동해 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 회원으로는 김천의 김정숙시인과 구미 선산의 김정자시인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황악문학회 회장인 시인 배명식목사는 “시작품에서 드러나는 순수 서정이 시골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꽃들에 대한 작품을 다듬어 가고 있다”면서 “문학을 통한 ‘신앙의 삶’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판/문화
    • 문학
    2021-07-11
  • 배교자의 역설적인 ‘적극적 순교’ 자세(하)
    11면 기독교 소설 산책14   우리는 이제 이 작품의 주인공의 믿음 또는 배교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공인물 김신봉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는 사기장이 직업을 가진 청년이다. 원래 여주 땅에서 사기장이 노릇을 하다가 그 마을의 가마들이 아궁이를 닫는 바람에 그곳을 떠나 광주 땅으로 향하던 도중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이 운길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그릇들을 만들면서 생활에의 의욕을 불태운다. 김신봉은 자신이 만든 그릇을 가지고 마재 마을의 정 부사 댁으로 갔다가 그의 아들 정약종을 거기서 만나게 되고, 그 집의 하인인 은돌이도 만나게 된다. 하룻밤 신세를 그 집에서 지게 되면서 신봉이는 하인 은돌이의 전도를 받게 되고, 후에 그는 천주교인이 되는 것이다. 김신봉의 신앙인으로의 변화는, 거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의 친구 덕환이가 끝내 신도가 되지 못한 것과는 완전히 대조된다고 하겠는데, 성서의 모델로 말하면, 김신봉이 예수의 좌우에 달렸던 강도 둘 중에서 곧 회개하고 구원의 대열에 들어간 한 인물에 해당한다고 할 때, 친구 덕환이는 그중에서도 끝까지 예수의 구세주 됨을 부인하고 오히려 모욕적인 언동을 일삼은 다른 한 강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도 덕환이는 후에 운길 마을의 천주교도들을 관아에 알리는 밀고자로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무녀인 장모와 그녀의 딸인 아내가 끝까지 김신봉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모와 아내는, 온갖 고문 속에서도 결사적으로 배교를 거부하던 이 주인공(신봉)으로 하여금 결국엔 맥없이 배신을 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배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그의 아내에게 가해진 무서운 매질 소리와 그에 따른 갓난 아들의 울음소리였다. 이 작품 속의 다른 주요인물은 이가환인데, 그는 신도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가환이 천주교도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이 작품 속에서는 가장 생생하다고 할 만큼 그 장면은 작가에 의해 박진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가히 극단적 매저키스트라 할 가학적 행위가 이가환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의 무서운 고문 때문에 결국 사기장이 김신봉은 배교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불신앙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도 화로의 불씨처럼 신앙의 불씨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배척을 당한다. 신자들 속에서는 배교자로 배척당하고 그래서 그는 다시 사기장촌으로 들어가 볼까 했지만 거기서는 그를 신자로 알고 두려워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찾아갈 곳이 어디인가? 이제 그는 신(神)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빠진 나머지 단단히 결심하고 좌포청의 포졸들 앞에 나서게 된 것이다. 자기를 천주교도로 치죄해 달라고 자수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순교를 자청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배교자의 명단에 이미 그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이 확인되자 심문관은 그에게 방면(석방)을 선포해 버린 것이다. “네 놈은 이미 천주장이가 아니야. 여기 명단에 네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다. 알겠느냐?” 그리고 그 군관은 신봉이의 품에서 빼앗은 ‘백자 마리아 상’을 디딤돌에다 냅다 내동댕이쳤다. 그것들이 반짝이는 사기 조각들로 뜰 안에 어지러이 흩어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그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배교자로 한 번 낙인찍힌 신도가 온전히 정상적인 신자의 위치로 회복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 작품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
    • 문학
    2021-07-09
  • 글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마주보고 웃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녀가 그렇고 사라가 그렇다. 얼마 전 내가 쓴 글이 활자화 되어 나왔다. 카톡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던 글이 생명을 가지고 꽃이 피었다. 물론 그 글이 나오기까진 산파의 아름다운 손길 사랑과 도움이 있었다. 사라는 말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고. 그 글을 읽는 데는 2분 정도 걸릴 거다. 그런데 나는 안다 가슴 뛰며 쓴 글은 친구의 가슴도 뛰게 된다는 것을. 한때는 시를 쓴다고 글을 다듬었다. 그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음을 보이는 것도 글을 주는 것도 쉽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편지나 책이라서 지금처럼 바로 날아가는 속사포가아니라 종이비행기, 종이배였다. 지식과 지혜 감성의 글들은 인터넷의 문을 열면 가득 차있다. 과거 세계역사 시작이래로 오늘까지 모든 것이 저장되어있고, 오늘 지금도 수많은 글이 생산되어 마치 나이아가라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미궁 속에서 나온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오 듯 수많은 글, 수많은 책들이 수산시장의 생선처럼 산채로 펄펄뛰면서 날마다 나오고 있고, 채소가게의 채소처럼 생산되고 있다. 우리의 글도 ‘농사지은 농부의 노고의 결과인가? 저 푸른 대양에서 건져 올린 생선인가?’ 아니면 ‘그를 만든 신의 산물인가? 우리의 생각은 어디서 오며 우리의 글은 또 어디서 오는 건가?’ 데이브호킨스는 고민했다. ‘인간의 행복은 왜 이렇게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늘 깨어지며 옮겨 다닐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유도하는 감정, 그 감정은 생각과 경험에서 만들어지고, 그 생각으로 감정의 애착관계가 만들어진다. 호킨스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애착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것은 본인의 의존성에 문제가 있지만 독재자와 같이 사람을 노예화 시키는 부류의 인간이 있다. 성경은 말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도둑과 악마는 돈을 노리고 물질을 노리는 것 같으나 사람의 마음을 먼저 강탈하고 영혼을 고통 속으로 집어넣는다.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달콤한 말로 사람을 속이고 마음을 약탈하듯 수많은 시스템과 기술, 글들도 이와 같이 본마음을 숨기고 장사하는 것이 많다. 오늘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남의글로 양털 옷을 입고 다가서는 세상, 어쩌면 더 악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아침마다 성경을 읽는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자기생각을 버리고 자기내면을 남의 글이나 말로 포장하며 사는 세상, 그래서 수많은 위선자가 생긴다. 보통세상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말만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말과 글 대신 푸른 나무 잎을 읽어본다. 나는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책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위대함도 구별해야한다. 참과 진리처럼~.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인가?’ 글은 사람의 인격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제 세대가 달라져서 수많은 글이 일초도 안 되어 복사되어 나온다. 성경을 인용하고 왜곡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을 만드는 인간들, 개탄해야하는 세대에 나는 산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뿌리 깊은 나무’도 생겼다. 그런데 생각을 내려놓고, 감정을 내려놓고, 욕망을 내려놓고 사는 길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레팅 고 서렌더>라는 기전도 결국 글이라는 매체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좋은 방법이다. 글, 글, 글, 글에서도 정직하자. /화가, 여행작가
    • 출판/문화
    • 문학
    2021-07-07
  • 배교자의 역설적인 ‘적극적 순교’ 자세(중)
    여러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우리의 한 문제작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겠다. 배교와 인간구원의 문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나약한 인간이 공동체 구성원들 상호간의 심리적 갈등과 대립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강한 질문을 던지는 농도 짙은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이 우리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리고 비록 이 작품이 순교와 배교의 문제, 특히 그중에서도 배교의 문제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다음의 문제, 곧 배교자가 되지 않으려고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교도들의 극단적인 수난 사례들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결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조선교회 최고위 성직자요 교주 격인 권일신 사교(司敎)와, 작품상 그저 안가(安哥)라고만 알려진 평신도 등의 경우에서 확인되는 사례이다. 권일신은 실학자였던 안정복(安鼎福)의 사위요, 그 자신이 신분상으로도 양반인 지체 높은 분이었지만 격화된 당쟁의 와중에서 부풀려진 사교(邪敎) 분쟁 때문에 불가피하게 금부에 자진 출두했다. 국문이 시작되었다. “천주교란 나라의 임금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는 무지막지한 미신인데, 네 어찌 양반으로서 그 같은 사교를 신봉하느냐.” 또 이어졌다. “너는 제사를 지내고 있는지 바른 대로 대어라.” “천주교에선 제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해괴한 짓이로군.” 둘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은 후 아래와 같은 주문과 응답이 서로 교환되었다.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선언만 하면 사형은 면할 수 있을 게야.” “백 번 죽어도 배교는 못합니다.” 이제 상황은 극한의 지경으로 바뀌어졌다. 다음날엔 그가 형틀에 묶이고, 고문을 당할 채비가 되었다. 고문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니 여기서 굴복함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권일신은 “천주님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단칼에 잘랐다. 이에 지체 없는 명령이 떨어진다. “무릎을 쳐라.” 곧 아랫도리는 온통 붉게 물들고 살점들이 해어졌다. 그래도 안 되겠는지 “정강이를 쳐라.” 명한다. 곧 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두부(頭部) 경련 현상도 일어났다. “아직도 개심할 생각이 없느냐?” 권일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금부도사가 또다시 다른 말로 달래본다. 그러나 권일신은 답한다. “천주님의 명이 더 소중하니 죽는 길밖엔 없을까 합니다.” 결국 국왕이 그의 목숨만은 다치지 말라고 해서 그를 예산으로 귀양 보냈다고 한다. 안가(安哥)의 이야기는 더 처절하다. 그는 군월(軍月)에서 아홉 친구들과 함께 붙잡혀 왔다. 한 차례 고문을 받고 나자 일곱 명이 배교를 선언하고 말았다. 옥사(獄事)가 시작된 지 닷새째, 남은 둘 중의 하나로 그가 심문을 받고 있다. 천주를 버리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회유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사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겠소이다.” 식이었다. “저놈을 쳐라.”는 명령과 함께 그의 엎어진 벌거숭이 등허리로 무자비한 곤장 세례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또가 “안 되겠다. 주리를 틀라.”고 더 무서운 형벌을 명했다. 처절한 비명이 긴 여운을 남긴다. 처음 정채가 넘쳐흐르던 그의 용모는 나날이 초췌해져 갔다. 다음에도 “어서 끌어내다 매를 쳐라.”는 분부였다. 지속적으로 고문을 당하던 마지막 날 그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들것에 실려 나온 안가가 장판(杖板) 위에 엎어져 사지가 붙들려 매어있다. 그런데 이번엔 단 한 방의 곤장에 온몸이 뒤틀리고 거품마저 뿜더니 경련을 일으키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순교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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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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