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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2)-김말봉의
    끝뫼 김말봉이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한 해가 1923년이고 졸업한 때는 1927년이었다. 그 가운데(중간) 해인 1925년에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시집살이>란 소설 작품으로 응모해 ‘입상’을 한 바 있다. ‘당선’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앞을 기약할 수 있다는 희망(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졸업하고 나서 귀국한 뒤, 1929년 중외일보 신춘문예 현상 공모에 <고행>이 당선되었고, 이어서 1932년에는 <망명녀>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끝뫼가 문학에의 열정을 어떤 하나의 목표(문단 데뷔)를 향해 치열하게 불태우던 시기, 곧 1920년대 중반으로부터 30년대 초반까지의 7년여의 시기라고 하면,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의의를 지닌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이 기간에 국내의 신경향파 문학 내지는 카프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운동이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즉 러시아에서의 라프 문학이나 일본에서의 나프 문학 운동처럼, 한반도 내에서도 맹위를 떨치던 실정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이 자리한 도시 교토(京都)가 유독 사상범들이 들끓는 곳이었다는 점 역시 참고가 될 만한데, 그녀가 받았을 정신적 영향 같은 면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겠다.   도시샤대학의 그의 후배 문인들, 곧 정지용이나 윤동주 같은 시인들과 함께, 그(끝뫼)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본다고 한다면 이들 세 문인들이 모두 기독교도였다는 사실과, 또 하나, 그들 모두가 당대의 현실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결코 눈감지 않은 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정지용은 가톨릭교도, 김말봉과 윤동주는 개신교도, 이렇게 3인은 모두 넓은 의미의 기독교도였는데, 정지용은 해방기의 문맹(文盟)과 그들의 문학에 대하여 포용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현실 문제에 어두워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자신의 시를 통하여 드러냄으로써 그 자신의 역사의식을 확고히 세웠으며, 김말봉 역시 일면으로는 윤락녀의 구제와 공창 폐지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여권 신장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세운 동시에, 타면으론 동반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상에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김말봉과 정지용은 1년 선후배 관계로 도시샤대학 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제법 우의가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만은 그들과 연령 차이가 커서 훨씬 뒤에 그 대학에서 수학했으니 함께 만나지는 못했다.) 1926년 여름방학 때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잡지사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이 잡지는 당시 카프 문사들이 주로 활동하던 무대였으며, 경성제국대학에 재학 중인 유진오·이효석 등의 작가들이 이른바 동반자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월간지였다.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이 잡지사엘 더러 찾아다녔다는 사실이 시사(示唆)하는바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1931년 초부터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었으니, 끝뫼 역시 그 소설(‘삼대’)의 주요인물 김병화(또는 홍경애)로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들의 활동상에 일말의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정이 그 1년 뒤인 1932년 초의 그녀의 조선중앙일보 데뷔작 (‘망명녀’)에는 혼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겠다. 이로써 보건대, <망명녀>에게서 보게 되는 김말봉 소설의 언필칭 동반자적 성격도 어느 면 그 근원을 짐작케 해 주는바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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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1)-김말봉의
    김말봉 작가의 <망명녀>(1932)란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김말봉의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중편소설다운 데가 보이며, 어떤 이는 이 작품을 가리켜 장편과 같은 구조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먼저 대중소설가 또는 통속작가로 불린, 여성 소설가 김말봉(1901-61)에 대하여 어느 정도 소개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만큼 그는 그의 경력 면에서도 독자들에게 상당히 흥미 있는 데가 있는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품 세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소설가 김말봉은 경남 밀양이 고향이며, 네 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와서 염주동에서 자랐다. 호주장로교 선교회가 세운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에서 3년간 공부하다가 서울의 정신여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 두 학교 모두 기독교계 학교였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23년 그곳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후, 학업을 마치고 얼마의 기간을 보낸 뒤 1929년 귀국하였다. 그런데 그 대학 역시 일본 개신교 3대 교파 중의 하나인 조합교회 소속의 기독교계 학교였다.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 시인 정지용·윤동주 등과 거기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겐 좋은 인연이었다고 보겠다. 재학 중이었던 때, 상급생 김말봉이 방학 때 집에 돌아와 있던 하급생 정지용을 만나기 위해 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꾀골)을 찾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26년 여름에 김말봉이 정지용 시인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 잡지사에 들렀다고 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녀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매우 활동적인 면이 엿보이는 장면들이다.   1929년 귀국한 뒤 김말봉은 수주 변영로 시인의 지원에 의해 ‘중외일보’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단편소설 <고행>을 써서 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사실상의 데뷔작이 된다고 보겠지만,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신문에다 응모하고 당선된 것이 아무래도 께름칙했던지, <고행>이 당선된 지 보름 만에 그 신문사에 사직원을 내고 고향인 부산으로 귀향해 버렸다. 그리고는 1932년 ‘조선중앙일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다른 작품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망명녀>였다.   그리고는 그 여세를 몰아 1935년 ‘동아일보’에 첫 장편소설 <밀림>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한운사 작가에 의하면 이 연재소설 발표는 역시 수주 변영로 시인의 주선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를 회고한 정비석 작가의 기억으론 그 신문사 편집국장 설의식과 학예부장 서항석의 주선으로 이 <밀림>이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고 보면, 아마도 3인이 회동해 이 연재 결정을 내리고, 그 윤곽을 수주 변영로가 부산의 김말봉에게 서신으로 연락해 주지 않았나 싶다. 어떻든 이 작품의 연재로 김말봉이 인기 작가로 저널리즘 스타가 되었다고 정비석은 쓰고 있다. 1937년에는 또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작 <밀림>보다 훨씬 더한 인기를 얻으며 독자 대중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밀림>을 서울의 일간신문에 연재할 당시(1935), 그는 부산의 동구 좌천동 주민이었다. 그날그날 신문의 삽화가 필요했으므로 그는 당시 부산고녀 4년생이던 한무숙에게 그 일을 맡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화가를 꿈꾸던 한무숙이 후에 소설가가 되었으며, 또한 동생 한말숙마저 소설가가 되는 다소 기이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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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2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6)-황순원의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세계가 상호 크게 대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독교와 샤머니즘에 대한 김동리와 황순원의 평소의 종교관 내지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로 볼 수 있다.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 세계는 기독교 세계에 비해서 훨씬 열세에 빠져 있는 세계이다. <을화>의 샤머니즘이 그 스스로 독립적인 데가 있는 것에 비하면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은 크게 자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샤머니즘이다. 윤성호에게 훼방당한 명숙이의 샤머니즘이 그러했고, 송민구에게 기대기만 했던 박수 변씨의 샤머니즘이 또한 그러했다. 준태에게 기댔던 돌이엄마의 샤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 의하면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은 분명히 ‘흔들리는 터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세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특히 변씨나 그의 이종 사촌(갓 제대한 청년)이 송민구와 함께 벌이는 무교적 분위기의, 3각의 동성애 행각은 매우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무교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작가 황순원은 무교의 세계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임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그러한 무교 세계는 처음엔 순진하던 민구마저 감염(?)시켜 부도덕한 행위에 휘말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무당인 돌이엄마가, 비교적 냉정한 타입의 비판적 지성인인 준태로 하여금 동거의 관계를 맺게 한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는데, 몰인정한 그 무당이 죽음을 앞둔 준태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그 한 가지 일로써도 이 무교 세계의 무근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 세계는 아무래도 ‘무교’라기보다는 ‘무속’의 세계에 오히려 더 가까운 그런 세계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반면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에 보이는 기독교는 샤머니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상당히 우월한 종교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황순원의 경우엔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을화>의 보수적인 기독교에 비하여 <움직이는 성>의 다소 진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실천지향의 종교에 대해서 신뢰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면보다도 <움직이는 성>이 보여주는 강점은 등장인물, 특히 윤성호가 드러내는 종교적인 면의 심적 갈등, 곧 성격 면에서의 근대적 면모라고 하겠다. 그는 불륜 관계로 인한 죄를 저지른 경험도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고민에 빠져 보기도 했으며, 후엔 자진해 속죄의 고행 길을 걸어가기도 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내면의 연소 과정을 거쳐 성숙한 인격을 이룰 수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 결과 성호는 성공(?)을 보장받는 도시목회의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길을 박차고 빈민선교의 길을 자청해 나간 것이며, 또한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겉치레밖에 되지 못할 그 목사직까지도 흔쾌히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민구의 출세 지향적인 실리 추구의 삶이나 준태의 회의주의적인 삶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신앙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성호의 신앙이 샤머니즘적인 것들을 모두 용해시켜 자신 안에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틸리히 식의 ‘궁극적 관심’을 지녔기 때문이며, 또한 일시적 실리 추구의 삶에 대하여 거리를 둘 줄 알았던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기독교 신앙은 개인구원은 물론 사회구원의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발전, 성숙될 수 있었다고 보겠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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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서 특별전, ‘윤동주의 시’ 지켜낸 정병욱 만난다
    윤시인의 벗이자 후배로 연희전문시절 2년간 함께 지내 고향집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숨겨 지켜내 연희전문 후배이자 문우로 윤동주의 자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고향 집에 숨겨 오늘에 전한 백영 정병욱선생 기념특별전이 오는 7월 22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윤동주기념관 3층에서 진행된다.    식민지 시절 우리말을 아끼며 사랑한 문학청년들의 몸부림이 한글 전용 및 애호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날 국어국문학의 뿌리를 다지기까지 여정을 보여준다. 지난달 27일 연세대 문과대 주최로 소수의 제자만 초청해 ‘백영 정병욱선생 탄생100주년 기념특별전 개막식’이 열렸다. 서승환 연세대 총장이 참석해 인사했고, 유족을 대표해 정선생의 아들인 정학성 인하대 명예교수가 감사를 표했다.   「백영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공개되는 강의 노트, 논문 원고 등의 유품들은 국문학자이자 문필가로서 우리 문학과 예술을 널리 알리고 지키고자 했던 선생의 지적 고뇌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병욱선생의 학문은 분석주의 비평 방법과 철저한 고증을 통한 실증적 방법을 겸비해 문학성과 역사성을 정밀하게 탐구한 점이 특징이며, 한국의 전통 가락(운율)의 특징과 멋(미학)의 실체를 구명하는 작업을 필생의 화두로 삼았다.   정병욱선생의 지적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학제적 교류와 사회적 소통의 장을 넓히는 계기가 될 이번 전시는 연세대 문과대학 윤동주기념관 홈페이지 및 네이버 예약시스템을 활용한 사전예약을 통해 직접 관람이 가능하다.   허경진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백영 정병욱 선생과 연희전문」을 주제로 오후 특별 강연을 했다. 허교수는 “정병욱은 윤동주를 따라 영어성경을 배웠고, 연희전문과 이화여전 학생들로 이뤄진 협성교회를 다녔다”면서 “이화여전 소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고, 예배 이후엔 케이블 선교사 부인이 지도하는 영어성서반에도 함께했다”고 전했다. 허교수는 “윤동주기념관이 있는 핀슨홀 건물도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면서 “신학과 유동식교수 등 핀슨홀 기숙사를 거친 선배들을 기념하는 전시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병욱선생은 1940년 4월 연세대의 전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연세인으로, 고전시가를 비롯해 고전소설, 판소리, 한문학, 전통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또한 최현배, 허웅 등 국어학자를 도와 한글 전용 주장과 한글 애호 운동을 전개했으며 종래 문법과 지식 위주의 국어 교육 방향을 작문과 문학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다.   정병욱선생은 윤동주시인의 벗이자 후배로 연희전문 시절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2년간 함께 지냈다. 시인으로부터 받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광양 고향집에 숨겨 지켜냈고 이에 오늘 우리가 윤동주시인의 시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선생의 아호 백영은 윤동주시인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강처중, 김삼불, 유영과 함께 윤동주 추모회 및 시 감상회를 열고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간행했다. 그리고 선생이 받은 한국출판문화상과 외솔상 상금으로 윤동주 시비 건립을 주도하고 연세대 윤동주 장학금을 만드는 등 윤동주 시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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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5) -황순원의
    우리는 샤머니즘에 대하여 취한 자세를 놓고 세 등장인물들에 대해 등급(?)을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결의 강도로 보면 그 순서는 민구, 준태, 성호의 역순(逆順)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즉 민구는 대결이 아니라 오히려 포용 쪽이고, 준태가 다소 중도적이라고 한다면, 성호는 그 대결의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세 인물들 가운데 유랑인 근성을 제일로 대표할 사람은 민구이고, 그 다음이 준태이며, 성호만은 비유랑적인 인물로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판단은 작가가 샤머니즘을 유랑성의 대표적 요인으로 설정했다는 전제를 놓고 볼 때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것은 민구와 준태 두 사람 중에서 전자(민구)를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잡았다는 앞서의 평가에 대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얼른 보아 창애, 지연, 돌이엄마 등 세 ‘여성 편력’과 서울, 강원, 전북 등 세 ‘지역 유랑’으로 보아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보이는 이가 준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히 세 사람들 중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준태가 아닌 민구를 택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준태의 그러한 면은 외형적(표면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임에 반하여, 민구의 그것은 내면적(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유랑성이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논의 결과, 우리는 다음의 결론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호, 준태, 민구의 이러한 서열(?)은 곧 기독교도로서의 자격(자질)의 서열과도 일치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성호를 1번순위로 잡을 때 나머지 둘 중에 누가 더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자격)을 갖추었느냐는 물음과 같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결론은, 민구보다는 준태가 더 앞서는 인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지금 기독교를 떠났고 교회당 출석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에겐 아직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이 소멸되지는 않았다는 뜻이 되겠다.    이 문제에 대해선 김병익 평론가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할 것이다.그는, 준태는 실상 끝까지 기독교를 버리지 못한 ‘부정적인 크리스천’이라 규정하고, 그가 아무리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설적인 기독교인의 반신론적 고백’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준태가 자기소멸과 에고로의 귀속을 통해 ‘부정적 기독교’를 구현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준태의 기독교 부정은 곧 ‘긍정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그런 부정적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정도(밀도)와도 비례되는 것으로 보인다.    성호가 이타적 인물이란 것은 재언이 필요 없겠다. 준태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은 인물임은 앞서 우리가 본 바이다. 그러면 두 이타적인 인물 성호와 준태 중 어느 쪽이 더 사랑의 밀도가 강한가 하는 물음이 발해질 수도 있겠다. 그 답은 이미 작품상에 드러난 셈이다. 준태는 단순히 그의 친구에게 베푼 사랑을 보인 데 불과했지만, 성호는 보다 더 사회정의의 실현이란 고차원적 사랑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인의 자질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밀도에 비례하는 것이란 말이 되겠다. 윤성호의 사랑을 실증해주는 상징적 장치가 바로 돌이와 영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동거했던 무당여인이 남겨놓은 돌이마저 놔두고 준태가 죽게 되자, 지연의 손을 통해 그 아이를 건네받아 기르게 된 성호에겐 이미 그 아이보다 먼저 책임졌던 또 다른 고아 영이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호라고 하는 넓은 사랑의 바다는 준태의 것보다는 한 차원 높았음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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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3)-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다른 인물 함준태는 송민구와는 달리 기독교를 자신의 출세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중·고교 학생 시절 모범적인 기독교도였던 그는 후에 그 교회를 떠나버린다. 교회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비판적이었던 그는 결국 그 교회를 박차고 세속사회로 나와 버렸다.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마치 이반 카라마조프의 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준태는 <삼대> 속의 병화와도 상당히 유사한 데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준태에게도 역시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시사(示唆)하는 점이 이 소설의 한 특징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준태가, 실질적인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명목상의 무신론자라고 할 이반과 많이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소의 약점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속에서도 그는 그래도 신뢰할 만한 데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과욕을 부릴 줄 모르는 그는 친구가 산간벽지로 전근을 가야만 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자청하여 저 자신이 친구 대신 벽지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희생적인 삶의 자세는 불가불 민구의 실리적인 생활 태도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도라고 하면서도 철저하게 실리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송민구에 비하여 교회를 박차고 떠나버린 함준태의 이웃사랑의 삶이 크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사랑’ 즉 ‘이웃사랑’이라고 할 때 민구의 이기적인 삶과 준태의 이타적인 삶이 서로 대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사랑이 소멸되는 수가 있으며, 반대로 ‘교회 밖’에서도 그 사랑이 회복되는 수가 있음을 보게 된다.   전번의 아내 창애와 헤어진 뒤, 새 여인 남지연이 끈질기게 준태를 따라다니지만, 그는 그녀에게 약간의 끌림을 당하면서도 결코 거기에 빠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매사에 자신이 없고 결단력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의 지병인 천식 때문인 성싶기도 하다. 그의 이 원인 모를 병은 그가 유랑의 생활이 아닌 ‘정착에의 기대’를 갖는 순간 그에게 다가오곤 했었던 것 같다. 그가 이 사실을 자각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후에 강원도의 오지로부터 전북의 어느 오지로 자신의 거처를 옮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의 거처를 지연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그는 그곳에서 끝내 운명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얼마간은 사모하고 있었던 지연과의 상봉을 다시는 이루지도 못한 채로였다.   이러한 준태의 상 역시 유랑인의 상 그것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자신은 기독교 세계 이외의 유랑인의 대표적 인물로 함준태를 설정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기독교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만큼 또 무교 신앙의 소유자도 아니었으면서, 그가 마지막에 만난 여인이 바로 무당인 돌이엄마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유랑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기독교도 송민구’가 샤머니즘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역시 유랑인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함준태라고 할 때 그가 어떤 식으로든 샤머니즘의 세계와 관련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바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운명(죽음)은 그 무당 여인이 자기(준태)를 버리고 달아나버린 뒤에야 찾아왔었다는 데에서 그가 궁극적으로는 무속세계와 동류일 수가 없음이 증거 되기는 한 셈이다. 이 점에서 같은 유랑성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민구의 그것과 준태의 그것이 동질일 수는 없다 하겠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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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 다시 사는 4월의 은혜 - 부활절에 (유승우)
    정재규목사의 「생명의 부활」   다시 사는 4월의 은혜 - 부활절에 (유승우) 4월이 되면서 올해에도  코로나의 악몽을 뚫고,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봄볕과 봄바람을 보내시어 산과 들의 잠든 생명을 깨우신다. 겨울바람 속에서 춥게 잠들었던 알몸의 가지들이 파랗게 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 짓고, 아파트 그늘 밑 콩크리트 사이에서 메말랐던 민초 같은 풀꽃들도 사랑의 꽃등을 켜들고 환하게 웃는다. 아. 생명사랑의 끝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4월이여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번 부활절에는 성령의 빛이 되어,  성령의 봄볕으로 오시어, 부디 오시어 돈 우상에 얼어붙은 겨울들판 같은 우리들의 가슴을 녹여 주시어  우리들의 가슴에 사랑의 새싹이 돋고, 성령의 꽃이 활짝 피어나, 모두의 가슴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듬뿍 맺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의 가슴에 성령의 열매가 열려 백성사랑의 열매가 채워지게 하소서. 새로운 봄 동산이 열매를 많이 맺는 여름의 푸른 숲이 되게 하소서. 특히 이번 부활절에는  성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어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저 북한의  3대세습의 괴물이 녹아나게 하시고, 모스크바의 전쟁귀신 푸틴의 가슴에서 전쟁의 얼음뿌리가 녹아나게 하시고, 아프리카의 가난의 뿌리가 삭아져 아름다운 열매의 숲이 되게 하소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성령의 훈풍과 사랑의 봄볕으로 아름답게 꽃피는 아름다운 부할절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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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4-13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1)-황순원의
    황순원의 장편소설 <움직이는 성>(1973)은 실로 기독교적 문제의식이 충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기독교 문제를 중심으로 이를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한국인의 유랑민 근성을 다루는 과정에서 기독교 문제를 끌어들였다는 데에 우리의 관심이 기울어진다. 이 작품은 유랑적인 기독교와 비유랑적인 기독교, 그리고 유랑적인 샤머니즘, 이렇게 세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축을 대표하는 송민구 윤성호 함준태 등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그 관련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셈이다. 이리하여 <움직이는 성>은 유랑적 기독교의 송민구와 비유랑적 기독교의 윤성호, 그리고 다른 유랑적인 세계의 함준태 등 세 명의 복수주인공들을 축으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기독교도이면서 샤머니즘에도 대단한 흥미를 지니고 있는 민속학자 송민구는 전형적인 유랑인 기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매우 실리적인 인물로서 평소에 그 자신이 제창하던 ‘유랑민 근성의 극복’이란 구호 자체가 무색하리만큼 종국에 그 스스로 유랑적 근성을 드러내고 말며, 함준태는 비판적이면서 솔직한 면은 지니고 있으나 마침내 스스로 현실에 좌초해 버림으로써 유랑의 본질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윤성호만은 가난한 이웃들에 대하여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실천적인 삶을 통하여 신(神)의 인류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로서의 실제적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터전’으로서의 기독교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세 남자들에게는 각각 상대적 여성들이 등장함으로써 각기 한 쌍씩을 이루므로, 이 세 쌍이 펼치는 복잡다기한 이야기들이 그들 나름의 흥미를 독자에게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민구에게는 한은희가, 성호에게는 한 여사가, 그리고 준태에게는 남지연이 각기 상대역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세 쌍의 등장인물들이 각기 남녀주인공으로 나오는 독립적인 이야기가 한 작품 안에서 합동으로 만나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복잡다기하게 얽혀지는 이야기가 곧 <움직이는 성>인 것이다. 스케일의 웅대함과 정교한 구조의 절묘함 및 소재 면의 다양성 때문에서도 이 작품은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을 전개한다거나 또 어느 한편에 치우친 편향적 진술을 하기 곤란하도록 스스로 장치된 셈이라 하겠지만, 작가 자신의 노련한 솜씨에 의해 적어도 한국의 6,70년대적 시대상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30년대 초에 염상섭이 장편 <삼대>를 내어놓음으로써 2,30년대의 한국 사회풍속도를 그려 놓았던 역할을 황순원이 70년대 초에 재현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70년대 초에 이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한국의 6,70년대 사회풍속도를 효과적으로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삼대>의 경우에는 봉건주의와 기독교 및 사회주의 등이 통시적으로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었지만, <움직이는 성>에 있어서는 개인주의(개인의 정숙주의)와 기독교 및 샤머니즘 등이 공시적으로 부딪치고 긴장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년대와 30년대 초에는 확실히 ‘봉건주의·기독교·사회주의’ 간의 상호갈등이 심화되었던 게 사실이지만, 60년대와 70년대 초에는 봉건주의나 사회주의의 심각한 대두가 물러난 대신 전통적인 샤머니즘과 개인주의 등이 기독교와 서로 부딪치는 양상을 노정했던 것으로 작가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지 이야기하고 보면, 위의 각각의 세 요소들 가운데 유독 기독교만은 양(兩) 시대에 두루 걸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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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30
  • 한국 기독교, 그 심층적 해부(5)-염상섭의
      <삼대>의 여주인공 홍경애는 조상훈의 아들 덕기와 어느 소학교를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 동창 관계이다. 그 학교는 조상훈이 얼마간의 기부금을 낸 관계로 그가 설립자의 명의를 한 몫 가지고 있는 교회학교였다. 바로 이 학교에서 덕기와 경애는 함께 공부하는 가운데 서로 알게 된 것이었다. 경애는 이처럼 덕기와는 동창 관계이고, 덕기의 부친 조상훈과는 사제지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그들 상호간의 관계는 얼마 지난 뒤 바뀌어지게 되었다. 경애가 어느 정도 철이 들었을 때, 그리고 애국지사였던 그녀의 부친이 감옥에서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가출옥하였을 때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부친이 위태하다는 소문을 듣고 조상훈은 그를 문병하러 간 것이었다. 병자는 신장염에다 기관지병이 겹쳐서 한마디로 중태였다. 상훈은 문병이 끝나고 귀가한 뒤, 인삼 몇 뿌리에 쌀 한 가마니 표와 돈 얼마가 든 봉투를 경애를 통해 보낸다. 며칠 후에는 자기 집 단골 의사를 소개하여 진찰을 받게 해 주기도 하였으나 병자의 건강이 근본적으로 호전되지는 못하였다. 결국 해가 바뀐 뒤, 노 지사는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임종 현장에서 당사자의 유언도 있고 하여 상훈은 지사의 남은 모녀를 잘 보살펴 주었다. 교회 안에서도 애국지사의 유가족을 끝끝내 돌보아주는 상훈의 그 독지에 대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이럴 즈음 여학교를 졸업한 경애가 설립자 대표인 상훈의 추천으로 그 학교의 선생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훈과 경애의 관계를 두고 심상찮은 소문들이 오고갔다. 당황한 경애는 자신을 수원 지역의 학교로라도 옮겨 달라고 부탁해 보는 게 좋겠다는 판단 아래, 결국 감기로 인해 한 이틀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조상훈을 만나러 그의 댁을 찾아갔다. 그녀의 이 잦은 방문이 빌미가 되어 두 사람 사이는 깊은 관계로 변한 것이었다. 경애는 딸아이를 낳게 되었으며, 상훈의 실제적인 첩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 태어난 그 계집아이는 덕기의 이복누이 동생이 되었고, 경애는 덕기의 단순한 동창생의 신분에서 이제는 그의 서모의 위치로까지 뒤바뀌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변화는 경애 모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교회의 전도부인이던 경애 모친은, 세상을 숨기고 낳은 목숨(손녀) 때문에 교회에서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으며 당사자(경애)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경애의 처지는 그 정도에서 그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조상훈은 경애가 아이를 낳자 세상 이목이 두려워 그녀를 의식적으로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생활 대책조차 세워주지 않았다. 아이는 병들어 40도의 고열을 호소하는 형편인데도 아버지는 그의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속에서 점차 경애의 타락상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친구가 경영하는 자그마한 술집 ‘바커스’의 여급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인들 어찌할 것인가. 현실 타개책의 일환으로, 그리고 절망감의 가벼운 해소책의 일환으로도 그녀는 이런 길을 택할 수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훌륭한 아버지(애국지사)와 전도부인인 어머니, 그리고 그녀 자신도 교회학교를 거쳐 후에는 그 기독교 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던 독실한 여신도 홍경애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그녀의 몰락상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홍경애는 미래지향적인 청년 김병화를 만나게 되면서, 소아적이었던 그녀의 삶이 이후 점차로 대승적인 삶의 모습으로 바꾸어지게 되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
    • 문학
    2022-03-17
  • 한국기독교문협 제56회 서면총회,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 다짐
    130명의 작품 수록한 「기독교문학」 제43집과 동화집 발행 문학사랑방과 세미나, 계간 문학잡지 발행 등 사업을 추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사진)는 제56회 총회를 자난 8일 ‘코로나19’로 인해 서면으로 가졌다. 이번 총회는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에 중점을 두고, 문학사랑방과 세미나, 에세이집과 연간집 발간 등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계간 〈기독교문학〉발행을 위한 기금모금에 앞장 서기로 했다.   이번 총회에서 이수영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서 모임과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세미나와 문학사랑방 등 행사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동문학분과 주관으로 동화집 <안녕, 상상 숲 오두막>을 발간하여 회원들과 전국 도서관 400여 곳에 배포하고, 전국 서점에서도 판매중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에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이이사장은 “해마다 발행되고 있는 〈기독교문학〉을 계간으로 발행하기 위해 기금모금 중에 있다. 지난 회기에도 회원들이 참여해 620만원을 입금해 주셨다. 이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적극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혔다.   이번 총회를 기해 연간집인 〈기독교문학〉 제43집과 동화집 〈안녕, 상상 숲 오두막〉(창조문예사 펴냄)을 펴냈다.    〈기독교문학〉은 이이사장의 「권두단상」을 비롯한 평론에 6명, 시에 90명, 소설에 5명, 희곡 1명, 동시에 6명, 동화에 7명, 수필에 14명 등 130여명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수록된 작품들은 지난 해인 2021년의 한국 기독교문학에 대한 현주소이다. 지난 해에 발표된 작품과 그 수준의 작품 중에서 자선해 게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화집은 동협회 아동분과(위원장=이명희아동문학가)의 회원이 중심이 되어 펴냈다. 엄기원원로아동문학가의 「짹짹이네 크리스마스」를 바롯한 강정규의 「엿이야기」, 한상남의 「피피와 어린양 세모」 등 19명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수영이사장은 “‘코로나19’로 모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2020년 시집과 에세이집을 펴내고, 이번에는 동화집을 편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이사장은 “금년에도 ‘코로나19’로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에세이집을 펴낼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혔다. 이 에세이집은 ‘감사’를 주제로 편집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회에서는 「회보」4회 발행을 비롯한 △연간집 〈기독교문학〉제44집 발행 △‘감사’를 주제로 「에세이집」발행, △교회순회해 문학적 간증과 시낭송 등으로 갖는 「문학사랑방」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세미나 △계간 〈기독교문학〉발행을 위한 기금모금 등 사업을 확정했다.   한편 동협회는 이날 임원회를 기독교신문에서 갖고 서면총회에 따른 결의사항을 점검했다. 이이사장은 “무엇보다도 금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세미나와 문학사랑방 등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 같다”면서, “문학을 통한 하나님나라 확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문학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임원회에서는 에세이집 발간을 위한 편집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는 현재 수필분과 위원장인 박정미수필가로 선정했다.  
    • 출판/문화
    • 문학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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