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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22)
          윤동주의 서시, 한강의 서시         한강의 '서시'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끄트머리에 ‘서시’가 있다. 어째서 일까?  죽음은 누구나 인생의 끝에서 만난다. 한강은 그의 문학에서 제주 4.3,광주 5.18의 영혼을 우리들 안에 가만가만히 불러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윤동주의 ‘서시’나 한강의 ‘서시’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생의 마지막 순간을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죽음과의 대면을 미리 상상한다. 운명의 ‘얼룩진 뺨’에 두 손을 얹음은  윤동주의 ‘서시’ 처럼 한강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가 보겠다는 다짐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생명이고 사랑해야 하기에 그러하다.  윤동주와 한강은 그가 알고 있는 모든생명을 사랑한다. 살아 있었거나 살아있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기에.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의미      2024년 12월 10일, 오후 4시 40분쯤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작가이자 평론가이며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인 엘렌 맛손이 한강의 문학 세계를 연설했다.    한강의 글에서는 흰색과 빨간색, 두 색이 만납니다.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에 내리는 눈이자, 서술자와 세계를 구분 짓는 방어막 같은 커튼입니다. 동시에 슬픔, 그리고 죽음입니다. 빨간색은 삶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고통, 피, 칼에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럽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학살이 끝나고 켜켜이 쌓인 시체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짙어지며, 호소하고, 질문합니다. 글이 답을 하지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을요. 우리는 죽은자, 강탈된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흰색과 빨간색은 한강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 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雪)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사이 아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떠다니는 것들이 만나는 장소를 만듭니다. 소설은 눈보라 속에서 전개되며, 기억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서술적 자아는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갑니다.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지식을 배우면서요.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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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7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21)
    돌이킬수 없는, 5‧18과 12‧3   그로부터 45년이 지나 ‘계엄’은 재연할 수 없는 명사로 굳혀 졌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령 포고문 1호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8일의 전국 계엄으로 확대 발표한 과정을 생략하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2024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외 그외 작품이 노벨문학상작이 되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12.3 '계엄'불발 되어진 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발휘한 문학의 힘이라 여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영화의 메시지처럼 그 자신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는 시대를 넘어서 읽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폭력'은 5월 광주에 그친 것이 아니고 계속 발생될 수 있는 것은 카인에서 시작된 폭력 유전자가 시대와 지역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윤석열은 위법한 군사력을 행사하여 2024년 12월 14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탄핵소추 되었고,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되었다. 윤석열은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도량발호’ 권력부리며 함부로 날뛰다가 그 자신이 폐기처분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윤동주의 서시, 한강의 서시   한강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가장 한국적인 사건들을 자신만의 시적 문장으로 담아낸 한강만의 독창성에 있다. 한강은 역사적 장소와 사건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활용해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 지, 트라우마가 한 세대를 넘어 어떻게 대대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한강의 매우 부드럽지만 정확한 산문이 폭력의 잔인한 힘에 대응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노벨위원회는 밝혔다. 시인 한강의 ‘서시’와 윤동주의 ‘서시’는 시대를 넘어선 생명과 사랑에 대한 연대가 있다.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강의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계속)   /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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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3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20)
    2024년 12월 5일, 한국기독교성령센터 황희자채플에서 기독교문화예술원 주관으로 ‘한강의 노벨문학상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문학포럼을 가졌다. 발표자 김삼환 박사는 한강 작가에게 있어서 철학적 깨달음으로 ‘생명현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깨달음은 생명현상의 아름다움과 대척점을 이루는 것으로 생명을 죽이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한강에게 있어서 폭력이란 국가의 폭력이든 어떤 주의나 이념이나 신앙이 내포한 폭력성이나 <<채식주의자>>에서 보듯 인간이 자신의 건강을 위한 육식으로 인해 다른 생명체에 대해 저지르는 살해든 간에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고 살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철학과 문학 사이에는 ‘과’로 연결되는 현상학적 연결이 있다. 인식론적으로는 단절이지만 현상학적으로는 연결이다. 그러나 신학은 철학을 거친 문학과는 현상학적으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학을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다루는 까닭이다. 초월의 차원에서 신학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김삼환 박사는 제시했다. 이는 한국 기독교내에서 한강의 소설을 좌우로 나누어서 비판하는 현상에 대해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해석이다. 생명현상을 파괴하는 십자군 전쟁이나 온갖 종류의 폭력성은 모두 타락한 원죄의 심성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까닭에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것들로 부터는 구원의 길이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한강의 작품에는 정자체로 전개되다가 이탤릭체의 기울인 체가 상당부분 차지한다. 한강 작가가 이탤릭체로 쓰게된 것은 쓰다가 보면 감정의 밀도가 차오르게 되어 정자체로는 이를 담을수 없어서 이탤릭체로 기울여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한강 작가는 인물의 독백, 심리적으로 중요하거나 시적인 부분을 이탤릭체로 표현해 감성을 자아냈다.   돌이킬수 없는, 5‧18과 12‧3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1979년 10월 26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전두완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이어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자 1980년 5월 17일 24시에 군부를 장악했다. 전국으로 비상 계엄을 확대하였고 계엄 포고령 10호를 선포하여 정치 활동 금지령, 휴교령, 언론 보도 검열 강화 같은 조치를 내렸다. 신군부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을 포함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들 수천명을 감금하고 군 병력으로 국회를 봉쇄했다.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5월 18일에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일으켰다. 신군부는 부마민주항쟁 때처럼 광주의 민주화 요구 시위도 강경 진압하면 잠잠해질 것으로 판단하였고, 계엄군을 동원해 진압했다. 신군부는 1980년 3월부터 5월 18일 직전까지 공수부대에 충정훈련을 실시했고, 5월 초부터 군을 사전 이동 배치하고 신군부에 반발하는 시위를 진압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가스파르 노에 감독,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한 2002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처음의 끔찍한 폭력의 현실에서부터 마지막 장면의 행복했던 과거로 가면서 이젠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에 모두 좌절한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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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3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9)
    생생히 번쩍이는 눈으로 영혜는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영혜야. 대답이 없자 그녀는 좀 더 큰소리로 불렀다. 영혜야. 지금 뭘 하고 있어, 똑바로 서봐. 그녀는 영혜의 달아오른 뺨에 손을 뻗었다. 똑바로 서, 영혜야. 머리 안 아파? 얼굴이 새빨갛잖아. 마침내 그녀는 영혜의 몸을 힘주어 밀었다. 과연 다리부터 바닥으로 털썩 무너졌다. 그녀는 영혜의 목에 팔을 받쳐 들어 올렸다. ……언니. 영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언제 왔어? 마치 좋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영혜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보고 있던 보호사가 다가와 그녀들을 로비 한 켠의 면담실로 안내했다. 원무과 옆의 면회실로 내려오기 어려울 만큼 증상이 무거운 환자들은 이곳에서 가족과 면회한다고 했다. 아마 의사와의 면담이 진행되는 곳인 것 같았다. 그녀가 탁자에 음식을 풀어 놓으려 하자 영혜는 말했다. 언니, 이제 이런 거 안 가져와도 돼. 영혜는 웃었다. 나, 이제 안 먹어도 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녀는 홀린 듯이 영혜의 얼굴을 보았다. 이렇게 밝은 영혜의 얼굴을 그녀는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 보았다. 그녀는 물었다. 아까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언닌, 알고 있었어? 대답 대신 영혜는 물었다. ……뭘?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까르륵 영혜가 웃었다. 그제야 그녀는 영혜의 표정이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꺼풀 눈이 가늘어지며 온통 까매지는 순간, 영혜의 입에서 까르륵, 무구한 웃음이 터져나오곤 했다.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 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열에 들뜬 영혜의 두 눈을 그녀는 우두망찰 건너다 보았다.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영혜는 가부장제라는 육식 문화에 채식이라는 소극적 저항으로 탈주하려 했다. 그녀는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 싶다며 물구나무서서 햇빛과 물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죽어가고 있는 영혜를 실은 구급차는 축성산을 벗어나는 마지막 굽이길을 달려가고 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를 폭력과 억압의 공동체를 탈주시키고자 했다. 가부장적 폭력으로 무너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자연과 화합하게 하는 세상을 구현하려고 했다.   한강의 은유가 가득한 이 산문은 여성의 삶에 대해 뚜렷하게 느껴지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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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8)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213쪽)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5.18민주광장의 광경   <소년이 온다>의 1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6명의 인물은 오월 광주의 희생자이고 피해자이다. ‘은숙’ ‘선주’ ‘나’ ‘동호 어머니’는 각각 자기 위치에서 5.18을 증언한다. 은숙이 도청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영혼이 부서졌다’고 생각한다. 은숙은 검열 경찰에게 ‘뺨 7대’를 맞으며 5.18의 트라우마를 기억해 낸다 임선주는 광주를 치루며 참혹한 성고문을 당하고 그후유증으로 여성성을 상실한다. 선주는 자신에게 광주의 상처와 고문을 증언하라는 유신 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들, 노동 운동할 때 믿고 의지하던 성희 언니조차 모른척 한다. 이는 고통의 기억을 거부하고자 한 것이다. 동호 어머니는 두 아들을 다 잃을 수 없어 동호에게 집에 오라고 하고 발걸음을 돌린 것을 평생을 자책한다. 동호의 실제인물, 당시 광주상고 1학년인 열여섯 살 문재학이 우리에게 온다. 2024년 10월, 노벨문학상의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되어 나라마다, 도시마다 온다. 넋이 온다. 한강은 5월 광주를 기억하고픈 이에게 영혼들이 못다한 말들을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고통스럽지만,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인간 존엄의 서사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다가 두 개의 질문을 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었다.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으리라고 체념을 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5월 군인들이 되돌아 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 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시는 겁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박영준의 마지막 밤에 쓴 ‘양심’에 대한 증언은 한강에게 현현이란 이피퍼니가 되었다. 오월 광주에서 쓰러진 이들은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옴에도 인간의 양심이란 눈부신 한순간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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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9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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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4-1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1)
      작가는 세 여성의 시각으로 칠 년에 걸쳐 서사했다. 정심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오빠 정훈의 뼈 한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웠다. 작가는 인간성의 바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서 마침내 심해의 바닥에서 촛불을 밝혔다. 정심이 그녀의 오빠 정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별을 짓지 않음은 지극한 사랑인 것이다. 불어 번역 제목처럼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다. 제주 4.3의 피해자들은 한강 작가에 의해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간 것이다. 4.3 은 사랑이 고통으로 이어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시적 서사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누구에게나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 지를 알게 한다. 작가는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오월 광주,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의 영문 제명이 휴먼 액츠 Human Acts 로서 소년 동호의 넋이 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 동호 정대 정미 은숙 선주 진수는 인간이라는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1986년 5월 18일부터 28일 까지 열흘 간 자행된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행위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한강 작가는 묻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제 와서 인간을 믿을 수 있고 또 인간적 삶을 껴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어린새 동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한강은 ‘광주의 열흘’ 간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어린 새, 동호는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당장 집에 들어와 동호는 단단히 화가 나 있던 작은형의 목소리를 털어 내버리고 상무관에 있는 관을 지킨다. 동호는 장부에다 그들의 이름과 관 번호를 덧붙여 쓴뒤, 긴 괄호로 목록을 묶고 ‘합동추도식 3’ 이라고 적었다. 다음 추도식을 할 때 같은 관이 또 나가지 않으려면 잘 기록해 둬야 한다고 진수 형이 당부했기 때문이다. 애국가가 끝났는데도 아직 관이 정리되지 않았나보다. 군중의 웅성거림 사이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시간을 벌기 위해선지, 마이크를 쥔 여자가 이번엔 아리랑을 부르자고 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여자가 말한다. 먼저 가신 임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수천사람의 웅성거림이 일제히 멎은 순간, 주변의 정적이 갑자기 도드라지게 느껴져 너는 놀란다. 함께 묵념하는 대신 일어선다. 옆구리에 장부를 끼우고, 반쯤 열어 놓은 상무관 출입문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바지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쓴다. 초를 태워도 아무 소용 없네. 냄새를 견디며 너는 강당에 들어선다. 날이 흐려 실내는 마치 저녁 무렵 같다. 출입문 쪽으로는 추도식을 마친 관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고,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입관을 못한 서른 두 사람의 몸들은 흰 무명천에 덮인 채 넓은 창 아래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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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0)
    내가 미리 보지 않았다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을, 흑과 백만 남기고 그 사이의 색조와 세부가 지워진 사진이다. 그 페이지의 갈피에 중앙 석간지 사회면의 단신 스크랩이 끼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손때가 묻은, 가로와 세로로 접혔다 펴지며 생긴 십자 선이 희끗하게 닳아 있는 신문 조각이다. ‘사형언도’라는 단어에서 가장 복잡한 글자 아래 독음을 적은 청색 볼펜 글씨‘도’를, 그 옆의 여백에 눌러쓴 대구 국번 전화번호를 나는 읽는다. 이 번호는········ 이것과 같아,  손을 뻗어 소책자의 페이지를 더 넘겨간 인선의 손이 마지막 장 하단을 가리킨다. 회비와 성금을 보낼 농협 계좌번호와 예금주의 이름, 그리고 대구 국번의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다. (278-279쪽) 그후로는 강정심이 모은 자료가 없다. 삼십사 년 동안. 군부가 물러가고 민간인이 대통령 될 때 까지. 결국 인선의 엄마는 실패했다. 오빠 강정훈의 뼈를 찾지 못했다. 단 한 조각도.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광산을 방문했다. 인선의 엄마 정심의 나이가 일흔둘에서 일흔넷. 무릎 관절이 악화되던 때이다. 인선의 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서 십오 년의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고문으로 얻은 수전증이 있었지만, 신세 지는 집의 귤 농사를 거들었다.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몇 년간 타일 기술도 배워서, 보수 없이 마을 일을 해주며 천천히 평판을 쌓았다. 허지만 군사 정권하에 한 달에 두 번 경찰이 동태를 조사 하러 오는 전과자와 허물없이 지내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인선의 아버지는 아내 정심을 대면하고 그후로도 오 년이 더 흘러서 중산간 집에 들어왔다. 인선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주정공장에서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이북 말을 쓰던 남자가 옷을 벗기고 의자에 거꾸러 매달 때마다 한 말을 들려 주었다.  씨를 말릴 빨갱이 새키들, 깨끗이 청소 하갔어. 죽여서 박멸하갔어, 한 방울이라도 빨간 물 든 쥐새키들은  수건이 덮인  아버지 얼굴에 그 사람이 끝없이 물을 부었다. 젖은 가슴을 야전 전화선으로 묶고 전기를 흘러 넣었다.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그 사람이 속삭일 때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모루쿠다. 죄 어수다. 나 죄 어수다.(297쪽) 정심은 남편이 당한 고문의 이야기를 듣고 오빠에게 했던, 오래 후회하게 될 말을 기억한다. “오빠 머리가 무사그러멘? 머리가 이상해” 정심은 인간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고문의 증상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정심은 맥락없이 자책했다.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 같이 우두망찰 정신이 반나마 나가 있었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게 한 사랑의 서사 한강은 2014년 여름, 오월 광주에 대한 < 소년이 온다>를 낸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작가가 꾼 꿈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장에 해당하는 4페이지이다. 한강 작가는 2014년 여름에 꿈을 꾸었다. 꿈을 꾸고 나서 기록해 두었다. 무언가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기에.  그후 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그 꿈의 의미를 되새겼다. 소설의 처음은 경하와 인선이 함께 끌고 가지만. 이어 달리기에서 마지막 주자가 중요한 것처럼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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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9)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 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했다. 경산에 있는 코발트 광산에서 약 삼천오백 명이 총살됐다. 대구형무소 재소자, 대구보도연맹 가입자, 경산경찰서 인근 창고에 수용됐던 경북 지역 가입자까지. 여러 날에 걸쳐서 새벽부터 밤까지 총소리가 들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다. 갱도가 시체로 가득찬 다음에 근처 골짜기로 옮겨서 총살하고 매장했다. 인선은 외삼촌 강정훈이 골짜기가 아니라 광산에서 총살됐을 확률이 높다고 추정했다. 1960년 여름이야, 여기서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 처음 모인 건. 전쟁 당시 수뇌부가 4.19로 물러난 직후에. 귀퉁이가 삭은 신문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넘겨간 인선의 손이 반으로 접힌 스크랩을 꺼낸다. 그녀가 두 손으로 그걸 펼치자, 광고가 실렸을 하단을 오려낸 사회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위령제 기사가 실렸던 곳과 같은 신문이다. 날짜는 위령제보다 한 달가량 앞서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갱도에 들어간 유족들에 대한 기사야. 그때 찍은 사진이 이건데, 어디서도 실어주지 않으니까 후일을 기약하고 유족들이 나눠 가진거야. 인선의 말대로 기사에는 갱도 사진이 실려 있지 않다. 대신 광산 입구의 전경이 머리기사 옆에 실렸고, 사진 왼편에 유족회 대표의 인터뷰가 들어가 있다. 십 년 동안 갱도에 물이 흐르고 뼈들이 삭아서 흩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온전한 형체를 갖춘 유해는 한 구도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수습할 장비도 인력도 없이 무작정 내려가 본 거여서 사진 한 장만 찍고 올라왔습니다. 유족회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숫자는 삼천 명이 넘는데, 제가 본 제1수평갱도에는 대략 오륙백 구의 유골이 있었습니다. 수직갱도 입구를 콘크리트로 막아 놨는데, 그걸 뚫고 내려가 아래쪽 수평갱도를 살펴봐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겠습니다. 경북에서 발행된 신문을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이 대구 위령제에서 직접 사온 신문의 기사이다. 대구역에서 열린 위령제에 참석해서 강정심이 그날 받아온 유인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발신인 자리에 대구 주소와 함께 찍힌 청보랏빛 직사각형 스탬프에 촛불을 비춰 나는 묵독한다. 경북 지구 피학살자 유족회. 나는 싸늘한 봉투 속에 손을 넣는다. 팔절 갱지 십여 장을 반으로 접어 중철한 소책자를 꺼내든다. 따로 두꺼운 종이를 쓰지 않은 표지를 넘기자 첫페이지에 편지글이 실려 있다. 유가족들의 피맺힌 원을 받들어 십 년 세월 그리던 임을 만나 고이 쉬게 해드릴 날이 곧 옵니다. ‘피해 유가족들은 낡은 공포심을 극복하고........’ 라는 문장을 쓴 사람과 동일인이 아닐까 추측되는 길고 격앙된 문장이다. 다 읽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자 조악한 화질의 흑백단체 사진이 나온다. 1960년 겨울에 코발트광산 앞에서 찍은 사진이야. 이때 엄마는 가지 않은 것 같아. 대신 유족회원으로서 회비를 냈기 때문에 이 우편물을 받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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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8)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동안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250-251 쪽)   인선의 엄마는 막내 동생이 어멍 아방은 숨 끊어져 옆에 누워 있고, 심부름 간 언니들이 돌아와서 저를 구해준 거라 생각했을 거라고 말했다. 인선의 엄마 정심이가 모아둔 상자안엔 신문 조각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회색 무명실로 가로로 둘러 묶고 리본 매듭을 지어 있었다. 청색 볼펜으로 적힌 숫자 ‘1960.7.28.’과 ‘E일보’에는 흑백 보도사진 속 광장에 모인 수 백 명의 모습이 박혀 있다. 대부분 흰옷을 입고 깃발을 든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이 바라보는 쪽에 걸린 플랜카드에 붓으로 씌어진 한자 ‘경북 지구 피학살자 합동 위령제’ 경북 지역 보도연맹원 1만여 명   대구형무소 1천5백 명 재소자   경산 코발트 광산 및 인근 가창골   학살자 유해 수습 발굴 4.19 혁명 정신에 입각하여 피학살자 및 피해자 실태조사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피해 유가족들은 낡은 공포심을 극복하고 본회 조사 사업에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는 기사이다. 인선의 엄마는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획을 사십오도로 꺾어서 날자와 E일보를 필압이 높은 글씨로 표시했다. 경하는 1948년 11월 중순부터 석 달 동안 중산간이 불타고 민간인 삼만 명이 살해된 과정을 그 오후에 읽었다. 3월에 임명된 사령관은 빗질하듯 한라산을 쓸어 공비를 소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먼저 민간인들이 내려오도록 삐라를 뿌렸다. 아이들과 노인을 등뒤로 숨기고, 총에 맞지 않기 위해 흰수건을 나뭇가지에 묶어 들고 내려오는 남녀들의 행렬이 자료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263쪽) 처벌하지 않겠다던 약속과 달리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인선의 엄마와 이모는 주정공장으로 찾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 정심의 오빠는 열두 시간 가까이 밤배에 실려 목포항에 도착했다. 외삼촌의 편지가 당숙네로 처음 배달된 건 1950년 3월이다. 그 편지에 인선의 엄마 정심은 답장을 써 보내고 외삼촌이 5월에 다시 보낸 편지를 정심은 반짇고리 함 뚜껑 안쪽에 감쪽같이 꿰매져 감춰두었다. 다음달에 전쟁이 터졌고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1954년 5월, 휴전되고 나서 두 자매가 함께 대구형무소를 찾아갔다. 그곳에 인선의 외삼촌은 없었다. 사년 전 7월 진주로 이송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다.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서 역전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고 날이 밝는 대로 진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형무소를 찾아갔다. 그곳에도 정심의 오빠는 없었다. 이감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주에서 하룻밤을 더 묵은 뒤 두 자매는 여수항으로 갔다. 인선의 엄마에게 이모가 말했다. “포기하자고. 오빠는 죽었다고. 진주로 이감했다는 날짜를 기일로 하자고.” 그해 경북 지역에서 죽은 보도연맹 가입자가 만 명이다. 전국에서는 최소한 십만 명이 죽었다.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가족단위로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대상이 된 이들이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 출판/문화/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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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1
  • [현대문학산책] 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7)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는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라 인선은 추정을 했다. 전쟁 발발 직후 제주에서 예비검속돼 총살된 천여 명 중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뼈대로 삼아 다큐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인선의 아버지는 혼자 동굴에 숨어 지냈다. 그 11월 밤에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동굴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건천을 건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별안간 사위가 밝아졌다. 집들이 불타기 시작한 거다. 마을 공터 쪽에서 일곱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버지는 숲 사이로 지켜봤다.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개머리판을 휘둘르며 끌려가고 있는 그의 두 동생과 마을 사람들을 숨을 죽이고 보았다.   더 이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아버지는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인선의 할아버지였다.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代殺한 거였다. 겨우 일주일 만에 인선의 아버지는 붙잡혔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만으로 더 버틸 수 없어서, 타다 남은 곡식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경찰과 마주 쳤다. 시신을 매장하러 올 사람들을 잡으려고 매복하고 있었던 경찰에게 체포되어 제주읍 부두에 있는 주정공장에 보름동안 갇혀 있다가 목포항으로 실려갔다. 군과 경찰의 지휘 계통이 달라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 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다.   소개령은 해안에서 오 키로미터 안쪽에 내려졌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과 언니는 해안선 가까이 살고 있는 당숙네로 쌀, 감자를 들려 심부름을 보냈다. 두 자매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시신들은 국민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교문 건너 보리밭에서 눈에 덮여 있었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패턴이 같아, 소개하지 않은 이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였다.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씩 닦아가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정심의 오빠와 막내가 안 보였다. 달리기를 잘하는 정심의 오빠와 막내 동생을 찾기 위해 보리밭에 죽어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을, 아래에 동생이 깔려 있는지 시신들을 밀어가며 살폈다.   거기 있었어, 그 아이는.   처음에 엄마는 빨간 헝겊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대. 피에 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대.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 내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 총알이 턱뼈의 일부를 깨고 날아간 거야. 뭉쳐진 머리카락이 지혈을 하고 있었는지 새로 선혈이 쏟아졌대.   윗옷을 벗은 이모가 양쪽 소매를 이빨로 찢어서 두 군데 상처를 지혈했어.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 걸어갔어. 팥죽에 담근 것같이 피에 젖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세 자매가 집에 들어서니까 놀란 어른들이 입을 열지 못했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2-2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6)
    아마는 죽었다. 경하는 새의 죽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감싸 여민다. 한뼘 남짓한 너비의 작은 통이지만 새의 몸이 워낙 작아 쓸리고 부딪히지 않게,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상자의 안쪽 사면을 두른다. 쥐와 벌레가 파먹지 못하게 흰 수건을 꺼내와 상자를 감싼다. 무명실을 길게 끊어 두 번 십자가로 묶고 매듭을 짓는다. 인선이라면 어디 묻으려 할까. 나무 아래에 다다른다. 체중을 실은 삽날이 조금씩 언 땅을 비집고 들어갔다. 더 큰 눈이 내리려고 한다. 불 켜진 안채 앞으로도 성근 눈발이 날리고 있다.  구덩이 속에 새의 알루미늄 상자를 내려 놓는다. 두 손으로 흙을 떠 놓는다. 종전에 퍼냈던 흙을 삽으로 퍼서 덧 쌓아 작은 봉분을 만든다. 경하는 검은 흙의 표면이 금새 눈에 덮히는 걸 지켜 본다. 경하는 인선이처럼 아마라는 새를 사랑치 않는다. 그러나 인선의 부탁을 받고 폭설을 뚫고 목숨을 건 산행길로 마침내 그녀의 목공방에 이르렀다. 새의 사체를 거두어 팽나무 아래 땅을 파고 소중하게 파묻었다. 제주 4.3 사건에서 죽은 자들은 아직도 무덤이 없는데 새인 아마는 봉분까지 만들어졌다. 새는 제주 4.3에서 죽은 자를 상징하고 있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의 경계 프랑스를 중심으로 소개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꿈과 현실 사이의 매혹적인 연속체로 독특하고 신빙성 있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의 이미지가 거느리고 있는 시적 산문은 20세기 한국 역사의 정치적 폭력의 기억을 응시하고 피해자를 향한 애도의 윤리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하와 인선 그리고 정심이 그녀의 오빠를 찾기위한 기억과 기다림에 관해 서사는 불가능한 작별이라는 것이다. 1부 ‘새’는 2부 ‘밤’을 견인하기 위한 밑자락이다. 서두에서 인선은 두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고 삼 주나 봉합된 부위를 삼 분마다 바늘로 찔러야만 했다.  그래서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친구 경하를 폭설로 뒤덮힌 중산간 외딴곳 에 있는 자신의 목공소로 보낸다. 경하는 제주 P읍에서 인선과 통화를 하고자 했으나 간병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인선이에게 위급한 상황에 처했는지 대신 받아 이따 전화하라고 끊었다. 2부 ‘밤’의 전개는 인선과 경하의 회상, 인선의 부모와 외삼촌에 대한 회상등이 인선을 통해 잔잔하게 묘사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중첩되어 몽환적이다. 꿈인지 환상인지 뼈들을 본 뒤 부터야 인선이 말했다 ·······만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서 4.3 희생자들의 유골들이 발굴됐다. 다른 유골들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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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02-24
  • 욕구와 영성의 문제, 신앙성숙 방향을 제시
    욕구코칭연구소 김성경소장(사진)의 〈크리스천 욕구코칭〉은 저자가 그동안의 욕구코칭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지난 욕구코칭 단행본은 자기이해, 교사, 학생, 학부모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면, 이번 책은 욕구와 영성과의 문제, 욕구별 신앙성숙 방향, 교회 안에서 갈등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둔 책이다. 교회 안에서 갈등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중점기독교인으로서 내면 욕구·행동을 이해하도록 돕고 행동의 근본원인은 욕구이다. 행동 속에 감정이 숨겨있고, 감정 너머에 욕구가 숨겨 있다. 욕구를 알면 자기 행동과 내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과 내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함에도 기독교계에서 욕구를 다룬 책은 많지 않았다. 행동하게 하는 힘인 욕구를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자기이해와 관계이해 및 용납과 소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욕구코칭」 후속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내면의 욕구와 행동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저술되었다. 첫째, 기독교인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행동하게 만드는 욕구를 이해하면서 나에게 맞는 맞춤형 성숙의 방향을 안내하는 책이다. 특히 5가지 기본 욕구인 생존, 사랑, 힘, 자유, 즐거움의 욕구 유형별로 신앙성숙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둘째, 공동체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지체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돕고 있다. 교회의 여러 관계 속 삐걱이는 관계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각 사람에게 적절한 맞춤형 대처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자유의 욕구로 가득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욕구에 대한 부정적인 기존 이미지를 극복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인 욕구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죄와 우상, 그리고 욕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욕구와 신앙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또 전국의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욕구코칭에 대한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단체의 성경연구 훈련, 신학대 상담대학원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에서 배우고 연구한 이론을 정립하였다. 신앙적 내면 갈등을 욕구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욕구를 알면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행동도 해석이 되어 참된 평화를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앙적 성숙과 내면 성찰을 고민하는 기독인들에게 나침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욕구코칭은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알게 하도록 제시한다. 즉 사람을 보는 관점의 전환을 불러온다.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변화는, 관점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이 올 때도 ‘너 때문’이 아니라 ‘나의 어떠함과 다른 사람의 어떠함이 부딪히는 것’으로 보게 되니 남 탓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문제라고 여기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름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화가 나지 않게 된다.  관점전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도구이며, 그 도구로 욕구가 적절함을 보도록 한다. 욕구코칭을 하면서 오랜 고민이 해소되었다. 욕구는 행동하는 이유이기에 행동을 보면 욕구를 추측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근원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발달단계 속에서 변화되는 모습도 욕구로 이해할 수 있기에 어느 시기의 누가 사용해도 무방한 도구이다. 성경은 관계에 관심이 많다. 관계 속에서 필요한 말씀들을 주셔서 적용이 가능하지만, 각각 다른 상황에서 겪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도 많다. 신앙이 좋다는 사람도 관계는 어렵고, 세상에서는 존경받으나 가족관계에서는 원망을 듣는 사람들도 많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다가 갈라서는 부부도 교회 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욕구코칭은 관계, 즉 서로 이해하는 방법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구이다. 말씀을 관계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욕구를 말씀 안에 계속 비추어 보고 욕구로 말씀을 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욕구코칭이 말씀 적용에 도움을 주는 도구임을 발견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2-18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5)
    눈이란 원래 지상에서 끝없이 생겨나 위로 빨려 올라갔다가 내리는 것처럼 새 아마의 봉분 인선은 경하에게 그녀의 제주 중산간 집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 아마에게 물을 주라고 하였다. 경하는 집에 가서 준비를 해 내일 제주도로 출발하겠다고 하자 인선은 자신이 사고를 당한지 이틀이 지나서 새는 물과 모이를 오늘 안에는 먹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인선이가 문자로 경하에게 신분증을 소지하고 오라고 한 것은 당장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새를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인선이 퇴원할 때 까지 경하가 아마를 돌봐달라는 부탁이었다. 거절할 수 없었던 경하는 그날 즉시 제주도로 갔고 수천수만의 새떼 같은 눈송이들이 내리는 P읍을 찾아갔다. 소설속의 P읍은 4.3 피해자가 많이 나온 표선읍이다. 제주는 폭설로 인해서 육지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다. 날이 저물고 온천지에 눈이 수북히 쌓여있어 오래전에 가본 중산간 마을에 있는 인선의 집을 찾아 가기가 어려웠다. 일주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가 숙소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경하는 아무 준비도 없이 오늘 안으로 앵무새 아마에게  물을 주고자 침낭같은 패딩코트만 걸치고 내려 온 것이다. 서울 병원에 있는 인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하의 핸드폰은 교체할 시기가 지난 기기라서 배터리 잔량을 표시하는 막대가 그사이 한 칸으로 줄어들어 있다. 마침내 연결이 된 인선의 핸드폰에는 인선의 속사임 대신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이따 전화하세요. 이따가 삽시간에 통화가 끊긴 액정 화면의 배터리 잔량이 십여 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제대로 통화하려면 충전하기 위해 서귀포로 가야 한다. 경하는 갑자기 심해진 그녀의 오래된 편두통으로 인해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도 서귀포로 가야 했기에 오늘은 갈 수 없다고 인선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 그때 조그마한 버스 아이콘 하나가 그려져 있는 알루미늄 표지판이 철제 기둥에 매달려 눈을 맞고 있는 곳으로 작은 지선버스가 다가온다. 경하는 어쩔수 없이 인선의 집으로 가기위해 세천리로 가게된다. “버스기사는 마을이 커서 세천리에서만 네 번 섭니다.” 경하는 제주방언으로 불린 정류장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천 들어갔다 나오는 막차를 타고 기억을 살려내서 찾아가는 것이다. 인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보로 삼십 분 넘는 거리에 정거장에는 수령이 오백 년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다. 음료수와 담배를 파는 작은 점방의 위치로 기억한다. 경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경아는 기억에 의지해 찾다가 세 갈래 길에서 폭이 넓은 길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순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눈더미 속으로 미끄러 졌다. 휴대폰을 그때 놓쳤다.  새는 어떻게 됐을까.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인선은 말했다. 그런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진가. 경하는 혼곤해지는 의식 속에, 잠들고 싶음을 떨쳐내고 길을 찾았다. 저 너머에 빛을 발하는 그곳이 인선의 목공방이다. 인선이가 목공방 문이 열린채 실려가고 불빛이 새어나와 멀리서도 보인 것이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2-11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4)
     이태 전에는 적재하던 통나무 더미가 무너지는 걸 막으려다가 왼손 집게손가락이 부러지며 인대가 끊어져 반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았다. 인선은 잘렸다가 봉합된 검지와 중지를 경하에게 보여주었다. 전기 장비를 쓸 땐 아무리 손이 시려도 목장갑을 끼면 안 되는데 찢어진 목장갑을 어렵게 벗었더니 손가락 마디 두 개가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인선은 그순간 피가 솟구쳐 지혈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인선이와 가깝게 지내던 아랫동네 할머니가 마침 제주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트럭으로 대형 택배 일을 하는 아들과 함께 인선의 공방을 찾았다가 기절해 있는 인선을 트럭에 태워 제주병원으로 달렸다. 인선의 손가락 마디 두 개는 목장갑채로 할머니가 들고 섬엔 봉합수술을 하는 의사가 없어서 가장 빨리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고 국내 제일의 봉합수술 전문병원에서 봉합수술을 하게 되었다. 인선은 경하에게 말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간병인 두 명이 이십사 시간 교대로 삼 분에 한 번씩 소독한 바늘을 찔러 주어야 했다. 그것도 삼 주 동안.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부위를 찔릴 때마다 인선은 포기하려고 했지만 의사는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손쓸 수 없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 했다. 딸깍, 소리를 내며 알루미늄 상자가 다시 열렸다. 간병인이 소독제를 넉넉하게 손바닥에 덜어 손가락 사이까지 소독하는 동작을 경하는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정작 인선은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경하가 무엇을 지켜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듯 물끄러미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답답해서 큰일이야, 침대에서 나가면 안 된다는데, 이렇게 계속 부드럽게 불평하는 듯한 미소가 인선의 입가에 어렸다. 걷는 것도 안되고, 조금이라도 팔에 힘을 주는 것도 안된대. 두 개의 바늘을 간병인이 차례로 소독했다. 바늘을 만지는 동안 옮겨왔을지 모를 균 때문인지 두 손을 한 차례씩 더 소독했다. 묶어놓은 신경줄이 자칫하면 다시 풀어져버린대. 팔꿈치 위로 말려 올라가서, 신경을 찾으려면 다시 전신마취를 하고 어깨까지 절개해야 돼, 그러다 마취가 안 깨 큰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이 올초에 있었대. 몇 년 전엔 패혈증이 진행돼 사망한 사례도 있었어. 인선이 말을 멈췄다. 간병인이 인선의 상처에 서슴없이 바늘을 찔러넣는 동작을 나는 똑똑히 다시 보았고, 인선과 함께 숨을 멈춘 채 후회했다. 좀전에 병원 로비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걸? (48-49쪽)  인선이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것, 그렇게 끔찍한 통증을 계속 일으켜야 신경의 실이 이어지는 것이리라.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삼 분에 한 번씩 인선이의 봉합된 손가락 부위를 두 개의 바늘로 찌름으로 피가 통하게 했다. 그 행위는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한다. 병실에서 도로 쪽으로 난 커다란 창밖으로 성근 눈발이 흩어지고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서장부터 종장까지 성근 눈발이 뿌려지고 있다. 제주 4.3 희생자의 묘비우로 성근 눈이 내리고 있다.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죽은 자와 산 자에게 들려지는 진혼곡이 되어 허공에서 깊고 넓게 퍼지고 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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