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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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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05-2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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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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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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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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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1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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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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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2)-심훈의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보다는 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할 것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은 단지, 지식인이 우리 농민들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농촌봉사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혜적 입장(만)을 토로하고 있음에 비하여,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은 지식인이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 유리된 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농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가 농촌의 실상을 체험을 통해 파악하고 그들의 경제적 자활운동을 힘써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보건대, 작가 심훈은 전혀 선배인 춘원(이광수)의 체질과는 다른 체질을 지닌 이였다고 하겠으니, 농촌계몽 소설이란 범주에 들 수 있을 두 편 소설 작품들의, 어느 정도의 상호 유사성으로 인하여 심훈이 다소 춘원과 유사한 체질로 인상 지어진 것은 심훈 자신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춘원이 ‘하강적 모델’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심훈은 ‘상승적 모델’에 해당하는 작가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의 입장이,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춘원이 내세웠던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상록수>의 주인공 동혁의 그것은 신문사의 그 공식적 입장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동아일보가 내세운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이란 것은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과 ‘문맹을 물리치려는 헌신적 노력’에 모아져 있었다. 곧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으로 농촌계몽 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할진대 문맹을 퇴치하게 될 헌신적 노력은 자연히 기울여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대한 결과보고를 부탁받고 일어선 박동혁은 그 경지를 뛰어넘는 발언을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자의 간섭(곧 그 발언이 제지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박동혁은 이렇게 말했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정신, 요샛말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 발언에 대하여 사회자는 절대로 계몽운동과 사상운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차례로 발언하도록 지목을 받은 채영신 역시 동혁과 같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녀는 처음엔 발언을 사양했는데, 이유인즉슨 남학생을 먼저 발언하게 하고 여학생인 자기를 후에 발표하게 한 것이 불쾌하다는 것과 또 사회자가 무어라고 제재를 하게 될 것 같으니 그런 구속을 받아 가면서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마지못한 듯이 일어나서 한 말은 이러했다. “우리 계몽대의 운동이 글자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한절대다수인 농민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우선 그네들에게 희망의 정신을 넣어주자는 박동혁 씨의 의견은 저도 전적 동감입니다!”   결국 박동혁이나 채영신이나 모두 문맹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농민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 ‘희망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긴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던 것이다. 이광수의 <흙>의 주인공 허숭은 화려한 경력에다 출세에의 욕망이 뒤범벅이 되어 농민들과의 동화라는 게 사실상 어려웠지만(아니, 수상쩍은 인물로나 비쳐지고 배척을 당하기까지도 했었지만), 심훈의 <상록수>의 주요인물들인 박동혁과 채영신은 투철한 사명감과 농민에 대한 사랑으로써 쉽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또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들로부터 신임까지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결코 쉽사리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보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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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1)-심 훈의
      올해는 우리나라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대섭(1901~1936)의 탄생 120주년의 해이다. 심훈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 심대섭은 춘원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30년대 농민문학의 쌍벽으로 불리는 <상록수>로 인하여 일단은 이광수의 인상을 많이 연상시키는 작가라고 보겠다. 심훈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증거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의 둘째 형 명섭이 기독교회의 목사였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가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학적을 두었던 대학이 미션계인 항주의 지강(之江)대학이란 점을 감안할 때 그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는 그의 <상록수>의 주인공을 기독교 신자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점이 이채롭다고 하겠다. 여주인공 영신을 신도로 설정하여 청석골에서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 사업을 펼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의 희생 봉사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면에서, 기독교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상록수>를 제외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록수>에서는 긍정적인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을 지닌 채영신과 세속적 이념의 견지에서 세계를 개혁하려는 박동혁의 근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젊은이가 하나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 곧 민족주의적 이념의 공통분모가 시대적 표증으로 한데 묶여질 수 있었기 때문인데,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주인공 영신이 애석하게 희생되는 일을 통해서, 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한 민족에 대한 사랑 역시 그 근원을 기독교적 희생정신에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 정신을 작품상에 반영한 심훈이 그의 유명한 항일 민족시<그날이 오면>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 예언적인 민족문학 작품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체질의 예언시를 오늘 이 땅에 재현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일제 강점기 문인들 중의 일부 인사에 속하기는 하지만, 당대에 그가 민족적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호례의 시가 바로 <그날이 오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시편 가운데 기독교적 언어가 직접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적 위기에 처한 구국적 충정을 시인의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토로해내고 있는 이 시편은, 정치 사회적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북이스라엘 왕국을 구해내고자 현실 참여적 외침을 애국적 민족시를 통해 토로했던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예언시’의 전통이 그대로 오늘 이 땅에 되살아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농촌계몽 소설 또는 농민소설로 지칭되는 몇 편의 굵직한 장편소설들이 나왔다. 이광수의 <흙>과 이기영의 <고향>, 그리고 심훈의 <상록수> 등으로서, 이들 중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 한국 기독교문학사에 엄연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록수>라고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의 기독교 문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그 연구가 결코 풍성한 편은 아닌 현 실정이라고 하겠다.   여러 가지 기독교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소설 <상록수>는 이 방면의 선행 업적이라고 할 이광수의 <흙>과 자주 대비되어 논의되기도 하였다. 같은 30년대의 농촌계몽 소설로서 역시 같은 ‘동아일보’ 지상에 연재된 작품이며, 그 신문사의 ‘브나로드 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작품들이란 공통점 때문이었으리라.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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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 25일,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
    홍덕선서예가, 13명의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   소망화랑(대표=홍덕선장로·사진)은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소망화랑에서 갖는다.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해 전시한다. 이 전시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시와 명언, 서예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이번 서예전에는 박이도원로시인을 비롯한 13명의 시인과 김경래장로,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참여한다. 박이도시인의 「겨울 나그네」, 박종구시인의 「사랑」, 김소엽시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최규창시인의 「커피향기 속에」, 김연수시인의 「기다릴 그대 있어」, 최일도시인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기도」, 정재영시인의 「하늘강」, 조신권시인의 「횃불 항아리」, 이정균시인의 「갈대사랑」, 오성건시인의 「가을연가」, 박완신시인의 「일어나 생명길 걷자」, 금보성시인의 「모래」, 권성묵시인의 「부메랑」, 그리고 명언으로 김경래장로의 「하늘이냐 땅이냐」, 서예는 홍덕선장로의 「시편 37편 46절」 등이 전시된다.   박이도시인은 “먼 길 떠나기 위해/단잠에서 깼다/아직 어둠이 머뭇거리는/새벽하늘에 아침이 온다/희끗희끗 날리며 앉으며/순식간에 천지를 휘감아/화살 짓는 눈발/서로 부딪치며 떠밀리며/지상엔 하얀 폭풍이 인다/나뭇가지 위의 새둥지가/툭, 떨어지고 새들이/포롱포롱 황급히 떠난다/굳게 닫힌 성당 문이 삐꺽/천장에 누워 있던 12사도가/모자이크를 털어내고 걸어 나온다/뚜벅뚜벅 눈 속으로 떠나간다/그 뒤를 내가 따라 나선다/열둘 그리고 열셋의 발자국이/하얀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발자국 뒤로 남는 헛기침 소리”란 「겨울 나그네」에서 12사도의 뒤를 따라 나서는 박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박종구시인은 “십자가 위/못박힌 손과 발/그 아픔보다 더 목말라/했던//그것은//너와 나/그를 향해/그토록/옹색하기만한/그것은”이란 구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엽시인은 “이루지 못한 사랑마다/별이 되게 하소서//이픈 이별마다/별이 되게 하소서//눈빛과 가슴으로/수천 수만 대화 나누고/멀리 두고 바라만 보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특히 김경래장로는 1902년에 태어나 33세에 별세한 차재선전도사의 명설교 제목인 「하늘이냐 땅이냐」를 소개했다. 차전도사는 이 설교에서 “소망의 천국인 하늘을 바라보고 사느냐”의 명언을 남겼다.    이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한 홍덕선장로는 “전시회때마다 관람자들이 감동을 받는 것을 볼때마다 계속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형상화했다”면서, “이 서에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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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 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4)-박영준의
      최광주가 지금껏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의 삶을 통해 그 자신이 터득하게 된 것은 자기의 그런 자세가 아내(삼애)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란 점과 그런 연민이나 동정심만 가지고서는 아내를 진실로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의 인식이었다. 진정한 부부생활은 정신적인 면 못지않게 육체적인 사랑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불구(반신불수)의 아내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로 마음먹었고, 또한 그 일을 성사시키는 기적(?)도 이뤄낼 수 있었다. 아내 역시 그 일의 성사를 미세하게나마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 조그만 행복도 그에게 오래 허락되지는 않았다. 비정상적인 상태에서의 부부행위가 가져다준 후유증이 아내의 정신적인 면으로까지 비화하여 그녀는 고뇌의 빛과 함께 심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일기장 사건이 또 터졌다. 우연히 어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딸 경선이가 어미에게 들켜서 심하게 꼬집힘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꼬집힌 자리는 광주가 보기에도 몹시 독이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심하게 꼬집지는 못할 만큼 대단한 상처였다. 삼애가 경선이를 꼬집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복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그녀가 성적 불구자가 되었다는 울적한 자의식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자신의 치부(추한 과거)가 일기장으로 인해 들통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첫 번째 꼬집힘을 당했을 때, 경선이는 아직 삼애의 깊은 비밀까지는 엿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란 육감이 들었던지 경선이는 그 일기장을 또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런 일을 다시 또 당하게 된 삼애는 경선이에게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동시에 앞으로는 자기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외쳤다. 이 사건이 있은 뒤로 경선이는 실제로 집을 뛰쳐나갔고, 결과적으로 고아원에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작품상에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경선이가 두 번째로 삼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을 때, 이번엔 삼애의 잔인한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미가 “나가라”고 한다 해서, 또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란다고 해서 어린 경선이가 곧장 집을 뛰쳐나가 그날 밤 돌아오지도 않은 일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식에 눈을 뜬 삼애의 자의식 때문에 결국은 그런 가정 불행마저 초래된 것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감동적인 곳은, 자신의 그런 행위를 뉘우치고 곧 언니(신애)의 딸 경선이를 데려오라고 남편(광주)에게 간청하는 삼애의 진심에 찬 애절한 부르짖음의 장면이다. 이리하여 경선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가정은 화평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의 평화 회복도 잠시뿐 폭풍은 새로운 방향에서 불어닥쳤다.    동생 대주와 목사 딸이 어울려 외박을 한 사실이 들통 나서,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고, 광주 역시 동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결국 이 두 가정은 이삿짐을 꾸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 교회의 통상적인 치부까지도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목사나 광주의 가정이 부닥치는 일시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참된 승리자는 김 장로나 김 집사 같은 율법주의적인 부류의 교인들이 아니라, 목사나 광주와 같이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에 둔감하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이란 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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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 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3)-박영준의
      장편소설 <종각>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면을 이하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의 주인공 최광주는 현재 심삼애의 남편으로서, 세 자녀와 미혼인 남동생 대주까지 모두 여섯 식구의 가장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 심삼애는 지금 반신불수의 몸으로 늘 자리에 누워만 있는 불구자로, 3년째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삼애는 광주의 전처였던 신애의 친동생이었다. 전처였던 신애는 딸 경선이를 하나 낳고서 자살해 버린 것이었다.    신애가 자살을 한 이유는 제 남편이 그녀 동생 삼애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는데, 그 일이 남편뿐만 아니라 동생 삼애에게도 똑같이 책임이 있는 일이었고, 남편 못지않게 동생 삼애의 비행에도 그녀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남편의 비행에 대해서는 물론, 동생에게 사랑하는 남편마저 빼앗겼다는 분노감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믿었던 측근에게 남편을 빼앗기는 최대의 배신을 당했다는, 분노를 수반한 자괴감 때문이었다고 보겠다.    친 형부를 빼앗은 삼애도 후에 그 패륜적인 죗값에서랄까 반신불수의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장본인인 삼애는 그녀의 그런 비극이 그녀 자신의 죄과에서 비롯된 것이란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여인이다. 두 아들을 낳아 놓은 뒤 이런 비극을 당했으니, 자신의 불구로 인해 온 가족에게 미치는 불편함이 오죽할까마는,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크게 뉘우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어미에 비해 딸 경선이의 정성은 너무도 지극하다.    광주에게는 친딸이지만 삼애에게는 친딸이 아닌 경선이는, 열세 살이란 나이로는 너무 성숙하다 할 만큼 집안일에도 열심이지만, 또한 어미 봉양도 극진하다. 이 아이는 삼애가 자기 친모가 아니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아이의 정성이 더욱 갸륵하게 보인다. 아마 아비 광주로서도 이런 집안의 분위기가 숨 막히는 일이었을 것이다.(게다가 동생 대주는 집안에 별 쓸모가 없는 존재로서 형 광주에게 무리한 부담만 안겨주는 실정이다.)    전처 신애가 자살을 한 이후로 광주는 크게 충격을 받고서, 자세한 경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은 뒤 자진해서 사찰 직을 맡았다. 이로 인해 받는 약간의 수입과 평일 장사를 해서 번 돈 등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불구(반신불수)의 삼애가 죄의식을 크게 지니고 있지 않음에 비해, 광주는 지금껏 너무도 큰 죄의식에 몸부림쳐 왔다.    그가 타종할 때는 꼭 열다섯 번씩 줄을 당기곤 했는데, 이는 자기가 범한 열다섯 여인에 대한 속죄의식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는 열다섯이란 숫자를 자기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자행하던 속악한 인간이었음엔 틀림없으나 아내의 자살 이후, 충격 속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서도, 그가 근본적으로 악한 인간은 결코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고도 하겠다.    변화된 이후의 최광주는 거의 고행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죄악에 대한 속죄의식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는 수년간 금욕과 극기의 생활을 해 오고 있다. 현재의 아내 삼애가 불구자가 된 것에는 공범자로서의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서 벌을 달게 받는다는 심정으로 지금껏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터득한 것은 무엇인지 자기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물음의 결과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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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4
  • 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2)-박영준의
    한국의 기독교문학사에 나타나는, <종각> 출현 이전의, 기독교적 내용을 다룬 다른 작가들의 소설작품들 중 공통적인 약점은 이것들이 기독교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소재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거나 피상적인 관찰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죄의 문제, 십자가의 문제, 종말론의 문제, 궁극적 구원의 문제…등 기독교적 핵심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기독교 주변이나 그 역사, 또는 교회의 피상적이거나 외면적인 소재만을 찾아 형상화함으로써 기독교소설로서의 치열성이나 절실감이 부족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반적 약점을 박영준의 <종각>은 보완해주고 있다. 이 작품을 N. 호손의 <주홍글씨>와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것도 위에 이야기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먼저,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양자(兩者)를 대비해 본다면, 주인공 최광주는 딤즈데일과, 여주인공 심삼애는 헤스터 프린과, 그리고 도덕주의를 표방하는 평신도들은 엄격주의에 젖어있는 미국의 청교도들과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양자는 서로 유사 영역을 공유한다고 보겠다.   <주홍글씨>가 죄의 테마를 다루었다고 한다면 <종각>도 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홍글씨>의 등장인물들이 육욕의 노예요 죄악의 하수인들임과 마찬가지로 <종각>의 주요 인물들도 육욕에 얽혀 허우적대고 있는 죄악의 군상들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한 성경 말씀처럼, <주홍글씨>의 주인공들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극적이듯, <종각>의 등장인물들 역시 몹시 불행한 결과에 이름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러나 외형적인 그들의 불행과는 달리, 마지막이 그들의 철저한 회개로 인하여 속죄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우리가 확인하게 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도 되는 것이다. 딤즈데일 목사가 죄의식 때문에 받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혼의 구원에 이르듯, 최광주도 철저한 회심과 거의 고행이다시피 한 기독자적 희생의 삶을 통해 자신의 구원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하나 그가 아무리 속죄의 경건생활을 유지하려고 해도 그의 측근(가족)이 그를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그를 괴롭히기만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고통을 ‘속죄하는 마음’ 하나로써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죄에 대한 가책과 죄의식에 따른 고행자적 속죄의 삶을 통해서 그는 신에게 한 발짝 더 접근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광주를 한국판 딤즈데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릴런드 라이컨은 호손의 <주홍글씨> 가운데서 세 가지의 세계관이 있음을 지적해 냈다. 율법적(청교도적) 세계관, 낭만적 세계관,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 등이다. 박영준의 <종각>의 세계관도 결국 이 세 가지로 요약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로와 김 집사 등은 율법적 세계관을, 심삼애와 목사의 딸 선희 등은 낭만적 세계관을, 그리고 주인공 최광주와 담임목사 등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소설로서의 <종각>(1965)에 대하여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종각> 이전의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기독교세계가 아닌 곳에서 작중인물이 자신의 타락과 죄악을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지만, <종각>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신(神)을 향해 ‘참회’(회개)함으로써 자신의 과오(죄과)를 씻어내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기독교문학으로서 진일보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 점이라고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0-20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3)-김은국의 〈순교자〉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신 목사는 동료목사들을 배반한 일이 없었다. 신 목사 자신이 그 사실을 증언하지 않았으므로 잘 알 수 없었지만, 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정 소좌(인민군)에 의해서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므로 신 목사가 혐의가 없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만일 정 소좌의 증언이 없었더라면 신 목사의 혐의는 끊임없이 추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가정컨대 신 목사 자신이 자기는 동료 목사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했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목사의 그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신 목사는 자신을 변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자신을 변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배신자노라고 청중 앞에 공언하기까지 하였다. 명백히 이 발언은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신 목사를 규탄하고 해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들은 시위를 통하여 신 목사를 “유다!”라고 지탄했던 것이다. 예수를 판 가룟 유다처럼 동료 목사들을 배반하고 자기만 살아남은 뻔뻔한 인간이란 식으로 신 목사를 대했던 것이다.   신 목사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남았었던가? 정 소좌의 말에서 드러난 것이었지만 모든 목사들이 인민군에 굴복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동료 목사를 불리하게 만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 목사만은 떳떳하고 의연하게 그 취조하는 인민군 심문관에게 대들었던 것이다. 그 담대한 모습에 감탄한 심문관이 신 목사는 살려주고 나머지 열두 목사들은 총살하고 말았던 것이다(이때 한 젊은 목사는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결과 총살은 면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남아 있었던 신 목사이지만 신도들 앞에 결코 자기의 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가 현장에 자신은 없었다고 거짓말했던 것도 실은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고 그리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죽은 동료 목사들의 추태를 말하거나 상대적으로 신 목사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리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다음 그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자기가 배신자라고 뒤에 번복하고 나온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희생자가 되겠다는 각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열두 목사들의 위치를 공고히 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목사의 의연한 자세가 바로 순교자의 자세라고 작가는 말하려고 한다. 이러한 신목사의 자기희생적 태도는 박계주의 <순애보>에 나오는, ‘또 하나의 십자가’ 편의 피엘 신부의 태도와도 방불하다고 하겠다.   동족상잔의 폐허 속에서 극단으로 주리고 병든 신도들이 자신들의 절망감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자기들이 지금껏 신뢰해 왔던 목자의 떳떳하고 의연한 순교라고 할 때, 그 신도들에게 절망감을 배가시킬 것이 뻔한 그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는 게 신목사의 기본 입장이었던 것이다. 만일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들이 이 고난의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 도저히 신 목사 자신으로서는 그리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신 목사에 의하면 누구나 다 십자기를 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사람이 십자가는 지고, 대신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들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0-03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2) - 김은국의
       신이 제 구실을 할 때의 순교자와 그렇지 못할 때의 순교자는 그 개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의 순교자가 전통적인 것이라면 후자의 순교자는 탈전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두 부류의 순교자들이 제시되는데, 하나는 12명의 죽은 순교자들이고, 또 하나는 1명의 산 순교자(신 목사)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열두 명의 죽은 목사들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자냐 하면, 또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다시 말하면 순교자로서 떳떳한 죽음을 한 목사들이 아니었으므로) 이 작품에서의 실질적인 순교자는 신 목사 한 사람에 국한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자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만은 계속 남아있게 하는 위력을 발하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여기서 순교자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한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일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의 정치적 탄압이 어떻게 기독자들의 자기정체성을 잃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체험기로 루마니아 목사 R. 범브란트의 <하나님의 지하운동>과 불가리아 목사 H. 포포프의 <믿음 때문에 당한 고문> 등을 들 수 있다. 범브란트 목사나 포포프 목사의 수기 속에서 동료 목사를 배신하는 이들이 불가불 출현했던 것처럼, <순교자>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배신자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배신자들이 자신의 영달이나 편의를 위해 그리 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심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길이 없는 나머지, 인간의 약점에 스스로 굴복해   그리된 것이므로 이런 행위에 악의적 해석을 내릴 수만은 없는 것인 줄 안다.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 배신자들의 치부를 숨겨주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다름 아닌 신 목사와 장 대령이다. 그러나 결과야 같다 치더라도 동기 면에서 볼 때 두 사람의 관용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신 목사의 경우, 그 자신이 목도한 배신자들의 추태를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문자 그대로 ‘종교적’ 순수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보장교인 장 대령이 배신자들의 실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사실을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의식이 뚜렷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장 대령도 그런 은폐 작업을 통해 무슨 악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저의를 지녔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어떤 정치적 의도에 그 사건을 짜 맞추려는 기본 입장만은 견지했다고 하는 데서 두 사람의 ‘종교적’ 동기와 ‘정치적’(군사적) 동기가 동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사정 모두를 다 알고 있는 독자에게 신 목사는 그렇게 비쳐지지만,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신도들이나 일부 목사들에게 신 목사는 오히려 배반자로 몰리고 있다. 그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은 공산군에게 잡혀간 목사들 열네 명 가운데서, 열두 명이 죽고 두 명은 살아남게 되었을 때 그 살게 된 두 명 중의 하나가 바로 신 목사였기 때문이다(그중 한 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으므로 크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 목사는 처음 동료 목사들이 살해될 때 자신은 그 현장에 없었노라고 말했다가, 후에 그 말을 번복하고서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무언가 뒤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으로 평양 신도들에게는 비쳐졌던 모양이다. 물론 이때의 신도들이란 대개 자신들의 담임목사를 졸지에 잃게 된 슬픈 양떼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목자를 잃은 허전함에 싸여 있다가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신 목사를 목격하게 되면서 신도들은 극도의 분노에 떨게 되었고 급기야는 신 목사의 거처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였던 것이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9-13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1) -김은국의 〈순교자〉
      순교 또는 배교의 문제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주제로 삼아 쓴 소설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의 작품들로는 아무래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위대한 몰락〉, 〈여자의 일생〉 등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작품으로는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상〉과 김성일의 〈제국과 천국〉 등을 들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 대열에 좀 애매한 위치로 서게 될 김은국의 〈순교자〉도 한 몫 끼게 될는지 모른다. 이 말은 〈순교자〉가 국내 작품으로 인정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생존 시에 김은국 작가가 미국 국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은국의 〈순교자〉는 국내 작품으로 거론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외국(미국) 작품으로 치기도 석연찮은, 참으로 국적 미명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인상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김 작가)를 제쳐놓고 한국 기독교소설을 운위하기가 매우 궁색하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어떻든 그는 한국 혈통의 작가요, 한국인의 숨결과 정신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한국적 배경을 떠나서 그의 소설 세계가 성립되기 어려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에 불가피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1964년에 나온 이 작품(원작)은 그 2년 뒤(1966)에 나온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많은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극도의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될 때 거기서 순교와 배교의 문제가 발생하며, 자동적으로 순교자와 배교자의 출현도 있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시절의 노바티아누스파와 도나투스파가 겪었던 일들이 이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가 된다고 보겠지만,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무수히 반복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다루었다는 면에서(만) 〈순교자〉와 〈침묵〉이 유사하다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소설들은 그 공통의 주제, 곧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루되 앞서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신 부재의 문학’, 또는 ‘신 침묵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 정신에 기초하여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고 하는 면에서 두 작품은 상호 크게 유사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역시 당대에 유행하던 ‘신 부재(침묵)’의 사상이나 ‘신 죽음의 신학’이라고 할 기독교 신학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유(類)의 문학 작품들이 다분히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긍하게 만든다고 하겠다. 슈사쿠의 작품 〈침묵〉은 그러니까 ‘신의 침묵’이라고 할 때의 그 ‘침묵’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김은국은 그의 〈순교자〉 속에서 주인공 신 목사의 입을 통하여,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 모독적 발언을 해 대는 것이다. 말하자면 목사 신분인 사람에게서 저런 발언이 다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일반 독자들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치명적 발언을 해 댄다는 것이다. 이는 신 목사에 의해서 신은 인간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면적을 거의 잃어가는 대신, 그만큼 그 잃어진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메꾸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신의 침묵의 시대에, 또는 신 부재(내지는 죽음)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인간의 일이란, 그 부재(또는 죽음)의 신의 영역을 인간 스스로 보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신 목사는 그의 실천행위로써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신 목사의 언어나 행동이 초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9-08
  • 미물들의 메아리 없는 항변(하) -이청준의
    그러는 동안 진범이 체포되었고, 그 범인이 바로 아들이 다니던 주산학원의 원장 선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알암이 어머니는 격렬한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럴 때 다시 김 집사가 나타나 범인을 증오로 대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써 대할 것을 권고해 온다. 그러는 김 집사의 말에 반발심을 느끼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바꿔 먹고 범인을 용서해 주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그녀는 사형수를 찾아가 용서의 증거를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열려 가던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꽉 닫히고 말았다. 그 이유는 사형수가 처형을 앞두고 기독교에 귀의해 마음의 평안을 이미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 일을 그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보다 먼저 그 범인을 용서해버린 하나님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은 자기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고 하는 데 대한 분노가 신(神)을 향해 치솟았던 것이다.   주님께서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아가 버렸으므로 다시 그를 용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신의 공평한 사랑이라면 자신은 차라리 신의 저주를 택하고 말겠노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 범인에 대한 처형 소식이 들려온 직후 그녀는 자신의 너무도 인간적인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진(自盡)하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한 마리의 벌레처럼 신의 발뒤꿈치에 밟혀 죽고 만 셈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화자, 즉 그녀의 남편은 그 처지가 ‘벌레’의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잃은, 넋 잃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게 된 남편 역시 미물과도 같은 미약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작품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제기해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신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에 대한 해결책이 따로 없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마치 당연지사라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 침묵의 신에 대해 작가는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니 섭리니 사랑이니 하는 추상적 관념으로 감싸져 있는 기독교의 교리나 계율에 대하여 작가는 도전하고 있다. 그는 알암이 이야기와 알암이 어머니 이야기를 내세웠고 그것을 ‘벌레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이 미물(들)의 외침에 제발 좀 귀 기울이시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이쯤 이야기하고 보면 ‘벌레’라는 말의 함축적 의미가 매우 넓게 확대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벌레 이야기〉는 단지 알암이와 그 어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처지에 처해 있는 오늘의 미약한 신앙인, 나아가 우리 인간 모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벌레 이야기〉인 셈이다.   별 신앙 없이 교회에 나다니고 헌금을 하곤 했던 기복신앙의 소유자 알암이 어머니에 대하여 독자들, 특히 기독교 신도인 독자들은 별로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결국 범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말하자면 불신앙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애초에 그렇게 나약한, 곧 벌레와도 같은 존재라고 하는 이해를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할 때 그녀의 고통과 아픔을 깨닫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너무도 다양한 고통의 양상들을 지금껏 종교가 너무 안일하게 다루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차제에 해봄직도 하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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