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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이 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우신 (牛臣) 황광은(1923-1970)은 1923년 2월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지북동 25번지에서 황도성 장로와 김도순 권사의 3대 기독교 가정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2004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이반 작 김윤태 연출<소년 공화국>이 극단 ‘반딧불이’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1923-1970)는 47세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4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YMCA 소년부 연습 간사가 되었다. 그의 성실성은 그 당시 YMCA 현동완 총무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광은은 서울 중앙 YMCA 간사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그는 6.25 피난시절에는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들 30여 명을 돌보다가 1.4 후퇴 때에 고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황광은은 어린시절 일본 목사 가가와 도요히꼬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를 읽고 큰 감화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되던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기슭에 있던 향린원이란 고아원에서 8년간 고아들의 벗으로 일하면서 일제 말 암울했던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 청소년운동, 기독교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극단체 ‘원예술좌’의 창립동인이었고 아동영화 ‘하늘은 맑건만’ 등을 제작하였다. ‘크리스찬신문’ ‘기독교교육’, ‘새벗’의 창간과 편집,집필을 하였다.   황광은 목사    목회적으로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대광중고 교목을 거쳐 1961년부터 영암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김활란 박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 실무를 담당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크고도 넓고 깊다. 황광은 목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어린이의 참벗, 고아의 아버지, 선한 목자,화해의 사도,짧으나 긴 삶을 사신 분"  황광은은 아동작가,훌륭한 설교가,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은 맑고 너그럽고 착하였다, 그가 한 일은 크고 곱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한 스토리가 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 공화국》이다.  1970년 5월 어느날, 황광은 목사는 병상에서 이반 극작가를 불렀다. 소설 ‘소년 공화국’이라는 제목과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적어 놓은 서문과 두 장의 목차를 내밀었다. 구겨진 일곱 장의 원고지가 그로부터 33년이 지나서 희곡 《소년 공화국》으로 탈고된 것이다. 황광은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소설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반 극작가에 의하여 2003년 12월에 희곡이 되었고 2004년 12월에 연극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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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1-07
  • 문학평론(10)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여의도순복음교회 뮤지컬 빌 게이더 작 이반 연출 <알렐루야>    뮤지컬 <알렐루야>는 로버트 슐러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가든그로브코뮤니티교회의 정기공연 작품이다. 그 당시 그 공연을 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부인되는 김성혜 목사가 미국에서 가져온<알렐루야>카세트 녹음테이프와 악보를 구해서 이영훈 전도사에게 넘겨주어 영산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코이노니아회가 다방교회라 할 수 있는’선교의 집‘ 모금을 위하여 이영훈 회장을 중심으로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를 유료공연으로 기획하였다. 1979년 7월 1일에 선교센터 406호실에서 이반 각색,연출의 음악 정명소, 이영훈 회장, 안준배, 최완기, 김용덕, 윤남인, 오무석 등이 실무회의로 모였다. 먼저 《알렐루야》 원 카세트 녹음을 들은후 이 반 교수의 연극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예배극 형식으로 선교 뮤지컬로 각색하여 공연하기로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뮤지컬 알렐루야    빌 게이더 부부의 공작인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선교무대는 한국 기독교의 팔십년대 선교방향을 제시해 주는 작품이었다. 음악의 빌리 그래함이라고 불리고 있는 빌 게이더 부부의 《알렐루야》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시도된 예배극이다. 노래와 춤과 연기를 통한 복음선포는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었다. 음악성과 문장력이 있는 이영훈 의 가사 번역은 미국의 감각을 우리 것으로 소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코라스를 맡은 정명소 음악은 그의 호산나 성가대의 가창력을 뛰어나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이 반 연출은 하르트만에게 사사받은 예배극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백여 명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호산나 성가대와 사십여 명의 오케스트라와 열 명의 연기자등 총 백오십여 명이 열연한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공연은 팔십년대 문화선교를 보여주었다. 뮤지컬 알렐루야의 공연으로 인하여 《알렐루야》의 주제곡 ’살아계신주’ ‘주께 찬양을 드리세’는 한국교회 애창곡이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1979년의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감격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반은 숭실대학교 교수를 정년 퇴임하고 함경남도 홍원에서 피난내려와 정착한 제2의 고향이 된 속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이반을 초청하여 재연하고자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후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뮤지컬 《알렐루야》를 2023년 5월 3일에 윤의중 지휘, 홍석임 연출로 다시 대성전 무대에 올려져 성전을 가득 채운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사이에 실향민 이반은 2018년 9월 24일에 속초에서 본향으로 떠났다./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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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3
  • 문학평론(9)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40일 동안 심판이 오리라고 외쳤다. 그러나 니느웨에 심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요나는 “어부가 바구니에 고기를 집어넣듯, 주여, 당신은 나를 구렁텅이에 넣었소. 그리고 죽음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모래 사장에 상륙시켰고. 그래,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심판의 날을 예언하였소. 이젠 이런 기도밖에 남지 않았소. 나를 와서 데려 가시오. 사람들이 와서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거요.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 뱉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침 뱉은 거나 마찬가지지 않아요? (니느웨 사람들 제단 위로 올라온다.) 빨리요, 주님. 그들이 오고 있어요.(요나, 관중들에게 돌아선다) 당신 지팡이와 돌멩이가 어디 있어? 나를 죽여, 그리고 나를 비웃어 줘,”라고 말한다.   (이반, 연극과 예배, 하르트만의 예배극론 도서출판 연극과인간 2003 참조)     요나는 신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제단을 향하여 대사를 한다. 하르트만은 “기독교의 모든 교파의 예배의식을 한 가지로 통일시킬 수가 없고, 또 같은 교파 내에서도 나라의 풍습과 지역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예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배극도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신을 관중으로 극이 진행 되어야 한다는 것은 꼭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하르트만 작 이반 연출, 연예인교회의 예언자와 목수     연예인교회가 1976년 12월 10일에서 11일까지 이화여대 강당에서 3회에 걸쳐 올린 전도공연 《새롭게 하소서》 중에 제1부 연극부문에 해당하는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요나(이영후 분)가 타고 가는 지중해상의 선박이나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의 뱃속이나, 또 니느웨의 언덕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요나가 외친 심판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매 순간 심판을 받아가면서 최후의 심판을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목에서 목수(신영균 역)를 만난다. 폐허가 된 도성을 재건하는 목수의 손에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폭을 깨닫게 된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에서 직접 예수를 등장시키지 않고 간접으로 예수의 사상과 행동을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르트만이 요나서에 예수를 상징하는 목수를 등장시켰다.   예배극 속에서 이반은 하르트만에게 전수받은 대로 예수의 이미지를 목수로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부각시킬 뿐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 연출을 하였다.   이반 연출은 니느웨의 작은 생명을 아끼고 깨어진 것을 고치는 목수를 등장시켜 요나서에서 니느웨가 심판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예배극에서 예수를 등장시켜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배극의 기능이 예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꾀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중재자이다. 예배극도 하나님과 인간이 만남으로, 화해의 중재역을 담당하고 있다.   하르트만 작 이반 연출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에 있어서의 지중해상의 요나가 탄 배는 교회고, 교회는 곧 세상을 상징한다. 1976년 성탄절을 앞두고 이화여대 강당에서 일만이천 명의 관객에게 펼쳐진 연예인교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는 연출자 이반이 성경을 텍스트로 삼아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예수의 구원을 증언했다.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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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24
  • 문학평론(8)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극작가 이반은 연극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관심사가 ‘종교극’이었다. 분단극은 스웨덴에서 종교극 유학 중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했다. 그는 1967년에 루터교회에서 <죽음의 계곡을 찾아서> 라는 성극을 극작하여 공연하고 나서 종교극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모색을 하게 되었다. 이반의 그런 모색은 마침내 종교극의 대가인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울로프 하르트만 교수에게 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20세기의 기독교 연극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카톨릭 미사의 극화 작업과 잉글랜드의 조지 벨 주교가 주관하는 성공회의 종교극 운동, 네델란드와 독일의 중세극 공연, 미국의 선교극 운동,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라파의 예배극 운동을 들 수 있다.   □ 올로프 하르트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     1906년에 스웨덴에서 태어난 하르트만은 어린 시절을 구세군 소년으로 보냈다. 그의 양친은 구세군 사관으로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를 키웠다. 하르트만은 웁살라대학 신학부를 졸업한후 스웨덴 국교인 루터파 목사로 오랫동안 교회 일을 도왔다. 그의 자서전적인 소설 《바다의 소리》 는 오 캐시의 작품과 비교되는데, 소년기의 그의 고민이었던 선과 악,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하르트만을 일약 유명한 작가로 출세시킨 작품은 그의 세 번째 소설 <성스러운 무도회>였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의 동역자인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즐겨 다루는 원죄에 대하여 집요하게 탐구해 나갔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하르트만은 희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톡홀름 근처의 스웨덴 최초의 도읍지인 시그투나 파운데이션의 책임자로 부임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스웨덴 교회의 예배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스웨덴 정부는 하르트만이 창조해낸 모든 예배형식을 개체 교회에 보급하는 데 적극성을 띠었다. 하르트만은 희랍극과 중세극 중에서 현대 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의적 요소와 전통적인 루터교의 예배의식의 극적 요소의 만남을 꾀해 예배극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극이론을 창조해 내고 예배극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 《예언자와 목수》, 《생명의 면류관》, 《용광로의 불길》 등은 그의 극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제임스 영은 “나는 하르트만을 혼자서 소리를 내지 않는 목소리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처럼 강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어 혼자서 외치지 않는다. 하르트만은 반독연자로 전체 작품의 드라마는 대화로 엮어졌다. 하르트만은 신비스러우리만치 노련한 솜씨로 고립적이거나 독백을 배제하고 작품 속 에서 사회성과 사귐이 일어나게 한다”고 극작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과 무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르트만은 1968년 W.C.C 4차 웁살라 총회에서 희곡 《그 날에》, (독일어로는 《아모스 ‘70》 으로 번역되었음)를 발표하여 현대 기독교 국가들과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두고 행동하여야 할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를 등장시켜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찾아 나서게 했다. 아모스는 사마리아의 대리석 궁과 전쟁터에서 작고 하얀 어린 양을 찾는다. 그리고 정의의 대림줄은 인간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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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17
  • 문학평론(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이렇게 만날 줄 모르고 공연히 고생길을 걸은 장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로는 홀로 아름다운 천국에 취해 있다가 같은 곳에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사형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궁금증을 참아내지 못한 장로는 천사에게 물어본다. “지옥은 어디 있냐”고. 그러자 천사는 본래 지옥은 없고 천당만 있다고 일러준다. 장로는 평생을 교회에 잘 다니고 선행을 한 자신은 천당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범죄자도 같은 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몹시 불쾌해 졌다. 그 순간부터 장로는 죄수가 있는 천당이 싫어졌다.     극작가 주태익     주태익이 각색한 <천당 간 사나이> 는 이범선 문학에 내재해 있는 신관이나 인간의 운명에 대해 원작자가 제기한 문제점을 살리는 것보다 연극으로서의 객관성을 담아냈다. 세속적인 장로가 죽어 황천길을 가던 중 저승 길목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상징한 노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때 세상에서 살인하여 사형을 당한 죄수와 그에게 죽은 사람들과 구공탄 가스로 죽은 철학자가 등장하여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벌인다. 주태익은 이범선의 소설을 보수적으로 각색했다.     1976년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있을 때 연출가 이반 교수와 극작가 주태익 선생이 필자에게 종로 2가 디즈니다방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주었다.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문인극을 하는데 기획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원들로 문인극을 만들게 되어 이범선 원작, 주태익 각색, 이반 연출의 《천당 간 사나이》가 공연작이 되었다. 배우들도 자체적으로 선발해 노인 김광식, 장로 황금찬, 철학자 이보라, 춘심 윤경남, 아저씨 강정규, 아줌마 김정기, 만석 유성윤, 옥이 고계영이 배역을 맡았다. Y극회 ‘탈’의 김호태가 조연출을 했다. 그 당시 세운상가에 중앙신학교 야간부가 있었다. 중견 문학인들이 배우가 되어 신학교 강의실에서 대본 연습을 하였다. 나는 연습실과 식당, 유전다방에 이르기까지 매일 출근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종로 2가 한국기원이 들어있는 빌딩 1층에 있는 유전다방에 가면 나중에 ‘목요회’가 된 ‘수요회’ 멤버 조향록 목사, 이범선 소설가, 김광식 소설가, 황금찬 시인, 주태익 극작가, 김봉삼, 강형요,김세익, 노정팔, 홍성건, 장하구 등이 언제나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다. 때로는 윤남경, 송영 작가도 자리에 있었다   나는 기획을 맡아서 공연을 앞두고 남산에 있는 공연윤리위원회를 찾아가 대본 심의를 받아냈다. 공연 티켓을 이화여대 앞의 파리다방과 명동의 필하모닉음악감상실, 종로서적, 을지서점 등 서점가에 예매를 맡기는 일을 하였다. 1975년에 《최후의 유혹》에서 연극을 제작한 경험이 있어서 언론사로 보도 자료도 보내는 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잡무를 보았다. 연극《천당 간 사나이》는 1976년 12월 25일 낮 3시와 밤 7시에 세실극장에서 2회로 공연하였다. 오십대 문인들이 어설프지만 나름 진지하게 연기하여,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성탄의 은총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각색자 주태익 선생이 1979년에 타계한 이후 원작자 이범선, 연출 이반, 노인 역 김광식, 철학자 역 이보라, 장로 역 황금찬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별세해 ‘천당 간 사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그곳에 모여 ‘ 천당 온 사나이’를 연극하고 있을지도.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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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10
  • 문학평론(6)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Ⅱ 이반의 종교극     황광은, 주태익, 김원식, 김창열 등은 서울 YMCA에서 1964년부터 기존해 있던 극회 ‘탈’을 1967년에 재건하게 되어 그 작업을 극작가 이반에게 맡기게 되었다. 극회 ‘탈’은 조성현, 송종환, 전진호,이반, 차관, 이효춘 등이 모여 재건 첫 작품으로 1968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YMCA강당에서 이반 작 전진호 연출의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를 상연했다. 극작가 이반은 성경 속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적 입장에서 과감하게 해석했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는 예수의 이적에 의해 문둥병을 고치고 그에게로 와서 감사를 전한 한 문둥이의 이야기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할 때의 그의 모습과 부활했을 때의 결단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극회 ‘탈’은 이반 작 연출 《눈먼 가축사》, 《제4의 박사》, 《다른 목자》등 D.C.월슨의 작품을 공연했다.   극회 ‘탈’ 은 신인 창작극으로 소설가 황석영의 《환영의 돛》, 극작가 김상열의 《성야》, 이반의 《실향민》 등을 상연했다고 이반은 극회 ‘탈’의 성과를 밝혔다.   □ 이범선 작 이반 연출 천당 간 사나이     월남한 작가 이범선은 《오발탄》, 《피해자》로 6.25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이들에 대한 인간 본성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이범선이 1976년 발표한 소설집 《표구된 휴지》 에 수록된 단편 소설 《천당 간 사나이》는 그의 후기작으로 기독교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앞서 1958년에 발표한 《피해자》에서 종교의 위선을 문제 삼았던 작가는 《천당 간 사나이》 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내세관, 구원관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했다.     하얀 수의를 입고 저승길을 걷고 있는 뚱뚱한 사나이는 이승에서 장로였고, 파란 수의를 입은 야윈 사나이는 이승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자이다. 장로는 자신이야말로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사형수는 지옥에 갈 것이라 여긴다. 죄수는 자신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장로에게 말해주며, 장로와 죄수가 서로 가야 할 곳을 말한다.   장로 “나는 하나님 앞으로 가는 사람이요.” 죄수 “하나님 앞으로?” 장로 “그렇소만, 노 형은 어디까지 가슈?” 죄수 “글쎄요. 우선 염라대왕 앞으로 가야 된다던대요.” 장로 “염라대왕이요?” 죄수 “네, 거기 가서 염라대왕에게 재판받고 전생의 값을 치러야 한다던데요.” 장로 (고개를 가로저어).‧…… 죄수 “그렇담, 우리 두 사람 중에 누구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은 셈이군요.” 장로 “………” 죄수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 앞으로 갈 분, 저는 염라대왕 앞으로         가는 길인데 같은 길로 왔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뚱뚱한 장로와 염라대왕을 향해 가는 야윈 살인범은 두 갈래 길에 이른다. 장로는 천국으로 가려면 왼쪽 험난 한 길이 분명할 것으로 여겨 왼쪽 길로 들어선다. 사형수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인지라 평탄한 길을 택한다. 장로는 험난한 길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천당 길로 들어섰는데 두 길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살인범을 만나게 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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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6] 성숙한 신앙의 삶을 위한 간구 - 김행숙의 「새 아침에」
    ▲ 시인 최규창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 나 여기 왔습니다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 피어나게 하소서 간구하옵기는 오로지 당신의 온유 그뿐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새 아침의 소망을 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 —「새 아침에」의 전문 김행숙의 「새 아침에」란 시는 새해의 아침에 드린 기도이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이 삶을 위해 ‘지혜의 근본’을 찾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다고 고백한다. ‘속사람의 비밀’을 새롭게 하고, ‘당신 닮은 사랑’과 ‘당신의 온유’를 지니도록 간구한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새해의 소망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고백과 간구이다. 이 기도는 고백과 간구로 구성되어 있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나 여기 왔습니다/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나,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새 아침의 소망을/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스스럼없이 털어 놓은 고백이다. 그리고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나, “간구하옵기는/오로지 당신의 온유/그뿐”이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고백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고, 간구하므로써 응답이 온다는 견고한 믿음을 보여 준다. 제1연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거듭난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을 지니도록 간구한다. 바른 신앙인의 삶을 소망한 것이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로/나 여기 왔습니다”란 구절은 태초적 부터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음을 고백한다. 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바탕, 즉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인 태초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란 구절의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심령(에베소서 3장 16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새사람(에베소서 4장 24절)을 의미한다. 또 “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스스로가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또한 “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간직한 것만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닮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했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요한일서 4장 10절). 스스로에게서 피어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간구한 것이다. 제2연은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다. “당신의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 ‘온유’는 부유하고 거만한 사람들에 반대되는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말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의 태도나 타인에게 보이는 태도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온유’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묘사하는 데서 완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 시는 하나님 앞에 새해의 소망을 간구한 것이다. 주변과 가정, 물질적 요구의 외적인 삶에 대한 간구가 아니다. 내적인 성숙을 위한 간구로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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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 한 해의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 - 유승우의 「한 해를 보내며」
    ▲ 시인 최규창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 빈 들판을 서성거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외우고 있다.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 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소곤거리고 있다. 앞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 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의 전문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지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며 드린 기도이다. 자연적인 현상속에서의 생명을 다한 빈 들판과 하얀 갈대꽃, 그리고 가랑잎과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비유로 한 해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창백하게 여위어 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며”나,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하얗게 손을 흔들며”, 그리고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나, “잎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화자의 회한(悔恨)으로 환원시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헛된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로 신앙적인 삶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 않았지만 임의로 나눈다면, 네 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1행부터 3행까지를 제1연으로 볼수 있다. 제2연은 4행부터 7행, 제3연은 8행부터 11행, 제4연은 12행부터 마지막 행인 15행까지이다.  제 1연에 해당할 수 있는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고”란 구절은, 화자가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을 보여 준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빈 들판을 서성거리는 삶은,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오늘날 기도의 표준이며 모범이다.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고, 천국이 속히 임하기를,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일용할 양식과 죄용서, 유혹에서의 구원과 기도의 응답을 간구한 것이다. 또한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이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떠나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외우는 것은, 한 해동안에 지녔던 욕심이나,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우는 자세이다. 또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란 구절은 허무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푸른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랑잎들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바람이나 사람의 발에 밝히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생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한 해의 허무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란 구절로 표현했다. 전도서 1장 2절인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구절중에서 인용했다. 이러한 이 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란 구절처럼 깊은 사유의 일깨움을 준다. 주기도문과,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은,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된 자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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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 - 이매수의 「크리스마스」
    ▲ 시인 최규창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빵을 나눠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이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소식을 알려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청년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도 있고 사랑하는 딸도 있고 이웃집 아저씨도 있고 어머니 빈 자리도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 「크리스마스」의 전문 이매수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情景)을 형상화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년들, 그리고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이웃집 아저씨도 참석하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떠올리며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는 하늘나라의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크리스마스의 교회정경을 풍경화로 그리듯이 선명하게 그려 준다. 이 시의 각 연마다 반복된 “오늘 그 곳에는”이란 구절의 ‘오늘’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이고, ‘그 곳’은 화자가 다니는 교회당이다. 제1연과 제2연의 “십자가를 바라보고”란 구절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빨간 불이 켜진 십자가이다. 이 반복을 통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인 크리스마스와 이 날을 맞은 교회당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제1연은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인 빵을 나눠 준다. 어린이들은 빵을 선물로 받기 위해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에 모여 든다. 이 빵은 세상적인 빵이 아니라,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한 ‘하늘의 빵’으로 표현했다.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로 주던 빵과 과자를 받던 추억을 떠올려 준다.  제2연은 ‘하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모여 든다. 이 날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이 ‘하늘의 소식’은 구약에서 선지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인용되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제3연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에 참석한 자들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직장과 학교 등으로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그리고 이웃에 사는 아저씨도 앉아 있다. 이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자들이다. 멀리 떠났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앉아 있지만, 그 자리에 앉아 계셔야 할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빈 자리로 남아 있다.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를 ‘어머니 빈 자리’로 떠올려 준다. 제4연은 어느 교회나 크리스마스를 맞은 밤에는 대낮처럼 불을 켜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와 축하행사를 가진다. 축제의 분위기로 진행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 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과 하늘나라 가는 길의 밝은 길을 일깨워 준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에 가르쳐주는 길은 지름길이다. “하늘가는 밝은 길을/훤히 비춰주는 등불”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늘의 양식인 ‘하늘의 빵’이나 ‘하늘의 소식’은 하늘나라에 가는 밝은 길의 가장 필요한 자산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시들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와 정갈한 구성이 특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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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 성숙한 삶과 하나님의 사랑 - 김현승의 「절대 신앙」
    ▲ 시인 최규창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 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 「절대 신앙」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를 형상화했다. 화자인 ‘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표현하고, 하나님은 ‘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했다. 「절대 신앙」이란 제목자체가 주는 것처럼, 아무 것에도 따르지 않고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독립한 절대적인 신앙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되는 신앙임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 시에 쓰여진 ‘불꽃’과 ‘눈송이’란 시어, 그리고 “당신의 불꽃”과 “나의 눈송이”, “뛰어 듭니다”와 “품어 줍니다”란 구절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면, ‘하나님’과 ‘나’에 대한 관계의 상승작용에 대한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가 지닌 절대적인 신앙에 의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의 ‘불꽃’과 ‘눈송이’는 상극관계이다. ‘불꽃’은 ‘불’이고, ‘눈송이’는 ‘물’이다. 상생(相生)관계가 아니다. 오행설(五行說)에 의하면 ‘블’과 ‘물’은 상극관계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불’의 크기와 ‘물’의 수량에 따라 이기고 질수가 있다. ‘불꽃’과 ‘눈송이’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불꽃’은 ‘눈송이’를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불꽃’속으로 뛰어든 ‘눈송이’는 그대로 녹을 수밖에 없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불꽃’과 ‘눈송이’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나’란 ‘불꽃’에 녹여지는 ‘눈송이’같은 존재이다. 그것은 신앙적인 현상이다. 자연적인 현상과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눈송이’가 ‘불꽃’ 속으로 뛰어 들고, ‘불꽃’은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주는 사랑을 깨닫게 한다. “당신의 불꽃”은 하나님의 섭리나 사랑, 즉 하나님의 가장 큰 권능의 세계이다. 그것은 절대자의 절대적인 세계이며, 하나님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나의 눈송이”는 순수하고 순결한 화자인 ‘나’이다. ‘눈송이’는 어느 형체보다도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며, 순결한 이미지를 떠올려 준다. 첫 연의 “뛰어 듭니다”나, 둘째 연의 “품어 줍니다”란 구절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하는 절대적인 행위이다. “뛰어 듭니다”란 화자인 ‘나’가 하나님에게 안기는 행위이고, “품어 줍니다”란 ‘나’를 품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 이러한 이 시의 첫 연은 하나님의 세계 속에 뛰어드는 삶을 형상화했다. “뛰어 듭니다”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벌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자발적인 신앙의 삶임을 보여 준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비롯될 수 있다. 둘째 연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신념을 형상화했다.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란 하나님의 사랑에 연유한 자녀임을 보여 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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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 행복한 가정과 사랑의 삶 - 임만호의 「오늘 아침 · 2」
    ▲ 시인 최규창   한 날이 나에게 왔습니다. 나의 식탁에 나의 배를 채울 빵과 물이 한 잔 가득합니다 나의 허물을 감싸 줄 아내 나를 꼭 필요로 하는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 내 인사를 받아 줄 이웃을 오늘도 만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이 나의 생명의 되었습니다. - 임만호의 「오늘아침 · 2」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연유한 아름다운 가정의 정경(情景), 그리고 신앙이 생활화된 삶을 보여 준다. 가장(家長)인 화자가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한 날을 시작하는 아침에 아침식탁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이웃의 모습을 떠올린다. 행복한 가정과 사랑의 삶에 의한 하루의 일과이다. 생활화된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날이 나에게 왔습니다”란 하나님께서 오늘의 하루를 주셨다는 의미이다. ‘왔습니다’는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고 타의(他意)인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음에 대한 신앙의 자각(自覺)에서 생성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맞이 하고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사랑이다. 믿는 자들의 삶과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나의 식탁에 / 배를 채울 빵과 / 물이 한 잔 가득합니다 / 나의 허물을 감싸줄 아내 / 나를 꼭 필요로 하는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란 구절은 아침식탁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린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풍경이다. 풍경화를 가까이서 보듯이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침식탁이 ‘빵’과 ‘물의 한 잔’으로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풍성한 식탁이다. 부수적인 음식이 생략되었지만, 배를 채울 만큼의 영양적인 요소를 갖춘 음식이 차려져 있다고 연상된다. ‘배를 채울’이나 ‘가득’이란 의미가 풍성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허물을 감싸 줄 아내”란 구절은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욥기 14장 17절)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준다. 바른 부부관계의 모습이다. 서로가 허물을 감싸주고, 존중하는 관계임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신앙의 삶이 작용한 행위인 것이다. 또 “나를 꼭 필요로 하는 /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도 자녀사랑에 대한 표현이다. 자녀양육은 부모의 책임이고 의무임을 인식시켜 준다. “해맑은 자녀”로 표현한 것은, 바른 자녀교육으로. 순수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내 인사를 받아 줄 이웃을 / 오늘도 만날 것입니다”란 구절은 공동체적인 삶을 암시한다. 이웃이 외면하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는 것은 친근한 관계이거나, 신앙의 생활화로 지닌 품성때문이다.  “당신의 말씀이 / 나의 생명이 되었습니다”란 구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 근거해 형상화했다. “당신의 말씀이 / 나의 생명”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육신(成肉身)을 떠올린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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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에의 기도·3」
    ▲ 시인 최규창   당신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를 오늘은 제 영혼의 흰 목덜미에 느끼게 하옵소서 -「어머니에의 기도·3」의 전문 이 시는 ≪어머니≫(1967년, 삼중당 펴냄)란 시와 에세이집에 수록되어 있다. 「어머니에의 기도」란 제목의 연작시 여덟편중 세 번째는 가장 짧은 구성으로 하나님 앞에 어머니의 신앙을 유산으로 이어 받기 위한 기도이다. 어머니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는 어머니가 지닌 신앙의 상징으로 인식시켜 준다. 그 무게로 환산한 어머니의 신앙을 화자의 영혼의 목덜미에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십자가의 무게로 상징된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 받도록 기도한 것이다. 지혜로운 언어의 운용(運用)으로 시와 기도의 한계성을 헐어버렸다는 평가이다. 십자가는 고대 카르타고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형구였으며,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가 주는 형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사랑과 속죄와 자기희생의 표상으로 승화되었다. 기독교의 소망의 기초가 되었으며, 새로운 신앙의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이 시에서의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란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깊이를 의미한다. ‘무게’로 표현된 것은 신앙의 수준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견고한 믿음의 신앙임을 암시해 준다. ‘무게’로 환산할 수 있을 만큼 계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의 신앙을 ‘무게’로 환산한다는 것은, 성숙한 언어의 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제 영혼의 흰 목덜미”란 구절의 표현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임을 고백한 것이다. ‘흰 목덜미’란 깨끗한 이미지로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 들일수 있는 텅빈 공간이다. 그것은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로 상징된 어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에 받아들이기 위한 자세이다. 이러한 이 시는 어머니가 지닌 신앙을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로 함축시켰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을 스스로의 영혼이 느낄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유산이다. 이러한 박목월은 ‘어머니’를 주제로 많은 시를 썼다. 그의 기독교시 대부분이 어머니의 신앙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어머니≫(시 74편, 에세이 2편 수록)란 시와 에세이집에서 수요일 밤의 예배와 고향의 개울가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신앙을 통한 스스로의 신앙을 반추해 시와 에세이로 썼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신앙시집인 ≪크고 부드러운 손≫(71편 수록)이 출판되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이 책은/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성경이다./이 두툼한 성경을/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그 책이다. - 「어머니의 성경」 에서 이 시집에 수록된 「어머니성경」은 ‘어머니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어머니의 성경’에 집약된 ‘어머니의 신앙’은 시간을 초월해 ‘어머니’라는 의미 속에서 확대시켰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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