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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작품의 현실 장면에서 연기자들은 타고르가 3.1운동 후 동경한국 YMCA에 들려 주요한 선생께 한국이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다는 시를 한 편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중극장면에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 감리교 본부 파견목사, 전동례 장로,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나온다. 극작가 이반은 일본인들의 참회의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는 소망과, 마을 사람들의 교회 건축 찬반론에 대한 답으로 전동례 장로의 처용무를 제시할 것이다. 《아, 제암리여!》는 1999년 우지다 토루 연출로 일본극단 3.1회의 공연으로 일본 동경 Y스페이스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에는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반은 필자에게도 주변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처용무가 대미를 장식해야 한일간의 화해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이반은 한국 기독교가 한국의 정신과 정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국과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      기독교 제의나 예배극을 써야겠다는 것은 이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가 하르트만 선생과 부라우네 교수와도 예배극을 쓰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17세기 청나라는 한반도로 쳐들어왔다. 조선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는 산성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는 두 동생과 함께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세자는 청.명 전쟁에 청군 편으로 참전하는 등 청의 환심을 샀다. 명나라가 함락된 다음,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독일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기독교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아담 샬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과학 문명의 유물을 선물로 받아갖고 온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므로 그대로 극으로 꾸미면 사극이 된다. 이반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만 한다면 창작되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극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것이다. <소현세자>에서 청국은 조선에게 무기사찰, 파병 등을 요구한다. 이반은 기독교 예배도 신화를 음송하거나 극화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미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을 정확하게 쓴 기록문이나 사실적 산문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배극의 언어는 묵시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소현세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기독교 순교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순교관을 대화나 에피소드, 또는 코러스를 통해 표현하고 소현세자가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은 극단 예맥에 의하여 2005년 CTS 아트홀, 일본 동경 삼백인극장에서 표재순 연출로 공연했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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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2-29
  • 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15개월에 걸친 기획과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6월 11일-14일까지 잠실체육관이란 대형공간에다 토탈 디어터로서의 백주년 기념 제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상기작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회장인 강원용 목사가 김문환 교수에게 기획 의뢰하여 이 반, 이강백의 공동구성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표재순의 제작고문 형식의 연출적 참여와 이경열 제작총무의 뒷받침으로 토탈 디어터로서의 대형무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화의 총체적 소산에 의하여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선민 이스라엘 역사와 대비시키면서 합창, 무용, 시, 사물놀이, 연극 등의 결정체로 표출한 것이다.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1985년 8.11~14 잠실체육관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빛과 하나되어》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역사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래의 지평선까지 함께 가야함을 보여준 것이 《빛과 하나되어》인 것이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의 공연공간을 더 이상 전통적 교회 예배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강당이나 체육관, 야외공간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의상이나 연극적 대소도구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예배극에 대한 고전적 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또는 성서와는 무관한 듯한 세계 현상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은 브레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하르트만은 텍스트로 성서를 택하고 언어도 성서적 언어로 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빛과 하나되어》는 하르트만의 예배극이 교회에서 잠실체육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빛과 하나되어란 함축된 제목으로 입체화한 것이 총체예술 <빛과 하나되어>이다. 본격적이고도 완숙한 대형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빛과 하나되어>는 서장에 빛의 근원을 찾아낸 데 이어, 제1장 빛이 동방에 비치니, 제2장 횃불은 타올랐으나, 제3장 불씨를 살리려고, 제4장 빛을 되찾은후,종장 빛과 하나되어로 이어지면서 성경과 히브리사와 한국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을 증거하고 있다. 박두진 시 「해」가 대합창곡으로 대형 성가대에 의하여 불려지며 선교사 입국 등의 에피소드에 이어 윤동주의 「십자가」를 송창식이 독창으로 부르며 해방을 자축하는 사물놀이에 이어 정희성의 시 「울엄니 나를 낳아」가 성우향의 창으로 불려지며 관중합창에 이어 세상을 향한 행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형 십자가형의 무대장치를 중심으로 한 미술감독 신일수, 무용감독 문일지, 작곡 및 음악감독 이건용의 협업은 토탈 디어터 《빛과 하나되어》를 가능케 하였다. 김성원, 고은정, 강효실, 김인문, 문오장, 문희원, 서인석, 송재호, 최길호, 최명수, 한인수, 정영숙, 최선자등 기독교 연기자의 총출동은 기독교 백년의 서사를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잠실체육관 대형공간에다 풀어 넣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목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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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2-12
  • 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김덕천, 황석영, 전진호, 오이세, 김문배, 안신자, 송채휘, 장수근 등과 함께 했는데, 그들의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연극을 관극하기 위해 황광은 목사는 이보라, 최선애, 김원식, 이경아 씨 등을 대동하고 당시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도동 구석까지 구경을 왔다. 황광은 목사는 그날부터 이반에게 기독교연극, 기독교예술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겼다. 다른 하나는, 연극은 다른 예술매체와 달리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 행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니, 황광은의 삶과 꿈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살아 숨쉬게 하자는 의도에서 희곡을 만든 것이다. 극작가 이반은 희곡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의 초점을 황광은 목사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두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두었다. 성자나 영웅에 대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의 영웅적인 행동은 많지 않다. 난지도에서의 황광은 목사의 행위는 성프란시스의 행동과 유사하여 청빈하고 겸허했다. 부모 없는 소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자신의 자녀들의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원장 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날 때 수색에서 종로까지 대중교통비가 없어 한 소년에게 차비를 빌려 쓰는 장면 등은 혇대판 성자의 수난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모든 행위를 숨기고 있다. 황광은 목사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앞세웠다. 그러한 그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소년시 시민들이다.   이반의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쓴 작품이다. 등장인물들과 일어난 사건, 소년시의 이상 등은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사진처럼 재현하지는 않았다. 극적 효과나 극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픽션도 가미되었다. 사모 김유선 여사나 이창식 선생, 가족들, 소년시 시민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려를 가졌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같은 사람들끼리 꾸미는 예술이 아니다는 것에 기초했다.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갈등’을 빚어야 기본 조건이 갖춰지기에 다양한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냈다. 이반은 작품을 안고 다니며 ‘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으며 그것을 현실에 옮기게 까지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상주의자 황광은의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물음을 묻곤 하였다. 쉽게 ’나사렛 예수!‘ 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황광은이라는 이상주의자를 통해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폐허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조직적이거나 신학적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분류하기 이전 사도 바울이 곱게 채색하기 이전의 사랑이다는 것에서 찾아냈다. 사랑의 원형질은 예수이고 그 예수가 황광은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헀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는 호이징거의 유희성이 넘쳐났다. 결국 타고르가 말하는 동심과 예수의 사랑, 인간의 유희성이 원천이 되어 황광은의 세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극작가 이반에 의해서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1970년, 그가 떠난지 5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공연계에는 토탈 디어터 라는 총체연극 또는 총체예술에 대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 연극계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기독교 기획진의 기획과 추진력은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 대공연이란 타이틀의 총체예술 축제인 <빛과 하나되어>의 집단창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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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2-09
  • 문학평론(13)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삼동소년시는 3권이 분리되어 입법기관으로 시의회. 행정기관으로 시정부, 사법기관으로 재판소가 있었다. 시의회는 시민 15명에 1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구성하였다. 시정부에는 시장, 부시장, 상공부, 농림부, 문화부, 재정부, 교체부, 보건부, 생활부가 있고 소년군 사령관을 두어 경찰조직인 헌병대, 군대조직인 경비대, 정신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봉사대를 두었다. 시는 동화, 영광, 평화, 신앙, 승리. 이상, 신생, 희망, 샛별, 독립촌으로 촌단위 13명의 시민으로 구성하여 촌장과 부촌장이 있고 부촌장이 시의원을 겸했다. 대한민국 헌법처럼 12장 67조로 된 소년시 헌장을 두고, 헌장 제2장7조에 ”소년시의 시민권은 만 10세로부터 17세까지의 한국소년으로서 불우한 환경의 희생이 된 집 없고 부모 없는 소년에게 고문이 이를 부여하겠다고 규정하였다. 시민 모두가 자력으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자체 화폐로 보수를 받았다. 소년시 내에서 통용되는 우표도 있었고 신문사도 있었다. 공공시설로는 병원, 이발소, 목욕탕,식당, 도서관이 있어 소년 시민들이 운영했다. 삼동소년시는 완전한 도시 국가의 형태로 일반 사회의 축소도였다. 한국기독교성령100년사 편찬위원회가 선정한 문화예술분야에서 문화운동가로 기재된 황광은 목사는 단 50도 못 채우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상향 소년공화국이 연극으로 재연되는 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이다. 황광은 목사의 1주기 때 한태동 교수는 이렇게 추모하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성자와 함께 살았는데, 살아 있는 동안은 그가 성자인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이반 작, 김윤태 연출의 《소년공화국》 황광은 역의 박웅선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성자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를 느끼게 된다. 현동완 역-김익태. 이창식 역-김남호, 김유선 역-최선영, 최병태 역-장훈, 김용호 역- 안순동의 연기는 1950년대를 넘어간 소년시의 주인공들을 재현하였다. 문학적이고 연극적인 삶을 살아간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사랑의 원형질 예수가 황광은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에 황광은의 세계는 지금도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날, 그리고 지금 극작가 이반은 희곡《소년공화국》을 담은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을 펴내면서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황광은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김유선 사모님은 목사님이 입던 양복을 내게 주셨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추운 북구의 겨울과 스산한 영국의 봄을 견디며 유학 생활을 보냈다. 어두운 70년대 였다. 세상일에 쫓겨 황광은 목사님의 《소년공화국》을 쓸 기회를 갖지 못했다. 2000년 7월, 목사님의 30주기를 기해 김희보 형이 황광은 목사 이야기‘사랑을 받느니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를 펴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목사님과 한 약속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60이 되면서 이웃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갚아야 할 빚도 있고, 지켜야 할 약속도 있지만 꼭 이 일, 이 약속만은 지켜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 《소년공화국》을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이반은 황광은 목사님 생전에 약속을 지킬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12월에 작품을 탈고했다. 극작가 이반은 황광은 목사는 《소년공화국》을 소설로 계획했지만, 희곡으로 꾸몄다. 소설로 쓰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도 연극의 대본인 희곡으로 꾸민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황광은 목사와 이반 극작가가 내가 연극을 매개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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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7
  • 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황광은 목사는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라고 말하였다.  호언한 대로 몹시도 추웠던 영하의 도시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저마다 숨어 있던 가슴속의 거문고를 울려 주었다.    1951년 8월 12일 소년시, 소년공화국은 창설되었다. 지금은 서울시 마포구였으나 당시는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에서 서남방 2Km지점, 한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 난지도이다.  그중 12만 평의 YMCA 소유의 토지에 삼동 소년시가 기공되었다. 56년 전,허허벌판에 포플러나무만이 쓸쓸히 서있던 땅, 황폐했던 그 땅에 소년들의 마을 ‘Boys Tdwn’ 간판이 올라가고 그 옆에 ”과거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전쟁고아들, 허물어진 거리를 목적도 방황도 없이 헤매던 200여 명의 소년들이 세운 자치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소년들의 유토피아 소년시는 192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떠 소년시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다. 육영사업으로 각지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중에 특수한 육영체로서의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와 서울의 난지도이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란 이후 이런 사정을 들은 미군 제5독립연대 장병들의 성금 2만 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황광은 목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김유선과 이창선, 현동완 등의 의지가 수도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 내어 삼동소년시를 세웠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선과 가까운 난지도는 불가하다는 것이 경찰청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에 타협안으로 전쟁고아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감화원 출신과 불량행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보호 중에 있는 소년들을 함께 수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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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30
  • 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이 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우신 (牛臣) 황광은(1923-1970)은 1923년 2월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지북동 25번지에서 황도성 장로와 김도순 권사의 3대 기독교 가정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2004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이반 작 김윤태 연출<소년 공화국>이 극단 ‘반딧불이’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1923-1970)는 47세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4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YMCA 소년부 연습 간사가 되었다. 그의 성실성은 그 당시 YMCA 현동완 총무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광은은 서울 중앙 YMCA 간사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그는 6.25 피난시절에는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들 30여 명을 돌보다가 1.4 후퇴 때에 고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황광은은 어린시절 일본 목사 가가와 도요히꼬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를 읽고 큰 감화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되던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기슭에 있던 향린원이란 고아원에서 8년간 고아들의 벗으로 일하면서 일제 말 암울했던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 청소년운동, 기독교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극단체 ‘원예술좌’의 창립동인이었고 아동영화 ‘하늘은 맑건만’ 등을 제작하였다. ‘크리스찬신문’ ‘기독교교육’, ‘새벗’의 창간과 편집,집필을 하였다.   황광은 목사    목회적으로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대광중고 교목을 거쳐 1961년부터 영암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김활란 박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 실무를 담당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크고도 넓고 깊다. 황광은 목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어린이의 참벗, 고아의 아버지, 선한 목자,화해의 사도,짧으나 긴 삶을 사신 분"  황광은은 아동작가,훌륭한 설교가,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은 맑고 너그럽고 착하였다, 그가 한 일은 크고 곱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한 스토리가 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 공화국》이다.  1970년 5월 어느날, 황광은 목사는 병상에서 이반 극작가를 불렀다. 소설 ‘소년 공화국’이라는 제목과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적어 놓은 서문과 두 장의 목차를 내밀었다. 구겨진 일곱 장의 원고지가 그로부터 33년이 지나서 희곡 《소년 공화국》으로 탈고된 것이다. 황광은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소설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반 극작가에 의하여 2003년 12월에 희곡이 되었고 2004년 12월에 연극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왔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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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2)-박영준의
    한국의 기독교문학사에 나타나는, <종각> 출현 이전의, 기독교적 내용을 다룬 다른 작가들의 소설작품들 중 공통적인 약점은 이것들이 기독교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소재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거나 피상적인 관찰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죄의 문제, 십자가의 문제, 종말론의 문제, 궁극적 구원의 문제…등 기독교적 핵심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기독교 주변이나 그 역사, 또는 교회의 피상적이거나 외면적인 소재만을 찾아 형상화함으로써 기독교소설로서의 치열성이나 절실감이 부족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반적 약점을 박영준의 <종각>은 보완해주고 있다. 이 작품을 N. 호손의 <주홍글씨>와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것도 위에 이야기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먼저,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양자(兩者)를 대비해 본다면, 주인공 최광주는 딤즈데일과, 여주인공 심삼애는 헤스터 프린과, 그리고 도덕주의를 표방하는 평신도들은 엄격주의에 젖어있는 미국의 청교도들과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양자는 서로 유사 영역을 공유한다고 보겠다.   <주홍글씨>가 죄의 테마를 다루었다고 한다면 <종각>도 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홍글씨>의 등장인물들이 육욕의 노예요 죄악의 하수인들임과 마찬가지로 <종각>의 주요 인물들도 육욕에 얽혀 허우적대고 있는 죄악의 군상들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한 성경 말씀처럼, <주홍글씨>의 주인공들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극적이듯, <종각>의 등장인물들 역시 몹시 불행한 결과에 이름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러나 외형적인 그들의 불행과는 달리, 마지막이 그들의 철저한 회개로 인하여 속죄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우리가 확인하게 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도 되는 것이다. 딤즈데일 목사가 죄의식 때문에 받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혼의 구원에 이르듯, 최광주도 철저한 회심과 거의 고행이다시피 한 기독자적 희생의 삶을 통해 자신의 구원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하나 그가 아무리 속죄의 경건생활을 유지하려고 해도 그의 측근(가족)이 그를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그를 괴롭히기만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고통을 ‘속죄하는 마음’ 하나로써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죄에 대한 가책과 죄의식에 따른 고행자적 속죄의 삶을 통해서 그는 신에게 한 발짝 더 접근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광주를 한국판 딤즈데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릴런드 라이컨은 호손의 <주홍글씨> 가운데서 세 가지의 세계관이 있음을 지적해 냈다. 율법적(청교도적) 세계관, 낭만적 세계관,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 등이다. 박영준의 <종각>의 세계관도 결국 이 세 가지로 요약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로와 김 집사 등은 율법적 세계관을, 심삼애와 목사의 딸 선희 등은 낭만적 세계관을, 그리고 주인공 최광주와 담임목사 등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소설로서의 <종각>(1965)에 대하여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종각> 이전의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기독교세계가 아닌 곳에서 작중인물이 자신의 타락과 죄악을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지만, <종각>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신(神)을 향해 ‘참회’(회개)함으로써 자신의 과오(죄과)를 씻어내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기독교문학으로서 진일보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 점이라고 하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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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0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3)-김은국의 〈순교자〉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신 목사는 동료목사들을 배반한 일이 없었다. 신 목사 자신이 그 사실을 증언하지 않았으므로 잘 알 수 없었지만, 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정 소좌(인민군)에 의해서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므로 신 목사가 혐의가 없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만일 정 소좌의 증언이 없었더라면 신 목사의 혐의는 끊임없이 추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가정컨대 신 목사 자신이 자기는 동료 목사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했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목사의 그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신 목사는 자신을 변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자신을 변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배신자노라고 청중 앞에 공언하기까지 하였다. 명백히 이 발언은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신 목사를 규탄하고 해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들은 시위를 통하여 신 목사를 “유다!”라고 지탄했던 것이다. 예수를 판 가룟 유다처럼 동료 목사들을 배반하고 자기만 살아남은 뻔뻔한 인간이란 식으로 신 목사를 대했던 것이다.   신 목사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남았었던가? 정 소좌의 말에서 드러난 것이었지만 모든 목사들이 인민군에 굴복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동료 목사를 불리하게 만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 목사만은 떳떳하고 의연하게 그 취조하는 인민군 심문관에게 대들었던 것이다. 그 담대한 모습에 감탄한 심문관이 신 목사는 살려주고 나머지 열두 목사들은 총살하고 말았던 것이다(이때 한 젊은 목사는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결과 총살은 면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남아 있었던 신 목사이지만 신도들 앞에 결코 자기의 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가 현장에 자신은 없었다고 거짓말했던 것도 실은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고 그리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죽은 동료 목사들의 추태를 말하거나 상대적으로 신 목사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리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다음 그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자기가 배신자라고 뒤에 번복하고 나온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희생자가 되겠다는 각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열두 목사들의 위치를 공고히 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목사의 의연한 자세가 바로 순교자의 자세라고 작가는 말하려고 한다. 이러한 신목사의 자기희생적 태도는 박계주의 <순애보>에 나오는, ‘또 하나의 십자가’ 편의 피엘 신부의 태도와도 방불하다고 하겠다.   동족상잔의 폐허 속에서 극단으로 주리고 병든 신도들이 자신들의 절망감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자기들이 지금껏 신뢰해 왔던 목자의 떳떳하고 의연한 순교라고 할 때, 그 신도들에게 절망감을 배가시킬 것이 뻔한 그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는 게 신목사의 기본 입장이었던 것이다. 만일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들이 이 고난의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 도저히 신 목사 자신으로서는 그리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신 목사에 의하면 누구나 다 십자기를 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사람이 십자가는 지고, 대신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들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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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3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2) - 김은국의
       신이 제 구실을 할 때의 순교자와 그렇지 못할 때의 순교자는 그 개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의 순교자가 전통적인 것이라면 후자의 순교자는 탈전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두 부류의 순교자들이 제시되는데, 하나는 12명의 죽은 순교자들이고, 또 하나는 1명의 산 순교자(신 목사)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열두 명의 죽은 목사들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자냐 하면, 또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다시 말하면 순교자로서 떳떳한 죽음을 한 목사들이 아니었으므로) 이 작품에서의 실질적인 순교자는 신 목사 한 사람에 국한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자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만은 계속 남아있게 하는 위력을 발하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여기서 순교자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한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일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의 정치적 탄압이 어떻게 기독자들의 자기정체성을 잃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체험기로 루마니아 목사 R. 범브란트의 <하나님의 지하운동>과 불가리아 목사 H. 포포프의 <믿음 때문에 당한 고문> 등을 들 수 있다. 범브란트 목사나 포포프 목사의 수기 속에서 동료 목사를 배신하는 이들이 불가불 출현했던 것처럼, <순교자>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배신자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배신자들이 자신의 영달이나 편의를 위해 그리 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심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길이 없는 나머지, 인간의 약점에 스스로 굴복해   그리된 것이므로 이런 행위에 악의적 해석을 내릴 수만은 없는 것인 줄 안다.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 배신자들의 치부를 숨겨주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다름 아닌 신 목사와 장 대령이다. 그러나 결과야 같다 치더라도 동기 면에서 볼 때 두 사람의 관용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신 목사의 경우, 그 자신이 목도한 배신자들의 추태를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문자 그대로 ‘종교적’ 순수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보장교인 장 대령이 배신자들의 실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사실을 덮어주려고 하는 데에는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의식이 뚜렷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장 대령도 그런 은폐 작업을 통해 무슨 악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저의를 지녔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어떤 정치적 의도에 그 사건을 짜 맞추려는 기본 입장만은 견지했다고 하는 데서 두 사람의 ‘종교적’ 동기와 ‘정치적’(군사적) 동기가 동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사정 모두를 다 알고 있는 독자에게 신 목사는 그렇게 비쳐지지만,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신도들이나 일부 목사들에게 신 목사는 오히려 배반자로 몰리고 있다. 그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은 공산군에게 잡혀간 목사들 열네 명 가운데서, 열두 명이 죽고 두 명은 살아남게 되었을 때 그 살게 된 두 명 중의 하나가 바로 신 목사였기 때문이다(그중 한 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으므로 크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 목사는 처음 동료 목사들이 살해될 때 자신은 그 현장에 없었노라고 말했다가, 후에 그 말을 번복하고서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무언가 뒤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으로 평양 신도들에게는 비쳐졌던 모양이다. 물론 이때의 신도들이란 대개 자신들의 담임목사를 졸지에 잃게 된 슬픈 양떼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목자를 잃은 허전함에 싸여 있다가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신 목사를 목격하게 되면서 신도들은 극도의 분노에 떨게 되었고 급기야는 신 목사의 거처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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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3
  • 순교자의 희생양(속죄양) 의식(1) -김은국의 〈순교자〉
      순교 또는 배교의 문제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주제로 삼아 쓴 소설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의 작품들로는 아무래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위대한 몰락〉, 〈여자의 일생〉 등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작품으로는 서기원의 〈조선백자 마리아상〉과 김성일의 〈제국과 천국〉 등을 들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 대열에 좀 애매한 위치로 서게 될 김은국의 〈순교자〉도 한 몫 끼게 될는지 모른다. 이 말은 〈순교자〉가 국내 작품으로 인정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생존 시에 김은국 작가가 미국 국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은국의 〈순교자〉는 국내 작품으로 거론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외국(미국) 작품으로 치기도 석연찮은, 참으로 국적 미명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인상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김 작가)를 제쳐놓고 한국 기독교소설을 운위하기가 매우 궁색하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어떻든 그는 한국 혈통의 작가요, 한국인의 숨결과 정신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한국적 배경을 떠나서 그의 소설 세계가 성립되기 어려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에 불가피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1964년에 나온 이 작품(원작)은 그 2년 뒤(1966)에 나온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많은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극도의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될 때 거기서 순교와 배교의 문제가 발생하며, 자동적으로 순교자와 배교자의 출현도 있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시절의 노바티아누스파와 도나투스파가 겪었던 일들이 이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가 된다고 보겠지만,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무수히 반복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다루었다는 면에서(만) 〈순교자〉와 〈침묵〉이 유사하다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소설들은 그 공통의 주제, 곧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루되 앞서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신 부재의 문학’, 또는 ‘신 침묵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 정신에 기초하여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고 하는 면에서 두 작품은 상호 크게 유사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역시 당대에 유행하던 ‘신 부재(침묵)’의 사상이나 ‘신 죽음의 신학’이라고 할 기독교 신학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유(類)의 문학 작품들이 다분히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긍하게 만든다고 하겠다. 슈사쿠의 작품 〈침묵〉은 그러니까 ‘신의 침묵’이라고 할 때의 그 ‘침묵’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김은국은 그의 〈순교자〉 속에서 주인공 신 목사의 입을 통하여,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 모독적 발언을 해 대는 것이다. 말하자면 목사 신분인 사람에게서 저런 발언이 다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일반 독자들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치명적 발언을 해 댄다는 것이다. 이는 신 목사에 의해서 신은 인간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면적을 거의 잃어가는 대신, 그만큼 그 잃어진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메꾸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신의 침묵의 시대에, 또는 신 부재(내지는 죽음)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인간의 일이란, 그 부재(또는 죽음)의 신의 영역을 인간 스스로 보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신 목사는 그의 실천행위로써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신 목사의 언어나 행동이 초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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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8
  • 미물들의 메아리 없는 항변(하) -이청준의
    그러는 동안 진범이 체포되었고, 그 범인이 바로 아들이 다니던 주산학원의 원장 선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알암이 어머니는 격렬한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럴 때 다시 김 집사가 나타나 범인을 증오로 대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써 대할 것을 권고해 온다. 그러는 김 집사의 말에 반발심을 느끼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바꿔 먹고 범인을 용서해 주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그녀는 사형수를 찾아가 용서의 증거를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열려 가던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꽉 닫히고 말았다. 그 이유는 사형수가 처형을 앞두고 기독교에 귀의해 마음의 평안을 이미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 일을 그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보다 먼저 그 범인을 용서해버린 하나님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은 자기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고 하는 데 대한 분노가 신(神)을 향해 치솟았던 것이다.   주님께서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아가 버렸으므로 다시 그를 용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신의 공평한 사랑이라면 자신은 차라리 신의 저주를 택하고 말겠노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 범인에 대한 처형 소식이 들려온 직후 그녀는 자신의 너무도 인간적인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진(自盡)하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한 마리의 벌레처럼 신의 발뒤꿈치에 밟혀 죽고 만 셈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화자, 즉 그녀의 남편은 그 처지가 ‘벌레’의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잃은, 넋 잃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게 된 남편 역시 미물과도 같은 미약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작품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제기해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신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에 대한 해결책이 따로 없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마치 당연지사라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 침묵의 신에 대해 작가는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니 섭리니 사랑이니 하는 추상적 관념으로 감싸져 있는 기독교의 교리나 계율에 대하여 작가는 도전하고 있다. 그는 알암이 이야기와 알암이 어머니 이야기를 내세웠고 그것을 ‘벌레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이 미물(들)의 외침에 제발 좀 귀 기울이시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이쯤 이야기하고 보면 ‘벌레’라는 말의 함축적 의미가 매우 넓게 확대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벌레 이야기〉는 단지 알암이와 그 어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처지에 처해 있는 오늘의 미약한 신앙인, 나아가 우리 인간 모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벌레 이야기〉인 셈이다.   별 신앙 없이 교회에 나다니고 헌금을 하곤 했던 기복신앙의 소유자 알암이 어머니에 대하여 독자들, 특히 기독교 신도인 독자들은 별로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결국 범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말하자면 불신앙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애초에 그렇게 나약한, 곧 벌레와도 같은 존재라고 하는 이해를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할 때 그녀의 고통과 아픔을 깨닫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너무도 다양한 고통의 양상들을 지금껏 종교가 너무 안일하게 다루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차제에 해봄직도 하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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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5
  • 미물들의 메아리없는 항변(상) - 이청준의
      작가 이청준의 소설집 〈벌레 이야기〉(심지, 1988) 속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 〈벌레 이야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 속에 보이는 ‘벌레’ 이야기는 작품 자체 속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에 나오는 무슨 벌레[갑충]의 모습 같은 것을 이 소설은 조금치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여기에서의 벌레란, 미물(곤충)과도 같은 하찮은 존재인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 속에 미물과도 같은(‘벌레’와도 같은) 존재는 화자인 남편(‘나’)에 의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알암이 어머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미 현세의 여인은 아니다. 그녀는 벌써 생명을 잃은 존재로서, 그녀가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그 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이 작품은 진술해 보여주고 있다. 결과를 이야기한다면, 알암이 어머니는 이를테면 신의 횡포에 의해 그녀의 생명을 잃었던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의중은 이 점을 분명히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신에 의해 벌레와도 같은 미물로 취급되어 죽음에 처하게 된 여인이 바로 알암이 어머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기독교 세계관을 옹호하고자 하여 쓴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오히려 기독교적 계율에 도전하려는 의도를 더 많이 지니고 쓴 작가의 문학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설을 기독교문학 작품이라고 강변하려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작품이 기독교문학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소재를 갖고 씌어졌으며, 또 기독교의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기독교의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고도 진지한 물음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간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비기독교적인 세계에서는 논의되기 힘들 것이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알암이)을 유괴당해 결국 피살체로 목도하게 된 아내의 고통스런 모습과 막바지에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처절한 아픔을 남편인 ‘나’의 시점에서 묘사한 작품이 〈벌레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갓 올라온 순진무구한 소년 알암이가 아무런 죄 없이 주산학원 원장 선생, 곧 알암이의 스승에 의해 납치되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현장을 보고 독자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벌레 이야기〉라는 제목에 보이는 벌레는 죽은 알암이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이 작품 속에는 두 마리(?)의 벌레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미물인 벌레가(어린 알암이가) 속절없이 죽어갔으나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아내 역시 불가피한 미물이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자살을 감행하기 전까지는 굳이 그녀에게 미물이란 표현을 쓸 만한 사정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피살체로 발견되고 나서 그 사실을 목도한 아내가 겪는 심적 고통은 극한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이웃집에 사는 김 집사 아주머니가 끈질기게 접근하여,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 집사로서는 결코 악의 없는 접근이요, 친절이기도 하였다. 처음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알암이 어머니는 그 정성에 감복했던지 마침내 동의하고 교회에도 나가게 된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8-26
  • 김대건 신부의 적극적인 순교 자세(중) - 이병주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고(故) 이병주 작가의 이 가톨릭 역사소설의 이해를 위해 잠깐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대건은 1821년 태생(충남 당진)으로 1836년 프랑스 신부 모오방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그해 12월 최방제, 최양업 등과 함께 유학길에 올라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여 신학 수업을 받게 된다. 1845년(8월)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 후 1846년(9월)에 사형선고를 받아 새남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말하자면 1820년대부터 1840년대 중반까지의 20수 년 간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이르기는 데 두어 차례의 박해가 앞서 있었다. 신해년의 박해(1791) 및 신유년(1801)의 大박해, 곧 신유사옥(辛酉邪獄) 등이었다. (이들 중 특히 후자, 즉 신유박해에 대해서는 서기원의 역사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을 통해 그 실상이 어떠했던가를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김대건이 모오방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뒤 마카오로 떠날 때(1836)까지 그 어간에는 별 박해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카오에서 정신없이 신학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던 1839년에 이르러 고국 조선 땅에서는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상을 신학수업 중이었던 김대건 소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일은 1839년 1월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조선 땅에 세 명의 외국 신부들이 들어와 있었다. 앵베르 주교, 모오방 신부, 샤스땅 신부 등 프랑스 출신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조선에는 약 1만 명 정도로 신도들이 불어나 있었다. 그러나 무서운 박해가 일어나게 되자 많은 신도들이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국가 권력이 단순하게 교회를 박해한다고만 해도 많은 이들이 다칠 것이었지만, 사정은 그렇게 단순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세도가(勢道家)들 간의 알력과 당쟁의 와중에 기독교도들이 일종의 희생물로 제단에 바쳐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헌종 5년 기해년(1839)에 일어난 박해, 곧 기해사옥(己亥邪獄)의 배후에는 어떤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었던가? 선왕 순조의 비(순원왕후)는 안동 김씨로서, 헌종이 어린 나이로 등극하였을 때 대왕대비로 섭정을 맡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주교에 대하여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써 왔는데, 그 이유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천주교도였던 정약용이 의술로 치료를 해 준 일이 있었고, 더욱이 효명세자가 서거하자 그 일이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효명세자의 부인은 풍양 조씨였고, 이 조씨 일파에서는 김 대비의 대(對) 천주교 온건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교회를 박해함으로써 결국은 김씨 세도의 축출까지를 획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원왕후 김씨의 오라버니 김유근 역시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가졌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정계에서 물러나고 행정의 실권이 우의정 이지연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새 정승 이지연이 천주교 박멸을 주창했으므로, 섭정 순원왕후는 본의 아니게 대세에 몰려 이를 허락함으로써 박해의 분위기가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 고관들이나 하급 관리들도 이지연 정승에게 영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천주교 탄압도 말하자면 그 움직임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14세의 소년으로부터 79세의 노파에 이르기까지 이 고난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파급된 박해에 의해 체포된 자의 수가 300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 박해가 끝날 즈음에는 순교자의 숫자만도 113명에 이르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8-11
  • 김대건 신부의 적극적인 순교 자세(상)-이병주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작가 이병주(1921-92)의 실명소설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소설 김대건’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역사상의 실재 인물인 김대건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교역자(성직자) 신분의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 작품으로 완성한 일들이 ‘소설 김대건’의 출현 이전에 몇 작가들에 의해 시도된 바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연희 작가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1983)란 제목의 소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의 특수 목회에 종사한 맹의순 전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에서인지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도 그만큼 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작품이 나온 바로 다음 해(1984)에 이병주의 작품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나왔다.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서로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이 두 작품들이 1인칭 시점의 작품들 못지않은 간증적 효과를 크게 거두고 있는 것은 두 작품들의 후반에 삽입된, 주인공들 자신의 서간문들이 상당한 분량으로 배열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확연히 다른 점은 이 작품이 일종의 역사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에만 충실한 탓인지, 이 작품이 소설인지 아니면 전기(傳記)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독자들로 하여금 갖도록 만들고 있다.   1838년부터 시작된 마카오 경리부에서의 신학수업 장면들만 아니었더라면 이 작품은 분명히 하나의 ‘김대건 전기’로 되어 버렸을 개연성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후반의 많은 편지글들의 나열이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왜냐면 허다히 나열된 김대건의 서간문들은 그것이 결코 작가에 의해서 소설적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김대건 자신에 의한 편지글 자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양의 신부들에게 김대건 자신이 보낸 거의 비슷비슷한 서간들, 아니라면, 얼마간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서간들을 거듭 나열한 것은 독자들에게 매우 지루한 느낌을 가져다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을 금치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하나의 전기 작품이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 그 이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게 되었으리란 짐작을 하게 한다. 결과를 두고 말하자면 사실이 그러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신부인 김대건이 살았던 시대(19세기)의 역동성을 살리고, 그 속에서의 우리 민족의 비운과 천주교의 전래에 따른 신도들의 수난, 그리고 그러한 여건 하에서의 김 신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의 고뇌와 순교라는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밀도 있게 다룰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독자들의 그런 기대에는 미흡한 작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저 전기적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처리한 속에서 약간의 소설적 요소를 가미시킨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다. 차라리 그러려면 아예 ‘김대건전’을 처음부터 시도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이런 유(類)의 작품들이 대체로 테마로 삼게 되는 어떤 순교나 배교 등의 문제에 정면 도전을 하고 있지도 못하고, 또 김대건 신부 자신의 개인적 고뇌나 아니면 신앙적 승리의 개선을 부각시키는 일에도 결코 득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제의식이 희박한 소설이 기독교문학 작품으로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교훈을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고 하겠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8-06
  • 경북 김천 황악문학회 활동 활발
    김천과 상주지역 목회자와 평신도 시인들이 모여 정기모임 작품 속에 기독교적 색채 드러내 문학을 통한 신앙의 삶 표현     경상북도 김천지역의 기독교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 배명식목사(모동제일교회)를 비롯한 목회자와 평신도 시인과 앞으로 등단을 준비하는 20여명이 지난해부터 모여 황악문학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김천에 위치한 복전교회(민길성목사)의 사모가 운영하는 ‘로뎀나무’란 커피숍에서 모여 문화교류를 하고 있다.   문학회 회장인 시인 배명식목사(사진)는 황악문학회에 대해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에 걸쳐 있는 황악산 주변 지역에서 평소 문학에 관심을 가진 담임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정기적인 시낭송회와 작품품평회로 모이는 문학모임”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배목사는 “문학을 통해 신앙의 삶을 표현하고 그 작품으로 전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모임은 상주 모동제일교회에 부임한 배목사가 지역 내에서 시인이라는 소문이 돌며 주위에서 문학에 관심을 가진 목사들이 개인적인 교제를 가지면서 시작되었고, 김천 복전교회 민길성목사의 사모가 운영하는 ‘로뎀나무’ 커피숍에서 2020년 11월부터 정기적으로 모이기 시작해 문학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모임의 역사는 짧지만 회원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단단한 문학회로 성장하고 있다. 회원은 20여명 정도이나, 벌써 민길성목사와 이상원목사(상주영오교회)가 문단에 등단하였다. 또한, 박연수목사 등 몇 사람이 등단을 준비하고 있다. 회원들은 네이버 밴드 ‘황악문학‘밴드에 수시로 글을 올리고,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문학공부와, 시낭송회, 그리고 품평회를 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하여 회원 전체가 모이는 정기모임은 자제하고 있으나 몇 사람이 모이는 ‘번개모임’과 황악산 일대의 거주하는 기존 등단시인을 찾아가는 ‘시인순레’를 통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밴드 ‘황악문학.시낭송회’에서 시와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모임의 구성원이 목회자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사상을 작품 속에 녹여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앞으로 기독교 문단의 빛나는 인재들로 활동해 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 회원으로는 김천의 김정숙시인과 구미 선산의 김정자시인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황악문학회 회장인 시인 배명식목사는 “시작품에서 드러나는 순수 서정이 시골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꽃들에 대한 작품을 다듬어 가고 있다”면서 “문학을 통한 ‘신앙의 삶’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7-11
  • 배교자의 역설적인 ‘적극적 순교’ 자세(하)
    11면 기독교 소설 산책14   우리는 이제 이 작품의 주인공의 믿음 또는 배교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공인물 김신봉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는 사기장이 직업을 가진 청년이다. 원래 여주 땅에서 사기장이 노릇을 하다가 그 마을의 가마들이 아궁이를 닫는 바람에 그곳을 떠나 광주 땅으로 향하던 도중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이 운길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그릇들을 만들면서 생활에의 의욕을 불태운다. 김신봉은 자신이 만든 그릇을 가지고 마재 마을의 정 부사 댁으로 갔다가 그의 아들 정약종을 거기서 만나게 되고, 그 집의 하인인 은돌이도 만나게 된다. 하룻밤 신세를 그 집에서 지게 되면서 신봉이는 하인 은돌이의 전도를 받게 되고, 후에 그는 천주교인이 되는 것이다. 김신봉의 신앙인으로의 변화는, 거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의 친구 덕환이가 끝내 신도가 되지 못한 것과는 완전히 대조된다고 하겠는데, 성서의 모델로 말하면, 김신봉이 예수의 좌우에 달렸던 강도 둘 중에서 곧 회개하고 구원의 대열에 들어간 한 인물에 해당한다고 할 때, 친구 덕환이는 그중에서도 끝까지 예수의 구세주 됨을 부인하고 오히려 모욕적인 언동을 일삼은 다른 한 강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도 덕환이는 후에 운길 마을의 천주교도들을 관아에 알리는 밀고자로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무녀인 장모와 그녀의 딸인 아내가 끝까지 김신봉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모와 아내는, 온갖 고문 속에서도 결사적으로 배교를 거부하던 이 주인공(신봉)으로 하여금 결국엔 맥없이 배신을 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배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그의 아내에게 가해진 무서운 매질 소리와 그에 따른 갓난 아들의 울음소리였다. 이 작품 속의 다른 주요인물은 이가환인데, 그는 신도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가환이 천주교도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이 작품 속에서는 가장 생생하다고 할 만큼 그 장면은 작가에 의해 박진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가히 극단적 매저키스트라 할 가학적 행위가 이가환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의 무서운 고문 때문에 결국 사기장이 김신봉은 배교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불신앙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도 화로의 불씨처럼 신앙의 불씨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배척을 당한다. 신자들 속에서는 배교자로 배척당하고 그래서 그는 다시 사기장촌으로 들어가 볼까 했지만 거기서는 그를 신자로 알고 두려워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찾아갈 곳이 어디인가? 이제 그는 신(神)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빠진 나머지 단단히 결심하고 좌포청의 포졸들 앞에 나서게 된 것이다. 자기를 천주교도로 치죄해 달라고 자수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순교를 자청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배교자의 명단에 이미 그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이 확인되자 심문관은 그에게 방면(석방)을 선포해 버린 것이다. “네 놈은 이미 천주장이가 아니야. 여기 명단에 네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다. 알겠느냐?” 그리고 그 군관은 신봉이의 품에서 빼앗은 ‘백자 마리아 상’을 디딤돌에다 냅다 내동댕이쳤다. 그것들이 반짝이는 사기 조각들로 뜰 안에 어지러이 흩어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그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배교자로 한 번 낙인찍힌 신도가 온전히 정상적인 신자의 위치로 회복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 작품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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