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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2)
    박완서의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나목><엄마의 말뚝>은 6.25 한국전쟁에서 작가의 가족사와 동화백화점 초상화부에서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 화백에 대한 증언을 하고자 했다. 이문열의 소설<영웅시대>,<변경>에서 보듯 분단 현대사에 있어서 그의 가족사는 이문열 문학의 원류이고 그 겪어온 삶 자체가 현대문학을 형성한 것이다. 이념의 허상을 좇아 월북한 아버지를 둔 그 불우하고 회한에 찬 이문열 작가의 가족사는 이데올로기의 이면이고 증언 문학인 것이다. 황석영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남과 북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한 그의 큰 외삼촌에 대한 실화를 의사 한영덕을 중심인물로 <한씨연대기>로 썼다. 황석영의 외할아버지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7년간 감옥생활을 했던 전흥걸 목사이고 그의 어머니는 평양의 기독교 목사의 딸로서 진취적이며 문학적 감수성을 황석영에게 이어 준 것이다. 백도기의 <은제의 십자가>, <저 문 밖에서>,<젊은 나목>,<땅의 뿌리>,<조용한 개선>은 그의 부친 백남용의 순교에 대한 증언소설이다. 그의 소설에는 대부분 목사, 신부, 신학생, 그리고 아버지가 목사인 소년이 등장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목사였으며 자신이 목사인 작가가 체험한 삶의 경로를 증언하는 것이다. 이병주, 박완서, 이문열, 황석영, 백도기의 증언 문학을 계승한 한강은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매김했다. 제주4.3, 작별하지 않는다   노벨 문학위원회 안나 카린 팜은 한강에 대해 “부드럽고 잔인하며 때로는 초현실적인 강렬한 서정적 산문을 쓴다.”고 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와 인선과 그녀의 엄마 정심의 시선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풀어냈다. 경하는 광주 5.18을 소재로 소설을 쓴 작가이고 경하는 한강 자신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은 베트남전 한국군 성폭력 사건을 영상으로 만들어 주목받았다. 정심은 인선의 어머니로 제주 4.3에 대한 상실의 기억을 평생 안고 있다. 한강은 제주 4.3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과거의 상처와 마주해서 치유되고 회복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성근 눈, 생명과 죽음의 진혼곡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문장이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익숙하지 않는 형용사 ‘성근’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간결하고 담백하게 압축하는 모두어 이다. 성근은 ‘성글다’의 형용사형으로 변화된 표현이다. ‘성글다’는 “물건의 사이가 뜨다”라는 뜻으로 눈이 함박눈처럼 펑펑내리는 것이 아니고 굵직하지만 띄엄띄엄 내린다는 의미이다. 한강의 문장은 시적 은유를 담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먼저 데뷔했다.   서울의 겨울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내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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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4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 - 왜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가
     스웨덴 한림원은 한국의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을 선정한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들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첫 수상자 한강의 소설에는 생명과 사랑,평화와 인권을 서사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역사 속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증인 문학 (witness literature)이라는 장르에 접근해 간다.”고 했다. 작가는 역사적 폭력에 대한 증언과 기억을 되살려내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고자 했다.    응어리 맺힌 한을 건드려 해소하는 “한강의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우리의 기대에서는 벗어난다. 죽은 자의 영혼을 몸에서 분리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할 수 있도록 한다. 묻히지 못하는 신원 미상의 시체를 보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모티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한강 작가의 사상적 원천이 바로 그리이스 극에서 이어온다. 그 속에는 철학과 시가 공존한다. 공포와 희열이, 사랑과 미움의 원색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이 가지는 모든 상극과 비극성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도 감해지지도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이다. 시인이고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인간의 존엄을 한강의 문학은 세계의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공감을 갖게 하고 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1948년 4월 3일에 봉기한 이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들과 연루돼 있다고 할 수도 없는 평범한 민간인들이 ‘토벌’의 대상이 되어 3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광주 5.18’ ‘제주 4.3’ 에는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영역이 있다. 한강은 광주, 제주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그곳에 살아있는 이들로부터 꿈처럼 스며드는 사랑의 기억을 끌어냈다. 한강은 역사적 폭력에 대한 증언으로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채색주의자> 등을 프랑스 한국문화원 최경란 팀장과 함께 프랑스어로 번역한 피에르 비지우는 “한강의 글은 영혼의 심연을 헤집는다. 고통과 감정의 바닥까지 파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한한 섬세함’을 발견하게 된다. 한강은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면서도 고요함과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강의 문장은 악몽마저 서정적 꿈으로 만들어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이다. 그는 “한강의 소설들은 내면의 은밀한 경험이 역사와 어깨를 마주하고 고통과 사랑이 눈밭에서,숲에서.그리고 격정의 불길 속에서 흔적의 길을 남기는, 가슴아린 작품들이다.”고 덧붙였다.    한강의 증언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데는 이병주의 실록소설<지리산>에 근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병주의 소설은 해방직후, 이데올로기를 고발적이고 비판적으로 증언하였다.    이병주가 빌려왔다는 뉴저널리즘은 196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일종의 증언소설로 사회, 역사적 사건을 허구화하는 소설적 방법이다. 뉴저널리즘의 방법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그의 소설을 증언소설의 관점에서 읽어야함을 확인시켜주는 단서이다. 그의 처녀작<관부연락선>(1972)은 현대사를 소재로 역사적 진실을 탐색하려는 이병주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이병주에게 소설은 허구이기보다는 현실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에 <지리산>은 기록문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증언소설로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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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4
  • 기독교문화예술원,「한강의 노벨문학상과 한국교회」 포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한강작가의 생명현상 근원을 설명 철학과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평가되고 바른 비평할 것을 제안   기독교문화예술원(원장=안준배목사)과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소강석목사)는 지난 5일 한국기독교성령센터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과 한국교회」란 주제로 송년문학포럼을 진행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사랑과 화해의 치유메시지로 전했다고 강조했다.    한강의 작품을 살피며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이유와 한국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관점에 대해 나누었다. 또 한강의 작품이 말하는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를 어떻게 복음적으로 해결하는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날 포럼은 김창곤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가 포럼 주제에 대한 발제와 안준배 박사(대학로순복음교회)가 문학평론을 했다.   ‘법과 이념’의 용서, 표현 못하는 ‘생명의 아름다움’   김 목사는 “한강작가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문제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설득력 있게 현실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다”면서, “제주 4.3사태나 5.18운동과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증언 문학의 특징을 넘어서 순수문학으로 평가되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좌우의 이념을 떠나 법이 용서할 수 없고 이념이 용서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을 함께 그 문학에서 누리고 함께 축하하는 그런 장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될 것이다”고 말하며, 한강의 작품의 문학적 성취와 평가에 대해 말했다.   ‘참여문학’이 아닌 ‘순수문학’분명    김 목사는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작품에서 비춰진 생명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 생명이란 우선 <채식주의자>에서 보듯 피 흘릴 수 있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얽혀져 있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보듯 한 사람의 개별적인 생명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이 그리고 죽은 생명과 죽어가는 생명과 살아있는 생명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한 덩어리로써의 ‘생명현상’이다”고 말했다. 또 한강 작가의 생명현상의 근원을 기독교가 주의해서 봐야 할 관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폭력을 배태한 역사적 사건들, 즉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어 일어난 사건들은 그 사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이는 죽이는 폭력을 규탄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애착과 안타까움을 호소한 것이다. 그렇기에 한강의 문학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거나 참여문학이 아날 순수문학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철학과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평가돼야    또한 신학의 관점에서도 전했다. “삶의 아름다움과 폭력의 모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철학이다. 그 모순의 문제를 표현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문학이며 모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초월적인 신학이다”면서, “한강은 문학작가이며 모든 문학작품이 그러하듯 그녀의 작품들은 이 모순의 해결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은 기독교 교리와 신학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며, “한강의 작품은 철학과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평가되고 비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나 신앙인, 목회자들에게는 “한강의 작품이 말하는 생명현상이 아름다움과 폭력의 모순이 가져다주는 이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를 어떻게 복음적으로 해결하는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작가에게 바라는 것으로 낭만주의에 대해 말하며 “생명현상에 대한 애착에서 생명구원의 신앙에 이르는 가느다란 선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폭력에 대해 “우리의 신앙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내포해 쉽게 이데올로기로 환원되고, 이를 위해 폭력을 가하는 역사도 있다”면서, “우리는 ‘할례냐 무할례냐’를 따지는 이념적인 것으로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과 사랑, 평화와 인권을 서사    안준배 목사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산문」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안 목사는 “한강의 소설은 생명과 사랑, 평화와 인권을 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광주 5.18’,‘제주 4.3’에는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들어나는 영역이 있다”면서, “한강은 광주, 제주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그곳에 살아있는 이들로부터 꿈처럼 스며드는 사랑의 기억을 끌어냈다. 한강은 역사적 폭력에 대한 증언으로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향한 애도의 윤리를 실현   안 목사는 <소년이 온다>란 작품에 대해 설명하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여 ‘증언 문학’으로 평가되지만, 역사적 폭력과 트라우마의 치유를 사랑을 통해 이야기함을 말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연속체를 창조해 독특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임을 말했다. 특히,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눈’의 이미지는 시적 산문을 통해 20세기 한국 역사의 정치적 폭력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며, 피해자들을 향한 애도의 윤리를 표현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들이 소설을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간다는 평가는 작품의 깊이를 보여준다”면서, “이는 사랑의 고통스러움을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시키며, 이별하지 못하는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고 말했다.   또 안 목사는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에서 단지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그 폭력에 저항하며 마지막에는 ‘나무’가 되버린 영혜를 통해 생명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를 폭력과 억압의 공동체를 탈주시키고자 했다. 가부장적 폭력으로 무너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자연과 화합하게 하는 세상을 구현하려고 했다”며, “한강의 은유가 가득한 산문은 여성의 삶에 대해 뚜렷하게 느껴지는 공감대로 이루었다”고 전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깨닫게 되고     토론시간에서 백충 목사는 “이번 포럼을 통해 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 받은 이유를 납득하게 되었다. 또 역사적인 사건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용순 목사는 “르네지라르의 말에 따르면 어느 국가나 인신제사를 드리는 게 다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에 위기가 생기면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며, “거기에 유죄인 희생양이 있고, 무죄인 희생양이 있을텐데 예수님은 무죄인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주 4.3사태나 광주 5.18운동에도 무죄로 죽은 희생양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우리 구원을 받은 것과 같이 그 죽음이 너무나도 억울하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된 것이 있는 줄 믿는다”고 말했다.   유중한 목사는 “순수문학으로 평가한다면 생명을 사랑하는데 있어 기독교적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면서, “김박사가 말한 것과 같이 한강작가가 낭만주의를 만나고 기독교신앙으로 오게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흥일 장로는 “발표에서 한강작가의 작품 속 나타난 역사적 트라우마, 보이지 않는 규칙 등 예리한 작가의 눈으로 해석해주었다”면서, “작품 속 등장한 두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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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6
  • [기독교소설산책]정치신학적 주제의 다성소설적 형상화 (2)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
        이하에선 <에리직톤의 초상>의 그 질적 변화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하련다. 이러한 논의는 원작 중편과 개보작 장편 상호간의 비교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일이다. 이에 우리는 먼저, 1981년 발표된 원작 중편이 별로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 채 외면당하다시피한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한마디로 말하면, 원작 중편은 작가의 종교사상, 곧 기독교적 세계관을 피력하는 일종의 토론장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관념적이고 사변적인(또는 현학적인) 소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그런 자리에 위치한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장편 제2부의 새로운 등장인물인 신태혁, 즉 이 소설의 ‘충격 인자’로서 출현하기 시작한 새 인물 등장 이전의, 일종의 미완성작에 해당하리라고 보이는 원작만으로써는 독자 대중의 관심도, 비평가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작 중편은 마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비평가들로부터 받았던 평가 그 이상을 뛰어넘기가 어려웠다고 보겠다. 아니, 일단은 스토리 전개 면에 있어서 완성품이라고 볼 수 있는 중편 <사람의 아들>보다는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스토리의 그 미완의 성격 때문에서도 비교적 더 혹독한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작 중편의 ‘장편으로의 변형’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이란 문제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제1부의 만연체, 화려체 중심의 문체가 제2부에 들어와서 간결체, 건조체 형식의 직설적 문체로 바뀐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결과, 이런 문체의 변화로 작품내(특히 제1부)의 정태적 분위기가 후반(제2부)에 들어와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지적될 만하다. 물론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제2부의 상황(장면) 변화가 결과적으로 그 문체의 변화를 동시에 초래했다고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체의 변화를 수반한 제2부의 상황 변화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이는 바로 신태혁이란 인물의 새로운 등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신태혁의 새 출현으로써 이 소설의 상황은 급전한다. 제1부에 있어서의 수직·수평 관계의 종교적 논의라고 할 일종의 관념적 유희 분위기가 제2부에 이르러 실천적 참여의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되는 것도 신태혁의 출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신태혁은 이 소설에서 하나의 큰 ‘충격 인자’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가 수행한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가 시위의 주동자로 모모 건물들에 방화를 주도하거나 노동운동가로서 일선 지휘를 맡은 일이었다기보다는, 이 소설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女性] 정혜령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충격 인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그 점일 것이다.  정상훈 교수의 딸로서 철두철미한 완고성을 지닌 보수주의적 신앙인 상을 결코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정혜령에게 ‘새로운 존재’(new beings)로의 변화를 가져다준 일, 이것이 곧 신태혁의 역할 가운데서는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정혜령의 변화가 신태혁의 수평축으로 완전히 수렴된 것은 결코 아닌 채, 그녀는 그녀 나름의 제3의 길로 그 자신의 행보를 내딛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옛 애인 혜령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화자 ‘나’(김병욱)의 점진적인 변화까지 예고해주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그런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촉진시킨 충격적 요인이 바로 신태혁이란 점에서 그의 역할은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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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8
  • [기독교소설산책]정치신학적 주제의 다성소설적 형상화 (1) -이문열의 '에리직톤의 초상'
       우리나라의 기독교소설은 염상섭의 <삼대>와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등에 이어서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에 이르러 그 큰 진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 세 작품들에 대하여 특히 유의하는 것은 이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엿볼 수 있는 그 다성문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앞의 두 작품들에 대해서는 본 지면을 통해 이미 살펴본 바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에리직톤의 초상>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가 이승우(1959~ )는 먼저 1981년 중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는 1989년 계간 <문예중앙>에 <에리직톤의 초상·2>를 발표했는데, 그 다음해(1990)에 이 두 편의 중편소설들을 한데 합쳐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낸 작품이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이다.  앞서 이미 발표했던 중편을 보완하여 새로이 장편으로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의 전례를 따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 이른바 기독교 사상소설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임을 감안할 때, 그것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장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탄생했음을 서로 대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長篇化)를 보면서 먼저 그 과정이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의 경우와, 우연이기는 하겠지만, 매우 유사함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 1979년에 나왔던 중편 <사람의 아들>을 이문열은 1987년에 장편으로 확대시켰는데, 마찬가지로 이승우 역시 1981년에 펴냈던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을 1989년에 장편으로 키워 놓았다. 두 작가는 다 같이 첫 중편 발표 이후 8년의 기간을 경과한 뒤 그것의 장편화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같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장편소설로 새로이 선을 보이게 된 이 두 작품들은, 이처럼 장편화 과정상의 표면적 유사점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 그 장편화의 내부적 실상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점도 보여주고 있음이 또한 사실이므로 이 점에 관하여 약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를 ‘평판적 확대’라고 한다면,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입체적 심화’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의 개보작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의 개보작(장편화)도 원작 중편을 기본 틀로 놓고서 단순히 그 양적인 팽창, 즉 평면적 확대만을 결과 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짙은 것임에 반하여,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양적인 확장은 물론 그 질적 변화, 곧 입체적 심화까지도 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람의 아들>의 그것보다는 한결 차원 높은 장편화를 이루어 놓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면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원작 <사람의 아들>이 개보작(장편)으로 확대되었다 해서 그것이 특별히 원작 이상의 논란거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 하는 물음이 제기될 법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경우 그것의 장편화는 확실히 우리의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왜냐면 양적 확장 외에도 분명한 질적 변화가 그것의 장편화 과정에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적 변화의 배경에는, 그 원작엔 없었던 새로운 등장인물 신태혁이 개작본에 등장하면서 그 작품 자체의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구조상의 장치나 상황 전환의 새로운 국면을 이루어 놓았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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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9
  • [기독교소설산책]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6)-이문열의
     그러다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 같은 목소리가 조정인의 청각을 두들기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제 남편 이동영과는 영원히 나란히 설 수 없게 된 영혼의 낙인을 받았다는 것이 문득 아득한 슬픔으로 떠올랐으나 그녀는 한숨 한 번 짓지 않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 낙인은 없으며, 있다 해도 그것은 다만 인간적 인식 안에서일 터이고, 이제 자신이 첫발을 내디딘 세계는 그보다 훨씬 초월적인 원리에 지배되고 그 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떤 신적 영역임을 그녀는 믿고 있었고, 또 그렇게 믿고자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풀어본 교인들의 선물꾸러미 속엔 성화 액자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씌어 있었다. “불합리하기에 믿노라. 더럽기에 추하기에 사랑하노라.” 논리와 신앙 간의 모순을 천착하면서 그 어떤 결론에 도달한 작가의 한 신앙고백처럼 보이는 이 구절은 역시 <사람의 아들>과 <영웅시대>의 작가다운 결말처럼 보인다. 믿음은 이처럼 역설적인 데가 있는 것이다. ‘논리’에 의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하나의 훌륭한 민족문학 작품이라는 데엔 이의가 없을 줄 안다. 민족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쓰라림, 전후(戰後)까지 지속되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이산가족의 문제,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 등, 소재 상(上)만으로도 민족문학적 내용으로 충일한 작품이며, 특히 좌익 사상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민족은 한 피 받은 백의민족으로 모두가 한 형제라는 강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통일 지향적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점은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강력히 거부하고 인간해방의 찬가를 드높이 부름으로써, ‘이념’과 그것이 추구하는 ‘권력’에의 집착을 맹타하는, 이른바 우상파괴정신을 작품 전편에 견지했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데올로기의 우상화, 또는 특정 권력자에 대한 신격화 등은 확실히 타파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의 우상숭배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람의 아들>의 결미에서 보여준 것과 <영웅시대>의 결말에서 보여준 것과를 대비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경우엔 주인공이 필연적인 동기 없이, 좌절감 때문에 불가불 기독교에 복귀하는 식이지만, 후자의 경우엔 뚜렷한 어떤 신앙으로 기독교로 귀의한다는 점에서 신앙 선택의 동기 제시가 확실히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최대의 강점은 기독교와 민족의식의 서로 만남에 있다. 종교개혁 시대의 위클리프·루터 같은 개혁자들이 시도한 ‘교회’와 ‘민족’의 연합 작업을 상기해 보면서, 오늘의 우리 기독교회가 민족을 논하고, 더 나아가 민족통일을 논의하는 지경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차제에 우리는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가 자신이 이 작품 가운데서 그 같은 내용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점은, 이 작품의 결미가 보여주는 단순한 ‘기독교의 입문’이라는 한계성에 비례하여 나타나는, 작가 자신의 역사의식이나 현실인식의 어쩔 수 없는 한계성으로 지적되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점이 <사람의 아들>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겨워 하는, <영웅시대>의 작가 이문열이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어려운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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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4-10-07

실시간 문학 기사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8] 하나님의 도시와 땅의 도시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시」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고, 그리고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함으로써, 천사들이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곧 지옥이 나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 제11책에서부터 22책에서 ‘하나님의 도시’(시편 148편 1절)와 ‘땅의 도시’(요한복음 8장 44절)에 관해서 이원론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천사들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창조되었다. 사탄이 범죄 했기 때문에 천사들은 두 도시로 나뉘게 되었다. 두 도시가 생겨난 근원은 천사들이 좋은 천사와 나쁜 천사로 분리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으며, 그 원죄가 세계에서의 선과 악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두 도시의 차이는 근원적으로 선을 사랑하느냐 악을 사랑하느냐 하는 각각의 근원에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하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빛의 도시로 하나님의 도시요 다른 것은 사탄과 함께 하는 어둠의 도시로 땅의 도시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도시의 진전을 4기간으로 나누어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인간 창조에서 노아를 통해서까지 족장들에서 다윗을 통해서까지, 선지자들에서 그리스도까지, 그리고 메시아의 왕국에 이르기까지 등 각각의 발전을 분리하여 다루고 있다. 두 도시의 주제는 땅의 도시의 최후 심판과 형벌을 하나님의 천상의 도시의 보상과 대조시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도시 이야기의 주제는 그 범위가 거대하다. 두 도시는 아마도 역사에서 기독교 철학의 제일 첫째가는 그리고 가장 위대한 해설일 것이다. <하나님의 도시>의 두 도시 이야기는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변증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리고 초대교회의 신학적인 작업으로나 최고의 역작이리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도시’는 전 우주를 포함한다. 인간 사회도 우주적인 도시 안에 살고 있음을 말한다. 한 도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안에 있는 도시요, 다른 도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땅의 도시이다. 하나님의 도시는 정의로운 도시지만 땅의 도시는 사악한 도시이다. 전자는 영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도시이지만, 후자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도시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도시에 속한 사회가 있고, 땅의 도시에 속한 사회가 있다고 하고, 사람도 하나님의 도시에 속한 사람이 있고, 땅의 도시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하나님의 도시에 속한 나라의 군주와 신하는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며 신하는 군주께 순종하고, 군주는 신하들을 배려하지만, 땅의 도시에 속한 군주는 정복한 국가를 힘으로 통치하기에, 신하들은 군주의 힘에 눌려 순종을 가장하고, 군주는 힘으로 신하들을 통치한다.    시편 3편 3절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고 했다. 하나님의 도시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지만, 땅의 도시에 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광 가운데 자기의 머리를 드는 자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시의 시민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멸시하지만, 땅의 도시의 시민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멸시한다. 전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힘에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려 한다.    이사야 14장 12절에서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라고 했으나,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3절)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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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8
  • 15일, 한국장로문인회서 시상식
      한국장로문인회(회장=오성건장로·사진)는 오는 15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그레이스홀에서 한국장로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기독교 문학 발전에 유익을 끼친 이들을 치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시상식은 동 단체 창립 24주년을 맞아 진행되며 한국 기독교 문학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친 문인들을 선정, 시와 수필 부문을 나누어 상을 수여한다. 또한 동 단체에서 발간하는 장로문학 제25호 발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시 부분의 박우승장로(남산교회 원로)와 박완신장로(소망교회 원로)가, 수필 부분의 박노황장로(대구남성교회 원로)가 수상한다.   시상식 관계자는 “한국장로문인회가 1996년 창립된 지 24주년을 맞아 23번째 한국장로문학상 시상식과 장로문학 제25호 발간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게 됐다”며,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항상 함께하길 기원하며 많은 이들이 함께하여 자리를 빛내며 기쁨을 나누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장로문인회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한국교회의 성숙을 도모하는 장로 출신 문인들의 활동을 독려하고자 1996년 발족됐다. 초교파적으로 활동 중인 동 단체는 매년 시와 수필 부분의 우수한 기독교 문학 작품을 집필하는 장로 문인들에게 한국장로문학상을 수여하며 기독교 문화의 창달을 꾀하고 장로 문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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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8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6] 땅의 도시의 속성 : 이교도 사상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 제12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윤회설을 거부하고, 제3책에서 이교도 신들에 대한 우상숭배를 공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장한 인간 존재와 인간 역사에 대한 윤회설은 인간이 계속적으로 다른 생물의 형태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윤회설은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이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윤회설을 거부하고, 인간은 시간 안에서 창조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시간과 공간은 인간 존재에 특유한 것이며,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존재하며,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의 시간의 역사를 통해서 펼쳐져 나간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적 역사관은 창조부터 종말적인 심판의 날까지 직선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사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을 펼쳐지게 하는 것이며, 그 설계와 계획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원한 하나님의 도시를 확립하실 것이다. 믿음과 사랑을 가진 모든 축복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지만, 지상의 변화무상한 일들을 사랑한 자들의 종말은 어둠의 도시에서 영원히 비참하게 살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오래전에 로마 사회의 타락상은 이교도 신들이 로마 사회를 바로잡는데 무기력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로마인들의 신들은 사람들이 부패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들이 악을 방지하는데 무기력하고, 오히려 로마의 타락에 기여까지 한 옛 신들을 포기하도록 독려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난을 방지하는데 이교도 신들의 무기력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고대 세계에서 발생한 육체적인 악행에 관심을 돌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특별히 트로이의 함락과 그리스의 파괴를 예로 들었다. 아폴로 신상은 그리스가 로마에 함락되자 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이교도 신들은 재난을 방지하는데 무기력한 증거라고 했다.   아폴로는 제우스 신과 리토우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고대 그리스과 로마 종교와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 중의 하나로서 그리스의 국가적인 신이다.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아폴로 신의 총애를 받았다. 아킬레우스와의 대결 때 헥토르가 불리해지자 헥토르를 보호하기 위해 안개구름을 일으켰으나 결국 헥토르가 죽게 되었다. 아폴로 신이 무기력한 증거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포도주, 다산, 제식의 광란, 종교적 환희, 연극을 주관하는 로마의 술신인 박카스 신과 로마 신화의 농업, 풍요, 결혼의 여신인 케레스 신을 언급하면서, 박카스 신 이외에는 술 한 잔을, 케레스 신 이외에는 빵 한 조각을 받아낼 수 없다면, 이방 신들은 영생을 줄 수 있겠는가고 질문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헌신해야 한다고 했다.   시편 23장 1~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4-2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5] 땅의 도시의 속성 : 이단사상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참회록〉 제7권에서 시리아의 라오디시아에 아폴리나리우스가 주장하는 예수는 신성만 가졌다는 그리스도론인 아폴리나리우스주의와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가 주장하는 예수는 피조된 분으로 인성만 가졌다는 그리스도론인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임을 토로하고 있다.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주장하기를 예수님은 정상적인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영혼은 통례적인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신적인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즉 예수님의 인성은 부정하고 신성만을 인정했다.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381년 이단으로 간주되어 수십 년 후에 사실상 소멸되었다.   니케아 공의회가 325년에 삼위일체설을 공인했으나 분명히 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지니셨다는 공통적인 믿음에 대항하여 나타난 것이 아폴리나리우스주의로서 그리스도는 신성만을 가졌다는 단성론 즉 모노피시티즘을 주장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합리적인 마음은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쉬우며, 기껏해야 불안정한 노력을 할 따름이기 때문에, 예수의 인간성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제거해 버리고, 그 자리에 신적인 로고스로 대치하는 것 이외에는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완벽함과 구속의 영원한 가치를 결코 볼 수 없다고 했다.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정통적인 개신교 등 칼케돈 공의회에 속한 기독교 교파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보았다. 36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지도 아래 있는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에서도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정죄되었다.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도 아폴로나리주의는 이단으로 선포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아리우스주의가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성만을 가졌다는 이론에 거부하여 과도하게 반발한 이론이었다.   아리우스주의는 4세기 초엽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한 시대에 나타난 신학 사상이었다. 그 당시 기독교 국가의 중요한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 아리우스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신학 사상이 아리우스주의이다. 아리우스는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만 계셨지만, 영원한 어느 과거에 아들인 그리스도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의 제일 첫 번째 창조된 자라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라고 했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로마 제국을 통해 기독교인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사도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요한복음 10장 30~33절, 20장 28절, 로마서 9장 5절) 사람(요한일서 4장 2절, 요한이서 1장 7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신적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된 자로서 하나님에게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가 야기시킨 논쟁과 갈등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하여금 325년 5월 25일에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게 했으며, 공의회는 니케아 신조를 발표함과 함께 아리우스와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나 아리우스주의와 같은 이단사상은 땅의 도시의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골로새서 2장 8절은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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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4-17
  • 13일,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신학 강연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오는 13일 동 연구원 방배동 강의실에서 「신학적 동물학 연구」란 주제로 강의를 열고, 동물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강연은 인간 중심의 세계 인식과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창조세계 속 생명 가치의 중요성을 조명하기 위해 준비됐다.   이날 강연은 구자용교수(주안대)가 나서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기독교적 인식론의 세계 동향을 소개하고 개발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제시할 방침이다.   강연 관계자는 “요즈음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척 크고 강하다.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성찰도 활발하다”며, “이런 배경에서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동물 또한 가족의 일원이자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세계 교회 곳곳에선 ‘야웨는 동물의 주’인지 묻는 질문이 늘고 있다”며, “우리 인간의 주님으로 고백되어 왔던 야웨가 동물의 주인지 묻는,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탐구하는 작업을 위해 이번 강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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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부활절 아침에]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 소강석
          ◇ 정재규목사의 「승리의 부활」   부러진 갈대를 다시 싸매시며   꺼져버린 등불을 다시 켜시는 분이시여  코로나19의 세찬 바람에 갈대들의 신음소리가 아우성치고  거친 눈보라에 등불마저 깜박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죽음의 산을 넘어서  부활의 새벽은 어김없이 가슴 시린 여명으로 밝아오고 있나니 검은 먹구름 사이를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부활의 빛이여  어둠이 쌓인 대지를 관통하며 아침을 밝히는 생명의 수레여  이제 조국의 새벽하늘에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리는   생명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여라 조국을 짓누르는 죽음과 절망의 암흑 별들마저 눈을 뜨지 못하는 이 짙은 어둠 속에  부활의 찬란한 승리로 민족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생명과 평화의 아침이 밝아오게 하여라 부활의 주, 사망을 이기신 찬란한 생명의 빛이여 이 민족의 역사의 지평 위에 부활과 소망의 아침을 주소서 거친 숨결, 젖은 눈동자, 뜨거운 땀방울로 옷깃을 적시는  부활의 제단위에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 오게 하소서 이제 순백의 백성, 한민족 제단위에  부활과 생명의 향유를 부어주소서 한국교회여, 이 시대 부활의 증인들이여 한반도의 광야위에 짙게 드리운 비운의 밤이 물러나고  부활의 아침을 알리는 생명의 심포니가 울리게 하여라 부활의 주여,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박살내고  부활과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붉은 새벽이 밝아오게 하소서 아직도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허의 밤  삶이 아무리 아파도  상한 갈대가 꽃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부러진 갈대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떠오르게 하소서 꺼져가는 등불이 아침의 태양으로 밝아오게 하시고 부활의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한 4월의 봄이 되게 하소서. /새에덴교회 목사·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4-09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3] 초상화가의 걸작과 죽임 당함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사무엘하 14장 25절에서 압살롬의 제일 아름다운 것이 그의 머리털이라고 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 밑으로 달려갈 때, 그의 아름다운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그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고,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이 죽임당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아일랜드 시인이며 런던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초상화가 바질 홀워드는 비범한 미모의 도리언 그레이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초상화가는 자신의 예술의 극치요 아름다움의 절정인 모델 도리언 그레이로부터 죽임당하는 비극적인 실상을 기술하고 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의 초상화를 세워놓고, 그 초상화 앞에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이 앉아서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미모에 매혹되었으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바질의 걸작품이었다. 바질 홀워드는 친구인 헨리경에게 말했다. “브렌드 부인 집에서 열린 어느 환영회에 갔었네. 그때 처음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보게 되었지. 그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의 온 영혼과 바로 내 예술마저도 모조리 다 빨아들일 것 같았어. 지금 나에겐 그 젊은 친구가 내 예술의 전부야. 도리언의 초상화는 내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지. 그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나에게는 소년의 모습인 도리언. 아! 낭만적 정신의 그 모든 열정, 영혼과 육체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지. 내가 살아있는 한 도리언 그레이의 개성이 나를 지배하게 될 거야”   도리언도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그의 뺨에는 기쁨에 겨운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홀에 겨워 꼼짝 않고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나르시스적 감정으로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하는 17세의 여배우 시빌 베인의 뛰어난 미모와 찬란한 연기에 마음이 빼앗겨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결혼하자고 했다. 여배우 시빌 베인도 도리언의 사랑의 고백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시빌의 연기가 수준미달이 되자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하고는 시빌을 버리고 떠나가 버림으로써 시빌을 자살하게 했다.   초상화가 바질이 도리언을 찾아와서, “여배우 시빌 베인은 어느 더러운 방구석에 죽어 누워 있는데, 자내는 오페라 극장에 갔단 말이지? 런던에서 자네를 비난하는 끔찍한 험담들을 자네가 알아야 하네. 난 자네한테 설교 좀 하고 싶네.” 도리언의 입술에서 조롱하듯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라오세요. 당신의 손으로 직접 그린 초상화를 보세요. 못 볼 이유가 없잖습니까?”   바질은 자신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자 기겁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초상화는 추악하고 역겹고 혐오감에 차 있었다. 반인 반수의 얼굴이었다. 악마의 눈이었다. 도리언의 나르시스적인 행동이 초상화에 표출되고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제 영혼의 얼굴입니다”라고 했다.   도리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초상화가 바질은 “기도해, 도리언.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우리의 죄를 용사 하소서!”라고 하자, 도리언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서 초상화가의 귀 뒤 큰 혈관을 찔렀다. 그의 머리를 테이블 위에 처박으면서 찌르고 또 찔렀다. 바질은 자신이 그렇게도 미의 극치요 예술의 최고봉으로 자랑하든 자신의 모델에 의해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도리언은 자기의 초상화를 칼로 찔렀다. 마태복음 26:41에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4-02
  •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 수상
      하나님의 섭리 속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형상화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을 모색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김영진시인·사진)는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에게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서울 왕십리에 소재한 대중음식점 토성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사태로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   이번 심사위원회(위원장=최규창시인)는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의 제10시집 〈말머리 곡선의 기류〉를 선정하고, 지난 1월 21일에 동 협회 제54회 총회와 함께 시상식을 갖기로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총회는 서면총회로 대치하고, 시상식은 이번에 15명의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김석림상임이사의 사회와 이춘원부이사장의 기도, 김영진이사장의 인사말, 최규창위원장의 심사소감, 시상식, 최은하증경이사장의 축사 등 순서로 진행했다. 최위원장은 심사소감에서 “노유섭의 수상시집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간과 자연을 서정적인 정서로 형상화했다”면서, “그의 시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개인 차원에서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의 관점에서 하루의 삶이 일생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기심을 떠난 사랑에 바탕한 삶의 살아야 한다고 알고 글도 그리 쓰고 있다”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추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유섭수상자는 1990년 〈우리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풀잎은 살아서〉를 비롯한 〈희망의 실타래를 풀고〉, 〈유리바다에 내리는 눈나라〉, 〈원으로 가는 길〉 등 10권과 소설집 〈원숭이의 슬픔〉 등을 펴냈다. 한국현대시인상과 계간문예문학상, 관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신재문학평론가는 “노유섭시인이 찾아낸 숭고는 바로 생명의식이다. 이는 1990년대 생태시의 경향에서 한걸음 발전한 것으로서 개체의 존엄함을 발견하고 관계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면서, “시인은 이를 위해 소외 계층이나 부랑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가진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하면서 개체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관계 설정의 새로움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질의 승화를 모색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김규화시인은 “그는 ‘언어’를 현대의 과학이나 문명에 두는 것보다는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에 두고 있다. 그의 언어는 그래서 지성보다는 정서 쪽에 가깝다. 그는 그 정서를 객관화하지 않고 화자인 ‘나’가 주체가 되어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해 냄으로써 독자에게 한없는 위로와 감미로움을 준다”면서, “그의 ‘언어’는 한마디로 햇살처럼 따스하고 이슬처럼 영롱하다”고 평가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4-0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끝] ‘행복한 삶’을 추구 - 이춘원의 「꽃길」
      어제는 하얗게 핀 벚꽃 숲을 거닐면서/하늘을 보았습니다/하늘이 온통 꽃밭입니다/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사이로 보이는/푸르러 아름다운 하늘/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참 행복합니다//어젯밤, 비바람 불더니/세상이 변하였습니다/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몇 잎 남은 꽃잎이/하늘하늘 춤추며 이 땅에 내려오니//오늘은, 산길이 온통 축복의 노래입니다/연분홍 꽃비단 펼쳐두고/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입니다/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은/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의 떨림입니다/참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 「꽃길·1」의 전문     이춘원의 시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갖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 삶은 은유적인 표현인 ‘꽃길의 삶’으로 소망한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꽃길의 삶‘이란 아름답고 향기있는 삶일 수밖에 없다. 꽃길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다. 삶 자체가 고난과 역경이 없기 때문에 꽃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지닌 삶을 의미한다. 또한 웃음과 기쁨이 있고, 소망을 지닌 행복한 삶이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꽃잎이 떨어진 산길을 꽃길로 형상화하고, 인생의 꽃길로 전개시켰다. 첫 연에서 어제 벚꽃 숲을 거닐면서 보았던 하늘이 온통 꽃밭이었고, 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꽃길이고 인생의 꽃길로 인식했기 때문에 “참 행복합니다”고 고백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비바람이 불더니, 꽃잎이 땅에 떨어졌다. 꽃잎이 떨어지니 세상이 변한 것이다. 꽃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떨어지는 꽃잎을 “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나 “하늘하늘 춤추며”란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꽃잎이 지닌 아름다움을 통한 우리의 삶으로 치환(置換)시켜 행복한 삶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연은 꽃잎이 떨어진 산길은 “축복의 노래”이고, “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이며, “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로 “한 걸음 한 걸음 감동의 떨림”이다. 이러한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기 때문에 “참 아름다운 선물”로 받아 들인다. 이 “축복의 노래”나 “고운 마음”,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나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선물” 등은 기독교적인 신앙이 작용한 삶으로 비롯된 현상이다.   이러한 시작(詩作)태도는 이춘원이 지닌 심성(心性)에서 비롯된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나 「천상화를 마주 보며」란 시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는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란 시에서 “하얀/너무도 순결한 마음/활짝 열어 버리고 싶은”이란 구절에서 피어있는 목련꽃을 ‘순결한 마음’으로 인식한 시각과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이 평소에 어떤 생각이나 고뇌했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고, 시의 구성이나 시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원은 1997년 〈순수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인 〈가지에 걸린 하얀 달빛〉(순수문학 펴냄, 1998년)을 비롯한 〈굴뚝새〉, 〈그리움자리〉, 〈푸른 촛대 산길을 밝혀〉, 〈풀꽃시계〉, 〈해바라기〉, 〈꽃길〉 등 10권의 시집, 그리고 산문집인 〈바람 속에 우는 하프〉를 펴낸 중진시인이다.    또한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부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그의 시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인 주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잠언적인 의미를 지닌 일깨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태로 삶의 애환을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신앙이 제시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2-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6]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의 성경」
      지금 내가 읽고 있는/이 책은/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성경이다./이 두툼한 성경을/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그 책이다./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이 두툼한 성경을/두 손으로 모아잡고/아들을 위하여/축복해 주시고/하나님께 간구하시던/그 책이다./붉은 연필로/언더라인을 그으시며/80평생을/의지해 사시던/그 책이다./지금 내가 읽는/성구마다/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어머니의 신앙이/증명해 주시고/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어머니의 성경/어머니의 기도로써/내가 받은 축복/어머니의 기도로써/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읽으면서/자식들을 위하여/주님께 축복을 간구한다./만일 내가 이 성경을/자식들을 위하여/유물로 남기면/우리 집안의 기도는/3대로 이어질 것이다./주여/긍휼이 여기소서/주여/구원하여 주옵소서./주여/축복하여 주옵소서. - 「어머니의 성경」의 전문 이 「어머니의 성경」 은 〈크고 부드러운 손〉에 수록된 시이다. 박목월은 ‘어머니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어머니의 성경’에 집약된 ‘어머니의 신앙’은 시간을 초월해 ‘어머니’라는 의미 속에서 확대시켰다. 이 시는 신앙 속에 살으셨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머니의 기도와 축복을 3대로 이어질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는 5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가 대부분 짧은 행으로 구성되어 간결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시는 한 주제를 장시(長詩)에 가까운 기법을 활용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단순히 리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신앙’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특히 오늘의 신앙은 어머니로부터 이어온 것을 강조하는 의미구조이다. 또한 어머니가 삶의 전체임을 은연중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이 시의 전개양상은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를 확대시키는 데에 있다. ‘오늘’ 즉 ‘지금’의 시간성이 ‘어머니의 신앙’을 이끌어내고, 그 신앙의 유산을 형상화했다. 이 시의 구성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행에서 30행까지로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와 신앙의 삶을 표현했다. 1행에서 4행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임을 강조했다. 5행에서 9행은 어머니가 사경회와 부흥회를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은 성경이다.   10행에서 13행인 “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는 성경에 의지한 어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14행에서 19행까지는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고 간구한 성경이다. 그리고 20행에서 23행은 어머니가 80평생을 의지해 살아온 성경이며, 24행부터 30행까지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과 ‘신앙’, ‘축복’이 깃들어 있는 성경임을 강조했다.   후반부인 31행부터 마지막 행까지는 어머니의 신앙, 즉 그 기도의 축복과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31행에서 39행까지는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결과로 ‘축복’과 ‘은총’을 이어 받아 3대인 자식의 축복을 위해 소망한다.   40행에서 44행은 어머니의 성경을 자식 위해 유물로 남기면, 그 신앙은 3대로 이어질 것을 단언했다. 그리고 45행에서 50행까지를 통해 시인은 이러한 어머니께서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신앙을 긍휼히 여기고,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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