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3(금)

출판/문화/여성
Home >  출판/문화/여성  >  문학

실시간뉴스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4-06-25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4-06-21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6-24

실시간 문학 기사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1] 사랑의 실천위한 희생정신 - 황금찬의 「촛불」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 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 「촛불」 의 전문 황금찬(黃錦燦)의 「촛불」은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수한 사랑의 실천이 희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시이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몸을 태우는 촛불의 희생으로, 누구나가 밝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촛불의 희생은 순수한 사랑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떠올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촛불의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자신의 몸을 드렸다는 데에 일치하고 있다.  이 시는 촛불, 그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기독교정신의 시각에서 형상화했다. 촛불의 생명은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데에 있다. 즉 촛불의 생명, 산다는 것은 생명의 연소이며, 그 연소가 순수하고 온전한 것일수록 아름다운 희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사상에서 비롯된 형상화의 결과이다. 특히 촛불의 존재, 그 생명의 가치성을 통해 사랑의 실천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제1연은 촛불의 존재,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제3연은 촛불의 운명,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형상화했다. 제1연은 촛불의 ‘시작’과 ‘종말’을 노래하고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은 촛불의 탄생이며 출발이다. 그것은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해/출발하는 것이다”고 생명성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즉 촛불의 생명은 심지에 불을 붙이면 시작되고, 그 생명은 종말인 죽음을 향해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즉 책임과 역할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밝음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촛불의 희생에서 연유한다. “어두움을 밀어내는/그 연약한 저항”은, “누구의 정신을 배운/조용한 희생일까”라고 물음을 던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조용한 희생정신을 배운 촛불의 희생을 극대화시켰다. 이 시에서 ‘누구’로 지칭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촛불의 희생은 조용한 희생이며, 그 조용한 희생은 댓가 없는 희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과 일치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3연은 촛불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초 한자루의 한정된 생애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인 것이다. 이러한 촛불의 생애를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고 단정하고 있다. 촛불의 운명, 즉 “존재할 때/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을/모르고 있어”라고 일깨워 준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 정신은 희생이다. 촛불의 운명인 “한정된 시간”을 지니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주기 위해 “불태워 가도/슬퍼하지 않고”라고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춤추는 촛불-.”은 촛불의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촛불의 ‘한정된 시간’인 ‘순간’을 아름다운 꽃으로 향유하는 삶이다. 그 삶은 아름다운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 시는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떠올리고, 순수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촛불은 성서적으로 희생의 제물이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렸던 것처럼, 촛불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밝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0] 하나님이 주시는 위안과 소망 - 김찬양의 「보이는 길
      눈물날 때 하늘 보면 바람 길 보이고 볼을 비비며 다가와서 하늘소식 전해요 기다리고 참고 있으면 무지개가 길되어 꿈망울을 가득 싣고 다가오지요 기쁠 때에 하늘 보면 분홍 길 보이고 다웃지 못한 함박 웃음 뭉개구름 되어요 몽실 몽실 기쁜 꽃망울 휘파람 소리되어 가슴마다 소망의 빛 비춰주어요 - 「보이는 길」 의 전문 김찬양의 동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특징을 지닌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모습을 지향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 위안과 희망,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어린이다운 마음의 상태에서 관찰하고, 포착한 동심의 세계를 시적 표현 속에 담아내는 것도, 그의 독특한 시적 발상이다. 「보이는 길」은 ‘하늘’이 주는 소망의 길을 형상화했다. 예부터 지금까지 ‘하늘’은 신앙의 대상이었다. 하늘은 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향해 빌었다.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고, 가을에 풍년이 들면 감사의 풍년제를 지냈다. 그리고 가정마다 문제가 생기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하늘을 향해 모든 문제를 아뢰고, 위안과 소망의 응답을 간구했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의 행위였다. 하늘에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초월할 수 있는 신이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은 상징적이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될 수도 있고,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일 수도 있다. ‘하늘 보면’은 기도의 행위이다. 하늘을 보면 ‘보이는 길’이 있다. 기독교 신앙인들만이 볼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한마디로 집약하면, ‘구원’의 길이다. 그래서 ‘하늘 보면’이란 행위의 그 자체는,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슬플 때나 기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인의 삶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슬플 때나 기쁠 때에 위안과 소망을 준다. 화자는 눈물 날 때와 기쁠 때에 하늘 향해 기도한다. ‘눈물이 날때’와 ‘기쁠 때’의 기도의 모습에서 응답되는 상황을 전개했다. 눈물이 날 때, 즉 슬플 때에 하늘을 보면 바람의 길이 보인다. 그 바람의 길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해 온다. 그 눈물을 참고 견디면 무지개가 길이 되어 꿈을 가득 담아준다. 그것은 희망과 소망이다. 그리고 기쁠 때에 하늘을 보면 분홍의 길이 보이고, 다 웃지 못한 웃음이 뭉게구름이 된다. 그 뭉게구름은 기쁜 꽃망울과 휘파람소리가 되어 소망의 빛이 된다. ‘하늘소식’과 ‘무지개’, ‘꿈망울’과 ‘분홍길’, ‘함박웃음’과 ‘꽃망울’ 등이 위안과 소망을 가득 담아주는 이미지이다. ‘눈물 날 때’와 ‘기쁠 때’는 인간의 삶이다. 누구나가 이러한 일상사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기도생활로 극복한다. 눈물 날때는 간구의 기도를 하고, 기쁠 때도 감사의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 위안과 소망,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찬양의 시는 오늘의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되찾아 준다. 그의 시에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갖가지 나무와 꽃, 사물들이 등장하고, 그 자연물과 생활의 소재가 되어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러한 그의 시들은 정형시로의 묘미를 통해 적절한 음악의 노랫말이 되기도 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자연 친화성도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또한 눈에 보이듯, 손으로 만져지듯, 지금 여기 앞에 서 있듯이, 생생하게 표현해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18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9]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 소강석의 「눈물·1」
      아직도 멈추지 않는 두 볼에 흐르는 눈물 당신과의 추억, 사랑, 기다림 홀로 기다리던 지상의 시간이 홀로 정원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쓸쓸하고 고독하였을지라도 당신을 가슴에 새긴 사랑이었다면 당신을 가슴에 품은 기다림이었다면 아픔과 고통을 넘어 슬픔의 파도를 지나 어렴풋이 보이는 희망의 수평선입니다 눈물은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되어 당신께 날아갈 수만 있다면 이 밤 한 송이 분꽃이 되어 당신 가슴에 흩날리고 싶어요                - 「눈물·1」 의 전문 눈물은 슬픔이나 고통에 연유한다. 대부분 정신적인 감동이나 자극에 의해 비롯된다. 눈물을 흘린다는 그 자체는 진실된 표정의 행위로 간주한다. 이 세상 어느 곳도 눈물없는 곳은 없다. 또 눈물을 한번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누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눈물에 대한 기독교적 이미지는 참회의 모습을 떠올린다. 잘못에 대한 뉘우침, 즉 죄를 뉘우쳐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것은 참회의 기도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참회는 눈물없이 고백할 수 없다. 눈물이 없는 참회는 거짓된 행위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의 「눈물·1」은, 눈물을 ‘추억의 눈물’과 ‘사랑의 눈물’, 그리고 ‘기다림의 눈물’로 형상화한다. 눈물이 지닌 정신적 충동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랑과 기다림으로 승화시켰다. 눈물을 통해 끝없는 사랑과 고독한 기다림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추억이나 사랑, 그리고 기다림은 눈물의 상승작용을 통해 눈물에 대한 가치성과 생명력을 확대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랑과 기다림의 절정은 눈물로 나타난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추억이나 깊은 사랑으로 인한 눈물, 그리고 멈추지 않는 눈물 속에서의 기다림은 최상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 시의 첫 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눈물을 통해 획득한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을 확대시킨다. “아직도 멈추지 않는/두 볼에 흐르는 눈물”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다. ‘아직도’는 지금도 감격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과거인 어제의 ‘추억’과 현재인 오늘의 ‘사랑’, 그리고 미래인 내일의 ‘기다림’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는 눈물로 계속 진행되고,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으로 지속된다. 제2연부터 4연까지는 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홀로 지내고 고독한 삶이 제2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홀로 기다리던/지상의 시간이”나, “쓸쓸하고 고독하였을지라도”는 화자의 지나온 삶에 대한 표현이며, 고독한 기다림의 절정을 승화시킨 구절이다. 제3연이나 4연도 기다림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가슴에 새긴 사랑이나 가슴에 품은 기다림은, ‘사랑’과 ‘기다림’의 지순하고 영원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기다림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지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희망의 수평선’으로 어렴풋이 보인다고 고백한다. 마지막 연은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의 눈물이 확산되고 있다. 눈물에는 추억과 사랑, 기다림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상승작용을 통해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된다. 또한 분꽃이 되어 주님께로 가고 싶다는 그리움이다. 깊은 밤에 눈물이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되어 한 송이 분꽃으로의 염원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러한 이 시는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기다림의 그리움을 승화시켰다. 눈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신앙적인 삶을 노래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이 그대로 표현한 신앙고백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10
  • 문화선교연구원서 문화성경학교
    ▲ 문화선교연구원은 영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원장=백광훈목사)는 지난 6일 신촌 필름포럼(대표=성 현목사)에서 「해설이 있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란 주제로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를 열고, 기독교 고전문학을 통한 신앙교육의 장을 열었다. 이번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는 8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며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영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를 통해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 문화로 신앙심을 키우는 시간을 갖는다. 성경학교 관계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기독교 고전인 〈천로역정〉이 애니메이션 영화〈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며, “영화는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을 토대로 희망도, 기쁨도, 자비도 없는 멸망도시의 국경을 넘어서 천국도시를 찾아서 떠나는 크리스천의 이야기를 담았다. 율법언덕, 세속의 숲, 절망의 성, 허영시장, 죽음의 골짜기 등 진리를 향한 신앙인의 험난한 여정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볼거리와 의미 모두 잡았다”고 전했다. 이어 “필름포럼에서 상영하는 〈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를 감상하고 준비된 영화가 모두 끝난 후에는 문화선교연구원 소속 전문가의 영화 해설을 통해 〈천로역정〉이 전해주는 신앙인을 향한 은혜와 진리,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어린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며, “성경학교가 끝난 후 영화를 가지고 신앙적인 교육을 통한 영화나눔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자 〈무비톡가이드〉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성경학교를 통해 〈천로역정〉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많은 이들을 들을 수 있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10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8] 순수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 -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
      그대의 눈빛 익히며  만남이 익숙해져  이제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이 거리에서  나,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에 젖어드는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와  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대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우리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우리 사랑의 배를 탔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의 전문 용혜원의 시 속에 승화된 사랑은 지란지교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지초와 난초같은 향기로운 사귐의 사랑, 그리고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의 사랑에 대한 향기이다. 우리 모두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의 시들은 절망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다리를 놓고, 사랑의 꽃이 피어난 마을을 향한 동행의 노래이다. 깊은 산 속의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고 청순한 목소리로 사랑의 관계를 만든다. 사랑의 마음이 샘솟도록 용기를 주고,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로 그리운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일깨운다. 용혜원은 ‘사랑의 시인’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의 고뇌와 그리움을 노래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열정과 그리움으로 성숙한 사랑에 이른다. 그 사랑의 대상은 ‘그대’이며, ‘당신’이다. 그대나 당신은 누구나가 정겹고 사랑스럽게 일컫는 대상이다. 화자인 나의 그대이며, 나의 당신이다. 화자인 ‘나’를 우리 모두의 사랑으로 객관화시키는 것도, 깊은 감동의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승화시켰다. 아름다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추구했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란 맑고 순수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1연은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관계를 고백한다. 그것은 그대와의 만남으로 사랑에 대한 눈빛을 익히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에 대한 관계를 구체화했다. 제2연과 3연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고백한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거리에서도,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음을 실토한다. 그리고 3연에서는 함께 있으면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워 마음이 따뜻함을 고백한다. 1연과 같이 깊은 사랑의 관계를 구체화했다. 제4연은 무르익어 가는 사랑의 바람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믿음을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대는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다는 바람이다. 제5연은 사랑의 만남으로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다. 사랑하기 위해 온갖 말잔치나 꾸밈의 어떤 계산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다는 사랑의 관계를 승화시켰다. 마지막 연은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사랑의 배’에 승선했음을 단정한다. 이 지상에서의 삶, 즉 동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의 바다를 향해 떠나고 싶은 소망이다. 이러한 이 시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와 의미를 일깨워 준다. 사랑의 길 위에서 성숙한 사랑에 이르는 관계를 보여 준다. 한 폭의 수채화로 그린 아름다운 사랑의 풍경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02
  • 기독인문학연구원서 도서세미나
    ▲ 기독인문학연구원은 엔도 슈사쿠의 저서를 통해 서구에서 수입된 종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교인 개인이 이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양적 관점 접근통한 그리스도와 기독교 이해를 조명 “그의 문학은 일본인으로서 울수 있는 예수를 그려낸다”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지난달 24일 역삼동 크리스찬살롱에서 「사해 부근에서 ; 예수의 흔적을 좇아서」란 주제로 도서 세미나를 열고, 일본 기독교 작가인 엔도 슈사쿠의 신앙관과 내적 고민을 조명했다. 이날 세미나는 김승철교수(난잔대)가 엔도 슈사쿠의 저서 〈사해 부근에서〉를 가지고 엔도의 문학관과 신앙적 정체성, 그가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관해 강의했다. 김교수는 “엔도 슈사쿠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인간의 깊은 곳에 무엇이 있고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지, 발견한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인간이란 무엇이고 내면에서 만나게 되는 궁극적인 실존인 하나님이 누구인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풀어나갔다”고 전했다. 또한 “그의 소설 속에는 미츠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반대로 읽으면 일본어로 죄를 뜻하는 ‘츠미’가 된다”며, “엔도는 독자가 자신의 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로서 여성의 삶과 모습을 수려하게 꾸몄다”고 말했다. 엔도 슈사쿠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통해 가쿠레키리시탄 박해를 조명했다고 밝힌 김교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총을 수입하고자 서구 문명과 관계를 맺었는데 이후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밀까 걱정하면서 키리시탄을 탄압하게 된다”며, “당대 많은 키리시탄들은 막부의 지독한 박해를 피하고자 살아있는 동안 매해 예수가 그려진 나무판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엔도는 그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신앙을 저버린 이들을 용서하셨는지 물으며 전국시대 소설을 지었다”며, “관원들의 감시가 소홀해 키리시탄이 많이 숨어살던 나가사키에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건립된 것은 평소 그가 지녔던 문학관을 반영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신앙의 자각을 지니지 않는 상태에서 세례를 받았던 엔도는 평생 자신에게 신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했다고 역설한 김교수는 “엔도는 자신이 받은 세례를 비자발적 세례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으며, 이러한 고민은 이러한 고민은 〈사해 부근에서〉의 주인공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며, “그는 필생 과제로서 결단 없이 받아들인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과 더불어 일본인인 자신에게 서양의 기독교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숙고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엔도는 서양 종교인 기독교를 믿고는 있지만, 동양인인 자신의 정체성으로 맞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벗을 수 없는 기성복으로 이를 표현한 엔도는 자신의 몸에 맞는 옷으로 옷을 수선하듯 일본인인 자신에게 맞는 예수의 모습을 찾고자 고심했다”며, “전통과 교리에서 가르치는 예수가 아니라 자신만의 예수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엔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끝으로 김교수는 “예수를 찾고자 이스라엘을 찾아간 주인공 ‘나’의 모습은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이를 위해 대신 목숨을 내놓은 코바르스키 신부의 흔적을 좇는 일과 오버랩된다”며, “작품은 ‘내’가 예수를 좇는 것이지만, 예수께서 내 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흔적을 좇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엔도 슈사쿠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찾고자 나아가지만, 그 여정은 예수 자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찾아오셨던 발자취가 아니었는가 하는 역설을 이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고 마무리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7-0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7] 하나님과 혼연일체된 신앙의 삶 - 김순권의 「금을 긋습니다」
      점, 점, 점을 놓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호흡으로   이어지는 은총입니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따사로운 햇살로 비추이는  꿈속에서도 그리움으로  사랑을 닮게 만드는 축복입니다. 이제는 세초부터 세말까지 새로 놓는 이 점과 선으로 내가 당신께로 당신이 내게로 오고 가는 금을 긋습니다.  멍드는 가슴일랑  보드라운 그 손으로 쓰다듬기를 고동치는 점으로 피가 돌게 다독거립니다. 무거운 짐으로 힘겨워 어깨가 눌려 지칠 땐 당신께로 향하는 기도로 희망이 솟구칠 선을 긋습니다.                           - 「금을 긋습니다」 의  전문 이 시는 온전한 ‘신앙의 삶’을 승화시킨 노래이다. 화자인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신앙적인 삶으로 연결된다. 바른 신앙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혼연일체가 되는 삶을 영위한다. 그것은 온전한 신앙의 삶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금’과 ‘점’, 그리고 ‘선’이란 명사를 시어로 사용한다. 화자의 ‘신앙의 삶’을 ‘금’과 ‘점’, 그리고 ‘선’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금’은 ‘선’이다. ‘금’은 긋거나 접거나 한 자리로, 한계선을 정할 때에 사용된다. ‘선’은 수학에서 ‘점’의 이동에 따라 생기는 도형이다. 여러 개의 ‘점’이 이어져 ‘금’이 그어지고 ‘선’을 만든다. 그래서 그 ‘금’은 화자가 하나님을 연결하는 ‘선’이다.  이 시의 제목인 「금을 긋습니다」는  화자의 분명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분적인 상황의 삶 속에서 신앙의 삶을 선택한 결과로 표현했다. ‘긋습니다’란 결단의 의지로 한계선을 그은 것을 의미한다. 즉 세상적인 삶이 아닌 신앙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선언한 표시이다. 첫 연은 이 시를 구성하는 ‘점’과 ‘선’을 구체화한다. 1행인 “점, 점, 점을 놓으면서”는 선이 되는 과정이다. 2행과 3행인 “하나씩 하나씩 호흡으로 / 이어지는 은총입니다”란 구절은 선을 형상화했다. “하나씩 하나씩 호흡으로”도 점의 연속이고, 점이 선으로 연결된 “이어지는 은총입니다”고 표현되었다. 제2연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여러 개의 점이 이어져 선으로 관계된 하나님은,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따사로운 햇살로 비추이는” 관계로 발전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는 ‘사랑’이나, ‘은총’, 그리고 ‘축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꿈속에서도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3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시켜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새해 첫 날부터 한 해의 마지막인 섣달그믐까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켜 가고 있다. “새로 놓은 이 점과 선”은 어제가 아닌 오늘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매일 새로워지는 신앙의 삶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했다. 그 관계는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제4연은 화자의 삶 속에서의 하나님 사랑에 대한 섭리를 형상화했다. “멍드는 가슴일랑”이란 구절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상처를 함축시켰다. ‘멍드는’이란 시어는 ‘멍들다’의 자동사로 타의에 의해 깊은 상처를 지닌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드라운 그 손’은 하나님의 손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표현했다. 일상의 삶 속에서의 힘겨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의지하고 있다. ‘무거운 짐’이나 ‘힘겨워’, 그리고 ‘어깨가 눌려 지칠 땐’은 일상의 삶에 대한 모습이다. 그 삶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삶이며, 희망의 삶이 된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6-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6] 맑고 순수한 기도생활의 삶 - 유혜목의 「어느 빛으로 눈부신 가슴이기에」
      어느 빛으로 눈부신 가슴이기에  새벽을 열고 어둠을 밀고  그 빛 앞에 자꾸 앉게 되는가  어느 빛으로 설레는 이 마음이기에  더 이상 잠 못 이루고  새벽 창 앞에 무릎꿇게 되는가  어느 빛 어느 사랑 기대하는  고픈 이 마음이기에  그 일렁이는 빛의 풀밭에  나를 훑는가  나를 쏟는가   - 「어느 빛으로 눈부신 가슴이기에」의 전문 이 시는 유혜목의 〈어느 빛으로 눈부신 가슴이기에〉(시문학사 펴냄·2011년)란 시집의 표제시이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세련되고 절제된 시어로 맑고 순수한 기도생활의 삶을 승화시켰다. 신앙인의 삶 중에서도 기도생활은 기본이다. 기도는 어떤 목적에 의한 자의적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스스럼없이 행해져야 한다. 신앙의 생활화로 비롯될 수 있다. 신앙인의 생활화로 신앙이 육화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기도의 모습이다. ‘눈부신 가슴’이나 ‘설레는 이 마음’, 그리고 ‘고픈 이 마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앉게 되고 무릎을 꿇어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새벽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각 연의 첫 행에 ‘어느 빛’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집약해 표현했다. ‘어느’란 지칭을 ‘하나님’으로 표현했다면, 시적 깊이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랜 시작경험과 고뇌에서 얻어내는 결과이다. 또한 첫 연은 하나님 앞에 앉게 되고, 둘째연은 무릎을 꿇게 되고, 셋째 연은 화자의 모든 것을 아뢰인다. 새벽기도의 과정을 시적 재치로 형상화했다. 첫 연은 신앙의 생활화로 순종하는 삶을 보여준다. ‘눈부신 가슴’은 이미 하나님께로 경도되어 순종의 삶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녘에 하나님 앞에 앉게 된다. 그것도 ‘자꾸’란 표현이 주는 것은, 생활화된 삶임을 암시한다. 새벽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연은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에 설레이는 마음임을 고백한다. 그래서 잠을 못 이루고 새벽녘에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게 된다. 전형적인 신앙인의 모습이다. 셋째 연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축복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아뢰고, 그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이다. ‘기대’나 ‘고픈’이란 시어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 일렁이는 빛의 풀밭에”란 구절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함축해 표현했다. 또한 “나를 훑는가”나 “나를 쏟는가”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훑어 내기도 하고, 쏟아 내놓는다는 의미이다. 훑는 거나 쏟는 것은 벌거벗듯이 회개와 감사, 그리고 소망까지도 아뢰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하나님 앞에 요구사항보다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회개에 비중을 두고 있다. 회개를 통해 신앙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의 자세는 기도의 본질인 순수성을 그대로 표현했다. 특히 “그 빛 앞에 자꾸 앉게 되는가”나, “새벽 창 앞에 무릎 꿇게 되는가” 그리고 “나를 훑는가”나 “나를 쏟는가”란 구절은, 시적 구성의 상승작용을 통한 화자의 신앙에 대한 척도이다. 자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신앙적인 삶의 순수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가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이 시는 화자의 새벽기도에 대한 과정을 형상화했다. 새벽기도는 신앙인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은,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온전한 신앙의 생활화로 순수한 삶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화자의 신앙적인 삶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6-21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5] 물소리를 ‘가슴의 기도’로 승화 - 유승우의 「물소리」
      맑은 물일수록 잠들지 못하고  한 밤내 맑게 눈뜨고 운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산 속의 냇물은  더욱 목청을 돋구어 소리친다.  아무런 바램도 없이  소리로만 살아서  밤새도록 흐느끼는  가슴의 기도.  나뭇잎들이 모두 경건히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어 숨을 죽인다.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가 되어  다 듣고 있다.              - 「물소리」 의 전문 유승우의 기독교시 대부분은 참신한 비유와 상징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구태의연한 관념적 용어의 나열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이미지들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얗다’는 색채어는 순수 지향애의 꿈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하얀 모래섬’과 ‘흰 돛배’, 그리고 ‘귀가 밝구나’나 ‘맑디맑은 별들’ 등 순수의 세계에 집착하여 형상화했다. 이 「물소리」란 시는 ‘물소리’를 통해 ‘기도소리’를 듣는다. 즉 ‘물소리’는 ‘기도소리’이다. 물소리가 지닌 이미지는 맑은 소리이기 때문에 기도소리로 대치할 수 있다. ‘기도소리’도 구분한다면 ‘맑은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승우의 기독교시는 기독교가 지닌 이미지를 비유와 상징의 체계로 형상화했다. 1행부터 3행까지는 자연의 현상이지만, 시적 의미를 부여했다. 밤이 깊을 수록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낮의 소음도 밤이 깊을 수록 잠들고, 지저귀던 새도 잠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에는 물소리, 그 자체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깊은 밤에 ‘맑은 물’은 잠들지 못하고, 한 밤내 맑게 눈뜨고 운다. 그것은 ‘맑은 물’이란 이미지에서 비롯 되었다. 그리고 ‘눈뜨고 운다’는 것도 ‘맑은 물’이 주는 이미지이다. ‘맑은 물’이 ‘잠들지 못하고’나, ‘맑게 눈뜨고 운다‘는 것은 의인화의 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4행부터 6행까지도 자연의 현상을 바탕에 두고, 시적 상승작용으로 끌어올린다. 이 구절은 적막강산을 떠올린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산 속의 냇물소리는 크게 들릴 수 밖에 없다. 밤이 깊어 갈수록 새소리 등 잡다한 소음은 없어지고, 냇물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현상인 ‘냇물소리’를 ‘더욱 목청을 돋구어 소리친다’고 의인화했다. 7행부터 10행까지는 이 시의 중심이 된 부분이다. ‘물소리’가 ‘가슴의 기도’로 대치된다. ‘물소리’는 “아무런 바램도 없이/소리로만 살아서”에서, “밤새도록 흐느끼는/가슴의 기도”가 된 것이다. 물소리는 아무런 바램도 없이 들리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살아 있다고 진술한다. 그 소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밤새도록 흐느끼는 기도소리이다. 그리고 ‘가슴의 기도’도 ‘맑은 물소리’란 이미지에서 연유되었다. 그것은 ‘맑은 물소리’→‘가슴의 기도’→‘진실한 기도’로 이해할 수 있다. 11행부터 13행까지는 종교적 경건성을 승화시킨다. 이 구절은 밤의 정적을 느끼게 한다. 그 정적은 종교적 경건성으로 형상화했다. 기도소리에 나뭇잎들이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고 숨을 죽인다. 기도소리에 나뭇잎과 바람도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기도는 경건한 모습으로 드린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에 모두가 함께할 수밖에 없다. 14행부터 16행까지는 하나님이 진실한 기도를 듣고 있다고 승화시켰다. 그 기도는 나뭇잎도 손을 모으고, 바람도 멈추어 숨을 죽이는 가슴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도소리를 듣고 있다는 서술적 설명을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가 되어 듣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관념적인 용어에서 탈피해 격조높은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귀’로 의인화한 것은, 성숙한 시적 재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구절은 가슴의 기도, 즉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어느 곳에서나 듣고 계신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6-1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4] 신앙의 삶을 위한 길 - 최은하의 '비추사이다'
    ▲ 시인 최규창   비추사이다 비추사이다 열린 돌문 안으로 가득 넘쳐드는 빛살 빛살의 소리 소리의 빛보라로 비추사이다. 죽어도 영영 죽지 않고 죽어서 다시 사는 법을 이르시며 보이신 이여. 내 떠도는 죽음의 골짜기에 한줄기 꽃바람으로든지, 지금도 역력한 우리 어머니 마지막 손실로든지 눈부셔 캄캄하더라도 속속들이 비추사이다 비추사이다. 사위거나 그림자지지 않을 그 빛살 속에서 스스로를 이겨내게 하소서 웃으며 버리는 법을 익히게 하소서 다시 사는 법 안에서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을 참으로 참으로만 살게 하소서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서 빛으로 살게 하소서 빛살이게만 하소서.              - '비추사이다' 전문 이 시의 제목인 '비추사이다'는 그 자체가 신앙인의 삶을 형상화했다. '비추사이다'는 ‘비추게 해주십시오’로 이해할 수 있다. 타동사인 ‘비추사’에 존칭인 ‘-사이다’란 어미를 삽입함으로써, 신앙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세를 내포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은 ‘비취다’는 옛말인 ‘비치다’로 빛을 보내어 밝게 만들다는 뜻을 지닌다. 즉 ‘비추이다’의 피동사로 비췸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시는 ‘빛’을 형상화했다. 그 빛은 ‘빛살’과 ‘빛보라’, ‘꽃바람’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비추사이다’로 빛의 생명성을 드러내고 있다. 빛은 일상의 빛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지닌 ‘빛’으로 환원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빛’은 ‘가르침’이나 ‘삶의 표상’으로 환원된 것이다. 기독교란 종교의 특징을 빛으로 함축하고, 신앙인의 삶으로 환원되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시의 문학적 성취인 것이다. 제1연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인 부활신앙을 표현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무덤의 돌문 안에는 ‘빛’이 가득 넘친다. 그 빛은 빛살로 가득 넘쳐들고, 그 소리의 빛보라로 비친다. 특히 ‘빛살’은 비쳐나가는 빛의 가닥이며, ‘소리’를 지닌 ‘빛살’은 생명성을 지닌다. 첫 행의 ‘비추사이다’를 반복하는 것은, ‘빛’에 대한 강조로 기독교의 영원성을 드러낸다. 제2연은 기독교의 영원성을 노래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3일만에 부활로 보여준 것이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제3연은 그 빛이 세속의 삶 속에 비추어 달라고 간구한다. 그 빛은 “한줄기 꽃바람으로든지”나, “지금도 역력한 우리 어머니 마지막 손길로든지”로 비추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꽃바람으로든지’나 ‘…손길로든지’, ‘…하더라도’는 간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떠도는 죽음의 골짜기에”는 세속적인 삶의 현장을 함축시킨다. ‘죽음의 골짜기’와 ‘빛’, 즉 기독교의 영원성을 대비함으로써 신앙의 삶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죽음의 골짜기인 세속적인 삶의 현장에서 떠돈다고 직시하고, 그 빛이 눈 부셔 캄캄하더라도 속속들이 비추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특히 그 빛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제4연은 신앙인의 바른 삶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 신앙의 빛 속에서 스스로를 이겨내게 하고, 웃으며 사는 법과 버리는 법, 그리고 다시 사는 법으로 신앙의 삶을 영위하도록 간구한다. ‘웃으며 버리는 법’은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삶에 대한 총체적 표현이다. 또한 ‘다시 사는 법’은 기독교신앙의 집약된 표현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인 “빛살이게만 하소서”에서 ‘…만’이란 어미를 붙임으로써 신앙인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고, 기독교신앙으로만 삶을 영하도록 간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6-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