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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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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5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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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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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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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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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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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6-24

실시간 문학 기사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2] 하나님찬양과 감사의 삶 - 권오숙의 「축복 · 2」
    ▲ 시인 최규창 TV로 K2 산의 정상을 보는데 밤이 되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나는 하나님을 찬양해요 나는 하나님을 찬양해요 노래한다 나의 눈이 그것을 보고 나의 귀가 그 찬양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  - 「축복·2」의 전문 이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형상화했다. TV로 K2산의 정상을 보는데 밤이 되자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반찍이는 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식한다. 그 찬양의 노래를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삶이 생활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깊은 신앙심에 연유한 자연스러운 발로이다. 신앙의 생활화에서 작용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첫 연은 TV로 보았던 K2산의 정상이었으나, 밤이 되자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인다. 한 두개가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다. 공해로 찌든 서울의 밤하늘에서는 볼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에 감동일 수 밖에 없다. K2산은 청정지역이다. 이 산은 인간들이 쉽게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서운 공해도 유발되지 않았다. 파괴나 훼손되지 않아 그대로 보전되어 왔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들이 유별나게 반짝일 수 밖에 없다. 가까이 있는 듯한 별들을 볼수 있다. 이러한 이 산은 인도 카라코람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토속명(土俗名)으로 ‘답상(Dapsang)’, 또는 ‘초고리(Chogori)’라고 불린다. 발토로 빙하 북쪽에 솟아 있는 고봉으로 높이 8,611m이며, 에베레스트산에 이은 세계 제2의 고봉이다. 화자는 TV로 K2산 정상을 보았으나, 밤이 되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발견한다. 그 반짝이는 별들을 감동의 장관으로 본 것이다. 그것은 TV에서 K2산의 정상을 보는 시선이 반짝이는 별들로 이동한 것이다. 그것은 이 별들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詩作)을 위한 전환의 시발이다. 제2연은 반짝이는 별들의 광경을 ‘찬양’과 ‘노래’로 의인화했다. 제1연에서 보았던 별들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요”라고 의인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식한다. 시편 147편 7절인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를 떠올린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무한한 은총에 대한 찬양의 노래이다. 그것은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란 구절이나, 1장 16절의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란 것처럼, 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이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은 의무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신앙적인 시각에서 유추하면 반짝이는 별도,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제3연은 욥기 13장 1절인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를 떠올린다. 여기서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는 개인적인 관찰을 통하여 아는 것이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통달하였느니라”는 ‘이해하다’나 ‘분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눈은 관찰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게 되고, ‘귀’는 구두나 소리로 판단하게 된다. 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광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생활화된 신앙이 작용한 관찰과 경험의 결과이다. 이 눈과 귀를 지닐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다. 그것은 화자가 지닌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준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고, 반짝이는 별들의 행위도 화자가 지닌 신앙의 동일선상에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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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1] ‘웃음’의 생활습관을 생활화 - 이명희의「웃음 도돌이」
    ▲ 시인 최규창   화나고 짜증날 때 -한번 웃자 헤헤헤 히히히 친구 웃고 나 웃고 하하하 호호호 낄낄낄 깔깔깔. - 「웃음 도돌이」의 전문 이 동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는 모습으로 기쁨의 생활을 추구했다. 웃는 생활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순수하고 밝은 동심을 지닐 수 있도록 인도한다. 화가 날때나 짜증이 날때도 웃을 수 있도록 ‘웃음’의 생활습관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 웃는 모습의 생활이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이며, ‘웃음’은 곧 ‘기쁨’의 생활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의 “항상 기뻐하라”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에도 웃을 수 있는 생활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기쁨의 생활은 웃음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웃음 도돌이」는 《웃음 도돌이》(2018년, 시선사 펴냄)의 표제시이며, 제37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 동시집이다. 이 시의 제목인 ‘도돌이’는 악곡에서 줄음표의 한 가지인 ‘도돌이표’에 연유한 것이다. 그것은 악곡의 어떤 부문을 두 번 되풀이하라는 뜻이다. 「웃음 도돌이」는 웃음을 계속 되풀이 하듯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음의 생활화를 의미한다. 제목 자체가 이 시의 주제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시인의 기발한 창조적인 발상이다. “화나고/짜증날 때//-한번 웃자//헤헤헤/히히히”이란 구절은 기쁨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웃음의 생활이란 기쁨의 생활이 전제된 구절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에도 웃자는 것은, 웃음만이 화가 난 마음과 짜증스러운 마음을 풀어 줄수 있기 때문이다. 웃는 마음과 모습은 기쁨의 생활을 갖기 위한 방법이다. 그리고 “친구 웃고/나 웃고//하하하/호호호//낄낄낄/깔깔깔”이란 구절은 친구와 함께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다. 친구와 함께 잔뜩 참고 있던 ‘웃음보’를 터뜨리고,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는 ‘웃음바다’의 장면이다. 이 광경은 즐거운 ‘웃음꽃’을 한바탕 피우거나 어우러져 웃는 자리인 ‘웃음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화나고/짜증날 때//-한번 웃자”란 것은, 타의의 설득에 의한 웃음이다. 그러나 “친구 웃고/나 웃고”란 것은 자발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가식적이고 타의에 의한 웃음이었다면, 후자는 감정에 의해 자발적인 웃음이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는 모습이 생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이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웃음의 상승작용이다. 웃음의 형태에 따라 웃는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하는 웃음부터 자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형태를 고조시킨다. ‘헤헤헤’ → ‘히히히’→ ‘하하하’ → ‘호호호’ → ‘낄낄낄’ → ‘깔깔깔’의 웃음으로 상승시킨다. 시어에 대한 깊은 고뇌 속에서 구성시켰다고 볼수 있다. ‘헤헤헤’의 웃음은 힘없이 조금 벌린 모양이거나 입을 조금 벌리면서 경망스럽게 웃는 모양이다. ‘히히히’는 만족감을 느끼고 싱겁게 웃거나 비웃을 때에 내는 소리이다. 그것은 “-한번 웃자”란 구절이 암시하듯이 타의에 의한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하하’의 웃음은 반가워서 웃는 소리이고, ‘호호호’는 입을 오므리고 입김을 많이 불어내는 웃음소리이다. ‘낄낄낄’이나 ‘깔깔깔’은 억지로 참으려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이다. 이 웃음들은 참지 못하고 감정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웃음의 과정을 보면 웃음이 많이 쌓여있는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은 듯한 장면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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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0]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추구 - 소강석의 「윤동주 무덤 앞에서·3」
    ▲ 시인 최규창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심판해 주십시오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파면해 주십시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윤동주 무덤 앞에서·3」의 전문 이 시는 일제에 저항한 윤동주의 삶과 고고한 시정신을 추구했다. 화자인 소강석시인(새에덴교회 목사)은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그의 삶과 시정신을 기리고, 스스로의 시작(詩作)에 계승하려는 결의를 표현했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작(詩作)의 자세로 형상화시켰다. 이 시대를 사는 시인이 지녀야 할 품성(品性)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신앙인의 바른 삶에 대한 길을 의미한다. 이 시는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의 시인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형태로 구성했다. “있으랴”나 “있으리오”, 그리고 “주십시오”란 구절의 반복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화자에 대한 삶과 시정신으로 극대화시킨다. 특히 “있으랴”나 “있으리오”란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인 스스로의 시인적인 삶을 되묻는다. 또한 “주십시오”도 오늘의 현재를 돌아보며 결단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판’과 ‘파면’, ‘허락’은 법률적으로 판결에 대한 언어이다. ‘심판’과 ‘파면’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내리고, ‘동주화’를 심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표현했다. 윤동주의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제의 서슬퍼런 시대에 순교자적인 각오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수 있다. 또한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은 윤동주처럼 아파하지 않고서는 시를 쓴다고 할수 없다. 윤동주의 아픔이란 시대적인 상황인 나라를 빼앗긴 슬픔에서 비롯되었다. 오늘의 시인도 윤동주처럼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과 현대사회의 시대적인 아픔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그리고 ‘부끄러움’이나 ‘눈물’, ‘참회록’은 윤동주의 시를 연상시키고, 윤동주의 시를 상징한 시어들이다. 이 시어를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떠올리고, 시인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란 구절은, 「서시(序詩)」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구절을 떠올려 준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시를 쓰는 시인은 ‘가짜 시인’으로 간주한다. 또한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이란 구절은 눈물이 없는 시란 껍데기에 불과하고 기교만 앞세워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또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이란 구절은, 윤동주의 「참회록(懺悔錄)」이란 시를 떠올려 준다.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치고, 죄를 뉘우쳐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바른 삶과 이 시대와 함께 하는 시를 쓸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란 구절의 ‘동주화’는 화자가 윤동주의 무덤에 피어있는 꽃을 동주화로 명명한 것이다. 시인은 창조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발한 시인적인 발상이다.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동주화로 함축했다.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은, 윤동주의 바른 삶과 시정신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윤동주와 화자 간에 일체적(一體的)인 삶을 희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9]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 - 김석림의 「산상수훈」
    ▲ 시인 최규창 하늬바람 눈뜨는 우이동 골짜기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증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서는 진달래꽃을 보라 삼각산 이슬 머금고 태고의 생기 품는 고깔제비꽃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마주하라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끈질긴 목숨 연명하는 잡초 땅의 풍식(風蝕)을 막아 옥토로 가꾸는 소중한 땅방울을 기억하라 수목들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곤줄박이, 접동새 일용할 양식으로 풍족한 피조물의 감사기도를 들어라 그러므로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 - 「산상수훈(山上垂訓)·1」 이 시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현상을 통해 섭리하심에 대한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산에서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고깔제비꽃, 그리고 잡초와 접동새 등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승화시켰다. 꽃과 잡초의 현상, 소중한 땀방울의 결과, 수목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새들의 존재가 무한한 일깨움의 지혜를 주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처럼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적인 메시지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첫 연은 자연현상의 식물과 새 등에 신앙의 삶이 육화(肉化)된 성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을 재구성해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첫 연은 산에 서식하는 식물과 나무, 새를 통해 바른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진달래꽃’은 불면증을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선다고 의인화했다.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다. 또한 우이동 근처인 수유리 4·19 묘지도 함께 떠올려 주는 구절이다. 그리고 고깔제비꽃은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고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 형상화했다. 그래서 풍상에도 꺾이지 않고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머금었다. 70년대의 성지처럼 여겼던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었으니,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도 볼수 있다. 풍상에도 꺾이지 않은 꽃의 미소는 시리도록 투명할 수밖에 없다. 잡초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로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옥토로 가꾸는 땀방울을 기억하도록 일깨운다. 바람에 의하여 암석이나 지대가 침식되지만, 농부의 땀방울은 침식을 막아주고 옥토로 가꾸기 때문이다. 곤줄박이나 접동새는 나무와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삶을 지닌 피조물은 감사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족하게 주셨기 때문이다.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란 구절을 시적인 발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첫 행인 “그러므로”는 첫 연의 잠언적인 메시지를 구체화시키고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의 구절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란 구절의 ‘괴로움’은 인간이 감내(堪耐)하기 힘든 고초와 역경을 뜻한다. ‘한 날 괴로움’이란 우리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 날에 족하니’란 그날에 주어진 것은 그날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란 구절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에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하면 새로운 은혜를 입어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였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8]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
    ▲ 시인 최규창 어느 한 순간에 머어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저와 함께 사시네요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심을 형상화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섭리에 의한 삶임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와 붙드심에 힘입고 있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우주와 인간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구태여 나눈다면 3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연은 1행부터 5행, 둘째 연은 6행부터 8행, 셋째 연은 9행부터 마지막 행까지이다. 첫째 연의 1행인 “어느 한 순간에”란 구절을 임의로 구분한 각 연의 첫 행에 삽입할 경우에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인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스스로가 깨닫기 때문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치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특히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이란 구절은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떠올린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인생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와 영원한 지혜의 계획하심 아래 놓여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섭리하고 계심을 깨닫게 한다.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표현했다. 이 세상에는 상반(相反)되는 두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외없이 작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 사랑의 이름으로 /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 저와 함께 사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냈다. 우리의 삶과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사랑이다. 창세기 26장 28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이 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신다. 무슨 일이 든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7] 낮은 자세의 겸손한 신앙 - 홍계숙의 「죄인」
    ▲ 시인 최규창   지난 사순절 의롭게 살겠노라 성찬에 참여했지만 뒤돌아 보니 입을 열어 고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믿음의 바구니 열매있다 한들 당신 앞에 내어놓 기엔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죄인」의 전문 홍계숙의 「죄인」은 화자인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한 시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신앙의 삶을 고백했다.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에서 비롯된 참회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그 죄인임을 사유(思惟)하도록 일깨워 준다. 성경에서 죄인을 판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이시다(창세기 13장 13절). 이는 도덕적 윤리적인 죄를 범한 자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죄,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르켜 죄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시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기준의 죄인보다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치부해 버린 순수한 신앙에서 연유(緣由)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하고 낮은 신앙인의 자세로 죄인임을 고백한 것이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연은 사순절에 참여한 성찬식은 지금까지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의롭게 삶을 영위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사순절에는 누구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을 회상하면서 보낸다. 이 기간에는 참회와 금식으로 지키고, 구제와 경건훈련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 기간에 갖는 성찬식은 예수의 십자가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이때에 나눈 떡은 주님의 몸을, 포도즙은 주님의 피를 기념한다. 이 의식에서 참회를 통해 죄인이었던 스스로는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난 사순절/의롭게 살겠노라/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은 의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참회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성찬식에 참여했다고 고백한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간구, 신앙의 삶에 대한 다짐이다. 그러나 “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은, “의롭게 살겠노라”란 다짐을 지키지 못함에 대한 회개가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제2연에서 구체화된다. 제2연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한 삶이다. 1연의 마지막 행인 “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에서 주는 망설임의 여운과 “되돌아 보니”란 구절에서 죄인의 삶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입을 열어/고할수 없”을 정도의 죄인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죄인된 자의 참담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것은 순결한 마음, 그리고 진실한 삶에서 생성(生成)된 고백이다. 일상의 생활속에서 거짓과 허식(虛飾)이 없는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제3연은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의 신앙적인 삶에 대한 결과를 ‘부끄러운 것뿐’으로 함축해 표현했다. “믿음의 바구니 열매”는 신앙적인 삶에 대한 결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뿐”으로 스스로 자신을 책망한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열매를 내어놓기에는 부끄러운 것뿐으로 치부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꾸짖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이 먼저 책망하기 전에 스스로 자책하는 회개었음을 유추(類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바구니 열매있다 한들”이란 구절처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다가서는 신앙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 시는 스스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 신앙의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의 겸손한 삶에서 비롯되고 있다. 신앙인이 지녀야 할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의 순수한 삶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특히 간결한 이미지와 함축된 메시지는 그의 시가 지닌 특징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6] 성숙한 신앙의 삶을 위한 간구 - 김행숙의 「새 아침에」
    ▲ 시인 최규창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 나 여기 왔습니다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 피어나게 하소서 간구하옵기는 오로지 당신의 온유 그뿐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새 아침의 소망을 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 —「새 아침에」의 전문 김행숙의 「새 아침에」란 시는 새해의 아침에 드린 기도이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이 삶을 위해 ‘지혜의 근본’을 찾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다고 고백한다. ‘속사람의 비밀’을 새롭게 하고, ‘당신 닮은 사랑’과 ‘당신의 온유’를 지니도록 간구한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새해의 소망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고백과 간구이다. 이 기도는 고백과 간구로 구성되어 있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나 여기 왔습니다/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나,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새 아침의 소망을/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스스럼없이 털어 놓은 고백이다. 그리고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나, “간구하옵기는/오로지 당신의 온유/그뿐”이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고백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고, 간구하므로써 응답이 온다는 견고한 믿음을 보여 준다. 제1연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거듭난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을 지니도록 간구한다. 바른 신앙인의 삶을 소망한 것이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로/나 여기 왔습니다”란 구절은 태초적 부터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음을 고백한다. 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바탕, 즉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인 태초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란 구절의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심령(에베소서 3장 16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새사람(에베소서 4장 24절)을 의미한다. 또 “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스스로가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또한 “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간직한 것만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닮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했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요한일서 4장 10절). 스스로에게서 피어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간구한 것이다. 제2연은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다. “당신의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 ‘온유’는 부유하고 거만한 사람들에 반대되는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말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의 태도나 타인에게 보이는 태도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온유’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묘사하는 데서 완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 시는 하나님 앞에 새해의 소망을 간구한 것이다. 주변과 가정, 물질적 요구의 외적인 삶에 대한 간구가 아니다. 내적인 성숙을 위한 간구로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 한 해의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 - 유승우의 「한 해를 보내며」
    ▲ 시인 최규창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 빈 들판을 서성거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외우고 있다.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 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소곤거리고 있다. 앞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 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의 전문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지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며 드린 기도이다. 자연적인 현상속에서의 생명을 다한 빈 들판과 하얀 갈대꽃, 그리고 가랑잎과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비유로 한 해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창백하게 여위어 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며”나,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하얗게 손을 흔들며”, 그리고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나, “잎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화자의 회한(悔恨)으로 환원시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헛된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로 신앙적인 삶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 않았지만 임의로 나눈다면, 네 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1행부터 3행까지를 제1연으로 볼수 있다. 제2연은 4행부터 7행, 제3연은 8행부터 11행, 제4연은 12행부터 마지막 행인 15행까지이다.  제 1연에 해당할 수 있는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고”란 구절은, 화자가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을 보여 준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빈 들판을 서성거리는 삶은,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오늘날 기도의 표준이며 모범이다.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고, 천국이 속히 임하기를,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일용할 양식과 죄용서, 유혹에서의 구원과 기도의 응답을 간구한 것이다. 또한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이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떠나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외우는 것은, 한 해동안에 지녔던 욕심이나,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우는 자세이다. 또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란 구절은 허무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푸른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랑잎들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바람이나 사람의 발에 밝히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생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한 해의 허무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란 구절로 표현했다. 전도서 1장 2절인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구절중에서 인용했다. 이러한 이 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란 구절처럼 깊은 사유의 일깨움을 준다. 주기도문과,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은,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된 자세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 - 이매수의 「크리스마스」
    ▲ 시인 최규창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빵을 나눠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이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소식을 알려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청년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도 있고 사랑하는 딸도 있고 이웃집 아저씨도 있고 어머니 빈 자리도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 「크리스마스」의 전문 이매수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情景)을 형상화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년들, 그리고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이웃집 아저씨도 참석하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떠올리며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는 하늘나라의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크리스마스의 교회정경을 풍경화로 그리듯이 선명하게 그려 준다. 이 시의 각 연마다 반복된 “오늘 그 곳에는”이란 구절의 ‘오늘’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이고, ‘그 곳’은 화자가 다니는 교회당이다. 제1연과 제2연의 “십자가를 바라보고”란 구절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빨간 불이 켜진 십자가이다. 이 반복을 통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인 크리스마스와 이 날을 맞은 교회당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제1연은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인 빵을 나눠 준다. 어린이들은 빵을 선물로 받기 위해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에 모여 든다. 이 빵은 세상적인 빵이 아니라,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한 ‘하늘의 빵’으로 표현했다.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로 주던 빵과 과자를 받던 추억을 떠올려 준다.  제2연은 ‘하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모여 든다. 이 날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이 ‘하늘의 소식’은 구약에서 선지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인용되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제3연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에 참석한 자들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직장과 학교 등으로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그리고 이웃에 사는 아저씨도 앉아 있다. 이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자들이다. 멀리 떠났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앉아 있지만, 그 자리에 앉아 계셔야 할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빈 자리로 남아 있다.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를 ‘어머니 빈 자리’로 떠올려 준다. 제4연은 어느 교회나 크리스마스를 맞은 밤에는 대낮처럼 불을 켜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와 축하행사를 가진다. 축제의 분위기로 진행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 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과 하늘나라 가는 길의 밝은 길을 일깨워 준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에 가르쳐주는 길은 지름길이다. “하늘가는 밝은 길을/훤히 비춰주는 등불”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늘의 양식인 ‘하늘의 빵’이나 ‘하늘의 소식’은 하늘나라에 가는 밝은 길의 가장 필요한 자산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시들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와 정갈한 구성이 특징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 성숙한 삶과 하나님의 사랑 - 김현승의 「절대 신앙」
    ▲ 시인 최규창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 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 「절대 신앙」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를 형상화했다. 화자인 ‘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표현하고, 하나님은 ‘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했다. 「절대 신앙」이란 제목자체가 주는 것처럼, 아무 것에도 따르지 않고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독립한 절대적인 신앙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되는 신앙임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 시에 쓰여진 ‘불꽃’과 ‘눈송이’란 시어, 그리고 “당신의 불꽃”과 “나의 눈송이”, “뛰어 듭니다”와 “품어 줍니다”란 구절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면, ‘하나님’과 ‘나’에 대한 관계의 상승작용에 대한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가 지닌 절대적인 신앙에 의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의 ‘불꽃’과 ‘눈송이’는 상극관계이다. ‘불꽃’은 ‘불’이고, ‘눈송이’는 ‘물’이다. 상생(相生)관계가 아니다. 오행설(五行說)에 의하면 ‘블’과 ‘물’은 상극관계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불’의 크기와 ‘물’의 수량에 따라 이기고 질수가 있다. ‘불꽃’과 ‘눈송이’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불꽃’은 ‘눈송이’를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불꽃’속으로 뛰어든 ‘눈송이’는 그대로 녹을 수밖에 없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불꽃’과 ‘눈송이’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나’란 ‘불꽃’에 녹여지는 ‘눈송이’같은 존재이다. 그것은 신앙적인 현상이다. 자연적인 현상과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눈송이’가 ‘불꽃’ 속으로 뛰어 들고, ‘불꽃’은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주는 사랑을 깨닫게 한다. “당신의 불꽃”은 하나님의 섭리나 사랑, 즉 하나님의 가장 큰 권능의 세계이다. 그것은 절대자의 절대적인 세계이며, 하나님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나의 눈송이”는 순수하고 순결한 화자인 ‘나’이다. ‘눈송이’는 어느 형체보다도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며, 순결한 이미지를 떠올려 준다. 첫 연의 “뛰어 듭니다”나, 둘째 연의 “품어 줍니다”란 구절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하는 절대적인 행위이다. “뛰어 듭니다”란 화자인 ‘나’가 하나님에게 안기는 행위이고, “품어 줍니다”란 ‘나’를 품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 이러한 이 시의 첫 연은 하나님의 세계 속에 뛰어드는 삶을 형상화했다. “뛰어 듭니다”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벌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자발적인 신앙의 삶임을 보여 준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비롯될 수 있다. 둘째 연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신념을 형상화했다.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란 하나님의 사랑에 연유한 자녀임을 보여 준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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