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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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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05-2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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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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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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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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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1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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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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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5] 땅의 도시의 속성 : 이단사상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참회록〉 제7권에서 시리아의 라오디시아에 아폴리나리우스가 주장하는 예수는 신성만 가졌다는 그리스도론인 아폴리나리우스주의와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가 주장하는 예수는 피조된 분으로 인성만 가졌다는 그리스도론인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임을 토로하고 있다.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주장하기를 예수님은 정상적인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영혼은 통례적인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신적인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즉 예수님의 인성은 부정하고 신성만을 인정했다.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381년 이단으로 간주되어 수십 년 후에 사실상 소멸되었다.   니케아 공의회가 325년에 삼위일체설을 공인했으나 분명히 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지니셨다는 공통적인 믿음에 대항하여 나타난 것이 아폴리나리우스주의로서 그리스도는 신성만을 가졌다는 단성론 즉 모노피시티즘을 주장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합리적인 마음은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쉬우며, 기껏해야 불안정한 노력을 할 따름이기 때문에, 예수의 인간성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제거해 버리고, 그 자리에 신적인 로고스로 대치하는 것 이외에는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완벽함과 구속의 영원한 가치를 결코 볼 수 없다고 했다.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정통적인 개신교 등 칼케돈 공의회에 속한 기독교 교파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보았다. 36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지도 아래 있는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에서도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정죄되었다.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도 아폴로나리주의는 이단으로 선포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아리우스주의가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성만을 가졌다는 이론에 거부하여 과도하게 반발한 이론이었다.   아리우스주의는 4세기 초엽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한 시대에 나타난 신학 사상이었다. 그 당시 기독교 국가의 중요한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 아리우스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신학 사상이 아리우스주의이다. 아리우스는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만 계셨지만, 영원한 어느 과거에 아들인 그리스도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의 제일 첫 번째 창조된 자라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라고 했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로마 제국을 통해 기독교인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사도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요한복음 10장 30~33절, 20장 28절, 로마서 9장 5절) 사람(요한일서 4장 2절, 요한이서 1장 7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신적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된 자로서 하나님에게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가 야기시킨 논쟁과 갈등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하여금 325년 5월 25일에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게 했으며, 공의회는 니케아 신조를 발표함과 함께 아리우스와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나 아리우스주의와 같은 이단사상은 땅의 도시의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골로새서 2장 8절은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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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7
  • 13일,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신학 강연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오는 13일 동 연구원 방배동 강의실에서 「신학적 동물학 연구」란 주제로 강의를 열고, 동물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강연은 인간 중심의 세계 인식과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창조세계 속 생명 가치의 중요성을 조명하기 위해 준비됐다.   이날 강연은 구자용교수(주안대)가 나서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기독교적 인식론의 세계 동향을 소개하고 개발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제시할 방침이다.   강연 관계자는 “요즈음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척 크고 강하다.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성찰도 활발하다”며, “이런 배경에서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동물 또한 가족의 일원이자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세계 교회 곳곳에선 ‘야웨는 동물의 주’인지 묻는 질문이 늘고 있다”며, “우리 인간의 주님으로 고백되어 왔던 야웨가 동물의 주인지 묻는,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탐구하는 작업을 위해 이번 강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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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부활절 아침에]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 소강석
          ◇ 정재규목사의 「승리의 부활」   부러진 갈대를 다시 싸매시며   꺼져버린 등불을 다시 켜시는 분이시여  코로나19의 세찬 바람에 갈대들의 신음소리가 아우성치고  거친 눈보라에 등불마저 깜박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죽음의 산을 넘어서  부활의 새벽은 어김없이 가슴 시린 여명으로 밝아오고 있나니 검은 먹구름 사이를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부활의 빛이여  어둠이 쌓인 대지를 관통하며 아침을 밝히는 생명의 수레여  이제 조국의 새벽하늘에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리는   생명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여라 조국을 짓누르는 죽음과 절망의 암흑 별들마저 눈을 뜨지 못하는 이 짙은 어둠 속에  부활의 찬란한 승리로 민족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생명과 평화의 아침이 밝아오게 하여라 부활의 주, 사망을 이기신 찬란한 생명의 빛이여 이 민족의 역사의 지평 위에 부활과 소망의 아침을 주소서 거친 숨결, 젖은 눈동자, 뜨거운 땀방울로 옷깃을 적시는  부활의 제단위에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 오게 하소서 이제 순백의 백성, 한민족 제단위에  부활과 생명의 향유를 부어주소서 한국교회여, 이 시대 부활의 증인들이여 한반도의 광야위에 짙게 드리운 비운의 밤이 물러나고  부활의 아침을 알리는 생명의 심포니가 울리게 하여라 부활의 주여,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박살내고  부활과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붉은 새벽이 밝아오게 하소서 아직도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허의 밤  삶이 아무리 아파도  상한 갈대가 꽃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부러진 갈대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떠오르게 하소서 꺼져가는 등불이 아침의 태양으로 밝아오게 하시고 부활의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한 4월의 봄이 되게 하소서. /새에덴교회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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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3] 초상화가의 걸작과 죽임 당함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사무엘하 14장 25절에서 압살롬의 제일 아름다운 것이 그의 머리털이라고 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 밑으로 달려갈 때, 그의 아름다운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그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고,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이 죽임당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아일랜드 시인이며 런던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초상화가 바질 홀워드는 비범한 미모의 도리언 그레이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초상화가는 자신의 예술의 극치요 아름다움의 절정인 모델 도리언 그레이로부터 죽임당하는 비극적인 실상을 기술하고 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의 초상화를 세워놓고, 그 초상화 앞에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이 앉아서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미모에 매혹되었으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바질의 걸작품이었다. 바질 홀워드는 친구인 헨리경에게 말했다. “브렌드 부인 집에서 열린 어느 환영회에 갔었네. 그때 처음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보게 되었지. 그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의 온 영혼과 바로 내 예술마저도 모조리 다 빨아들일 것 같았어. 지금 나에겐 그 젊은 친구가 내 예술의 전부야. 도리언의 초상화는 내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지. 그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나에게는 소년의 모습인 도리언. 아! 낭만적 정신의 그 모든 열정, 영혼과 육체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지. 내가 살아있는 한 도리언 그레이의 개성이 나를 지배하게 될 거야”   도리언도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그의 뺨에는 기쁨에 겨운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홀에 겨워 꼼짝 않고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나르시스적 감정으로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하는 17세의 여배우 시빌 베인의 뛰어난 미모와 찬란한 연기에 마음이 빼앗겨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결혼하자고 했다. 여배우 시빌 베인도 도리언의 사랑의 고백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시빌의 연기가 수준미달이 되자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하고는 시빌을 버리고 떠나가 버림으로써 시빌을 자살하게 했다.   초상화가 바질이 도리언을 찾아와서, “여배우 시빌 베인은 어느 더러운 방구석에 죽어 누워 있는데, 자내는 오페라 극장에 갔단 말이지? 런던에서 자네를 비난하는 끔찍한 험담들을 자네가 알아야 하네. 난 자네한테 설교 좀 하고 싶네.” 도리언의 입술에서 조롱하듯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라오세요. 당신의 손으로 직접 그린 초상화를 보세요. 못 볼 이유가 없잖습니까?”   바질은 자신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자 기겁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초상화는 추악하고 역겹고 혐오감에 차 있었다. 반인 반수의 얼굴이었다. 악마의 눈이었다. 도리언의 나르시스적인 행동이 초상화에 표출되고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제 영혼의 얼굴입니다”라고 했다.   도리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초상화가 바질은 “기도해, 도리언.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우리의 죄를 용사 하소서!”라고 하자, 도리언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서 초상화가의 귀 뒤 큰 혈관을 찔렀다. 그의 머리를 테이블 위에 처박으면서 찌르고 또 찔렀다. 바질은 자신이 그렇게도 미의 극치요 예술의 최고봉으로 자랑하든 자신의 모델에 의해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도리언은 자기의 초상화를 칼로 찔렀다. 마태복음 26:41에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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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4-02
  •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 수상
      하나님의 섭리 속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형상화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을 모색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김영진시인·사진)는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에게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서울 왕십리에 소재한 대중음식점 토성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사태로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   이번 심사위원회(위원장=최규창시인)는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의 제10시집 〈말머리 곡선의 기류〉를 선정하고, 지난 1월 21일에 동 협회 제54회 총회와 함께 시상식을 갖기로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총회는 서면총회로 대치하고, 시상식은 이번에 15명의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김석림상임이사의 사회와 이춘원부이사장의 기도, 김영진이사장의 인사말, 최규창위원장의 심사소감, 시상식, 최은하증경이사장의 축사 등 순서로 진행했다. 최위원장은 심사소감에서 “노유섭의 수상시집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간과 자연을 서정적인 정서로 형상화했다”면서, “그의 시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개인 차원에서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의 관점에서 하루의 삶이 일생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기심을 떠난 사랑에 바탕한 삶의 살아야 한다고 알고 글도 그리 쓰고 있다”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추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유섭수상자는 1990년 〈우리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풀잎은 살아서〉를 비롯한 〈희망의 실타래를 풀고〉, 〈유리바다에 내리는 눈나라〉, 〈원으로 가는 길〉 등 10권과 소설집 〈원숭이의 슬픔〉 등을 펴냈다. 한국현대시인상과 계간문예문학상, 관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신재문학평론가는 “노유섭시인이 찾아낸 숭고는 바로 생명의식이다. 이는 1990년대 생태시의 경향에서 한걸음 발전한 것으로서 개체의 존엄함을 발견하고 관계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면서, “시인은 이를 위해 소외 계층이나 부랑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가진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하면서 개체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관계 설정의 새로움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질의 승화를 모색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김규화시인은 “그는 ‘언어’를 현대의 과학이나 문명에 두는 것보다는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에 두고 있다. 그의 언어는 그래서 지성보다는 정서 쪽에 가깝다. 그는 그 정서를 객관화하지 않고 화자인 ‘나’가 주체가 되어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해 냄으로써 독자에게 한없는 위로와 감미로움을 준다”면서, “그의 ‘언어’는 한마디로 햇살처럼 따스하고 이슬처럼 영롱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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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4-0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끝] ‘행복한 삶’을 추구 - 이춘원의 「꽃길」
      어제는 하얗게 핀 벚꽃 숲을 거닐면서/하늘을 보았습니다/하늘이 온통 꽃밭입니다/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사이로 보이는/푸르러 아름다운 하늘/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참 행복합니다//어젯밤, 비바람 불더니/세상이 변하였습니다/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몇 잎 남은 꽃잎이/하늘하늘 춤추며 이 땅에 내려오니//오늘은, 산길이 온통 축복의 노래입니다/연분홍 꽃비단 펼쳐두고/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입니다/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은/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의 떨림입니다/참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 「꽃길·1」의 전문     이춘원의 시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갖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 삶은 은유적인 표현인 ‘꽃길의 삶’으로 소망한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꽃길의 삶‘이란 아름답고 향기있는 삶일 수밖에 없다. 꽃길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다. 삶 자체가 고난과 역경이 없기 때문에 꽃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지닌 삶을 의미한다. 또한 웃음과 기쁨이 있고, 소망을 지닌 행복한 삶이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꽃잎이 떨어진 산길을 꽃길로 형상화하고, 인생의 꽃길로 전개시켰다. 첫 연에서 어제 벚꽃 숲을 거닐면서 보았던 하늘이 온통 꽃밭이었고, 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꽃길이고 인생의 꽃길로 인식했기 때문에 “참 행복합니다”고 고백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비바람이 불더니, 꽃잎이 땅에 떨어졌다. 꽃잎이 떨어지니 세상이 변한 것이다. 꽃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떨어지는 꽃잎을 “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나 “하늘하늘 춤추며”란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꽃잎이 지닌 아름다움을 통한 우리의 삶으로 치환(置換)시켜 행복한 삶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연은 꽃잎이 떨어진 산길은 “축복의 노래”이고, “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이며, “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로 “한 걸음 한 걸음 감동의 떨림”이다. 이러한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기 때문에 “참 아름다운 선물”로 받아 들인다. 이 “축복의 노래”나 “고운 마음”,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나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선물” 등은 기독교적인 신앙이 작용한 삶으로 비롯된 현상이다.   이러한 시작(詩作)태도는 이춘원이 지닌 심성(心性)에서 비롯된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나 「천상화를 마주 보며」란 시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는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란 시에서 “하얀/너무도 순결한 마음/활짝 열어 버리고 싶은”이란 구절에서 피어있는 목련꽃을 ‘순결한 마음’으로 인식한 시각과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이 평소에 어떤 생각이나 고뇌했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고, 시의 구성이나 시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원은 1997년 〈순수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인 〈가지에 걸린 하얀 달빛〉(순수문학 펴냄, 1998년)을 비롯한 〈굴뚝새〉, 〈그리움자리〉, 〈푸른 촛대 산길을 밝혀〉, 〈풀꽃시계〉, 〈해바라기〉, 〈꽃길〉 등 10권의 시집, 그리고 산문집인 〈바람 속에 우는 하프〉를 펴낸 중진시인이다.    또한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부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그의 시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인 주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잠언적인 의미를 지닌 일깨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태로 삶의 애환을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신앙이 제시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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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2-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6]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의 성경」
      지금 내가 읽고 있는/이 책은/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성경이다./이 두툼한 성경을/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그 책이다./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이 두툼한 성경을/두 손으로 모아잡고/아들을 위하여/축복해 주시고/하나님께 간구하시던/그 책이다./붉은 연필로/언더라인을 그으시며/80평생을/의지해 사시던/그 책이다./지금 내가 읽는/성구마다/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어머니의 신앙이/증명해 주시고/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어머니의 성경/어머니의 기도로써/내가 받은 축복/어머니의 기도로써/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읽으면서/자식들을 위하여/주님께 축복을 간구한다./만일 내가 이 성경을/자식들을 위하여/유물로 남기면/우리 집안의 기도는/3대로 이어질 것이다./주여/긍휼이 여기소서/주여/구원하여 주옵소서./주여/축복하여 주옵소서. - 「어머니의 성경」의 전문 이 「어머니의 성경」 은 〈크고 부드러운 손〉에 수록된 시이다. 박목월은 ‘어머니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어머니의 성경’에 집약된 ‘어머니의 신앙’은 시간을 초월해 ‘어머니’라는 의미 속에서 확대시켰다. 이 시는 신앙 속에 살으셨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머니의 기도와 축복을 3대로 이어질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는 5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가 대부분 짧은 행으로 구성되어 간결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시는 한 주제를 장시(長詩)에 가까운 기법을 활용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단순히 리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신앙’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특히 오늘의 신앙은 어머니로부터 이어온 것을 강조하는 의미구조이다. 또한 어머니가 삶의 전체임을 은연중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이 시의 전개양상은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를 확대시키는 데에 있다. ‘오늘’ 즉 ‘지금’의 시간성이 ‘어머니의 신앙’을 이끌어내고, 그 신앙의 유산을 형상화했다. 이 시의 구성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행에서 30행까지로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와 신앙의 삶을 표현했다. 1행에서 4행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임을 강조했다. 5행에서 9행은 어머니가 사경회와 부흥회를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은 성경이다.   10행에서 13행인 “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는 성경에 의지한 어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14행에서 19행까지는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고 간구한 성경이다. 그리고 20행에서 23행은 어머니가 80평생을 의지해 살아온 성경이며, 24행부터 30행까지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과 ‘신앙’, ‘축복’이 깃들어 있는 성경임을 강조했다.   후반부인 31행부터 마지막 행까지는 어머니의 신앙, 즉 그 기도의 축복과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31행에서 39행까지는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결과로 ‘축복’과 ‘은총’을 이어 받아 3대인 자식의 축복을 위해 소망한다.   40행에서 44행은 어머니의 성경을 자식 위해 유물로 남기면, 그 신앙은 3대로 이어질 것을 단언했다. 그리고 45행에서 50행까지를 통해 시인은 이러한 어머니께서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신앙을 긍휼히 여기고,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2-19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5] ‘신앙의 삶’의 생활화 - 박종권의 「출근길」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잠실 롯데사거리/베이징의 인민병사처럼/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마네킹이 된 오래된 라디오 소리/여전히 뉴스는 적색경보지만/눈을 지그시 감고/성서 한 절 가슴에서 꺼내/목메인 목으로 받아 넘긴다/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평택으로 오가던 수백 리 벌써 십수 년/세월 따라 육신도 작아지고/간장이 타는 무시한 소리/수없이 듣고 살아가지만/말씀 몇 절 먹다 보면/오늘 같은 구월의 푸르른 하늘/늘 가슴에 찬다 - 「출근길」의 전문 박종권은 기독교신앙의 삶 속에서 용해된 정서와 시어(詩語)로 시작(詩作)한 시들이다. 이 시들을 구분하면 기독교시와 일반적인 서정시로 나눌 수 있다. 이 시들은 맑고 순수한 이미지와 절제미, 간결한 시어와 구성으로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신앙의 생활화에서 비롯된 삶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신앙의 삶이 생활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화자인 박시인은 오늘의 현대사회를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이란 구절로 함축해 표현하고, 이러한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출근길에서도 신앙의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 속에서 일상을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잠실 롯데사거리에서 평택까지 가는 버스 안의 출근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성서 한 절 가슴에서 꺼내/목메인 목으로 받아 넘긴다”란 구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서 꺼내고, 그 말씀에 감격한 목메인 목으로 받아 먹는다고 고백한 것이다.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생활화하고 있다.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지침이다.   “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란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절까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신앙인들의 ‘3대 실천 강목’이다. 경구(警句)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세 가지 내용을 각각 독립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세 가지가 모여 신앙인의 바른 삶의 자세에 대한 전체를 제시한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란 이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의무가 있다기보다는 기뻐해야만 할 당위성을 가진 자로서 바른 신앙인이라면 매순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강력히 보여 주는 것이다.   신앙인은 기쁨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서, 늘 기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 존재임을 각성시켜 준다.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란 신앙인들에게 기도는 호흡이요 생명이라는 명제를 일깨워 준다. 신앙인들은 생활 중에 수시로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 기도를 생활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매순간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도움을 필요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대의 통로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이러한 것은 그의 시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그리고 감사와 순종함으로 나타난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구도자적인 삶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2-18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4] 사랑하는 이 땅을 노래로 승화 - 엄원용의 「이 땅의 노래」
      푸른 들 푸른 산하에 곱게 자라고 있는/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만이 우리의 것이 아니다//저 버려진 들판에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 하나도/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모두 우리의 것이라는 걸//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이름도 모르게 독하게 독하게 자라나는 저 풀꽃도/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하는 우리의 것이라는 걸//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숨 쉬고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노래하며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 아니더냐//죽어 흰 뼈가루를 뿌리며/거름이 되어라/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아버지의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지금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우리는 모두 그리운 사람들이 아니더냐- 「이 땅의 노래」의 전문     엄원용의 제10시집인 <이 땅의 노래>에 대한 시는 뿌리의식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는 모두를 향한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켰다. 저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멩이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이 땅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형상화했다.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이다. 6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첫 연부터 3연까지 “우리의 것”, 그리고 4연과 5연은 “땅이 아니더냐”를 반복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고, 이 땅에서 지금까지 대대로 살아온 고마운 땅임을 일깨워 준다. 특히 첫 연부터 3연까지는 이 땅에 버려진 돌멩이나, 이름도 없는 풀꽃 등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임을 깨달도록 한다. 또한 4연과 5연도 대대로 일구면서 살아왔던 고마운 땅이며, 죽어서도 흰 뼈가루를 뿌리며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나 “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 “숨쉬고 통곡하며 독하게”나 “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란 구절 등은 이 땅을 지키고 일구어 오면서, 한을 지닌 민족성까지 함축해 표현했다.   첫 연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제2연과 3연을 강조한다. 푸른 들과 산하의 아름다운 꽃을 비롯한 나무들만이 아니라, 들판에 버려지고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와 풀꽃까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4연은 이 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대대로 일구고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고대에는 농기구도 없이 손과 발로 일구어 지금의 옥토로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숱한 풍파 속에서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 왔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기 때문이다. 제5연은 죽어서 흰 뼈가루를 뿌리며 “거름이 되어라”고 아픈 노래를 부르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죽어서 이 땅에 묻히고 거름이 되기를 기원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와 아들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동체적인 연대감을 고취시켜 준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두가 하나임을 표현했다. 지금도 푸른 하늘아래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의 모두가 그리운 사람으로 승화시켜 준다.   이러한 엄원용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 그리고 순수한 이미지와 시어로 구성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삶 속에 잠재된 전통적인 뿌리의식은 회귀의식으로 확대되고, 이 땅과 자연 그리고 고향과 신앙을 소재로 전개한다. 그것은 생명공동체적인 삶으로 공유하도록 인도하고, 사물이나 일상의 삶 속에서의 재발견으로 잠언적인 일깨움의 깊은 감동을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2-11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2] ‘어둠의 세상’ 향한 새 창조 희구 - 김경수의 「창조의 노래」
      바다 밑 같은 고요가 지구를 덮는다/우주가 호흡을 멈춘 듯한 밤의 침실/시간과 의식이 단절된 자리에 새로 떠 오른 별 하나가/어둠에 파 묻혔던 시공을 밝힌다.//혼돈과 유동……우주가 징발하는 창가에/쩌르렁 울리는 목소리에 번쩍 나의 귀가 트인다//어둠——그리고 죽음을 다스리는 태양이여/이제 그 운행을 멈추라/그리하여 이 밤이 다시 새지 말라//그리고 인류는 다시 깨지 않는 영원한 밤으로 달려가라/——지구는 딱, 그 회전을 멈추고/그 거대한 체구를 창세 이전 태초로 옮기라/거기 해도 달도 별도 사람도 짐승도/아무것도 있지 않은 없음 없음만이 있는 세계……//우주는 저 푸르디 푸른 창세 이전으로 즉시 해체되라/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위에 떠도는 바로 거기/창조주 야훼는 눈부신 광채를 입으시고/다시 물 위에 나타나시리라//이미 있든 세계/더러운 발자국의 우주를 없음으로 돌리고/새로 설계된 우주의 새 창조 목록을 펼치신 조물주 야훼는/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새 창조의 첫 울음을 터뜨리리라. 그때//사랑과 은밀의 골짜기/푸른 산은 가슴 열어/긴 내가 흐르고/독사와 노루가 어울리며/아기와 이리가 한자리에 웃음 짓는/새 날이 휘영청 밝으리라//다시 눈물도 서러움도 아픔도 없는/우주의 새 날이 짙푸른 하늘 떠 이고/창창이 밝으리라. - 「창조의 노래」의 전문 이 시는 8연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어둠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창조를 노래한다. 이 시의 발상은 하나님의 우주만물에 대한 창조 이후, 오늘의 현실을 어둠의 세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창조를 회구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다시 어둠의 세상을 멈추고 창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보여 준다.    제1연은 오늘의 현실, 즉 어둠의 세상으로 규정하고, 빛이 어둠을 밝힌다. 그것은 ‘밤의 침실’이나 ‘어둠에 파 묻혔던 시공’이 주는 공간은 어둠의 세상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떠오른 별 하나’는 새로운 창조, 즉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제2연도 제1연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연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혼돈과 유동’은 창조이전이며, ‘쩌르렁 울리는 목소리’는 창조의 시각적 이미지를 담았다.   제3연은 어둠의 세상에 대한 종말을 명령한다. 어둠의 현실을 다스리는 태양의 운행을 멈추고, 밤이 다시 새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제4연은 창조작업을 위해 태초의 세계로 간구한다. “인류는 다시 깨지 않는 영원한 밤으로 달려 가라”나, “——지구는 딱, 그 회전을 멈추고”는 태초의 세계로 이전한다.    제5연은 우주는 창조 이전으로 해체되고, 창조주가 창조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표현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위에 떠도는 바로 거기/창조주 야훼는 눈부신 광채를 입으시고/ 다시 물 위에 나타나시리라”는 「창세기」 1장 2절의 시적 형상화이다. 이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3연과 4연, 5연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오늘의 세상에 대한 종말을 명령이다. 그래서 ‘멈추라’, ‘말라’, ‘가라’, ‘옮기라’, ‘되라’등 명령어로 강력한 시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6연과 7, 8연은 창조의 노래이다. 6연은 새 창조의 시작이고, 7연과 8연은 창조된 세계이다. 「창세기」 제1장에 기록된 창조의 세계를 펼쳐 보여 준다. “독사와 노루가 어울리며/ 아기와 이리가 한자리에 웃음 짓는”란 구절은, 에덴동산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눈물도 서러움도 아픔도 없는”이란 구절은 선악과사건 이전을 회구하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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