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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7
소설에서 경아와 문오를 연결 짓는 기호로서 껌은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소설의 첫 장 ‘돌연한 사건’과 종장 ‘경아 안녕’에 이르는 서사에서 중요 매개체가 껌, 술이다. 눈 내리는 겨울에 시작해 눈이 쏟아지는 겨울로 끝이 난다. 《별들의 고향》은 눈 내리는 초겨울의 어느 날, 경아의 자살이 알려지면서 한때 동거했던 화가 문오가 그녀의 시신을 화장해 한강의 놋 배를 타고 뼛가루를 뿌리는 종장으로 이어진다. 경아와 문오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술, 눈, 껌이라는 기호가 소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경아는 1947년생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단신으로 월남해 강원도 어느 시골 역에서 역부로 일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꽤 알려진 조그마한 양조장 집 딸 다섯 명 중 셋째였다. 경아의 할아버지는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람치고는 술고래였다. 경아가 국민학교 2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 받아 일가족이 영등포 근처에서 셋방을 살았다. 경아는 노래를 잘했다. 음악 선생은 늘 경아를 교단 앞에 세우고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경아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경아가 연인처럼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난한 현실을 맞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만류를 거부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음대 성악과에 입학하였다. 입학금 마감 날에 경아의 어머니는 한 달 7푼의 고리로 이자 돈을 꾸어서 등록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봄에 꾼 돈 7푼의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져 2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경아는 조그마한 무역회사 경리직으로 취직했다. 그 곳에서 유난히 가불을 자주 부탁하는 영업부 직원으로 여섯 살 연상인 강영석과 사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만날수록 영석은 경아의 육체를 구애하였다. 경아는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에 영석에게 떠밀려 마침내 남루한 호텔 방에서 첫정을 맺었다. 경아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다방에서 영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영석은 킬킬거리며 농담으로 치부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스피커에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최인호 작가는 그 당시 음악다방에서 D.J가 틀어주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 당신을’을 주제가이면서 배경 음악으로 흐르게 한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에이 ”. 경아의 첫 남자 영석은 경아의 육체만 사랑했을 뿐이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는 영석과 경아의 헤어짐을 예고한다. 강영석은 거듭 소파 수술을 요구했고 며칠 후 종로 3가 극장 옆 골목에 있는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경아는 애를 지웠다. 의사는 허가 있는 의사가 아닌 듯이 보였고 가운에 땟자국이 흐르고 있었다. 영석은 선금 오천 원을 꺼내주었고 의사는 경아를 진찰실로 데려갔다. 분명 사내는 마취를 한다고 하였지만 심한 통증에 경아는 비명을 발했다. 영석은 그의 어머니가 경아를 탐탁하지 않아 하니 궁리 끝에 경아에게 이별 편지를 보냈다. 영석은 어머니가 중매한 여성과 며칠 내로 결혼할 예정이며 직장도 옮겼으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며 경아에게 쐐기를 박았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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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6
1970년대 문학을 선도한 최인호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경아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역촌동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선일보 가운데를 펼쳐 연재소설 지면부터 읽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 하루를 시작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십사 년 동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신문지면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졌지만. ◇'별들의 고향'의 한 장면 좌 김문오 역 신성일 우 오경아 역 안인숙 대학에 미술 강사로 나가고 있는 김문오는 간밤에 마신 술로 인하여 악몽 같은 어둠을 기어가 수돗가의 수도꼭지를 콸콸 쏟는 차디찬 물에 입을 틀어막는 작업을 대여섯 차례나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에 빠져버렸는데 날카로운 새벽 전화 벨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오후에 서대문경찰서 수사과에 출석하게 되었고 방 형사로부터 어제 시립병원 무료 진료실에서 숨을 거둔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해수욕복을 입고 물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여인이 바로 그와 한 일 년 동안 동거생활 했던 오경아였다. 그녀는 간밤에 술을 먹고 눈길을 걷다가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한 끝에 잠이 들었고 방범대원이 발견해 업어서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경아의 백 속에 김문오의 전화번호와 이름 석 자만 쓰인 메모와 낡은 사진 한 장이 있어서 김문오를 시신을 수습할 적임자로 보고 출석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문오는 시체 인수서류에 서명날인하고 나오는 길에 방 형사에게 그녀의 유품인 핸드백과 주머니 속에 있던 껌 한 개를 받아들고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향한다. 코트 속으로 백을 숨겨 들었고 나머지 한 손에 들었던 껌의 포장지를 무의식중에 벗겼다. 그리고 껌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껌은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게 내 입 안에서 녹아들어갔다. 그녀의 죽음이 입 속에 털어 넣은 껌으로 해서 그녀다운 장난스런 느낌으로 내게 부딪쳐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그녀다운 죽음이군. 나는 웃었다. 그러자 두어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경아의 죽음이 내게 껌 하나로 실감되는군. 그녀의 죽음과 내가 살아있음은 조그만 껌 하나로 연결되는군. 그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조그만 껌을 씹는 것과 마찬가지지. 우리는 무의식중에 껌을 씹다가 아무렇게나 투ㅡ 껌을 뱉어버린다. 더구나 껌 하나를 남겨두고 죽은 그녀의 죽음은 얼마나 그녀다운가. 경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껌을 씹고 있었다. 어느 때는 두세 개를 한꺼번에 넣어서 씹고 있었다. 가끔 귀여운 입을 후ㅡ내불어 크나큰 풍선을 만들어냈다. 경아는 씹던 껌을 버리지 않고 벽에 붙여두었다. 부엌의 찬장 옆에, 욕탕의 거 울 위에, 화장대 크림 병위에, 변기 앞 세면도구함에, 타액을 후면에 잔뜩 묻혀 살짝 벽에 붙여 놓곤 했었다. 문오는 훗날 경아가 벽에 붙여놓은 껌을 발견해 그것들을 뜯어 씹곤 했었다. 최인호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기호로서 경아에게 일상적이다시피 한 껌을 매개체로 사용했다. /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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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⓶ 70년대 청년문화의 토대를 이뤄낸 최인호 소설
최인호는 1971년의 한여름에 그때 빌빌 놀고 있던 덕수국민학교, 서울중고등학교 동창생 이장호 영화 조감독과 청주에 있는 조그마한 여승 절인 화장사란 곳에서 한여름을 머물렀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신문 연재를 쓰게 될 것 같다. 만약 쓰게 된다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소설을 쓰겠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소설의 소재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함부로 소유했다가 함부로 버리는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 이장호는 조감독으로 백수건달이었는데 최인호의 말을 듣더니 당장에 눈빛을 밝히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 소설을 내가 영화화하자. 약속해 임마. 그 소설은 내거야.” ◇소설 별들의 고향은 1974년도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신문에 연재소설을 쓴다는 것은 최인호가 원하는 하나의 바람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리 만무한 황당무계한 소망이었다. 당시 신문소설은 50년대 작가들의 독무대였다. 역사소설은 으레 박종화, 유주현의 차지였으며 현대소설은 40세 이상인 50년대 작가들이 대부분 쓰고 있었다. 손창섭의 《부부》,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가 인기를 끌었으며 60년대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청준이 조선일보에 연재소설을 쓰다가 도중하차한 뒤로는 젊은 작가들에게 신문 연재를 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신문사의 편집진들은 갖고 있었다. 조선일보 문화부장 유경환이 1972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던 황순원과 박영준에게 신문소설에 새 바람을 넣고 심은데 추천할 만한 젊은 작가가 있느냐고 묻고 그이들이 최인호를 거론해주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손장순이 쓰는 《세화의 성》이란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을 때에 유경환이 최인호를 만나 신문 연재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스물여섯 살 최인호에게 최대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일보에 연재소설을 쓰게 되는 기회가 성큼 다가왔다. 최인호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의 소냐, 톨스토이의 《부활》에서의 카츄사,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의 올렌가, 토마스 하디의 테스처럼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누구나의 가슴속에 한번쯤 깃들었다 스러지는 누구나의 호주머니에 한번쯤은 소유했다 버려지는 여인, 그러나 평범하기 때문에 누구나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연인, 한국판 올렌가와 테스를, 예쁘고 착한 환상적 여인상을 그려내려 하였다.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되어 마치 자신의 첫사랑이나 친근하게 느껴져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여주인공을 내세우고자 했다. 별들의 고향 1970년대 문학을 선도한 최인호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경아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역촌동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선일보 가운데를 펼쳐 연재소설 지면부터 읽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 하루를 시작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십사 년 동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신문지면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졌지만.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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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9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이반은 도시의 황폐화를 바라보며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1984년에는 희곡<바람 타는 성>으로 제20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았다. 조보라미는 이반의 분단극은 종교극과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반의 종교극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타자를 외면하지않고 타자의 고통에 대해 나를 희생할 정도로 책임지는 것.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진리와 자유, 평화가 실현된다는 기독교적인 이상이다. 이반의 분단극은 월남민의 절절한 망향의식을 넘어 분단 극복 방안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현실의 억압 혹은 작가의 한계로 인해 분단극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하게 추구되지 못했다면, 한일문제를 다룬 종교극에서 비로서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한일 문제를 다룬 종교극은 분단과 종교 문제가 결합,착종되어 있는 이반 희곡의 특징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된다. 아울러 이반의 분단극에서 제기된 분단 극복 방안이 종교극에서 풀린다는 것은 그의 전 작품세계가 기독교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반은 2008년 8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정년 퇴임했다. 그는 오십여 년 동안 육지. 땅,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이제는 어렸을 때의 바닷가로 돌아가서 바다와 하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설악문화예술포럼이 주관한 '작고문인 이반의 희곡작품연구 심포지엄'이 지난 2022년19일 속초문화예술회관소강당에서 열렸다. 이반은 북쪽 고향 홍원이 가장 가까운 고성, 감나무가 가득한 왕골마을의 싸근다리집으로 부인 한순자와 이사를 하고 살았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집에, 글은 아동문학가 이현주에게 받아서 문간에 반시재(盤柿齋) 라는 현판을 달았다 ’ 반시재‘를 풀어 보면, 본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이명수인데 휴전 직후 속초항에 내려와 있던 미군이 이명수를 양아들로 삼으면서 피터peter 베드로라고 불렀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 있고 명수는 소년 때부터 이반이라는 이름을 썼다. 시(柿)는 감나무이고 재(齋)는 집이란 뜻이다. 그래서 ’반이네 감나무집‘이라는 의미이다. 이반은 귀향해 속초예총 회장을 지내며 지역 연극진흥에 큰 힘을 보탰다. 그는 2018년9월26일, 추석날 하나님 곁으로 떠날 때까지 분단극과 종교극으로 ,하늘과 바다를 그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이반은 제7회 기독교문화대상 희곡 <심판을 막는 사람들>로 연극부문 상을 받았다. 이반의 희곡선집에는 빠졌지만, 그의 작품을 다 모아 보면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의 다른 이름으로 ’심판을 막는 사람‘이라고 명명 해도 될 것이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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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작품의 현실 장면에서 연기자들은 타고르가 3.1운동 후 동경한국 YMCA에 들려 주요한 선생께 한국이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다는 시를 한 편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중극장면에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 감리교 본부 파견목사, 전동례 장로,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나온다. 극작가 이반은 일본인들의 참회의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는 소망과, 마을 사람들의 교회 건축 찬반론에 대한 답으로 전동례 장로의 처용무를 제시할 것이다. 《아, 제암리여!》는 1999년 우지다 토루 연출로 일본극단 3.1회의 공연으로 일본 동경 Y스페이스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에는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반은 필자에게도 주변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처용무가 대미를 장식해야 한일간의 화해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이반은 한국 기독교가 한국의 정신과 정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국과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 기독교 제의나 예배극을 써야겠다는 것은 이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가 하르트만 선생과 부라우네 교수와도 예배극을 쓰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17세기 청나라는 한반도로 쳐들어왔다. 조선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는 산성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는 두 동생과 함께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세자는 청.명 전쟁에 청군 편으로 참전하는 등 청의 환심을 샀다. 명나라가 함락된 다음,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독일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기독교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아담 샬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과학 문명의 유물을 선물로 받아갖고 온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므로 그대로 극으로 꾸미면 사극이 된다. 이반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만 한다면 창작되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극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것이다. <소현세자>에서 청국은 조선에게 무기사찰, 파병 등을 요구한다. 이반은 기독교 예배도 신화를 음송하거나 극화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미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을 정확하게 쓴 기록문이나 사실적 산문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배극의 언어는 묵시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소현세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기독교 순교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순교관을 대화나 에피소드, 또는 코러스를 통해 표현하고 소현세자가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은 극단 예맥에 의하여 2005년 CTS 아트홀, 일본 동경 삼백인극장에서 표재순 연출로 공연했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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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15개월에 걸친 기획과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6월 11일-14일까지 잠실체육관이란 대형공간에다 토탈 디어터로서의 백주년 기념 제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상기작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회장인 강원용 목사가 김문환 교수에게 기획 의뢰하여 이 반, 이강백의 공동구성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표재순의 제작고문 형식의 연출적 참여와 이경열 제작총무의 뒷받침으로 토탈 디어터로서의 대형무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화의 총체적 소산에 의하여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선민 이스라엘 역사와 대비시키면서 합창, 무용, 시, 사물놀이, 연극 등의 결정체로 표출한 것이다.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1985년 8.11~14 잠실체육관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빛과 하나되어》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역사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래의 지평선까지 함께 가야함을 보여준 것이 《빛과 하나되어》인 것이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의 공연공간을 더 이상 전통적 교회 예배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강당이나 체육관, 야외공간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의상이나 연극적 대소도구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예배극에 대한 고전적 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또는 성서와는 무관한 듯한 세계 현상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은 브레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하르트만은 텍스트로 성서를 택하고 언어도 성서적 언어로 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빛과 하나되어》는 하르트만의 예배극이 교회에서 잠실체육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빛과 하나되어란 함축된 제목으로 입체화한 것이 총체예술 <빛과 하나되어>이다. 본격적이고도 완숙한 대형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빛과 하나되어>는 서장에 빛의 근원을 찾아낸 데 이어, 제1장 빛이 동방에 비치니, 제2장 횃불은 타올랐으나, 제3장 불씨를 살리려고, 제4장 빛을 되찾은후,종장 빛과 하나되어로 이어지면서 성경과 히브리사와 한국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을 증거하고 있다. 박두진 시 「해」가 대합창곡으로 대형 성가대에 의하여 불려지며 선교사 입국 등의 에피소드에 이어 윤동주의 「십자가」를 송창식이 독창으로 부르며 해방을 자축하는 사물놀이에 이어 정희성의 시 「울엄니 나를 낳아」가 성우향의 창으로 불려지며 관중합창에 이어 세상을 향한 행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형 십자가형의 무대장치를 중심으로 한 미술감독 신일수, 무용감독 문일지, 작곡 및 음악감독 이건용의 협업은 토탈 디어터 《빛과 하나되어》를 가능케 하였다. 김성원, 고은정, 강효실, 김인문, 문오장, 문희원, 서인석, 송재호, 최길호, 최명수, 한인수, 정영숙, 최선자등 기독교 연기자의 총출동은 기독교 백년의 서사를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잠실체육관 대형공간에다 풀어 넣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목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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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7
- 소설에서 경아와 문오를 연결 짓는 기호로서 껌은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소설의 첫 장 ‘돌연한 사건’과 종장 ‘경아 안녕’에 이르는 서사에서 중요 매개체가 껌, 술이다. 눈 내리는 겨울에 시작해 눈이 쏟아지는 겨울로 끝이 난다. 《별들의 고향》은 눈 내리는 초겨울의 어느 날, 경아의 자살이 알려지면서 한때 동거했던 화가 문오가 그녀의 시신을 화장해 한강의 놋 배를 타고 뼛가루를 뿌리는 종장으로 이어진다. 경아와 문오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술, 눈, 껌이라는 기호가 소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경아는 1947년생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단신으로 월남해 강원도 어느 시골 역에서 역부로 일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꽤 알려진 조그마한 양조장 집 딸 다섯 명 중 셋째였다. 경아의 할아버지는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람치고는 술고래였다. 경아가 국민학교 2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 받아 일가족이 영등포 근처에서 셋방을 살았다. 경아는 노래를 잘했다. 음악 선생은 늘 경아를 교단 앞에 세우고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경아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경아가 연인처럼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난한 현실을 맞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만류를 거부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음대 성악과에 입학하였다. 입학금 마감 날에 경아의 어머니는 한 달 7푼의 고리로 이자 돈을 꾸어서 등록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봄에 꾼 돈 7푼의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져 2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경아는 조그마한 무역회사 경리직으로 취직했다. 그 곳에서 유난히 가불을 자주 부탁하는 영업부 직원으로 여섯 살 연상인 강영석과 사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만날수록 영석은 경아의 육체를 구애하였다. 경아는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에 영석에게 떠밀려 마침내 남루한 호텔 방에서 첫정을 맺었다. 경아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다방에서 영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영석은 킬킬거리며 농담으로 치부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스피커에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최인호 작가는 그 당시 음악다방에서 D.J가 틀어주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 당신을’을 주제가이면서 배경 음악으로 흐르게 한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에이 ”. 경아의 첫 남자 영석은 경아의 육체만 사랑했을 뿐이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는 영석과 경아의 헤어짐을 예고한다. 강영석은 거듭 소파 수술을 요구했고 며칠 후 종로 3가 극장 옆 골목에 있는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경아는 애를 지웠다. 의사는 허가 있는 의사가 아닌 듯이 보였고 가운에 땟자국이 흐르고 있었다. 영석은 선금 오천 원을 꺼내주었고 의사는 경아를 진찰실로 데려갔다. 분명 사내는 마취를 한다고 하였지만 심한 통증에 경아는 비명을 발했다. 영석은 그의 어머니가 경아를 탐탁하지 않아 하니 궁리 끝에 경아에게 이별 편지를 보냈다. 영석은 어머니가 중매한 여성과 며칠 내로 결혼할 예정이며 직장도 옮겼으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며 경아에게 쐐기를 박았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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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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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6
- 1970년대 문학을 선도한 최인호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경아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역촌동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선일보 가운데를 펼쳐 연재소설 지면부터 읽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 하루를 시작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십사 년 동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신문지면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졌지만. ◇'별들의 고향'의 한 장면 좌 김문오 역 신성일 우 오경아 역 안인숙 대학에 미술 강사로 나가고 있는 김문오는 간밤에 마신 술로 인하여 악몽 같은 어둠을 기어가 수돗가의 수도꼭지를 콸콸 쏟는 차디찬 물에 입을 틀어막는 작업을 대여섯 차례나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에 빠져버렸는데 날카로운 새벽 전화 벨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오후에 서대문경찰서 수사과에 출석하게 되었고 방 형사로부터 어제 시립병원 무료 진료실에서 숨을 거둔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해수욕복을 입고 물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여인이 바로 그와 한 일 년 동안 동거생활 했던 오경아였다. 그녀는 간밤에 술을 먹고 눈길을 걷다가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한 끝에 잠이 들었고 방범대원이 발견해 업어서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경아의 백 속에 김문오의 전화번호와 이름 석 자만 쓰인 메모와 낡은 사진 한 장이 있어서 김문오를 시신을 수습할 적임자로 보고 출석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문오는 시체 인수서류에 서명날인하고 나오는 길에 방 형사에게 그녀의 유품인 핸드백과 주머니 속에 있던 껌 한 개를 받아들고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향한다. 코트 속으로 백을 숨겨 들었고 나머지 한 손에 들었던 껌의 포장지를 무의식중에 벗겼다. 그리고 껌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껌은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게 내 입 안에서 녹아들어갔다. 그녀의 죽음이 입 속에 털어 넣은 껌으로 해서 그녀다운 장난스런 느낌으로 내게 부딪쳐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그녀다운 죽음이군. 나는 웃었다. 그러자 두어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경아의 죽음이 내게 껌 하나로 실감되는군. 그녀의 죽음과 내가 살아있음은 조그만 껌 하나로 연결되는군. 그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조그만 껌을 씹는 것과 마찬가지지. 우리는 무의식중에 껌을 씹다가 아무렇게나 투ㅡ 껌을 뱉어버린다. 더구나 껌 하나를 남겨두고 죽은 그녀의 죽음은 얼마나 그녀다운가. 경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껌을 씹고 있었다. 어느 때는 두세 개를 한꺼번에 넣어서 씹고 있었다. 가끔 귀여운 입을 후ㅡ내불어 크나큰 풍선을 만들어냈다. 경아는 씹던 껌을 버리지 않고 벽에 붙여두었다. 부엌의 찬장 옆에, 욕탕의 거 울 위에, 화장대 크림 병위에, 변기 앞 세면도구함에, 타액을 후면에 잔뜩 묻혀 살짝 벽에 붙여 놓곤 했었다. 문오는 훗날 경아가 벽에 붙여놓은 껌을 발견해 그것들을 뜯어 씹곤 했었다. 최인호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기호로서 경아에게 일상적이다시피 한 껌을 매개체로 사용했다. /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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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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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⓶ 70년대 청년문화의 토대를 이뤄낸 최인호 소설
- 최인호는 1971년의 한여름에 그때 빌빌 놀고 있던 덕수국민학교, 서울중고등학교 동창생 이장호 영화 조감독과 청주에 있는 조그마한 여승 절인 화장사란 곳에서 한여름을 머물렀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신문 연재를 쓰게 될 것 같다. 만약 쓰게 된다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소설을 쓰겠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소설의 소재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함부로 소유했다가 함부로 버리는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 이장호는 조감독으로 백수건달이었는데 최인호의 말을 듣더니 당장에 눈빛을 밝히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 소설을 내가 영화화하자. 약속해 임마. 그 소설은 내거야.” ◇소설 별들의 고향은 1974년도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신문에 연재소설을 쓴다는 것은 최인호가 원하는 하나의 바람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리 만무한 황당무계한 소망이었다. 당시 신문소설은 50년대 작가들의 독무대였다. 역사소설은 으레 박종화, 유주현의 차지였으며 현대소설은 40세 이상인 50년대 작가들이 대부분 쓰고 있었다. 손창섭의 《부부》,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가 인기를 끌었으며 60년대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청준이 조선일보에 연재소설을 쓰다가 도중하차한 뒤로는 젊은 작가들에게 신문 연재를 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신문사의 편집진들은 갖고 있었다. 조선일보 문화부장 유경환이 1972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던 황순원과 박영준에게 신문소설에 새 바람을 넣고 심은데 추천할 만한 젊은 작가가 있느냐고 묻고 그이들이 최인호를 거론해주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손장순이 쓰는 《세화의 성》이란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을 때에 유경환이 최인호를 만나 신문 연재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스물여섯 살 최인호에게 최대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일보에 연재소설을 쓰게 되는 기회가 성큼 다가왔다. 최인호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의 소냐, 톨스토이의 《부활》에서의 카츄사,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의 올렌가, 토마스 하디의 테스처럼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누구나의 가슴속에 한번쯤 깃들었다 스러지는 누구나의 호주머니에 한번쯤은 소유했다 버려지는 여인, 그러나 평범하기 때문에 누구나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연인, 한국판 올렌가와 테스를, 예쁘고 착한 환상적 여인상을 그려내려 하였다.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되어 마치 자신의 첫사랑이나 친근하게 느껴져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여주인공을 내세우고자 했다. 별들의 고향 1970년대 문학을 선도한 최인호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경아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역촌동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선일보 가운데를 펼쳐 연재소설 지면부터 읽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 하루를 시작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십사 년 동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신문지면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졌지만.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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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⓶ 70년대 청년문화의 토대를 이뤄낸 최인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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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9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이반은 도시의 황폐화를 바라보며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1984년에는 희곡<바람 타는 성>으로 제20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았다. 조보라미는 이반의 분단극은 종교극과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반의 종교극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타자를 외면하지않고 타자의 고통에 대해 나를 희생할 정도로 책임지는 것.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진리와 자유, 평화가 실현된다는 기독교적인 이상이다. 이반의 분단극은 월남민의 절절한 망향의식을 넘어 분단 극복 방안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현실의 억압 혹은 작가의 한계로 인해 분단극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하게 추구되지 못했다면, 한일문제를 다룬 종교극에서 비로서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한일 문제를 다룬 종교극은 분단과 종교 문제가 결합,착종되어 있는 이반 희곡의 특징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된다. 아울러 이반의 분단극에서 제기된 분단 극복 방안이 종교극에서 풀린다는 것은 그의 전 작품세계가 기독교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반은 2008년 8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정년 퇴임했다. 그는 오십여 년 동안 육지. 땅,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이제는 어렸을 때의 바닷가로 돌아가서 바다와 하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설악문화예술포럼이 주관한 '작고문인 이반의 희곡작품연구 심포지엄'이 지난 2022년19일 속초문화예술회관소강당에서 열렸다. 이반은 북쪽 고향 홍원이 가장 가까운 고성, 감나무가 가득한 왕골마을의 싸근다리집으로 부인 한순자와 이사를 하고 살았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집에, 글은 아동문학가 이현주에게 받아서 문간에 반시재(盤柿齋) 라는 현판을 달았다 ’ 반시재‘를 풀어 보면, 본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이명수인데 휴전 직후 속초항에 내려와 있던 미군이 이명수를 양아들로 삼으면서 피터peter 베드로라고 불렀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 있고 명수는 소년 때부터 이반이라는 이름을 썼다. 시(柿)는 감나무이고 재(齋)는 집이란 뜻이다. 그래서 ’반이네 감나무집‘이라는 의미이다. 이반은 귀향해 속초예총 회장을 지내며 지역 연극진흥에 큰 힘을 보탰다. 그는 2018년9월26일, 추석날 하나님 곁으로 떠날 때까지 분단극과 종교극으로 ,하늘과 바다를 그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이반은 제7회 기독교문화대상 희곡 <심판을 막는 사람들>로 연극부문 상을 받았다. 이반의 희곡선집에는 빠졌지만, 그의 작품을 다 모아 보면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의 다른 이름으로 ’심판을 막는 사람‘이라고 명명 해도 될 것이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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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9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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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작품의 현실 장면에서 연기자들은 타고르가 3.1운동 후 동경한국 YMCA에 들려 주요한 선생께 한국이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다는 시를 한 편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중극장면에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 감리교 본부 파견목사, 전동례 장로,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나온다. 극작가 이반은 일본인들의 참회의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는 소망과, 마을 사람들의 교회 건축 찬반론에 대한 답으로 전동례 장로의 처용무를 제시할 것이다. 《아, 제암리여!》는 1999년 우지다 토루 연출로 일본극단 3.1회의 공연으로 일본 동경 Y스페이스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에는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반은 필자에게도 주변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처용무가 대미를 장식해야 한일간의 화해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이반은 한국 기독교가 한국의 정신과 정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국과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 기독교 제의나 예배극을 써야겠다는 것은 이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가 하르트만 선생과 부라우네 교수와도 예배극을 쓰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17세기 청나라는 한반도로 쳐들어왔다. 조선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는 산성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는 두 동생과 함께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세자는 청.명 전쟁에 청군 편으로 참전하는 등 청의 환심을 샀다. 명나라가 함락된 다음,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독일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기독교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아담 샬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과학 문명의 유물을 선물로 받아갖고 온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므로 그대로 극으로 꾸미면 사극이 된다. 이반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만 한다면 창작되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극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것이다. <소현세자>에서 청국은 조선에게 무기사찰, 파병 등을 요구한다. 이반은 기독교 예배도 신화를 음송하거나 극화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미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을 정확하게 쓴 기록문이나 사실적 산문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배극의 언어는 묵시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소현세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기독교 순교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순교관을 대화나 에피소드, 또는 코러스를 통해 표현하고 소현세자가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은 극단 예맥에 의하여 2005년 CTS 아트홀, 일본 동경 삼백인극장에서 표재순 연출로 공연했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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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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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15개월에 걸친 기획과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6월 11일-14일까지 잠실체육관이란 대형공간에다 토탈 디어터로서의 백주년 기념 제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상기작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회장인 강원용 목사가 김문환 교수에게 기획 의뢰하여 이 반, 이강백의 공동구성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표재순의 제작고문 형식의 연출적 참여와 이경열 제작총무의 뒷받침으로 토탈 디어터로서의 대형무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화의 총체적 소산에 의하여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선민 이스라엘 역사와 대비시키면서 합창, 무용, 시, 사물놀이, 연극 등의 결정체로 표출한 것이다.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1985년 8.11~14 잠실체육관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빛과 하나되어》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역사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래의 지평선까지 함께 가야함을 보여준 것이 《빛과 하나되어》인 것이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의 공연공간을 더 이상 전통적 교회 예배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강당이나 체육관, 야외공간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의상이나 연극적 대소도구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예배극에 대한 고전적 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또는 성서와는 무관한 듯한 세계 현상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은 브레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하르트만은 텍스트로 성서를 택하고 언어도 성서적 언어로 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빛과 하나되어》는 하르트만의 예배극이 교회에서 잠실체육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빛과 하나되어란 함축된 제목으로 입체화한 것이 총체예술 <빛과 하나되어>이다. 본격적이고도 완숙한 대형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빛과 하나되어>는 서장에 빛의 근원을 찾아낸 데 이어, 제1장 빛이 동방에 비치니, 제2장 횃불은 타올랐으나, 제3장 불씨를 살리려고, 제4장 빛을 되찾은후,종장 빛과 하나되어로 이어지면서 성경과 히브리사와 한국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을 증거하고 있다. 박두진 시 「해」가 대합창곡으로 대형 성가대에 의하여 불려지며 선교사 입국 등의 에피소드에 이어 윤동주의 「십자가」를 송창식이 독창으로 부르며 해방을 자축하는 사물놀이에 이어 정희성의 시 「울엄니 나를 낳아」가 성우향의 창으로 불려지며 관중합창에 이어 세상을 향한 행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형 십자가형의 무대장치를 중심으로 한 미술감독 신일수, 무용감독 문일지, 작곡 및 음악감독 이건용의 협업은 토탈 디어터 《빛과 하나되어》를 가능케 하였다. 김성원, 고은정, 강효실, 김인문, 문오장, 문희원, 서인석, 송재호, 최길호, 최명수, 한인수, 정영숙, 최선자등 기독교 연기자의 총출동은 기독교 백년의 서사를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잠실체육관 대형공간에다 풀어 넣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목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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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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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 함 - 존 밀턴의 '복낙원'
- 마태복음 4장 5~6절에서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복낙원〉 제4편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성전 가장 높은 정상에 올려놓고 조롱 섞인 말로 “서 있기 못하겠으면/뛰어 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안전 할 터이니,/기록되기를 ‘그 분은 처사들에게 명령하여/저들의 손으로 그대를 받들지니, 그대 혹시라도/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외다.’”고 시험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예수님은 “또한 기록되기를,/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성전 꼭대기에 섰다. 사탄은 경악하여 강타당한 듯이 쓰러졌다. 밀턴은 사탄이 스러지는 모양이 마치 안타이오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땅에서 공중으로 들려서 죽임당하여 팽개침을 당하는 것에 비유했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안타이오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자기의 땅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그는 땅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기 때문에 아무리 땅에 내동댕이쳐져도 힘이 꺾이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그와 싸울 때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땅에서 들어 올려서 죽여서 팽개쳐 버렸다. 밀턴은 사탄이 예수님에게 형편없이 패배당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안타이오스를 거듭 물리친 것처럼 예수님도 사탄을 거듭 물리쳤다고 하여 헤라클레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오만한 유혹자 사탄은 여러 번 격퇴를 당하고도, 새로이 공격을 가하여 승리자 예수님이 스러지는 것을 보려고 하다가, 오만한 가운데, 오히려 자기가 쓰러졌다. 사탄은 공포와 초조함 가운데서, 함께 모의하던 동료들에게 파멸과 절망과 경악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오만한 사탄이 떨어져 나가자, 천사들의 무리가 불같은 날개를 활짝 펴고서, 구세주에게로 날아가서, 그 불안한 장소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깃털 수레로 사뿐히 모셔서, 화창한 공중으로 올라가서, 꽃이 만발한 골짜기의 녹색 둑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분 앞에 하늘의 식탁 위에 신성한 하늘의 음식과 생명나무에서 따 온 과일을 놓고, 생명의 샘에서 생수를 가져다 차려놓았다. 지쳐 있는 그를 곧 회복시켰고, 배고픔과 갈증이 치료되었다. 그때 천사들의 합창대가 오만한 유혹자를 이긴 구세주를 위해 승리의 찬송가를 불렀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고/하나님다우신 힘으로, 아버지의 옥좌를 노린 /낙원의 도둑에 대항하셨도다./당신께서는 그를 오래전에 정복하시어/하늘로부터 그의 모든 군대와 함께 내치셨고/유혹을 물리치심으로, 타락한 아담의 원수를/갚으시고,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고, 속임수로 얻은 승리를 헛되게 하셨도다./사탄은 앞으로는 낙원에다 한 번도/발을 들여놓고 유혹하지 못하리니.”“가장 높은 분의 아들이시여, 두 세계 하늘과 땅의 상속자여,/사탄의 진압자시여, 그대의 영광된 사업을/이제 착수하소서. 그리고 인류를 구하소서.”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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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 함 - 존 밀턴의 '복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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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것이 소망 - 존 밀턴의 「실낙원」
-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셨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그의 서사시 〈실낙원〉(1667)에서 사탄은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함으로써 사탄의 교만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밀턴은 사탄은 지옥의 뱀이었다고 한다(요한계시록 12장 9절). 그놈은 교만하여 그의 모든 반역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반역하기만 하면, 동료 이상의 영광을 얻고, 지고하신 분과 동등해지리라 믿고(이사야 14장 12~14절), 야망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하여 불경스런 전쟁, 즉 교만한 싸움을 하늘에서 헛되이 일으켰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감히 당신께 싸움을 걸어온 그를 하늘에서 불붙여 번개같이 떨어지게 하여(누가복음 10장 18절), 무서운 타락과 파멸을 가하여 천사들의 고장으로부터 바닥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지셨다. 밀턴은 지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황량하고 거친, 처참한 광경을,/ 주위 사방에는 무서운 암굴, 그것은 마/불길 이는 화덕,/그러나 이 화염에는/빛이 없고, 간신히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에/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비참한 과역뿐,/슬픔의 지역, 우수의 그림자, 평화와/안식은 없고,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희망마저 없고, 다만 끝없는 가책과/한없이 꺼지지 않고 불타는 유황에 붙은/불의 홍수가 끝없이 휘몰아치는 곳/아, 떨어지기 전의 그곳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떨어진 천사인 사탄은 자신의 속성은 “약한 것은 궁상맞다”고 하고, “무엇이든 선행은 우리 일이 아니다./그의 높은 뜻에 거역하여,/언제나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그러므로 그의 섭리가/우리의악에 선을 찾아내고자 한다면,/우리의 할 일은 그 목적을 꺾어/ 선에서마저 항상 악의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라야 하리”라고 한다. 패배한 천사장 사탄은 자신의 한탄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우리가 하늘과 바꿔서 차지할 자린가. 이 슬픈 어둠이/저 하늘의 빛 대신인가. 도리 없지. 지금/군주인 그는 제가 옳다 여기면 무엇이든/처치하고 명령할 수 있으니 그에게서 멀수록 좋다./음부여, 그리고 너 무한히 깊은 지옥이여,/너의 새 주인을 맞으라, 장소나/때에 따라 변치 않는 마음의 소유자를,/마음은 마음이 제집이라, 스스로/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사탄은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서 사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말하여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한다. 사탄의 속성은 교만하고 오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노예화하려는 야망이 자신의 본질임을 토해내고 있다. 사탄의 존재 목적 선언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6~28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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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것이 소망 - 존 밀턴의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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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 - 존 키츠의 「희랍 항아리의 송시」 (2)
- 요한1서 4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 사랑 자체이며, 사랑의 원천이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희랍 항아리의 송시〉(1819) 4연과 5연에서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여, 종교적인 차원의 사랑의 영원함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넷째 연에서 공동체의 종교 의식에 대하여 노래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송아지를 끌고 가는 사제가 있고, 모두 제사를 드리러 갔기에 해변의 마을이나 산위의 성채는 텅 비었다. 항아리의 마을은 영원히 텅 비고, 거리는 영원히 조용하다. 시인은 “작은 마을이여, 그대의 거리들은 영원히/조용하리라. 그대가 왜 황폐하게 되었는가를/말하려고 한 사람도 돌아올 수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다섯째 연에서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읊음으로서 미와 진리를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희랍의 형체여! 아름다운 자태여!/숲의 나무 가지들과 짓밟힌 잡초와 함께/대리석에 아로새긴 젊은이들과 처녀들./그대 말없는 현상이여, 우리의 생각이 미칠 수 없도록 애타게 하는구나/영원이 그러는 것처럼, 차가운 목가여!/낡은 세대가 이 세대를 황폐케 해버릴 때에도/그대는 남으리라 인간의 친구로. 우리의 슬픔과 또 다른 슬픔 가운데서/그대는 말하리라,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라고/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리라.” 아름다운 항아리는 남자들과 처녀들, 나무와 풀로 장식되어 있기에, 시인의 사색을 어딘지 모르는 영원에로 이끌어 간다. 시인의 세대가 가고 난 다음, 그대(항아리)는 아직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그대는 친구에게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그대가 이 땅에서 아는 전부이며, 그대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라고 한다. 시인 키츠의 이 시 구절의 내용은 이 시 자체의 문맥에서 검토해야 한다.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 시인은 이 땅 위에 남녀의 사랑과 음악을 통한 사랑의 송가를, 이 땅 넘어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멜로디와 연결함으로써 영원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상상 속에서, 항아리의 일시적 행복한 상황을 영구적인 것 안에서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시인 키츠나 그의 세대는 항아리의 그림에서처럼 영원할 수 없다. 늙어지는 나이는 그들에게 비애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의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가 지속하고 있는 한, 시인과 시인 다음에 오는 세대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과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항아리든 항아리에 대한 시이든, 그것들은 어렴풋한 불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어서 장래의 천국을 인식하게 한다. 시인이 “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라고 읊을 때, 그는 이 땅 넘어 하늘나라를 연상하게 한다. 비록 시인 키츠는 특별히 종교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동안 행복의 짧음을 명상하면서, 언뜻 하늘나라를 연상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란 것은 지상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나라와 연결될 때 그 아름다음은 진리란 뜻이리라. 요한1서 4장 8절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원한 아름다움이요 영원한 진리이리라!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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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 - 존 키츠의 「희랍 항아리의 송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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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시편 55편 4~5절에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라고 하여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히브리서 13:3에서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여 고난당하는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시학〉 6장에서, 비극은 진지하고 완벽한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하면서, 비극은 주인공이 이성보다 과도한 감정을 갖게 될 때 성격의 비극적 결함으로 비극적 전락으로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을 통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한다고 했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두 가지 범주로 이해한다. 첫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죄인의 영혼이 정화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윤회·응보 등을 믿는 신비적인 종교인 오르페우스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해하고, 둘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주로 의학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나쁜 체액을 몸에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가 무슨 뜻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을 그의 〈정치학〉 제8책에서 음악을 세 종류로 구분하면서 말하고 있다. 첫째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 두 번째는 휴양을 위해서, 세 번째는 감정의 발산을 위해서라고 했다. 음악의 세 번째 목적인 감정의 발산은, 그는 주신적 음악 혹은 열광적 음악이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문화적 교육을 위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위안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음악의 목적은 카타르시스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곡조는 신비한 열광으로 영혼을 흥분시킴으로써, 마치 그 영혼은 의학적 치료와 어떤 깨끗해짐을 통해서 회복되고 평온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비극을 관람할 때,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종류의 영적정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심리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비극의 고통을 봄으로써, 그 비극 너머에서 보게 되는 지혜나 직관에 도달하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적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영적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의 감정이 교차함으로써 자신의 당면한 문제를 이열치열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를 배격하고, 카타르시스는 비극적인 삶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겸허하게 되고, 인간적인 동류의식으로 그 비극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심리주의자들에게 카타르시스는 두려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감정이고, 연민은 반대로 고통당하는 주인공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줄거리가 복잡하면 부자에서 가난으로, 무지에서 지식으로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하나는 운명의 역정으로서, 비극의 행위가 처음 취한 방향보다 반대 코스로 가는 것이고, 다른 것은 무지로부터 지식으로의 변화로 주인공들 사이에 사랑이나 증오심을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성격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지로 아버지 라이어서 부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네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이 부왕의 살인자임을 알고는 자신의 두 눈을 빼버린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인간의 교만이 비극적인 결함이 되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반드시 죽게 되는 운명론에 메이게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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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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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 2021년 다시 새해가 밝아 옵니다, 생각하면 과분한 선물입니다지구는 제 궤도를 충직하게 밟고, 한 올의 어긋남도 없이밤 지나면 동트고 저물면 저녁별을 부지런히 눈앞에 진설하더니 오늘 새벽, 저 찬란하고 우렁차게 다가오는 새 하늘 새 빛 두 팔 벌려 안아 들입니다, 좁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새해여, 오염된 이 땅을, 고치려고 오십니까?어긋난 아침과 저녁을 바로 잡으려고 오십니까? 사정없이 헝클어진 매듭과 관계를 풀어 주려고 오십니까? 저물어가는 세상 어지러운 그늘을 조심조심 딛고 오는 새해여!오소서, 어서 오소서!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고 저 붉은 동쪽 하늘을 함께 바라봅니다 지난해 시작된 역병은 온 누리를 아직도 휘두르고 있지만, 풀과 나무는 때가 되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동서로 남북으로 부는 바람은 먼지와 뜬소문을 실어나르고강물은 바다로 흘러 밀물과 썰물을 다독거렸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돌아다봐야 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정말 그런가? 아마존의 밀림을 마구 베어서 해마다 숲이 좁아진다더니 거기 따른 생명의 사슬, 그 엄청난 비밀도 무너진다더니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끓고 온대와 열대가 섞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병든 땅의 아픔이 극에 달하여 새해도 오지 못하겠구나, 탐욕이 불러온 하늘의 경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임을 뉘우쳤습니다 밝아 오는 새해여, 다시 새해를 허락하신 이여, 고맙습니다, 이제는 순리따라 아름답게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분노와 원망, 다툼과 고자질, 미움과 앙갚음에서 벗어나,우울과 번뇌는 씻어 내고 혼돈과 방황에서 돌아서겠습니다거대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 그 리듬을 마음대로 깨뜨리고무상으로 가졌던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몰랐습니다날마다 누렸던 보통의 날들,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습니다묵은 가난이야 견딜 수 있지만, 철모르는 벌거숭이 저 어린 것들그들이 살아갈 내일의 마당을 북돋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헤쳐갈 쾌청한 대기, 손잡고 함께 갈 이웃을 불러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랑하는 지혜를 가르치겠습니다 새해에는 서로 언 손을 잡고 눈빛을 맞춰 용서하게 하소서당신께서 예정하신 길이 어디입니까, 어리석은 눈에도 밝히 열려서 나라는 갈수록 바르게 융성하여 세계에 우뚝 솟는 부강한 힘 주시고 건강한 국민은 발을 맞추어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게 하소서하루 살면 하루만큼 늘어나던 빚도 새해에는 부지런히 갚을 수 있게 하나를 가졌으면 그 하나를 기뻐하고, 허황된 것은 넘보지 않게 하소서겸허하구나, 착하고 어여쁘구나, 하늘에서 땅에서 칭찬하는 소리, 새해에는 당신께서 주시는 복을, 성결하고 따뜻한 복을 받고 싶습니다, 복 받을 수 있게 살겠습니다 당신이여, 굽어보며 끄덕이시는지요? 2021년 밝아오는 새해에는 허락하시옵소서, 부디 허락하여 주옵소서. / 시인·호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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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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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1좦에서 젊고 아름다울 때 자녀를 많이 가지라고 권면한다.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들 자녀들에게는 지혜와 미와 번영이 있게 되지만,/자녀가 없는 곳에는 어리석음과 노령과 죽음만이 있게 되오./모두가 그대같이 맘먹는 날이면, 세상은 끝나게 되리,/살아봐야 인간 생명의 길이가 되는 60년만 지나면 말이오”라고 함으로써 젊은이가 자식 없이 대가 끊어진 것을 탄식하고 있다. 다섯째 행에서 시인은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 자식들에게는 지혜, 아름다움, 번영이 있음으로, 그들의 부모도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영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야곱은 아들 유다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하면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장 10절)라고 했다. 위대한 축복은 ‘실로’ 즉 메시야에 대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섯째 행에서는 그대가 청춘일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미련하고 개을러서, 주인이(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생산의 능력)를 사용하지 않고, 자녀가 없는 날에는, 그대는 그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 나이가 많아져서, 육체는 시들고, 돌보아 줄 자식도 없이 외로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모든 인간들이 그대처럼 개으르고,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랑, 긍휼, 친절, 아름다움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봐야 기껏 60여 년 밖에 못사는데, 그렇게 되면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냉소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자연이 예비 된 아름다운 자녀들로 채우도록 창조되지 않는 자들은/사납고,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소./자연이 혜택을 많이 준 자에게는 더 많이 줄 것이오./그대는,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그대의 선물을 더 받으세요”라고 훈계하고 있다. 아홉째 행과 열 번째 행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의 원리는 인간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녀들로 후손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하셨기 때문에, 자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이유로든 자녀들을 갖지 않게 되는 자들은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다고 저주의 말을 했다. 마치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저주했듯이. 열한째 행과 열두째 행에서, 하나님은 자녀를 많이 가져서 하나님이 주신 혜택을 누리는 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며, 자녀들을 많이 가졌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게 되리라고 축복하고 있다. 열셋째 행과 열넷째 행의 맺는말에서, 시인은 “자연이 그대를 자기의 인장으로 새겨놓은 뜻은/그대를 원판 삼아 많은 복사를 남겨놓게 하려는 것이오.”라고 했다. 시인은 하나님은 뜻이 계셔서 그대를 자녀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나가게 하는 아름다운 모델로 창조하였기에,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운 자녀들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이상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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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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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46좦의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렇게도 짧은 임대 기간을 갖고서, 그렇게도 많은 비용을/그대는 그대의 사라져가는 저택에 쏟아 붓는가?/이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들로 하여금/그대가 투자한 것을 먹게 하려는가? 이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라고 읊었다. 다섯째 행과 여섯째 행에서 ‘짧은 임대 기간’이라고 하고 사라져버릴 ‘저택’이라고 함으로써, 육체는 영혼을 수용해주는 저택에 비유하고, 그 저택은, 영혼이 떠나가면, 사라져버릴 단명한 셋집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라져버릴 셋집에 그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보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는 육체가 죽는 날에, 육체는 땅에 묻히게 되어 썩어지고, 육체를 즐기는 것은 구더기뿐이라고 한다. 결국 구더기의 밥이 되어 무로 돌아가 버리는 육체를 위해서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단장하고, 화장품 칠하고, 화려한 옷으로 외형을 꾸밀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헛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 질문하는 것은, 종말에 직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종말에 가라지로 심판을 받게 되면, 풀무 불이 타오르고,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울며 이를 가는 지옥(마 13:24-30, 36-43)에 가려는가를 묻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그렇다면 영혼이여, 너의 종(육체)의 멸망을 딛고 네가 살아라./그리고 너의 종을 굶주리게 하여 그대 영혼의 풍요를 증강시켜라./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팔아서 영원한 생명을 사들여라./내부세계를 살찌게 하고, 외부세계를 부하게 하지 말지라.”고 충고한다. 아홉째 행과 열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를 ‘너의 종’이라고 함으로써, 종은 주인을 섬기는 천한 신분이며, 중요한 것은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육체를 희생시키고 영혼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열한 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삶을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이라 하고, 영적인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여 시간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하늘의 도시(영을 따라 사는 자들이 가는 곳)과, 땅의 도시(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이 거하는 곳)을 대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시를 영원 세계라 하고, 땅의 도시를 시간 세계라고 하고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는 영원에서 시간 세계로 오신 분으로써 그 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영원을 누린다고 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폴 틸리히는 우리가 영원에서부터 시간 속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을 ‘영원한 현재’라고 하고, 성육신이라고 했다. 시인은 ‘영원한 현재’를 통해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했다. 그리고서 12행에서 시인은 속사람(내부세계)이 영원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고(살찌게 하고), 겉 사람(외부세계)이 세상과 더불어 향락하다가 죽음의 길로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13행과 14행의 맺는말에서 “그렇게 하여 인간을 먹고사는 죽음을 잡아 먹어버려라./죽음은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죽지 않는다”라고 선포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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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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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소네트 146」에서 나의 영혼이 육체적 위안보다 영저인 위안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노래를 읊고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인간이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것을 탄식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각 4, 4, 4, 2행의 총 14행의 단시)의 일반적인 경향은 주로 죽음의 변덕스러움과 종말, 젊음과 아름다움의 좌절감, 사랑이 물어 익은 위에 비극적인 가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진지한 기독교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154편의 소네트 중에 가장 중요한 소네트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46」에서 인간의 영혼이,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육체적인 위안에 노력을 기우리지 말고,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위안을 누리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분법으로 말하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지구상에 머무는 육체보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나의 죄 많은 육체의 중심인 가련한 영혼이여/그대를 치장해 주고 있는 육체의 욕망의 주인이여/왜 그대는 내부는 파리해지고 굶주림에 욕을 보고/그대의 바깥벽을 그렇게도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읊었다. 첫째 행에서 시인은 ‘죄 많은 육체’와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시인은 ‘죄 많은 육체’라고 하고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여 전적으로 타락함으로써 낙원을 상실한 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타고난 점을 짚는다. 그 결과 인간은 죄짓기 쉬운 나약한 존재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중심이며 주인이 되는 영혼은 가련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둘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주인인 영혼보다 ‘육체의 욕망’을 강조하고 있다. 육적인 욕망은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것으로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태도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요한일서 2장 16절). 3행과 4행에서 내부는 허무와 궁핍에 빠지게 하고, 바깥벽에만 관심을 가지고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장 16절)라고 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질그릇이요, 죽을 육체요, 땅에 있는 장막 집이다. 겉 사람이 낡아진다는 것은 늙어지고, 쇠하여 지고, 소모되고, 악화되고, 부패하고, 죽어져서 섞어버리는 것이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새로 창조함을 받는 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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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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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문인회, 6개 지역 지회장 임명
- 한국장로문인회(회장=오성건장로)는 지난 16일 제6회 가을문학강좌집을 제작해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동회는 6개 지역 지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동 문인회는 ‘코로나19’사태로 가을문학강좌를 가질 수 없게 됨에 따라 강좌집을 제작했다. 이번 강좌는 김지원시인의 「시창작을 위한 몇가지 제언들」이란 제목으로 ‘좋은 시’에 대한 분석과 창작방향을 제시했다. 동 회 오성건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모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강좌집’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동 문인회가 임명한 지회장은 다음과 같다. △전남지회장=강병원장로 △경남지회장=신이건장로 △경북지회장=박노황장로 △충남지회장=김형태장로 △충북지회장=한 오장로 △강원지회장=피기춘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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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문인회, 6개 지역 지회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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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 창세기 22장 12절에서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3단계의 실존주의를 말한다. 첫 단계는 미적 실존이며, 둘째 단계가 윤리적 실존이고, 최종 단계가 기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미적 실존 단계와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적인 실존주의 단계에서만 절대자 앞에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실존적인 도약으로 역설적으로 자아 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자기 ‘생명’의 발견이 가능함을 감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미적 실존주의의 절망은 인생의 모든 괘락을 향락하려는 태도이다. 유미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몰린 자로서 영적인 방향감각이 없는 자이다. 영화 같은 경험을 원하면서 참된 삶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약을 즐기는 것처럼 삶을 불태워 버린다. 향락주의자는 외면적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을 하는 자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향락에 사로잡혀 노예상태에서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자이다. 미적 실존의 아이러니이다. 향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양심의 입장에서 자기 발견하려는 것이 윤리적 실존의 단계의 절망이다. 윤리적 실존은 착한 시민으로 참여하여 도덕적 책임을 다하며 결혼생활을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라고 고백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최종 단계로 기독교적 실존이 요청됨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자아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능력, 가능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계의 극한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서 인간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고, 무의 상태에서, 무한한 미지의 세계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전능자를 향해 실존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실존적인 도약은 죽음으로서 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절망은 주검에 이르는 병이면서 주검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요한복음 11장 4절)고 함으로서, 삶으로의 도약임을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의 격심한 갈등 끝에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적인 가정의 재미를 말하는 미적 실존의 단계와 아들을 살해한다는 윤리적 실존 단계를 넘어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사랑함으로써 우상화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특유한 ‘키르케고르적인 도약’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이요, 키르케고르의 ‘좌절에 의한 비약’이었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실존적 도약의 축복이 후손에게까지 이름을 본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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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