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여성Home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기독교소설산책]정치신학적 주제의 다성소설적 형상화 (1) -이문열의 '에리직톤의 초상'
우리나라의 기독교소설은 염상섭의 <삼대>와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등에 이어서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에 이르러 그 큰 진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 세 작품들에 대하여 특히 유의하는 것은 이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엿볼 수 있는 그 다성문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앞의 두 작품들에 대해서는 본 지면을 통해 이미 살펴본 바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에리직톤의 초상>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가 이승우(1959~ )는 먼저 1981년 중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는 1989년 계간 <문예중앙>에 <에리직톤의 초상·2>를 발표했는데, 그 다음해(1990)에 이 두 편의 중편소설들을 한데 합쳐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낸 작품이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이다. 앞서 이미 발표했던 중편을 보완하여 새로이 장편으로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의 전례를 따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 이른바 기독교 사상소설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임을 감안할 때, 그것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장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탄생했음을 서로 대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長篇化)를 보면서 먼저 그 과정이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의 경우와, 우연이기는 하겠지만, 매우 유사함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 1979년에 나왔던 중편 <사람의 아들>을 이문열은 1987년에 장편으로 확대시켰는데, 마찬가지로 이승우 역시 1981년에 펴냈던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을 1989년에 장편으로 키워 놓았다. 두 작가는 다 같이 첫 중편 발표 이후 8년의 기간을 경과한 뒤 그것의 장편화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같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장편소설로 새로이 선을 보이게 된 이 두 작품들은, 이처럼 장편화 과정상의 표면적 유사점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 그 장편화의 내부적 실상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점도 보여주고 있음이 또한 사실이므로 이 점에 관하여 약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를 ‘평판적 확대’라고 한다면,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입체적 심화’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의 개보작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의 개보작(장편화)도 원작 중편을 기본 틀로 놓고서 단순히 그 양적인 팽창, 즉 평면적 확대만을 결과 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짙은 것임에 반하여,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양적인 확장은 물론 그 질적 변화, 곧 입체적 심화까지도 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람의 아들>의 그것보다는 한결 차원 높은 장편화를 이루어 놓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면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원작 <사람의 아들>이 개보작(장편)으로 확대되었다 해서 그것이 특별히 원작 이상의 논란거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 하는 물음이 제기될 법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경우 그것의 장편화는 확실히 우리의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왜냐면 양적 확장 외에도 분명한 질적 변화가 그것의 장편화 과정에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적 변화의 배경에는, 그 원작엔 없었던 새로운 등장인물 신태혁이 개작본에 등장하면서 그 작품 자체의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구조상의 장치나 상황 전환의 새로운 국면을 이루어 놓았다고 보겠다.
-
[기독교소설산책]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6)-이문열의
그러다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 같은 목소리가 조정인의 청각을 두들기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제 남편 이동영과는 영원히 나란히 설 수 없게 된 영혼의 낙인을 받았다는 것이 문득 아득한 슬픔으로 떠올랐으나 그녀는 한숨 한 번 짓지 않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 낙인은 없으며, 있다 해도 그것은 다만 인간적 인식 안에서일 터이고, 이제 자신이 첫발을 내디딘 세계는 그보다 훨씬 초월적인 원리에 지배되고 그 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떤 신적 영역임을 그녀는 믿고 있었고, 또 그렇게 믿고자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풀어본 교인들의 선물꾸러미 속엔 성화 액자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씌어 있었다. “불합리하기에 믿노라. 더럽기에 추하기에 사랑하노라.” 논리와 신앙 간의 모순을 천착하면서 그 어떤 결론에 도달한 작가의 한 신앙고백처럼 보이는 이 구절은 역시 <사람의 아들>과 <영웅시대>의 작가다운 결말처럼 보인다. 믿음은 이처럼 역설적인 데가 있는 것이다. ‘논리’에 의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하나의 훌륭한 민족문학 작품이라는 데엔 이의가 없을 줄 안다. 민족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쓰라림, 전후(戰後)까지 지속되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이산가족의 문제,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 등, 소재 상(上)만으로도 민족문학적 내용으로 충일한 작품이며, 특히 좌익 사상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민족은 한 피 받은 백의민족으로 모두가 한 형제라는 강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통일 지향적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점은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강력히 거부하고 인간해방의 찬가를 드높이 부름으로써, ‘이념’과 그것이 추구하는 ‘권력’에의 집착을 맹타하는, 이른바 우상파괴정신을 작품 전편에 견지했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데올로기의 우상화, 또는 특정 권력자에 대한 신격화 등은 확실히 타파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의 우상숭배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람의 아들>의 결미에서 보여준 것과 <영웅시대>의 결말에서 보여준 것과를 대비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경우엔 주인공이 필연적인 동기 없이, 좌절감 때문에 불가불 기독교에 복귀하는 식이지만, 후자의 경우엔 뚜렷한 어떤 신앙으로 기독교로 귀의한다는 점에서 신앙 선택의 동기 제시가 확실히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최대의 강점은 기독교와 민족의식의 서로 만남에 있다. 종교개혁 시대의 위클리프·루터 같은 개혁자들이 시도한 ‘교회’와 ‘민족’의 연합 작업을 상기해 보면서, 오늘의 우리 기독교회가 민족을 논하고, 더 나아가 민족통일을 논의하는 지경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차제에 우리는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가 자신이 이 작품 가운데서 그 같은 내용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점은, 이 작품의 결미가 보여주는 단순한 ‘기독교의 입문’이라는 한계성에 비례하여 나타나는, 작가 자신의 역사의식이나 현실인식의 어쩔 수 없는 한계성으로 지적되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점이 <사람의 아들>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겨워 하는, <영웅시대>의 작가 이문열이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어려운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자기 나름으로의 신을 설정하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무한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불가피하게 예전의 기독교로 복귀하게 되는 신학도 민요섭의 경우처럼, 이동영의 부인 조정인도 남편을 통해 무슨 절대 신앙처럼 간직해 오던 좌익사상과 그 활동에 대한 회의(懷疑)를 통해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 무슨 뚜렷한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 정도로, 또는 든든한 피난처로나, 혹은 매달릴 존재를 붙드는 정도의 의미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독교라면, 비록 교인들로부터는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조건 배타적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다가 어느 때에 가서 갑자기 우익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랄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경우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 직전에 며느리에게 “예수 믿는 거 꼭 잊지 마래이. 지금 세상 보니 그 귀신이 제일로 힘 있는 거 같다.”라며 조상 귀신은 자기에게 맡기고 며느리는 참말로 예수한테 복 받는 사람 돼야 한다고 당부하던 때의 소박한 신앙 자세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섭의 복귀와 조정인의 귀의가 그 성격상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요섭의 복귀는 비교적 단순한(?) 신학적 사고, 또는 관념적 성찰을 거친 결과에서 나온 갑작스런 선회였지만, 조정인의 귀의는 처절한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요섭이 조동팔과 서로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던 신에게 공허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단순한 절망감과도 같은 그런 종류에 불과했지만, 조정인이 기독교에 몸을 전적으로 투신한 데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그녀 나름의 삶의 절실한 이유와 관련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교리문답을 진행하던 목사가 이제는 그녀 자신의 믿음의 미숙성을 간파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례를 받을 때가 못 된 것 같다.”면서 사양의 뜻을 표했으나 목사는, “교우께서는 이미 믿음이 소망이 되셨다.”라고 하며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면서 그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해준 것도 실은 그녀가 어느 정도 ‘논리’의 해독(害毒)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좌익 사상가들은 그들의 논리로써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삶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또 그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며 구원의 소망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의 신앙생활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에 통과되어 마침내 세례식에 참가하게까지 된 것이다. 그때 조정인은 기묘한 의식 상태에 줄곧 빠져들곤 했는데, 아마도 세례라는 말 속에 강조되고 있는 거듭남[重生], 또는 새로남[新生]이란 뜻이 지니는 어떤 최면효과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세례식 도중에도 여러 번잡한 상념에 젖어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그녀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남편 이동영과의 꿈 많은 시절이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비몽사몽간에 받게 된 최후의 속세의 유혹처럼 그녀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잠깐 세속적 유혹의 질긴 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
-
[기독교소설산책]정치신학적 주제의 다성소설적 형상화 (1) -이문열의 '에리직톤의 초상'
- 우리나라의 기독교소설은 염상섭의 <삼대>와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등에 이어서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에 이르러 그 큰 진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 세 작품들에 대하여 특히 유의하는 것은 이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엿볼 수 있는 그 다성문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앞의 두 작품들에 대해서는 본 지면을 통해 이미 살펴본 바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에리직톤의 초상>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가 이승우(1959~ )는 먼저 1981년 중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는 1989년 계간 <문예중앙>에 <에리직톤의 초상·2>를 발표했는데, 그 다음해(1990)에 이 두 편의 중편소설들을 한데 합쳐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낸 작품이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이다. 앞서 이미 발표했던 중편을 보완하여 새로이 장편으로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의 전례를 따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 이른바 기독교 사상소설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임을 감안할 때, 그것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장편 <에리직톤의 초상>이 탄생했음을 서로 대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長篇化)를 보면서 먼저 그 과정이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의 경우와, 우연이기는 하겠지만, 매우 유사함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 1979년에 나왔던 중편 <사람의 아들>을 이문열은 1987년에 장편으로 확대시켰는데, 마찬가지로 이승우 역시 1981년에 펴냈던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을 1989년에 장편으로 키워 놓았다. 두 작가는 다 같이 첫 중편 발표 이후 8년의 기간을 경과한 뒤 그것의 장편화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같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장편소설로 새로이 선을 보이게 된 이 두 작품들은, 이처럼 장편화 과정상의 표면적 유사점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 그 장편화의 내부적 실상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점도 보여주고 있음이 또한 사실이므로 이 점에 관하여 약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의 아들>의 장편화를 ‘평판적 확대’라고 한다면,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입체적 심화’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의 개보작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의 개보작(장편화)도 원작 중편을 기본 틀로 놓고서 단순히 그 양적인 팽창, 즉 평면적 확대만을 결과 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짙은 것임에 반하여, <에리직톤의 초상>의 장편화는 양적인 확장은 물론 그 질적 변화, 곧 입체적 심화까지도 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람의 아들>의 그것보다는 한결 차원 높은 장편화를 이루어 놓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면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원작 <사람의 아들>이 개보작(장편)으로 확대되었다 해서 그것이 특별히 원작 이상의 논란거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 하는 물음이 제기될 법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의 경우 그것의 장편화는 확실히 우리의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왜냐면 양적 확장 외에도 분명한 질적 변화가 그것의 장편화 과정에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적 변화의 배경에는, 그 원작엔 없었던 새로운 등장인물 신태혁이 개작본에 등장하면서 그 작품 자체의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구조상의 장치나 상황 전환의 새로운 국면을 이루어 놓았다고 보겠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기독교소설산책]정치신학적 주제의 다성소설적 형상화 (1) -이문열의 '에리직톤의 초상'
-
-
[기독교소설산책]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6)-이문열의
- 그러다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 같은 목소리가 조정인의 청각을 두들기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제 남편 이동영과는 영원히 나란히 설 수 없게 된 영혼의 낙인을 받았다는 것이 문득 아득한 슬픔으로 떠올랐으나 그녀는 한숨 한 번 짓지 않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 낙인은 없으며, 있다 해도 그것은 다만 인간적 인식 안에서일 터이고, 이제 자신이 첫발을 내디딘 세계는 그보다 훨씬 초월적인 원리에 지배되고 그 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떤 신적 영역임을 그녀는 믿고 있었고, 또 그렇게 믿고자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풀어본 교인들의 선물꾸러미 속엔 성화 액자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씌어 있었다. “불합리하기에 믿노라. 더럽기에 추하기에 사랑하노라.” 논리와 신앙 간의 모순을 천착하면서 그 어떤 결론에 도달한 작가의 한 신앙고백처럼 보이는 이 구절은 역시 <사람의 아들>과 <영웅시대>의 작가다운 결말처럼 보인다. 믿음은 이처럼 역설적인 데가 있는 것이다. ‘논리’에 의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하나의 훌륭한 민족문학 작품이라는 데엔 이의가 없을 줄 안다. 민족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쓰라림, 전후(戰後)까지 지속되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이산가족의 문제,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 등, 소재 상(上)만으로도 민족문학적 내용으로 충일한 작품이며, 특히 좌익 사상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민족은 한 피 받은 백의민족으로 모두가 한 형제라는 강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통일 지향적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점은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강력히 거부하고 인간해방의 찬가를 드높이 부름으로써, ‘이념’과 그것이 추구하는 ‘권력’에의 집착을 맹타하는, 이른바 우상파괴정신을 작품 전편에 견지했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데올로기의 우상화, 또는 특정 권력자에 대한 신격화 등은 확실히 타파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의 우상숭배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람의 아들>의 결미에서 보여준 것과 <영웅시대>의 결말에서 보여준 것과를 대비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경우엔 주인공이 필연적인 동기 없이, 좌절감 때문에 불가불 기독교에 복귀하는 식이지만, 후자의 경우엔 뚜렷한 어떤 신앙으로 기독교로 귀의한다는 점에서 신앙 선택의 동기 제시가 확실히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최대의 강점은 기독교와 민족의식의 서로 만남에 있다. 종교개혁 시대의 위클리프·루터 같은 개혁자들이 시도한 ‘교회’와 ‘민족’의 연합 작업을 상기해 보면서, 오늘의 우리 기독교회가 민족을 논하고, 더 나아가 민족통일을 논의하는 지경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차제에 우리는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가 자신이 이 작품 가운데서 그 같은 내용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점은, 이 작품의 결미가 보여주는 단순한 ‘기독교의 입문’이라는 한계성에 비례하여 나타나는, 작가 자신의 역사의식이나 현실인식의 어쩔 수 없는 한계성으로 지적되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점이 <사람의 아들>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겨워 하는, <영웅시대>의 작가 이문열이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어려운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기독교소설산책]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6)-이문열의
-
-
[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자기 나름으로의 신을 설정하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무한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불가피하게 예전의 기독교로 복귀하게 되는 신학도 민요섭의 경우처럼, 이동영의 부인 조정인도 남편을 통해 무슨 절대 신앙처럼 간직해 오던 좌익사상과 그 활동에 대한 회의(懷疑)를 통해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 무슨 뚜렷한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 정도로, 또는 든든한 피난처로나, 혹은 매달릴 존재를 붙드는 정도의 의미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독교라면, 비록 교인들로부터는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조건 배타적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다가 어느 때에 가서 갑자기 우익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랄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경우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 직전에 며느리에게 “예수 믿는 거 꼭 잊지 마래이. 지금 세상 보니 그 귀신이 제일로 힘 있는 거 같다.”라며 조상 귀신은 자기에게 맡기고 며느리는 참말로 예수한테 복 받는 사람 돼야 한다고 당부하던 때의 소박한 신앙 자세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섭의 복귀와 조정인의 귀의가 그 성격상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요섭의 복귀는 비교적 단순한(?) 신학적 사고, 또는 관념적 성찰을 거친 결과에서 나온 갑작스런 선회였지만, 조정인의 귀의는 처절한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요섭이 조동팔과 서로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던 신에게 공허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단순한 절망감과도 같은 그런 종류에 불과했지만, 조정인이 기독교에 몸을 전적으로 투신한 데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그녀 나름의 삶의 절실한 이유와 관련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교리문답을 진행하던 목사가 이제는 그녀 자신의 믿음의 미숙성을 간파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례를 받을 때가 못 된 것 같다.”면서 사양의 뜻을 표했으나 목사는, “교우께서는 이미 믿음이 소망이 되셨다.”라고 하며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면서 그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해준 것도 실은 그녀가 어느 정도 ‘논리’의 해독(害毒)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좌익 사상가들은 그들의 논리로써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삶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또 그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며 구원의 소망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의 신앙생활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에 통과되어 마침내 세례식에 참가하게까지 된 것이다. 그때 조정인은 기묘한 의식 상태에 줄곧 빠져들곤 했는데, 아마도 세례라는 말 속에 강조되고 있는 거듭남[重生], 또는 새로남[新生]이란 뜻이 지니는 어떤 최면효과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세례식 도중에도 여러 번잡한 상념에 젖어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그녀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남편 이동영과의 꿈 많은 시절이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비몽사몽간에 받게 된 최후의 속세의 유혹처럼 그녀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잠깐 세속적 유혹의 질긴 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실시간 문학 기사
-
-
13일,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신학 강연
-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오는 13일 동 연구원 방배동 강의실에서 「신학적 동물학 연구」란 주제로 강의를 열고, 동물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강연은 인간 중심의 세계 인식과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창조세계 속 생명 가치의 중요성을 조명하기 위해 준비됐다. 이날 강연은 구자용교수(주안대)가 나서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기독교적 인식론의 세계 동향을 소개하고 개발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제시할 방침이다. 강연 관계자는 “요즈음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척 크고 강하다. 생태계와 환경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성찰도 활발하다”며, “이런 배경에서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동물 또한 가족의 일원이자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세계 교회 곳곳에선 ‘야웨는 동물의 주’인지 묻는 질문이 늘고 있다”며, “우리 인간의 주님으로 고백되어 왔던 야웨가 동물의 주인지 묻는, 동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탐구하는 작업을 위해 이번 강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13일,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신학 강연
-
-
[부활절 아침에]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 소강석
- ◇ 정재규목사의 「승리의 부활」 부러진 갈대를 다시 싸매시며 꺼져버린 등불을 다시 켜시는 분이시여 코로나19의 세찬 바람에 갈대들의 신음소리가 아우성치고 거친 눈보라에 등불마저 깜박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죽음의 산을 넘어서 부활의 새벽은 어김없이 가슴 시린 여명으로 밝아오고 있나니 검은 먹구름 사이를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부활의 빛이여 어둠이 쌓인 대지를 관통하며 아침을 밝히는 생명의 수레여 이제 조국의 새벽하늘에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리는 생명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여라 조국을 짓누르는 죽음과 절망의 암흑 별들마저 눈을 뜨지 못하는 이 짙은 어둠 속에 부활의 찬란한 승리로 민족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생명과 평화의 아침이 밝아오게 하여라 부활의 주, 사망을 이기신 찬란한 생명의 빛이여 이 민족의 역사의 지평 위에 부활과 소망의 아침을 주소서 거친 숨결, 젖은 눈동자, 뜨거운 땀방울로 옷깃을 적시는 부활의 제단위에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 오게 하소서 이제 순백의 백성, 한민족 제단위에 부활과 생명의 향유를 부어주소서 한국교회여, 이 시대 부활의 증인들이여 한반도의 광야위에 짙게 드리운 비운의 밤이 물러나고 부활의 아침을 알리는 생명의 심포니가 울리게 하여라 부활의 주여,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박살내고 부활과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붉은 새벽이 밝아오게 하소서 아직도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허의 밤 삶이 아무리 아파도 상한 갈대가 꽃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부러진 갈대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떠오르게 하소서 꺼져가는 등불이 아침의 태양으로 밝아오게 하시고 부활의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한 4월의 봄이 되게 하소서. /새에덴교회 목사·시인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부활절 아침에]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 소강석
-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3] 초상화가의 걸작과 죽임 당함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사무엘하 14장 25절에서 압살롬의 제일 아름다운 것이 그의 머리털이라고 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 밑으로 달려갈 때, 그의 아름다운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그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고,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이 죽임당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아일랜드 시인이며 런던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초상화가 바질 홀워드는 비범한 미모의 도리언 그레이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초상화가는 자신의 예술의 극치요 아름다움의 절정인 모델 도리언 그레이로부터 죽임당하는 비극적인 실상을 기술하고 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의 초상화를 세워놓고, 그 초상화 앞에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이 앉아서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미모에 매혹되었으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바질의 걸작품이었다. 바질 홀워드는 친구인 헨리경에게 말했다. “브렌드 부인 집에서 열린 어느 환영회에 갔었네. 그때 처음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보게 되었지. 그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의 온 영혼과 바로 내 예술마저도 모조리 다 빨아들일 것 같았어. 지금 나에겐 그 젊은 친구가 내 예술의 전부야. 도리언의 초상화는 내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지. 그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나에게는 소년의 모습인 도리언. 아! 낭만적 정신의 그 모든 열정, 영혼과 육체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지. 내가 살아있는 한 도리언 그레이의 개성이 나를 지배하게 될 거야” 도리언도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그의 뺨에는 기쁨에 겨운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홀에 겨워 꼼짝 않고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나르시스적 감정으로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하는 17세의 여배우 시빌 베인의 뛰어난 미모와 찬란한 연기에 마음이 빼앗겨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결혼하자고 했다. 여배우 시빌 베인도 도리언의 사랑의 고백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도리언은 시빌의 연기가 수준미달이 되자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하고는 시빌을 버리고 떠나가 버림으로써 시빌을 자살하게 했다. 초상화가 바질이 도리언을 찾아와서, “여배우 시빌 베인은 어느 더러운 방구석에 죽어 누워 있는데, 자내는 오페라 극장에 갔단 말이지? 런던에서 자네를 비난하는 끔찍한 험담들을 자네가 알아야 하네. 난 자네한테 설교 좀 하고 싶네.” 도리언의 입술에서 조롱하듯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라오세요. 당신의 손으로 직접 그린 초상화를 보세요. 못 볼 이유가 없잖습니까?” 바질은 자신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자 기겁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초상화는 추악하고 역겹고 혐오감에 차 있었다. 반인 반수의 얼굴이었다. 악마의 눈이었다. 도리언의 나르시스적인 행동이 초상화에 표출되고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제 영혼의 얼굴입니다”라고 했다. 도리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초상화가 바질은 “기도해, 도리언.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우리의 죄를 용사 하소서!”라고 하자, 도리언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서 초상화가의 귀 뒤 큰 혈관을 찔렀다. 그의 머리를 테이블 위에 처박으면서 찌르고 또 찔렀다. 바질은 자신이 그렇게도 미의 극치요 예술의 최고봉으로 자랑하든 자신의 모델에 의해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도리언은 자기의 초상화를 칼로 찔렀다. 마태복음 26:41에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3] 초상화가의 걸작과 죽임 당함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 수상
- 하나님의 섭리 속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형상화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을 모색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김영진시인·사진)는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에게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서울 왕십리에 소재한 대중음식점 토성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사태로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 이번 심사위원회(위원장=최규창시인)는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의 제10시집 〈말머리 곡선의 기류〉를 선정하고, 지난 1월 21일에 동 협회 제54회 총회와 함께 시상식을 갖기로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총회는 서면총회로 대치하고, 시상식은 이번에 15명의 임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이날 시상식은 김석림상임이사의 사회와 이춘원부이사장의 기도, 김영진이사장의 인사말, 최규창위원장의 심사소감, 시상식, 최은하증경이사장의 축사 등 순서로 진행했다. 최위원장은 심사소감에서 “노유섭의 수상시집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간과 자연을 서정적인 정서로 형상화했다”면서, “그의 시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상자인 노유섭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개인 차원에서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의 관점에서 하루의 삶이 일생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기심을 떠난 사랑에 바탕한 삶의 살아야 한다고 알고 글도 그리 쓰고 있다”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추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유섭수상자는 1990년 〈우리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풀잎은 살아서〉를 비롯한 〈희망의 실타래를 풀고〉, 〈유리바다에 내리는 눈나라〉, 〈원으로 가는 길〉 등 10권과 소설집 〈원숭이의 슬픔〉 등을 펴냈다. 한국현대시인상과 계간문예문학상, 관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신재문학평론가는 “노유섭시인이 찾아낸 숭고는 바로 생명의식이다. 이는 1990년대 생태시의 경향에서 한걸음 발전한 것으로서 개체의 존엄함을 발견하고 관계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면서, “시인은 이를 위해 소외 계층이나 부랑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가진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하면서 개체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관계 설정의 새로움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질의 승화를 모색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김규화시인은 “그는 ‘언어’를 현대의 과학이나 문명에 두는 것보다는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에 두고 있다. 그의 언어는 그래서 지성보다는 정서 쪽에 가깝다. 그는 그 정서를 객관화하지 않고 화자인 ‘나’가 주체가 되어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해 냄으로써 독자에게 한없는 위로와 감미로움을 준다”면서, “그의 ‘언어’는 한마디로 햇살처럼 따스하고 이슬처럼 영롱하다”고 평가했다.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제38회 한국기독교문학상에 노유섭시인 수상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끝] ‘행복한 삶’을 추구 - 이춘원의 「꽃길」
- 어제는 하얗게 핀 벚꽃 숲을 거닐면서/하늘을 보았습니다/하늘이 온통 꽃밭입니다/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사이로 보이는/푸르러 아름다운 하늘/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참 행복합니다//어젯밤, 비바람 불더니/세상이 변하였습니다/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몇 잎 남은 꽃잎이/하늘하늘 춤추며 이 땅에 내려오니//오늘은, 산길이 온통 축복의 노래입니다/연분홍 꽃비단 펼쳐두고/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입니다/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은/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의 떨림입니다/참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 「꽃길·1」의 전문 이춘원의 시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갖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 삶은 은유적인 표현인 ‘꽃길의 삶’으로 소망한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꽃길의 삶‘이란 아름답고 향기있는 삶일 수밖에 없다. 꽃길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다. 삶 자체가 고난과 역경이 없기 때문에 꽃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지닌 삶을 의미한다. 또한 웃음과 기쁨이 있고, 소망을 지닌 행복한 삶이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꽃잎이 떨어진 산길을 꽃길로 형상화하고, 인생의 꽃길로 전개시켰다. 첫 연에서 어제 벚꽃 숲을 거닐면서 보았던 하늘이 온통 꽃밭이었고, 휘파람을 불면서 걷는 산길이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꽃길이고 인생의 꽃길로 인식했기 때문에 “참 행복합니다”고 고백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비바람이 불더니, 꽃잎이 땅에 떨어졌다. 꽃잎이 떨어지니 세상이 변한 것이다. 꽃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떨어지는 꽃잎을 “하늘은 연둣빛 옷자락을 펄럭여”나 “하늘하늘 춤추며”란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소망의 입김을 불어주고”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꽃잎이 지닌 아름다움을 통한 우리의 삶으로 치환(置換)시켜 행복한 삶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연은 꽃잎이 떨어진 산길은 “축복의 노래”이고, “숨죽여 기다리는 고운 마음”이며, “나를 위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로 “한 걸음 한 걸음 감동의 떨림”이다. 이러한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기 때문에 “참 아름다운 선물”로 받아 들인다. 이 “축복의 노래”나 “고운 마음”, “하늘이 내려주신 이 길”이나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선물” 등은 기독교적인 신앙이 작용한 삶으로 비롯된 현상이다. 이러한 시작(詩作)태도는 이춘원이 지닌 심성(心性)에서 비롯된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나 「천상화를 마주 보며」란 시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는다. 「아침에 목련이 활짝 피는 이유」란 시에서 “하얀/너무도 순결한 마음/활짝 열어 버리고 싶은”이란 구절에서 피어있는 목련꽃을 ‘순결한 마음’으로 인식한 시각과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이 평소에 어떤 생각이나 고뇌했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고, 시의 구성이나 시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원은 1997년 〈순수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인 〈가지에 걸린 하얀 달빛〉(순수문학 펴냄, 1998년)을 비롯한 〈굴뚝새〉, 〈그리움자리〉, 〈푸른 촛대 산길을 밝혀〉, 〈풀꽃시계〉, 〈해바라기〉, 〈꽃길〉 등 10권의 시집, 그리고 산문집인 〈바람 속에 우는 하프〉를 펴낸 중진시인이다. 또한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부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그의 시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인 주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잠언적인 의미를 지닌 일깨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태로 삶의 애환을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신앙이 제시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끝] ‘행복한 삶’을 추구 - 이춘원의 「꽃길」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6]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의 성경」
- 지금 내가 읽고 있는/이 책은/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성경이다./이 두툼한 성경을/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그 책이다./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이 두툼한 성경을/두 손으로 모아잡고/아들을 위하여/축복해 주시고/하나님께 간구하시던/그 책이다./붉은 연필로/언더라인을 그으시며/80평생을/의지해 사시던/그 책이다./지금 내가 읽는/성구마다/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어머니의 신앙이/증명해 주시고/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어머니의 성경/어머니의 기도로써/내가 받은 축복/어머니의 기도로써/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읽으면서/자식들을 위하여/주님께 축복을 간구한다./만일 내가 이 성경을/자식들을 위하여/유물로 남기면/우리 집안의 기도는/3대로 이어질 것이다./주여/긍휼이 여기소서/주여/구원하여 주옵소서./주여/축복하여 주옵소서. - 「어머니의 성경」의 전문 이 「어머니의 성경」 은 〈크고 부드러운 손〉에 수록된 시이다. 박목월은 ‘어머니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어머니의 성경’에 집약된 ‘어머니의 신앙’은 시간을 초월해 ‘어머니’라는 의미 속에서 확대시켰다. 이 시는 신앙 속에 살으셨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머니의 기도와 축복을 3대로 이어질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는 5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가 대부분 짧은 행으로 구성되어 간결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시는 한 주제를 장시(長詩)에 가까운 기법을 활용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단순히 리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신앙’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특히 오늘의 신앙은 어머니로부터 이어온 것을 강조하는 의미구조이다. 또한 어머니가 삶의 전체임을 은연중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이 시의 전개양상은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를 확대시키는 데에 있다. ‘오늘’ 즉 ‘지금’의 시간성이 ‘어머니의 신앙’을 이끌어내고, 그 신앙의 유산을 형상화했다. 이 시의 구성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행에서 30행까지로 ‘어머니의 성경’에 대한 의미와 신앙의 삶을 표현했다. 1행에서 4행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임을 강조했다. 5행에서 9행은 어머니가 사경회와 부흥회를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은 성경이다. 10행에서 13행인 “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혼자 읽으시던/그 책이다”는 성경에 의지한 어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14행에서 19행까지는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고 간구한 성경이다. 그리고 20행에서 23행은 어머니가 80평생을 의지해 살아온 성경이며, 24행부터 30행까지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과 ‘신앙’, ‘축복’이 깃들어 있는 성경임을 강조했다. 후반부인 31행부터 마지막 행까지는 어머니의 신앙, 즉 그 기도의 축복과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31행에서 39행까지는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결과로 ‘축복’과 ‘은총’을 이어 받아 3대인 자식의 축복을 위해 소망한다. 40행에서 44행은 어머니의 성경을 자식 위해 유물로 남기면, 그 신앙은 3대로 이어질 것을 단언했다. 그리고 45행에서 50행까지를 통해 시인은 이러한 어머니께서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신앙을 긍휼히 여기고,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6]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의 성경」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5] ‘신앙의 삶’의 생활화 - 박종권의 「출근길」
-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잠실 롯데사거리/베이징의 인민병사처럼/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마네킹이 된 오래된 라디오 소리/여전히 뉴스는 적색경보지만/눈을 지그시 감고/성서 한 절 가슴에서 꺼내/목메인 목으로 받아 넘긴다/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평택으로 오가던 수백 리 벌써 십수 년/세월 따라 육신도 작아지고/간장이 타는 무시한 소리/수없이 듣고 살아가지만/말씀 몇 절 먹다 보면/오늘 같은 구월의 푸르른 하늘/늘 가슴에 찬다 - 「출근길」의 전문 박종권은 기독교신앙의 삶 속에서 용해된 정서와 시어(詩語)로 시작(詩作)한 시들이다. 이 시들을 구분하면 기독교시와 일반적인 서정시로 나눌 수 있다. 이 시들은 맑고 순수한 이미지와 절제미, 간결한 시어와 구성으로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신앙의 생활화에서 비롯된 삶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신앙의 삶이 생활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화자인 박시인은 오늘의 현대사회를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이란 구절로 함축해 표현하고, 이러한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출근길에서도 신앙의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 속에서 일상을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잠실 롯데사거리에서 평택까지 가는 버스 안의 출근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성서 한 절 가슴에서 꺼내/목메인 목으로 받아 넘긴다”란 구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서 꺼내고, 그 말씀에 감격한 목메인 목으로 받아 먹는다고 고백한 것이다.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생활화하고 있다.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지침이다. “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란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절까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신앙인들의 ‘3대 실천 강목’이다. 경구(警句)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세 가지 내용을 각각 독립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세 가지가 모여 신앙인의 바른 삶의 자세에 대한 전체를 제시한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란 이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의무가 있다기보다는 기뻐해야만 할 당위성을 가진 자로서 바른 신앙인이라면 매순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강력히 보여 주는 것이다. 신앙인은 기쁨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서, 늘 기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 존재임을 각성시켜 준다.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란 신앙인들에게 기도는 호흡이요 생명이라는 명제를 일깨워 준다. 신앙인들은 생활 중에 수시로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 기도를 생활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매순간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도움을 필요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대의 통로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이러한 것은 그의 시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그리고 감사와 순종함으로 나타난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구도자적인 삶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5] ‘신앙의 삶’의 생활화 - 박종권의 「출근길」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4] 사랑하는 이 땅을 노래로 승화 - 엄원용의 「이 땅의 노래」
- 푸른 들 푸른 산하에 곱게 자라고 있는/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만이 우리의 것이 아니다//저 버려진 들판에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 하나도/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모두 우리의 것이라는 걸//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이름도 모르게 독하게 독하게 자라나는 저 풀꽃도/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하는 우리의 것이라는 걸//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숨 쉬고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노래하며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 아니더냐//죽어 흰 뼈가루를 뿌리며/거름이 되어라/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아버지의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지금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우리는 모두 그리운 사람들이 아니더냐- 「이 땅의 노래」의 전문 엄원용의 제10시집인 <이 땅의 노래>에 대한 시는 뿌리의식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는 모두를 향한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켰다. 저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멩이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이 땅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형상화했다.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이다. 6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첫 연부터 3연까지 “우리의 것”, 그리고 4연과 5연은 “땅이 아니더냐”를 반복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고, 이 땅에서 지금까지 대대로 살아온 고마운 땅임을 일깨워 준다. 특히 첫 연부터 3연까지는 이 땅에 버려진 돌멩이나, 이름도 없는 풀꽃 등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임을 깨달도록 한다. 또한 4연과 5연도 대대로 일구면서 살아왔던 고마운 땅이며, 죽어서도 흰 뼈가루를 뿌리며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나 “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 “숨쉬고 통곡하며 독하게”나 “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란 구절 등은 이 땅을 지키고 일구어 오면서, 한을 지닌 민족성까지 함축해 표현했다. 첫 연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제2연과 3연을 강조한다. 푸른 들과 산하의 아름다운 꽃을 비롯한 나무들만이 아니라, 들판에 버려지고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와 풀꽃까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4연은 이 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대대로 일구고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고대에는 농기구도 없이 손과 발로 일구어 지금의 옥토로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숱한 풍파 속에서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 왔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기 때문이다. 제5연은 죽어서 흰 뼈가루를 뿌리며 “거름이 되어라”고 아픈 노래를 부르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죽어서 이 땅에 묻히고 거름이 되기를 기원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와 아들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동체적인 연대감을 고취시켜 준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두가 하나임을 표현했다. 지금도 푸른 하늘아래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의 모두가 그리운 사람으로 승화시켜 준다. 이러한 엄원용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 그리고 순수한 이미지와 시어로 구성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삶 속에 잠재된 전통적인 뿌리의식은 회귀의식으로 확대되고, 이 땅과 자연 그리고 고향과 신앙을 소재로 전개한다. 그것은 생명공동체적인 삶으로 공유하도록 인도하고, 사물이나 일상의 삶 속에서의 재발견으로 잠언적인 일깨움의 깊은 감동을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4] 사랑하는 이 땅을 노래로 승화 - 엄원용의 「이 땅의 노래」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2] ‘어둠의 세상’ 향한 새 창조 희구 - 김경수의 「창조의 노래」
- 바다 밑 같은 고요가 지구를 덮는다/우주가 호흡을 멈춘 듯한 밤의 침실/시간과 의식이 단절된 자리에 새로 떠 오른 별 하나가/어둠에 파 묻혔던 시공을 밝힌다.//혼돈과 유동……우주가 징발하는 창가에/쩌르렁 울리는 목소리에 번쩍 나의 귀가 트인다//어둠——그리고 죽음을 다스리는 태양이여/이제 그 운행을 멈추라/그리하여 이 밤이 다시 새지 말라//그리고 인류는 다시 깨지 않는 영원한 밤으로 달려가라/——지구는 딱, 그 회전을 멈추고/그 거대한 체구를 창세 이전 태초로 옮기라/거기 해도 달도 별도 사람도 짐승도/아무것도 있지 않은 없음 없음만이 있는 세계……//우주는 저 푸르디 푸른 창세 이전으로 즉시 해체되라/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위에 떠도는 바로 거기/창조주 야훼는 눈부신 광채를 입으시고/다시 물 위에 나타나시리라//이미 있든 세계/더러운 발자국의 우주를 없음으로 돌리고/새로 설계된 우주의 새 창조 목록을 펼치신 조물주 야훼는/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새 창조의 첫 울음을 터뜨리리라. 그때//사랑과 은밀의 골짜기/푸른 산은 가슴 열어/긴 내가 흐르고/독사와 노루가 어울리며/아기와 이리가 한자리에 웃음 짓는/새 날이 휘영청 밝으리라//다시 눈물도 서러움도 아픔도 없는/우주의 새 날이 짙푸른 하늘 떠 이고/창창이 밝으리라. - 「창조의 노래」의 전문 이 시는 8연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어둠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창조를 노래한다. 이 시의 발상은 하나님의 우주만물에 대한 창조 이후, 오늘의 현실을 어둠의 세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창조를 회구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다시 어둠의 세상을 멈추고 창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보여 준다. 제1연은 오늘의 현실, 즉 어둠의 세상으로 규정하고, 빛이 어둠을 밝힌다. 그것은 ‘밤의 침실’이나 ‘어둠에 파 묻혔던 시공’이 주는 공간은 어둠의 세상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떠오른 별 하나’는 새로운 창조, 즉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제2연도 제1연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연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혼돈과 유동’은 창조이전이며, ‘쩌르렁 울리는 목소리’는 창조의 시각적 이미지를 담았다. 제3연은 어둠의 세상에 대한 종말을 명령한다. 어둠의 현실을 다스리는 태양의 운행을 멈추고, 밤이 다시 새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제4연은 창조작업을 위해 태초의 세계로 간구한다. “인류는 다시 깨지 않는 영원한 밤으로 달려 가라”나, “——지구는 딱, 그 회전을 멈추고”는 태초의 세계로 이전한다. 제5연은 우주는 창조 이전으로 해체되고, 창조주가 창조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표현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위에 떠도는 바로 거기/창조주 야훼는 눈부신 광채를 입으시고/ 다시 물 위에 나타나시리라”는 「창세기」 1장 2절의 시적 형상화이다. 이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3연과 4연, 5연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오늘의 세상에 대한 종말을 명령이다. 그래서 ‘멈추라’, ‘말라’, ‘가라’, ‘옮기라’, ‘되라’등 명령어로 강력한 시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6연과 7, 8연은 창조의 노래이다. 6연은 새 창조의 시작이고, 7연과 8연은 창조된 세계이다. 「창세기」 제1장에 기록된 창조의 세계를 펼쳐 보여 준다. “독사와 노루가 어울리며/ 아기와 이리가 한자리에 웃음 짓는”란 구절은, 에덴동산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눈물도 서러움도 아픔도 없는”이란 구절은 선악과사건 이전을 회구하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2] ‘어둠의 세상’ 향한 새 창조 희구 - 김경수의 「창조의 노래」
-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1] 우리 정서 속에 ‘복음의 빛’ 형상화 - 이성교의 「까치소리」
- 아침 햇살이 온 누리에 쫙퍼질 때 까치소리가 요란하다.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모양이지. 몇 굽이를 넘은 깊은 마음 속에 또다시 명절이 오고 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말자.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 밤새 얼었던 마음이 다 녹아지고, 또다시 맑은 빛이 스며든다. 달고 오묘한 말씀이 가슴에 부딪칠 때마다 또다시 밖에서는 까치소리가 들린다. - 「까치소리」의 전문 이 「까치소리」도 그가 지금까지 추구한 토속적 정서와 향토적인 시의 맥락에서 감상해야 한다. 이 시에서 ‘까치소리’나 ‘명절’ 등이 주는 토속적 정서가 바탕에 흐르고 있다. ‘까치소리’가 주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토속적인 정서이다. 그리고 ‘명절’도 마찬가지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전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 간구의 응답이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다. 까치소리에 기대하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조금도 염려하지 말자./구하는 것마다/다 주실 것이다”라고 실현되는 심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까치소리’나, ‘명절’이란 표현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담고 있다. 옛부터 까치소리가 들리면 ‘반가운 사람’이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시는 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은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아침 햇살’과 ‘까치소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의 이미지는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침 햇살’과 ‘까치소리’는, 2연에서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모양이지’로 연상작용을 한다.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가 요란하고,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것으로 기대한다. 3연의 “몇 굽이를 넘은/깊은 마음 속에”는 지난 날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몇 굽이를 넘은’의 삶은 역경의 삶이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명절’은 설날처럼 ‘좋은 날’을 의미하고 있다. 역경의 삶이었던 마음 속에 또다시 좋은 날이 오고 있다고 희망한다. 4연은 빌립보서 4장 6절인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를 바탕에 두고, 시적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성서의 가르침대로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고 확언하고 있다. 신앙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다. 그것은 메시지이다. 3연에 ‘좋은 날’이 오고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5연은 1연의 ‘까치소리’와 2연의 ‘반가운 소식’, 3연의 ‘명절’인 좋은 날과 4연의 하나님의 메시지로, 밤새도록 불안하고 어둡던 마음에 복음의 삶이 시작된다. ‘밤새 얼었던 마음’은 불안하고 어둡던 삶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밝은 빛’은 ‘복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6연은 ‘달고 오묘한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 ‘복음’인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밖에서 들린 까치소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이 시의 전체적인 구성은 ‘까치소리’→‘반가운 소식’→‘맑은 빛’→‘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복음’이다. 그리고 ‘몇 굽이를 넘은’이나 ‘밤새 얼었던 마음’이 ‘복음’으로 밝은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성교의 기독교시는 토속적 정서와 향토적 소재에 체험적 신앙을 접목해 절제된 언어로 추구해 왔다. 그의 시에는 성숙한 신앙인의 생활이 담겨져 있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자세로 거듭나는 삶을 추구했으며 신앙의 생활화와 하나님을 향한 의지가 형상화되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 출판/문화/여성
- 문학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1] 우리 정서 속에 ‘복음의 빛’ 형상화 - 이성교의 「까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