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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이 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우신 (牛臣) 황광은(1923-1970)은 1923년 2월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지북동 25번지에서 황도성 장로와 김도순 권사의 3대 기독교 가정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2004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이반 작 김윤태 연출<소년 공화국>이 극단 ‘반딧불이’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1923-1970)는 47세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4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YMCA 소년부 연습 간사가 되었다. 그의 성실성은 그 당시 YMCA 현동완 총무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광은은 서울 중앙 YMCA 간사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그는 6.25 피난시절에는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들 30여 명을 돌보다가 1.4 후퇴 때에 고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황광은은 어린시절 일본 목사 가가와 도요히꼬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를 읽고 큰 감화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되던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기슭에 있던 향린원이란 고아원에서 8년간 고아들의 벗으로 일하면서 일제 말 암울했던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 청소년운동, 기독교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극단체 ‘원예술좌’의 창립동인이었고 아동영화 ‘하늘은 맑건만’ 등을 제작하였다. ‘크리스찬신문’ ‘기독교교육’, ‘새벗’의 창간과 편집,집필을 하였다.   황광은 목사    목회적으로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대광중고 교목을 거쳐 1961년부터 영암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김활란 박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 실무를 담당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크고도 넓고 깊다. 황광은 목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어린이의 참벗, 고아의 아버지, 선한 목자,화해의 사도,짧으나 긴 삶을 사신 분"  황광은은 아동작가,훌륭한 설교가,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은 맑고 너그럽고 착하였다, 그가 한 일은 크고 곱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한 스토리가 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 공화국》이다.  1970년 5월 어느날, 황광은 목사는 병상에서 이반 극작가를 불렀다. 소설 ‘소년 공화국’이라는 제목과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적어 놓은 서문과 두 장의 목차를 내밀었다. 구겨진 일곱 장의 원고지가 그로부터 33년이 지나서 희곡 《소년 공화국》으로 탈고된 것이다. 황광은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소설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반 극작가에 의하여 2003년 12월에 희곡이 되었고 2004년 12월에 연극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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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1-07
  • 문학평론(10)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여의도순복음교회 뮤지컬 빌 게이더 작 이반 연출 <알렐루야>    뮤지컬 <알렐루야>는 로버트 슐러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가든그로브코뮤니티교회의 정기공연 작품이다. 그 당시 그 공연을 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부인되는 김성혜 목사가 미국에서 가져온<알렐루야>카세트 녹음테이프와 악보를 구해서 이영훈 전도사에게 넘겨주어 영산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코이노니아회가 다방교회라 할 수 있는’선교의 집‘ 모금을 위하여 이영훈 회장을 중심으로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를 유료공연으로 기획하였다. 1979년 7월 1일에 선교센터 406호실에서 이반 각색,연출의 음악 정명소, 이영훈 회장, 안준배, 최완기, 김용덕, 윤남인, 오무석 등이 실무회의로 모였다. 먼저 《알렐루야》 원 카세트 녹음을 들은후 이 반 교수의 연극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예배극 형식으로 선교 뮤지컬로 각색하여 공연하기로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뮤지컬 알렐루야    빌 게이더 부부의 공작인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선교무대는 한국 기독교의 팔십년대 선교방향을 제시해 주는 작품이었다. 음악의 빌리 그래함이라고 불리고 있는 빌 게이더 부부의 《알렐루야》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시도된 예배극이다. 노래와 춤과 연기를 통한 복음선포는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었다. 음악성과 문장력이 있는 이영훈 의 가사 번역은 미국의 감각을 우리 것으로 소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코라스를 맡은 정명소 음악은 그의 호산나 성가대의 가창력을 뛰어나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이 반 연출은 하르트만에게 사사받은 예배극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백여 명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호산나 성가대와 사십여 명의 오케스트라와 열 명의 연기자등 총 백오십여 명이 열연한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공연은 팔십년대 문화선교를 보여주었다. 뮤지컬 알렐루야의 공연으로 인하여 《알렐루야》의 주제곡 ’살아계신주’ ‘주께 찬양을 드리세’는 한국교회 애창곡이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1979년의 예배 뮤지컬 《알렐루야》의 감격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반은 숭실대학교 교수를 정년 퇴임하고 함경남도 홍원에서 피난내려와 정착한 제2의 고향이 된 속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이반을 초청하여 재연하고자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후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뮤지컬 《알렐루야》를 2023년 5월 3일에 윤의중 지휘, 홍석임 연출로 다시 대성전 무대에 올려져 성전을 가득 채운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사이에 실향민 이반은 2018년 9월 24일에 속초에서 본향으로 떠났다./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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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3
  • 문학평론(9)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40일 동안 심판이 오리라고 외쳤다. 그러나 니느웨에 심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요나는 “어부가 바구니에 고기를 집어넣듯, 주여, 당신은 나를 구렁텅이에 넣었소. 그리고 죽음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모래 사장에 상륙시켰고. 그래,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심판의 날을 예언하였소. 이젠 이런 기도밖에 남지 않았소. 나를 와서 데려 가시오. 사람들이 와서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거요.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 뱉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침 뱉은 거나 마찬가지지 않아요? (니느웨 사람들 제단 위로 올라온다.) 빨리요, 주님. 그들이 오고 있어요.(요나, 관중들에게 돌아선다) 당신 지팡이와 돌멩이가 어디 있어? 나를 죽여, 그리고 나를 비웃어 줘,”라고 말한다.   (이반, 연극과 예배, 하르트만의 예배극론 도서출판 연극과인간 2003 참조)     요나는 신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제단을 향하여 대사를 한다. 하르트만은 “기독교의 모든 교파의 예배의식을 한 가지로 통일시킬 수가 없고, 또 같은 교파 내에서도 나라의 풍습과 지역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예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배극도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신을 관중으로 극이 진행 되어야 한다는 것은 꼭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하르트만 작 이반 연출, 연예인교회의 예언자와 목수     연예인교회가 1976년 12월 10일에서 11일까지 이화여대 강당에서 3회에 걸쳐 올린 전도공연 《새롭게 하소서》 중에 제1부 연극부문에 해당하는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요나(이영후 분)가 타고 가는 지중해상의 선박이나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의 뱃속이나, 또 니느웨의 언덕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요나가 외친 심판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매 순간 심판을 받아가면서 최후의 심판을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목에서 목수(신영균 역)를 만난다. 폐허가 된 도성을 재건하는 목수의 손에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폭을 깨닫게 된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에서 직접 예수를 등장시키지 않고 간접으로 예수의 사상과 행동을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르트만이 요나서에 예수를 상징하는 목수를 등장시켰다.   예배극 속에서 이반은 하르트만에게 전수받은 대로 예수의 이미지를 목수로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부각시킬 뿐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 연출을 하였다.   이반 연출은 니느웨의 작은 생명을 아끼고 깨어진 것을 고치는 목수를 등장시켜 요나서에서 니느웨가 심판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예배극에서 예수를 등장시켜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배극의 기능이 예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꾀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중재자이다. 예배극도 하나님과 인간이 만남으로, 화해의 중재역을 담당하고 있다.   하르트만 작 이반 연출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에 있어서의 지중해상의 요나가 탄 배는 교회고, 교회는 곧 세상을 상징한다. 1976년 성탄절을 앞두고 이화여대 강당에서 일만이천 명의 관객에게 펼쳐진 연예인교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는 연출자 이반이 성경을 텍스트로 삼아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예수의 구원을 증언했다.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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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24
  • 문학평론(8)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극작가 이반은 연극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관심사가 ‘종교극’이었다. 분단극은 스웨덴에서 종교극 유학 중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했다. 그는 1967년에 루터교회에서 <죽음의 계곡을 찾아서> 라는 성극을 극작하여 공연하고 나서 종교극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모색을 하게 되었다. 이반의 그런 모색은 마침내 종교극의 대가인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울로프 하르트만 교수에게 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20세기의 기독교 연극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카톨릭 미사의 극화 작업과 잉글랜드의 조지 벨 주교가 주관하는 성공회의 종교극 운동, 네델란드와 독일의 중세극 공연, 미국의 선교극 운동,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라파의 예배극 운동을 들 수 있다.   □ 올로프 하르트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     1906년에 스웨덴에서 태어난 하르트만은 어린 시절을 구세군 소년으로 보냈다. 그의 양친은 구세군 사관으로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를 키웠다. 하르트만은 웁살라대학 신학부를 졸업한후 스웨덴 국교인 루터파 목사로 오랫동안 교회 일을 도왔다. 그의 자서전적인 소설 《바다의 소리》 는 오 캐시의 작품과 비교되는데, 소년기의 그의 고민이었던 선과 악,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하르트만을 일약 유명한 작가로 출세시킨 작품은 그의 세 번째 소설 <성스러운 무도회>였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의 동역자인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즐겨 다루는 원죄에 대하여 집요하게 탐구해 나갔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하르트만은 희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톡홀름 근처의 스웨덴 최초의 도읍지인 시그투나 파운데이션의 책임자로 부임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스웨덴 교회의 예배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스웨덴 정부는 하르트만이 창조해낸 모든 예배형식을 개체 교회에 보급하는 데 적극성을 띠었다. 하르트만은 희랍극과 중세극 중에서 현대 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의적 요소와 전통적인 루터교의 예배의식의 극적 요소의 만남을 꾀해 예배극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극이론을 창조해 내고 예배극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 《예언자와 목수》, 《생명의 면류관》, 《용광로의 불길》 등은 그의 극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제임스 영은 “나는 하르트만을 혼자서 소리를 내지 않는 목소리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처럼 강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어 혼자서 외치지 않는다. 하르트만은 반독연자로 전체 작품의 드라마는 대화로 엮어졌다. 하르트만은 신비스러우리만치 노련한 솜씨로 고립적이거나 독백을 배제하고 작품 속 에서 사회성과 사귐이 일어나게 한다”고 극작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과 무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르트만은 1968년 W.C.C 4차 웁살라 총회에서 희곡 《그 날에》, (독일어로는 《아모스 ‘70》 으로 번역되었음)를 발표하여 현대 기독교 국가들과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두고 행동하여야 할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를 등장시켜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찾아 나서게 했다. 아모스는 사마리아의 대리석 궁과 전쟁터에서 작고 하얀 어린 양을 찾는다. 그리고 정의의 대림줄은 인간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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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17
  • 문학평론(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이렇게 만날 줄 모르고 공연히 고생길을 걸은 장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로는 홀로 아름다운 천국에 취해 있다가 같은 곳에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사형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궁금증을 참아내지 못한 장로는 천사에게 물어본다. “지옥은 어디 있냐”고. 그러자 천사는 본래 지옥은 없고 천당만 있다고 일러준다. 장로는 평생을 교회에 잘 다니고 선행을 한 자신은 천당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범죄자도 같은 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몹시 불쾌해 졌다. 그 순간부터 장로는 죄수가 있는 천당이 싫어졌다.     극작가 주태익     주태익이 각색한 <천당 간 사나이> 는 이범선 문학에 내재해 있는 신관이나 인간의 운명에 대해 원작자가 제기한 문제점을 살리는 것보다 연극으로서의 객관성을 담아냈다. 세속적인 장로가 죽어 황천길을 가던 중 저승 길목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상징한 노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때 세상에서 살인하여 사형을 당한 죄수와 그에게 죽은 사람들과 구공탄 가스로 죽은 철학자가 등장하여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벌인다. 주태익은 이범선의 소설을 보수적으로 각색했다.     1976년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있을 때 연출가 이반 교수와 극작가 주태익 선생이 필자에게 종로 2가 디즈니다방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주었다.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문인극을 하는데 기획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원들로 문인극을 만들게 되어 이범선 원작, 주태익 각색, 이반 연출의 《천당 간 사나이》가 공연작이 되었다. 배우들도 자체적으로 선발해 노인 김광식, 장로 황금찬, 철학자 이보라, 춘심 윤경남, 아저씨 강정규, 아줌마 김정기, 만석 유성윤, 옥이 고계영이 배역을 맡았다. Y극회 ‘탈’의 김호태가 조연출을 했다. 그 당시 세운상가에 중앙신학교 야간부가 있었다. 중견 문학인들이 배우가 되어 신학교 강의실에서 대본 연습을 하였다. 나는 연습실과 식당, 유전다방에 이르기까지 매일 출근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종로 2가 한국기원이 들어있는 빌딩 1층에 있는 유전다방에 가면 나중에 ‘목요회’가 된 ‘수요회’ 멤버 조향록 목사, 이범선 소설가, 김광식 소설가, 황금찬 시인, 주태익 극작가, 김봉삼, 강형요,김세익, 노정팔, 홍성건, 장하구 등이 언제나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다. 때로는 윤남경, 송영 작가도 자리에 있었다   나는 기획을 맡아서 공연을 앞두고 남산에 있는 공연윤리위원회를 찾아가 대본 심의를 받아냈다. 공연 티켓을 이화여대 앞의 파리다방과 명동의 필하모닉음악감상실, 종로서적, 을지서점 등 서점가에 예매를 맡기는 일을 하였다. 1975년에 《최후의 유혹》에서 연극을 제작한 경험이 있어서 언론사로 보도 자료도 보내는 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잡무를 보았다. 연극《천당 간 사나이》는 1976년 12월 25일 낮 3시와 밤 7시에 세실극장에서 2회로 공연하였다. 오십대 문인들이 어설프지만 나름 진지하게 연기하여,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성탄의 은총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각색자 주태익 선생이 1979년에 타계한 이후 원작자 이범선, 연출 이반, 노인 역 김광식, 철학자 역 이보라, 장로 역 황금찬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별세해 ‘천당 간 사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그곳에 모여 ‘ 천당 온 사나이’를 연극하고 있을지도.  /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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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10-10
  • 문학평론(6)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Ⅱ 이반의 종교극     황광은, 주태익, 김원식, 김창열 등은 서울 YMCA에서 1964년부터 기존해 있던 극회 ‘탈’을 1967년에 재건하게 되어 그 작업을 극작가 이반에게 맡기게 되었다. 극회 ‘탈’은 조성현, 송종환, 전진호,이반, 차관, 이효춘 등이 모여 재건 첫 작품으로 1968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YMCA강당에서 이반 작 전진호 연출의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를 상연했다. 극작가 이반은 성경 속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적 입장에서 과감하게 해석했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는 예수의 이적에 의해 문둥병을 고치고 그에게로 와서 감사를 전한 한 문둥이의 이야기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할 때의 그의 모습과 부활했을 때의 결단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극회 ‘탈’은 이반 작 연출 《눈먼 가축사》, 《제4의 박사》, 《다른 목자》등 D.C.월슨의 작품을 공연했다.   극회 ‘탈’ 은 신인 창작극으로 소설가 황석영의 《환영의 돛》, 극작가 김상열의 《성야》, 이반의 《실향민》 등을 상연했다고 이반은 극회 ‘탈’의 성과를 밝혔다.   □ 이범선 작 이반 연출 천당 간 사나이     월남한 작가 이범선은 《오발탄》, 《피해자》로 6.25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이들에 대한 인간 본성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이범선이 1976년 발표한 소설집 《표구된 휴지》 에 수록된 단편 소설 《천당 간 사나이》는 그의 후기작으로 기독교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앞서 1958년에 발표한 《피해자》에서 종교의 위선을 문제 삼았던 작가는 《천당 간 사나이》 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내세관, 구원관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했다.     하얀 수의를 입고 저승길을 걷고 있는 뚱뚱한 사나이는 이승에서 장로였고, 파란 수의를 입은 야윈 사나이는 이승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자이다. 장로는 자신이야말로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사형수는 지옥에 갈 것이라 여긴다. 죄수는 자신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장로에게 말해주며, 장로와 죄수가 서로 가야 할 곳을 말한다.   장로 “나는 하나님 앞으로 가는 사람이요.” 죄수 “하나님 앞으로?” 장로 “그렇소만, 노 형은 어디까지 가슈?” 죄수 “글쎄요. 우선 염라대왕 앞으로 가야 된다던대요.” 장로 “염라대왕이요?” 죄수 “네, 거기 가서 염라대왕에게 재판받고 전생의 값을 치러야 한다던데요.” 장로 (고개를 가로저어).‧…… 죄수 “그렇담, 우리 두 사람 중에 누구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은 셈이군요.” 장로 “………” 죄수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 앞으로 갈 분, 저는 염라대왕 앞으로         가는 길인데 같은 길로 왔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뚱뚱한 장로와 염라대왕을 향해 가는 야윈 살인범은 두 갈래 길에 이른다. 장로는 천국으로 가려면 왼쪽 험난 한 길이 분명할 것으로 여겨 왼쪽 길로 들어선다. 사형수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인지라 평탄한 길을 택한다. 장로는 험난한 길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천당 길로 들어섰는데 두 길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살인범을 만나게 된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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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1] 우리 정서 속에 ‘복음의 빛’ 형상화 - 이성교의 「까치소리」
      아침 햇살이 온 누리에 쫙퍼질 때 까치소리가 요란하다.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모양이지.   몇 굽이를 넘은 깊은 마음 속에 또다시 명절이 오고 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말자.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   밤새 얼었던 마음이 다 녹아지고, 또다시 맑은 빛이 스며든다.   달고 오묘한 말씀이 가슴에 부딪칠 때마다 또다시 밖에서는 까치소리가 들린다. - 「까치소리」의 전문 이 「까치소리」도 그가 지금까지 추구한 토속적 정서와 향토적인 시의 맥락에서 감상해야 한다. 이 시에서 ‘까치소리’나 ‘명절’ 등이 주는 토속적 정서가 바탕에 흐르고 있다. ‘까치소리’가 주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토속적인 정서이다. 그리고 ‘명절’도 마찬가지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전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 간구의 응답이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다. 까치소리에 기대하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조금도 염려하지 말자./구하는 것마다/다 주실 것이다”라고 실현되는 심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까치소리’나, ‘명절’이란 표현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담고 있다. 옛부터 까치소리가 들리면 ‘반가운 사람’이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시는 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은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아침 햇살’과 ‘까치소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의 이미지는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침 햇살’과 ‘까치소리’는, 2연에서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모양이지’로 연상작용을 한다. 아침 햇살이 쫙 퍼질 때에 까치소리가 요란하고, 반가운 소식이 무더기로 올 것으로 기대한다. 3연의 “몇 굽이를 넘은/깊은 마음 속에”는 지난 날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몇 굽이를 넘은’의 삶은 역경의 삶이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명절’은 설날처럼 ‘좋은 날’을 의미하고 있다. 역경의 삶이었던 마음 속에 또다시 좋은 날이 오고 있다고 희망한다. 4연은 빌립보서 4장 6절인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를 바탕에 두고, 시적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성서의 가르침대로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고 확언하고 있다. 신앙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다. 그것은 메시지이다. 3연에 ‘좋은 날’이 오고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실 것이다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5연은 1연의 ‘까치소리’와 2연의 ‘반가운 소식’, 3연의 ‘명절’인 좋은 날과 4연의 하나님의 메시지로, 밤새도록 불안하고 어둡던 마음에 복음의 삶이 시작된다. ‘밤새 얼었던 마음’은 불안하고 어둡던 삶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밝은 빛’은 ‘복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6연은 ‘달고 오묘한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 ‘복음’인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밖에서 들린 까치소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이 시의 전체적인 구성은 ‘까치소리’→‘반가운 소식’→‘맑은 빛’→‘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복음’이다. 그리고 ‘몇 굽이를 넘은’이나 ‘밤새 얼었던 마음’이 ‘복음’으로 밝은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성교의 기독교시는 토속적 정서와 향토적 소재에 체험적 신앙을 접목해 절제된 언어로 추구해 왔다. 그의 시에는 성숙한 신앙인의 생활이 담겨져 있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자세로 거듭나는 삶을 추구했으며 신앙의 생활화와 하나님을 향한 의지가 형상화되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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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1
  • 이 암울한 시대에 곧 오소서 - 전길자
    •이 암울한 시대에 곧 오소서……  오래 참으시는 당신처럼 통일의 시간을 만남으로 다독이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 정재규목사의 '소망의 빛'   지구는 돌고 도는 데요 이천년이 지나  다시 이천년을 향해 달음질 합니다 죽을 것 같던 때에 다 놓아 버리고 당신 품에 안겨 오늘까지 달려 왔습니다 시간이 흘렀던가요 내가 달음질 쳤던가요 까마득한 시간들을 들여다보니 오늘이 내일이었고 내일이 오늘 이었던 은총의 시간들 그저 낙타 무릎으로 엎드려  눈물을 삼키며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은 삼십개에 팔리셨던 주님 나 위해 다시 사셨지요 세상을 다 품으셨지요 배반은 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바람처럼 휘몰아치지요 욥도 다윗도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감사기도를 올렸던가요 이 암울한 시대에  곧 오소서 마라나타 주님 오래 참으시는 당신처럼 통일의 시간을 만남으로 다독이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이 나라를 멸하지는 않으시겠다 하신 주님 의인 한사람만 보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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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1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0] 온누리에 전하는 복음의 소식 - 이문수의 「성탄절 종소리」
      오늘은 종소리가 크게 울리게 하소서 깊은 아픔을 안고 떠나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울리게 하소서   오늘은 종소리가 멀리 가게 하소서 먼 일터로 떠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멀리 가게 하소서   오늘은 종소리가 더 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 다른 종소리를 따라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   오늘은 종소리가 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   오늘은 종소리가 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 별과 모래와 들풀 그리고 들새들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 - 「성탄절 종소리」의 전문 이 시는 간결하면서도 각 연마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십자가’와 ‘종소리’는 오늘의 교회를 상징한다. 십자가는 교회당임을 알리고, 종소리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했었다. ‘오늘’이란 시기는 ‘성탄절’을 가리킨다. ‘종소리’는 아기 예수탄생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그 종소리는 단순한 종소리가 아니라, 기쁜 소식인 ‘복음’의 종소리이다.    각 연마다 종소리의 울림이 다르다. 그것은 울림에 따라 의미를 부여했다. 교회에서 아픔을 안고 떠난 사람들은 종소리가 크게 울려야만 들을 수 있고, 먼 일터로 떠난 사람들은 종소리가 멀리 가야만 들을 수 있다. 또한 다른 종교로 떠난 사람들은 종소리가 맑은 소리로 울려야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종소리가 오래도록 울려야만 세상의 곳곳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1연은 성탄절에 종소리가 깊은 아픔을 안고 떠나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인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크게 울리게 하소서”라고 간구한 기도이다. 특히 이 종소리에는 교회와 화해하고, 사랑으로 화합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제2연은 생계문제로 멀리 떠난 일터(직장)의 사람들이 아기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종소리가 멀리 가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오늘의 산업사회는 일터가 가정과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지방으로 갈수도 있고, 지방에서 도시로 갈수도 있다. 이들이 교회에 올수 없는 것은 일터에서 숙박을 하고, 생활을 하면서 일하기 때문이다. 일터 때문에 가정과 교회를 떠나는 사람에게 아기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제3연은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로 떠난 사람들이 성탄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맑은 종소리로 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맑은 소리’는 기독교의 순수성과 바른 진리의 종교임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또한 ‘다른 종소리’는 타 종교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복음을 접고, 교회를 떠나 타 종교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성탄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의 기도이다.   제4연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오래도록 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는 계속적으로 종소리를 들음으로써, 스스로 기쁜 소식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이다.    마지막 연은 종소리가 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천개의 언어’란 별과 모래, 들풀과 들새까지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온 누리의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언어를 의미한다. 온 만물까지도 들을 수 있는 종소리로써 아기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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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8
  • 최규창시인, 「시선」 작품상 수상
      본지 주필인 최규창시인(사진)은 계간 〈시선〉에서 선정한 금년도 〈시선〉작품상을 수상한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3시 종로 3가 한일장에서 가질 예정이며, 수상작은 「장수왕의 눈물」 등이다.  최시인은 1981년 〈현대문학〉 시추천 완료로 등단해 〈영산강비가〉, 〈아이야 영산강가자〉 등 시집과 〈한국기독교시인론〉 등을 펴냈다. 
    • 출판/문화/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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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9] 연약한 자들의 소망을 간구 - 허형만의 「풀잎이 하나님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뽑히지 않게 하시고 들불이 번져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 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 하게 하시고 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 주소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 주시고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버러지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 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 - 허형만의 「풀잎이 하나님에게」의 전문 이 시는 기도라는 형식을 통해 밀도있고 정제된 언어로 감동을 준다. 삶의 위기에 처한 풀잎처럼 연약한 사람들의 나약하고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는 공동체를 제시하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생명유지의 소망을 간구하고 있다. 이 시의 전체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편 1절)란 귀절을 연상시키고 있다.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는 풀잎의 연약함을 보호해 달라는 간구이다. 즉 연약한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짓밟히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구한다. 또한 “야훼, 우리 하나님/태풍이 몰아쳐도 뿌리 뽑히지 않게 하시고/들불이 번져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는 풀잎이 ‘태풍’이나 ‘들불’에서 보호해 달라는 간구이다. 그것은 권력에 의한 어떤 억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희구하고 있다. 또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는 어둠의 절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 하게 하시고/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 주소서”는 지금의 위태로운 삶이 아니라, 지난 날의 평화로운 삶과 자유를 간구한다. 또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 주시고/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는 짓밟고 핍박하는 자에게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고, 낫질하는 자의 낫이 녹슬어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특히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는,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야훼 우리 하나님/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우리의 영혼을 버러지로 부터 보호해 주시고”는 우리가 살고있는 땅을 더욱 기름지게 해주고, 버러지로부터 영혼을 보호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는 버러지로부터 보호받은 뿌리는 튼튼하게 땅속 깊이 뻗고, 푸르른 하늘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간구한다.    이러한 이 시에서 ‘꺾이다’, ‘뽑히다’, ‘태풍’, ‘들불’, ‘어둠’, ‘짓밟다’, ‘낫질’, ‘버러지’ 등 어휘를 통해 연약한 자의 위태로운 삶의 현장을 형상화했다. 특히 ‘어둠’은 시대적 상황, 즉 군사정권의 독재시대를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꺾는 자’나 ‘짓밟는 자’, ‘낫질하는 자’나 ‘버러지’는, 그 당시 권력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핍박한 행태를 보여 준다. 그리고 ‘지키소서’나 ‘일으키소서’, ‘돌려보내 주소서’나 ‘일깨워 주시고’, ‘녹슬게 하소서’나 ‘기름지게 하시고’, ‘보호해 주시고’나 ‘푸르르게 하소서’ 등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삶임을 시사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2-11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8]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소망 - 가영심의 「물」
      내 혼의 눈부신 나라에 가 닿으리    내가 나이던 것을 다 허물고  가진 것 다 비운 목숨으로 가 닿으리  어디였을까 어디였을까  내 안에 찬란히 소리치는  서러운 혼이 있어  영생의 물줄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물소리    내 혼의 눈부신 물의 나라  눈멀어 더듬듯 황홀히 흘러  그렇게 가 닿으리  가 닿으리                  - 「물」의 전문   가영심(賈永心)의 이 시는 2000년 제20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시집인 〈저녁향기〉(문학아카데미 펴냄·1999년)에 수록되어 있으며, 물의 이미지를 통한 영생에의 소망을 추구했다. 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며, 정화시키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물이 흘러가 닿는 곳은 ‘눈부신 나라’이고 ‘물의 나라’인 영원한 생명을 누릴 ‘하늘나라’로 전개했다. 하늘나라는 물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이며, 눈부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물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가 닿으리’나 ‘물줄기’, 그리고 ‘물소리’는 흐르는 물에서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물의 흐름은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 물의 흐름은 물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이 물의 생리를 시적 상상력으로 화자가 꿈꾼 영생의 나라를 형상화했다.   제1연은 1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부신 나라’에 가 닿으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준다. ‘가 닿으리’란 것은 물과 함께 동행한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은 자세를 표현했다. 또한 물의 동적인 생리가 표현상 생략되어 있지만, ‘가 닿으리’에는 물과 함께 동행하여 눈부신 나라에 가겠다는 의지이다. 이 1행의 구절에는 절제되고 함축된 표현으로 눈부신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제2연은 영원한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향한 노래이다. 육신의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모든 것을 씻어내고, 인간적인 탐욕을 비운 깨끗한 영혼으로 합류하려고 한다. 이 1행과 2행은 빌립보서 2장 7절과 8절의 “자기를 비워”나 “자기를 낮추시고”, 그리고 1장 23절의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3장 13절의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나, 14절의 “푯대를 향히여”란 구절의 가르침에 연유한다. 나란 존재를 허물고 지닌 모든 것을 비운다는 것은 속물적인 심성들을 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목적한 지점인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염원한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통곡의 회개기도이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의 기도로 내가 나이던 것을 허물 수 있고, 가진 것을 다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였을까”를 반복하는 것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목적한 지점을 향한 간절함의 표출이다. 특히 “영생의 물줄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물소리”는 천사들의 찬양을 연상시켜 준다.   제3연은 꿈꿔왔던 눈부신 물의 나라인 하늘나라로 향하는 황홀한 걸음걸이다. “그렇게”란 제2연의 1행과 2행의 전형적인 신앙의 삶으로, 그리고 “눈멀어 더듬듯 황홀히 흘러”서 하늘나라로 향한 의지이다. “가 닿으리”를 반복한 것도 소망에 대한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이 시에서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현실의 세계에서 내세의 세계로 갈 것을 소망한 것은, 기독교시의 지평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이거나 내세관에 대한 비유의 시적 방법과 구성, 훌륭한 시적 상상력 소재의 활용 등은 시작의 능숙함을 엿보게 한다. 그의 제4시집인 〈내 가슴의 벽난로에 장작을〉 (마을 펴냄·1994년)에 수록된 「내 사랑은」이란 시에서도 「물」과 같은 기독교적 내세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2-05
  • 기독교문협, 반석교회서 세미나 및 문학사랑방
      기독교문학이 생기를 얻으려면 기독교문화가 토착화돼야 교인과 문인들이 함께 어우러진 시와 노래, 악기 연주로 성황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김영진시인)는 세미나 및 제39회 문학사랑방을 지난달 29일과 30일 대전 반석교회(담임=박정미목사·수필가)에서 가졌다. '한국 기독교문학의 방향'이란 주제로 가진 세미나와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을 통한 하나님의 복음전파에 기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특히 교인들과 지역의 주민, 문인들과 함께 가진 '문학사랑방'인 '가을의 끝자락 - 시와 노래의 축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최은하원로시인을 좌장으로 가진 세미나는 유승우시인과 오승재작가가 주제를 발표했다. 유시인은 '기독교문학의 방향 - 현대시는 이미지의 형상화'란 제목에서 “기독교문학의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라는 접두사를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예술이며, 예술은 그 작품으로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면서,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말은 시의 형식적인 정의다. 신의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지식이나 사상이라면 설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예술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며 체험이다”고 밝혔다.   또한 유시인은 “시인은 곧 강열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모든 예술작품 곧 시와 노래와 그림은 그리움의 열매 곧 사랑의 열매이며, 사랑의 열매는 곧 영혼의 열매인 것이다. 열매는 생명의 집이며, 시는 영혼의 집이다”고 강조했다.   오승재작가는 '기독교문학의 방향 - 독자가 없는 기독교문학'이란 제목에서 “우리나라에는 불교문학, 유교문학이란 명칭이 없다. 유교와 불교는 이미 우리나라에 생활화되고 있는 문화기 때문이다. 서구에 기독교문학이란 명칭이 없는 것도 그들의 문화는 이미 기독교문화가 생활화되어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문학이 생기를 얻으려면 먼저 기독교문화가 토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오작가는 “기독교인이 쓴 글만이 기독교문학이라는 주장은 누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기독교인인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기독교문학을 계속 하겠다면 ‘기독교’라는 접두어를 빼고, 문학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향기를 풍기며, 기독교문화를 확장하는 데 일익을 감당하겠다는 소명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미나가 끝난 후 오후 7시 30분부터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문학사랑방은 문학과 노래가 어우러진 축제였다. 이 축제는 김석림상임이사의 사회와 이문수시인의 기도, 박정미목사의 '가죽옷의 은혜'란 제목의 설교, 김영진이사장의 인사 등 순서로 예배를 드린 후 가졌다.   최규창명예이사장의 사회로 가진 문학사랑방은 문인과 교인들의 시 낭송과 찬양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문인들 중에서는 유혜목시인의 '내 안의 당신', 이선님시인의 '당신의 나라로', 이정혜시인의 '촛불의 기도', 권오숙시인의 '나와 예수님', 이희복시인의 '가을에 부치다', 최은하시인의 '별 하나와 나', 그리고 교인 중에는 박 일권사의 장 콕도 시인 '귀', 박진우집사의 '내 가슴 설레느니', 조병훈권사의 '가을이 아름답습니다'란 제목의 시 낭송, 이명희아동문학가의 뱀의 꼬리와'란 제목의 동화구연이 있었다.   찬양에는 남현주학생의 '임재', 이승우권사와 그 자녀인 김효중과 김현중의 '나의 어머니', 원종혁권사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리고 나영웅어린이의 피아노연주인 '쇼팽 왈츠 13번' 박석현장로와 박영근권사, 나영찬권사와 박혜경권사의 색소폰연주와 찬양인 ?가을이라 가을바람?, 박광철집사와 박진우집사, 함훈욱청년의 브라스밴드 연주, 박종현학생을 비롯한 김성진, 나새연, 최인영의 바이올린 연주, 송치선집사를 비롯한 33명의 에바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순서로 진행됐다.   한편 김영진이사장은 “교인들 모두가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반석교회가 다양한 취미생활을 권장하는 결과임을 입증해 준다”면서, 선도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교회이다“고 감탄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2-0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5]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 - 임승천의 「오늘, 하늘에는」
      오늘, 하늘에는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   아득하면 아득할수록 기도의 눈이 보이고 햇살이 반짝인다   언제나 조용히 흐르는 물따라 다가서면 하루 종일 넘치는 은혜의 강물   강가에 서 있는 나무는 꽃눈 가득한 축복에 쌓여 기쁨으로 꽃을 피우면   다가오는 음성 뚜렷한 눈뜨임 속에 온 몸에서 솟아오르는 은총의 샘물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거듭 열리면 말씀의 불꽃 내 안에서 활활 타고 있다 - 「오늘, 하늘에는」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을 형상화했다. 천국에 가는 삶은 기도의 삶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기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과 경배, 감사, 죄의 회개, 간구, 중보를 드린다. 하나님은 아룀을 들으시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간구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 은총의 삶을 영위하도록 섭리하신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삶에서 비롯된 과정을 형상화했다.   첫 연에서 하늘에는 천국을 향한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고 제시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1행으로 함축해 구성했다. 천국은 화자가 지닌 신앙의 척도로 보면 ‘오늘’이란 시점에서 멀고 아득한 길이다. “멀고 아득한 길”에서 암시하듯이 천국에 가는 길은 쉽게 갈 수 없는 멀고 아득한 길임을 깨닫게 한다. 제2연은 천국에 가는 길이 멀고 아득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삶임을 보여 준다. “아득하면 아득할수록”이란 구절은 신앙의 삶에 대한 돌아봄에서 생성(生成)된 깨달음이다. 천국에 가는 길이 밝지 못하고 아득하게 여겨지는 것은, 신앙의 삶에 대한 자각이며, 회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도의 눈”이 보인다는 것은, 멀고 아득한 천국의 길이 가깝게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햇살이 반짝인다”란 것은 ‘흐린 날’이 아니라, ‘좋은 날’의 이미지를 지닌 평온하고 화평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기도의 눈’이 보이는 신앙의 삶을 지녔기 때문에 천국이 가깝게 보이고, 화평한 마음을 지닌 것이다.   제3연은 축복의 삶은 기쁨의 삶임을 일깨워 준다. 강가의 나무에서 꽃눈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받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 축복으로 인해 기쁨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 나무의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적인 삶으로 연상시켜 준다. 그것은 축복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4연은 은총의 삶임을 스스로 체험하고, 삶 속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가오는 음성 / 뚜렷한 눈뜨임 속에”란 구절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거듭나는 삶에 대한 표현이다. 그 결과는 “은총의 삶”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은총의 삶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바른 신앙인의 삶이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란 구절에서 보여주듯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기도가 생활화된 삶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삶은 ‘하늘 문’이 열릴 수 밖에 없다. 기도가 지닌 힘이다. 이 ‘기도의 문’과 ‘하늘 문’이 열리면, 화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를 수 밖에 없는 체험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말씀의 불꽃 내 안에서 활활 타고 있다”란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삶이다.   이 시는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이다. 천국으로 향한 하늘에는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기도의 삶은 은혜의 삶이 되고, 축복과 은총의 삶이 된다. 이 삶은 기도의 문이 열리고 천국(하늘)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위하는 삶임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1-1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4] 어머니의 삶통한 바른 삶으로 인도 - 이매수의 「어머니의 유산」
      어머니 주름은 늘어진 내 마음에 회초리가 되었다   어머니 눈물은 메마른 내 가슴에 마중물이 되었다   어머니 웃음은 고단한 내 삶에 꽃이 되었다   어머니 기도는 방황하는 내 삶에 등불이 되었다 - 「어머니의 유산」의 전문 이매수의 「어머니의 유산」은 어머니의 삶을 통해 바른 삶을 영위한 과정을 형상화했다. 어머니의 삶은 화자의 삶에 거울이며, 길라잡이로 고백한 시이다. 어머니의 모든 것은 가정과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   이 시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함축시켜 형상화했다. 어머니가 화자에게 물려준 유산은 재물이 아니라, ‘주름’과 ‘눈물’, 그리고 ‘웃음’과 ‘기도’이다. 어머니의 모든 삶을 집약한 단어이며, 화자에게 물려준 유산으로 인식했다. 어머니의 웃음과 기도도 사랑과 희생의 모성애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어머니를 통해 화자에게는 ‘회초리’와 ‘마중물’, 그리고 ‘꽃’과 ‘등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바른 삶의 길로 인도되고, 정착되었음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주름’→‘회초리’, ‘눈물’→‘마중물’, ‘웃음’→‘꽃’, ‘기도’→‘등불’이란 등식은 어머니를 통해 자식인 화자가 변화된 삶이다. 이러한 절제된 시어와 함축, 그리고 시적 구성은 시작(詩作)의 깊은 고뇌에서만 성취할 수 있다.   제1연은 어머니의 주름을 통해 화자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해 준 회초리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주름은 연륜적 흔적으로 노쇠하여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가정과 가족을 위한 희생의 산물로 깨닫았기 때문이다. 성장해 가는 자식의 눈에는 어머니의 주름이 아픔의 눈물일 수 밖에 없다. 힘든 생활 속의 모진 고생과 땀에 대한 흔적이다. 그래서 화자에게 그 주름은 회초리가 되고, 잘못된 삶을 바른 삶이 되기 위한 채찍질로 사용되었다.   제2연은 어머니의 눈물이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준 마중물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메마른 내 가슴”이란 무기럭한 삶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눈물은 메마른 가슴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하였다. 사실 마중물이란 우물물을 길어올릴 때에 사용하는 물이다. 펌프로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서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안에 붓고,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이때 붓는 물이 마중물이다. 이 시에서의 마중물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어머니의 단순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아픔의 눈물이기 때문에 메마른 가슴을 적셔 무기력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제3연은 어머니의 울음이 화자의 고단한 삶속에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웃음과 꽃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삶 속에서의 웃음은 사랑과 행복의 삶임을 의미한다. 또한 삶 속의 꽃은 아름다운 삶이다. 어머니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 삶속의 웃음은, 사랑과 행복의 웃음이기 때문에 고단한 삶 속에서도 피어난 사랑과 행복의 꽃이다. 그 꽃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사랑과 행복의 삶으로 인도한 것이다.   제4연의 어머니의 기도는 화자의 방황하는 삶에 등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피눈물 속에서 드린 기도로 성장하였다. ‘기도’가 ‘등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일회성의 기도가 아닌 끊임없는 기도의 결과이다. 자식을 위한 이 뜨거운 기도였기 때문에 방황하는 삶 속에서 바른 삶으로 인도될 수 있는 등불이 되었다.   이 시는 어머니와 화자의 깊고 넓은 삶을 몇 단어의 시어로 함축해 형상화했다. 재물이 아닌 어머니의 삶을 유산으로 인식한 창조적인 발상과 군더더기가 없는 시어와 정갈한 구성, 뛰어난 기교가 특이하다. 또한 선명한 이미지는 그의 시작에 대한 특징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1-07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3] 내면적인 결실위한 경건과 성숙한 삶 -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의 전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는 결실의 가을에 드리는 기도의 시이다. 이 시는 내면적인 성숙의 결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의 형식에 의한 간절함을 간구한다. 3연으로 구성된 각 연의 첫 행은 ‘하소서’라고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우소서’라고 간구한다.   첫 연은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라고 시작한다. 그것은 “주여, 가을에는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소서”로 산문적으로 서술할 수 있지만, 시적인 표현으로 함축했다. 그리고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는 결실에 대한 결산의 시기이다. 가을의 시작을 지나 마지막 낙엽들이 지는 때인 가을의 끝을 의미한다. “겸허한 모국어”는 내면적인 세계, 즉 경건한 삶이거나 성숙한 삶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3연의 “나의 영혼”과 관련지어 볼때, ‘영혼의 소리’로도 대치할 수 있다. “나를 채우소서”는 “겸허한 모국어”, 즉 ‘경건한 삶’이나, ‘성숙한 삶’, ‘영혼의 소리’로 채워달라는 간구이다.   둘째 연은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한다. 그것은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하고 소망한다. ‘오직 한 사람’은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다. 수용적 태도에 따라 이성적 연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는 성숙한 삶을 위해 충실한 생활을 간구했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신앙의 열매’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둘째 연은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고, 오직 한 사람인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소망한다. 또한 신앙의 열매를 결실하기 위해 충실한 생활을 간구했다. 이 둘째 연의 독립적 그 자체로 이해한다면, 이성적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매를 소망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랑하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결혼으로도 유추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신앙의 발로이다.   셋째 연은 주제연이다. “호올로”는 주제어가 된다.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는 삶의 경건성을 간구한다. 그리고 “굽이치는 바다”는 삶의 시련과 역경을 함축하고, “백합의 골짜기”는 행복한 삶을 의미할 수 있다. “마른 나뭇가지”는 허위와 장식을 벗어버린 순수함을 나타낸다. “까마귀”는 참회하는 영혼의 겸허함을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호올로”나 “까마귀”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고독하게 다가서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김현승의 시에서 ‘까마귀’는 ‘절대 고독’을 의미하는 문학적 상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는 순수한 한 영혼이 시련과 역경, 환희를 지나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서있는 고독한 모습이다. 그것은 맑은 영혼을 지닌 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 시는 가을을 맞아 내면적인 결실의 기도이다. 지금까지 누구나가 가을에는 외형적인 결실만을 추구해 왔다. 농경사회는 추수를 얼마만큼 했느냐가 중요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금전적으로 환산한다. 그러나 이 시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내면적인 결실을 추구한 것이 시적 가치를 획득한다. 무엇보다도 김현승의 ‘절대 고독’이 그대로 추구되고 있는 것도, 시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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