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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8)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213쪽)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5.18민주광장의 광경   <소년이 온다>의 1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6명의 인물은 오월 광주의 희생자이고 피해자이다. ‘은숙’ ‘선주’ ‘나’ ‘동호 어머니’는 각각 자기 위치에서 5.18을 증언한다. 은숙이 도청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영혼이 부서졌다’고 생각한다. 은숙은 검열 경찰에게 ‘뺨 7대’를 맞으며 5.18의 트라우마를 기억해 낸다 임선주는 광주를 치루며 참혹한 성고문을 당하고 그후유증으로 여성성을 상실한다. 선주는 자신에게 광주의 상처와 고문을 증언하라는 유신 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들, 노동 운동할 때 믿고 의지하던 성희 언니조차 모른척 한다. 이는 고통의 기억을 거부하고자 한 것이다. 동호 어머니는 두 아들을 다 잃을 수 없어 동호에게 집에 오라고 하고 발걸음을 돌린 것을 평생을 자책한다. 동호의 실제인물, 당시 광주상고 1학년인 열여섯 살 문재학이 우리에게 온다. 2024년 10월, 노벨문학상의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되어 나라마다, 도시마다 온다. 넋이 온다. 한강은 5월 광주를 기억하고픈 이에게 영혼들이 못다한 말들을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고통스럽지만,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인간 존엄의 서사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다가 두 개의 질문을 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었다.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으리라고 체념을 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5월 군인들이 되돌아 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 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시는 겁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박영준의 마지막 밤에 쓴 ‘양심’에 대한 증언은 한강에게 현현이란 이피퍼니가 되었다. 오월 광주에서 쓰러진 이들은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옴에도 인간의 양심이란 눈부신 한순간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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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9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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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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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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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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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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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교소설산책] 기독교 실천운동의 건강한 생명력 ③ - 김영현의
    거듭, 이어서 나온 박 목사의 말은 이러했다. “진짜 훌륭한 운동가라면 농사꾼과 같을 거야.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주어지면 하늘을 향해 무성히 솟아나오는 식물들이 곧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이구.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네.”이미 몹시 지쳐 있는 그에게 들려준 박 목사의 말이 그를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늘 한가로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았던 박 목사의 보이지 않는 예지에 그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촌에서의 자연의 생명력을 본받아 그도 다시 기운을 추스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포도나무 밭을 향해 돌아서서 바지춤을 끄르고 요란스럽게 갈겨대는 박 목사의 황소 오줌과도 같은 오줌발 소리가 그의 건강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김선생)도 이제는 다시 원기를 회복해야 할 차례였다.    이 작품은, 조금 각도만 바꾸면, 박 목사의 건강한 생명력을 결과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그리하여 새로이 의식의 변화를 겪게 되는 그(김선생) 중심의 서술 관점을 보여준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기독교 실천운동이 무슨 요란 법석대는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그러므로 평범한 곳에서부터 기독교적 실천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역시 그런 건강하고도 평범한 진리를 이 작품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소설 <포도나무집 풍경>을 읽고 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김영현의 이 소설은 상당한 면에서, 앞서 살펴보았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을 연상시키는 면이 농후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이다. ‘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김 선생이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 조백헌 원장과 상당히 유사한 데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곧 김 선생은 자신의 신념에 철저했던 조백헌 원장과 같이 그 나름의 신념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가 민주 투사로 저항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던 전력이 그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오마도 간척사업을 추진하다가 황희백 장로등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그 섬(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 원장과 같이, 김 선생도 수감생활과 그 후 대통령 선거 참패등으로 의지가 꺾여 일종의 도피생활과도 같은 침체기를 거치게 되는 것이 양자(兩者) 상호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병원을 떠났던 조 원장이 이후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오는데, 그때는 과거의 지배자(통치자) 상을 완전히 불식시키고 단순히 일개인 자격으로 그 섬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만으로 복귀했다고 하는 사실이 그(조원장)의 인격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 선생도 선거 패배 이후 열패감, 배신감, 허탈감 등으로 무력해진 모습을 보이다가 강화 지역 주민들과 박 목사의 건전한 생활방식과 삶의 자세 등에 영향을 받아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게 되었다는 데에서 결국 그의 인격변화를 우리는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김 선생이었지만,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선택했던 후보가 낙선했다고 해서 열패감과 허탈감에 빠져 의기소침해져 버렸다는 것은 지나친 단견 또는 조급증에 그가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한 실례라고 보겠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의 현실적 모형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누가 천국 건설을 위한 투쟁에 주저할 리 있겠는가. 그가 뒤늦게라도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그의 인격변화의 결과였다고 판단된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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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2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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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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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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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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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6-24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윤창섭은 언니 허윤숙의 애인이었다. 윤창섭의 돌연한 출현이 최순애의 생활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언니의 애인이 왜 순애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을까. 윤창섭은 말하자면 염상섭의 <삼대> 속의 김병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로 ‘마르크스 보이’인 셈이다.     그 청년 앞에서 순애는 돌연 <삼대> 속의 홍경애의 위치로 변해버린다. 술집 바커스의 여급 신분이었던 홍경애가 김병화(마르크스 보이)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가면서 여걸의 위치로 점차 격상되듯이, 최순애 역시 윤창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여성 사회운동가로 서서히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다운 동지를 얻게 되어 기뻤던 윤창섭은 최순애에게 처음엔 동지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더니, 다음에는 자기 애인 허윤숙과의 합의를 거쳐서인지 윤숙의 언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구혼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언니(윤숙이)가 자기 애인 윤창섭을 최순애에게 넘겨주기로 작심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순애가 반신반의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언니 허윤숙은 주의자(主義者)로서의 윤창섭이 동지애로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최순애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좋을 일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망명녀>(1932)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염상섭의 <삼대>(1931)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지금껏 보아온 윤창섭·허윤숙·최순애의 삼각관계는 <삼대>에서의 이필순·김병화·조덕기의 삼각관계의 변이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망명녀>에선 남성 윤창섭을 가운데에 놓고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양보하는 모습이지만, <삼대>에서는 여성 이필순을 가운데에 놓고 남성들이 사랑을 양보하는 형국이다. <삼대>의 이런 국면이 <망명녀>에 와서 하나의 변이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망명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어떻든 결과는 세 사람 모두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게 되고, 한 쌍의 남녀는 결혼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에 이르러 의외의 돌발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순애가 각기 두 사람 앞으로 쓴 편지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만 것이다.     순애는 윤창섭의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어떤 지령(암호문)을 접한 뒤, 자기 예비 신랑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스스로 일방적 파혼 선언을 해버린 뒤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 <망명녀>는 한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이 사랑의 노래는 결코 애가(哀歌)일 수 없고, 찬가(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의 모처에서 망명녀의 신세로 살아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순애는 자신이 바라서 스스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극적이지 않다.     윤창섭은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될 여인이 잠적해 버리는 불행에 잠시 처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비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윤창섭이 최순애의 지극한 사랑을 당시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보하였던 사랑을 되찾게 된 허윤숙의 경우도 결코 비극에 이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해프닝을 치른 코믹한 감정에 그녀가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또 그들 세 사람 중에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외에 다른 경망한 감정에 휘둘린 일은 있었던가? 아니, 세 사람 모두가 매우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6-11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김경순, 여운영 등에 이어서 전상범의 세 번째 부인이 된 바 있었고, 또한 이석현, 전상범에 이어서 세 번째 남자 이종하와 또다시 결혼을 한 바 있는 김말봉은,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속칭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다 경험해 본 바 있는, 어찌 보면 최적의 통속(대중) 작가 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그 결실이 바로 그녀의 공식적인 데뷔작 <망명녀>(1932)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명녀>를 무슨 통속소설의 샘플(모범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기에는 그 작품 자체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품위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소설 작품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소설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김말봉의 작품 <망명녀>에는 세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서 세 명의 젊은이들이란 최순애(산호주), 허윤숙, 윤창섭 등, 두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애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 신분인 산호주(최순애)는 요리집 명월관에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 나간다.   그런데 오 주사의 몰인정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오 주사에게 폭력적 자세로 맞서게 되고, 그 결과 순사에게 끌려가기까지에 이른다. 얼마 뒤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허윤숙의 명함이 놓여 있었고, 저녁때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글발도 거기에 함께 적혀 있었다. 허윤숙은 최순애(산호주)의 여학교 시절 상급생 언니였는데, 그동안 외국 유학을 갔다가 그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던 것이다. 이 허윤숙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산호주(최순애)는 8년 전의 과거사를 회상해 보게 된다.   C여학교 3학년 시절, 최순애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 십 원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딸(그녀) 때문에 직장마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그녀)가 직접 직업전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신분, 곧 명월관의 기생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허윤숙이 나타나 산호주에게 “너는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내용인즉슨, 허윤숙이 요리집 명월관 주인의 요구대로 몸값 3백 원을 지불하고 산호주를 기생 신분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후 최순애는 언니 허윤숙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점차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명월관에서 나온 이래 잠깐 잊고 있었던 모르핀 주입의 악습마저 되살아나게 되었다. 궐련을 자기(언니) 면전에서 빨고 몰래 모르핀 주사도 맞는 최순애를 구원하기 위해 언니 허윤숙은 그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석 달을 겨우 넘기고 최순애는 교회 출석마저 그만둬 버렸고,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기도)까지도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난’ 정도로 여겨 중지하고 말았다. 최순애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자기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로 자학적인 몽상에 사로잡히고,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비운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갑작스런 어떤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인물이란 일본에서 최근 귀국한 윤창섭이란 이름의 청년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6-08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2)-김말봉의
    끝뫼 김말봉이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한 해가 1923년이고 졸업한 때는 1927년이었다. 그 가운데(중간) 해인 1925년에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시집살이>란 소설 작품으로 응모해 ‘입상’을 한 바 있다. ‘당선’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앞을 기약할 수 있다는 희망(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졸업하고 나서 귀국한 뒤, 1929년 중외일보 신춘문예 현상 공모에 <고행>이 당선되었고, 이어서 1932년에는 <망명녀>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끝뫼가 문학에의 열정을 어떤 하나의 목표(문단 데뷔)를 향해 치열하게 불태우던 시기, 곧 1920년대 중반으로부터 30년대 초반까지의 7년여의 시기라고 하면,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의의를 지닌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이 기간에 국내의 신경향파 문학 내지는 카프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운동이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즉 러시아에서의 라프 문학이나 일본에서의 나프 문학 운동처럼, 한반도 내에서도 맹위를 떨치던 실정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이 자리한 도시 교토(京都)가 유독 사상범들이 들끓는 곳이었다는 점 역시 참고가 될 만한데, 그녀가 받았을 정신적 영향 같은 면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겠다.   도시샤대학의 그의 후배 문인들, 곧 정지용이나 윤동주 같은 시인들과 함께, 그(끝뫼)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본다고 한다면 이들 세 문인들이 모두 기독교도였다는 사실과, 또 하나, 그들 모두가 당대의 현실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결코 눈감지 않은 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정지용은 가톨릭교도, 김말봉과 윤동주는 개신교도, 이렇게 3인은 모두 넓은 의미의 기독교도였는데, 정지용은 해방기의 문맹(文盟)과 그들의 문학에 대하여 포용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현실 문제에 어두워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자신의 시를 통하여 드러냄으로써 그 자신의 역사의식을 확고히 세웠으며, 김말봉 역시 일면으로는 윤락녀의 구제와 공창 폐지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여권 신장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세운 동시에, 타면으론 동반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상에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김말봉과 정지용은 1년 선후배 관계로 도시샤대학 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제법 우의가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만은 그들과 연령 차이가 커서 훨씬 뒤에 그 대학에서 수학했으니 함께 만나지는 못했다.) 1926년 여름방학 때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잡지사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이 잡지는 당시 카프 문사들이 주로 활동하던 무대였으며, 경성제국대학에 재학 중인 유진오·이효석 등의 작가들이 이른바 동반자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월간지였다.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이 잡지사엘 더러 찾아다녔다는 사실이 시사(示唆)하는바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1931년 초부터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었으니, 끝뫼 역시 그 소설(‘삼대’)의 주요인물 김병화(또는 홍경애)로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들의 활동상에 일말의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정이 그 1년 뒤인 1932년 초의 그녀의 조선중앙일보 데뷔작 (‘망명녀’)에는 혼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겠다. 이로써 보건대, <망명녀>에게서 보게 되는 김말봉 소설의 언필칭 동반자적 성격도 어느 면 그 근원을 짐작케 해 주는바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5-18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1)-김말봉의
    김말봉 작가의 <망명녀>(1932)란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김말봉의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중편소설다운 데가 보이며, 어떤 이는 이 작품을 가리켜 장편과 같은 구조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먼저 대중소설가 또는 통속작가로 불린, 여성 소설가 김말봉(1901-61)에 대하여 어느 정도 소개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만큼 그는 그의 경력 면에서도 독자들에게 상당히 흥미 있는 데가 있는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품 세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소설가 김말봉은 경남 밀양이 고향이며, 네 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와서 염주동에서 자랐다. 호주장로교 선교회가 세운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에서 3년간 공부하다가 서울의 정신여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 두 학교 모두 기독교계 학교였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23년 그곳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후, 학업을 마치고 얼마의 기간을 보낸 뒤 1929년 귀국하였다. 그런데 그 대학 역시 일본 개신교 3대 교파 중의 하나인 조합교회 소속의 기독교계 학교였다.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 시인 정지용·윤동주 등과 거기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겐 좋은 인연이었다고 보겠다. 재학 중이었던 때, 상급생 김말봉이 방학 때 집에 돌아와 있던 하급생 정지용을 만나기 위해 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꾀골)을 찾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26년 여름에 김말봉이 정지용 시인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 잡지사에 들렀다고 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녀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매우 활동적인 면이 엿보이는 장면들이다.   1929년 귀국한 뒤 김말봉은 수주 변영로 시인의 지원에 의해 ‘중외일보’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단편소설 <고행>을 써서 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사실상의 데뷔작이 된다고 보겠지만,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신문에다 응모하고 당선된 것이 아무래도 께름칙했던지, <고행>이 당선된 지 보름 만에 그 신문사에 사직원을 내고 고향인 부산으로 귀향해 버렸다. 그리고는 1932년 ‘조선중앙일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다른 작품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망명녀>였다.   그리고는 그 여세를 몰아 1935년 ‘동아일보’에 첫 장편소설 <밀림>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한운사 작가에 의하면 이 연재소설 발표는 역시 수주 변영로 시인의 주선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를 회고한 정비석 작가의 기억으론 그 신문사 편집국장 설의식과 학예부장 서항석의 주선으로 이 <밀림>이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고 보면, 아마도 3인이 회동해 이 연재 결정을 내리고, 그 윤곽을 수주 변영로가 부산의 김말봉에게 서신으로 연락해 주지 않았나 싶다. 어떻든 이 작품의 연재로 김말봉이 인기 작가로 저널리즘 스타가 되었다고 정비석은 쓰고 있다. 1937년에는 또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작 <밀림>보다 훨씬 더한 인기를 얻으며 독자 대중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밀림>을 서울의 일간신문에 연재할 당시(1935), 그는 부산의 동구 좌천동 주민이었다. 그날그날 신문의 삽화가 필요했으므로 그는 당시 부산고녀 4년생이던 한무숙에게 그 일을 맡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화가를 꿈꾸던 한무숙이 후에 소설가가 되었으며, 또한 동생 한말숙마저 소설가가 되는 다소 기이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5-12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6)-황순원의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세계가 상호 크게 대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독교와 샤머니즘에 대한 김동리와 황순원의 평소의 종교관 내지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로 볼 수 있다.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 세계는 기독교 세계에 비해서 훨씬 열세에 빠져 있는 세계이다. <을화>의 샤머니즘이 그 스스로 독립적인 데가 있는 것에 비하면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은 크게 자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샤머니즘이다. 윤성호에게 훼방당한 명숙이의 샤머니즘이 그러했고, 송민구에게 기대기만 했던 박수 변씨의 샤머니즘이 또한 그러했다. 준태에게 기댔던 돌이엄마의 샤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 의하면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은 분명히 ‘흔들리는 터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세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특히 변씨나 그의 이종 사촌(갓 제대한 청년)이 송민구와 함께 벌이는 무교적 분위기의, 3각의 동성애 행각은 매우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무교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작가 황순원은 무교의 세계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임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그러한 무교 세계는 처음엔 순진하던 민구마저 감염(?)시켜 부도덕한 행위에 휘말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무당인 돌이엄마가, 비교적 냉정한 타입의 비판적 지성인인 준태로 하여금 동거의 관계를 맺게 한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는데, 몰인정한 그 무당이 죽음을 앞둔 준태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그 한 가지 일로써도 이 무교 세계의 무근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 세계는 아무래도 ‘무교’라기보다는 ‘무속’의 세계에 오히려 더 가까운 그런 세계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반면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에 보이는 기독교는 샤머니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상당히 우월한 종교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황순원의 경우엔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을화>의 보수적인 기독교에 비하여 <움직이는 성>의 다소 진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실천지향의 종교에 대해서 신뢰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면보다도 <움직이는 성>이 보여주는 강점은 등장인물, 특히 윤성호가 드러내는 종교적인 면의 심적 갈등, 곧 성격 면에서의 근대적 면모라고 하겠다. 그는 불륜 관계로 인한 죄를 저지른 경험도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고민에 빠져 보기도 했으며, 후엔 자진해 속죄의 고행 길을 걸어가기도 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내면의 연소 과정을 거쳐 성숙한 인격을 이룰 수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 결과 성호는 성공(?)을 보장받는 도시목회의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길을 박차고 빈민선교의 길을 자청해 나간 것이며, 또한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겉치레밖에 되지 못할 그 목사직까지도 흔쾌히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민구의 출세 지향적인 실리 추구의 삶이나 준태의 회의주의적인 삶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신앙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성호의 신앙이 샤머니즘적인 것들을 모두 용해시켜 자신 안에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틸리히 식의 ‘궁극적 관심’을 지녔기 때문이며, 또한 일시적 실리 추구의 삶에 대하여 거리를 둘 줄 알았던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기독교 신앙은 개인구원은 물론 사회구원의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발전, 성숙될 수 있었다고 보겠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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