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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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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5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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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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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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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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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6-24

실시간 문학 기사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5)-심훈의 「상록수」
      이제 마지막으로, 좀 다른 방향에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심훈의 <상록수>(1935)가 어쩌면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1982)이란 유명한 소설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어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그 <여자의 일생>에 대하여 독자 측에서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주(!) 간략히 그 작품의 이야기 골자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가난한 여주인공 기꾸는 가톨릭 신자인 남주인공 세이기찌를 몹시 사랑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심해서 결국 그가 투옥되고 말았다. 기꾸는 옥중의 세이기찌를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치금을 마련해야 했고, 마지막 수단으로 환락가에서 몸을 팔아 영치금을 마련해 그의 옥바라지를 했다. 세월이 흘러 세이기찌가 징역살이를 끝내고 출소했으나, 중병에 걸린 기꾸는 이미 운명을 하고 만 뒤였다.    이런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 그보다 훨씬 앞서 나온 심훈의 <상록수>와 구조적 일치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우리의 관심을 유발한다. 만일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 심훈의 <상록수>로부터 소설 구조상의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하나의 가정이지만), 우리가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두 작품 상호 간에 어떤 영향을 서로 주고받은 문제는 명확히 실증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영향사적 관점에서 분명한 ‘영향의 주고받음’이 증명될 수 있는 형편은 지금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두 작품 상호 간의 결과적 일치점 내지는 유사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선에서, 단지 시기적으로 앞서 나온 우리 소설(‘상록수’)로부터 뒤에 나오게 된 일본 작품(‘여자의 일생’)이 막연하게나마 어떤 영향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적 관점에서의 개연성만을 시사(示唆)하고자 한다.    <상록수>의 구조가 그러하듯 <여자의 일생>의 구조 역시 남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각기 번갈아서 지그재그식으로 엮어나가는 이른바 격자소설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두 주인공이란 (동혁과 영신에 대응하는) 세이기찌와 기꾸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구조는 흔한 것이 아니냐 하는 물음이 뒤따를 법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식의 구조가 흔한 게 아니라 오히려 희귀한 편이란 데 우리의 관심이 기울어지는 것이다.    박동혁과 채영신, 이 두 청년들은 그들 각자가 추진하는 농촌계몽 사업, 또는 농촌봉사 활동에 있어서 거의 막상막하의 열정을 보이면서도 그 사업을 중심축으로 하여 두 사람 다 사랑과 이념에 깊이 빠져 있는 편인데, 특히 채영신은 사랑에, 박동혁은 보다 더 이념에 몰두해 있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인물 설정 면의 특징이 일본 작가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채영신·기꾸 등의 소박한 사랑의 소유자(여성)들이 박동혁·세이기찌 등의 강력한 이념의 소유자(남성)들을 만나 그 소박한 사랑이나마 꽃피워 보지 못한 채 희생·봉사의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 결말의 이야기…. 두 작품들은 서로 흡사한 구조적 일치점 내지는 유사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런 개연성에 대해서만 소루하게 언급했지만, 이후 작가들의 생애 연구, 또는 전기적인 자료 연구, 나아가서는 한일문학의 교류사 연구 등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답을 이끌어내는 후속적인 논의가, 그 누구에 의해서든 나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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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9
  • [성탄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우리는 지금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백향목 숲 향기가 도열해 있는 길에 샛별은 청보석처럼 손짓합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결한 분이 처음 누우셨던 말구유, 주님이 받으실 고난과 베푸실 은혜와 기적을 생각하며, 두 다리에 힘을 모으고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걷습니다. 해는 이미 졌지만 어둡지 않고 처음 딛는 땅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손에 손에 아기 예수께 드릴 선물을 들었습니다. 어떤 손에는 찬양을 어떤 손에는 감사를 어떤 손에는 사랑을 어떤 손에는 영광을 어떤 손에는 소망을 어떤 손에는 감격을 어떤 손에는 아, 어떤 손에는 뜨거운 눈물을. 황금의 쟁반에 받쳐 들고서 믿으며 노래하며, 노래하며 믿으며 걸어갑니다. 바람은 은빛 종을 흔들면서 어서 오라, 오라고 부릅니다.   동서와 남북, 사방천지에서 구름 같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사람들, 기뻐하러 가는 사람들. 등성이를 넘어서 산굽이를 돌 때마다 주님의 생명은 샘처럼 솟아나고 주님의 진리는 대양처럼 파도쳐 우리의 발걸음이 환희로 넘칩니다. 가다가 벼랑을 만나면 날아서 갈 것입니다. 가다가 가시덤불에 갇히면 주님의 지팡이로 헤치고 나갈 것입니다.  어떤 짐승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찬양하러 갑니다. 길은 길을 불러 이어지고 마음은 타올라 발부리를 지킵니다. 아무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우렁찬 행군,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세계의 만민이 한마음으로 가는 길,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감사하러 가는 길, 경배하러 가는 길. 우리는 주님의 병사, 아기 예수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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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6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4)-심훈의 「상록수」
      이제부터는 <상록수>(1935)의 기독교문학적 특성을 몇 가지 관점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상록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독교 세계를 반영한 소설 작품은 모두 ‘도시소설’ 부류였다. 이광수의 <무정>(1917)이나 <재생>(1924)을 비롯하여 염상섭의 <삼대>(1931) 등 소위 도시소설들에 기독교적인 세계가 반영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무정>이나 <재생> 등에서 어느 정도 기독교 세계를 보여주었던 춘원도 그의 농촌소설 <흙>(1932)에서는 기독교 세계를 거의 반영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상록수>는 ‘농촌소설’에 기독교 문제를 끌어들인 첫 번째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농촌소설’의 본격적인 첫 작품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상록수>란 작품의 의의는 이 소설이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맨 처음으로 반영시킨 작품이란 점이다. 도시소설이건 농촌소설이건을 불문하고 <상록수> 이전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 이광수·김동인의 작품들은 물론, 염상섭의 <삼대>마저도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점에서 반영시켰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염상섭의 <삼대>는 기독교소설로서도 문제작의 하나임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 기독교 세계관이 독자 대중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전달되는 작품이라곤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느 면 부정 위에다 희미한 긍정의 세계를 구축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인 작품 정도로 봐줄 수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상록수>는 기독교 긍정에의 굵은 선을 드러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다른 의의를 찾는다면 그것은 <상록수>가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 계열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도 이 작품은 한국 기독교문학사에서 아마도 효시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의 소설계에 이른바 실천문학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양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그 수십 년 전에 산출된 소설 작품 <상록수>의 위상은 결코 도외시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겠다. (70년대에서의 이 방면의 희귀한 예외가 황순원의 1973년 작품 <움직이는 성>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상록수>에서 한 가지 더 어떤 의의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한국 기독교소설사에서 명실상부한 여성 주인공을 첫 번째로 등장시킨 작품이란 것이다. 물론 필자는 우리나라의 ‘장편소설’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가령 염상섭의 <삼대> 속의 홍경애가 주요인물 김병화의 짝으로서 여성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역시 그녀는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위상(희생적인 실천적 신앙인 상)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이 명실상부한 기독자 여주인공을 맨 처음 부조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록수>보다 십여 년 앞서 나온 이광수의 <재생>의 여주인공 순영이도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녀의 ‘자진(自盡)’ 사건으로 인하여 그녀 자신의 기독교도로서의 최소한의 위상마저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면, <재생>의 순영이는 <상록수>의 채영신과는  나란히 논할 수 있는 위치의 여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불가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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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9
  • 목양문학회 30주년 행사, 목양문학상 시상과 공로패를 증정
    ◇「목양문학」이 3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목양문학회가 3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감사예배와 출판기념식, 시상식, 공로패 증정식 등 풍성한 행사로 드려졌다. 그럼에도 참여 인원을 제한하여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등 안전한 환경 속에서 모든 일정이 진행됐다. 이날 한국목양문학상 김정석목사(시)와 문장식목사(수필), 안준배목사(평론)가 수상했다.   이 행사에서는 창립회원과 공로회원들을 향한 공로패 증정식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고훈, 정려성, 박영률, 박재천, 최세균, 유한귀, 박종구목사가 창립회원으로, 김재남, 홍문표목사가 심사위원으로, 고환규목사가 시 낭송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증정받았다. 또한 이날 차기 임원진이 발표된 가운데 전담양목사가 한국목양문학회 신임회장으로 추대됐으며, 박상기전임회장에게 공로패가 증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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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1-12-09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3)-심훈의
    이광수의 <흙>(1932) 연재와 심훈의 <상록수>(1935) 연재가 겨우 3년이란 시간차밖에는 나지 않는데도 두 작품이 상당한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주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두 작품 모델의 생동감 여부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이광수의 <흙>에는 평소 그 주인공의 모델로 채수반이란 인물이 내세워졌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어떤 살아있는 모델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좀 억지스럽게 표현해 본다면, 그 작품의 남녀 모델은 바로 그의 처녀 장편소설 <무정>(1917)의 남녀 등장인물들이었다고 표현해 볼 수 있으리라.    <흙>의 허숭의 모델은 <무정>의 이형식이며, 마찬가지로 윤정선의 모델은 김선형, 그리고 유순의 모델은 박영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의 짜임새는 매우 유사한 데가 있다. 말하자면 이 두 소설은 <무정>의 도시 무대가 <흙>의 농촌 배경으로 바꾸어지고, 등장인물 ‘이형식-박영채-김선형’ 사이의 삼각연애 관계가 ‘허숭-유순-윤정선’ 사이의 그것으로 바뀌어 나타났을 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에는 구성 면에서의 핍진(逼眞)한 친근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춘원 이광수의 <흙>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춘원)의 전작 <무정>의 주요 인물들이 그 모델로 쓰이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바 있다.    그러나 심훈의 <상록수>의 남녀 주인공은 그 실제 모델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박동혁의 모델은 심재영, 그리고 채영신의 모델은 최용신이라고 한다. 심 군은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충남 당진군(송악면 부곡리)에서 농촌운동을 전개한 작가의 큰 조카이고, 최 양은 경기도 수원군(반월면 천곡리)에서 역시 농촌봉사 활동을 하다가 과로에 지쳐 쓰러진 채 운명한 기독교(YWCA) 계통의 여성운동가였다.    특히 모델 최용신은 일제 강점기에 <성서조선>의 발행인으로 활동했었던 무교회주의 종교가 김교신 선생의 각별한 관심까지 끌었던 여성 지도자로서, 그녀의 투철한 신앙심이 바로 그녀의 그 불굴의 정신력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두 모델이 실존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사람(심재영과 최 용신)이 실제로 서로 사귀거나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두 인물을 소설 구성을 위하여 허구적으로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농촌봉사 활동에 뛰어든 남녀 생존 인물들을 작품의 모델로 사용한 <상록수>가 전혀 그렇지 못한 <흙>보다 더 생동감 있는 표현을 얻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박동혁이 자기 고향 한곡리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관심을 기울인 곳은 경제적 모순을 타파하고 사회개혁을 실현하는 분야였다. 이에 비하여 채영신이 낯선 고장 청석골에서 벌인 봉사활동은 이른바 문맹퇴치 운동과 같은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정신적인 계발에 힘쓰는 일이었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건강 상태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그곳 주민들을 위해 제 몸을 온전히 불살랐던 것이다. 그녀는 속죄양 의식, 곧 투철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살신성인의 ‘희생 봉사’ 정신이 너무도 강하고 또 확고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봉사활동)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과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이렇게 서로 행복하게 결합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기독교적인 구원의 여인상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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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5
  • 박이도 시집 「지상의 언어」 영역본 출간
      박이도시인(사진)의 시선집 「지상의 언어」(창조문예사)의 영역본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가 출간됐다. 이 시집은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영원성을 추구했다. 「지상의 언어」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집으로, 그 대역본이 같은 해에 국내에서 국문으로 발간됐다.   이 시선집은 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엮은 만큼 그의 시적 경향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이도시인은 “후반기에 와서 특히 시가 짧아지는 등 어쩔 수 없이 인생론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흔히 ‘서정적 자아’라고 말하는데, 사물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발전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한다”고 이 시선집을 소개했다. 「지상의 언어」는 △황제와 나 △어느 인생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축제의 노래 △민담 시집에서 등 5부로 구성됐으며 110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2-05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2)-심훈의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보다는 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할 것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은 단지, 지식인이 우리 농민들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농촌봉사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혜적 입장(만)을 토로하고 있음에 비하여,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은 지식인이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 유리된 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농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가 농촌의 실상을 체험을 통해 파악하고 그들의 경제적 자활운동을 힘써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보건대, 작가 심훈은 전혀 선배인 춘원(이광수)의 체질과는 다른 체질을 지닌 이였다고 하겠으니, 농촌계몽 소설이란 범주에 들 수 있을 두 편 소설 작품들의, 어느 정도의 상호 유사성으로 인하여 심훈이 다소 춘원과 유사한 체질로 인상 지어진 것은 심훈 자신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춘원이 ‘하강적 모델’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심훈은 ‘상승적 모델’에 해당하는 작가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의 입장이,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춘원이 내세웠던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상록수>의 주인공 동혁의 그것은 신문사의 그 공식적 입장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동아일보가 내세운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이란 것은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과 ‘문맹을 물리치려는 헌신적 노력’에 모아져 있었다. 곧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으로 농촌계몽 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할진대 문맹을 퇴치하게 될 헌신적 노력은 자연히 기울여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대한 결과보고를 부탁받고 일어선 박동혁은 그 경지를 뛰어넘는 발언을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자의 간섭(곧 그 발언이 제지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박동혁은 이렇게 말했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정신, 요샛말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 발언에 대하여 사회자는 절대로 계몽운동과 사상운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차례로 발언하도록 지목을 받은 채영신 역시 동혁과 같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녀는 처음엔 발언을 사양했는데, 이유인즉슨 남학생을 먼저 발언하게 하고 여학생인 자기를 후에 발표하게 한 것이 불쾌하다는 것과 또 사회자가 무어라고 제재를 하게 될 것 같으니 그런 구속을 받아 가면서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마지못한 듯이 일어나서 한 말은 이러했다. “우리 계몽대의 운동이 글자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한절대다수인 농민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우선 그네들에게 희망의 정신을 넣어주자는 박동혁 씨의 의견은 저도 전적 동감입니다!”   결국 박동혁이나 채영신이나 모두 문맹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농민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 ‘희망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긴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던 것이다. 이광수의 <흙>의 주인공 허숭은 화려한 경력에다 출세에의 욕망이 뒤범벅이 되어 농민들과의 동화라는 게 사실상 어려웠지만(아니, 수상쩍은 인물로나 비쳐지고 배척을 당하기까지도 했었지만), 심훈의 <상록수>의 주요인물들인 박동혁과 채영신은 투철한 사명감과 농민에 대한 사랑으로써 쉽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또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들로부터 신임까지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결코 쉽사리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보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2-02
  • 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1)-심 훈의
      올해는 우리나라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대섭(1901~1936)의 탄생 120주년의 해이다. 심훈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 심대섭은 춘원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30년대 농민문학의 쌍벽으로 불리는 <상록수>로 인하여 일단은 이광수의 인상을 많이 연상시키는 작가라고 보겠다. 심훈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증거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의 둘째 형 명섭이 기독교회의 목사였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가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학적을 두었던 대학이 미션계인 항주의 지강(之江)대학이란 점을 감안할 때 그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는 그의 <상록수>의 주인공을 기독교 신자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점이 이채롭다고 하겠다. 여주인공 영신을 신도로 설정하여 청석골에서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 사업을 펼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의 희생 봉사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면에서, 기독교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상록수>를 제외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록수>에서는 긍정적인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을 지닌 채영신과 세속적 이념의 견지에서 세계를 개혁하려는 박동혁의 근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젊은이가 하나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 곧 민족주의적 이념의 공통분모가 시대적 표증으로 한데 묶여질 수 있었기 때문인데,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주인공 영신이 애석하게 희생되는 일을 통해서, 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한 민족에 대한 사랑 역시 그 근원을 기독교적 희생정신에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 정신을 작품상에 반영한 심훈이 그의 유명한 항일 민족시<그날이 오면>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 예언적인 민족문학 작품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체질의 예언시를 오늘 이 땅에 재현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일제 강점기 문인들 중의 일부 인사에 속하기는 하지만, 당대에 그가 민족적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호례의 시가 바로 <그날이 오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시편 가운데 기독교적 언어가 직접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적 위기에 처한 구국적 충정을 시인의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토로해내고 있는 이 시편은, 정치 사회적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북이스라엘 왕국을 구해내고자 현실 참여적 외침을 애국적 민족시를 통해 토로했던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예언시’의 전통이 그대로 오늘 이 땅에 되살아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농촌계몽 소설 또는 농민소설로 지칭되는 몇 편의 굵직한 장편소설들이 나왔다. 이광수의 <흙>과 이기영의 <고향>, 그리고 심훈의 <상록수> 등으로서, 이들 중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 한국 기독교문학사에 엄연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록수>라고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의 기독교 문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그 연구가 결코 풍성한 편은 아닌 현 실정이라고 하겠다.   여러 가지 기독교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소설 <상록수>는 이 방면의 선행 업적이라고 할 이광수의 <흙>과 자주 대비되어 논의되기도 하였다. 같은 30년대의 농촌계몽 소설로서 역시 같은 ‘동아일보’ 지상에 연재된 작품이며, 그 신문사의 ‘브나로드 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작품들이란 공통점 때문이었으리라.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1-24
  • 25일,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
    홍덕선서예가, 13명의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   소망화랑(대표=홍덕선장로·사진)은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소망화랑에서 갖는다.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해 전시한다. 이 전시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시와 명언, 서예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이번 서예전에는 박이도원로시인을 비롯한 13명의 시인과 김경래장로,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참여한다. 박이도시인의 「겨울 나그네」, 박종구시인의 「사랑」, 김소엽시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최규창시인의 「커피향기 속에」, 김연수시인의 「기다릴 그대 있어」, 최일도시인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기도」, 정재영시인의 「하늘강」, 조신권시인의 「횃불 항아리」, 이정균시인의 「갈대사랑」, 오성건시인의 「가을연가」, 박완신시인의 「일어나 생명길 걷자」, 금보성시인의 「모래」, 권성묵시인의 「부메랑」, 그리고 명언으로 김경래장로의 「하늘이냐 땅이냐」, 서예는 홍덕선장로의 「시편 37편 46절」 등이 전시된다.   박이도시인은 “먼 길 떠나기 위해/단잠에서 깼다/아직 어둠이 머뭇거리는/새벽하늘에 아침이 온다/희끗희끗 날리며 앉으며/순식간에 천지를 휘감아/화살 짓는 눈발/서로 부딪치며 떠밀리며/지상엔 하얀 폭풍이 인다/나뭇가지 위의 새둥지가/툭, 떨어지고 새들이/포롱포롱 황급히 떠난다/굳게 닫힌 성당 문이 삐꺽/천장에 누워 있던 12사도가/모자이크를 털어내고 걸어 나온다/뚜벅뚜벅 눈 속으로 떠나간다/그 뒤를 내가 따라 나선다/열둘 그리고 열셋의 발자국이/하얀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발자국 뒤로 남는 헛기침 소리”란 「겨울 나그네」에서 12사도의 뒤를 따라 나서는 박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박종구시인은 “십자가 위/못박힌 손과 발/그 아픔보다 더 목말라/했던//그것은//너와 나/그를 향해/그토록/옹색하기만한/그것은”이란 구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엽시인은 “이루지 못한 사랑마다/별이 되게 하소서//이픈 이별마다/별이 되게 하소서//눈빛과 가슴으로/수천 수만 대화 나누고/멀리 두고 바라만 보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특히 김경래장로는 1902년에 태어나 33세에 별세한 차재선전도사의 명설교 제목인 「하늘이냐 땅이냐」를 소개했다. 차전도사는 이 설교에서 “소망의 천국인 하늘을 바라보고 사느냐”의 명언을 남겼다.    이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한 홍덕선장로는 “전시회때마다 관람자들이 감동을 받는 것을 볼때마다 계속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형상화했다”면서, “이 서에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1-24
  • 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4)-박영준의
      최광주가 지금껏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의 삶을 통해 그 자신이 터득하게 된 것은 자기의 그런 자세가 아내(삼애)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란 점과 그런 연민이나 동정심만 가지고서는 아내를 진실로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의 인식이었다. 진정한 부부생활은 정신적인 면 못지않게 육체적인 사랑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불구(반신불수)의 아내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로 마음먹었고, 또한 그 일을 성사시키는 기적(?)도 이뤄낼 수 있었다. 아내 역시 그 일의 성사를 미세하게나마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 조그만 행복도 그에게 오래 허락되지는 않았다. 비정상적인 상태에서의 부부행위가 가져다준 후유증이 아내의 정신적인 면으로까지 비화하여 그녀는 고뇌의 빛과 함께 심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일기장 사건이 또 터졌다. 우연히 어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딸 경선이가 어미에게 들켜서 심하게 꼬집힘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꼬집힌 자리는 광주가 보기에도 몹시 독이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심하게 꼬집지는 못할 만큼 대단한 상처였다. 삼애가 경선이를 꼬집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복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그녀가 성적 불구자가 되었다는 울적한 자의식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자신의 치부(추한 과거)가 일기장으로 인해 들통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첫 번째 꼬집힘을 당했을 때, 경선이는 아직 삼애의 깊은 비밀까지는 엿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란 육감이 들었던지 경선이는 그 일기장을 또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런 일을 다시 또 당하게 된 삼애는 경선이에게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동시에 앞으로는 자기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외쳤다. 이 사건이 있은 뒤로 경선이는 실제로 집을 뛰쳐나갔고, 결과적으로 고아원에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작품상에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경선이가 두 번째로 삼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을 때, 이번엔 삼애의 잔인한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미가 “나가라”고 한다 해서, 또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란다고 해서 어린 경선이가 곧장 집을 뛰쳐나가 그날 밤 돌아오지도 않은 일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식에 눈을 뜬 삼애의 자의식 때문에 결국은 그런 가정 불행마저 초래된 것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감동적인 곳은, 자신의 그런 행위를 뉘우치고 곧 언니(신애)의 딸 경선이를 데려오라고 남편(광주)에게 간청하는 삼애의 진심에 찬 애절한 부르짖음의 장면이다. 이리하여 경선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가정은 화평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의 평화 회복도 잠시뿐 폭풍은 새로운 방향에서 불어닥쳤다.    동생 대주와 목사 딸이 어울려 외박을 한 사실이 들통 나서,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고, 광주 역시 동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결국 이 두 가정은 이삿짐을 꾸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 교회의 통상적인 치부까지도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목사나 광주의 가정이 부닥치는 일시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참된 승리자는 김 장로나 김 집사 같은 율법주의적인 부류의 교인들이 아니라, 목사나 광주와 같이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에 둔감하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이란 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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