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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자기 나름으로의 신을 설정하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무한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불가피하게 예전의 기독교로 복귀하게 되는 신학도 민요섭의 경우처럼, 이동영의 부인 조정인도 남편을 통해 무슨 절대 신앙처럼 간직해 오던 좌익사상과 그 활동에 대한 회의(懷疑)를 통해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 무슨 뚜렷한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 정도로, 또는 든든한 피난처로나, 혹은 매달릴 존재를 붙드는 정도의 의미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독교라면, 비록 교인들로부터는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조건 배타적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다가 어느 때에 가서 갑자기 우익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랄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경우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 직전에 며느리에게 “예수 믿는 거 꼭 잊지 마래이. 지금 세상 보니 그 귀신이 제일로 힘 있는 거 같다.”라며 조상 귀신은 자기에게 맡기고 며느리는 참말로 예수한테 복 받는 사람 돼야 한다고 당부하던 때의 소박한 신앙 자세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섭의 복귀와 조정인의 귀의가 그 성격상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요섭의 복귀는 비교적 단순한(?) 신학적 사고, 또는 관념적 성찰을 거친 결과에서 나온 갑작스런 선회였지만, 조정인의 귀의는 처절한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요섭이 조동팔과 서로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던 신에게 공허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단순한 절망감과도 같은 그런 종류에 불과했지만, 조정인이 기독교에 몸을 전적으로 투신한 데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그녀 나름의 삶의 절실한 이유와 관련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교리문답을 진행하던 목사가 이제는 그녀 자신의 믿음의 미숙성을 간파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례를 받을 때가 못 된 것 같다.”면서 사양의 뜻을 표했으나 목사는, “교우께서는 이미 믿음이 소망이 되셨다.”라고 하며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면서 그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해준 것도 실은 그녀가 어느 정도 ‘논리’의 해독(害毒)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좌익 사상가들은 그들의 논리로써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삶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또 그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며 구원의 소망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의 신앙생활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에 통과되어 마침내 세례식에 참가하게까지 된 것이다.    그때 조정인은 기묘한 의식 상태에 줄곧 빠져들곤 했는데, 아마도 세례라는 말 속에 강조되고 있는 거듭남[重生], 또는 새로남[新生]이란 뜻이 지니는 어떤 최면효과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세례식 도중에도 여러 번잡한 상념에 젖어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그녀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남편 이동영과의 꿈 많은 시절이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비몽사몽간에 받게 된 최후의 속세의 유혹처럼 그녀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잠깐 세속적 유혹의 질긴 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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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30
  • 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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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5
  • [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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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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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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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9-16

실시간 문학 기사

  •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예수의 사랑 - 정을병의 〈본회퍼의 죽음〉
      정을병의 단편소설 〈본회퍼의 죽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는 제2회 한국소설문학상(1976)을 수상한 작품인 〈본회퍼의 죽음〉은 아마도 한신대학교에서 수학한바 있는 작가 정을병(1934-2009)이 불세출의 독일 진보적 신학자인 본회퍼 목사의 생의 말기 행보를 만천하의 독자들, 특히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광포(廣布)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작품을 써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게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울림이 매우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본회퍼(1906-1945)는 독일 히틀러 총통의 세계 정복 야욕을 미리 간파하고 나치스 제3제국의 잘못된 야망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앞서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과 어울려 그 계획을 실현하려고 동참했다가 실패함으로써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1943.4.5.) 수형생활을 하던 도중,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1945.4.9.) 독일 고백교회 반(反)나치 저항운동의 기수라고 할 젊은 목사였다.   소설 〈본회퍼의 죽음〉은 그 본회퍼 목사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뒤 감옥에 갇혀 지내던 때로부터 그의 죽음(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모습을 다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10월경부터 1945년 4월 9일(본회퍼 처형일)까지 독일의 형무소들에서 일어난 일들을 수형자 본회퍼의 거동과 그에 대한 관변 측의 대응 등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1944년 10월경의 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그가 감옥에 수감된 지 1년 반(전체 수감 기간의 4분의 3)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뒤의 사건들이 다루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이후 그가 1945년 4월9일 처형된 것을 감안하면 그는 구속 수감된 지 만2년 4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보겠다. (그리고 이로부터 21일, 곧 3주 뒤에 히틀러는 자살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다음의 부분이 독자들에게 어필한다. 수감자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음모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형무관 크노블로흐가 본회퍼의 생명이 위태하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를 구출하기 위해 탈옥을 권유하고 또한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정작 장본인은 다소의 동요 끝에 탈출 불가 쪽으로 아예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본회퍼의 심리적 추이가 독자들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다.   본회퍼는 수차 크노블로흐 형무관의 우정 어린 탈옥 권고를 받지만, 그리고 그로 인해 갈등하는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결국 자기의 탈출로 인해 어느 누구라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앞으로의 그의 행동 방향을 정했다. 자기가 탈옥할 경우 게슈타포가 자기 부모든 형제든 약혼녀든 잡아다 고문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을 하면 차라리 자기 한 목숨 희생당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형무관 크노블로흐와 수감자 본회퍼 사이의 밀고 당기는 ‘생명 지키기 작전’과 ‘생명 버리기 의지’의 숨 막히는 대결이 이 소설 속에서는 가장 광채 나는 대문으로 보인다. 처형장에서의 그의 최후 진술이다. “나는 기독교의 사랑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국가의 이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며, 마지막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본회퍼는 결국 예수의 ‘사랑’을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는, 그런 일대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5-28
  • 김성한의 단편 〈바비도〉
      김성한의 단편소설 〈바비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953년 장준하씨가 창간한 〈사상계〉 잡지에 발표되었던 〈바비도〉(1956)는 그 〈사상계〉지가 작가 김성한에게 제1회 동인문학상(1956)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그만큼 문학계의 관심의 표적이 되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편 역사소설 〈바비도〉는 15세기 초엽의 영국이 그 배경으로 되어 있는데, 이때의 영국 왕은 헨리4세였다. 그는 1399년 사촌형인 상왕 리처드2세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악명 높은 임금이었다. 그는 왕좌에 오른 2년 뒤에 ‘이단분형령’(1401)이란 것을 통과시켰다.    기독교의 이단자들을 골라내어 불에 태워 죽여 버리라는 무서운 법령이었다. 1407년 이후엔 개혁자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 독회를 금지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바비도는 1410년 이런 조치에 의해 ‘이단 분형령’에 따라 화형을 당하게 된, 재봉직공 신분의 독실한 기독 청년이다. 그가 생각해 볼 때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별 못된 일을 저지르고서도 아무 탈 없이 지내면서도 평신도들에게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 일은 할 수 없다.   또는 이 사람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번다한 규제들이 그들의 목을 조르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과 세속권력자들이 합세하여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을 규제하는 일에 대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다음 사실을 보아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기독교계가 분열하여 교황청이 원래의 로마에도 있고, 또 새로 아비뇽이란 곳에도 세워졌다. 교황청이 두 군데나 있었다는 것은 그곳을 다스리는 교황이 각기 따로 있었다는 뜻이 된다. 교황이 둘이나 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1409년 피사종교회의에서 두 교황들의 신분을 박탈하고 새로운 제3의 교황을 선출했다.   그러나 앞서의 두 교황들이 그들의 자리를 절대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젠 교황이 셋으로 불어난 결과만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있었던 독실한 기독 청년 바비도가 기성 교회의 권위를 인정할 리 만무하고 또 그들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 리 만무했다. 그래서 그는 무슨 법이 만들어졌든 말든, 무슨 구실을 대어서 자기들을 규제하려고 하든 말든 자기의 신앙 노선만을 굳게 지키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법 때문에 제 신앙노선을 쉽게 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 결과 그는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는 재판을 앞두고 이것저것 따져 보았으나 자기는 역부족일 뿐이라 생각되었다. 위로 교황부터 아래로 사제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조직체가 자기를 억누르고 목을 조르는 위압감을 느꼈다. 로마교회 전체와 일개 재봉직공과는 너무나 큰 대조가 아닐 수 없었다.    종교재판정에서 사교가 심문을 시작했다. “밤이면 몰래 영역복음서를 읽었다지? 무슨 마귀의 장난으로 영어복음서를 읽구 듣구 했지? 한마디 회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느냐?” 무슨 물음에도 바비도는 사교의 뜻과는 반하는 말만 해댔다.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한 사교는 그에게 분형에 처하는 판결을 내리고, 그는 스미스필드 사형장으로 옮겨졌다. 헨리 태자가 나타나 그를 회유해 보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바비도는 결국 한 줌의 재로 화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가장 훌륭한, 순교자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 아니었을까?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5-17
  • 스스로 끝낸 고아 명숙의 짧은 한 생애(상) - 유재용의
    이범선 작가의 중편소설 〈피해자〉(1958)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학촌 이범선(1920~82)은 〈학마을 사람들〉과 〈오발탄〉 등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이다. 〈피해자〉는 남녀 크리스천이 주인공들로 설정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 남녀가 최요한과 양명숙이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최 장로의 아들이 요한이고, 그 고아원에서 원생으로 살아온 여자 고아가 명숙이다.   요한은 서너 살 위였고 명숙은 그만큼 나이가 어렸다. 그러나 둘이 너무도 다정하게 학교엘 함께 다녔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은 그 둘이 오누이인 줄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장인 최 장로가 외아들이었던 요한을 장가보내려 하면서 아들 요한의 짝으로 명숙이가 아닌, 그 고아원의 후원자였던 어느 교회 목사의 딸을 지목해 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 장로와 아들 요한 사이엔 상당 기간 냉기가 흘렀다. 요한은 자기가 명숙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아버지 최 장로가 모르지도 않으면서 다른 처녀를 들여 밀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아원 운영이 어려웠던 때 그 목사 교회의 재정 지원이 매우 컸기 때문에 원장 최 장로는 그 목사의 딸을 마다할 처지가 못 되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런 기미를 알아차린 명숙이 온다간다 말도 없이 고아원을 박차고 떠나버리고 말았으니, 요한으로서는 무슨 묘책을 찾을 수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세월이 약이라고,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명숙이만을 기다릴 수가 없게 된 요한이 현실타협책으로 아버지의 요구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목사의 딸과 결혼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이 화기애애하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한은 어느 기독교계 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교회 출석을 잘 하는 모범적인 크리스천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남편(요한)이 옛날의 고아 애인(명숙)을 잊지 못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한 방편이라고나 할까,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회심하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들 내외는 그렇게 한 이십 년여의 세월을 사는 동안 어느새 40대 중년의 나이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40대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요한과 명숙이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도 학교 동창들의 회식 자리였던 어느 한식 요릿집(흔히 술집이라고도 불리는)에서였다. 거기서 참으로 기적적으로 그 둘은 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4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던 그 둘이 서로 동기 동창일 리는 만무하니까 정말이지 이해될 리 없는 운명적 만남이었다고 할 수밖에…. 요한은 손님, 명숙은 그 요릿집의 마담 신분으로였으니 말이다.   요한이 다음날 아침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 불국사에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숙이 무조건 옛 애인 요한을 따라붙어 경주에까지 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경유하여 다음날 새벽의 해돋이 구경을 하는 언덕에까지 마치 구경 온 학생이기라도 한 것처럼 동행하다가, 요한이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명숙은 그곳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그녀의 짧은 한 생애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문학평론가·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4-23
  • 크리스천들의 삶 또는 신앙 양태 - 유재용의 (상)
      작가 유재용의 기독교적 내용의 중편소설 〈위대한 환상〉(1996)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위대한 환상〉은 김원일의 중편소설 〈믿음의 충돌〉(1994)을 많이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 〈위대한 환상〉 가운데서도 예의 그 ‘믿음의 충돌’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의 충돌〉이 세 가지 양태의 기독교 신앙의 충돌 현상을 그려 주었던 것처럼, 〈위대한 환상〉도 역시 같은 세 가지 양태의 기독교 신앙적인 면의 갈등 양상을 묘사하고 있음이 둘 사이의 우연의 일치 아닌 일치점으로 보인다.   두 작품 사이의 유사점 가운데 특히 복수주인공 설정 면이 두드러지는데, 목자 신주엽, 모친 윤 권사, 화자 성문규, 이렇게 세 사람이 〈믿음의 충돌〉에서의 복수주인공들이라면, 〈위대한 환상〉에 있어서의 복수주인공들은 김장수 목사, 정치구 집사, 박만준 집사 등이다.  두 작품 사이의 유사점 가운데 또 하나는 이들의 소설 형식이 일종의 여로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원일의 것이 염상섭의 〈만세전〉처럼 배를 타고 여행하는 데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유재용의 것은 장지로 향하는 장례 행렬의 움직임 가운데서 시간이 점차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저한 차이점도 발견된다. 이제 다른 각도에서 지적할 수 있을 두 작품 사이의 상이점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시점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김원일의 것이 ‘일인칭 복합 시점’이라고 한다면, 유재용의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동원하고 있다는 데에서 상호 차이점을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세 가지 양태의 신앙인 상에서 두 작품이 유사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는 다소 달라진다고 보겠다. 김원일의 것이 교인들의 보편적인 세 가지 신앙 유형을 드러내 준 것이라 한다면, 유재용의 것은 신앙인들의 개인적 기질이나 신앙 행태 등과 관련된 문제점을 세 가지로 구별해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환상〉 속의 주요인물들인 김장수, 박만준, 정치구 등은 이 중편소설 속에서 복수주인공 급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주님영광교회’와 관련을 맺고 있다. 김장수 목사는 며칠 전까지 이 교회의 담임목사 겸 당회장 신분이었다. 그는 한국교회의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서 다섯 사람 속에 들어갈 정도로 명망이 있는 목회자였다. 이제 죽어서, 그 주검이 장지로 향하게 된 실정에 놓여 있다. 박만준 집사는 이 교회에서 사찰집사로 있으면서 김 목사를 보좌하고 있는 충직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집사는 김 목사가 정년이 되어 은퇴한 ‘참빛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찰집사 일을 보다가, 김 목사가 주님영광교회의 담임목사로 새로 부임하게 되자 그를 따라 이 새 교회에 와서도 김 목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일을 다시 맡게 된, 김 목사의 두터운 신망을 얻은 사람이다.   정치구 집사는 주님영광교회의 집사로 있으면서, 새로 부임한 김 목사가 교회신축운동을 전개하자 이를 반대하는 일을 벌이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그 교회에서 추방(제적)당하는 처지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그 후 이 교회에서 물러나 있다가 김 목사의 장례식 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어 또다시 거센 폭풍을 일으키게 된다. 교회 당회원들의 처지에서 볼 때는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로 보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조선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4-16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49] 독제국가에서의 무자비한 고문 - 조지 오웰의 「1984」
      누가복음 23:9, 10에서 헤롯이 여러 말로 물어 보았으나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고 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에서 독제국가 오세아니아는 반역하는 자들을 악랄하게 육체적, 정신적, 지능적 고문을 가하여 마음과 영혼까지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소설가 오웰은 고문이 끝났을 때 반역하는 자들은 인간의 껍데기에 불과하게 만들었음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국가의 세계는 개인의 특권이 없는 세계이다. 이 국가에서는 정당의 지배권에 대한 항의나 반항을 하면 투옥당하여 고문당하거나 살해된다. 언어, 사상, 역사 같은 학문조차도 당(국가)의 지배로 조종된다. 목사들도 결창서의 감시를 철저하게 받으며, 각 방에 설치된 쌍방용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를 받았다. 세계의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 등 3개국은 영원히 전쟁 중이며, 적을 미워하도록 끊임없이 선동했다. 전쟁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독제 통치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영혼이 없는 획일화된 사회였다. “오세아니아”의 비밀 소수 독재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인 오브라이언(45세)은 “진실성”에 근무하는 내부당원으로서, 독제정권에 항거하는 마음을 가진 외부당원인 윈스턴 스미스(39세)와 그의 정부 줄리아를 체포했다. 그들의 죄목은 당(국가)보다 그들 서로간의 사랑이 더 크며 국가에 반역했다는 것이다. 간첩, 태업, 반역 등 기다란 죄목을 덮어 쉬웠다. 자백은 형식이고, 고문이 진짜였다. 윈스턴은 수 없이 매질, 주먹질, 발길질, 곤봉구타를 당했다. 매를 피하려 이리저리 피하면, 갈비에, 배에, 정강이에, 사타구니에, 불알에, 척추에 매질을 더 가했다. 그 후엔 고문관이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만 해도,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문자들은 윈스턴의 뺨을 때리고, 귀를 비틀고,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오줌을 못 보게 했다. 고문자들은 윈스턴의 자존심을 꺾어서 자기의 주장하고 분별을 하는 능력을 없애 버리게 했다.   윈스턴은 침대에 완전히 묶여있었다. 오브라이언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가 윈스턴의 귀에 대고 “걱정마라. 7년 동안 자네를 관찰해 왔다네, 내가 너를 완전하게 해줄게!”라고 했다. 윈스턴은 침대 옆에 장치한 다이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다이얼의 숫자가 높이 올라갈수록 이상야릇한 고통이 가해졌다. 오브라인은 “윈스턴, 자네 일기에 ‘자유는 2+2=4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고 했지?” “네.” 오브라이언은 왼손을 들어 윈스턴에게 엄지손가락을 감추고 4손가락을 펴면서 물었다. “지금 손가락이 몇인가?” “4개입니다.” “그럼 당이 5개라고 말하면 몇 개가 되나?” “4 개입니다.” 윈스턴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이얼의 바늘이 55를 가리켰다. 윈스턴은 고통과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이 가빠졌다. 이를 악물었다. “손가락이 몇 개인가?” “넷, 넷, 넷.” 바늘이 더 올라갔다. “손가락이 몇 개인가?” “넷! 그만해요! 그만해! 넷이요!” 바늘이 더 올라갔다. “몇 개인가?” “으악! 5개! 5개 입니다.” 윈스턴은 기절했다. 바늘이 70, 75로 올라갔다. 바늘이 80, 90에 와 있을 때, 윈스턴은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주사 바늘이 윈스턴의 팔에 꽂혔다. 온 몸에 퍼졌다.    전체주의자란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다. 소련 사람들은 종교재판 때보다 더욱 참혹하게 이단자를 처형했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용의주도하게 순교자를 만들지 않았다. 고문과 고독으로 완전히 녹초로 만들어 비열하고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4-02
  • (사)한국기독교문인협서 서면총회
    ‘감사’ 주제로 수필집과 동화집, 연간집 「기독교문학」 펴내기로 세미나와 문학사랑방, 회원확장과 계간 잡지발간 위한 모금도     새이사장에 이수영시인 선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제56회 총회를 ‘코로나19’로 인해 서면총회를 지난달 2일부터 진행하고, 이번 회기도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했으며, 새이사장에 이수영시인을 선출했다. 또한 동협의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수필집과 동화집 등 발간에 주력키로 했다.   이번 총회는 명예이사장에 최규창시인, 이사장에 이수영시인, 부이사장에 김행숙시인, 한상남아동문학가, 양효원시인, 박종권시인, 김예성시인, 상임이사에 김석림시인을 선출했다. 그리고 감사에는 이문수시인과 윤병춘시인을 연임키로 했다. 이사장단 구성은 임원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이사장으로 구성된 평의회와 법인이사회들이 선출해 총회에 보고했다.   특히 평의회 및 법인이사회는 “명예이사장은 사업 및 활동을 지도하기 위해 최규창시인을 유임하고, 이사장은 1993년에 등단한 이수영시인으로 선출했다. 이시인은 본협회 사무국장과 상임이사, 부이사장과 법인이사를 역임해 왔다. 시집 〈깊은 잠에 빠진 방의 열쇠〉를 비롯한 8권과 산문집 등을 펴냈다“면서, “부이사장은 김행숙시인과 한상남아동문학가는 유임키로 하고, 공석인 3명의 부이사장은 양효원시인(1992년 등단)과 박종권시인(1999년 등단), 김예성시인(2001년 등단)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상임이사는 김석림시인을 유임키로 했다”고 덧붙혔다.   동협회는 △제39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시상식, △세미나, △문학사랑방, △연건집 「기독교문학」 제43집 발간, △동화집 발간, △‘감사’를 주제로 한 수필집 발간, △회원확장운동 전개, △계간 「기독교문학」발간을 위한 1억원 기금 모금 등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현재 1년에 1회 발간중인 「기독교문학」을 계간으로 발간하기 위해 1억원 기금조성 중에 있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 감사보고를 통해 “총수입금은 일반회계, 사랑시집, 수필집, 계간 〈기독교문학〉기금 포함 총 40,498,987원이었고, 총지출금은 38,418,006원이었으며, 잔액은 2,080,981원 이었다”면서, “수입금은 회비 11,929,930원과 〈기독교문학〉 제42집 광고비 3,200,000원, 사랑시집 7,361,000원, 수필집 6,664,567원, 계간 〈기독교문학〉 발행 기금 11,273,456원, 기타 이월금과 은행이자가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지출내역은 〈기독교문학〉 제42집 출판비 5.200,000원, 회보제작 및 발송비869,000원, 행정사무비 601,090원, 사랑시집(초판, 제판) 구입비 7,360,000원과 발송비 1,384,030원, 수필집 구입비 5,700,000원, 그리고 기독교문학과 수필집 발송비 2,377,230원 등 37,468,006원이 지출되었다”면서, “특별회계는 기본자산 3,000만원과 계간 〈기독교문학〉 발행기금 24,678,560 원이 통장에 입금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업보고에서는 △본협회의 공익재단 확정 △‘사랑’을 주제로 한 시집 「사랑은 저렇듯 끝이 없어라」(창조문예사 펴냄) 출간 △‘사랑’을 주제로 한 수필집 「다시 더 사랑하기」(창조문예사 펴냄) 출간 △연간집 「기독교문학」제42집 출판 등을 보고했다.   한편 새이사장인 이수영시인은 “무엇보다도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하겠다”면서, “기독교문학인은 문학사역자임을 자각하고 문학을 통해 민족복음화와 전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이사장은 ”코로나19로 자유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문학단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사단법인으로써의 위상에 맞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고 덧붙혔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4-02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47] 독제체제에서 ‘무지는 힘’이다 - 조지 오웰의 「1984」
      마가복음 15장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했다. 빌라도는 정치적이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1903~1950)은 <1984>에서 독제국가 오세아니아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다. 오웰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왜 자유는 노예가 되느냐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그의 정부 줄리아 두 사람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윈스턴은 일터에서 두 사람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윈스턴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사람은 줄리아로서 26세의 처녀이다. 그녀는 윈스턴 스미스의 정부가 되는데, 이것은 당에 도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한 사람은 오브라이언이란 강력한 내부당원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줄리아와 윈스턴을 국가 지도자인 ‘빅 브라더’를 타도하려는 방향으로 유도하여, 결국은 배신하여 줄리아와 윈스턴이 스스로 반역죄를 덮어쓰도록 유도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라는 이름에서 스미스는 영어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름을 상징하며, 윈스턴은 2차 대전 때 불굴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딴 것으로 위대한 영국인의 이름이다. ‘윈스턴’과 ‘스미스’란 두 이름을 합침으로써 풍자적인 대조를 이루게 한다. 윈스턴 스미스는 개성이 뚜렷하고 지적인 사람이었으나 전체주의적 독제국가에서 개성을 상실하고 로봇 같이 되고, 두려워하고 자식들조차 부모를 사상경찰에 고발 할 가보아 경계하는 얼간이가 되어 버렸다.   소설 <1984>의 마직 장면들 대부분은 윈스턴 스미스의 심문, 고문, 윈스턴의 잘못에 대한 부인, 배교행위, 궁극적인 고문에 더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사랑한다는 인간인 줄리아의 배신, 그리고 영적인 파괴는 너무나 철저하여, 소설 마직 장면에서는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당은 그를 철저하게 파괴한 것이다. 당이 윈스턴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당의 무자비한 고문 자행자인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고문을 계속 가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윈스턴은 당이 원하는 힘을 구사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적나라한 힘은 당의 신인 것이다. 그 힘을 구사할 수 있는 제한 없는 기회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 기회가 없으면 당의 존재가치는 상실되는 것이다. 윈스턴의 사알행각이 바로 그런 기회를 준 것이다. 윈스턴은 당이 쳐놓은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당의 집합적인 노력은 윈스턴 개인보다 훨씬 지적이었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었다. 내부당의 목적은 필요한 어떤 수단으로든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권력유지를 위해서 고문이 필요했다. 무자비한 고문이 오래 지속되어, 윈스턴은 지능은 서서히 파괴되었다. 당이 명령을 하면, 윈스턴은 검은 것은 흰 것이요, 2 곱하기 2은 5라는 것을 믿도록 했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손에 무자비하게 지능적으로 고문을 당했다. 윈스턴은 당이 개조한 인간이었다. 윈스턴은 당이 인정하지 않는 생각은 생각 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오세아니아 국가의 평화성은 전쟁과 관련된 기관이요, 전쟁은 <1984> 세계에서는 진실로 사회의 평화였다. 국가의 애정성은 방어할 수 없는 희생자에게 끊임없는 지긋지긋한 고문을 가하여, 백성들을 위한 ‘빅 브라더’의 사랑이 들어나도록 하는 곳이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쇠하여지고 붕괴되었다. 윈스턴은 육체는 살아있으나 사실은 죽은 인간이었다. 윈스턴은 당이 하라는 것 외에는 모르도록 하여 무지는 힘이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3-30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46] 전체주의자는 ‘자유는 노예’라고 했다 - 조지 오웰의 "1984"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함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가 자유함을 누리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에서 독재국가 오세아니아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다. 오웰은 전체주의국가에서 왜 자유는 노예(예속)가 되느냐를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윈스턴은 일터에서 두 사람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윈스턴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줄리아는 26세의 처녀로서 당에 도전하는 행위로 윈스턴의 정부가 된다. 오브라이언은 강력한 내부당원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줄리아와 스미스를 국가 지도자인 빅 브라더를 타도하려는 방향으로 사고를 유도하고 결국은 배신하여 줄리아와 스미스가 스스로 반역죄를 덮어쓰도록 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들의 사상이나 태도에 보수성을 모여야 했다. 그들은 진리성에 고용된 외부당원이었다. 당은 모든 결혼을 인준하고, 남편과 부인 사이에 어떤 성적인 본능을 발휘 하는가 어떤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가를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했다. 이런 의심은 부부간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백성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에 대한 애정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당원은 〈1984〉의 사회 도처에 붙어있는 빅 브라더의 초상화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다. ‘좋은 성교’는 아동 출산을 목적으로 부부 사이에 하는 성교라고 했다. 윈스턴은 광적인 충성 당원인 케드린이란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자녀들을 가짐으로써 당에 충성하는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하여 서로 헤어졌다. 그러나 당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혼은 하지 못했다.   줄리아는 진리성의 도색국에 근무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포르노 문학을 쓰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도색 문학으로 부패하여 값싼 술과 끝없는 추잡한 문학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 당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당원이 성적 범죄를 범하는 것은 엄벌에 처했다.   줄리아는 윈스턴을 유혹했다. 그녀는 사상경찰 요원도 스파이도 아니었다. 그들은 엄밀한 사랑에 빠져들었으나 결혼은 할 수 없었다. 당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윈스턴은 결혼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벌써 죽은 인간이었다. 당의 입장에서 보면 줄리아와 밀애를 갖는다는 것은 불충의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런던의 쓸모없는 지역에 사는 나이 많은 차링턴 씨가 경영하는 고물상의 윗방에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는 방을 구했다. 그곳에서 둘은 자주 엄밀한 사랑을 자유롭게 즐겼다. 그런데 어느냘 침대에 누워 있는데, 사상경찰이 그들을 잡으러 왔다. 차링턴 씨도 위장한 사상경찰이었다. 그들이 잡혀간 곳은 오브라이언이란 지적집행관이 있는 취조실이었다. 그들의 죄는, 당에 충성하기보다 서로를 자유롭게 사랑한 반역의 죄였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 씨 내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요. 내가 당신을 완전하게 말들 것이요”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윈스턴과 줄리아의 행동은 감시당하고, 사진이 무수히 찍혀지고, 그들의 음성은 녹음된 것이 구속의 증거였다. 당은 배신자를 죽여 버리는 것은 너무 간단했지만, 배신자를 지능적으로 고문하여,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파괴시켜서, 당에 충성하도록 노예화시키는 것이었다. 줄리아와 윈스턴의 자유로운 사랑은 결국 당의 노예가 되게 했다.   요한복음 8장 32절과 36절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1-03-25
  •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 함 - 존 밀턴의 '복낙원'
    마태복음 4장 5~6절에서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복낙원〉 제4편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성전 가장 높은 정상에 올려놓고 조롱 섞인 말로 “서 있기 못하겠으면/뛰어 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안전 할 터이니,/기록되기를 ‘그 분은 처사들에게 명령하여/저들의 손으로 그대를 받들지니, 그대 혹시라도/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외다.’”고 시험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예수님은 “또한 기록되기를,/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성전 꼭대기에 섰다. 사탄은 경악하여 강타당한 듯이 쓰러졌다. 밀턴은 사탄이 스러지는 모양이 마치 안타이오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땅에서 공중으로 들려서 죽임당하여 팽개침을 당하는 것에 비유했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안타이오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자기의 땅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그는 땅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기 때문에 아무리 땅에 내동댕이쳐져도 힘이 꺾이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그와 싸울 때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땅에서 들어 올려서 죽여서 팽개쳐 버렸다. 밀턴은 사탄이 예수님에게 형편없이 패배당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안타이오스를 거듭 물리친 것처럼 예수님도 사탄을 거듭 물리쳤다고 하여 헤라클레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오만한 유혹자 사탄은 여러 번 격퇴를 당하고도, 새로이 공격을 가하여 승리자 예수님이 스러지는 것을 보려고 하다가, 오만한 가운데, 오히려 자기가 쓰러졌다. 사탄은 공포와 초조함 가운데서, 함께 모의하던 동료들에게 파멸과 절망과 경악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오만한 사탄이 떨어져 나가자, 천사들의 무리가 불같은 날개를 활짝 펴고서, 구세주에게로 날아가서, 그 불안한 장소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깃털 수레로 사뿐히 모셔서, 화창한 공중으로 올라가서, 꽃이 만발한 골짜기의 녹색 둑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분 앞에 하늘의 식탁 위에 신성한 하늘의 음식과 생명나무에서 따 온 과일을 놓고, 생명의 샘에서 생수를 가져다 차려놓았다. 지쳐 있는 그를 곧 회복시켰고, 배고픔과 갈증이 치료되었다. 그때 천사들의 합창대가 오만한 유혹자를 이긴 구세주를 위해 승리의 찬송가를 불렀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고/하나님다우신 힘으로, 아버지의 옥좌를 노린 /낙원의 도둑에 대항하셨도다./당신께서는 그를 오래전에 정복하시어/하늘로부터 그의 모든 군대와 함께 내치셨고/유혹을 물리치심으로, 타락한 아담의 원수를/갚으시고,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고, 속임수로 얻은 승리를 헛되게 하셨도다./사탄은 앞으로는 낙원에다 한 번도/발을 들여놓고 유혹하지 못하리니.”“가장 높은 분의 아들이시여, 두 세계 하늘과 땅의 상속자여,/사탄의 진압자시여, 그대의 영광된 사업을/이제 착수하소서. 그리고 인류를 구하소서.”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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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5
  •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것이 소망 - 존 밀턴의 「실낙원」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셨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그의 서사시 〈실낙원〉(1667)에서 사탄은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함으로써 사탄의 교만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밀턴은 사탄은 지옥의 뱀이었다고 한다(요한계시록 12장 9절). 그놈은 교만하여 그의 모든 반역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반역하기만 하면, 동료 이상의 영광을 얻고, 지고하신 분과 동등해지리라 믿고(이사야 14장 12~14절), 야망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하여 불경스런 전쟁, 즉 교만한 싸움을 하늘에서 헛되이 일으켰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감히 당신께 싸움을 걸어온 그를 하늘에서 불붙여 번개같이 떨어지게 하여(누가복음 10장 18절), 무서운 타락과 파멸을 가하여 천사들의 고장으로부터 바닥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지셨다.    밀턴은 지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황량하고 거친, 처참한 광경을,/ 주위 사방에는 무서운 암굴, 그것은 마/불길 이는 화덕,/그러나 이 화염에는/빛이 없고, 간신히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에/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비참한 과역뿐,/슬픔의 지역, 우수의 그림자, 평화와/안식은 없고,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희망마저 없고, 다만 끝없는 가책과/한없이 꺼지지 않고 불타는 유황에 붙은/불의 홍수가 끝없이 휘몰아치는 곳/아, 떨어지기 전의 그곳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떨어진 천사인 사탄은 자신의 속성은 “약한 것은 궁상맞다”고 하고, “무엇이든 선행은 우리 일이 아니다./그의 높은 뜻에 거역하여,/언제나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그러므로 그의 섭리가/우리의악에 선을 찾아내고자 한다면,/우리의 할 일은 그 목적을 꺾어/ 선에서마저 항상 악의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라야 하리”라고 한다.   패배한 천사장 사탄은 자신의 한탄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우리가 하늘과 바꿔서 차지할 자린가. 이 슬픈 어둠이/저 하늘의 빛 대신인가. 도리 없지. 지금/군주인 그는 제가 옳다 여기면 무엇이든/처치하고 명령할 수 있으니 그에게서 멀수록 좋다./음부여, 그리고 너 무한히 깊은 지옥이여,/너의 새 주인을 맞으라, 장소나/때에 따라 변치 않는 마음의 소유자를,/마음은 마음이 제집이라, 스스로/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사탄은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서 사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말하여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한다. 사탄의 속성은 교만하고 오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노예화하려는 야망이 자신의 본질임을 토해내고 있다. 사탄의 존재 목적 선언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6~28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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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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