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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자기 나름으로의 신을 설정하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무한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불가피하게 예전의 기독교로 복귀하게 되는 신학도 민요섭의 경우처럼, 이동영의 부인 조정인도 남편을 통해 무슨 절대 신앙처럼 간직해 오던 좌익사상과 그 활동에 대한 회의(懷疑)를 통해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 무슨 뚜렷한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 정도로, 또는 든든한 피난처로나, 혹은 매달릴 존재를 붙드는 정도의 의미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독교라면, 비록 교인들로부터는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조건 배타적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다가 어느 때에 가서 갑자기 우익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랄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경우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 직전에 며느리에게 “예수 믿는 거 꼭 잊지 마래이. 지금 세상 보니 그 귀신이 제일로 힘 있는 거 같다.”라며 조상 귀신은 자기에게 맡기고 며느리는 참말로 예수한테 복 받는 사람 돼야 한다고 당부하던 때의 소박한 신앙 자세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섭의 복귀와 조정인의 귀의가 그 성격상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요섭의 복귀는 비교적 단순한(?) 신학적 사고, 또는 관념적 성찰을 거친 결과에서 나온 갑작스런 선회였지만, 조정인의 귀의는 처절한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요섭이 조동팔과 서로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던 신에게 공허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단순한 절망감과도 같은 그런 종류에 불과했지만, 조정인이 기독교에 몸을 전적으로 투신한 데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그녀 나름의 삶의 절실한 이유와 관련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교리문답을 진행하던 목사가 이제는 그녀 자신의 믿음의 미숙성을 간파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례를 받을 때가 못 된 것 같다.”면서 사양의 뜻을 표했으나 목사는, “교우께서는 이미 믿음이 소망이 되셨다.”라고 하며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면서 그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해준 것도 실은 그녀가 어느 정도 ‘논리’의 해독(害毒)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좌익 사상가들은 그들의 논리로써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삶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또 그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며 구원의 소망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의 신앙생활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에 통과되어 마침내 세례식에 참가하게까지 된 것이다. 그때 조정인은 기묘한 의식 상태에 줄곧 빠져들곤 했는데, 아마도 세례라는 말 속에 강조되고 있는 거듭남[重生], 또는 새로남[新生]이란 뜻이 지니는 어떤 최면효과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세례식 도중에도 여러 번잡한 상념에 젖어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그녀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남편 이동영과의 꿈 많은 시절이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비몽사몽간에 받게 된 최후의 속세의 유혹처럼 그녀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잠깐 세속적 유혹의 질긴 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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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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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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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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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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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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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 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자기 나름으로의 신을 설정하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무한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불가피하게 예전의 기독교로 복귀하게 되는 신학도 민요섭의 경우처럼, 이동영의 부인 조정인도 남편을 통해 무슨 절대 신앙처럼 간직해 오던 좌익사상과 그 활동에 대한 회의(懷疑)를 통해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 무슨 뚜렷한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 정도로, 또는 든든한 피난처로나, 혹은 매달릴 존재를 붙드는 정도의 의미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독교라면, 비록 교인들로부터는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조건 배타적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다가 어느 때에 가서 갑자기 우익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랄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경우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 직전에 며느리에게 “예수 믿는 거 꼭 잊지 마래이. 지금 세상 보니 그 귀신이 제일로 힘 있는 거 같다.”라며 조상 귀신은 자기에게 맡기고 며느리는 참말로 예수한테 복 받는 사람 돼야 한다고 당부하던 때의 소박한 신앙 자세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섭의 복귀와 조정인의 귀의가 그 성격상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요섭의 복귀는 비교적 단순한(?) 신학적 사고, 또는 관념적 성찰을 거친 결과에서 나온 갑작스런 선회였지만, 조정인의 귀의는 처절한 삶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요섭이 조동팔과 서로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던 신에게 공허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단순한 절망감과도 같은 그런 종류에 불과했지만, 조정인이 기독교에 몸을 전적으로 투신한 데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그녀 나름의 삶의 절실한 이유와 관련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교리문답을 진행하던 목사가 이제는 그녀 자신의 믿음의 미숙성을 간파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례를 받을 때가 못 된 것 같다.”면서 사양의 뜻을 표했으나 목사는, “교우께서는 이미 믿음이 소망이 되셨다.”라고 하며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면서 그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인해준 것도 실은 그녀가 어느 정도 ‘논리’의 해독(害毒)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좌익 사상가들은 그들의 논리로써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삶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또 그 믿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며 구원의 소망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의 신앙생활의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에 통과되어 마침내 세례식에 참가하게까지 된 것이다. 그때 조정인은 기묘한 의식 상태에 줄곧 빠져들곤 했는데, 아마도 세례라는 말 속에 강조되고 있는 거듭남[重生], 또는 새로남[新生]이란 뜻이 지니는 어떤 최면효과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세례식 도중에도 여러 번잡한 상념에 젖어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그녀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남편 이동영과의 꿈 많은 시절이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비몽사몽간에 받게 된 최후의 속세의 유혹처럼 그녀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잠깐 세속적 유혹의 질긴 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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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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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소설산책]이념을 넘어선 인간해방의 찬가 (5) -이문열의 「영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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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안디옥교회의 일제강점기와 6.25때 수난사에 숙연한 마음 지녀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감동을 주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이수영시인)는 제24회 문학기행과 제43회 문학사랑방을 갖고,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주력키로 다짐했다. 직전 이사장인 김영진시인을 비롯한 동협회 회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적 교류와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영춘원로시인도 참석해 함께 동행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 안디옥교회(담임=이준복목사)와 소양댐, 김유정문학관에서 진행했다. 춘천안디옥교회 수난사와 성장사를 기행 춘천안디옥 교회서 진행된 문학사랑방 광경 제43회 문학사랑방은 명예이사장인 최규창시인을 좌장으로 가졌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와 춘천 안디옥교회에서 진행했다. 최시인의 문학적인 이야기와 참석한 회원들의 작품낭독 등으로 문학적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두 번째 진행된 안디옥교회에서의 문학사랑방에 앞서 수필가인 박정미목사의 기도, 이수영시인의 「인사말」, 동교회 이준복담임목사의 「환영사」와 유진형원로목사의 「안디옥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들었다. 그리고 동협회 발전과 이번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사랑방에 기여한 동교회 원로목사인 유진형시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수영이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본협회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과 확산에 기여해 왔다”면서, “이번 모임을 통해 회원간에 문학적 교류의 장이 되고, 문학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복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인 유진형목사님이 시인이시기에 어느 교회보다 문학적 정서가 풍성하다”면서, “우리 교회는 1919년에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소개했다. 유진형목사는 “이 교회는 1919년 8월 2일 유한익전도사가 개척했으나, 1941년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 1945년 해방후 교회를 부활시켰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8개월간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일제강점기와 6.25당시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설명했다. 이날 문인들은 이러한 동교회의 수난사와 성장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수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시와 수필낭독 등 문학적 이야기로 진행 이번 작품낭송에서 시에는 권오숙시인의 「삶」, 권은영시인의 「길 위에서」, 김석림시인의 「가시고기」, 김영진시인의 「노란 동백꽃」, 김종욱시인의 「잔잔한 바람」, 김한나시인의 「민들레꽃 찾다」, 김홍섭시인의 「그리움 크면 산되지」, 박재화시인의 「덤이란 말」, 박종권시인의 「폭염」, 양효원시인의 「맨 나중에」, 유진형시인의 「희망노래」, 윤병춘시인의 「사모곡」, 이문수시인의 「바이브레이션」, 이실태시인의 「새날의 각오」, 이자숙시인의 「신록의 6월」, 이행자시인의 「역전을 꿈꾸며」, 임만호시인의 「역사의 숨결」, 정이녹수필가의 「오직 오늘」, 조정태시인의 「분수」, 김순규시인의 「사랑」, 홍금자시인의 「살다가 보며는」, 수필에는 김명환시인의 「울산바위」, 박정미수필가의 「대나무의 꿈」, 유금희수필가의 「연꽃 문양」 등을 낭독했다. 특히 홍금자시인은 “살다가 보며는/괜한 말 주고받아/서로가 상처 만들고/속울음 삼킬 때가 있다//사랑하는 맘 간절하면서도/사랑하지 않는다고/빈 말을 할 때가 있다//돌아서지 않을 때에/돌아서 버리고/소용없는 눈물 흘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모든 것 다 떠난 후/혼자서 혼자서 울 때가 있다//저 멀리/교회 첨탑 바라보며/때늦은 후회로/고백처럼 혼잣말 할 때가 있다//살다가 보며는”라고 「살다가 보며는」란 시를 낭송했다. 또한 조정태시인은 “비록 하늘에 닿지는 못해도/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의 기도//비록 곡조를 빚지는 못해도/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노래//솟구치고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흩날리는 물보라는/푸르름에 보내는 나의 수줍은 입맞춤//6월의 정원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를/받아주소서”라고 「분수」란 시를 낭송했다. 또 김순규시인도 “번개처럼 다가와/불꽃 하나로 온몸을 사르는/나는 없어지고 그대만 보이는 세상/타다가 하얀 재로 남아도/벅찬 가슴/사랑이여”라고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박정미수필가는 「대나무의 꿈」이란 수필에서 “나도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고 전제한 후 “속이 비어서 좋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겁이 많아서 하늘을 경외함이 좋은 것이다. 야곱의 사다리처럼 마다마디 하늘을 나는 꿈을 접어 하늘로 곧장 오른 대나무의 속사랑을 들여다본다. 유월의 대나무 숲을 보며 꿈을 꾼다. 하늘의 존귀함 앞에 모두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을 사랑하며 함께 뻗어가는 세상을…”라고 낭독했다. 이러한 문학사랑방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좌장인 최시인의 문단야사와 시와 수필의 감상으로 감동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문학촌’ 기독교문협 회원들이 김유정문학촌을 관람했다 이날 서울로 상경에 앞서 소양댐을 둘러보고,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이 문학촌 곳곳에서 김유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김유정은 ‘한국의 영원한 청년작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의 소설을 남겼다. 이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게 특징이다. 이 문학촌은 2002년 8월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은 것이다. 한국 근대 단편문학의 산실인 문학촌 부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등이 들어서며 김유정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료관, 체험관, 야외공연장, 농산물판매장 등이 이색적이었다. 이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인 「봄봄」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에는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관람한 문인들은 “이러한 김유정 생애의 흔적과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문수시인은 “1935년에 등단해 1937년에 요절할 때까지 주로 농촌을 소재로 창작했다”면서, “등단한지 2년만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에 마련된 커피숍에서의 향기 짙은 커피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감동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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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협, 춘천서 문학기행과 문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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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 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박요한 작가의 <불타는 땅>(1990)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기독교 역사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인자의 땅>(1987)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목사 신분에 어울리게도 첫 번째 장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장편에서도 기독교 세계와 관련된 소재를 그의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단 전작이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적 소재를 찾아본 것이었다 한다면, 후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취했다고 하는 점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란 주후 1세기, 특히 예수 시대 또는 신약성서 시대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특히 그(예수)의 처형 시기가 정점을 이루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작품화한 소설들로는 외국의 경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등이 있고, 국내의 경우에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백도기의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박요한의 <불타는 땅> 한 편이 더 보태어지게 된 셈이다. 소설 <불타는 땅>은 그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분히 <사반의 십자가>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을, <사반의 십자가> 식 명명을 본떠서 <에벳의 십자가>로 별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 있다. [에벳은 이 작품 속의 주요 등장인물로, 화자역을 맡은 인물이다.] 어느 평론가가 <사반의 십자가>를 가리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망스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지만, <불타는 땅>도 역시 로망스에 가깝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예시한 작품들 가운데서 <사반의 십자가>와 <불타는 땅>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 중에서는 로망스에 속하리라 보이는 작품은 있지 않은데, 그 작품들에 비하여 <사반의 십자가>나 <불타는 땅>이 그 진지성이나 심각미가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작품들의 로망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 간의 유사성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 편인데, 곧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 처형 시의 좌우 두 도적들이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는 좌도가 사반으로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며, 우도는 ‘이름 모를 도둑’또는 ‘낯선 도둑’으로 사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지만, <불타는 땅>의 경우에는 좌도에 아각, 우도엔 에벳이 설정되어 이 둘은 서로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난형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반에 맞먹을 만한 인물은 이 둘 중에서는 역시 아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반은 혈맹단장이고, 아각은 젤롯당 참모부장인데, 이 둘은 무용이 뛰어난데다 특히 전투 중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고 하겠다. 성서에서 보듯이, 이 둘은 마지막에 예수를 불신하고 저주하는 일(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단순히 낯선 도둑(이름 모를 도둑)으로 나오는 우도는 <불타는 땅>에서는 에벳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시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에 예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구원 얻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반의 십자가>의 경우와는 달리, <불타는 땅>에서의 에벳은 이 작품의 화자(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다. 이 점이 두 작품의 인물설정 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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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산책]민중과 투사들에게 보내는 헌사(1) -박요한의 '불타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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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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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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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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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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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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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 - 존 키츠의 「희랍 항아리의 송시」 (2)
- 요한1서 4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 사랑 자체이며, 사랑의 원천이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희랍 항아리의 송시〉(1819) 4연과 5연에서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여, 종교적인 차원의 사랑의 영원함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넷째 연에서 공동체의 종교 의식에 대하여 노래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송아지를 끌고 가는 사제가 있고, 모두 제사를 드리러 갔기에 해변의 마을이나 산위의 성채는 텅 비었다. 항아리의 마을은 영원히 텅 비고, 거리는 영원히 조용하다. 시인은 “작은 마을이여, 그대의 거리들은 영원히/조용하리라. 그대가 왜 황폐하게 되었는가를/말하려고 한 사람도 돌아올 수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다섯째 연에서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읊음으로서 미와 진리를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희랍의 형체여! 아름다운 자태여!/숲의 나무 가지들과 짓밟힌 잡초와 함께/대리석에 아로새긴 젊은이들과 처녀들./그대 말없는 현상이여, 우리의 생각이 미칠 수 없도록 애타게 하는구나/영원이 그러는 것처럼, 차가운 목가여!/낡은 세대가 이 세대를 황폐케 해버릴 때에도/그대는 남으리라 인간의 친구로. 우리의 슬픔과 또 다른 슬픔 가운데서/그대는 말하리라,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라고/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리라.” 아름다운 항아리는 남자들과 처녀들, 나무와 풀로 장식되어 있기에, 시인의 사색을 어딘지 모르는 영원에로 이끌어 간다. 시인의 세대가 가고 난 다음, 그대(항아리)는 아직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그대는 친구에게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그대가 이 땅에서 아는 전부이며, 그대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라고 한다. 시인 키츠의 이 시 구절의 내용은 이 시 자체의 문맥에서 검토해야 한다.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 시인은 이 땅 위에 남녀의 사랑과 음악을 통한 사랑의 송가를, 이 땅 넘어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멜로디와 연결함으로써 영원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상상 속에서, 항아리의 일시적 행복한 상황을 영구적인 것 안에서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시인 키츠나 그의 세대는 항아리의 그림에서처럼 영원할 수 없다. 늙어지는 나이는 그들에게 비애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의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가 지속하고 있는 한, 시인과 시인 다음에 오는 세대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과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항아리든 항아리에 대한 시이든, 그것들은 어렴풋한 불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어서 장래의 천국을 인식하게 한다. 시인이 “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라고 읊을 때, 그는 이 땅 넘어 하늘나라를 연상하게 한다. 비록 시인 키츠는 특별히 종교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동안 행복의 짧음을 명상하면서, 언뜻 하늘나라를 연상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란 것은 지상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나라와 연결될 때 그 아름다음은 진리란 뜻이리라. 요한1서 4장 8절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원한 아름다움이요 영원한 진리이리라!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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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 - 존 키츠의 「희랍 항아리의 송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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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시편 55편 4~5절에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라고 하여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히브리서 13:3에서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여 고난당하는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시학〉 6장에서, 비극은 진지하고 완벽한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하면서, 비극은 주인공이 이성보다 과도한 감정을 갖게 될 때 성격의 비극적 결함으로 비극적 전락으로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을 통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한다고 했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두 가지 범주로 이해한다. 첫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죄인의 영혼이 정화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윤회·응보 등을 믿는 신비적인 종교인 오르페우스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해하고, 둘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주로 의학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나쁜 체액을 몸에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가 무슨 뜻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을 그의 〈정치학〉 제8책에서 음악을 세 종류로 구분하면서 말하고 있다. 첫째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 두 번째는 휴양을 위해서, 세 번째는 감정의 발산을 위해서라고 했다. 음악의 세 번째 목적인 감정의 발산은, 그는 주신적 음악 혹은 열광적 음악이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문화적 교육을 위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위안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음악의 목적은 카타르시스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곡조는 신비한 열광으로 영혼을 흥분시킴으로써, 마치 그 영혼은 의학적 치료와 어떤 깨끗해짐을 통해서 회복되고 평온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비극을 관람할 때,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종류의 영적정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심리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비극의 고통을 봄으로써, 그 비극 너머에서 보게 되는 지혜나 직관에 도달하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적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영적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의 감정이 교차함으로써 자신의 당면한 문제를 이열치열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를 배격하고, 카타르시스는 비극적인 삶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겸허하게 되고, 인간적인 동류의식으로 그 비극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심리주의자들에게 카타르시스는 두려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감정이고, 연민은 반대로 고통당하는 주인공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줄거리가 복잡하면 부자에서 가난으로, 무지에서 지식으로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하나는 운명의 역정으로서, 비극의 행위가 처음 취한 방향보다 반대 코스로 가는 것이고, 다른 것은 무지로부터 지식으로의 변화로 주인공들 사이에 사랑이나 증오심을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성격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지로 아버지 라이어서 부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네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이 부왕의 살인자임을 알고는 자신의 두 눈을 빼버린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인간의 교만이 비극적인 결함이 되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반드시 죽게 되는 운명론에 메이게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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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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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 2021년 다시 새해가 밝아 옵니다, 생각하면 과분한 선물입니다지구는 제 궤도를 충직하게 밟고, 한 올의 어긋남도 없이밤 지나면 동트고 저물면 저녁별을 부지런히 눈앞에 진설하더니 오늘 새벽, 저 찬란하고 우렁차게 다가오는 새 하늘 새 빛 두 팔 벌려 안아 들입니다, 좁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새해여, 오염된 이 땅을, 고치려고 오십니까?어긋난 아침과 저녁을 바로 잡으려고 오십니까? 사정없이 헝클어진 매듭과 관계를 풀어 주려고 오십니까? 저물어가는 세상 어지러운 그늘을 조심조심 딛고 오는 새해여!오소서, 어서 오소서!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고 저 붉은 동쪽 하늘을 함께 바라봅니다 지난해 시작된 역병은 온 누리를 아직도 휘두르고 있지만, 풀과 나무는 때가 되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동서로 남북으로 부는 바람은 먼지와 뜬소문을 실어나르고강물은 바다로 흘러 밀물과 썰물을 다독거렸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돌아다봐야 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정말 그런가? 아마존의 밀림을 마구 베어서 해마다 숲이 좁아진다더니 거기 따른 생명의 사슬, 그 엄청난 비밀도 무너진다더니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끓고 온대와 열대가 섞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병든 땅의 아픔이 극에 달하여 새해도 오지 못하겠구나, 탐욕이 불러온 하늘의 경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임을 뉘우쳤습니다 밝아 오는 새해여, 다시 새해를 허락하신 이여, 고맙습니다, 이제는 순리따라 아름답게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분노와 원망, 다툼과 고자질, 미움과 앙갚음에서 벗어나,우울과 번뇌는 씻어 내고 혼돈과 방황에서 돌아서겠습니다거대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 그 리듬을 마음대로 깨뜨리고무상으로 가졌던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몰랐습니다날마다 누렸던 보통의 날들,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습니다묵은 가난이야 견딜 수 있지만, 철모르는 벌거숭이 저 어린 것들그들이 살아갈 내일의 마당을 북돋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헤쳐갈 쾌청한 대기, 손잡고 함께 갈 이웃을 불러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랑하는 지혜를 가르치겠습니다 새해에는 서로 언 손을 잡고 눈빛을 맞춰 용서하게 하소서당신께서 예정하신 길이 어디입니까, 어리석은 눈에도 밝히 열려서 나라는 갈수록 바르게 융성하여 세계에 우뚝 솟는 부강한 힘 주시고 건강한 국민은 발을 맞추어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게 하소서하루 살면 하루만큼 늘어나던 빚도 새해에는 부지런히 갚을 수 있게 하나를 가졌으면 그 하나를 기뻐하고, 허황된 것은 넘보지 않게 하소서겸허하구나, 착하고 어여쁘구나, 하늘에서 땅에서 칭찬하는 소리, 새해에는 당신께서 주시는 복을, 성결하고 따뜻한 복을 받고 싶습니다, 복 받을 수 있게 살겠습니다 당신이여, 굽어보며 끄덕이시는지요? 2021년 밝아오는 새해에는 허락하시옵소서, 부디 허락하여 주옵소서. / 시인·호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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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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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1좦에서 젊고 아름다울 때 자녀를 많이 가지라고 권면한다.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들 자녀들에게는 지혜와 미와 번영이 있게 되지만,/자녀가 없는 곳에는 어리석음과 노령과 죽음만이 있게 되오./모두가 그대같이 맘먹는 날이면, 세상은 끝나게 되리,/살아봐야 인간 생명의 길이가 되는 60년만 지나면 말이오”라고 함으로써 젊은이가 자식 없이 대가 끊어진 것을 탄식하고 있다. 다섯째 행에서 시인은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 자식들에게는 지혜, 아름다움, 번영이 있음으로, 그들의 부모도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영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야곱은 아들 유다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하면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장 10절)라고 했다. 위대한 축복은 ‘실로’ 즉 메시야에 대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섯째 행에서는 그대가 청춘일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미련하고 개을러서, 주인이(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생산의 능력)를 사용하지 않고, 자녀가 없는 날에는, 그대는 그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 나이가 많아져서, 육체는 시들고, 돌보아 줄 자식도 없이 외로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모든 인간들이 그대처럼 개으르고,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랑, 긍휼, 친절, 아름다움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봐야 기껏 60여 년 밖에 못사는데, 그렇게 되면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냉소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자연이 예비 된 아름다운 자녀들로 채우도록 창조되지 않는 자들은/사납고,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소./자연이 혜택을 많이 준 자에게는 더 많이 줄 것이오./그대는,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그대의 선물을 더 받으세요”라고 훈계하고 있다. 아홉째 행과 열 번째 행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의 원리는 인간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녀들로 후손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하셨기 때문에, 자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이유로든 자녀들을 갖지 않게 되는 자들은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다고 저주의 말을 했다. 마치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저주했듯이. 열한째 행과 열두째 행에서, 하나님은 자녀를 많이 가져서 하나님이 주신 혜택을 누리는 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며, 자녀들을 많이 가졌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게 되리라고 축복하고 있다. 열셋째 행과 열넷째 행의 맺는말에서, 시인은 “자연이 그대를 자기의 인장으로 새겨놓은 뜻은/그대를 원판 삼아 많은 복사를 남겨놓게 하려는 것이오.”라고 했다. 시인은 하나님은 뜻이 계셔서 그대를 자녀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나가게 하는 아름다운 모델로 창조하였기에,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운 자녀들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이상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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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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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46좦의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렇게도 짧은 임대 기간을 갖고서, 그렇게도 많은 비용을/그대는 그대의 사라져가는 저택에 쏟아 붓는가?/이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들로 하여금/그대가 투자한 것을 먹게 하려는가? 이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라고 읊었다. 다섯째 행과 여섯째 행에서 ‘짧은 임대 기간’이라고 하고 사라져버릴 ‘저택’이라고 함으로써, 육체는 영혼을 수용해주는 저택에 비유하고, 그 저택은, 영혼이 떠나가면, 사라져버릴 단명한 셋집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라져버릴 셋집에 그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보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는 육체가 죽는 날에, 육체는 땅에 묻히게 되어 썩어지고, 육체를 즐기는 것은 구더기뿐이라고 한다. 결국 구더기의 밥이 되어 무로 돌아가 버리는 육체를 위해서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단장하고, 화장품 칠하고, 화려한 옷으로 외형을 꾸밀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헛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 질문하는 것은, 종말에 직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종말에 가라지로 심판을 받게 되면, 풀무 불이 타오르고,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울며 이를 가는 지옥(마 13:24-30, 36-43)에 가려는가를 묻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그렇다면 영혼이여, 너의 종(육체)의 멸망을 딛고 네가 살아라./그리고 너의 종을 굶주리게 하여 그대 영혼의 풍요를 증강시켜라./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팔아서 영원한 생명을 사들여라./내부세계를 살찌게 하고, 외부세계를 부하게 하지 말지라.”고 충고한다. 아홉째 행과 열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를 ‘너의 종’이라고 함으로써, 종은 주인을 섬기는 천한 신분이며, 중요한 것은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육체를 희생시키고 영혼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열한 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삶을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이라 하고, 영적인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여 시간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하늘의 도시(영을 따라 사는 자들이 가는 곳)과, 땅의 도시(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이 거하는 곳)을 대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시를 영원 세계라 하고, 땅의 도시를 시간 세계라고 하고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는 영원에서 시간 세계로 오신 분으로써 그 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영원을 누린다고 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폴 틸리히는 우리가 영원에서부터 시간 속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을 ‘영원한 현재’라고 하고, 성육신이라고 했다. 시인은 ‘영원한 현재’를 통해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했다. 그리고서 12행에서 시인은 속사람(내부세계)이 영원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고(살찌게 하고), 겉 사람(외부세계)이 세상과 더불어 향락하다가 죽음의 길로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13행과 14행의 맺는말에서 “그렇게 하여 인간을 먹고사는 죽음을 잡아 먹어버려라./죽음은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죽지 않는다”라고 선포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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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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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소네트 146」에서 나의 영혼이 육체적 위안보다 영저인 위안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노래를 읊고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인간이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것을 탄식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각 4, 4, 4, 2행의 총 14행의 단시)의 일반적인 경향은 주로 죽음의 변덕스러움과 종말, 젊음과 아름다움의 좌절감, 사랑이 물어 익은 위에 비극적인 가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진지한 기독교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154편의 소네트 중에 가장 중요한 소네트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46」에서 인간의 영혼이,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육체적인 위안에 노력을 기우리지 말고,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위안을 누리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분법으로 말하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지구상에 머무는 육체보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나의 죄 많은 육체의 중심인 가련한 영혼이여/그대를 치장해 주고 있는 육체의 욕망의 주인이여/왜 그대는 내부는 파리해지고 굶주림에 욕을 보고/그대의 바깥벽을 그렇게도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읊었다. 첫째 행에서 시인은 ‘죄 많은 육체’와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시인은 ‘죄 많은 육체’라고 하고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여 전적으로 타락함으로써 낙원을 상실한 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타고난 점을 짚는다. 그 결과 인간은 죄짓기 쉬운 나약한 존재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중심이며 주인이 되는 영혼은 가련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둘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주인인 영혼보다 ‘육체의 욕망’을 강조하고 있다. 육적인 욕망은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것으로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태도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요한일서 2장 16절). 3행과 4행에서 내부는 허무와 궁핍에 빠지게 하고, 바깥벽에만 관심을 가지고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장 16절)라고 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질그릇이요, 죽을 육체요, 땅에 있는 장막 집이다. 겉 사람이 낡아진다는 것은 늙어지고, 쇠하여 지고, 소모되고, 악화되고, 부패하고, 죽어져서 섞어버리는 것이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새로 창조함을 받는 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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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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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문인회, 6개 지역 지회장 임명
- 한국장로문인회(회장=오성건장로)는 지난 16일 제6회 가을문학강좌집을 제작해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동회는 6개 지역 지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동 문인회는 ‘코로나19’사태로 가을문학강좌를 가질 수 없게 됨에 따라 강좌집을 제작했다. 이번 강좌는 김지원시인의 「시창작을 위한 몇가지 제언들」이란 제목으로 ‘좋은 시’에 대한 분석과 창작방향을 제시했다. 동 회 오성건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모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강좌집’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동 문인회가 임명한 지회장은 다음과 같다. △전남지회장=강병원장로 △경남지회장=신이건장로 △경북지회장=박노황장로 △충남지회장=김형태장로 △충북지회장=한 오장로 △강원지회장=피기춘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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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문인회, 6개 지역 지회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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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 창세기 22장 12절에서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3단계의 실존주의를 말한다. 첫 단계는 미적 실존이며, 둘째 단계가 윤리적 실존이고, 최종 단계가 기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미적 실존 단계와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적인 실존주의 단계에서만 절대자 앞에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실존적인 도약으로 역설적으로 자아 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자기 ‘생명’의 발견이 가능함을 감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미적 실존주의의 절망은 인생의 모든 괘락을 향락하려는 태도이다. 유미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몰린 자로서 영적인 방향감각이 없는 자이다. 영화 같은 경험을 원하면서 참된 삶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약을 즐기는 것처럼 삶을 불태워 버린다. 향락주의자는 외면적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을 하는 자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향락에 사로잡혀 노예상태에서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자이다. 미적 실존의 아이러니이다. 향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양심의 입장에서 자기 발견하려는 것이 윤리적 실존의 단계의 절망이다. 윤리적 실존은 착한 시민으로 참여하여 도덕적 책임을 다하며 결혼생활을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라고 고백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최종 단계로 기독교적 실존이 요청됨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자아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능력, 가능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계의 극한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서 인간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고, 무의 상태에서, 무한한 미지의 세계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전능자를 향해 실존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실존적인 도약은 죽음으로서 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절망은 주검에 이르는 병이면서 주검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요한복음 11장 4절)고 함으로서, 삶으로의 도약임을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의 격심한 갈등 끝에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적인 가정의 재미를 말하는 미적 실존의 단계와 아들을 살해한다는 윤리적 실존 단계를 넘어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사랑함으로써 우상화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특유한 ‘키르케고르적인 도약’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이요, 키르케고르의 ‘좌절에 의한 비약’이었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실존적 도약의 축복이 후손에게까지 이름을 본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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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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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3]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과 여성의 역할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야고보서 3장 14~15절에서 “……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독교를 노예들의 도덕이라고 거부할 뿐 아니라, 제1부 18에서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을 낳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제3부 12에서 좥낡은 목록표와 새로운 목록표에 대하여좦에서 낡아빠진 독단적인 강좌와 낡아빠진 자만이 도사리고 있는 기독교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라고 명령하고, 기독교의 위대한 스승들, 성자들, 구원자들을 비웃으라고 명령한다. 이제까지 모든 인식은 죄의식 옆에서 성장해 왔는데, 그것을 부숴버리라고 한다.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모든 나무들 중 가장 나쁜 나무인 십자가가 자라는 곳이며, 그런 땅에는 찬양할 것이 없다는 것이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삶에 대한 최고의 의지는 존재를 위한 비참한 투쟁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죽이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 제압하려는 의지, 전쟁에의 의지라고 선포한다. 스파르타식 군사적 공격성향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니체의 철학은 파괴하려는 힘이 삶의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니체의 영웅 숭배 사상은 독일의 히틀러의 나치사상과 비교된다. 니체의 초인은 창조자가 아니라, 파괴자이다. 이것은 노예들의 도덕에 반대한 주인들의 도덕이란 것이다. 노예들은 주인들로 인해 착취당하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초인이 생존하기 위해 대중이 소멸되어야 한다. 모든 역사는 무자비한 힘을 통해 승리에의 의지로 인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려있게 하지 말라”라고 한다. “옛 도덕을 파괴하고, 새로운 부도덕을 확립하라”고 한다. 야심, 무자비함, 증오, 이것들이 주인 계급의 힘이요, 동정심, 관대함, 사랑, 이것들은 노예계급의 약함이란 것이다. 나폴레옹 같은 공격자가 니체의 초인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기독교적인 민주주의는 너무 늦기 전에 파괴해야만 한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노예의 교리란 것이다. 니체는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 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좥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좦에서 “여자에 관한 것은 모두가 수수께끼이다.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의 해답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임신이란 것이다.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하는데, 그것은 위험과 유희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남자는 가장 위험한 장난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 남자는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며, 여자는 전사의 휴식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고 했다.니체는 “여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 세계의 여러 가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처럼 청순하고, 우아한 장난감이어야 한다. 별빛이 그대들의 사랑 속에서 반짝이게 하라. ‘나는 초인을 낳고 싶다’가 그대들의 희망이 되게 하라”라고 한다. 니체는 1888년 말부터 정신 착란의 징후가 나타났으며, 이탈리아의 토리노 광장에서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이틀 후에 깨어났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마구 노래하고, 춤을 추고. 거리를 헤매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신이다”고 했다. 니체가 죽을 때는 그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만이 가까이 있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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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3]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과 여성의 역할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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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2] 신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하고,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야고보서 3장 15절)라 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다고 했다(로마서 1장 2절).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그의 대표작 철학적 소설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를 구사한 초인을 창조함으로써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니체는 자신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을 위해서 예수님 탄생 5세기 이전에 죽은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대변자로 이용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선악의 갈등에서, 선이 우세하리란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세계를 선악의 갈등을 넘어 혼란한 장소로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우주적인 사랑 가운데 인류를 포용하는데, 니체는 그의 우주적인 증오심 가운데 인류를 침몰시켜버린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3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고(〈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먼저 선포함, 1882), 그 대신에 ‘초인’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 변신하여 영원을 품고, 최고의 권력에로의 의지를 확신한다. 이런 영감으로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오 인간이여, 주의하라!/깊은 밤이 무엇을 선포하는가?/“나는 깊은 꿈으로부터 일어나서 선서하노라/세계는 깊이 잠들어있다,/낮이 아는 것보다 더 깊이 잠들어있다./그 비통함은 깊도다./기쁨-고통보다 더 깊도다./고통이 간청한다 : 물러가라!/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깊은 영원을 원하고 또 원한다” 니체는 지상의 비통함은 물러가고, 초인으로 인한 기쁨의 때가 올 것임을 노래한다. 초인의 상징은 자제, 자기 수양, 자주적 방향 결정, 자기 극복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선포한다. “내가 너 인간에게 초인을 가르치마. 인간은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다 …… 모든 존재들은 자신들 넘어 무엇을 창조하려고 했다. 너는 큰 물결의 허름 속에서 인간을 극복하기보다 뒤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원숭이가 인간에게 무엇이냐?” 니체는 “그대들은 전에는 원숭이였으며,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인 것이다”라고 하여, 인간은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인간은 미개한 동물성으로부터 초인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대들에게 내세의 희망에 대하여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독을 뿌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전에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모독자들도 또한 죽었다”라고 하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내세의 소망 대신에 초인의 개념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땅에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초인의 의지를 선포한다. 초인은 의욕과 감사로 지상의 세계를 포용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을 육체와 결부시키고, 영혼을 단순히 육체의 한 모습으로 해석한다. 니체에게 필요한 말씀은 잠언 1장 7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이다. 니체 같은 ‘천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했기에 ‘미련한 자’가 되고 ‘불쌍한 자’가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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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2] 신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