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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작품의 현실 장면에서 연기자들은 타고르가 3.1운동 후 동경한국 YMCA에 들려 주요한 선생께 한국이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다는 시를 한 편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중극장면에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 감리교 본부 파견목사, 전동례 장로,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나온다. 극작가 이반은 일본인들의 참회의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는 소망과, 마을 사람들의 교회 건축 찬반론에 대한 답으로 전동례 장로의 처용무를 제시할 것이다. 《아, 제암리여!》는 1999년 우지다 토루 연출로 일본극단 3.1회의 공연으로 일본 동경 Y스페이스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에는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반은 필자에게도 주변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처용무가 대미를 장식해야 한일간의 화해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이반은 한국 기독교가 한국의 정신과 정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국과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 기독교 제의나 예배극을 써야겠다는 것은 이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가 하르트만 선생과 부라우네 교수와도 예배극을 쓰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17세기 청나라는 한반도로 쳐들어왔다. 조선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는 산성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는 두 동생과 함께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세자는 청.명 전쟁에 청군 편으로 참전하는 등 청의 환심을 샀다. 명나라가 함락된 다음,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독일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기독교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아담 샬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과학 문명의 유물을 선물로 받아갖고 온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므로 그대로 극으로 꾸미면 사극이 된다. 이반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만 한다면 창작되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극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것이다. <소현세자>에서 청국은 조선에게 무기사찰, 파병 등을 요구한다. 이반은 기독교 예배도 신화를 음송하거나 극화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미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을 정확하게 쓴 기록문이나 사실적 산문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배극의 언어는 묵시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소현세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기독교 순교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순교관을 대화나 에피소드, 또는 코러스를 통해 표현하고 소현세자가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은 극단 예맥에 의하여 2005년 CTS 아트홀, 일본 동경 삼백인극장에서 표재순 연출로 공연했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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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15개월에 걸친 기획과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6월 11일-14일까지 잠실체육관이란 대형공간에다 토탈 디어터로서의 백주년 기념 제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상기작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회장인 강원용 목사가 김문환 교수에게 기획 의뢰하여 이 반, 이강백의 공동구성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표재순의 제작고문 형식의 연출적 참여와 이경열 제작총무의 뒷받침으로 토탈 디어터로서의 대형무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화의 총체적 소산에 의하여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선민 이스라엘 역사와 대비시키면서 합창, 무용, 시, 사물놀이, 연극 등의 결정체로 표출한 것이다.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1985년 8.11~14 잠실체육관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빛과 하나되어》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역사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래의 지평선까지 함께 가야함을 보여준 것이 《빛과 하나되어》인 것이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의 공연공간을 더 이상 전통적 교회 예배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강당이나 체육관, 야외공간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의상이나 연극적 대소도구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예배극에 대한 고전적 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또는 성서와는 무관한 듯한 세계 현상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은 브레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하르트만은 텍스트로 성서를 택하고 언어도 성서적 언어로 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빛과 하나되어》는 하르트만의 예배극이 교회에서 잠실체육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빛과 하나되어란 함축된 제목으로 입체화한 것이 총체예술 <빛과 하나되어>이다. 본격적이고도 완숙한 대형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빛과 하나되어>는 서장에 빛의 근원을 찾아낸 데 이어, 제1장 빛이 동방에 비치니, 제2장 횃불은 타올랐으나, 제3장 불씨를 살리려고, 제4장 빛을 되찾은후,종장 빛과 하나되어로 이어지면서 성경과 히브리사와 한국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을 증거하고 있다. 박두진 시 「해」가 대합창곡으로 대형 성가대에 의하여 불려지며 선교사 입국 등의 에피소드에 이어 윤동주의 「십자가」를 송창식이 독창으로 부르며 해방을 자축하는 사물놀이에 이어 정희성의 시 「울엄니 나를 낳아」가 성우향의 창으로 불려지며 관중합창에 이어 세상을 향한 행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형 십자가형의 무대장치를 중심으로 한 미술감독 신일수, 무용감독 문일지, 작곡 및 음악감독 이건용의 협업은 토탈 디어터 《빛과 하나되어》를 가능케 하였다. 김성원, 고은정, 강효실, 김인문, 문오장, 문희원, 서인석, 송재호, 최길호, 최명수, 한인수, 정영숙, 최선자등 기독교 연기자의 총출동은 기독교 백년의 서사를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잠실체육관 대형공간에다 풀어 넣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목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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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김덕천, 황석영, 전진호, 오이세, 김문배, 안신자, 송채휘, 장수근 등과 함께 했는데, 그들의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연극을 관극하기 위해 황광은 목사는 이보라, 최선애, 김원식, 이경아 씨 등을 대동하고 당시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도동 구석까지 구경을 왔다. 황광은 목사는 그날부터 이반에게 기독교연극, 기독교예술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겼다. 다른 하나는, 연극은 다른 예술매체와 달리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 행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니, 황광은의 삶과 꿈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살아 숨쉬게 하자는 의도에서 희곡을 만든 것이다. 극작가 이반은 희곡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의 초점을 황광은 목사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두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두었다. 성자나 영웅에 대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의 영웅적인 행동은 많지 않다. 난지도에서의 황광은 목사의 행위는 성프란시스의 행동과 유사하여 청빈하고 겸허했다. 부모 없는 소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자신의 자녀들의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원장 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날 때 수색에서 종로까지 대중교통비가 없어 한 소년에게 차비를 빌려 쓰는 장면 등은 혇대판 성자의 수난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모든 행위를 숨기고 있다. 황광은 목사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앞세웠다. 그러한 그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소년시 시민들이다. 이반의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쓴 작품이다. 등장인물들과 일어난 사건, 소년시의 이상 등은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사진처럼 재현하지는 않았다. 극적 효과나 극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픽션도 가미되었다. 사모 김유선 여사나 이창식 선생, 가족들, 소년시 시민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려를 가졌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같은 사람들끼리 꾸미는 예술이 아니다는 것에 기초했다.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갈등’을 빚어야 기본 조건이 갖춰지기에 다양한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냈다. 이반은 작품을 안고 다니며 ‘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으며 그것을 현실에 옮기게 까지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상주의자 황광은의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물음을 묻곤 하였다. 쉽게 ’나사렛 예수!‘ 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황광은이라는 이상주의자를 통해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폐허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조직적이거나 신학적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분류하기 이전 사도 바울이 곱게 채색하기 이전의 사랑이다는 것에서 찾아냈다. 사랑의 원형질은 예수이고 그 예수가 황광은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헀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는 호이징거의 유희성이 넘쳐났다. 결국 타고르가 말하는 동심과 예수의 사랑, 인간의 유희성이 원천이 되어 황광은의 세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극작가 이반에 의해서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1970년, 그가 떠난지 5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공연계에는 토탈 디어터 라는 총체연극 또는 총체예술에 대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 연극계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기독교 기획진의 기획과 추진력은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 대공연이란 타이틀의 총체예술 축제인 <빛과 하나되어>의 집단창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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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3)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삼동소년시는 3권이 분리되어 입법기관으로 시의회. 행정기관으로 시정부, 사법기관으로 재판소가 있었다. 시의회는 시민 15명에 1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구성하였다. 시정부에는 시장, 부시장, 상공부, 농림부, 문화부, 재정부, 교체부, 보건부, 생활부가 있고 소년군 사령관을 두어 경찰조직인 헌병대, 군대조직인 경비대, 정신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봉사대를 두었다. 시는 동화, 영광, 평화, 신앙, 승리. 이상, 신생, 희망, 샛별, 독립촌으로 촌단위 13명의 시민으로 구성하여 촌장과 부촌장이 있고 부촌장이 시의원을 겸했다. 대한민국 헌법처럼 12장 67조로 된 소년시 헌장을 두고, 헌장 제2장7조에 ”소년시의 시민권은 만 10세로부터 17세까지의 한국소년으로서 불우한 환경의 희생이 된 집 없고 부모 없는 소년에게 고문이 이를 부여하겠다고 규정하였다. 시민 모두가 자력으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자체 화폐로 보수를 받았다. 소년시 내에서 통용되는 우표도 있었고 신문사도 있었다. 공공시설로는 병원, 이발소, 목욕탕,식당, 도서관이 있어 소년 시민들이 운영했다. 삼동소년시는 완전한 도시 국가의 형태로 일반 사회의 축소도였다. 한국기독교성령100년사 편찬위원회가 선정한 문화예술분야에서 문화운동가로 기재된 황광은 목사는 단 50도 못 채우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상향 소년공화국이 연극으로 재연되는 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이다. 황광은 목사의 1주기 때 한태동 교수는 이렇게 추모하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성자와 함께 살았는데, 살아 있는 동안은 그가 성자인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이반 작, 김윤태 연출의 《소년공화국》 황광은 역의 박웅선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성자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를 느끼게 된다. 현동완 역-김익태. 이창식 역-김남호, 김유선 역-최선영, 최병태 역-장훈, 김용호 역- 안순동의 연기는 1950년대를 넘어간 소년시의 주인공들을 재현하였다. 문학적이고 연극적인 삶을 살아간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사랑의 원형질 예수가 황광은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에 황광은의 세계는 지금도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날, 그리고 지금 극작가 이반은 희곡《소년공화국》을 담은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을 펴내면서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황광은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김유선 사모님은 목사님이 입던 양복을 내게 주셨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추운 북구의 겨울과 스산한 영국의 봄을 견디며 유학 생활을 보냈다. 어두운 70년대 였다. 세상일에 쫓겨 황광은 목사님의 《소년공화국》을 쓸 기회를 갖지 못했다. 2000년 7월, 목사님의 30주기를 기해 김희보 형이 황광은 목사 이야기‘사랑을 받느니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를 펴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목사님과 한 약속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60이 되면서 이웃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갚아야 할 빚도 있고, 지켜야 할 약속도 있지만 꼭 이 일, 이 약속만은 지켜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 《소년공화국》을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이반은 황광은 목사님 생전에 약속을 지킬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12월에 작품을 탈고했다. 극작가 이반은 황광은 목사는 《소년공화국》을 소설로 계획했지만, 희곡으로 꾸몄다. 소설로 쓰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도 연극의 대본인 희곡으로 꾸민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황광은 목사와 이반 극작가가 내가 연극을 매개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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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황광은 목사는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라고 말하였다. 호언한 대로 몹시도 추웠던 영하의 도시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저마다 숨어 있던 가슴속의 거문고를 울려 주었다. 1951년 8월 12일 소년시, 소년공화국은 창설되었다. 지금은 서울시 마포구였으나 당시는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에서 서남방 2Km지점, 한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 난지도이다. 그중 12만 평의 YMCA 소유의 토지에 삼동 소년시가 기공되었다. 56년 전,허허벌판에 포플러나무만이 쓸쓸히 서있던 땅, 황폐했던 그 땅에 소년들의 마을 ‘Boys Tdwn’ 간판이 올라가고 그 옆에 ”과거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전쟁고아들, 허물어진 거리를 목적도 방황도 없이 헤매던 200여 명의 소년들이 세운 자치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소년들의 유토피아 소년시는 192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떠 소년시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다. 육영사업으로 각지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중에 특수한 육영체로서의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와 서울의 난지도이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란 이후 이런 사정을 들은 미군 제5독립연대 장병들의 성금 2만 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황광은 목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김유선과 이창선, 현동완 등의 의지가 수도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 내어 삼동소년시를 세웠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선과 가까운 난지도는 불가하다는 것이 경찰청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에 타협안으로 전쟁고아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감화원 출신과 불량행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보호 중에 있는 소년들을 함께 수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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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이 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우신 (牛臣) 황광은(1923-1970)은 1923년 2월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지북동 25번지에서 황도성 장로와 김도순 권사의 3대 기독교 가정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2004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이반 작 김윤태 연출<소년 공화국>이 극단 ‘반딧불이’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1923-1970)는 47세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4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YMCA 소년부 연습 간사가 되었다. 그의 성실성은 그 당시 YMCA 현동완 총무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광은은 서울 중앙 YMCA 간사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그는 6.25 피난시절에는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들 30여 명을 돌보다가 1.4 후퇴 때에 고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황광은은 어린시절 일본 목사 가가와 도요히꼬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를 읽고 큰 감화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되던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기슭에 있던 향린원이란 고아원에서 8년간 고아들의 벗으로 일하면서 일제 말 암울했던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 청소년운동, 기독교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극단체 ‘원예술좌’의 창립동인이었고 아동영화 ‘하늘은 맑건만’ 등을 제작하였다. ‘크리스찬신문’ ‘기독교교육’, ‘새벗’의 창간과 편집,집필을 하였다. 황광은 목사 목회적으로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대광중고 교목을 거쳐 1961년부터 영암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김활란 박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 실무를 담당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크고도 넓고 깊다. 황광은 목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어린이의 참벗, 고아의 아버지, 선한 목자,화해의 사도,짧으나 긴 삶을 사신 분" 황광은은 아동작가,훌륭한 설교가,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은 맑고 너그럽고 착하였다, 그가 한 일은 크고 곱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한 스토리가 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 공화국》이다. 1970년 5월 어느날, 황광은 목사는 병상에서 이반 극작가를 불렀다. 소설 ‘소년 공화국’이라는 제목과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적어 놓은 서문과 두 장의 목차를 내밀었다. 구겨진 일곱 장의 원고지가 그로부터 33년이 지나서 희곡 《소년 공화국》으로 탈고된 것이다. 황광은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소설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반 극작가에 의하여 2003년 12월에 희곡이 되었고 2004년 12월에 연극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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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작품의 현실 장면에서 연기자들은 타고르가 3.1운동 후 동경한국 YMCA에 들려 주요한 선생께 한국이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다는 시를 한 편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중극장면에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 감리교 본부 파견목사, 전동례 장로,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나온다. 극작가 이반은 일본인들의 참회의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는 소망과, 마을 사람들의 교회 건축 찬반론에 대한 답으로 전동례 장로의 처용무를 제시할 것이다. 《아, 제암리여!》는 1999년 우지다 토루 연출로 일본극단 3.1회의 공연으로 일본 동경 Y스페이스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에는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반은 필자에게도 주변의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처용무가 대미를 장식해야 한일간의 화해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이반은 한국 기독교가 한국의 정신과 정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국과 아시아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 기독교 제의나 예배극을 써야겠다는 것은 이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가 하르트만 선생과 부라우네 교수와도 예배극을 쓰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17세기 청나라는 한반도로 쳐들어왔다. 조선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는 산성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출성하여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는 두 동생과 함께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세자는 청.명 전쟁에 청군 편으로 참전하는 등 청의 환심을 샀다. 명나라가 함락된 다음,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독일 신부 아담 샬을 만나 기독교에 대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아담 샬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과학 문명의 유물을 선물로 받아갖고 온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므로 그대로 극으로 꾸미면 사극이 된다. 이반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만 한다면 창작되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극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것이다. <소현세자>에서 청국은 조선에게 무기사찰, 파병 등을 요구한다. 이반은 기독교 예배도 신화를 음송하거나 극화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미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을 정확하게 쓴 기록문이나 사실적 산문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예배극의 언어는 묵시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소현세자》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기독교 순교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순교관을 대화나 에피소드, 또는 코러스를 통해 표현하고 소현세자가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은 극단 예맥에 의하여 2005년 CTS 아트홀, 일본 동경 삼백인극장에서 표재순 연출로 공연했다. 안준배/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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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7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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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15개월에 걸친 기획과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6월 11일-14일까지 잠실체육관이란 대형공간에다 토탈 디어터로서의 백주년 기념 제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상기작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회장인 강원용 목사가 김문환 교수에게 기획 의뢰하여 이 반, 이강백의 공동구성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표재순의 제작고문 형식의 연출적 참여와 이경열 제작총무의 뒷받침으로 토탈 디어터로서의 대형무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화의 총체적 소산에 의하여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선민 이스라엘 역사와 대비시키면서 합창, 무용, 시, 사물놀이, 연극 등의 결정체로 표출한 것이다.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1985년 8.11~14 잠실체육관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빛과 하나되어》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역사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래의 지평선까지 함께 가야함을 보여준 것이 《빛과 하나되어》인 것이다. 하르트만은 예배극의 공연공간을 더 이상 전통적 교회 예배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강당이나 체육관, 야외공간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의상이나 연극적 대소도구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예배극에 대한 고전적 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또는 성서와는 무관한 듯한 세계 현상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은 브레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하르트만은 텍스트로 성서를 택하고 언어도 성서적 언어로 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빛과 하나되어》는 하르트만의 예배극이 교회에서 잠실체육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빛과 하나되어란 함축된 제목으로 입체화한 것이 총체예술 <빛과 하나되어>이다. 본격적이고도 완숙한 대형 총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빛과 하나되어>는 서장에 빛의 근원을 찾아낸 데 이어, 제1장 빛이 동방에 비치니, 제2장 횃불은 타올랐으나, 제3장 불씨를 살리려고, 제4장 빛을 되찾은후,종장 빛과 하나되어로 이어지면서 성경과 히브리사와 한국기독교 백년사를 꿰뚫고 있는 주제인 ’빛‘을 증거하고 있다. 박두진 시 「해」가 대합창곡으로 대형 성가대에 의하여 불려지며 선교사 입국 등의 에피소드에 이어 윤동주의 「십자가」를 송창식이 독창으로 부르며 해방을 자축하는 사물놀이에 이어 정희성의 시 「울엄니 나를 낳아」가 성우향의 창으로 불려지며 관중합창에 이어 세상을 향한 행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형 십자가형의 무대장치를 중심으로 한 미술감독 신일수, 무용감독 문일지, 작곡 및 음악감독 이건용의 협업은 토탈 디어터 《빛과 하나되어》를 가능케 하였다. 김성원, 고은정, 강효실, 김인문, 문오장, 문희원, 서인석, 송재호, 최길호, 최명수, 한인수, 정영숙, 최선자등 기독교 연기자의 총출동은 기독교 백년의 서사를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잠실체육관 대형공간에다 풀어 넣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목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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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5)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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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김덕천, 황석영, 전진호, 오이세, 김문배, 안신자, 송채휘, 장수근 등과 함께 했는데, 그들의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연극을 관극하기 위해 황광은 목사는 이보라, 최선애, 김원식, 이경아 씨 등을 대동하고 당시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도동 구석까지 구경을 왔다. 황광은 목사는 그날부터 이반에게 기독교연극, 기독교예술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겼다. 다른 하나는, 연극은 다른 예술매체와 달리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 행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니, 황광은의 삶과 꿈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살아 숨쉬게 하자는 의도에서 희곡을 만든 것이다. 극작가 이반은 희곡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의 초점을 황광은 목사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두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두었다. 성자나 영웅에 대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의 영웅적인 행동은 많지 않다. 난지도에서의 황광은 목사의 행위는 성프란시스의 행동과 유사하여 청빈하고 겸허했다. 부모 없는 소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자신의 자녀들의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원장 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날 때 수색에서 종로까지 대중교통비가 없어 한 소년에게 차비를 빌려 쓰는 장면 등은 혇대판 성자의 수난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모든 행위를 숨기고 있다. 황광은 목사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앞세웠다. 그러한 그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소년시 시민들이다. 이반의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쓴 작품이다. 등장인물들과 일어난 사건, 소년시의 이상 등은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사진처럼 재현하지는 않았다. 극적 효과나 극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픽션도 가미되었다. 사모 김유선 여사나 이창식 선생, 가족들, 소년시 시민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려를 가졌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같은 사람들끼리 꾸미는 예술이 아니다는 것에 기초했다.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갈등’을 빚어야 기본 조건이 갖춰지기에 다양한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냈다. 이반은 작품을 안고 다니며 ‘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으며 그것을 현실에 옮기게 까지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상주의자 황광은의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물음을 묻곤 하였다. 쉽게 ’나사렛 예수!‘ 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황광은이라는 이상주의자를 통해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폐허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조직적이거나 신학적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분류하기 이전 사도 바울이 곱게 채색하기 이전의 사랑이다는 것에서 찾아냈다. 사랑의 원형질은 예수이고 그 예수가 황광은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헀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는 호이징거의 유희성이 넘쳐났다. 결국 타고르가 말하는 동심과 예수의 사랑, 인간의 유희성이 원천이 되어 황광은의 세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극작가 이반에 의해서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1970년, 그가 떠난지 5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공연계에는 토탈 디어터 라는 총체연극 또는 총체예술에 대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 연극계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기독교 기획진의 기획과 추진력은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 대공연이란 타이틀의 총체예술 축제인 <빛과 하나되어>의 집단창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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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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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3)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삼동소년시는 3권이 분리되어 입법기관으로 시의회. 행정기관으로 시정부, 사법기관으로 재판소가 있었다. 시의회는 시민 15명에 1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구성하였다. 시정부에는 시장, 부시장, 상공부, 농림부, 문화부, 재정부, 교체부, 보건부, 생활부가 있고 소년군 사령관을 두어 경찰조직인 헌병대, 군대조직인 경비대, 정신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봉사대를 두었다. 시는 동화, 영광, 평화, 신앙, 승리. 이상, 신생, 희망, 샛별, 독립촌으로 촌단위 13명의 시민으로 구성하여 촌장과 부촌장이 있고 부촌장이 시의원을 겸했다. 대한민국 헌법처럼 12장 67조로 된 소년시 헌장을 두고, 헌장 제2장7조에 ”소년시의 시민권은 만 10세로부터 17세까지의 한국소년으로서 불우한 환경의 희생이 된 집 없고 부모 없는 소년에게 고문이 이를 부여하겠다고 규정하였다. 시민 모두가 자력으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자체 화폐로 보수를 받았다. 소년시 내에서 통용되는 우표도 있었고 신문사도 있었다. 공공시설로는 병원, 이발소, 목욕탕,식당, 도서관이 있어 소년 시민들이 운영했다. 삼동소년시는 완전한 도시 국가의 형태로 일반 사회의 축소도였다. 한국기독교성령100년사 편찬위원회가 선정한 문화예술분야에서 문화운동가로 기재된 황광은 목사는 단 50도 못 채우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상향 소년공화국이 연극으로 재연되는 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이다. 황광은 목사의 1주기 때 한태동 교수는 이렇게 추모하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성자와 함께 살았는데, 살아 있는 동안은 그가 성자인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이반 작, 김윤태 연출의 《소년공화국》 황광은 역의 박웅선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성자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를 느끼게 된다. 현동완 역-김익태. 이창식 역-김남호, 김유선 역-최선영, 최병태 역-장훈, 김용호 역- 안순동의 연기는 1950년대를 넘어간 소년시의 주인공들을 재현하였다. 문학적이고 연극적인 삶을 살아간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사랑의 원형질 예수가 황광은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에 황광은의 세계는 지금도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날, 그리고 지금 극작가 이반은 희곡《소년공화국》을 담은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을 펴내면서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황광은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김유선 사모님은 목사님이 입던 양복을 내게 주셨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추운 북구의 겨울과 스산한 영국의 봄을 견디며 유학 생활을 보냈다. 어두운 70년대 였다. 세상일에 쫓겨 황광은 목사님의 《소년공화국》을 쓸 기회를 갖지 못했다. 2000년 7월, 목사님의 30주기를 기해 김희보 형이 황광은 목사 이야기‘사랑을 받느니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를 펴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목사님과 한 약속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60이 되면서 이웃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갚아야 할 빚도 있고, 지켜야 할 약속도 있지만 꼭 이 일, 이 약속만은 지켜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 《소년공화국》을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이반은 황광은 목사님 생전에 약속을 지킬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12월에 작품을 탈고했다. 극작가 이반은 황광은 목사는 《소년공화국》을 소설로 계획했지만, 희곡으로 꾸몄다. 소설로 쓰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도 연극의 대본인 희곡으로 꾸민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황광은 목사와 이반 극작가가 내가 연극을 매개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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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3)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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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 목사는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라고 말하였다. 호언한 대로 몹시도 추웠던 영하의 도시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저마다 숨어 있던 가슴속의 거문고를 울려 주었다. 1951년 8월 12일 소년시, 소년공화국은 창설되었다. 지금은 서울시 마포구였으나 당시는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에서 서남방 2Km지점, 한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 난지도이다. 그중 12만 평의 YMCA 소유의 토지에 삼동 소년시가 기공되었다. 56년 전,허허벌판에 포플러나무만이 쓸쓸히 서있던 땅, 황폐했던 그 땅에 소년들의 마을 ‘Boys Tdwn’ 간판이 올라가고 그 옆에 ”과거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전쟁고아들, 허물어진 거리를 목적도 방황도 없이 헤매던 200여 명의 소년들이 세운 자치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소년들의 유토피아 소년시는 192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떠 소년시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다. 육영사업으로 각지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중에 특수한 육영체로서의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와 서울의 난지도이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란 이후 이런 사정을 들은 미군 제5독립연대 장병들의 성금 2만 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황광은 목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김유선과 이창선, 현동완 등의 의지가 수도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 내어 삼동소년시를 세웠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선과 가까운 난지도는 불가하다는 것이 경찰청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에 타협안으로 전쟁고아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감화원 출신과 불량행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보호 중에 있는 소년들을 함께 수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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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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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이 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우신 (牛臣) 황광은(1923-1970)은 1923년 2월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지북동 25번지에서 황도성 장로와 김도순 권사의 3대 기독교 가정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2004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이반 작 김윤태 연출<소년 공화국>이 극단 ‘반딧불이’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1923-1970)는 47세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4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YMCA 소년부 연습 간사가 되었다. 그의 성실성은 그 당시 YMCA 현동완 총무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광은은 서울 중앙 YMCA 간사로 YMCA 지하실에서 유랑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그는 6.25 피난시절에는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들 30여 명을 돌보다가 1.4 후퇴 때에 고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황광은은 어린시절 일본 목사 가가와 도요히꼬의 소설 ‘사선을 넘어서 ’를 읽고 큰 감화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되던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기슭에 있던 향린원이란 고아원에서 8년간 고아들의 벗으로 일하면서 일제 말 암울했던 시기를 보냈다. 해방 후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 청소년운동, 기독교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극단체 ‘원예술좌’의 창립동인이었고 아동영화 ‘하늘은 맑건만’ 등을 제작하였다. ‘크리스찬신문’ ‘기독교교육’, ‘새벗’의 창간과 편집,집필을 하였다. 황광은 목사 목회적으로서 새문안교회 부목사, 대광중고 교목을 거쳐 1961년부터 영암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김활란 박사와 함께 전국복음화운동 실무를 담당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크고도 넓고 깊다. 황광은 목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어린이의 참벗, 고아의 아버지, 선한 목자,화해의 사도,짧으나 긴 삶을 사신 분" 황광은은 아동작가,훌륭한 설교가,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은 맑고 너그럽고 착하였다, 그가 한 일은 크고 곱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한 스토리가 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 공화국》이다. 1970년 5월 어느날, 황광은 목사는 병상에서 이반 극작가를 불렀다. 소설 ‘소년 공화국’이라는 제목과 200자 원고지 다섯 장에 적어 놓은 서문과 두 장의 목차를 내밀었다. 구겨진 일곱 장의 원고지가 그로부터 33년이 지나서 희곡 《소년 공화국》으로 탈고된 것이다. 황광은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소설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반 극작가에 의하여 2003년 12월에 희곡이 되었고 2004년 12월에 연극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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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1)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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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 우리는 지금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백향목 숲 향기가 도열해 있는 길에 샛별은 청보석처럼 손짓합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결한 분이 처음 누우셨던 말구유, 주님이 받으실 고난과 베푸실 은혜와 기적을 생각하며, 두 다리에 힘을 모으고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걷습니다. 해는 이미 졌지만 어둡지 않고 처음 딛는 땅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손에 손에 아기 예수께 드릴 선물을 들었습니다. 어떤 손에는 찬양을 어떤 손에는 감사를 어떤 손에는 사랑을 어떤 손에는 영광을 어떤 손에는 소망을 어떤 손에는 감격을 어떤 손에는 아, 어떤 손에는 뜨거운 눈물을. 황금의 쟁반에 받쳐 들고서 믿으며 노래하며, 노래하며 믿으며 걸어갑니다. 바람은 은빛 종을 흔들면서 어서 오라, 오라고 부릅니다. 동서와 남북, 사방천지에서 구름 같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사람들, 기뻐하러 가는 사람들. 등성이를 넘어서 산굽이를 돌 때마다 주님의 생명은 샘처럼 솟아나고 주님의 진리는 대양처럼 파도쳐 우리의 발걸음이 환희로 넘칩니다. 가다가 벼랑을 만나면 날아서 갈 것입니다. 가다가 가시덤불에 갇히면 주님의 지팡이로 헤치고 나갈 것입니다. 어떤 짐승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찬양하러 갑니다. 길은 길을 불러 이어지고 마음은 타올라 발부리를 지킵니다. 아무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우렁찬 행군,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세계의 만민이 한마음으로 가는 길,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감사하러 가는 길, 경배하러 가는 길. 우리는 주님의 병사, 아기 예수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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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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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4)-심훈의 「상록수」
- 이제부터는 <상록수>(1935)의 기독교문학적 특성을 몇 가지 관점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상록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독교 세계를 반영한 소설 작품은 모두 ‘도시소설’ 부류였다. 이광수의 <무정>(1917)이나 <재생>(1924)을 비롯하여 염상섭의 <삼대>(1931) 등 소위 도시소설들에 기독교적인 세계가 반영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무정>이나 <재생> 등에서 어느 정도 기독교 세계를 보여주었던 춘원도 그의 농촌소설 <흙>(1932)에서는 기독교 세계를 거의 반영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상록수>는 ‘농촌소설’에 기독교 문제를 끌어들인 첫 번째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농촌소설’의 본격적인 첫 작품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상록수>란 작품의 의의는 이 소설이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맨 처음으로 반영시킨 작품이란 점이다. 도시소설이건 농촌소설이건을 불문하고 <상록수> 이전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 이광수·김동인의 작품들은 물론, 염상섭의 <삼대>마저도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점에서 반영시켰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염상섭의 <삼대>는 기독교소설로서도 문제작의 하나임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 기독교 세계관이 독자 대중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전달되는 작품이라곤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느 면 부정 위에다 희미한 긍정의 세계를 구축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인 작품 정도로 봐줄 수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상록수>는 기독교 긍정에의 굵은 선을 드러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다른 의의를 찾는다면 그것은 <상록수>가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 계열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도 이 작품은 한국 기독교문학사에서 아마도 효시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의 소설계에 이른바 실천문학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양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그 수십 년 전에 산출된 소설 작품 <상록수>의 위상은 결코 도외시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겠다. (70년대에서의 이 방면의 희귀한 예외가 황순원의 1973년 작품 <움직이는 성>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상록수>에서 한 가지 더 어떤 의의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한국 기독교소설사에서 명실상부한 여성 주인공을 첫 번째로 등장시킨 작품이란 것이다. 물론 필자는 우리나라의 ‘장편소설’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가령 염상섭의 <삼대> 속의 홍경애가 주요인물 김병화의 짝으로서 여성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역시 그녀는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위상(희생적인 실천적 신앙인 상)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이 명실상부한 기독자 여주인공을 맨 처음 부조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록수>보다 십여 년 앞서 나온 이광수의 <재생>의 여주인공 순영이도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녀의 ‘자진(自盡)’ 사건으로 인하여 그녀 자신의 기독교도로서의 최소한의 위상마저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면, <재생>의 순영이는 <상록수>의 채영신과는 나란히 논할 수 있는 위치의 여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불가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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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4)-심훈의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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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문학회 30주년 행사, 목양문학상 시상과 공로패를 증정
- ◇「목양문학」이 3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목양문학회가 3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감사예배와 출판기념식, 시상식, 공로패 증정식 등 풍성한 행사로 드려졌다. 그럼에도 참여 인원을 제한하여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등 안전한 환경 속에서 모든 일정이 진행됐다. 이날 한국목양문학상 김정석목사(시)와 문장식목사(수필), 안준배목사(평론)가 수상했다. 이 행사에서는 창립회원과 공로회원들을 향한 공로패 증정식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고훈, 정려성, 박영률, 박재천, 최세균, 유한귀, 박종구목사가 창립회원으로, 김재남, 홍문표목사가 심사위원으로, 고환규목사가 시 낭송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증정받았다. 또한 이날 차기 임원진이 발표된 가운데 전담양목사가 한국목양문학회 신임회장으로 추대됐으며, 박상기전임회장에게 공로패가 증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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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문학회 30주년 행사, 목양문학상 시상과 공로패를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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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3)-심훈의
- 이광수의 <흙>(1932) 연재와 심훈의 <상록수>(1935) 연재가 겨우 3년이란 시간차밖에는 나지 않는데도 두 작품이 상당한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주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두 작품 모델의 생동감 여부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이광수의 <흙>에는 평소 그 주인공의 모델로 채수반이란 인물이 내세워졌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어떤 살아있는 모델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좀 억지스럽게 표현해 본다면, 그 작품의 남녀 모델은 바로 그의 처녀 장편소설 <무정>(1917)의 남녀 등장인물들이었다고 표현해 볼 수 있으리라. <흙>의 허숭의 모델은 <무정>의 이형식이며, 마찬가지로 윤정선의 모델은 김선형, 그리고 유순의 모델은 박영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의 짜임새는 매우 유사한 데가 있다. 말하자면 이 두 소설은 <무정>의 도시 무대가 <흙>의 농촌 배경으로 바꾸어지고, 등장인물 ‘이형식-박영채-김선형’ 사이의 삼각연애 관계가 ‘허숭-유순-윤정선’ 사이의 그것으로 바뀌어 나타났을 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에는 구성 면에서의 핍진(逼眞)한 친근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춘원 이광수의 <흙>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춘원)의 전작 <무정>의 주요 인물들이 그 모델로 쓰이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바 있다. 그러나 심훈의 <상록수>의 남녀 주인공은 그 실제 모델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박동혁의 모델은 심재영, 그리고 채영신의 모델은 최용신이라고 한다. 심 군은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충남 당진군(송악면 부곡리)에서 농촌운동을 전개한 작가의 큰 조카이고, 최 양은 경기도 수원군(반월면 천곡리)에서 역시 농촌봉사 활동을 하다가 과로에 지쳐 쓰러진 채 운명한 기독교(YWCA) 계통의 여성운동가였다. 특히 모델 최용신은 일제 강점기에 <성서조선>의 발행인으로 활동했었던 무교회주의 종교가 김교신 선생의 각별한 관심까지 끌었던 여성 지도자로서, 그녀의 투철한 신앙심이 바로 그녀의 그 불굴의 정신력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두 모델이 실존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사람(심재영과 최 용신)이 실제로 서로 사귀거나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두 인물을 소설 구성을 위하여 허구적으로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농촌봉사 활동에 뛰어든 남녀 생존 인물들을 작품의 모델로 사용한 <상록수>가 전혀 그렇지 못한 <흙>보다 더 생동감 있는 표현을 얻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박동혁이 자기 고향 한곡리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관심을 기울인 곳은 경제적 모순을 타파하고 사회개혁을 실현하는 분야였다. 이에 비하여 채영신이 낯선 고장 청석골에서 벌인 봉사활동은 이른바 문맹퇴치 운동과 같은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정신적인 계발에 힘쓰는 일이었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건강 상태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그곳 주민들을 위해 제 몸을 온전히 불살랐던 것이다. 그녀는 속죄양 의식, 곧 투철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살신성인의 ‘희생 봉사’ 정신이 너무도 강하고 또 확고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봉사활동)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과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이렇게 서로 행복하게 결합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기독교적인 구원의 여인상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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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3)-심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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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도 시집 「지상의 언어」 영역본 출간
- 박이도시인(사진)의 시선집 「지상의 언어」(창조문예사)의 영역본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가 출간됐다. 이 시집은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영원성을 추구했다. 「지상의 언어」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집으로, 그 대역본이 같은 해에 국내에서 국문으로 발간됐다. 이 시선집은 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엮은 만큼 그의 시적 경향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이도시인은 “후반기에 와서 특히 시가 짧아지는 등 어쩔 수 없이 인생론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흔히 ‘서정적 자아’라고 말하는데, 사물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발전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한다”고 이 시선집을 소개했다. 「지상의 언어」는 △황제와 나 △어느 인생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축제의 노래 △민담 시집에서 등 5부로 구성됐으며 110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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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도 시집 「지상의 언어」 영역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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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2)-심훈의
-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보다는 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할 것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은 단지, 지식인이 우리 농민들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농촌봉사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혜적 입장(만)을 토로하고 있음에 비하여,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은 지식인이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 유리된 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농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가 농촌의 실상을 체험을 통해 파악하고 그들의 경제적 자활운동을 힘써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보건대, 작가 심훈은 전혀 선배인 춘원(이광수)의 체질과는 다른 체질을 지닌 이였다고 하겠으니, 농촌계몽 소설이란 범주에 들 수 있을 두 편 소설 작품들의, 어느 정도의 상호 유사성으로 인하여 심훈이 다소 춘원과 유사한 체질로 인상 지어진 것은 심훈 자신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춘원이 ‘하강적 모델’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심훈은 ‘상승적 모델’에 해당하는 작가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의 입장이,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춘원이 내세웠던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상록수>의 주인공 동혁의 그것은 신문사의 그 공식적 입장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동아일보가 내세운 브나로드 운동의 기본 입장이란 것은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과 ‘문맹을 물리치려는 헌신적 노력’에 모아져 있었다. 곧 동족을 사랑하는 열성으로 농촌계몽 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할진대 문맹을 퇴치하게 될 헌신적 노력은 자연히 기울여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대한 결과보고를 부탁받고 일어선 박동혁은 그 경지를 뛰어넘는 발언을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자의 간섭(곧 그 발언이 제지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박동혁은 이렇게 말했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정신, 요샛말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 발언에 대하여 사회자는 절대로 계몽운동과 사상운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차례로 발언하도록 지목을 받은 채영신 역시 동혁과 같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녀는 처음엔 발언을 사양했는데, 이유인즉슨 남학생을 먼저 발언하게 하고 여학생인 자기를 후에 발표하게 한 것이 불쾌하다는 것과 또 사회자가 무어라고 제재를 하게 될 것 같으니 그런 구속을 받아 가면서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마지못한 듯이 일어나서 한 말은 이러했다. “우리 계몽대의 운동이 글자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한절대다수인 농민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우선 그네들에게 희망의 정신을 넣어주자는 박동혁 씨의 의견은 저도 전적 동감입니다!” 결국 박동혁이나 채영신이나 모두 문맹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농민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 ‘희망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긴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던 것이다. 이광수의 <흙>의 주인공 허숭은 화려한 경력에다 출세에의 욕망이 뒤범벅이 되어 농민들과의 동화라는 게 사실상 어려웠지만(아니, 수상쩍은 인물로나 비쳐지고 배척을 당하기까지도 했었지만), 심훈의 <상록수>의 주요인물들인 박동혁과 채영신은 투철한 사명감과 농민에 대한 사랑으로써 쉽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또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들로부터 신임까지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결코 쉽사리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보겠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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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2)-심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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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1)-심 훈의
- 올해는 우리나라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대섭(1901~1936)의 탄생 120주년의 해이다. 심훈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 심대섭은 춘원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30년대 농민문학의 쌍벽으로 불리는 <상록수>로 인하여 일단은 이광수의 인상을 많이 연상시키는 작가라고 보겠다. 심훈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증거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의 둘째 형 명섭이 기독교회의 목사였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가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학적을 두었던 대학이 미션계인 항주의 지강(之江)대학이란 점을 감안할 때 그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는 그의 <상록수>의 주인공을 기독교 신자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점이 이채롭다고 하겠다. 여주인공 영신을 신도로 설정하여 청석골에서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 사업을 펼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의 희생 봉사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면에서, 기독교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상록수>를 제외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록수>에서는 긍정적인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을 지닌 채영신과 세속적 이념의 견지에서 세계를 개혁하려는 박동혁의 근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젊은이가 하나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 곧 민족주의적 이념의 공통분모가 시대적 표증으로 한데 묶여질 수 있었기 때문인데,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주인공 영신이 애석하게 희생되는 일을 통해서, 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한 민족에 대한 사랑 역시 그 근원을 기독교적 희생정신에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 정신을 작품상에 반영한 심훈이 그의 유명한 항일 민족시<그날이 오면>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 예언적인 민족문학 작품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체질의 예언시를 오늘 이 땅에 재현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일제 강점기 문인들 중의 일부 인사에 속하기는 하지만, 당대에 그가 민족적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호례의 시가 바로 <그날이 오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시편 가운데 기독교적 언어가 직접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적 위기에 처한 구국적 충정을 시인의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토로해내고 있는 이 시편은, 정치 사회적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북이스라엘 왕국을 구해내고자 현실 참여적 외침을 애국적 민족시를 통해 토로했던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헤브라이즘적 ‘예언시’의 전통이 그대로 오늘 이 땅에 되살아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농촌계몽 소설 또는 농민소설로 지칭되는 몇 편의 굵직한 장편소설들이 나왔다. 이광수의 <흙>과 이기영의 <고향>, 그리고 심훈의 <상록수> 등으로서, 이들 중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 한국 기독교문학사에 엄연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록수>라고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의 기독교 문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그 연구가 결코 풍성한 편은 아닌 현 실정이라고 하겠다. 여러 가지 기독교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소설 <상록수>는 이 방면의 선행 업적이라고 할 이광수의 <흙>과 자주 대비되어 논의되기도 하였다. 같은 30년대의 농촌계몽 소설로서 역시 같은 ‘동아일보’ 지상에 연재된 작품이며, 그 신문사의 ‘브나로드 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작품들이란 공통점 때문이었으리라.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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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1)-심 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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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
- 홍덕선서예가, 13명의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 소망화랑(대표=홍덕선장로·사진)은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소망화랑에서 갖는다.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시와 명언을 원곡체와 궁체로 작품화해 전시한다. 이 전시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시와 명언, 서예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이번 서예전에는 박이도원로시인을 비롯한 13명의 시인과 김경래장로, 서예가인 홍덕선장로가 참여한다. 박이도시인의 「겨울 나그네」, 박종구시인의 「사랑」, 김소엽시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최규창시인의 「커피향기 속에」, 김연수시인의 「기다릴 그대 있어」, 최일도시인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기도」, 정재영시인의 「하늘강」, 조신권시인의 「횃불 항아리」, 이정균시인의 「갈대사랑」, 오성건시인의 「가을연가」, 박완신시인의 「일어나 생명길 걷자」, 금보성시인의 「모래」, 권성묵시인의 「부메랑」, 그리고 명언으로 김경래장로의 「하늘이냐 땅이냐」, 서예는 홍덕선장로의 「시편 37편 46절」 등이 전시된다. 박이도시인은 “먼 길 떠나기 위해/단잠에서 깼다/아직 어둠이 머뭇거리는/새벽하늘에 아침이 온다/희끗희끗 날리며 앉으며/순식간에 천지를 휘감아/화살 짓는 눈발/서로 부딪치며 떠밀리며/지상엔 하얀 폭풍이 인다/나뭇가지 위의 새둥지가/툭, 떨어지고 새들이/포롱포롱 황급히 떠난다/굳게 닫힌 성당 문이 삐꺽/천장에 누워 있던 12사도가/모자이크를 털어내고 걸어 나온다/뚜벅뚜벅 눈 속으로 떠나간다/그 뒤를 내가 따라 나선다/열둘 그리고 열셋의 발자국이/하얀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발자국 뒤로 남는 헛기침 소리”란 「겨울 나그네」에서 12사도의 뒤를 따라 나서는 박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박종구시인은 “십자가 위/못박힌 손과 발/그 아픔보다 더 목말라/했던//그것은//너와 나/그를 향해/그토록/옹색하기만한/그것은”이란 구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엽시인은 “이루지 못한 사랑마다/별이 되게 하소서//이픈 이별마다/별이 되게 하소서//눈빛과 가슴으로/수천 수만 대화 나누고/멀리 두고 바라만 보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특히 김경래장로는 1902년에 태어나 33세에 별세한 차재선전도사의 명설교 제목인 「하늘이냐 땅이냐」를 소개했다. 차전도사는 이 설교에서 “소망의 천국인 하늘을 바라보고 사느냐”의 명언을 남겼다. 이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한 홍덕선장로는 “전시회때마다 관람자들이 감동을 받는 것을 볼때마다 계속 「명시·명언 특별서예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형상화했다”면서, “이 서에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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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제5회 명시·명언 특별서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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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4)-박영준의
- 최광주가 지금껏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의 삶을 통해 그 자신이 터득하게 된 것은 자기의 그런 자세가 아내(삼애)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란 점과 그런 연민이나 동정심만 가지고서는 아내를 진실로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의 인식이었다. 진정한 부부생활은 정신적인 면 못지않게 육체적인 사랑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불구(반신불수)의 아내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로 마음먹었고, 또한 그 일을 성사시키는 기적(?)도 이뤄낼 수 있었다. 아내 역시 그 일의 성사를 미세하게나마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 조그만 행복도 그에게 오래 허락되지는 않았다. 비정상적인 상태에서의 부부행위가 가져다준 후유증이 아내의 정신적인 면으로까지 비화하여 그녀는 고뇌의 빛과 함께 심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일기장 사건이 또 터졌다. 우연히 어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딸 경선이가 어미에게 들켜서 심하게 꼬집힘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꼬집힌 자리는 광주가 보기에도 몹시 독이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심하게 꼬집지는 못할 만큼 대단한 상처였다. 삼애가 경선이를 꼬집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복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그녀가 성적 불구자가 되었다는 울적한 자의식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자신의 치부(추한 과거)가 일기장으로 인해 들통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첫 번째 꼬집힘을 당했을 때, 경선이는 아직 삼애의 깊은 비밀까지는 엿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란 육감이 들었던지 경선이는 그 일기장을 또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런 일을 다시 또 당하게 된 삼애는 경선이에게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동시에 앞으로는 자기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외쳤다. 이 사건이 있은 뒤로 경선이는 실제로 집을 뛰쳐나갔고, 결과적으로 고아원에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작품상에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경선이가 두 번째로 삼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을 때, 이번엔 삼애의 잔인한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미가 “나가라”고 한다 해서, 또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란다고 해서 어린 경선이가 곧장 집을 뛰쳐나가 그날 밤 돌아오지도 않은 일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식에 눈을 뜬 삼애의 자의식 때문에 결국은 그런 가정 불행마저 초래된 것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감동적인 곳은, 자신의 그런 행위를 뉘우치고 곧 언니(신애)의 딸 경선이를 데려오라고 남편(광주)에게 간청하는 삼애의 진심에 찬 애절한 부르짖음의 장면이다. 이리하여 경선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가정은 화평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의 평화 회복도 잠시뿐 폭풍은 새로운 방향에서 불어닥쳤다. 동생 대주와 목사 딸이 어울려 외박을 한 사실이 들통 나서,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고, 광주 역시 동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결국 이 두 가정은 이삿짐을 꾸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 교회의 통상적인 치부까지도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목사나 광주의 가정이 부닥치는 일시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참된 승리자는 김 장로나 김 집사 같은 율법주의적인 부류의 교인들이 아니라, 목사나 광주와 같이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에 둔감하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이란 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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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4)-박영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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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3)-박영준의
- 장편소설 <종각>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면을 이하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의 주인공 최광주는 현재 심삼애의 남편으로서, 세 자녀와 미혼인 남동생 대주까지 모두 여섯 식구의 가장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 심삼애는 지금 반신불수의 몸으로 늘 자리에 누워만 있는 불구자로, 3년째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삼애는 광주의 전처였던 신애의 친동생이었다. 전처였던 신애는 딸 경선이를 하나 낳고서 자살해 버린 것이었다. 신애가 자살을 한 이유는 제 남편이 그녀 동생 삼애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는데, 그 일이 남편뿐만 아니라 동생 삼애에게도 똑같이 책임이 있는 일이었고, 남편 못지않게 동생 삼애의 비행에도 그녀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남편의 비행에 대해서는 물론, 동생에게 사랑하는 남편마저 빼앗겼다는 분노감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믿었던 측근에게 남편을 빼앗기는 최대의 배신을 당했다는, 분노를 수반한 자괴감 때문이었다고 보겠다. 친 형부를 빼앗은 삼애도 후에 그 패륜적인 죗값에서랄까 반신불수의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장본인인 삼애는 그녀의 그런 비극이 그녀 자신의 죄과에서 비롯된 것이란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여인이다. 두 아들을 낳아 놓은 뒤 이런 비극을 당했으니, 자신의 불구로 인해 온 가족에게 미치는 불편함이 오죽할까마는,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크게 뉘우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어미에 비해 딸 경선이의 정성은 너무도 지극하다. 광주에게는 친딸이지만 삼애에게는 친딸이 아닌 경선이는, 열세 살이란 나이로는 너무 성숙하다 할 만큼 집안일에도 열심이지만, 또한 어미 봉양도 극진하다. 이 아이는 삼애가 자기 친모가 아니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아이의 정성이 더욱 갸륵하게 보인다. 아마 아비 광주로서도 이런 집안의 분위기가 숨 막히는 일이었을 것이다.(게다가 동생 대주는 집안에 별 쓸모가 없는 존재로서 형 광주에게 무리한 부담만 안겨주는 실정이다.) 전처 신애가 자살을 한 이후로 광주는 크게 충격을 받고서, 자세한 경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은 뒤 자진해서 사찰 직을 맡았다. 이로 인해 받는 약간의 수입과 평일 장사를 해서 번 돈 등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불구(반신불수)의 삼애가 죄의식을 크게 지니고 있지 않음에 비해, 광주는 지금껏 너무도 큰 죄의식에 몸부림쳐 왔다. 그가 타종할 때는 꼭 열다섯 번씩 줄을 당기곤 했는데, 이는 자기가 범한 열다섯 여인에 대한 속죄의식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는 열다섯이란 숫자를 자기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자행하던 속악한 인간이었음엔 틀림없으나 아내의 자살 이후, 충격 속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서도, 그가 근본적으로 악한 인간은 결코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고도 하겠다. 변화된 이후의 최광주는 거의 고행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죄악에 대한 속죄의식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는 수년간 금욕과 극기의 생활을 해 오고 있다. 현재의 아내 삼애가 불구자가 된 것에는 공범자로서의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서 벌을 달게 받는다는 심정으로 지금껏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터득한 것은 무엇인지 자기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물음의 결과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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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에 사로잡힌 고뇌의 인간상(3)-박영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