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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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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5-05-20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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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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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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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5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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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1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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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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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창세기 22장 12절에서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3단계의 실존주의를 말한다. 첫 단계는 미적 실존이며, 둘째 단계가 윤리적 실존이고, 최종 단계가 기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미적 실존 단계와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적인 실존주의 단계에서만 절대자 앞에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실존적인 도약으로 역설적으로 자아 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자기 ‘생명’의 발견이 가능함을 감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미적 실존주의의 절망은 인생의 모든 괘락을 향락하려는 태도이다. 유미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몰린 자로서 영적인 방향감각이 없는 자이다. 영화 같은 경험을 원하면서 참된 삶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약을 즐기는 것처럼 삶을 불태워 버린다. 향락주의자는 외면적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을 하는 자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향락에 사로잡혀 노예상태에서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자이다. 미적 실존의 아이러니이다.   향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양심의 입장에서 자기 발견하려는 것이 윤리적 실존의 단계의 절망이다. 윤리적 실존은 착한 시민으로 참여하여 도덕적 책임을 다하며 결혼생활을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라고 고백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최종 단계로 기독교적 실존이 요청됨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자아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능력, 가능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계의 극한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서 인간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고, 무의 상태에서, 무한한 미지의 세계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전능자를 향해 실존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실존적인 도약은 죽음으로서 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절망은 주검에 이르는 병이면서 주검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요한복음 11장 4절)고 함으로서, 삶으로의 도약임을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의 격심한 갈등 끝에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적인 가정의 재미를 말하는 미적 실존의 단계와 아들을 살해한다는 윤리적 실존 단계를 넘어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사랑함으로써 우상화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특유한 ‘키르케고르적인 도약’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이요, 키르케고르의 ‘좌절에 의한 비약’이었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실존적 도약의 축복이 후손에게까지 이름을 본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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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5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3]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과 여성의 역할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서 3장 14~15절에서 “……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독교를 노예들의 도덕이라고 거부할 뿐 아니라, 제1부 18에서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을 낳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제3부 12에서 좥낡은 목록표와 새로운 목록표에 대하여좦에서 낡아빠진 독단적인 강좌와 낡아빠진 자만이 도사리고 있는 기독교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라고 명령하고, 기독교의 위대한 스승들, 성자들, 구원자들을 비웃으라고 명령한다. 이제까지 모든 인식은 죄의식 옆에서 성장해 왔는데, 그것을 부숴버리라고 한다.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모든 나무들 중 가장 나쁜 나무인 십자가가 자라는 곳이며, 그런 땅에는 찬양할 것이 없다는 것이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삶에 대한 최고의 의지는 존재를 위한 비참한 투쟁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죽이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 제압하려는 의지, 전쟁에의 의지라고 선포한다. 스파르타식 군사적 공격성향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니체의 철학은 파괴하려는 힘이 삶의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니체의 영웅 숭배 사상은 독일의 히틀러의 나치사상과 비교된다. 니체의 초인은 창조자가 아니라, 파괴자이다. 이것은 노예들의 도덕에 반대한 주인들의 도덕이란 것이다. 노예들은 주인들로 인해 착취당하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초인이 생존하기 위해 대중이 소멸되어야 한다. 모든 역사는 무자비한 힘을 통해 승리에의 의지로 인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려있게 하지 말라”라고 한다. “옛 도덕을 파괴하고, 새로운 부도덕을 확립하라”고 한다. 야심, 무자비함, 증오, 이것들이 주인 계급의 힘이요, 동정심, 관대함, 사랑, 이것들은 노예계급의 약함이란 것이다. 나폴레옹 같은 공격자가 니체의 초인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기독교적인 민주주의는 너무 늦기 전에 파괴해야만 한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노예의 교리란 것이다. 니체는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 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좥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좦에서 “여자에 관한 것은 모두가 수수께끼이다.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의 해답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임신이란 것이다.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하는데, 그것은 위험과 유희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남자는 가장 위험한 장난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 남자는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며, 여자는 전사의 휴식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고 했다.니체는 “여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 세계의 여러 가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처럼 청순하고, 우아한 장난감이어야 한다. 별빛이 그대들의 사랑 속에서 반짝이게 하라. ‘나는 초인을 낳고 싶다’가 그대들의 희망이 되게 하라”라고 한다. 니체는 1888년 말부터 정신 착란의 징후가 나타났으며, 이탈리아의 토리노 광장에서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이틀 후에 깨어났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마구 노래하고, 춤을 추고. 거리를 헤매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신이다”고 했다. 니체가 죽을 때는 그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만이 가까이 있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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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1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2] 신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하고,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야고보서 3장 15절)라 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다고 했다(로마서 1장 2절).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그의 대표작 철학적 소설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를 구사한 초인을 창조함으로써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니체는 자신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을 위해서 예수님 탄생 5세기 이전에 죽은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대변자로 이용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선악의 갈등에서, 선이 우세하리란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세계를 선악의 갈등을 넘어 혼란한 장소로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우주적인 사랑 가운데 인류를 포용하는데, 니체는 그의 우주적인 증오심 가운데 인류를 침몰시켜버린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3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고(〈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먼저 선포함, 1882), 그 대신에 ‘초인’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 변신하여 영원을 품고, 최고의 권력에로의 의지를 확신한다. 이런 영감으로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오 인간이여, 주의하라!/깊은 밤이 무엇을 선포하는가?/“나는 깊은 꿈으로부터 일어나서 선서하노라/세계는 깊이 잠들어있다,/낮이 아는 것보다 더 깊이 잠들어있다./그 비통함은 깊도다./기쁨-고통보다 더 깊도다./고통이 간청한다 : 물러가라!/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깊은 영원을 원하고 또 원한다” 니체는 지상의 비통함은 물러가고, 초인으로 인한 기쁨의 때가 올 것임을 노래한다.   초인의 상징은 자제, 자기 수양, 자주적 방향 결정, 자기 극복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선포한다. “내가 너 인간에게 초인을 가르치마. 인간은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다 …… 모든 존재들은 자신들 넘어 무엇을 창조하려고 했다. 너는 큰 물결의 허름 속에서 인간을 극복하기보다 뒤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원숭이가 인간에게 무엇이냐?”   니체는 “그대들은 전에는 원숭이였으며,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인 것이다”라고 하여, 인간은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인간은 미개한 동물성으로부터 초인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대들에게 내세의 희망에 대하여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독을 뿌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전에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모독자들도 또한 죽었다”라고 하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내세의 소망 대신에 초인의 개념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땅에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초인의 의지를 선포한다. 초인은 의욕과 감사로 지상의 세계를 포용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을 육체와 결부시키고, 영혼을 단순히 육체의 한 모습으로 해석한다.   니체에게 필요한 말씀은 잠언 1장 7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이다. 니체 같은 ‘천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했기에 ‘미련한 자’가 되고 ‘불쌍한 자’가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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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1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0] 인간 목적,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림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총론」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고 하셨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광의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총론」의 QQ 75-94에서, 모든 물질 속에는 그 물질의 존재 목적인 형태가 내재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론적 목적론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리고 인간의 최고의 선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창조된 인간은 원래 자연적인 힘에 더하여 최고의 은사로서 최고의 선을 추구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으로서 크리스천들의 미덕이란 것이다.   아퀴나스의 신학철학사상의 중심은 질서, 참여, ‘행위와 잠재’ 이론이다. 우주 전체는 하나의 장대한 ‘질서’이며, 인간은 우주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 그 질서가 유지되도록 참여하여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인간의 실재 행동의 정도가 우주질서 속에서 인간의 기능과 자리를 결정하며, 인간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행위와 잠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실재인 ‘행위’ 속에, 보이지 않는 실재인 ‘잠재’된 역사적인 성취가 있다고 한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것은 행위의 차원이지만, 그 예언의 성취는 ‘잠재’의 차원으로, 에덴에서의 추방과 인류 역사를 통해 이어지는 전쟁과 죽음의 역사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게 되는 역사로 이어진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의 뱀에 대한 심판으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이 예언의 말씀은 ‘행위’ 차원의 것이지만, 그 예언의 ‘잠재’ 차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한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류 구원의 역사의 영광스러운 장이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가인의 계열을 선악의 나무 계열이라 하고, 아벨과 셋의 계열을 생명나무 계열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하와가 가인을 낳고 난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세기 4장 1절)라고 하는 ‘행동’ 차원의 말을 하였다. 하와의 ‘내가(I)’ 먼저이고, ‘여호와’는 그 다음이란 것은 인간의 교만을 나타낸다. 하와는 ‘내가(I’”라고 함으로써 자기중심의 교육, 즉 인간 중심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보이는(요한일서 2장 16절) 행동 차원의 교육을 가인에게 한 것이다. 하와의 행동차원의 교육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 후대로 이어지는 잠재차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의 장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와는 ‘셋’을 낳고 난 후에,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창세기 4장 25절)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이 먼저였다. 하와의 하나님 중심의 교육을 셋에게 시킨 행동차원의 교육은 역사의 흐름은 따라 후대로 이어지는 잠재차원은 다윗 왕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인류구원의 축복의 장이 되고 있다.   시편 1편 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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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3
  • 제16회 창조문예문학상 시상식
      ‘코로나19’사태로 축소해 수상자와 관계자 40여명만 참석     월간 〈창조문예〉(발행인=임만호장로)는 제16회 창조문예문학상과 제7회 창조문예 문예상 시상식, 그리고 신인추천 등단패 수여식을 지난 10일 밀알학교에서 가졌다. 이 시상식은 지난 2월 28일 갖기로 했으나, ‘코로나19’사태로 여러 차례 연기된 가운데 가졌다. 모든 행사규모를 축소해 수상자 등 40여 명만 참석했다.   이날 시상식은 최규창시인의 사회로 진행했다. 창조문예 문인회 회장인 김종수목사의 기도와 권은영시인의 「하나님말씀」 봉독, 임만호발행인의 인사, 이명재문학평론가의 심사평, 제16회 창조문학상 수상자인 오승재소설가와 이정호번역가, 제7회 창조문예 문예상 수상자인 이택민시인에 대한 상패 및 부상 수여식이 있었다. 그리고 신인추천 등단패 및 신인추천 당선패 수여식도 가졌다.   각 부문 시상이 끝난 후에는 허형만시인의 격려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이광복소설가의 축사, 창조문예 문인회 회장인 김송수시인의 등단자들에 대한 환영사 등 순서로 진행했다.   이명재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오승재의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2019년)는 제4창작집이다. 역시 표제에 선명하게 나타난 바 기독교신앙에 비중을 둔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원숙한 필체로 진솔하게 쓴 표제작과 더불어 동남아 지역으로 해외선교를 나간 제자에게 자상하게 쓴 「박 교수와 김삼순 선교사」 등이 눈길을 끈다. ‘교인’ 항목의 단편 5편과 「교회에도 수문장이 있다」, 「급매물 교회」를 포함한 ‘목자와 교회’ 항목 등 5편을 합해서 단편은 모두 10편을 실었다. 그리고 이밖에 다양한 콩트 14편을 더하여 구색을 갖추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정호번역가에 대해 “월간 〈창조문예〉 번역 등단작가로서 한영번역 천옥회 시인의 시조 「언덕 위에 쓴 편지」와 이향아 시인의 「저녁 강가에서」 외 「창조문예」에 200여 편을 영역하였으며, 영한번역 영국 신앙시인들의 「영혼의 노래」와 코리치 시인의 「노수부의 노래」를 번역함으로 한국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밝혔다.   한편 임만호발행인은 인사말을 통해 “〈창조문예〉는 기독교정신에 의해 창간되었다”면서, “그렇다고 기독교적인 작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한국문학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신인추천 등단패와 신인작품상 당선패를 받은 신인은 다음과 같다.   △신인추천=권 현 조정태 이청승 양내인 소흥섭 김만재 한준택 김순규 홍대기 △신인작품상=김창선 박지원 정석영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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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8-12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8] 영원과 시간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시」
      시편 90편 2절에서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에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생성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로 분리하는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도시와 땅의 도시로 분리하는 이원론을 영원과 시간이란 계념으로 정말로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기에 하늘과 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고, 천지가 창조됨과 동사에 시간도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창조된 세계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세계와 우리 인간들이 사는 시간의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영원으로부터 시간 속으로 보내셨다고 했다. 유한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만나는 길은 오로지 영원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만 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를 통해 만물을 지으셨으니, 그 가운에 아우구스티누스도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믿는 자들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갈라디아서 4장 5절) 하셨으니, 그들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도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시간 속에 존재하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영원에서 시간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과 만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시간도 영원할 수는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존재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고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존재하지 않고 단지 우리의 현재의 기대 속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현재 지금과 여기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흐름을 시 한 수를 낭독할 때를 예로 들고 있다. 시인이 그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낭송한 구절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서 자기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런 시인의 낭송 행위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시인이 이미 읊은 구절들은 그의 기억 속에, 그가 읊으려고 하는 구절들은 그의 기대 속에 있는 것이다. 마침내 시를 읊는 행위도 끝이 나고, 낭송이라는 행위와 낭송한 시는 모두 기억 속으로 넘어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를 낭송하는 과정은 한 인간의 전체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그리고 한 인간의 삶은 인류 전체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으므로,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도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덧없이 흘러가고, 인류의 역사도 수많은 폭풍과 급류 속에서 흘러가는 강물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인데, 영원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현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목표, 즉 시간 속에 살면서도 영원함과의 만남으로 완전을 이룩하려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성육신이야말로 영원과 시간을 연결하는 구원의 영원한 현재인 것이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7-30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7] 이원론적 세계관: 참 것과 모형 - 플라톤의 「공화국」
      히브리서 9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공화국> 제7장의 ‘동굴의 비유’에서, ‘생성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개념을 통해 참 것과 참 것의 그림자를 잘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캄캄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동굴의 벽만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그들의 목과 다리는 쇠사슬에 묶여 움직일 수 없어서, 그들 앞에 있는 벽만을 향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 뒤에는 불이 타고 있고, 불과 죄인들 사이에는 난간이 있는 통로가 있었다. 그 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나무나 돌로 만든 물건들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면 그 물건들은 불빛에 반사되어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이들 죄수들은 머리를 좌우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벽에 반영된 그림자만을 보게 된다. 그들은 서로 서로를 결코 3차원의 존재로 보지 못하고, 벽에 반영된 그림자만 본다. 동굴에는 메아리가 울리기 때문에, 난간의 통로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 소리는 벽에 반사된 그림자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라고 상상한다. 이들 말하는 그림자들이 죄수들에게는 실재가 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벽에 반영된 것은 난간 통로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이요,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 물체들 뒤에서 비쳐오는 불빛에 따라 그림자는 변한다. 그래서 그림자의 세계를 ‘생성의 세계 2’라고 하고, 난간의 통로에서 움직이는 특수한 물체를 ‘생성의 세계 1’이라고 한다면, ‘생성의 세계 2’는 ‘생성의 세계 1’의 반영으로서, 속임과 망상의 세계라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육의 눈으로 보는 ‘생성의 세계’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추상적인 ‘존재의 세계’의 반영이고 한다. ‘존재의 세계’에도, ‘생성의 세계’처럼, 마음의 눈으로 이해하는 ‘존재의 세계 2’가 있고, 이것은 이성의 차원인 원리와 학설의 ‘존재의 세계 1’의 반영이 된다고 한다. 가시적인 ‘생성의 세계’ 위에 불가시적인 ‘존재의 세계’가 있고, ‘존재의 세계’의 절정에는 영원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한다. ‘생성의 세계’는 물리적인 세계로 ‘참 것’이 아니며, ‘존재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로 ‘참 것’이라고 한다. 개별적인 특수한 컵들은 우주적인 컵의 모형, 그림자, 반영이라는 것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변하는 가시적인 세계로부터 떠나서 불변하는 참 것에 도달하려는 헬라적인 사상은, 분명히 히브리서 저자가 성취하려는 히브리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이런 철학적인 사고를 적용하여, 개별적인 특수한 교회들은 보편적이요 우주적 가톨릭교회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개별적인 교회는 바티칸에 있는 가톨릭교회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서 8장 1~2절은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하신 대제사장으로서 ‘참 것’인 하늘의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이시며, 이 지상의 제사장들은 하늘의 대제사장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에 지나지 않으며, 이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와 참 장막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7-14
  •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성서해석 강좌
      성서의 역사·문화·언어적 맥락 이해통한 실천적 신앙 조명 부활의 하나님 개념통한 이방인 구분의 무의미성 지적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지난 6일 동 연구원 방배동 강의실에서 「갈라디아서 산책」이란 주제로 강좌를 열고, 편향되지 않은 성서 해석을 위한 역사·문화·언어적 맥락 이해의 중요성을 소개했다.    이번 강좌는 특정 교리나 사상에 편중되지 않고 성서 전체를 균일한 시야에서 짚어보는 데 필요한 성서 저자의 문맥 이해를 조명하고 건강한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건강한 신앙관 확립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강좌 강사로는 권연경교수(숭실대)가 나서 저서 <갈라디아서 산책>을 중심으로 문맥을 중점으로 두는 성서 해석의 실천 방법을 교육했다.    많은 이들이 성서를 해석할 때 문맥을 무시하는 행동을 자주 실수한다고 강조한 권교수는 “동일한 표현이더라도 맥락이 다르다면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가 다르듯 특정한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표현으로 전하고자 하는 진의를 곡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는 문맥을 무시한 채 표현만 떠와 자신 마음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진단했다. 또한 “성경이 저술될 당시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갈라디아서는 할례라는 화두로 인해 불거진 복음의 순종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며, “성경의 언어가 무겁게 다가오기에 독자가 해석함에 있어 압박감을 느끼지만, 언어와 상황이라는 맥락을 고려할 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기독교인들이 진리에 순종하기 멈춘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저술됐다고 밝힌 권교수는 “바울의 논증이 이항대립이라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각 장의 표현을 모두 다르지만,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성령을 따르는 신앙인의 자세이다”며, “갈라디아인들은 육체적인 부분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다 보니 상호 분쟁을 일으키고 성령의 열매로 일컫는 삶을 내팽개쳤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의 이러한 행동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맥락 아래 갈라디아서를 집필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갈라디아인들의 위기가 성령을 따라가는 삶을 버리는 문제이지 교리적인 부분에서 일어난 불화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며,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권면했다. 그는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따른 삶을 살도록 권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바울은 헬라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기에 헬라 문법에 바탕을 두는 문학적 표현을 중요하게 활용했다고 역설한 권교수는 “유대적인 지옥 개념을 활용하지 않고 육적인 부패와 신적인 불멸성이라는 헬라 사상에 바탕을 두어 갈라디아인들을 교육했다”며, “갈라디아서에서는 의의 소망을 성령으로 기다리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성령의 열매를 연결하며, 하나님께선 인간이 심는 대로 걷는다는 신학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육체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부패를 걷는다고 가르쳤다”고 전했다.    끝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을 가르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을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믿을 것을 소개했다”며, “그렇기에 남과 나를 구분하려고 하는 차별의 문화를 하루빨리 근절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7-1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5] 종교재판과 과학자의 외로움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전도서 1장 18절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하였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이란 극작품에서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갈릴레오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수학자이기 때문에 그가 교황이 되면 과학적인 탐구의 진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갈릴레오는 과학자로서 혼자서 외로움을 삼켜야 했다.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는 위대했지만,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재판에서 고문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취소하는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나약한 존재임을 표출하였다. 그의 지동설은 진실임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청의 명령에 따라 8년 동안 피렌체에 있는 집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갈릴레오과 그의 보좌관 패대르조니, 제자 안드레아 등이 모여 교황청에게 책잡히지 않게 몰래 천문학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철학자인 한 대학 총장이 태양의 흑점을 취급하고 있는 책을 가지고 와서 갈릴레오에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태양의 흑점은 태양의 움직임과 지구와 태양계의 다른 위성들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적인 탐구이다. 전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갈릴레오에게 신비한 태양의 흑점에 관해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이단으로 화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답하기를 거절했다.   대학 총장이 갈릴레오로부터 태양의 흑점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떠나간 후, 루도비코가 예기치 않게 로마로부터 돌아왔다. 처음에 갈릴레오는 루도비코를 알아보지 못했다. 갈릴레오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루도비코는 로마로부터 전할 소식을 가져왔다고 했다. 로마의 가톨릭 대학의 천문학부 부장은 태양의 흑점은 지구의 변혁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고 하면서, 태양의 흑점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황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대되는 것이 갈릴레오에게는 기쁨이었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자신이 수학자로서 과학적인 탐구에 동정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황이 되면 자유롭게 천문학에 관한 진리를 진솔하게 발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이제 천문학 연구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선포하고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평범한 이탈리아어로 쓰겠다고 했다. 갈릴레오와 그의 연구자들은 벌써부터 태양의 흑점들의 문제를 비밀로 연구하고 있었다.   갈릴레오가 바르베리니 추기경을 신임한 것은 아이러니했다. 왜냐하면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8년 전에 갈릴레오를 올가미에 빠지게 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음모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갈릴레오의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됨을 알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천문학 연구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가톨릭교회와의 갈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보호를 받기 위해 메디치가의 코시모 태자에게 의지하여, 그는 딸 버지니아와 함께 태자를 알현하기 위해 궁중으로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 갈릴레오는 자기를 보호해줄 권력자를 잃어버렸기에, 교회와의 불평등한 싸움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시편 68편 6절에서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에게 영원히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시고, 갇힌 사람을 풀어내서, 번영을 누리게 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메마른 땅에서 산다”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0-07-12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6] 과학자의 진실과 종교재판의 협박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호세아 10장 4절에서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고 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갈릴레이의 삶〉에서 갈릴레오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제판에서 고문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취소하는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나약한 존재임을 표출하였다. 그의 지동설은 진실임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로마 바티칸의 회의실에서 이제 울반 8세 교황이 된 바르베리니가 종교재판관의 알현을 허가했다. 교황은 제복을 입고서, 갈릴레오가 박해 당하게 할 의향이 없음을 선포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교황은 교회가 과학적 탐구를 억압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갈릴레오를 고문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지동설 주장을 취소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황 울반 8세는 교황의 제복을 입고서, 먼저 자신이 과학도요 갈릴레오의 천재성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의 제복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교회의 권위자로서 교회의 이익추구를 위해서 갈릴레오를 박해하도록 허락했다. 교황도 자기 자신의 제복이 상징하는 권력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갈릴레오는 바티칸으로 불려가서 종교재판에서 심문을 당하게 됐다. 갈릴레오는 고문을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고서, 그의 지동설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의 학생들은 갈릴레오가 교회의 권력자들로부터의 압력에 항복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갈릴레오가 자기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선포한 해인 1633년부터 1642년 세상을 뜨기까지, 갈릴레오는 늙고 깨어진 상태에서, 가택에 연금되어, 교황청의 사제가 그의 활동을 감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갈릴레오는 거의 눈이 먼 상태였다. 그의 딸 버지니아가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교회는 갈릴레오 쓰는 모든 논문은 그의 딸 버지니아가 그 내용을 받아 적도록 하고서, 논문마다 종교재판관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날에 그의 제자인 안드레아가 찾아왔다. 갈릴레오는 그 제자에게 〈두 가지 새로운 과학들〉이란 책 한 권을 주었다. 그 책은 그의 과학적인 발견들을 진솔하게 기술한 책이었다. 갈릴레오는 안드레아에게 그 책을 이탈리아 밖으로 몰래 내어보내어 외국에서 읽게 하라고 했다.   안드레아는 이제 옛 스승인 갈릴레오가 발견한 지동설을 취소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알드레아는 갈릴레오가 그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한 것은 교회지도자들을 속여서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의 행동은 영웅적임을 믿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취소한 것은 고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했다. 안드레아가 떠난 후, 갈릴레오는 딸 버지니아가 요리한 거위고기를 먹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의 논문을 가지고 국경선을 넘었다. 몇 명의 소년들이 늙은 여인의 집밖에서 노리를 하면서 “저 여자는 마녀야, 화형에 처해야 해!”라고 했다. 안드레아는 소년들 중에 한 소년에게 “저 부인의 창문 속을 들여다보고서 그 증거를 대란 말이야”고 했다. 그 소년은 노부인이 아무런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도, 마녀라고 믿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소년에게 “눈으로 본 것을 다시 생각해 보란 말이야!”하고 떠나갔다. 미신은 잘 살아지지 않는다. 소년은 노부인이 건전하다는 증거를 본대도 불구하고 자기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갈릴레오가 꿈꾸고 있는 이성의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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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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