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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간병돌봄사, 베다니로 향한 예수님처럼
    간병돌봄사 박미정목사  성경에서 보면 눅 19:10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은 택하신 백성을 찾기 위함이다.    그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역사에는 항상 중간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들어가셨는데, 이유와 목적이 바로 잃어버린 영혼인 나사로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베다니에 병든 나사로가 살고 있었는데, 베다니는 ‘고통의 집’, ‘괴로움의 집’, 슬픔의 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나사로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 있다. 사회봉사활동가로서 간병돌봄사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예수님이 베다니에 내려가신 것처럼 아픈 자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픈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간병돌봄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픈 병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육체적인 병으로 고통당하고 또 그로 인하여 영적인 절망과 피폐로 낙심하며 절망 가운데 있는 한 영혼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간병돌봄사가 해야 하는 귀한 사역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리신 나사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자였고(요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병든 자였으며, 또 그의 누이인 마르다는 요 11:27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고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한다.    헬라어로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인 스톨케와 친구와 친구의 우정인 필레오, 또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인 에로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우리가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창세 전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사람의 옷을 입히시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어서 보내주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들이 병들어 아플 때, 하나님은 안타까와 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사람에게 병이 오는 이유는 첫째, 선천적인 이유가 있다. 태어나면서 병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는 국가, 교회, 사회단체가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한다. 둘째, 후천적 요인으로 자기의 건강관리 부족이나 사고로 인한 것이고 셋째, 마귀로부터 오는 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병이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나면서 맹인이 된 자가 있었는데 제자들이 질문했다. “맹인이 된 것이 부모의 죄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후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에서 씻고 오라고 하셨다.     간병돌봄사는 아픈 이유야 어쨌든 환자를 정성껏 돌보고 기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믿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이고 환자에게는 희망과 긍정으로 항상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사복음서에서는 죄 용서와 병 치료, 귀신으로부터의 놓임의 자유와 일상적 삶의 기적이 있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 등이다. 자연을 굴복시키고, 풍랑을 잠잠케하며, 무화과 나무를 시들게 만드는 예수님의 기적이 오늘날 우리 간병돌봄사로부터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즉, 믿음과 행함과 적극성으로 현장에 나가야 한다.     야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찌니라”라 했다.     사회봉사활동가협회의 간병돌봄사는 주의 종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기름을 바르고), 환자를 정성껏 돌보며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면서 병자의 치료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소생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어떤 상황에도 성령을 의지하여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죽은 나사로는 살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 등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었고 나사로로 인하여 생명(生命)을 주관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알고 있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간병돌봄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심정(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 어미가 새끼를 품듯 잘 보살피고 병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한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사실에 온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이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듯이, 우리 사회봉사활동가협회 간병돌봄사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기초가 되어야 하고 또 자부심을 갖어야 한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군병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간에도 병상에서 고통당하는 환자들은 믿음의 간병돌봄사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이 ‘고통의 집’, ‘괴로움의 집’, 슬픔의 집’이라는 베다니로 향했듯이, 우리 간병돌봄사들도 베다니로 가야 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한 나사로처럼 우리는 베다니의 기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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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6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24) 비둘기 눈, 염소 떼 같은 머리카락
       우리 몸의 전체 부분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눈이라고 본다. 네 눈이 순전하면 온몸이 빛으로 가득하고 네 눈이 악하면 온몸이 어두워진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마6:22). 주님이 신부 성도를 가리켜 네 눈이 비둘기 눈을 가졌다고 하신다. 이는 눈이 순전하다는 것이다. 순전한 눈은 그리스도의 눈을 가리킨다. 이 순전한 눈의 반대는 악한 눈이다. 이는 마귀의 눈을 가리킨다. '마귀의 눈'은 넓은 문, 넓은 길로 인도한다. 순전한의 어원은 아폴루스이다. 이는 ‘가시면류관을 엮어 쓰다, 고난받다’의 의미가 담겨있다. 즉 예수님이 가시면류관 쓰고 고난받은 것이 ‘순전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눈을 가진 자는 주님과 똑같은 안목을 가지고 주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주님이 어떤 길을 가셨는가?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고난의 길, 좁고 협착한 그 길을 가셨다. 신부 성도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르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주님과 똑같은 안목으로 가고 있다. 이를 신랑 예수께서 ‘네 눈이 비둘기 눈으로 아름답다.’고 감탄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각오와 신앙으로 나아가는 자는 실제로 눈빛이 강렬하다. 또 사랑이 가득한 눈빛을 띤다. 비둘기 같은 신앙은 신앙의 절개, 지조를 의미하고, 눈이 비둘기 같다는 것은 예수님과 똑같은 안목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10:16에 주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너희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양과 같도다.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양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결국 이리한테 죽임당하는 것이된다. 이는 비록 육신은 죽임당할지라도 신앙 승리이다. 이것이 비둘기 눈을 가진 것이다.  4:1下 네 머리카락은 길르앗 산에서 나타나는 염소 떼 같구나. 염소는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생축이다. 염소 떼가 쉬는 모습을 보면 물결이 굽이치듯 열을 지어서 앉는다. 반면 양 떼는 미련해서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양들끼리 서로 밟기도 한다. 염소를 양 떼들 사이에 집어넣는 것은 양들이 무리를 지어 뭉칠 때 양끼리 서로 밟혀 죽지 않도록 염소가 흩어놓는 일을 한다. 염소는 자기의 고집이 없다. 자기의 뜻을 버리고 전체의 조화·화목을 도모한다. 머리카락은 지혜를 상징한다. 신부 성도의 지혜가 길르앗 산의 염소 떼와 같다는 것이 무엇인가? 길르앗 산은 창31:23에 야곱이 외삼촌 라반 몰래 자기의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7일간을 도주하여 머문 곳이 길르앗 산이다. 야곱의 양이 밤낮 쉼 없이 7일간을 달려도 넘어지거나 다치거나 지치는 양이 없었다. 이와 같이 신부의 지혜는 길르앗 산에 도달한 양과 같이 연단된 신앙의 사람이다. 즉 강건한 신앙으로 세워지는 말씀의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부의 영적 모습이다. 신앙의 연단이 많이 이루어져서 강건한 신앙에 이르는 지혜를 가졌으면 이것이 길르앗 산의 머리카락이다.   또 길르앗 산의 염소 떼 같은 머리카락은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화목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지혜이다. 히12:14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화목하게 하는 자라야 재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의 뜻을 위해서 화목케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바로 그것이 염소 떼 같은 머리카락이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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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23) 보라, 나의 사랑
       시온의 딸들인 그리스도의 신부 된 자들은 왕관 쓴 솔로몬 왕을 보라고 하신다. 이는 신부 성도가 그토록 사모하던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라는 것이다. 신랑으로 맞아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마침내 되라 하신다. 이 신부 될 성도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구주요, 남편이 되기까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산제물 되었고 성화를 거쳐 드디어 순교제물로 바칠 수 있게 된 자로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혼인식 날, 그의 마음의 기쁨의 날에 그에게 씌워준 왕관이로다. 혼인식 날 예수께 왕관을 씌워준 그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시었다. 또 행10:38에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음 받아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하셨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또 십자가에 죽임당하실 때도 성령으로 이기셨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활하실 때도 오직 성령이 부활시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어머니는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이 예수님을 고난과 죽음에서 이기게 하시고 영광도 받게 하시었다. 즉 성령이 예수님께 왕관을 씌워준 것이 된다. 자식을 낳은 어머니는 어떤 날을 가장 사모하고 기뻐하는가? 이는 아이를 잘 키워서 결혼시키는 때를 가장 기대한다. 결혼은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창2:24). 혼인식 날에 왕관 씌워주어 혼인하는 것을 그토록 기쁘게 여기는 그의 어머니이다. 이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어린양의 혼인식 잔치에 신부를 초대하여 혼인하는 것을 최고로 기쁘게 여기신다. 찬란한 왕위인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에수님이 누구이신가? 광야에서 짐승들도 쳐 멸하시고 병거를 타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오시는 분이시다. 이는 혼인식에 신부와 혼인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4:1 보라,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보라, 너는 어여쁘도다. 너는 네 머리타래 안에 비둘기들 의 눈을 가졌고, 네 머리카락은 길르앗 산에서 나타나는 염소떼 같구나. 신랑 예수님이 그의 아내가 될 신부성도에게 ‘보라,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보라, 너는 어여쁘도다.’하고 찬탄을 아끼지 않고 있다. 1절부터 5절까지 신랑 예수님이 신부 성도의 영적인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부성도 스스로 아름다워진 것이 아니다. 신부성도 안에 계시는 흠 없고 완전한 그리스도가 바로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다. 그분으로 인하여 그의 아내로 아름답게 변모시켜 주신 것이다. 그분은 1~3장까지 신부성도에게 여러 번에 걸쳐서 부족한 것을 계속 채워주셨으니 그것이 곧 아름답게 하신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종국에는 그분의 형상과 일치 되어지도록 아름답게 하시는 것이다. 이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 머리 카락, 이, 입술, 뺨, 목, 유방의 순서대로 나타내고 있다. 먼저, 네 머리타래 안에 비둘기들의 눈을 가졌구나, 이 머리타래는 진리 지식을 상징한다. 이 진리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진리 지식,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바로 그 말씀인것이다. 즉 신부의 안목은 그리스도를 아는 진리지식 안에 있는 비둘기 눈 같다는 것이다. 신랑 예수님이 신부성도의 그 눈을 바라보게 되면 마치 "네 눈에 내가 빠져 들어간다!" 라고 황홀해 하신다. 감탄하시는 것이다. 왜 그런가? 신부의 눈이 왜 비둘기의 눈이라고 했을까? 주님은 마6:22에서 네 눈이 순전하면 온몸이 빛으로 가득 차고, 네 눈이 악 하면 온몸이 어두워진다고 말씀하셨다. 몸 전체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눈이다. 여기서 '순전한 눈'은 그리스도의 눈을 가리킨다. 신랑 예수님과 신부 성도는 하나로 연합됐으니 그들의 눈도 하나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보는 안목과 신부 성도의 안목이 일치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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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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